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칼럼 두 편을 옮겨놓는다. 요즘 인기를 끄는/끌었던 드라마 두 편의 비밀도 얼추 헤아려볼 수 있다. 하나는 한겨레21의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에서 가져온 칼럼이고 다른 하나는 신동아의 '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의 한 꼭지이다. 몇 가지 관련서의 이미지들도 덧붙여놓는다. 예전에 올린 페이퍼로는 '섹슈얼리티의 진화심리학'(http://blog.aladin.co.kr/mramor/1072196)과 '질투는 진화의 힘'(http://blog.aladin.co.kr/mramor/898080)을 참조할 수 있다. 

한겨레21(07. 07. 26) 돈보다 꽃미남! 

얼마 전 영국에선 남자의 키가 1인치(2.54cm) 클수록 스피드 데이트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5%씩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스피드 데이트란 참가비를 낸 많은 수의 남녀가 10분 정도씩 대화를 나누면서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는 서구형 집단 미팅을 말한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연구자들이 남녀 3600명이 참가한 스피드 데이트 84회를 분석한 결과, 남자는 키가 클수록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참가자가 전체 평균 나이보다 한 살씩 많아질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4%씩 감소한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젊은 남성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남성들에겐 과체중이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더라는 것도 중요한 결과였다.


 

 

 

 

 

 

 

 

 

한 살 많아지면 매력은 4& 감소
이처럼 매력남과 매력녀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매력남(혹은 매력녀)의 조건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여성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남성의 무엇일까? 여성들은 그다지 남성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85%가 여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은 60% 정도가 남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설문을 거짓말 탐지기를 설치한 상황에서 하겠다고 일러주면 그 수치가 80% 가까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해서 설문에서 거짓 대답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의 외모는 단연 키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처럼 키가 크면 소개팅에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78∼185cm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 중에는 남성의 얼굴보다 키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매력남의 조건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요즘, 그런 경향은 전세계적으로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심리학자 피오나 무어는 18∼35살의 여성 1851명에게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친절함, 유머감각, 관계에 대한 헌신도, 육체적 매력 등 13개 특징을 제시하면서 어떤 속성을 지닌 남성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동시에 여성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도 표기하라고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다고 평가한 여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이 결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했던 많은 설문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구자인 피오나 무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장기적 파트너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성 평등이 강화될수록 여성들도 짝을 선택할 때 남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꽃미남’ 현상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나 성공 욕구가 낮은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경제적 부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인기가 많다는 것도 남성에게 큰 매력 포인트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심리학자 벤 존스과 그 동료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호감을 갖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벤 존스 박사팀은 여성들(28명, 평균연령 24살)에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네 명의 남성 사진을 보여준 뒤, 매력 정도에 따른 ‘평점’을 매기도록 했다. 그 다음 같은 남성들이 다른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영상 속의 여성들은 세 가지 표정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지루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이 그것. 비디오를 본 뒤에는 여성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웃는 여성들의 시선을 받았던 남성들에게 선호도가 15%가량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좋아하는, 말하자면 ‘인기남’에게 더욱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그저 잘생긴 외모의 인기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공중위생학 연구팀은 ‘여성은 결혼 상대로 남성적 외모보다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남자다운’ 인상을 풍기는 남성은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결혼 상대라는 인상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설문을 통해 알아냈다.

연구팀은 미국 남녀 대학생 약 850명을 상대로 컴퓨터로 다양한 외모의 남녀 합성사진을 보여주었다. 설문 결과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턱이 각져서 튼튼하게 보이는 남성 얼굴에 대해 ‘이런 남성은 주로 단기간 교제하기 적합한 상대이며 결혼하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반면 얼굴이 둥글어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입술이 약간 두터운 ‘여성적’ 얼굴의 남성은 결혼 뒤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편’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장기적 배우자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성이 단기적으로 남성을 만날 때는 남성적 외모 같은 유전적 잠재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혼 등 협력이 중요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육아 능력까지 고려해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완벽한 외모에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자들이 의외로 신랑감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센트럴 랭카셔대 연구진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신랑감 자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가짜 소개팅 광고를 냈는데, 이때 참가한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평가를 받은 남자와 보통 남자, 매력 없는 남자 등 세 부류였고, 영국 국립통계청의 직업 분류상 상(기업 이사, 건축가)·중(교사, 여행사 직원)·하(웨이터, 우편집배원)로 구분되는 각종 직업을 내걸었다. 이 광고를 186명의 여성에게 보여주고 장기적인 파트너로 누가 매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잘생긴 남성은 모든 직업군에서 못생긴 남성보다 선호됐지만,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용모도 뛰어난 남성들은 예상과 달리 가장 가난한 남성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놀랍게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은 보통의 외모와 수수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때론 키보다 중요한 유머감각
연구진은 ‘여성이 매력적이면서도 성공한 남성을 피하는 것은 이들이 장차 바람을 피우거나 둘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가족을 위해 그다지 헌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잘난 남자를 피하고, 바람을 피우거나 자신을 떠날 가능성이 적은 남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성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남성의 매력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감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필립주립대와 캐나다 온타리오 맥마스터대의 공동 연구팀은 <진화와 인간 행동> 최근호에서 여성은 농담을 잘하는 남성을 파트너로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머감각은 때론 외모나 키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유머감각이 그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신호로 파악되기 때문인 것 같다.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며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휘할 줄 아는 남성만큼 매력적인 남성도 없다.

요약하자면, 현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은 큰 키에 멋진 외모,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가정적이고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신동아 574호(07. 07. 01)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똑같이 바람을 피워도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더 질투하는 반면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감정적 집착을 보이는 것에 더 질투를 느낀다. 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오랜 세월 진화한 남성과 여성의 번식본능 차이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불륜과 질투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감초 구실을 하는 한 부부의 집 앞에 누군가 아이를 놓고 간다. 아내는 바람둥이 남편이 밖에서 낳은 자식일지 모른다면서 난리를 피우고, 남편은 아니라고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남편이 바깥에서 다른 여성과 일회성 관계를 갖느냐 여부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하다. 무슨 짓을 하든 자식만은 낳아오지 말라는 투다.

한편 주인공 부부는 정반대 상황을 연출한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데, 마음까지 줌으로써 심각한 갈등을 빚어낸다. 이 드라마는 마치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생물학자들은 자기 연구 분야 쪽으로 다윈이 어떤 말을 했는지 관심이 많다. 진화론을 심리학에 적용하는 일을 하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다윈의 금과옥조 같은 말을 찾아냈다. 다윈은 “먼 미래에는 심리학이 새로운 토대 위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 토대란 바로 자신이 세운 이론인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다.

