'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자본주의 관련서가 몇 권 출간됐지만 자주 다룬 주제이기에 학습법부터 현대사회, 사회적 영성과 관련한 책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타이틀북은 교육학 책이면서 뇌과학서로 분류되는 헨리 뤼디거 등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와이즈베리, 2014)다.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이 부제. 소개는 이렇다.

 

11인의 학자가 10년간 수행한 ‘교육현장 개선을 위한 인지심리학의 응용’ 연구를 집대성한 하버드대학교 출간 교육학 명저! 자기주도학습은 틀렸다. 최고의 선수는 훌륭한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 밑줄 긋기, 강조하기, 벼락치기, 반복 학습, 집중 연습은 안다는 착각을 일으킬 뿐 그렇게 익힌 지식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지식과 기술을 더 잘 배우고 더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즉각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학습법은 무엇인가? 독보적 실력의 신경외과의사, 미식축구 챔피언 팀 코치, 꼴찌에서 일등이 된 의대생, 농업 기술을 독학으로 익힌 정원사, 88세의 피아니스트와 기억력 대회 우승자까지, 생생한 사례와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된 학습법을 소개한다.

내주에 기말시험을 앞둔 중학생 아이가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책이지만, 이제 막 새로운 공부에 눈뜬 중년 독자들에게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두번째는 독일의 르포작가 그레타 타우베르트의 <소비사회 탈출기>(아비요, 2014).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가 부제다. 물론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점점 심각해져가는 재정 위기, 자원 고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는 이런 두려움이 한순간의 심리적 문제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특히나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로 점철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이미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그레타 타우베르트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정말 모든 것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면 어떻게든 최악의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여긴 저자는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1년간의 생존 연습을 통해 실험해보기로 한다.

우리도 점차 이러한 탈출법을 연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낭비로부터의, 쓰레기로부터의 탈출이 생존의 관건이 되는 시대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번째 책은 시각과 근대성의 문제를 다룬 <관찰자의 기술>(문화과학사, 2001)의 저자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2014)이다. '잠을 추방한 테크노자본주의 시대에 관한 보고서'로서 "‘24/7(Twenty-four seven)’ 체제, 즉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의 풍경과 일상을 분석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이라면 일독해볼 만한 책이지 싶다(수면 부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지만).

 

 

14인의 신학자와 비평가가 쓴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이 네번째 책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를 묻는다. "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이해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마음 · 감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공감 행위에 관한 신학적 · 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사회적 영성’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치유와 배려, 희생과 배품을 말하는 ‘윤리적’ 언설들이 가득하다. 지은이들은 그 안에서 영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망각해온 공동체적 · 관계적 영성을 찾아내고 그 효과를 새로이 읽어내고자 한다."

 

끝으로 청어람아카데미 대표이자 복음주의 운동가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2014). "가나안 성도는 누구이며 왜 교회를 떠났는지, 이들을 탄생시킨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아울러 이들의 존재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며, 이들이 찾아가는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간다." 가나안 성도가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다. ‘안 나가’를 뒤집어 나온 말이 ‘가나안’이고, '가나안 성도'란 오늘날 제도 밖에서 신앙을 찾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전체 그리스도인 수에 비하면 아직은 소수다. 그래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사회적 영성이건 신앙이건 간에 지금의 한국 교회 안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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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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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회 탈출기-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레타 타우베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아비요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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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13,800원 → 13,110원(5%할인) / 마일리지 550원(4%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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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김진호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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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쓰기를 다룰 때 언젠가는 한번 언급하려던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안톤 체호프 전문가 피에로 브루넬로가 엮은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청어람미디어, 2014). 부제가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으로 특이하게도 체호프의 <사할린섬>을 다룬 책이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섬>(동북아역사재단, 2013)이라고 번역돼 나온 책. 그러니까 <사할린섬> 입문서 겸 체호프적 글쓰기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체호프의 사할린섬 여행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가 쓴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원저는 2004년에 나온 이탈리아어본이고 2008년에 영어본도 출간됐다(다시 확인해보니 영어판은 다른 책이다.브루넬로가 편집하긴 했지만, 영어판은 제목 그대로 '체호프처럼 글쓰는 법'을 다룬다).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본을 옮긴 것인데, 이탈리아어본의 표지는 이렇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영어판에서, 부제는 이탈리아어판 제목에서 가져온 듯하다.

 

 

1890년 체호프가 만난 사할린섬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는 3개월 간 체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보고서 <사할린섬>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곤 할 수 없어도 강제수용소에 대한 좋은 보고서이다. 마치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결과물 같은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조사하는 동안 보고서는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저자는 <사할린섬>을 체호프가 의대 박사논문으로 구상했다고 말하는데, 나로선 들은 바가 없어서 이 대목은 체호프의 전기에서 확인해볼 사안이다).  

