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대형서점에 잠시 들렀다가 손에 든 책은 아론 구레비치(1924-2006)의 <개인주의의 등장>(새물결, 2002)이다. 예전에 '개인'과 '개인주의'를 주제로 한 몇 권의 책을 꼽으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책이긴 했는데, 출간 당시에는 너무 비싸 보여서 구입하지 않았다. 5-6년을 흘려보내니 그래도 '정상' 가격으로 다운된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론 단테의 <신곡>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하다는 '핑계'에다가 저자가 최근(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도 고려했다. 책은 유럽의 5개 출판사에서 기획한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됐는데, 국역본의 경우 댓 권에서 목록이 더 늘어나지 않는 걸 보면 주줌하고 있는 모양이다(아직도 스무 권쯤이 더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완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몇년 전 관련서평과 구레비치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붙여둔다.   

한겨레21(03. 05. 08) 개인은 진화하고 있다

‘개인’(individual)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서양의 개인은 유일신 앞에서 얼굴을 감추고 엎드려 있어야 했고, 동양의 개인은 가족과 친척, 사회의 제도윤리에 칭칭 감겨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각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러시아의 역사가 아론 구레비치는 <개인주의의 등장>(이현주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복잡다단한 개인의 역사를 파헤친다.(*아래는 책의 스페인어본.)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사람’(person)이란 말조차 없었다.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과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무대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한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쓰며 그 가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프로소폰 또는 페르소나는 한명의 개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성격(character)과도 유사한 개념의 페르소나는 제도와 사회가 정해준, 외부에서 결정된 정체성이었다. 프로소폰·페르소나가 한명의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중세 기독교 때였다. “그리스도 교회의 세례를 통해 인간(human being)은 한 사람이 된다”고 13세기 문헌은 말한다.

그러나 물론 이때의 사람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 아니다. 아론 구레비치에 따르면 개인은 “씨족적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여러 제한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개인의 전형이 르네상스 시대 때 갖춰졌다는 많은 역사가들의 지적을 거부하고, 중세 이전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전통까지 거슬러올라가 곳곳에서 출몰한 개인의 계보를 더듬는다.

고대 노르웨이 서사시에는 뛰어난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중 대표적 영웅인 ‘에갈’은 거친 바이킹이자 세련된 궁정시인, 자애로운 아버지, 부와 선물을 기대하는 남자이며 충성스런 친구 등 모순적인 성격의 인물로 나타나는데, 에갈이 구현하는 개인성은 집단의 윤리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적 겸손함을 요구하는 기독교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지만, 중세 시대에도 역시 개인의 탐구는 계속됐다. 이 중 <고백록>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기독교 안에서 개인의 ‘내적 공간’을 탐구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 방종한 생활로 젊음을 탕진하며 살다 어느 날 진정한 신을 발견하게 된 그는 “나는 운명도 아니요, 숙명도 아니요, 악마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창조자를 대면하는 에고”였다. 중세의 다른 저자들이 스스로를 이교도, 성서적 영웅, 복음서·역사·문학의 인물에 비교하는 것과 달리, 아구구스티누스는 자신에 대해 묵상하고 본래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글을 쓰는 지식인 집단말고도 개인은 여러 계급에서 발견됐다. 8세기의 한 조각가 밀라노 대성당의 황금 제단 위에서 왕관을 씌워주는 성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로 자기를 묘사했으며, 다른 장인들 역시 곳곳에 자기의 서명을 남겼다. 기독교 윤리에 직업의식이 덧씌워지면서 기사와 상인 역시 각자 소명대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개인성을 형성해나갔다.

지은이는 “개인은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린다. ‘개인’은 중세 이전부터 싹을 틔웠지만, 자아에 대한 개인의 태도, 자각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두어 ‘self’는 종교개혁 이후에야 등장했다. ‘개인’은 느리고 더디고 힘겹게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돼온 것이다.(이주현 기자)

08. 01. 08.