질투심 유발 실험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 다윈의 계승자들은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산물로 보고 질투심, 추론 능력, 언어, 지위, 짝 선택, 공격성 등 마음의 다양한 측면을 진화 원리로 풀어보고자 시도했다. 남녀 관계를 연구하는 인물인 미시간 대학교의 데이비드 버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92년 버스 연구진은 남녀의 질투심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놀아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남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상황을 둘로 나눴다. 몸을 줬느냐, 혹은 마음을 줬느냐. 그들은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불륜에 대해 남녀가 보이는 반응이 서로 다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뤄졌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인 대학생 202명에게 다음과 같은 곤란한 상황을 제시했다.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애인이 누군가와 바람 피우는 것을 알았다. 다음 둘 중 어느 쪽일 때 더 심란하겠는가.
(A)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성관계를 즐길 때


이어서 실험 대상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뒤 같은 지문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의 둘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A) 연인이 상대와 갖가지 체위를 시도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감정적 집착과 성관계를 대비시킨 질문에서는 남성의 60%가 성적인 불륜에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고작 17%만 그쪽을 택했고 83%는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성과 사랑을 대비시킨 질문에서도 비율은 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상대의 성관계에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한 남성이 여성보다 32% 더 많았고, 여성은 다수가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질 때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실험은 생리적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남자대학생 21명과 여자대학생 23명의 몸에 자율신경계 흥분 상태와 맥박수를 측정하는 장치를 붙인 뒤 두 가지 상상을 하도록 했다. 하나는 연인이 다른 누군가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인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한다는 상상이었다.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감정적 집착보다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자율신경계가 훨씬 더 흥분했다. 반면에 여성은 성관계보다 감정적 집착을 상상했을 때 더 흥분했다. 맥박수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남성은 연인의 불륜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맥박수가 더 높아진 반면, 여성은 양쪽 상상 때 맥박수가 비슷하게 올라갔다.



남자 짓누르는 ‘선택압’
세 번째 실험에서는 남성 133명, 여성 176명 총 309명으로 실험 대상자를 더 늘려서 앞의 실험을 검증하는 한편, 성관계 경험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여성은 성관계 경험 유무가 답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55%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에 더 심란해한 반면, 성관계 경험이 없는 남성은 그 비율이 29%로 훨씬 낮았다.

이 실험 결과는 연구진이 세운 진화심리학 가설에 들어맞았다. 포유류가 다 그렇듯, 인간의 정자와 난자도 여성의 몸속에서 수정된다. 따라서 여성은 낳은 아기가 자신의 자식임을 100%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난자를 수정시킨 것이 자신의 정자인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까. 이 불확실성은 남성에게 진화적으로 꽤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준다.

여성이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자기 아이인 줄 알고 기른다면, 유전적으로 볼 때 그 남성 처지에서는 여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는커녕 엉뚱한 유전자를 퍼뜨리는 일에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 셈이니까. 그에 비하면 여성이 멋진 남자 배우에게 홀딱 반해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는 행위는 별문제가 안 된다.

따라서 남성은 오쟁이 지는(아내가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막는 강력한 선택압(選擇壓)을 받아왔어야 한다. 오쟁이 져도 허허 웃고 마는 인품 좋은 남성들이 있었다면 그 남성들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성적인 질투심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그런 선택압의 결과라고 본다. 성적 질투심이 약한 남성은 후손을 적게 남기는 바람에 세월이 흐르면서 대가 끊겼을 것이고, 질투심이 강한 남성은 후손을 많이 남겨서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자식을 키우기가 편하다. 남성이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육아에 쏟을수록 그만큼 여성 자신의 유전자가 살아남아 후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일처제에서 남성이 바람을 피울 때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닥칠 위험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냥 딴 여성과 가볍게 바람을 피운다면 자신과 자식에게 투자될 비용 가운데 일부를 잃는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딴 여성에게 아예 홀딱 반해 집착한다면 혼인 관계는 파탄나고 육아 투자를 전혀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이혼한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는 법 조항이 있긴 하다). 일부다처제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다른 부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감정적으로 그 쪽에 홀딱 빠지면 육아 투자분이 더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연구진은 남성은 여성의 감정적 불륜보다 신체적 불륜에 더 심하게 질투심을 느끼고, 여성은 남성의 신체적 불륜보다 감정적 불륜에 더 심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가설과 들어맞았다.

질투의 심리
연구진은 이 실험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실험 대상자가 대학생들이기에 연령과 문화가 한정돼 있으며, 이 남녀의 반응 차이가 정말로 오쟁이 지는 것 대 투자 상실을 가리키는 것인지, 남성이 섹스 자체에 더 관심이 있고 여성은 사랑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지 불명확하며, 남녀 각 성별 내에서의 개인별 반응 양상을 더 상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성은 성경험 유무와 질투심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반면 남성은 왜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연구진은 이 실험이 성별과 질투심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을 뒷받침하는 경험 증거인 셈이었다.

버스를 비롯한 진화심리학자들은 후속 연구를 통해 질투의 심리와 그것이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상세히 밝혀냈다.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설이 제기됐고 각각에 대한 경험 증거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데이비드 버스와 마티 하셀튼은 남녀의 질투심 차이에 관한 가설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성적 불륜 신호들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질투심을 느낀다.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맞는지 불확실해지고 여성이라는 번식 자원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성은 감정적 불륜 신호들에 더 질투심을 느낀다. 남성이 제공하는 자원이 경쟁자에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자가 질투심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경쟁자가 육체적 매력을 지닌 사람일 때는 여성이 더 질투하고, 부나 지위처럼 조건이 더 좋은 사람일 때는 남성이 더 질투한다.

한편 질투심은 자기 짝을 지키려는 행동도 유발한다. 남성은 자기 짝이 매력적인 여성일 때 질투심이 더 발휘돼 지키려 애쓰며, 여성은 연인이 조건 좋은 남성일 때 지키려 더 애쓴다. 그리고 여성의 배란기가 가까워지면 성적 불륜의 위험이 커지므로 남성이 짝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남녀는 불륜의 단서를 눈치채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향도 다르다. 남성은 성적 불륜에 관한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하며, 여성은 감정적 불륜의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한다.