 

인상적인 건 체호프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안톤 체호프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는 식사 초대에 응하고, 낚시를 하거나 길을 가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든 이웃의 말을 믿고, 편견 없이 정직하게 관찰하고, 소식을 직접 확인하고,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 못지않게 체호프에세 배울 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체호프의 놀라운 사교성'이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래하는 자와 함께 노래할 수 있고, 술고래와 더불어 취할 수 있는 그의 개방적인 성격" 말이다. 톨스토이처럼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성격이다. 체호프가 알렉세이 수보린에게 보낸 편지글을 빌리자면, "톨스토이 등은 "장군처럼 뼛속 깊이 독재적인 사람들"이다.(16쪽)

 

체호프는 톨스토이를 누구보다 존경했지만, 의사 출신 작가답게 인물이나 (<부활>에 대한 혹평에서도 확인되듯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사할린섬>의 보고서 문체 또한 그런 태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할린섬>은 갖고 있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이사 뒤에 아직 찾지 못해서(한국어본은 또 어디에 있나?), 아직 완독을 미뤄두고 있는데,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는 좋은 자극이자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여차하면 영어판도 구해볼까 싶다).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심지어 아직 읽거나 되읽을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내년에는 체호프에 대한 (집중)강의도 계획해봐야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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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북플이 생기면서 즐찾이 하루에 수십 명씩 늘어나고 있고(오늘로써 5000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친구신청도 쇄도하고 있다(오늘로써 120명이 넘어섰다). 가만히 있어도 활동량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없던 피로감마저 느껴진다(뭔가 일을 하나 더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너무 많은 친구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조만간 겪게 될 듯한데, 오프라인에서는 친구들과 분기에 한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이렇게 '사교적'이 되다니 알 수 없는 게 온라인 세계다(그럼에도 아직 북플에 익숙지 않아서 검지로 클릭하는 것만 하고 있다). 푸념은 푸념이고, '이주의 책'을 고르려다가 따로 처리해야 할 저자들도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한번 더 고르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두 역사학자만 따로 적기로 한다. 미시사로 유명한 내털리(나탈리) 데이비스와 한국사 연구자 에드워드 슐츠다.

 

 

먼저, 내털리 데이비스. 1928년생이니까 이젠 상당히 연로한 학자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르탱 게르의 귀향>(지식의풍경, 2000)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주된 연구분야는 16세기 프랑스사다. 16세기 프랑스의 선물 문화를 다룬 <선물의 역사>(서해문집, 2004)와 16세기 한 무슬림 책략가의 삶을 다룬 <책략가의 여행>(푸른역사, 2010)에 이어서 이번에 나온 건 <주변부의 여성들>(길, 2014)로 '17세기 세 여성의 삶'이 부제다. 1995년작.

유럽과 일본의 종교를 비교 연구해 이른바 ‘다중적 근대성’을 주장한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근대화: 비교의 관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책에서 그녀는 17세기 세 여성, 즉 독일계 유대인 상인 글리클 바스 유다 라이프, 프랑스 출신 가톨릭 선교사 마리 기야르,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를 넘나들며 활동한 신교도 화가이자 곤충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을 비교한다. 유럽 내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았고 종교, 직업, 계급이 달랐고, 결혼생활의 방식과 자녀 양육에 대한 태도까지도 모두 달랐던 세 여성의 삶을 각각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데이비스는 17세기 유럽의 도시 여성의 삶에 열려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하고자 한다.

17세기 여성의 삶이면 문학작품을 통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운데, 그런 난점을 돌파해줄 만한 책으로 여겨진다. 원로 학자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작.

 

 

그리고 미국의 한국학자로 고려사가 전공인 에드워드 슐츠.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를 영역하기도 한 학자다.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무신과 문신>(글항아리, 2014)이 이번에 출간됐다. '한국 중세의 무신정권'이 부제.  '무신정권시대'라는 용어로 우리에게 각인된 상식에 어떤 통찰을 더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려의 무신 집권기를 다룬 책으로, 해외 한국학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저작이다. 최충헌의 무신정권을 집중 연구한 저자는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무신정권과의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궁리는 연구로 이어졌다. 저자는 박정희와 최충헌 모두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고, 또한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한계 속에서 문치文治를 중시한 것 역시 공통점으로 꼽는다. 저자는 무신 정권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평가들과 달리,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제도적으로 어떠한 발전을 이루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역사 해석의 한 관점을 제시한다.

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는 해외 한국학의 좌장격인 제임스 팔레 교수의 견해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슐츠 교수의 책은 한국사의 중요한 발전이 일어난 1170년부터 한 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의 수립 과정에 대한 매우 소중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 기간은 12세기 후반 일본 가마쿠라 막부와 일부 닮았지만, 고려에서 무신은 중앙에서 권력을 장악해 국왕을 무력화시킨 반면 문신은 그대로 관직에 두었다. 이런 무신정권 시대는 한국이 저항하는 세력에 맞서 중국 방식의 문신 통치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며, 고려왕조의 관습과 제도가 문신이 통치하며 왕권이 강화되고 유교 규범이 지배한 조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고려 역사의 이런 중요한 시기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업적이다.

