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집 3권이 나왔다. <서울시민>(현암사, 2015). 극작가이자 연출가 성기웅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히라타의 희곡집은 앞서 <도쿄 노트>(현암사, 2013)와 <과학하는 마음>(현암사, 2013)이 출간된 바 있다. 동시대 극작가의 작품이 이 정도 규모로 출간된 사실 자체가 드문 일이며 일본 작가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해서 가늠하게 해준다. 히라타의 연극론도 소개된 바 있기에 같이 묶어서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서울시민
히라타 오리자 지음, 성기웅 옮김 / 현암사 / 2015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월 1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5년 03월 07일에 저장

과학하는 마음
히라타 오리자 지음, 성기웅 옮김 / 현암사 / 2013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5년 03월 07일에 저장
절판
도쿄노트
히라타 오리자 지음, 성기웅 옮김 / 현암사 / 2013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5년 03월 07일에 저장
절판
연극 입문- 희곡 어떻게 쓸 것인가
히라타 오리자 지음, 고정은 옮김 / 동문선 / 2005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5년 03월 07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에는 관심도서가 여럿 되는데, 그중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글항아리, 2015)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가 부제. "저자는 20세기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동서 논의 현장을 복원하여 신고전파 경제학이 곧 신자유주의라는 통념을 뒤집으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의 좁은 창문에 가려지기 이전에 이들의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졌던 ‘경계 없는 은하계’를 그려 보인다."

 

 

원서를 찾아보니 번역서 제목이 부제이고, 원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시장'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재발견'이라는 게 책이 갖는 의의로 지목된다. 소개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회주의는 반反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인가? 이 책에 따르면 이는 근거 없는 낙인이다. 20세기 동유럽에서는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을 추구하는 유의미한 정치 실험이 이루어졌고 이는 당시 신고전파 경제학 담론의 주요 축이었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가 이념적 승리를 거두면서 ‘자본주의적 시장’이 가능한 유일한 체제인 양 오인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의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인터뷰하고 동유럽 문서고의 다양한 문헌을 직접 검토하고 번역하였으며, 이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학과 경제사상사의 까다로운 맥락들을 소화해냈다.

그렇게 우리의 통념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 책으로 피터 도베르뉴 등의 <저항 주식회사>(동녘, 2015)도 꼽고 싶다.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가 부제. 내용을 보면 그렇게 예상 밖인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기업을 견제해야 할 사회운동단체들이 기업과 함께,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 행태는 매우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운동단체들이 월급과 임대료 · 프로젝트 비용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출처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기업과 동반자가 되고, 특급 갑부들과 협력하거나 유명 인사들을 섭외하며, 기업의 돈을 받고 자신의 브랜드를 빌려 준다. 또 기업과 정부 ·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후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려 애쓴다. 저자들은 이렇게 기업화 된 사회운동단체들을 ‘군산복합체’에 빗대어 ‘비영리산업복합체’로 전락했다고 표현한다.

주제만 보자면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과 <저항 주식회사>가 첫 인상만큼 닮아 있지는 않지만, <저항 주식회사>를 '진보적 사회단체의 우파적 행태' 정도로 이해하면 대칭적인 의미는 가질 수 있겠다. 나란히 꼽은 이유다...

 

15. 03.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말에는 제주도에서 강의가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미리 당겨서 고른다. 국내 저자 3인의 산문집을 선정의 빌미로 삼는다. 먼저 SF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이자 정체불명의 저자, 듀나의 에세이가 나왔다. <가능한 꿈의 공간들>(씨네21북스, 2015). '이영수'란 이름과 병기돼 있는데, 과문한 탓에 듀나의 본명이 이영수라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듀나가 개인이 아니라 둘 이상의 집단이란 설도 있지 않았나?).

 

씨네21북스에서 출간한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듀나가 2000년대 중반부터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위해 새로 쓴 글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사회비평과 영화비평 사이를 오가며 예술, 대중문화, 국내외 이슈, 과학, 장르문학, 쇼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또한 유신 정권하에 보낸 어린 시절과 80년대 군사정권의 일상, PC통신에서 영화로 교감하던 시절의 추억을 통해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혹은 몇 사람이건 간에 듀나는 듀나다. 산문집은 픽션과 달리 아무래도 '세대'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서 대략 저자의 정체성에 대해 어림해볼 수 있으리라. 2000년대 중반부면 10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그건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여행이 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이자 '여행가' 정여울의 신작 산문집도 나왔다. <그림자 여행>(추수밭, 2015). <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 2015) 개정판도 최근에 같이 나왔고. 산문집 혹은 에세이로는 <잘 있지 말아요>(알에치코리아, 2013)에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이 그림자 여행인가.

이 책 <그림자 여행>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과 사람,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여울 저자의 에세이 50편과 그 풍경을 담은 50장의 사진, 그 속에서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우리 모두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쇼 비즈니스와 극 예술의 이면에 대한 탐구,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버리는 부조리에 대한 고찰,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사라져가는 가치와 아득한 꿈의 세계에 대한 몽상까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뭐 이런 소개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직접 '여행'에 동참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시인 신해욱의 산문집도 나왔다. <일인용 책>(봄날의책, 2015). 시인의 일상을 담았다고 하는데(아니면 무얼 담겠는가), 눈에 띄는 건 특이한 형식이다.