불륜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처음에는 날카롭게 감정 대립을 하다가, 용서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서하든지 헤어지든지 할 것이다. 하지만 남녀는 거기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드 섀클포드와 버스 연구진은 앞서 말한 버스의 첫 번째 실험에 어느 행동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더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추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짝이 누군가와 열정적인 성관계를 갖는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몰입할 때에는 어느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남성은 짝의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몸도 주고 마음도 준 상황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몸이라는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즉 불륜을 알아차렸을 때 남성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을 더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성적 불륜이 일어났을 때 결별할 가능성이 높다.
불륜을 용서할 것인지에 대한 남녀의 이런 반응 차이도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성적 불륜이 저질러졌을 때 다른 누군가의 자식을 키울 위험이 커지는 쪽은 남성이며, 따라서 남성 쪽이 더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런 진화적 역사를 거쳤기에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쪽이 남성이 장기간에 걸쳐 제공할 자원을 빼앗길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실들을 그냥 나열한 듯하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지겹도록 보아온 연애나 불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그런 현상들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 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했다. 질투심 같은 심리적 현상들이 감정적으로 미숙해서 생기는 것도, 자제를 못해서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것도, 인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Beauty is defined as a waist

허리와 엉덩이 비율 0.7의 비밀

진화심리학자들은 질투심뿐 아니라 남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다른 성향 차이들도 문화적 구성물이 아니라 선택을 거쳐 진화한 생물학적인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버스는 전세계 남녀의 성적 취향을 조사한 끝에 남성들은 원칙적으로 무한히 많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므로 여성보다 바람기가 더 다분한 반면, 여성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한 명밖에 자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짝을 선택할 때 더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과 지능이 높고 건강하며, 착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버스는 남성의 그런 특징들이 가족을 잘 부양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현상도 본능적으로 여성의 번식 잠재력을 가늠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은 전세계의 남성들이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그 비율이 여성의 번식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보면 질투심도 바람기도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속물근성도 멋진 몸매를 선호하는 성향도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때로 정도를 벗어나서 날뛰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보듯이 질투심은 때로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드잡이질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를 살해하는 지경으로 치닫곤 한다. 바람기는 심심치 않게 집안을 파탄내곤 하며, 요모조모 따지는 근성은 때늦은 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멋진 몸매를 따지다가 사회 전체가 비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본래 그것들이 진화의 산물로서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과하지 않도록 막는 수단도 진화했어야 하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은 현대 사회에서 그런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우리의 심리적 성향이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 환경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시시대에는 그렇게 때로 과하다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시시대 이후로 인류는 급격히 발전해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현대 도시들을 건설했다. 질투심 같은 뇌의 특정 기능들은 그 변화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면서 뇌를 촬영했다. 그러자 성적 행동 및 공격 행동과 관련이 있는 편도핵과 시상하부가 흥분하는 것을 발견했다. 즉 질투심은 공격성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뇌에 새겨진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 둘러싼 논란
남녀의 성향 차이를 진화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를 합리화하는 논거로 쓰일 수 있고,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통해 남녀의 성향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자 새러 블래퍼 르디는 현대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가 적으니 경제적으로 더 능력 있는 짝을 고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불러는 진화심리학이 언뜻 볼 때는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많다고 말한다. 남성이 번식 잠재력이 큰 젊은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이 지위가 높은 남성을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거나,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질투하고 여성이 감정적 불륜에 더 질투한다거나, 부모가 친자보다 의붓자식을 더 학대한다거나, 둘째가 첫째보다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라는 등의 연구 결과들이 다른 가설들을 배제시킬 만큼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나이를 꽤 먹은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이 젊은 여자를 끼고 다니고 ‘플레이보이’ 모델이던 안나 니콜 스미스가 20대에 90세가 다 된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과 혼인한 사례를 보면 진화심리학적 주장이 옳다고 여겨지지만, 젊은 남자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인 40대의 데미 무어와 사귀고 유명 배우이면서도 평생 반려자와 늙어가는 배우도 많다.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 둘째는 자유분방한 경향을 보이는 식으로 출생 순서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는 연구로 유명한 프랭크 설로웨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첫째는 부모의 자산과 유전자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둘째가 태어나면 잃을 것이 많으므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째는 권위에 수긍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반면에 동생들은 처음부터 부모의 기대 수준도 낮고 기대에 어긋나도 잃을 것이 별로 없으므로 변화와 모험을 선호한다. 그래서 세계를 혁신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첫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설로웨이도 첫째가 아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사람들은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첫째였다.



구체적인 사례마다 논란이 분분하긴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고, 인간의 심리적 적응 양상들을 새롭고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한다. 제프리 밀러는 ‘메이팅 마인드’에서 진화심리학이 지나치게 억지 해석을 한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오히려 인간 특유의 창의적인 능력들을 소홀하게 다루는 등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본다.

그는 음악, 미술, 지능, 학습 등도 진화의 간접적인 산물이 아닌 짝 선택에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선택된 형질들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마다 인간 마음의 다양한 특성들을 해석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언제까지나 알 듯 모를 듯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처럼 여겨졌던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론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과학과 인문학 및 사화과학의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이한음 과학평론가)

07.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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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08-06 02:11   좋아요 0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 너무 유익한 페이퍼네요? ㅋㅋㅋ
사실 어려운 내용이기도 한데, 매력남의 조건은 너무 많은 부분이 공감되서요..
제가 심리학을 전공해서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도 꽤 있고... 옛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남성스럽게 생긴 사람보다는 여성스럽게 생긴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곤 했는데...
제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요즘 그런 남성이 매력남일 줄이야. 으흐
제가 정상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갑자기.. 지금 남자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세벽에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_-_)~
진행 중이라고 하셨으니, 다음 글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꿈 꾸시길...

