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동국대학원신문에 실은 '원서서평'을 옮겨놓는다. 매번 마감에 쫓기다 보니 가벼운 터치의 책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다룬 건 제임스 웨스트 3세의 <완벽한 시간>(2005)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첫사랑 지네브라 킹의 로맨스'가 부제. 피츠제럴드의 작품, 특히 <위대한 개츠비>를 강의할 때 참고했던 책이다.

 

 

동국대학원신문(14. 12. 01) 지나가지 못한 사랑, 첫사랑에게 되돌려진 피츠제럴드의 편지

 

미국의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독자라면,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1925)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주인공 개츠비의 필생의 사랑인 데이지 뷰캐넌의 모델이 누구일까 궁금해 할 법하다. 첫 소설 『낙원의 이편』(1920)부터 피츠제럴드는 주로 자전적인 경험을 소재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바즈 루어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라면 데이지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제임스 웨스트 3세의 『완벽한 시간』(2005)은 그 데이지의 모델이 피츠제럴드의 첫사랑이었던 지네브라 킹이며, 두 사람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은 사이였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에 근거해서 밝히고 있는 책이다.

 

 

『낙원의 이편』에 등장하는 이자벨의 모델이기도 한 지네브라의 존재 자체는 피츠제럴드의 전기 작가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전의 인터뷰에서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가 젊은 시절 자신을 둘러쌌던 많은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는 터여서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그녀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피츠제럴드 역시 떠들썩한 연애상대였던 젤다 세이어와의 결혼을 위해 『낙원의 이편』 출판을 서둘렀기에 대개 그렇듯이 그의 첫사랑은 ‘지나간 사랑’으로 여겨졌다. 당시 판매는 『낙원의 이편』에 미치지 못했지만 피츠제럴드 자신은 대표작이라고 자부한 세 번째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데이지의 모델은 젤다 세이어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숨겨진 내막은 달랐다. 피츠제럴드가 젤다 세이어에 매혹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젤다가 지네브라와 마찬가지로 부잣집 딸이라는 점과 지네브라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젤다의 모습 속의 지네브라를 사랑했다고 해야 할까. 거슬러 올라가면 피츠제럴드가 지네브라를 처음 만난 건 1915년 1월의 한 파티에서였다. 두 사람은 첫눈에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졌지만 아직 십대였던 두 사람은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주로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사랑이 무르익기도 했지만 결국 2년 뒤인 1917년 1월에 두 사람은 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들의 이별에는 빈부의 차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1916년 피츠제럴드는 지네브라의 아버지인 시카고의 갑부 사업가 찰스 킹이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의 결혼을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서로 헤어지게 되자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모두 소각하고 자신이 보낸 편지도 소각해줄 것을 요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 요구에 따랐는데, 다만 자신이 타이핑한 사본을 따로 만들어둔 다음이었다. 1940년 피츠제럴드가 죽고 나서 이 사본을 보관하던 딸 스코티는 1950년에 이를 지네브라에게 되돌려주었다. 지네브라는 이 사본을 평생 옷장에 보관하다가 198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손녀가 2003년에야 할머니의 유품을 우연히 발견함으로써 다시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피츠제럴드의 편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네브라 킹의 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가 재구성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이러한 사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최소한 작가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는 해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로 읽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의 외모가 찰스 킹을 닮았다는 점도 피츠제럴드가 어떤 의도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소설에서 데이지를 완벽하게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작품 속 화자 닉 캐러웨이의 말대로 개츠비는 적어도 뷰캐넌 부부보다는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 소설가의 정산법이다.

 

14.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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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플 이용자는 알겠지만 추천마법사 외에 북플 추천이란 게 있다. 그냥 불쑥 이런 책에 관심 있을 거 같으니 한번 살펴보라고 들이미는데, <성재 봉기종 선생의 대학강해>(전학출판사, 2014) 추천이 며칠새 두 번이나 들어왔다. 이게 관심을 표명할 때까지 계속 추천하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천시스템에 대해 약간 의혹도 생겼다. 성재 봉기종 선생이 누군지도 모르고, <대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읽은 걸로 치면 학부 1학년 때 과제물로 <대학>과 <중용>을 읽은 거 같은데, 좀 과장해서 30년 전 일이다. 최근에 나온 남회근 <대학강의>(부키, 2014)라면 또 모를까.