P.S. '러시아의 역사가'로 소개된 아론 야코블레비치 구레비치는 러시아의 저명한 중세사가이면서 문화학자이다. 이 분야의 전공자에 따르면 중세 연구 분야에서 드미트리 리하초프, 보리스 우스펜스키와 함께 러시아의 3대 석학으로 꼽히는 대학자이다(현재는 우스펜스키만 생존해 있다). 아래는 그의 사후에 출간된 두 권의 선집.

Арон Гуревич Арон Гуревич. Избранные труды. Культура средневековой ЕвропыАрон Гуревич Арон Гуревич. Избранные труды. Древние германцы. Викинги

<개인주의의 등장>은 구레비치가 이 시리즈의 책임자인 자크 르 고프의 의뢰를 받고 쓴 것이다(구레비치의 대표작은 <중세의 세계>, <중세의 역사인류학>, <중세의 민중문화> 등이다). 그가 서론격인 1장에서 토로하듯이 "개인은 파악하기 힘"든데, 그럼에도 개인주의의 기원을 '고대 스칸디나비아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유럽의 개인주의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으면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같은 주제를 다룬 여타의 책들과 같이 읽어보면 도움이 되겠다. 참고로, 국역본은 영어본을 옮긴 것이고, 영어본은 또 러시아어본을 옮긴 것으로 돼 있다. 한데, 러시아본의 실물이 어떤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영어본을 대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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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8 22:4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강의하시는 '신곡'이라니. 강의 들으시는 분들 정말 부럽네요!

로쟈 2008-01-08 22:53   좋아요 0 | URL
전공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심도 있는 강의는 어렵고요, 다만 '대표 독자' 역할을 맡은 것뿐입니다.^^;
 

밤참을 먹으며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뒤늦게 훑어보았다. '신춘문예'에 가슴을 뛰던 때는 진작에 지난 터이라 심상하게 둘러보다가 시 부문 당선작이 좀 특이해서 옮겨놓는다(당선소감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2311639581&code=960205 참조). 제목이 '페루'다. 그리고 산문투로 돼 있다. 신춘문예 시의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있는 게 일단 호감을 갖게 한다. 게다가 페루,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게 라마, 마추픽추, 그리고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등이던 차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어서 반갑다.

페루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 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07. 01. 07.

P.S. 윤성희의 소설집을 다룬 문학평론 당선작 '길위의 나무와 소설의 의무'(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2311640181&code=960205), <웰컴 투 동막골>을 다룬 대중문화평론 당선작 '먹고 배설하는 신체로 회귀하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011722371&code=960205)도 링크해놓는다. 정독하지는 않았지만 유망한 평론 지망생들이 우리 주변엔 아직도 많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특히 대중문화(영화) 평론 분야는 강세라고 하는데, 이번 당선작 역시 수작이다(수상소감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011703001&code=960205). '슬로베니아의 비평가 미란 보조비치'가 언급되기에 곧장 문학평론가 복도훈씨를 떠올렸는데, 알고 보니 대학원 동문이다. 평단에 '동대 마피아'라도 만들어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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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8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8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1-0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도 페루가 소재던데요.
이번 신춘문예엔 페루가 대세군요.

로쟈 2008-01-08 21:11   좋아요 0 | URL
우연의 일치겠지만 재미있네요...

수유 2008-01-0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평론입상자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평론.

로쟈 2008-01-08 21:12   좋아요 0 | URL
역량있는 젊은 평론가들은 많지만 평론집은 점점 읽히지 않는 기이한 시대입니다...

깐따삐야 2008-01-0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 이 부분 와닿네요. 고로, 페루에 가 본 것 같아요. 저도.^^

로쟈 2008-01-08 22:54   좋아요 0 | URL
머리를 좀 땋아본 사람들은 다 고향이 페루인 것이죠.^^

2008-01-09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1-09 22:05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대표작 두 권, <새벽의 약속>과 <하늘의 뿌리>가 번역돼 나왔다.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를 읽기 위한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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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보나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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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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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7 17:16   좋아요 0 | UR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로맹가리군요! 새벽의 약속과 하늘의 뿌리는 처음 보는 책들이네요.

