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의 처우 문제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개선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요즘처럼 강의 소득이 전혀 없는 방학 때면 우스개소리로 대리(운전) 알바를 뛰어야 한다는 얘기도 강사들끼리는 한다(그런데 우스개가 아니다!). '비정규직 800만' 시대라고 하니 '비정규적 강사'의 존재 자체가 스캔들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적 지위/계층의 존재와 그에 대한 대우는 온전히 그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다. 800만 비정규직과 6만 5천여 시간강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이란 사회의 시스템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다수가 그걸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총파업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굴종하든가. 다만, 그것이 부당하며 부도덕한 시스템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저임금 착취를 등에 업고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적하는 칼럼과 기사를 옮겨놓는다. 강명관 교수의 '고금변증설' 연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1994.html)와 경향신문의 '비정규직 800만 시대' 기획기사 중 시간강사에 관한 꼭지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81757155&code=210100). 이번주 신간 중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사회평론, 2008)의 저자 모모세 타다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로 “겉모양은 선진국인데 속에는 아직도 후진적인 생각, 가치관, 질서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류 국가가 되기엔 품격이 모자란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도 좀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하기야 현 정부에 와서는 아예 '품격'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러워졌지만).

 

한겨레(08. 08. 02) 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니 서둘러 학위논문을 제출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있다. 또 어렵사리 학위논문을 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서 학문의 길로 일로매진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지 않는다. 후자 역시 계속 논문을 써 내어 자기 학문의 밭을 일구지 않는다.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 학위과정을 밟은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에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과외도 한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다 이 연구소 저 연구소,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로 옮겨 다니며 연구비가 아닌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에 차분히 자기 연구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곁에서 몇 해를 지켜보지만, 공부에 큰 진척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내심 답답하다. 문제는 공부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았지만, 그 일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백범일지>는 구한말의 사회 사정을 아는 데 아주 요긴한 책이기에 자주 들추어본다. 백범이 공부를 소원하자 아버지는 문중과 동네 사람들과 의논해 상놈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열어준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모아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란 선생을 초빙한 것이다. 백범은 이생원을 따르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는 반년이 되지 않아 해고된다. 멍청한 손자를 둔 신존위란 사람이 백범이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해 이생원을 쫓아낸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백범이 실망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백범일지>의 이 부분에서 늘 짠하였다. 하지만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해고의 이유라는 것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한데 임형택 선생의 ‘이조말 지식인의 분화’(<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5)란 논문을 읽고는 백범의 선생 이생원만 당한 일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논문은 ‘대구훈장 원정(原情)’이란 글을 소개하고 있다. 원정이란 요즘말로 진정서다. 곧 대구의 훈장이 관에 올리는 진정서다. 무슨 진정서인가. 논문을 따라가면서 읽어 보자.

충청도의 한 선비가 서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10년 세월을 놀다 보니 주머니는 바닥이 나고, 과거에 합격할 길도 아득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타관 객지 시골 서당에서 훈장으로 나선다.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사략> 첫째 권을 꼬맹이들에게 가르치노라니, 정말이지 신세가 처량하다. 한데 훈장을 초빙한, 제자들의 아비들이 “타관 양반인데, 예조(禮稠) 한 섬, 의자(衣資) 반 냥을 주지 않은들 어찌하겠느냐”며 그 쥐꼬리조차 떼어먹으려 든다. 훈장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려 다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궁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그들은 냉소를 하면서 지껄인다. “이 양반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군. ‘생원의 문자’는 값이 대체 얼마요? 그동안 먹은 밥값으로 치면 될 터이지. 의자고 예조고 말도 꺼내지 마시오.” 이 말에 훈장은 관청에 진정서를 올린 것이다.

<백범일지>의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해고되었듯, 대구 훈장 역시 보수를 주지 않는 학부형들에게 거세게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만다. 보수를 주는 쪽이 약자의 호소할 데 없는 처지를 십이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분들을 훈장에 견주어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백범의 선생을 내쫓은 자와 훈장의 보수를 떼어먹은 자들이 한 짓거리가 지금의 대학이나 정부의 강사 대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시간강사의 강의료라는 것은 말로 꺼내기에도 창피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강의료를 올리고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나도 20년 전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왜냐고? 대학과 정부가 강사들이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국강사노조가 있지만,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란 참으로 힘들다. 강사는 학기 단위로 위촉되기 때문에 그 학기에 한해서 강사 신분을 갖는다. 또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이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연고로 다 익히 아는 분들이 강의를 의뢰한다. 그분들의 안면 때문에 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곧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전임 자리를 얻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 강사노조에 힘이 모일 리 없다. 이런 약점을 대학은 십이분 이용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보다 절박한 일은 없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을 생계비 버는 데다 보낸다면, 그 뒤 무슨 정열과 힘이 남아 연구를 한단 말인가. 대학에서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받아서는 살 방도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강사에게 정당하게 지급해야 할 강의료를 착취함으로써 자기 덩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다른 어느 기관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 자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노동력을 이토록 착취해서야 되겠는가?