 

 

저작선이 출간되고 있는 남회근(1918-2012)은 유불도 강의로 유명한 대만의 학자다(불교 수행자이기도 했다). 아직 저작선판으로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이전 번역판으로 나온 <논어 강의>를 좀 읽은 기억이 있다. <대학강의>에서 표나게 내세운 건 '원본 <대학>' 강연이라는 점. '원본' 얘기가 나오는 건 유가에서 사서를 편찬하면서 원본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송유宋儒인 주희는 <예기>속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떼어내어,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여 제왕의 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천여 년 가까이 '원본' <대학>은 사라지고 주희의 '장구본'이 정통으로 군림하였다. 선현의 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과거 시험의 표준이 되었고 후인들의 사고를 옭죄었으며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유가와 도가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도통道統의 시대, 담백하고 논리정연하고 정채로운 '원본' <대학>을 강의한다. <대학>은 내면의 학문 수양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본성을 실현하여 그것으로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함을 드러낸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혹은 예전에) 읽은 <대학>과는 다른 <대학>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공자들이야 이미 사정을 알고 있겠지만 일반 독자로선 흥미를 가질 만하다. 게다가 얇은 분량의 경전에 대한 두툼한 풀이여서 강연자의 솜씨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국내에서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의 강의가 더 있을 텐데, 떠오르는 건 김용옥, 김충열, 대산(김석진)의 강의다. 일일이 다 구입할 것까진 없고 가까운 도서관에 (혹 비치돼 있다면) 날 잡아서 몇 권을 나란히 펴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봄직하다. 며칠만 투자하면 '대학'의 문리가 트이지 않겠는가, 싶다. 내가 그러고 싶지만, 당장은 여유가 없군. 독서계에서 가장 부러운 건 백수 독학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독서 여유의 지존인지라...

 

14.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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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괴테를 빠트릴 수 없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젊은 베르터의 고뇌>)과 <파우스트>는 해마다, 그리고 <친화력>도 가끔 강의에서 다루게 된다. 괴테와 관련한 자료와 연구서도 해마다 업데이트를 하는 편인데, 이번주에 나온 책으로는 임홍배 교수의 <괴테가 탐사한 근대>(창비, 2014)가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 관련서로 올 하반기에 나온 몇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작품 읽기가 아니라 '괴테 읽기' 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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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탐사한 근대-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세계문학론까지
임홍배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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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
승계호 지음, 석기용 옮김 / 반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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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토마스 만 그리고 이청준
안삼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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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손관승 지음 / 새녘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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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인지 열감기인지 하루 종일 앓고서 정신을 차리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괜히 일을 더 한다는 느낌을 주는 북플 때문인가?). 바로 잠자리에 들 수 없어서 내친 김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히로세 히로타다의 <인간은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하는가>(모요사, 2014). 부제는 '살아남기 위한 재해심리학'이다. 제목과 부제만으로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가? 주된 이유는 인간심리에 깔려 있는 위험한 덫들 때문이다. 안전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에 위험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해 피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다가 위험에 빠져버리거나, 안전요원이나 전문가의 말을 과신하는 바람에 안일하게 기다리다가 도망치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기후변화, 천재지변, 신종 바이러스, 방사능 누출 등 새로운 유형의 재난과 대규모 복합 재난의 발생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삶을 유지할 것인가? 이 책은 재해 발생 시 가족과 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 매뉴얼까지 제시하고 있어 ‘재난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고 기억해야 할 책이다. 

'재난공화국' 혹은 '안전후진국'으로 낙인이 찍힌 나라에서 사노라면, 이런 류의 서바이벌 매뉴얼은 필독서다(학교 교실마다 비치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유사도서가 없을 수 없는데, 심리적 재난까지 포함한 재난 대처법을 다룬 데이비드 펠드먼 등의 <슈퍼서바이버>(책읽는수요일, 2014), 극한상황에서의 생존법을 다룬 <생존의 한계>(어크로스, 2014) 등이 올해 나온 책들이다. 상시화되고 있는 위험과 재난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분류 카테고리도 곧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열감기는 어떻게 탈출하나...

