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할 때 시도 이륙하는가
시의 언어는 이제 공중의 언어
바퀴가 끌리는 소리로 나는 알았다
때로는 이륙을 거부하는 말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공중의 시를 완성해야 한다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자세로 앉아
이 순간이 아니면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공중의 언어로 노래해야 한다

안전벨트를 매고 부르는 무언의 노래
공중의 모든 것은 기류가 결정한다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조성을 바꾼다
기체와 함께 흔들리는 음표들도 익숙한 표정이다

공중의 시는 구름 위에서 쓰는 시
어떤 작시법에 따라야 할지 나는 배우지 못했다
등받이 인쇄물 비치용 칸에는
기내 면세품 예약주문서가 비치돼 있을 뿐

프로스트라면 아직 수천 마일을 더 가야 한다고 했을까
아직은 어둠이 내리기 전
하지만 지연 출발한 비행기는 야경을 내려다보며
활주로 조명등의 착륙 안내를 받을 것이다

공중의 삶은 짧은 생애
수천 마일의 거리도 이제는 수 시간의 비행
수십 년을 살았지만 한순간이었다
이륙에 전혀 지장이 없는 세월의 무게

공중의 시는 무거운 마음으로 쓸 수 없는 시
공중의 언어는 쓰라림을 알지 못한다
공중에서는 스낵만 제공된다
비상구 좌석 뒷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의 노래가 가 닿을 수 없던 세계는
공중의 시로도 미치지 못한다
저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는 자는 누구인가
공중의 언어로도 붙잡을 수 없는 마음이여

아직 착륙까지는 두 시간
나는 마음을 비운다
공중의 시는 허공의 시
텅빈 마음으로 구름을 가로지르는 시

아직 수 마일을 더 가야 하지만
나는 이미 수천 마일을 지나왔다
두 발이 땅에 닿으면 나는 마저 수 마일을 걸어가리라
때로는 착륙을 거부하는 말들도 있다는 것을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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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0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십 년의 세월은 한순간인라할만큼
이륙에도 지장이 없는 무게건만
한발 들어 올리기도 벅찬 하루에 붙박힌 자에게
공중의 시는
너무 멀리 있네요.

로쟈 2019-08-06 08:55   좋아요 0 | URL
저도 공중에서만 쓸 수 있는, 쓸 생각이 든.~
 

나는 반항아가 되지 못했지
반항아라고 불리지 못했어
말을 타지도 말을 길들이지도 못했네
타고나는 건지도 모르지
열여섯 살이면 집을 떠나야 하는 건지도

나는 전화부스를 부수지도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지도 못했어
강남대로를 막히게 하지도 않았지
텍사스 출신이 아니었던 거지
나는 얌전한 아이였지
열여섯 살에도 나는 학교에 다녔네

나는 황야를 달려보지 못했어
황야는 어디에 있었을까
텍사스 사막이 아니면 태평양 한가운데?
타고난 반항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타고난 카우보이는 어디에 숨었을까

모하도 레베르소
나는 반항아가 되지 못했어
나는 숨죽인 말이었지
나는 얌전한 시를 쓴다네
나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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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타는 반항아만 있는건 아니지요.
그 시절 법도 의술도 아닌 말(문학 그것도 러시아문학)을 다루겠다고
하는 반항아?도 있었겠지요.ㅎ

로쟈 2019-08-05 23:49   좋아요 0 | URL
소심형.^^
 

괌에서의 마지막날 일정은 아침을 먹고 버스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어제 하려던 일이 인원이 차서 마뤼졌는데 오늘도 아침에는 비가 흩뿌려서 수륙양용 버스는 바다로의 입수가 불허되었다(일본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라 한국인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중년의 중국인 커플이 껴 있는 정도였다). 괌의 해변도로를 따라가면서 몇몇 명소를 소개받는 것 정도에서 의미를 찾았는데, 간략한 괌의 역사를 헤드폰을 통해 듣다가 생각난 책이 에릭 울프의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뿌리와이파리)이다.