 

그에 상응할 만한 업적이 국내에는 뭐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통사의 일부가 아니면 학술논문들이 좀 있으려나. 말이 '국학'이지 어떤 주제이건 간에 막상 깊이 있는 저작을 찾으려고 하면 빈곤해 보이는 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인 듯싶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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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목전에 둔 11월의 마지막 주말, 이라고 해도 특별한 감회는 없고 오후에 일정이 있을 뿐이다. 외출하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로만 골랐는데, 작고한 재일 은둔작가 손창섭을 머리에 올린 건 정철훈의 <내가 만난 손창섭>(도서출판b, 2014) 때문이다.

 

 

몇년 전에 <잉여인간> 등 손창섭의 대표작 몇 편을 강의한 적이 있고 그때 연구자료도 여러 권 구해 읽었었다. 그래도 <내가 만난 손창섭>이 미리 나왔더라면 아주 요긴했을 것 같다. 거꾸로 이제라도 손창섭을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겐 유익한 참고가 되겠다. 부제는 '재일 은둔 작가 손창섭 탐사기'. 손창섭의 독자라면 자전적 단편 '신의 희작'이 얼마만큼 실제에 부합하는지 궁금할 텐데, 이 역시 탐사기에서 확인할 사항. 이 탐사기의 출간과정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손창섭(1922-2010). 전후(戰後)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손창섭은 월북 작가도 아닌데, 생몰 연대 가운데 한쪽은 지난 30년 간 비어 있었다. 1973년 일본인 아내 우에노 지즈코와 딸 도숙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국내 문단과 소식을 끊고 있었던 재일(在日) 은둔 작가 손창섭을 찾아나선 이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문학저널리스트인 정철훈(55)이다. 일찍이 단편 '신의 희작'(1961)에서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전부가 싫은 것이다.”라며 이 땅의 시인과 소설가들의 선민의식을 냉소했던 손창섭의 행방이 궁금했던 지은이는 2005년 <손창섭 단편 전집 1.2>(가람기획)과 장편소설 <유맹>(실천문학사)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이 책들의 인세는 과연 손창섭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품고 손창섭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손창섭을 아는 분 누구 없습니까?”라고 물은 지 4년. 아무 응답도 들려오지 않자 정철훈은 과거 손창섭과 알고 지냈던 국내 출판계와 문학계 인사들을 직접 수소문한 끝에 손창섭의 일본 주소를 손에 넣은 뒤 무작정 일본으로 향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인 셈.

 

 

 

작가 황석영 선생의 <여울물 소리>(창비,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초판을 읽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뿐한 마음이다. 장편소설로 보자면 <바리데기>와 <강남몽>에 이어지는 작품. 작가의 말에서 "어쨌든, 나는 이 작품으로 한 시기를 끝내면서 새로운 들판을 찾아 떠나려 한다"고 적었다. 그렇게 읽어달라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시대의 거장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작가는 초판본(2012)의 오류를 바로잡고, 1년여에 걸친 치열한 퇴고를 통해 한결 정갈한 작품으로 <여울물 소리>를 재탄생시켰다. 1894년 사회적으로 고착된 부패와 외세의 내정간섭에 맞서 들불같이 타오른 혁명의 현장을 배경으로 작가는 피폐해진 민중의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소설은 '반동의 시대'인 19세기 후반부를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꾼(전기수)이자 혁명가인 주인공의 생애를 무게감 있게, 때때로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경쾌하게 그려낸다. 임오군란(1882)과 동학혁명(1894), 청일전쟁과 갑오개혁(1894)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전면과 배면에 등장함으로써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만든다.

올해 나온 황석영의 작품으론 한국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온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2014)과 김석만 등이 각색한 <한씨연대기>(지만지, 2014)가 있다. 그렇게만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재일 지식인이자 저술가 서경식 선생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가 출간됐다. '순례'로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2002),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1)에 이어지는 것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 서경식이 ‘조선 민족’ 미술가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토대로 묶은 미술 순례의 기록이다. 저자는 55세가 되었던 2006년부터 2년 동안, 연구를 위해 한국에 체재하게 되었고, 너무 늦어 때를 놓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참에 같은 민족의 언어, 습관뿐만 아니라 문화, 특히 미술에 대해 가능한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그 바람을 조금씩 이루어나갔다. 조국의 민주화를 갈구하며 머나먼 이국에서 미술관들을 순례한 지 20년, 서경식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조선’의 미술, 미술가들과 만났다. 이 책은 그 길고 긴 여정의 중간보고다.