로쟈 2007-08-06 11:36   좋아요 0 | URL
실상은 우리가 다 '아는' 내용입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kleinsusun 2007-08-06 03:23   좋아요 0 | URL
아...맞아요. 여자들의 남자 외모 안본다는 말, 결혼식 때 잠깐 쩍 팔리면 된다는 말 다 뻥이예요.ㅋㅋ 퍼 갑니당.^^

로쟈 2007-08-06 11:36   좋아요 0 | URL
외모에 대한 선호는 능력과 비례하지요.^^

자꾸때리다 2007-08-06 07:29   좋아요 0 | URL
<남자의 키가 1인치(2.54cm) 클수록 스피드 데이트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5%씩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럼 키가 187cm 인 저는 초특급 스피드 매력남이겠군요.ㅋㅋㅋ
근데 몸무게가 99.999999999999999999kg 인지라.ㅡㅡ;;

로쟈 2007-08-06 11:38   좋아요 0 | URL
네, 감량만 좀 하시면 되겠습니다. 키가 큰 것과 덩치가 큰 건 차이가 좀 있을 듯해서요.^^;

비로그인 2007-08-06 13:22   좋아요 0 | URL
전 튼실하신 분들이 좋던데
남자다워보여서;;

3=3=3=3=3=3

마냐 2007-08-06 19:19   좋아요 0 | URL
허허. 놀랍거나 새로운 내용은 암것도 없군여. ㅎㅎ

로쟈 2007-08-06 20: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언어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아는' 지식의 '논리'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네파벨 2007-08-07 11:29   좋아요 0 | URL
데이비드 불러의 말에 공감이어요....
"다른 가설들을 배제시킬 만큼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않다"..........에 밑줄...

남자는 오쟁이지게 되면 딴 남자의 아이를 키우는데 자원을 투입하는 꼴이 되어서...여자는 남자가 마음이 떠나면 자식 양육을 거들지 않게 되어서...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그래서 연구진은 남성은 여성의 감정적 불륜보다 신체적 불륜에 더 심하게 질투심을 느끼고, 여성은 남성의 신체적 불륜보다 감정적 불륜에 더 심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가설과 들어맞았다." 라는 논리의 고리가........어딘지 수상쩍습니다.

애초의 가설이 상당부분 맞는 말이라고 공감하기는 하지만.......
"실험결과" (남자는 육체적 바람에 여자는 정신적 바람에 더 질투한다는 결과)는 또 다른 가설들도 얼마든지 들이댈 수 있을텐데요...

사회문화적 상황 (남성 대상의 매매춘의 뿌리깊은 역사) 은연중 사회적으로 주입되는 생각(남자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믿거나말거나이지만 생리적 이유 (남자들의 성적 욕구는 거의 식욕이나 배설의 욕구만큼 일차적인 것이다....) 등등등이 모두 작용해서 남자의 육체적 바람에 너그러워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여자들이 정신적 바람...마음을 주는것에 더 민감한 이유는....어릴때부터 여자들은 로맨스 소설(거슬러 올라가면 댓살 때부터 신데렐라, 백설공주를 거쳐 중고딩때 하이틴 로맨스를 보다가 아줌마가 되어 TV 드라마로...)에 훨씬 많이 노출되어 있고.......등등등...^^

물론 이런 가설들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번식과 양육과 유전자 전달이라는 근원적인 진화론적 원동력이 자리잡고 있다는데는 누구보다 찬성하지만.......

제가 맘에 안드는건 그냥 그 진화심리학이.......
"가설"과 "실험"과 "입증" 따위의 말을 너무 부주의하게 사용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soft science인 심리학 자체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암튼...."진화"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서 더더욱 심리학, 과학 쪽으로 엉덩이를 밀고 들어오는 심리학에 대해서 자꾸만.....불편한 심기가 드는건....(애증이지요. 심리학이 싫다는게 아니라 심리학이 몹시도 매혹적이고 멋진 "궁극의" 학문이기는 한데...과학과의 애매한 자리매김에 대해서....뭐랄까........저도 제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기 힘드네요.)

그냥....

인간에 대한 통찰이 "소설가"나 "시인"의 업무 범위에 속하던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랄까요..........^^




로쟈 2007-08-07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좀 다르게 생각했는데요. 진화심리학이 학제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심리학을 진화생물학이 흡수하는 걸로 봤거든요. 사회생물학이 사회학을 흡수하는 것처럼. 더불어 문화적 관념은 생물학적 본성과 공진화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물론 '실수'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리고 어느 연구분야건 '연구비' 문제 때문에 과욕을 부리거나 과장을 하는 경향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매트 미들리의 <본성과 양육>(김영사, 2004)은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고 나는 나중에야 구해놓았다. 교양과학서 서가에 꽂아두기만 했었는데 도킨스 덕분에 다시 꺼내들었다. 국역본에서 챙기고 있지 않은 책의 부제는 '유전자, 경험,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이다(국역본의 부제는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이다). 도킨스 왈, "도중에 놓기 힘든 책이다.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가. 그는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다."


 

 

 

저명한 이 과학저널리스트/저술가의 책들은 국내에 네 종이 번역돼 있는데(<붉은 여왕>의 경우는 개역본이 나왔다) 나는 물론 모두 챙겨두었고 <이타적 유전자>는 영어본도 갖고 있다. 참고로, <HOW TO READ 다윈>(웅진지식하우스, 2007)과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2007)의 저자/편자인 '마크 리들리'는 혼동하기 쉽지만(내가 예전에 혼동했었다) 또 다른 '리들리'로서 도킨스의 제자이자 현재는 옥스포드대학 동물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12인의 털보들(Twelve Hairy Men)'은 <본성과 양육>(원제대로 하면 <양육을 통한 본성>)의 '머리말'이다. 지난 2001년 '게놈' 발견의 가져다 준 충격이 이후에 씌어진 것인데 전체적인 요점을 미리 짚어주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과학서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시사점도 던져준다.  

먼저 요점은 이렇다: "나는 인간의 행동이 본성과 양육 모두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용의 도'를 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게놈은 실제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지만 그 변화는 논쟁이 종료되었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누르고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논쟁의 양쪽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주장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인간 행동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이 밝혀지면 논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본성 대 양육 논쟁이 아니라 양육을 통한 본성 논쟁이 될 것이다."(17-8쪽) 

그리고 시사점. 리들리는 가상의 사진 한 장을 떠올려보자고 제안하는데, 1903년에 찍힌 이 사진은 "가령 바덴바덴이나 비아리츠 같은 휴양지에서 열린 국제회의의 기념사진이다." 이 가상의 사진이 국역본 속지에 들어 있는 것인데(그러니까 인물들은 모두 조합된 것이다) 거기엔 '1903년 4월 1일 프랑스 바이리츠에서'라고 돼 있다(만우절에 찍은 사진이다!). 비아리츠는 프랑스 남서부의 해변 휴양지이다. 즉 아래 사진 같은 곳에서 국제회의를 연 걸로 치자는 것이다.  