바로 생각난 건 아니고 ‘역사 없는 민족‘을 검색하다가 뜨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렸다. 부제가 ‘인류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본 세계사 1400-1980‘. 제목에서의 대비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는 책이다. ‘유럽‘ 대 ‘역사 없는 사람들‘. 세계문학, 특히 근대세계문학을 강의하면서 자연스레 ‘(근대)문학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겸사겸사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다시 보니 품절 상태. 거실 책장에 꽂혀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만약 없다면 낭패스런 일이다.

근대세계 형성사에 관한 지배적인 서사들이 있다. 얼른 떠오르는 건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와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21세기북스) 같은 책들이다(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근대란 무엇이고 근대화란 필연적 과정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근대문학에 대한 해명도 가능하다. 이 주제에 대해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지만 좀더 체계적인 설명을 책으로 써봐야겠다. 감정과 피로감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가능할 텐데, 장담할 수 없는 일이군...

이제 곧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으면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다. 비는 그친 상태고 바다는 내내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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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괌은 계속 비. 아침에 제법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들고 있는데 대략 세 시간 간격으로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모양이다. 이곳 우기의 전형적인 날씨 패턴인듯(오래전 기억에 모스크바의 봄날씨가 그랬다. 봄비가 자주 내렸다가 그첬다가). 날씨와 현지사정으로 미리 계획한(내가 계획한 건 아니고) 일정을 계속 변경하고 있는데, 오늘의 일정은 수영이라고 한다. 딱히 내키는 일은 아니어서 나는 먼저 책을 보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 읽을 책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다. 강의준비차 다시 읽는 것인데, 사실 나보코프의 소설들 가운데 여러번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와 주석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독서의 경로라면 이론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경로의 독서가 가능한 것이 <창백한 불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독서가 장소의존성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에서 읽는 것과 괌에서 읽는 것이 차이날 이유는 없다. 시칠리아에서 읽는 것과 뉴욕에서 읽는 일이 별차이가 없을 것처럼.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날이 개는 중이다. 괌의 와이키키로 불린다는 투몬비치의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눈길을 침대 하얀 시트 위에 놓인 <창백한 불꽃>으로 돌린다. 이제 보니 지난봄(4월초)에 강연회를 갖기도 했다. 4개월 만에 다시 손에 드는 셈인데 장소가 괌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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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을 앞두고 호텔 로비에서 잠시 ‘놔두고 온 책들‘을 생각한다. 들고 온 책은 방에 두고 나왔기에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페이퍼를 적는 정도. 햇볕이 나도 30도가 안 되는 날씨인데 비까지 수시로 내리고 있어서 괌은 서늘한 편이다. 호텔도 아주 북적이는 건 아니어서 로비의 쿠션에서 편안한 자세로 적는다. 좀 딱딱한 책들에 대해서?

문학강의에 치여서 지내는 터라 철학책을 좀처럼 읽을 시간이 없는데 지난 상반기에도 많은 책을 그냥 만져보기만 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알튀세르의 정치철학 강의>(후마니타스)와 <랑시에르의 교훈>(그린비) 같은 책들이다. 알튀세르의 강의는 아마 마키아벨리를 읽은 뒤에 읽겠다고 보류해둔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책들도 꽤 쌓여 있는데다가 최근에도 몇 권이 추가되었다. 이러다가는 제논의 역설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계속 중간에 끼여드는 책이 많아서 끝내 목포한 책은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파스칼 질로의 <알튀세르와 정신분석>(그린비)은 최원의 <라캉 또는 알튀세르>(난장)와 같이 읽어봄직하다.

새뮤얼 챔버스의 <랑시에르의 교훈>은 랑시에르 입문격으로 적당할 듯싶지만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적당한 책을 강의에서 다룬다면 읽어치울 수 있을 터인데, 그런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 당장은 마키아벨리부터 읽을 책들을 가려놓아야겠다. 하지만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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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8-03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강의하시는 곳에서 철학강의 프로그램 개설을 요청할순 없을까요? 대학때 읽고 한번도 안 들춰본 알튀세르, 그람시, 더 나가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19-08-04 07:15   좋아요 0 | URL
가끔 진행하기는합니다. 상반기의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처럼. 본격적으로 히기는어렵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