로쟈 2008-01-07 19:33   좋아요 0 | URL
네, 연초부터 두툼한 책 두 권이 나왔습니다. 로맹 가리의 전기와 함께 읽어볼 만하지 않나 싶어요...

미귀 2008-01-13 15:55   좋아요 0 | URL
<하늘의 뿌리> 이래로 유럽에 생태운동이 생겨났다고 하더군요.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생태,녹색운동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자가 자기 책이 불러올 그 후과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다고 해요. 암튼 소설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움직'이도록 한.. 그 정도로 묵직하다는..

그리고 저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 자전적 소설인데, 책 표지사진의 파일럿이 로맹 가리예요. 원서 사진 그대로... 전기도 좋지만.. 자서전이 정말 솔직해요....

기회가 닿으면 저도 로맹 가리 책은 전부 읽어보고 싶습니다....

로쟈 2008-01-13 21:45   좋아요 0 | URL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들이 되는 셈이네요.^^
 

'라스콜리니코프 '두 모녀'를 살해하다'의 자투리 글로 쓰다가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자리를 만든다. 외국어 표기에 관한 것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러시아어 '라스콜리니코프(Раскольников)'를 영어로 음역한 표기는 'Raskolnikov'이다. 여기서 [l(ль)]'이 연음이기 때문에(구개음화된 [l]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l']이라고 표기하지만 보통은 경음 과 구별없이 [l(л)]로 표기한다.

해서 우리말로 적을 때도 '라스콜코프'라고 적어야겠지만(나도 그렇게 적었던 적이 있다), 이 경우 우리말에서는 자음동화가 일어나서 '라스콜코프'로 발음하게 된다. 짐작에는 그렇게 되면 어차피 원음과는 차이기 있기 때문에 연음 [l]을 'ㄹ'이 아니라 '리'로 옮기던 관행이 이 경우에는 계속 남아서 '라스콜리니코프'로 굳어졌다(나도 동의하는 표기이다). 역시나 같은 연음 [l]이 쓰인 '고골리(Gogol)'의 경우 '고골'로 표기가 바뀐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고리키(Gorky)'의 경우는 계속 '고리키'라고 표기한다(언젠가 국문과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고리키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다고 문의를 해온 적이 있는데, 짐작에 그는 'Gorky'가 아니라 'Goriky'를 검색했다). 경음 표기를 선호하는 전공자들은 '라스꼴리니꼬프'라고 적는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외국어 표기 원칙이란 어느 정도 관행을 존중하고 임시변통을 허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곧이 곧대로가 아니라 융통성있게 적용해야 된다는 말이다.  