참석자는? "사진 속 인물들은 남자들이지만 어린 소년도 있고, 아기도 있고, 유령도 있다(*실제 나이를 고려하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나머지는 중년이나 노인이고, 모두 부유한 백인이다. 모두 12명인데, 나이에 걸맞게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있다. 미국인, 오스트리아인, 영국인, 독일인이 각각 2명이고,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스위스인이 1명씩이다."(18쪽) 이 사진의 모델이 된 건 "1927년 솔베이에서 찍은 물리학자들의 유명한 단체사진(아인슈타인, 보어, 마리 퀴리, 플랑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렉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이건 진짜 사진이다!).

이 물리학자들의 단체사진과 견주기 위해 리들리가 불러모은 "12명은 20세기를 지배하게 될 중요한 인간 본성 이론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이 가상의 사진을 옮겨올 수 없으므로 다만 상상만 해보시길(국역본에 들어 있는 사진은 모두가 서 있는 걸로 보아 리들리가 상상해본 사진과는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국역본 편집자들의 작품인가?).

"우선 머리 위에 떠 있는 유령은 찰스 다윈(1809-1882)인데, 이 사진을 찍기 11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턱수염이 가장 길다. 다윈의 생각은 원숭이의 행동에서 인간의 특성을 찾는 것으로, 가령 미소 같은 보편적 인간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진 왼쪽 끝에 꼿꼿이 앉아 있는 노신사는 그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1822-1911)으로, 81세의 나이에도 매우 정정해 보인다. 양쪽 뺨에는 구레나룻이 흰쥐처럼 매달려 있는 골턴은 유전의 열렬한 옹호자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미국인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61세인데, 각지고 어수선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본능의 옹호자인 그는 인간이 가진 충동이 다른 동물보다 적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한다."

"골턴의 오른쪽에 서 있는 식물학자는 인간 본성과 관련된 모임에 참가한 것이 못마땅한 듯 헝클어진 턱수염에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다. 그는 55세의 네덜란드인 위고 드브리스(1848-1935)로,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30여년 전, 모라비아의 수사 그레고르 멘델이 자신보다 10년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안 후로는 늘 우울한 표정이다."

"그 옆에 선 54세의 러시아인 이반 파블로프(1849-1936)는 회색 턱수염이 유난히 무성하다. 경험주의 옹호론자인 그는 마음의 열쇠가 조건 반사에 있다고 믿는다."

"그 앞엔 유일하게 말끔히 면도한 존 브로더스 왓슨(1878-1958)이 앉아 있다. 파블로프의 이론을 '행동주의'로 발전시킨 그는 단지 훈련만으로도 성격을 임의대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파블로프의 오른쪽에는 통통한 체격에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독일인 에밀 크레펠린(1856-1926)과, 깔끔하게 턱수염을 기른 비엔나 출신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서 있다."

"47세의 동갑인 두 사람은 후대의 정신병 의사들에게 '생물학적 설명에서 벗어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각자의 이론을 가르치는 중이다."

"그 옆에는 사회학의 개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이 있다. 45세의 나이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그는 사회적 실체가 그 부분들의 총합 이상이라고 열심히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 정신적 파트너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의 옆에 서 있다. 45세의 프란츠 보아스(1858-1942)는 축 늘어진 콧수염과 결투의 상처가 보이는 위세 당당한 얼굴을 똑바로 들고, 인간 본성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인간 본성을 만든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맨앞의 어린소년은 스위스에서 본 장 피아제(1896-1980)로, 그의 모방과 학습이론은 세기 중반에 결실을 맺을 것이다."

"유모차 속에 있는 아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콘라트 로렌츠(1903-1989)다. 1930년대가 되면 그는 하얀 염소 수염을 자랑하면서 본능에 대한 연구를 부활시키고 각인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설명할 것이다."

세기의 학자들을 이렇게 다 불러 모아놓고 저자 리들리가 제기하는 주장: "나는 이 12명에 대해서 아주 놀라운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그들은 모두 옳았다.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며, 도덕적으로 옳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진실의 씨앗을 간직한 독창적인 개념으로 인간 본성의 과학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그들 모두 거대한 벽에 벽돌을 놓았던 것이다."(21쪽)

요컨대 "인간 본성은 다윈의 보편성, 골턴의 유전, 제임스의 본능, 드브리스의 유전자, 파블로프의 반사, 왓슨의 연상, 크레펠린의 역사(개인사), 프로이트의 형성적 경험, 보아스의 문화, 뒤르켐의 노동 분업, 피아제의 발달, 로렌츠의 각인이 모두 결합된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합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설명도 부실해질 것이다."  

여하튼 그만하면 화려한 캐스팅이다.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 여행'을 매트 리들리와 함께 시작해볼까...

07. 08. 05.

P.S. '12인의 털보들' 가운데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은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그밖에 골턴과 드 브리스, 그리고 왓슨과 보아스도 국내에는 소개된 바가 없지 않나 싶다(왓슨의 경우엔 그의 제자인 B. F. 스키너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윈과 프로이트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의 책들만 꼽아보도록 한다(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의 한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외

 

 

 

 

이반 파블로프

 

 

 

 

에밀 뒤르켐,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외


 

 

 

장 피아제, <교육론>

 

 

 

 

 콘라트 로렌츠, <솔로몬의 반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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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5 23:58   좋아요 0 | URL
와.. 꼬장꼬장한 분들 많이 모아놓았네요. 그런데 책 재밌겠어요.^^

로쟈 2007-08-06 00:17   좋아요 0 | URL
인간 본성론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핑커의 <빈 서판>과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책이죠...

수유 2007-08-06 14:58   좋아요 0 | URL
<본성과 양육> 아주 흥미로운 책이네요..구입해서 읽어보렵니다.
삐아제 양반 얼굴을 수십년만에 다시 보는 감회..
12명의 털보들.. 그들의 수염은 그들의 벽돌 만큼이나 멋지네요^^;;

로쟈 2007-08-06 16:50   좋아요 0 | URL
출간된 지는 꽤 된 책이지요.^^;

심술 2007-08-06 19:34   좋아요 0 | URL
프랜시스 골턴이 저렇게 생겼구나. 주식투자하는 데 도움 된다고 해서 피터 번스틴의 리스크라는 책을 읽다 중간에 포기했는데 거기에도 골턴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수유님이 말씀하신 벽돌이란 뭔지요? brick을 말씀하신 건 아닌 듯 한데...

로쟈 2007-08-06 20:24   좋아요 0 | URL
본문에 "그들 모두 거대한 벽에 벽돌을 놓았던 것이다"란 문장이 있습니다.