대학마다 요사이 하는 말인즉 발전기금을 모은다,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자랑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대학의 행태는 훈장의 예조와 의자를 떼어먹는 아비들의 짓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언필칭 내세우는 발전과 개혁이란 구호가 위선이 되지 않으려면, 강사 처우 문제부터 해결하시기 바란다. 그게 학문 후속세대를 키우고, 대학을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경향신문(08. 07. 29) [비정규직 800만 시대]“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28일로 326일째.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천막농성이 열리고 있다. 처음 스무 명으로 시작한 농성인원은 이제 다섯 명으로 줄었다. 1주일의 절반은 대구에서 올라오는 강사 3명이, 나머지 절반은 서울지역 강사 2명이 돌아가며 천막을 지키고 있다. 먹고 자는 일을 모두 천막 안에서 해결해왔지만 최근 폭우가 쏟아지면서 천막을 지키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이들이 폭우와 무더위 속에서도 천막을 지키는 것은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를 위해서다.

대학 시간강사들. 이들은 현재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7년 전국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정규직 교수)은 5만5612명으로 시간강사 6만5399명보다 적다. 하지만 교양강좌의 경우 전임교원 강의(5만636개)보다는 시간강사 강의(7만8204개)가 훨씬 많다.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전임교원들의 강의(2만5381개)까지 합하면 전임 교원 강의 수의 두 배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이들의 처지는 일반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그보다 더 못한 경우도 흔하다. 시간강사들은 따로 고용계약서가 없고 시급을 적용받는다.

교수신문이 전국 30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2008년 평균 시급은 4만1000원. 보통 한 학기에 두 강좌씩 맡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16시간을 강의(강좌당 1주일에 2시간 강의 기준)하고 받는 월급은 64만원 정도다. 학교에 따라 연이어 강의를 하면 한 학기를 쉬거나 학교별로 한 사람의 강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어 시간 강사들의 수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료를 부담해가며 강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4대 보험 가입률도 낮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만 가입되고 이마저 허용하지 않는 대학도 14곳이나 된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 두 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영곤씨(61)는 “대학만큼 악랄한 사용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대학에서 시간당 5만300원씩 1강좌, B대학에서 3만원씩 2강좌를 하는 김씨의 한 달 급여는 88만2400원이다. 방학 때는 계절학기 강좌를 잡지 못하면 수입은 0원이 된다. 적은 월급보다 더 힘든 것은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김씨는 “어떤 설명도 없이 다음 학기 시간표에 이름이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 학기의 수입을 예상할 수 없으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1995년부터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한수경씨(42·가명)는 “5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공부가 좋아 적게 벌어도 공부하며 늙자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50만~60만원 수입으로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씨는 “강사 자리는 알음알이로 채용되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강의라도 잘리지 않으려면 단체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시간강사는 “다들 쉬쉬하지만 시간강사들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1999년 이후 시간강사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열악한 처우가 몇 차례 사회문제화됐지만 그때뿐이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시간강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현실은 그대로다. 학교 노동자라는 특성상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외에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법과 노동법 사이에 끼어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강사의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 차별개선에 대한 권고안을 교육부에 냈으나, 교육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10년 가까이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하모씨(49)는 “대학은 해고도 편하고 임금도 적은 시간강사들을 쉽게 쓰고 버리고 있고,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애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장은 “시간강사는 일반 직장인보다 10년 늦게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며 “학문이나 직업의 특수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고 다른 길을 찾기도 힘든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반항할 겨를도 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장은교기자)

08. 08. 01.

P.S.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는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된 한겨레21의 르포기사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대학의 작은 지옥'(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070722057.html)과 '정규직 교수가 비극을 끝내라'(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140723013.html)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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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정규 교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5 21:21 
    이번주 신간 국내서 중에는 작년에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프레시안의 연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을 묶은 책도 포함돼 있다. 해가 바뀌어서 제목은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이후, 2009)이 됐다. 따로 서평이 뜨지 않아서 프레시안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9. 04. 25) 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때때로 묻
 
 
paviana 2008-08-01 23:4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시간강사인 친구를 만났는데 백수인 제가 술값을 계산했어요. 방학이잖아요.사정 뻔히 아는데 계산하게 둘 수가 없더라구요.에이참..

람혼 2008-08-02 01:23   좋아요 0 | URL
갑자기 눈물이 울컥... ㅜㅜ

로쟈 2008-08-02 17:52   좋아요 0 | URL
저도 어디 가서 계산하는 일은 드뭅니다. 강사들만 있을 때를 빼곤.^^;

porori 2008-08-02 01:24   좋아요 0 | URL
제생각엔요...강사료가 저렇게 저임금이라면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는 사람은 드물것 같습니다. 특히 교양과목이라면 학생들이랑 농담하면서 딱 60만원어치의 정보와 지식을 주지 않을 까요?? 학생들은 또 지적 소득없이 학점만 따 갈테고요... 또, 좋은 학점을 위해 학생들은 교수/강사에게 약간의 굴종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왠지 악순환 같은데요..
학생입장에선 학점 때문에 돈을 지불 하면서 '굴종'을 겪으니, 저로선 학생이 가장 약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털세곰 2008-08-02 16:34   좋아요 0 | URL
할 말은 아니지만 강사료 비싼 학교의 수업은 솔직히 신경 더 많이 씁니다. 강의평가도 있거든요. 강사로 싼 곳은 주는 만큼 한다는 생각으로 가끔 태업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생에 대해 약간의 "권한"을 갖고, 그것을 행사하기를 때로는 꺼리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상당히 놀라고 있습니다