개정된 표기안에 따라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돼 오던 'Достоевский(Dostoevsky)'는 '도스토옙스키'라고 표기되고 있다(알라딘에서도 표제어를 그렇게 잡고 있다). 이 경우 '도스또옙스끼'라는 이형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네 가지 표기가 혼용되는 수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아직 러시아어 표기에까지는 주의를 두지 않아서 그냥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표기한 경우이다(언론이나 출판물에서 아직 '도스토예프스키'와 '도스토옙스키'가 혼용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의 6장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다루고 있는데, 'Rushdie'는 예전에 '루시디'로 통용됐던 이름이다. 즉 국내에 번역돼 있는 <악마의 시>는 '루슈디'가 아니라 '루시디'의 작품이다('루슈디'란 표기는 내가 알기에 <분노>에서부터 등장했다). 'sh'를 [시]가 아니라 [슈]로 표기하는 걸 새로운 원칙으로 정한 탓이겠다(그리고 이를 관행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이고).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어 표기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 가령 '푸슈킨'으로 표기돼오던 'Пушкин(Pushkin)'의 경우 개정 표기법에 따르면 '푸시킨'으로 표기되어야 한다(물론 'Pushkin'은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게 표기돼 왔었다). 'sh'를 [슈]가 아니라 [시]로 읽도록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해서 똑같은 'sh'가 나오더라도 이게 영어인지 러시아어인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읽어주어야 한다(원래 발음은 별 차이가 없다).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이 '에이젠시테인'으로, 문학이론가 '슈클로프스키'가 '시클롭스키'로 표기되는 건 이러한 원칙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바뀐 이름들로 검색되는 책은 아직 한권도 없다.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기에 '에이젠슈테인'과 슈클로프스키'를 고수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선집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부 언론의 공식 표기는 '발터 베냐민'이다. 심지어는 '월터 베냐민'이라고 표기된 적도 있다!(이 문제에 대해서 예전에 쓴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4 참조). '베냐민'으로 검색되는 책은 역시나 한권도 없다. 이 정도면 좀 우스운 원칙 아닌가? 한글로 외국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원칙은 가능하지 않다. 그저 근접하게 표기해주면서 우리말에서의 혼동/혼선을 피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프랑스 작가 'Balzac'을 왜 '발작'이 아니라 '발자크'라고 표기하겠는가?). '원칙'을 자주 바꿔가면서(외국어 표기안은 여러 차례 개정돼 왔다) '원칙주의'를 고집하는 건 보기에 흉하다...  

08.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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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월터 베냐민이 누군가요? ㅋㅋㅋㅋ

로쟈 2008-01-07 19:33   좋아요 0 | URL
실수라고 보야겠죠. 한데 '베냐민'이라고 교정돼 있어서 좀 코믹한 효과를 유발하지만...

와넬 2008-01-0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르스타인 베블렌이냐 소스타인 베블렌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군요.

로쟈 2008-01-07 23:22   좋아요 0 | URL
그 경우는 모로 가든 '베블렌'이니까요. 고유명사 표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면서 해법이 잘 보이지도 않는 난제입니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책 수집가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2007)는 지난 연말에 소개하기도 했고(http://blog.aladin.co.kr/mramor/1753545) 또 구입해서 처음 몇 장을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다(20개 장 중에서 6장까지를 읽었다). 한동안 제쳐두어다가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또 '특이한' 대목이 눈에 띄기에 교정해둔다(사실 이런 핑계로 페이퍼를 쓰다간 교정으로만 공치는 날들이 부지기수일 듯하다).

 

 

 

 

책의 7장은 존 케네디 툴(John Kennedy Toole; 1937-1969)이란 작가의 소설 <바보들의 연합(A Confederacy of Dunces)>을 다루고 있는데, 작가와 작품 모두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한데 게코스키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 한 권으로 "미국 남부 출신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이다." 그 '켄 툴'(그의 애칭)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거릿 미첼이나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 등이라고 하니 그의 지명도를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아래 표지를 보니 소설은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다만, 차이라면 미첼이나 리와는 달리 "툴은 자신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는 것. "대작이라 자신하는 원고를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하자, 낙담에 끝에 1969년에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124쪽) 그래서 그는 흔히 "위대한 유작 하나만을 내놓은 작가"로 기억되곤 한다고(실제로는 놀랄 만한 양의 미출간 원고들을 쌓아놓고 있었다고 한다).

전혀 뜻밖인 건 그의 책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는 점. '존 케네디 툴르'의 <조롱>(사람과책, 1995)이 그 문제의 책이다. 한술 더 떠서 <별을 좇아가는 길>(말과뜻, 1997)이란 책도 출간돼 있고(<조롱>은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수 있겠다). 짐작엔 '퓰리처상'이란 타이틀에 기대를 걸었던 듯한데, 독자들의 반응은 썰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충분히 다시 소개됨 직한 작품으로 보인다. 표지에서도 이미 짐작해볼 수 있지만 퓰리처상 수상 이후에 쏟아진 한 서평은 "가격 대비 웃음량으로 판단한다면 최대 할인을 감행한 올해의 작품은 <바보들의 연합>이다."라고 써놓았을 정도. 18개 언어로 소개되어 150만 권 이상 팔렸다고 하니까 세계적인 밀리언셀러이기도 하고(한데, 어째서 한국 독자들에겐 외면 받았던 것일까?).   