심술 2007-08-07 18:47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읽어 보니 보입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에서 제6장 '도덕의 뿌리: 우리는 왜 선한가?"를 읽었다. 주중에 피터 싱어의 <다윈의 대답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이음, 2007)를 읽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어진 독서였다.

 

 

 

6장은 네 개의 절로 나뉘어져 있지만 핵심적인 절은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일 것이다(일단 타이틀이 대표성을 띤다). 번역도 매끄럽고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이 책에서 그래도 흠을 잡자면 참고문헌이 수록되지 않은 걸 들 수 있겠다. 미주까지는 붙어 있지만, 가령 6장의 미주3)에서 참고하라고 소개된 Hinde(2002)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인지는 번역본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물론 손품을 좀 팔아서 검색해본다면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참고문헌만 복사할까 했더니 도서관의 책은 대출중이다. 참고문헌 때문에 원서를 구입해야 할까?).

예컨대, Hinde(2002)라고 표기된 참고문헌은 본문에서 "로버트 힌데의 <선은 왜 선인가?>"(325쪽)로 옮겨진 'Why Good is Good: The Sources of Morality'란 책을 가리킨다. 다는 아니겠지만 참고문헌 읽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겐 이런 정보가 본문만큼이나 요긴하고 흥미롭다. 문제는 그 흥미를 충족시키는 일이 좀 번거롭다는 것.

그나마 로버트 힌데의 책은 나은 편이고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다윈주의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책들, 곧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들로 도킨스가 거명하고 있는 다른 책들은 번역된 제목만 가지고 서지를 추적해야 한다. "마이클 셔머의 <선과 악의 과학>, 로버트 버크먼의 <신이 없어도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 자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각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같은 책들의 경우가 그렇다.

잠시 손품을 팔도록 한다. 먼저 셔머의 책이 그래도 쉬운 편인데, <선과 악의 과학>이니까 키워드 몇 개를 쳐넣으면 'The Science of Good and Evil:  Why People Cheat, Gossip, Care, Share, and Follow the Golden Rule'(2004) 같은 다소 긴 제목의 책이 뜬다(368쪽 분량이니까 우리말로 옮기면 450쪽은 되겠다). 저자 마이클 셔머는 'Michael Shermer'로 표기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곁가지로 같은 저자의 <과학의 변경지대>(사이언스북스, 2005)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는 사실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 로버트 버크먼(Robert Buckman)의 책의 경우도 대충 영작을 해서 검색해보면 'Can We Be Good Without God?: Biology, Behavior, and the Need to Believe'(2002)란 책이 뜬다(278쪽 분량이다). 그리고 마크 하우저(Marc Hauser)의 책 'Moral Minds: How Nature Designed Our Universal Sense of Right and Wrong'(2006)도 쉽게 검색되는데(512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사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구입한 독자들이 같이 산 책이라고 열거돼 있기도 하다.

 

 

 

 

도킨스는 이 장에서 서두에 열거한 저자들이 펼친 주장을 그 나름대로 다시 개진하겠다고 하는데, 여하튼 보다 심화된 독서를 위해서는 힌데, 버크먼, 하우저의 책들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매트 매들리의 책을 들 수 있을 터인데, 도킨스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매트 리들리는 <덕의 기원>에서 다윈주의적 도덕이라는 분야 전체를 명쾌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평판에 대해서도 아주 탁월한 설명을 제시한다."(331쪽) 여기서 도킨스가 언급하고 있는 <덕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이 우리에겐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로 번역된 바로 그 책이다(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긴 하다).

<이타적 유전자>를 펼쳐본 이라면 알겠지만 책의 프롤로그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탈옥'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서 '어느 무정부주의자'란 '상호부조론'의 제창자 표트르 크로포트킨(1842-1921)이다. 그는 1876년 동지들의 치밀한 계획과 헌신 덕분에 차르의 감옥으로부터 탈옥에 성공한다. 이후에 영국으로 망명한 크로포트킨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저작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저술을 통해 그는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설파했다. 또 그와 동지들이 붕괴시키기 위해 투쟁해 온 중앙집권적-귀족주의적-관료적 국가를 재창출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이념적 라이벌인 마르크시즘을 공격했다."(12-3쪽) 그렇게 해서 저술한 것이 대표작 <상호부조론>(<만물은 서로 돕는다>)이다. 그의 이론에 대한 리들리의 평가는 이렇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이론과 같은 기계적 진화론이 아니었다. 다윈은 사회성이 높은 종이나 집단이 사회성이 낮은 종이나 집단과의 경쟁에서 적자생존을 한다는 것 외에는 상호부조가 어떻게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크로프트킨이 절반은 옳았음을 입증하는 한편,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사회가 제구실을 하고 굴러가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훌륭하게 고안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의 진화된 소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다."(15쪽)

어떤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진화적 본성, 혹은 협동(상호부조) 성향을 도킨스가 정리하고 있는 바는 이렇다: "현재 우리가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332-3쪽) 

그렇다면 이러한 '이타적' 본성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도킨스의 생각으론 '실수'나 '부산물'로 진화돼 왔다: "인간이 비비처럼 작고 안정적인 무리로 살아가던 시대에 자연선택은 인간의 뇌에 성적 충동, 굶주림 충동, 이방인 혐오 충동 등과 함께 이타적 충동도 프로그램해놓았다.(...) 나는 친절함, 이타주의, 관대함, 감정이입, 측은지심 등의 충동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성(불임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 자식을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를 상대)에게 욕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울먹이는 불행한 사람(친척도 아니고 보답을 받을 수도 없을 누군가)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측은지심을 느낀다. 둘다 빗나간 사례이자 다윈주의적 실수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이다."(334-5쪽)

마치 오목눈이 어미새의 뻐꾸기 사랑처럼...

07. 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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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최근 이런쪽 - 조금 벗어나있긴 하지만 - 에 대해 책 읽고 있는지라, 다른 관점에서 도덕을 바라보게 되는군요.

로쟈 2007-08-05 11:36   좋아요 0 | URL
언급된 책들 가운데 하우저의 책은 도킨스도 풀이해주고 있는데 번역되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의 진화적 본성(도덕감각)은 일정한 틀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블루비니 2008-04-0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책 열거는 하나 책 내용에 대한 건 별로 없군.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 ㅋㅋㅋ 그렇게 튀고 싶수?
 