'중간보고'라고 하므로 저자의 순례는 앞으로 더 이어지는 모양이다. 서양미술과는 달리 '조선미술'은 비교적 쉽게, 그리고 가까이 접할 수 있을 듯싶어서 그의 순례기가 기대된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그랬듯이 미술을 바라보는 속깊은 눈을 우리는 조선미술에 대해서도 갖게 될 것이다...

 

1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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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차 지방에 다녀오는 기찻간에서 주로 졸거나 알라딘 북플을 들여다봤는데(북플이 '북'과 '피플'의 합성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너무 시간을 낭비한다 싶어서 몇 페이지 읽은 책이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은행나무, 2014)이다. 주문했던 원서를 엊그제 받은 터라 아침에 같이 가방에 넣은 책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과 겹쳐 읽으면 좋을 만한 책(작가 지망생이라면 두 권 모두 필독해 볼 만하다).

 

 

원서도 주문한 건 만만한 분량인데다 오츠의 문장을 좀더 정확하게 읽어보고 싶어서였는데, 역시나 도움이 된다. 번역이 모호한 대목이 있고, 예기치않은 오역도 나오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 아니므로 2쇄때는 교정되면 좋겠다 싶어 적는다. 먼저, 젊은 작가들에 대한 오츠의 충고.

젊거나 갓 시작하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고전과 현대 작품 양쪽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이 기술의 역사 속에 푹 빠져보지 않은 작가는 아마추어, 즉 '창조적 노력의 95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으로 영영 남게 되기 때문이다.(10쪽)

'기술의 역사'는 'history of craft'를 옮긴 것이다. 장인적 기예를 가리키며 오츠는 작가를 '기능공'이라고 부른다. 막심 고리키 같은 작가가 스스로를 일컬어 '숙련공'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기능공이나 숙련공이나 영어 단어로는 'craftsman'을 옮긴 것이다). 이 숙련공이 전업 작가인 것. 반면에 아마추어란 열정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츠가 말한 건 창조적 노력의 '95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이 아니라 '99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이다. 'ninety-nine percent'를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95퍼센트'로 옮긴 것 같지는 않고, 선입견에 따라 잘못 본 게 아닌가 한다.

 

오츠의 에세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읽은 건, 원서를 주문하기 전에 조금 들여다봤던 '작가의 독서: 기능공으로서의 작가'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독서가 빠진다면 과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오츠의 생각도 그렇다. "당신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142쪽) 에세이는 바로 그 작가의 독서 경험을 여러 다른 작가들과 오츠 자신을 사례로 삼아 다룬다. 가령 젊은 카프카의 경우는 어떤가.

 

"나를 찢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거대한 세계"를 산문으로 바꾸어 그 세계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밤샘 작업하며 첫 소설 <소송>을 고투 속에서 쓰고 있는 젊은 프란츠 카프카를 생각한다.(123쪽)

얼핏 문제가 없는 듯싶지만, '첫 소설 <소송>'이라고 옮긴 건 'his first story, "A Judgment"'다. (장편)소설이 아니라 '선고' 또는 '판결'이라고 옮겨지는 단편을 가리킨다. 1912년 9월 22일 밤 10시에 시작해 아침 6시까지 꼬박 8시간 동안 매달려서 완성했다고 하는 단편으로 카프카로서는 창작에 결정적인 돌파구였고 가장 만족스러워 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역자가, 더구나 송경아 작가가 <소송>이라고 잘못 옮긴 건 의외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한 대목. 나도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카버의 마지막 발표작 <심부름>을 언급하고 있어서 반가운데("체호프의 마지막 나날들과 죽음, 그리고 그의 죽음에 따른 사건에 대한 것") 이에 대한 오츠의 평은 이렇다.

그것은 실제로 체호프의 전기에서 고쳐 쓴 것이지만 카버의 특징인 스스럼없는 문체와는 달리 긴박하고 시적으로 추출된 문체로 쓰였다. 쉰 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죽음에 다가가며, 레이먼드 카버는 마흔네 살에 폐결핵으로 죽은 그의 영웅 체호프의 요절 이야기를 위해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낸 것 같다.(139쪽)

이 단편이 <대성당>(문학동네, 2014)에는 빠져 있어서 아쉬운데, 단편집 <내가 부름 받고 있는 곳(Where I'm Calling From)>에 수록돼 있다. 그런데, '내가 부름 받고 있는 곳'이란 번역은 아무래도 오역이다. <대성당>에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라고 번역된 작품이고, 내용상 그게 맞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수년 전 카버의 단편들을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카프카의 단편이나 카버의 단편이나 많이 읽히는 작품이고 번역도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나 편집자가 확인하지 않은 건 불찰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다. 작가의 독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1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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