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 고작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일주일은 머문 것 같은 느낌이다. 여러 차례 문학기행의 부수효과로 여행이 또다른 일상이 되었고 몸의 적응도 빨라진 때문이다. 괌은 우기여서 오전엔 해가 나고 오후에는 비가 오는 날씨다. 장대비가 내리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한국의 장마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섭씨 28도.

괌은 식당 모든 메뉴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듯싶다(호텔에도 일어와 한국어 안내가 있고 중국어는 아직 없다). 실제로 호텔에서건 식당에서건 공연장에서건 한국어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온라인상에 여행자들의 후기가 많이 올리와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괌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제주도의 1/4 크기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필히 가봐야 하는 곳이 없다는 점도. 관굉지인 만큼 물가는 한국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1.5배 정도일까(그래도 한국의 휴가철 바가지 물가보다는 나을지도).

괌에 대한 책은 한권도 들고 오지 않았는데 아이가 <인조이 괌>을 대출해왔다. 아직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돌아가기 전에 보게 될지 모르겠다. 다스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중이다. 잠시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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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각에 괌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에 늘어선 줄이 상당히 길어서(2004년 러시아 입국시 다음으로 길다)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그래도 심사게이트가 많아서, 과거 2시간이나 걸렸던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다. 30분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 시간에 따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집에 두고온 책에 대해 적는다.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새 번역본이 나온 멜빌의 <모비딕>. 일러스트와 그래픽노블판까지 한꺼번에 나왔다!

그 사이에 심사대를 통과하여 수하물을 기다리는중이다(이곳에서는 양손 지문과 안면 사진도 찍는군). 다시 <모비딕>으로 돌아오면 이번 번역은 황유원 시인의 번역이다. 밥 딜런 시전집의 공역자로 기억하고 있는데 대작 번역은 의외다. 그간에 강의에서는 김석희 선생의 번역본을 주로 이용했는데, 다른 선택지도 생긴 셈(그밖에 열린책들판이 있다). 더 바란다면 멜빌 평전도 나옴직하다. 그리고 중단편집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언젠가 적었는데 1819년생 작가로 멜빌과 마찬가지로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가로는 조지 엘리엇(영국)과 테오도어 폰타네(독일)가 있다. 분위기상으로는 이들 작가를 기념할 만한 책은 나올 것 같지 않다. 하기야 대표작들은 번역돼 있는 만큼(<미들마치>가 무지막지한 두께로 나온 건 한번 더 아쉽다) 크게 손해본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뭔가 나온다면 따로 적기는 하겠다. 이제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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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i 2019-08-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가셨나봐요~ 25년전 신혼여행지였는데... 모비딕은 없을것같네요. 돌고래투어는 있을듯...즐건 여행되세요.언제나 응원합니다~

로쟈 2019-08-03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년전이면 좀 달라졌을 듯하네요.~
 

공항 게이트에서 대기하며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보통 주문하던 아메리카노 대신에 ‘바리스타 초이스‘를 선택했더니 훨씬 맛이 좋아 만족해하면서(가격차이가 200원이다). 괌에서는 괌커피를 마시는 건가.

수년 전에 발리에 갔을 때도 기억나는 식사는 아침 뷔페에 나오는(즉석요리) 오믈렛과 발리커피였다(신맛이 많은 편이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곳에서 기억거리가 되는 건 그런 소소한 것들이고 커피도 거기에 속한다. 아마 발리에서 읽은 책은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였다. 이번 여행에는 요즘 강의하는 코맥 매카시의 책과 나보코프의 책을 넣어왔다. 미국 작가 시절의 나보코프이므로 모두 미국문학에 속한다. 미국에 가서는 미국문학을.

코맥 매카시의 <로드>(2006)를 어제 강의에서 다시 읽으며 확인해보니 매카시의 신작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1933년생이므로 현재 86세다. 과연 예고된 신작이 나올 수 있는 건지 궁금하고 만약 출간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록이 될 만하다. <로드>가 열번째 소설이므로 열한번째 소설이 될 터이다. 한데 종말 이후의 묵시록적 풍경을 보여준 <로드> 이후에는 어떤 소설이 가능한 것일까. 그건 그것대로 또 궁금한 부분이다.

이제 보딩 타임이다(지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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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0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구석 휴가에 국경3부작을 읽으려합니다.
강의도 듣고 있으니.
휴가 잘 다녀오시길~

로쟈 2019-08-02 15:42   좋아요 0 | URL
네.~

blanca 2019-08-0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전의 설렘이 느껴지네요. 강의하시는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부럽습니다. 즐거운 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쟈 2019-08-02 15:43   좋아요 0 | URL
설렘까지는 아닌데 일단 일상의 리듬이 아니어서 좋습니다.~

Cinema Paradiso 2019-08-0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하도서관에서 선생님 강연 듣고 있습니다. 모든 강의가 다 좋았는데. 특히 어제 카프카 강연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9-08-02 15:44   좋아요 0 | URL
카프카에 관심이 있으셨던 듯. 감사.~
 

어느 때보다 이르게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짧은 휴가를 가족과 함께 괌에서 보내기로 해서(나의 선택은 아니지만 나는 다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그게 아침 비행기여서 어젯밤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들면서도 새벽 4시반에 알람을 맞추었다. 5시 40분 공항행 버스를 타려고 분주한 마음으로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 사이에 운행일정이 변경되어 6시 출발버스가 가장 빠른 버스편이었다(이런 경험이 몇 차례 되는군).