'경계인'이란 말에서 당신이 어떤 이념적 경계, 가령 송두율 교수의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출판, 2002) 같은 책을 떠올렸다면 좀 미안한 일이다. 아래 기사에서 '경계인'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가리키고 나도 그런 뜻의 제목을 붙였다. '경계성 성격장애로부터 내 삶 지키기'란 부제를 가진 신간 <잡았다, 네가 술래야>(모멘토, 2007)에 관한 리뷰인데,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두 가지 근거를 갖는다. 하나는 우리 주변에 '경계인'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게 다른 하나다. 부제를 고려하건대 저자는 경계인들의 주변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로 책을 낸 듯싶다. '심리치료'로 분류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한 권 건져놓는다.   

한겨레(07. 08. 04) 경계성 성격장애인, 이 ‘웬수’ 같은 그대여!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이 시에는 폭발하는 질투와 좌표 잃은 사랑이 염천의 개처럼 헐떡인다. 그렇지만 문학적 열정과 회한이 상대를 할퀴고 끝내 자신마저 할퀴는 실제 상황으로 바뀐다면 그사람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이하 경계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피부의 9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은 사람과 같다. ‘정서적 피부’가 없어 사소한 접촉에도 심한 괴로움을 느끼니까. 경계인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예측 못할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자꾸 도망가는 것 같아 조바심내고, 검은과부거미한테 쏘인 것처럼 펄쩍펄쩍 미쳐 날뛴다.

경계인의 참담한 고백을 들어보자. “어제 약혼자에게 악을 쓰다가 약혼반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리적 이유는 없지만, 그가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머니와 통장을 뒤진다. 직장으로 찾아가서 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별일 없으면 안도감과 함께 창피함을 느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헛일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변 사람이다. 경계인은 누군가를 붙잡아 술래로 만들어야 하고, 그 대상이 된 사람들(이하 비경계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대체 자신이 왜 그 사람한테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경계인보다 더 참담한 비경계인의 말도 들어보자. “직장에서 귀가 시간이 5분이라도 늦어지면 아내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친구들과 외출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벨이 울린다. 스트레스가 심해 이제는 아내와 함께가 아니면 친구와 어울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경계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배우자, 연인, 가족, 친지 등 그들의 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 경계인을 아끼기 때문에 훌쩍 떠나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때로는 ‘감정 노동’이, 때로는 ‘정서적 전투’가 필요한 지피지기의 살벌한 전장이다. 비경계인의 생생한 증언이 이 책의 고갱이다. 그 생생한 증언은 ‘고독한 자에게 보내는 키스’이며 훌륭한 ‘생활의 지혜’다. 자, 주변을 둘러보자. 마치 80년대 ‘이런 사람을 신고하자’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간첩 식별법 같은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그 사람이 감정변화가 극심한지 △자신의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타인의 행동에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는지 △당신의 말과 행동을 의도와 다르게 왜곡해 공격하는지 △흑백논리의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지 △자신이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지 △바라는 바가 변화무쌍해서 도저히 비위를 맞출 수 없는지 △과음, 약물남용, 폭식, 난폭운전 등 자해적 행동을 하는지 △당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늘 빠뜨리는지를 살펴보자.

해당 사항이 많다면 당신은 피곤하다. 그러나 쉽게 매도하지는 말자. 경계인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수칙들을 숙지하면 비경계인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복음을 얻게 된다.

주변에는 비교적 중증인 나 자신을 포함해 경계인 의증 환자들이 여러 명 보인다. 실제로 1996년 서울 여자대학 3곳의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5.6%가 경계인이었다. 그들은 타인과 친밀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약물을 쓰기도 하지만 감정, 행동, 사고, 생리적 요인까지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각각의 사례들은 그와 당신 사이에 놓인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밀어내며 소통의 첫 단추를 끼우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계인도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가진 특징을 좀더 과장되게 지닌 사람들일 뿐이라는. 그러므로 경계성 성격장애인은 나와 당신에게 들이대는 반성의 거울이다.(손준현 기자)

07. 08. 04.

P.S. 혹 주변에 '경계인'이 없다면(그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지만)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영화들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김혜수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2004)가 그런 영화이다('경계인' 증상에 더 맞는 제목은 '피부 없는 미녀'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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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40   좋아요 0 | URL
끄윽, 채점해 보니 저도 경계선 인격장애군요.

로쟈 2007-08-05 11:16   좋아요 0 | URL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philocinema 2007-08-07 17:50   좋아요 0 | URL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한 미국정신의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유병률은 0.7~1.0%정도 되며, 여자가 남자보다 3배 많다고 합니다.
또한 정신과 입원 및 외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인격장애 랍니다.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온 8년간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되짚어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마주하기 힘든 분들이 바로 "경계인"들이었습니다.

이 책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주변의 경계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7-08-07 18:36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대하기 어렵다니까 흥미롭네요...

philocinema 2007-08-08 11:38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 가장 대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대하기 쉬웠다는 것은 결국 의사의 입장인데, 쉬웠다는 것은 의사의 면담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는 얘기일테고(그래야 의사 입장에선 대하기 편했다는 생각과 치료가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테니까요!) 성찰이 충분히 이뤄져 인격에 변화가 왔다면 이제 더 이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아닐테니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가 없겠지요!


글은 처음 남기지만 2년전부터 이곳에 들르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올초까지 군에 있었던 군의관 생활동안 독서모임을 정기적으로 1주에 2번씩 가졌는데, 참석했던 분들에게 로쟈님 서재를 소개했고, 그중 몇 분은 로쟈님의 서재를 방문한 뒤 소개만 해드렸을 뿐인 제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더군요.
이 자릴 빌어 그 분들과 저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좀 엉뚱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나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구요.


로쟈 2007-08-08 11: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 혼자 떠드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많은데, 가끔씩 좋은 평들을 해주시면 감사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론 좋은 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고(그럼 세상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구요) 그게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게, 물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러러면 좋은 의학서적들도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

philocinema 2007-08-08 15:45   좋아요 0 | URL
실제로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건너편에 상대가 있어 말을 주고 받는다곤 해도 따지고 보면 자기 생각을 그냥 혼자 떠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그런 독백들 가운데에서도 귀 기울이고 싶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싶은 독백들이 있더군요! 바로 로쟈님의 독백이 그런 경우 였습니다. 적어도 제겐^^..
독백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으시니 어리둥절하다는 느낌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그 순간이 바로 독백으로부터 상호간 대화로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님의 말씀처럼 저 또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이 출간되고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답니다. 자기 분야의 specialist는 많아 보이지만 교양인으로서의 generalist는 만나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전 개인적으론 제 분야의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 나는대로 다른 분야의 책을 되도록 많이 접해보려고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만난 님의 글은 메마른 대지에 나리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좋은 의학서적이라!
워낙이 의학분야가 고유의 "인본주의"가 사라진채 상업적 자본주의와 결탁이 되어서 그런지 획기적이라고 발표되는 논문이든 책이든 다국적 제약회사의 입맛에 맞는 분야의 연구들만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것이 때론 부끄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기우의 대척점 어디선가 좋은 의학서적이 써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싶네요. 진화생물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로쟈님이 한 번 써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한겨레 북리뷰란에 연재되고 있는 '김윤식의 문학산책'의 이번주 이야기는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것이다(영화는 http://www.youtube.com/watch?v=7DWlVNCiM8E 참조). 칼럼을 읽다가 의문(호기심)도 생기고 개인적인 기억까지 겹쳐서 '조사'를 좀 해보았다. 몇 마디 보탠다. 모처럼 비가 시원스레 오는군...