 

14.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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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좀더 길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연암서가, 2014). 주로 피터 싱어의 책들을 번역해온 김성한 교수가 쓴 진화심리학 개설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진화심리학의 이론과 응용 정도라고 해야겠다.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건 남녀의 성 특징 내지 성적 행동의 특징까지인데(이게 1부다), 저자는 이를 응용해서 '연애의 기술'까지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다(여기까지가 2부). 그리고 할 걸음 더 나아가 연애 코칭에까지(3부는 '연애의 단계'다). 과감한 시도이면서 과욕으로도 보이는데,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왜 동성애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매혹을 느낄까? 왜 그들이 매혹을 느끼는 대상은 하필이면 동물이 아닌 인간 종의 이성(異性)일까? 노인이나 아기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젊은 남성들을 교육한다고 그러한 남성들이 그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될까? 왜 젊은 남성은 글래머인 젊은 여성의 나신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될까? 왜 이 세상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를 차는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남성들일까? 왜 누구는 연애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왜 누구는 모태 솔로로 살아갈까? (4쪽)

이런 물음을 공유한다면 흥미를 갖고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가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듯한 '모태 솔로'라면 더더욱. 하지만 생물학적인 답변으로 '인간은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이미 이성간의 매혹은 다 해명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좀 의아하긴 하다.

 

 

진화생물학 책은 입문서부터 대학 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고, 성의 진화 내지 성선택에 관한 내용도 많은 책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의 강점은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연애 코칭에까지 나선 것은 좀 과도했다. 특히나 '헌신'이란 자질 혹은 덕목으로 많은 문제를 해명하려고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연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특징인 '헌신'이다.(...) 필자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남녀의 여러 특징 중에서 '헌신'만을 가지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첫째,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녀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서 연애를 잘 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헌신 외에 마땅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둘째, 만약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 중에서 '헌신'처럼 상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책에서 소개한 남성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는 이와 같은 특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7-8쪽)

그러니까 재력이나 외모, 키, 체격 같은 다른 자질은 거의 결정되어 있는 걸로 보고, 그래도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뭔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헌신'이라고 보는 듯하다(태도는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통상 더 유리한 것은 '헌신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흠, 생각해보니 사례가 없진 않다. 좀 오래된 영화로 문성근, 김희애 주연의 <101번째 프로포즈>(1993)가 있었다. 어떤 내용이던가.

건설회사 계장인 구영섭은 99번이나 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노총각이다. 그러나 100번째로 첼리스트 정원과 선을 보게 된 영섭은 그녀가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임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약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원도 성실하고 순수한 영섭의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원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죽은 약혼자와 너무나도 흡사한 김준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늘 정원과 세상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던 영섭은 준기의 등장으로 그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예감처럼 정원은 진정한 사랑과 과거의 기억의 혼돈 속에서 준기에게 마음을 돌린다. 영섭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날 정원에게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받아달라 말하려고 하지만 시헙에 떨어지고 정원에게 주려던 결혼 반지를 강에 던져 버린다. 그러나 정원은 옛사랑의 기억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한 또 하나의 사랑을 깨닫고 야간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섭을 찾아간다.

기억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것 같은데, 결말이 '영화적' 엔딩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헌신만 갖고서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에게 대시하여 성공한 사례는 20년쯤 전에, 영화에서 한번 있었다고 할까(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는 문성근의 헌신이 아니라 김희애의 헌신이로군). 어째서 그런가. 사실 이 또한 진화심리학적 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헌신은 연애하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결정적이진 않다. 연애 코칭으로선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연애'라는 말의 용례가 제한적이어서 그렇지, '사랑'이나 '애정'으로 바꿔보면,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가' 혹은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좋아하는가'라고 바꿔보면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애'는 속칭에서 그렇듯이 '성관계'를 뜻하는 정도로 한정되지만, 인간은 유별나서 또 '수간'이란 걸 버젓이 저질러왔다. 그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책의 제목은 '왜 당신은 보통 동물이 아닌 인간과 섹스를 하는가' 정도로 눅여서 이해해야겠다. 아니 동성애자뿐 아니라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못한다는 무성애자까지 고려하면, '인간끼리의 연애'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진화심리학과 연애코칭을 결합하고자 한 시도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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