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거품을 말하려 한다
거품 정신이 아니다 함부로
거울을 들이밀면 안 된다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면 안 된다
정신은 고귀하기에

고귀한 정신의 거품을 말하려 한다
정신은 고귀할 수밖에 없으며
고귀한 것은 거품일 수밖에 없기에
푸른 지구가 그러하고
지구를 푸르게 만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 고귀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렇다, 그 정신의 거품
아득하고도 아련한 정신의 거품
합법칙적 정신의 당당함
납득할 만한 세상의 아름다움
그런 건 
거품에 불과하다

세상을 향해 한껏 배를 내미는 거품
부풀어 오르는 거품
거품 속 거품들까지도 고양시키는
거품의 기예
거품의 마법
거품의 섭리
거품의 기적
그리고

이윽고 터지는 거품

쭈그러진 정신을 말하려 한다
정신의 바닥을 말하려 한다
바닥의 정신이 아니다
정신은 고결하다
정신은 숭고하다
정신은 내 맘 같지 않다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푸른 지구가 희소한 별이듯
가까스로 존재하는 정신
그 거품을 기려야 한다
정신의 거품을 돌봐야 한다

어제는 내가 당번이었다
정신의 거품을 생각하느라 뒤척였다
오래 뒤척였다

정신의 바딕에 발이 닿곤 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의 거품을 되살려야 한다
정신을 대변해야 한다
정신은 고귀하기에
고귀한 모든 것은
거품이기에

거품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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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로 가려고 돌아섰다
지구를 한바퀴 도는 일이 남았다

바다를 몇 번 건너는 일이 남았다
산맥을 넘고

사막도 여러 번 가로지르겠지

몇 걸음일지 헤아릴 수 없다
밤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친구가 되어 주겠지

밤하늘 가로지르는 유성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주겠지
어디로 가느냐고
어디로

꼬리를 물다보면
날이 새겠지

태양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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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8-20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에게로 가려고 돌아섰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 그대에게 가는 길이라니!
감히 말씀드리자면,
참, 참, 좋은 시입니다~
잠못이루는 새벽인데 더 말똥해졌습니다ㅎㅎ

로쟈 2019-08-20 11:07   좋아요 0 | URL
너무 늦게 주무시네요.^^

2019-08-2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2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3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찹쌀떡에 밥알이 들어가 밥알찹쌀떡
팥도 들어가고 밥알도 들어가고
왜 들어가느냐고 묻지만 않으면
팥도 편하고 밥알도 편하지
쑥은 청정지역 제주 참쑥
충청 노은 쌀에 국내산 팥
그런데 호두는 캘리포니아 호두
밥알찹쌀떡을 위한 긴 여정이구나
굳이 그렇게까지 오느냐고 묻지만 않으면
쑥도 편하고 호두도 편하지
밥알찹쌀떡으로 끼니를 때우며
나는 어떤 떡의 속일지 헤아려본다
굳이 묻지만 않으면 속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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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8-2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지 않겠습니다ㅎㅎ
선생님 스스로가 물어보실것같아
그게 탈이지만요ㅎㅎ

로쟈 2019-08-20 11:07   좋아요 0 | URL
네 서로 묻지 않는 게.~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듣는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퍽치기를 당한 남자다
머리를 감싼 붕대가 그의 알리바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이름을 잊었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결백한 남자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것뿐
과거가 없는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까
아마도 신원조회가 이루어지리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다녀가고
촛불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꺼지리라
개들은 조용히 짖기로 합의하고
눈꺼풀은 준비된 자세로 안구를 덮으리라
무언의 행렬이 뒤를 따르리라
과거가 없는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는 행렬
비와 천둥이 마중나오는 길
그대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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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제목은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다. 때이른 타계 이후에 저자의 유고들이 책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번 책은 아트앤스터디에서 진행한 소설강의록이다. 한창 문학강의를 하던 때(비슷한 시기에 나도 아트앤스터디에서 강의를 했던 듯하다) 저자의 강의에 대해 들었고 동영상도 일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강의에서 다루는 작품도 겹치는 게 많았다. 책에서 확인하니 전체 8강에서 다루는 여덟 편의 소설 가운데 내가 다루지 않은 건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과 볼라뇨의 <칠레의 밤>, 두 편뿐이다.

주말 강의차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강의책 외에 가볍게 읽을 만한 것으로 골랐는데 그건 이미 읽고 강의한 작품들에 대한 다른 해석을 음미해보려는 생각에서다. 그 가운데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변신>, <이방인>은 이번 하반기에도 강의가 있다. 어림짐작에 열번 이상씩 강의하지 않았나 싶다. 연구서나 강의록을 읽으면 나의 견해나 해석의 좌표가 가늠된다. 상대적 거리가 측정되기 때문이다. 머리말을 읽고서 본론(본 강의)로 넘어가기 전에 저자의 ‘주관적 소설 읽기‘ 내지 ‘전복적 소설 읽기‘에 대한 기대감을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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