한겨레(07. 08. 04) '콰이 강의 다리’의 조선인 포로감시병

휘파람 행진곡의 익살스러움을 아시는가. 그럴 수 없이 경쾌한 행진곡에 누더기 군복 차림의 영국군 포로의 행진이 화면 가득 펼쳐졌소. 차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두목 니콜슨 대령의 당당함, 그를 따르는 병졸들의 해맑은 표정. 영화 <콰이 강의 다리>(1957, 데이비드 린 감독)를 보고 있노라면 연합군 포로 수만 명의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태국·미얀마 접경 철도 건설(1942~43)의 비극은 가뭇없고 문득 저 헤겔의 주인·노예의 변증법만이 커다란 얼굴을 내밀고 있소. 다리 건설 과정을 통해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령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지 않겠는가. 설계도를 작성할 수 있는 노예란 벌써 노예일 수 없는 것. 이 점을 1930년대 코제브는 파리고등연구원에서 메를로 퐁티, 조르주 바타유 등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기껏해야 행진곡의 경쾌함이 가까스로 남았을 뿐. 


원작소설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원작자 피에르 불의 소설 <콰이 강의 다리> 제1부에는 이런 대목이 있소. “니콜슨 대령은 두 사람의 거인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둘 다 조선인으로 사이토의 호위병이었다”(오징자 역)라고. 잇달아 이렇게도 적혀 있지 않겠는가. “한 주일 동안을 그는 고릴라 같은 조선인 보초병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보초병은 자기 개인의 특권으로 매일같이 쌀밥에 소금을 덧쳐주는 것이었다”라고. 또 썼군요. “니콜슨 대령은 또 다시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못생긴 조선인은 처음의 그 비인간적 대우를 다시 하라는 냉혹한 명령을 받았다. 사이토는 그 호위병까지 때렸다”라고. 일본군은, 포로 감시원으로 조선인을 사용했음이 조금은 드러나 있소. 8년간 말레이시아에서 토목기사로 종사한 작가이고 보면 이 점이 썩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오.

어째서 일본군은 포로수용소 감시병에 조선인을 사용했을까. 이 물음은 혹시 전범으로 연합군에 의해 처형된 홍사익(1900~46) 중장에도 이어질까(*사진에서 오른쪽 끝). 조선인으로 별을 셋이나 단 이는 홍사익뿐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 육사 26기이자 조선인으로 유일한 육대 출신의 홍사익이 필리핀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간 것은 1944년 10월. 처형 당한 것은 종전 이듬해 9월. 그렇다면 사이토 대령에게 모질지 못한 탓에 얻어맞은 고릴라처럼 생긴 조선인 감시병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잠시 볼까요. 조선인 학병으로 비극의 버마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귀환한 이의 기록에 따르면 귀국선 캠벨호엔 병정 40여 명이 위안부 5백여 명 그리고 포로감시원 7백여 명이 탑승했다 하오(이가형, <버마 전선 패잔기>). 기억에 의한 기록이기에 그 숫자의 정확성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요컨대 기록자의 말 그대로 ‘모두가 불운했던 민족의 제물들’임엔 분명합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전범으로 처형된 조문상(趙文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유령으로라도 지상에 떠돌 것이다. 그도 불가능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떠돌 것이다”라고.

<콰이 강의 다리>란 우리에겐 새삼 무엇일까. 하나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소설이다, 라고 스스로 묻고 대답해 봅니다. 환각으로서의 스크린이고 환청으로서의 휘파람 소리이다, 라고. 동시에 사실이고 역사이다, 라고. 그렇다면 실체란 없는 것일까. 만일 실체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거기에 놓인 실체란 저 헤겔이 말하는 주인·노예의 변증법이 아니었을까.(김윤식 / 문학평론가, 명지대 석좌교수)

07. 08. 04.

P.S. 몇 가지 조사해본 내용이란 건 원작자 페에르 불과 <콰이강의 다리>의 국역본에 관한 것이다(홍사익 중장에 대해선 이규태 칼럼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일단 시중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국역본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좀 의외이다. 칼럼에서 '오징자 역'이라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본이 나왔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오징자'? 불문학 번역자인 '오증자' 교수와 동일인인 듯싶은데 어째서 '오징자'일까, 하며 찾아보니 '오징자'로 검색되는 책들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는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었는데, '오징자 역'으로 돼 있는 건 삼진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2권(1976)이다(같은 번역의 다른 판본들도 나와 있다). 징후/증후에서처럼 한자 음독의 문제일까?  

원작자 피에르 불(1912-1994)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프랑스 작가이다('피에르 불레'로도 표기돼 왔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 바로 <콰이강의 다리>(1952)와 <혹성탈출>(1963)이다(팀 버튼이 리베이크하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얼핏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 싶지만, '탈출' 모티브로 묶이는 것도 같다.

이 <혹성탈출>도 예전에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승산서관, 1979) 등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역본에서 중역된 것이 아닐까 싶고, 그 일역본의 제목이 '혹성탈출'인 듯싶다(원제는 '원숭이의 혹성'이다). 이 정도면 대중적인 지명도를 갖춘 작가/작품인데 도서관에서나 찾아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

P.S.2. <콰이강의 다리>는 내게 언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를 떠올리게 해준다. 갓 전학온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덕분에 별다른 기억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이 선생님의 인상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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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색도 좋구요. 첨 들어보는 작간데 작품은 영화로 둘 다 본 적 있습니다. 그 두 작품 원작자였구나.

로쟈 2007-08-04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확인했습니다...

2007-08-0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06 00:1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랬다면 좀 쑥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