시인은 일상을 '어떻게' 담아낼까. 시인은 자신에게 감지된 그 파동이, 가능하면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문을 쓴다. 가령 똑같은 피사체를 찍은 사진도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효과가 아주 다르다. 자신이 접한 것의 감흥이 글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 생동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시인은 문장의 순서와 호흡을 많이 손본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편편의 용적이 적으니 아무래도 미미한 파동 쪽에 집중한 편이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뻔한 것들을 붙잡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형식, 그것이 700자라는 정해진 형식이었다. 700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씌어졌을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창조한 셈이다.

아마도 그런 형식적 제약이 산문임에도 시적 긴장감을 부여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시집 말고 산문집으로는 <비성년 열전>(현대문학, 2012)이란 책도 있었길래 오늘 주문해서 받았다. 잡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에세이 모음이다.

이 글은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성년과,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곧 그렇게 될 대기 중인 이들인 미성년 사이에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을 열외의 비성년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곁의 비성년들로 기억될 바틀비, 홀든 콜필드, 카프카 들이다. 작가는 애정을 갖고 그들을 관찰하고 투시하며 그들의 심중의 못다 한 이야기처럼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흘든 콜필드나 카프카에 대해선 요즘도 자주 강의를 하고 있어서 시인의 생각도 궁금하다. 비성년은 내가 종종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어른-아이라고 해도 될까. 성인과 미성년 사이가 비성년이라면, 어른과 아이 사이가 어른-아이다. 바틀비도 그런 형상으로 읽는다는 건 이외이면서 흥미를 끈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를 가리켜 비성년이라고 부른다면, 타당하게도 여겨진다. 물론 확실한 건 읽어봐야 알겠다. 그다지 부담스런 책들이 아니니 편하게, 아주 편하게...

 

15. 03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 지젝 책이 나왔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2015). '이슬람 총서'의 하나로 예고되었을 때 어떤 책인가 궁금했는데 원제는 '이슬람과 모더니티'이다. 하지만 구글에서 이런 제목의 글이 눈에 띄지 않아 이런 제목의 글이나 책이 있는지는 헷갈린다. 짐작엔 따로 단행본이 있지 않고 이슬람에 관해 지젝이 쓴 글을 모아놓은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출처는 책을 손에 들면 알게 되리라. 소개는 이렇다.

 

지젝은 이미 <예수는 괴물이다>나 <죽은 신을 위하여>에서 기독교를 분해하고 비판했다. 이 책은 대상을 이슬람교로 바꾸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다. 그는 묻는다. 혹시 테러리스트가 보이는 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믿음이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말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 우리가 세운 기준을 슬그머니 이용해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이가 테러에 맞서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외치면서 자유롭게 말할 자유를 옹호했지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대립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립은 결국 가짜 대립이며, 두 세력은 상대를 전제하면서 서로를 만들어낸다.

 

  

지젝의 신간으로는 <사건>(2014) 이후에 <절대적 반동>(2014), 그리고 지젝에 관한 책으론 <지젝을 반복하기>(2015) 등이 있다. 마지막 책은 근간 예정. <천국의 곤경>(2014)도 작년에 나왔지만(부제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본주의의 종말까지'다), 희한하게도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천국의 곤경>과 <절대적 반동>을 나란히 다룬 테리 이글턴의 리뷰를 온라인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 책들도 소개되길 기대한다...

 

 

15. 03. 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분야의 책으로 '이주의 발견'은 세라 로즈의 <초목전쟁>(산처럼, 2015)이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영국은 왜 중국 홍차를 훔쳤나'가 부제다. "19세기 초목전쟁을 통해 본 영국과 중국의 사회문화사." 그런데 왜 '초목전쟁'인가.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뒤 그곳에서 아편을 만들어 중국에 팔았다. 그러다가 이 불법 행위를 통제하려는 중국과 충돌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아편 판매에 집착한 것은 그 자체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기도 했지만, 그런 벌이가 없어진다면 막대한 양의 차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그 대금을 치를 다른 방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공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가 진척되는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차가 전 국민의 기호품이 되고 있었다. 따라서 수요는 늘어나는데 그것을 사올 돈줄이 막히는 것은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양국이 교환하던 상품들인 차와 아편은 각기 동백나무와 양귀비라는 두 가지 식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은 이들 초목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이 전쟁 이야기는 다른 한편 "당시 청나라의 국가 비밀이었던 차 제조공정 등을 입수하기 위해 식물 채집자이자 원예사이지만 도둑과 스파이를 겸해야 했던 로버트 포천(1812∼1880)을 파견하여 차나무를 빼내오는 데 성공한 뒤 차 재배가 정착하면서 영국이 홍차의 나라가 되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국 홍차에 대한 가벼운 읽을 거리로는 박영자의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한길사, 2014)도 더 얹을 수 있다. "이 책은 영국과 홍차 사이에서 찾은 이야깃거리 23가지를 수록한 문화교양 에세이다. '홍차 아우라', '홍차 스파이', '홍차 중독자'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영국에 가보지 않아서 실제로 얼마나 홍차를 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에서도 홍차도 필수 기호품이다. 대부분의 끼니에 뒤이어 홍차(그냥 '차'라고 부른다)가 식탁에 오른다. 아니 식사와 함께 마시기도 한다(오래 전 모스크바대학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시절, 음료의 선택지는 쥬스 아니면 홍차였다). 대개 '립톤'이었던가. 카페인 때문에 커피와 함께 홍차도 금지돼 있어서 메밀차를 마시고는 페이퍼를 적었다...

 

15. 03.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