 

켄 툴에 대해서는 책이나 읽게 되면 더 늘어놓기로 하고, 이 페이퍼를 쓰게 만든 구절을 옮겨본다: "일반적으로 어떤 인물을 깊숙이 알게 되면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정심에 이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알료나 이바노프바 노파의 아파트에서 두 모녀를 살해하고는 문 뒤에서 공포에 전율한다. 이 장면에서 독자 역시 수치를 느끼면서도 동정을 머금게 된다."(125쪽)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전당포 노파의 이름은 '알료나 이바노프바'가 아니라 '알료나 이바노브나'이다. 이게 저자인 게코스키의 오기인지 역자의 오타인지 모르겠지만(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정도면 타이핑상의 문제로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한데, 두번째 오류는 좀 심각한다. '두 모녀'를 살해했다니? 알다시피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로 살해한 사람은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그녀의 이복 여동생 리자베타이다. 그러니까 '모녀'가 아니라 '자매'이다(저자가 엉뚱하게 적어놓았을 리는 없겠고, 역자가 어떤 단어를 옮긴 것인지 궁금해진다).

<죄와 벌>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의 경우에도 이런 오기/오역이 가능하다는 게 아무튼 좀 의외다. 덕분에 관련자료를 뒤적이다가 알게 된 것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작년에 새로운 버전의 <죄와 벌>이 방송을 탔다. 보아하니 국영인 '제1채널'에서 제작한 것인 듯하다(아마도 TV 시리즈물일 것이다). 아래는 1969년작 <죄와 벌>에서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새로운 라스콜리니코프의 얼굴이다.  



이 영화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두 자매를 살해하는 장면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데(http://www.youtube.com/watch?v=BC682qfVvB4),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그러니까 아주 잔혹하게 묘사돼 있다(임산부나 노약자는 보지 마시길). 짤막한 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TAtwZ033Rtw 참조. 마르멜라도프와 소냐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한데, 이번 <죄와 벌>의 배역들 가운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배우는 라스콜리니코프도 아니고 소냐도 아니다. 좀 뜻밖이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 풀헤리야 라스콜리니코바이다. 러시아의 국민배우 엘레나 야코블레바가 맡은 배역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오래전 <인터걸>(1989)의 주연으로 알려진 배우이다). 한 인터뷰 기사를 보니 안제이 바이다가 연출했던 연극 <악령>에서도 레뱌드키나 역으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고(이 연극은 2004년에 초연됐을 때 나도 봤는데!).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을 보니 반갑다...

08.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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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7 17:15   좋아요 0 | URL
저는 러시아스러운(?) 얼굴들이 좋아요.^^

로쟈 2008-01-07 19:32   좋아요 0 | URL
러시아인들의 얼굴도 각양각색이긴 한데, 그래도 구별이 되긴 합니다. 딱 꼬집어서 특징을 말할 수는 없어도...

소경 2008-01-09 21:54   좋아요 0 | URL
이런 섬뜩한 장면을 오랫만에 보네요. 오한이 드는게..

로쟈 2008-01-09 22:09   좋아요 0 | URL
'러시아식'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6-06 00:15   좋아요 0 | URL
제게 있는 바보들의 연합 번역본은 제목이 <위대한 청개구리> 부제 20세기 동키호테 전.김영일 역 도서출판 예맥1981.퓰리처 상 받자마자 번역했나봐요.제가 구입해 읽을 때가 카트리나로 루이지애나가 폐허가 되었을 때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그 곳이라서 특히 기억에 남네요.물론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분량이 많아서 독파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쟈 2008-06-06 20:26   좋아요 0 | URL
그렇게 소개가 됐었군요! 덕분에 많이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