요 몇년간 봄가을에 문학기행을 다니다 보니 공항행이 익숙한 경험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작가도 떠올려주지 않는 곳을 찾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괌 출신 작가?). 해변 휴양지에 수족관에, 수중체험, 거기에 랍스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괌은 그 정도다. 호캉스로 계획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야 하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언제나처럼 아침에 가방을 챙기면서(내가 챙긴 건 등에 멜 배낭밖에 없다) 책을 몇 권 넣었다. 모두 강의와 관련된 책들이고 새로 출간된 김현 선생의 산문집 <사라짐, 맺힘>(문학과지성사)을 가볍다는 이유로 넣었다. 김연수의 <시절일기>(레제)을 넣을까도 생각했는데, 하수상한 시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알다시피 부제가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이다) 뺐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다음에 머리에 떠올린 건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인데(바캉스 에디션까지 나왔다!) 책을 찾지 못했다(방안 어딘가에 있는 책이란 뜻이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띈 책이 <사라짐, 맺힘>. 그래서 이번 여행의 주제도 ‘사라짐‘으로 정했다. 사라지기 위한 여행.

인천대교를 지나는 중이다(확인도 안 하고 그런 정도의 이름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침 안개 자욱. 목적지인 공항터미널이 멀지 않았다. 지난 몇달 힘든 시간을 보냈고 또 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게서도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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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 2019-08-0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잘 다녀오세요. ^^

로쟈 2019-08-02 08:58   좋아요 1 | URL
네 감사.~
 

이번주 주간경향(133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요즘 나보코프의 작품을 몇 편 강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어둠 속의 웃음소리>에 대해서 간단히 적었다.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는 1930년대 후반에 영어로 언어를 바꾸고 194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작가로 다시 데뷔하는데, 러시아어로 발표했던 <절망>과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고, 이어서 첫 영어소설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을 발표하게 된다. 미국 작가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다. 


 














주간경향(19. 08. 05) 동정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된 파멸


<롤리타>로 유명한 작가 나보코프는 러시아혁명 이후 망명자의 삶을 살았던 러시아 작가다. 1920년대부터 베를린의 망명문단에서 러시아어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하고, 1930년대 말 나치의 위협이 거세지자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다. <어둠 속의 웃음소리>(1938)는 러시아어 소설 <카메라 옵스쿠라>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일부 개작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발표된 그의 첫 소설이었다.


부유한 중년남자가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리지만 애인과 그 정부에게 농락당하고 비참하게 파멸하는 이야기라는 줄거리를 나보코프는 아예 서두에서 소개한다. 그렇게 요약될 수 있는 줄거리란 작품의 창작이나 독서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미리 선언한다고나 할까. 대신에 그의 관심은 이야기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나 기쁨이다. 그것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주인공 알비누스의 몰락과정을 읽어나가면서 동정하기보다는 짓궂은 냉소, ‘어둠 속의 웃음소리’에 동참하게 된다. 무엇이 알비누스를 파멸로 이끌며 그의 파멸은 어째서 동정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베를린의 부유한 상속자 알비누스는 미술평론가이자 그림 전문가다. 연애운이 따르지 않았던 그는 평범한 결혼을 했고 여덟 살짜리 딸을 둔 상태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로맨스에 대한 ‘은밀하고 어리석은 갈망’도 포기하지 못한다. 그 갈망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도 구분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알비누스는 우연히 영화관에 들렀다가 안내인으로 일하는 마르고트를 보고서 반한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위대한 화가가 음영이 풍부한 어둠을 배경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고 곧바로 매혹된다. 하층계급 출신의 마르고트는 영화배우를 꿈꾸지만 연기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영화관 안내일을 하던 터였다. 알비누스는 그녀에게 아파트를 얻어주지만 그들의 관계는 마르고트가 보낸 부주의한 편지 때문에 들통나고 알비누스는 차츰 불행의 길로 접어든다.


알비누스는 영화 제작에 나서며 마르고트를 배우로 데뷔시킨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고트는 알비누스의 소개로 옛 애인이었던 화가 렉스와 재회하고 두 사람은 합작해 알비누스의 재산을 빨아내기 시작한다. 알비누스는 둘의 관계를 뒤늦게 알게 되지만 마르고트의 변명에 다시 넘어가고 교통사고로 실명까지 한 뒤에는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처지가 된다. 알비누스는 마르고트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항상 렉스가 붙어 있었다. “알비누스는 누군가가 작게 킥킥거린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는 물론 렉스지만 이 대목에 이르면 독자 또한 그 비웃음의 주인공이 된다.


소위 ‘예술에 대한 열정’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알비누스는 예술의 대상(마르고트의 이미지)을 실제 현실(마르고트 자신)로 착각한다. 이 착각은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알비누스는 권총을 들고서 뒤늦게 복수에 나서지만 장님인 그의 총구가 제대로 마르고트를 겨낭할 리는 만무하다. 권총까지 빼앗기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알비누스 자신이다. 이렇듯 알비누스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마르고트와 렉스는 소설에서 어떠한 응징도 받지 않는다. 도덕적 교훈을 혐오했던 작가 나보코프다운 결말이면서 노동계급에 무너진 어수룩한 자본가 계급을 향한 그의 냉소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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