로쟈 2008-08-02 17:55   좋아요 0 | URL
그게 요점입니다. 사실 학교와의 관계에서 강사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는데요. 학생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므로 교육 '소비자'입니다. 약자가 아니예요. 당연히 강사들 수업은 안 듣겠다고 당연히 보이콧해야죠! 대학에선 자질이 안되서 전임으로 못 뽑는다고 하니까...

canon 2008-08-02 08:58   좋아요 0 | URL
작년에 시간강사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왕복 차비(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6시간)와 강사료가 같아서...

로쟈 2008-08-02 17:56   좋아요 0 | URL
그걸 대단찮게 생각하는 대학이 문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06   좋아요 0 | URL
여기도 댓글들이 슬프네...제가 학교 다닐 때 29살 먹은 남자가 전임강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이젠 이런 일은 없겠죠?

로쟈 2008-08-02 17:57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대우는 반에 반 수준도 안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걸 감수하는 강사들의 '마인드'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23   좋아요 0 | URL
더 슬퍼요...

로쟈 2008-08-03 00:31   좋아요 0 | URL
최석하의 '죽'이란 시가 생각나네요.ㅠㅠ

천재뮤지션 2008-08-03 11:26   좋아요 0 | URL
그 놈의 BK21. 휴...
전 그래서 이제는 민간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잘 모르겠지만...

(자선의 정치.)

로쟈 2008-08-03 20:29   좋아요 0 | URL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면 알려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20   좋아요 0 | URL
그리고 우리나라 호칭문제인데 같은 나이라도 교수는 무슨 무슨 교수인데 시간강사는 무슨무슨 씨라고 해서 구별을 짓더라구요.우리나라 호칭에 직함이나 직업 붙이는 관행이 굉장히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사실 저는 모두 씨를 붙이는 평등호칭을 찬성합니다.시사잡지 보면 80년대까지 그랬거든요.

로쟈 2008-08-03 20:28   좋아요 0 | URL
미시정치죠.^^ 퇴직하거나 사직해도 '전(前)교수'라고 붙이죠. 장관이나 의원처럼. 예전에 교수가 드물던 시절에는 사회적 예우였겠지만(검사들이 영감님 행세하던 시절) 요즘은 그저 '관행'으로 남은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50   좋아요 0 | URL
예...그 전 장관이니 교수니 그런 것 좀 없앴으면 좋겠어요.특히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진행자가 그렇게 부르면 진짜 이상해요.그런 관행 때문에 직함이나 이런 걸 강조하는 풍토가 안 없어지죠.인간 자체를 존경하는 호칭이 없어요. 저는 어린이에게 존대말 쓰자는 방정환 님의 뜻을 따르고 있죠.

로쟈 2008-08-04 13:13   좋아요 0 | URL
한국어 경어체계는 미덕과 악덕을 고루 갖춘 듯합니다...
 

발터 벤야민 선집의 한권으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길, 2008)이 출간됐다(<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자의 과제 외>도 같이 나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글들이 새롭게, 혹은 처음 번역된 것인데, 일단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철학테제')와 '폭력비판을 위하여'('폭력비판론')이다.

특히, '폭력비판을 위하여'는 많은 곁가지 독서를 자극하는 텍스트이다. 함께 읽을 만한 책들을 모아놓는다. 개괄적인 건 '폭력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747960)란 페이퍼와 함께 박홍규 교수의 논문 '폭력론-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0&no=401)를 참고하시길. 가장 최근의 폭력론은 지젝의 <폭력>(2008)이며 내년에 번역서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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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힘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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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폭력비판론과 그에 대한 데리다의 해제/해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6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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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계발적인 폭력론의 새 번역. 국내 벤야민 수용도 이제 정점에 다가간 듯하다...
폭력의 철학- 지배와 저항의 논리
사카이 다카시 지음, 김은주 옮김 / 산눈 / 2007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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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폭력의 철학에 대한 유익한 조감도. <배틀로얄>에 대한 해석 등이 인상에 남는다.
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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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폭력의 문제는 지젝의 많은 책에서 두루 다뤄지지만 일단 '폭력의 기능'이란 장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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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2 01:26   좋아요 0 | URL
벤야민 국역본의 2차분 출간 소식이 무엇보다도 반갑습니다.^^ 언제나처럼 잘 갈무리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8-08-02 20:18   좋아요 0 | URL
가격은 좀 부담스러운데, 여하튼 반가운 책들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08   좋아요 0 | URL
오...우리 박선생이 조르쥬 소렐도 연구하는군요.대단해요.

로쟈 2008-08-02 20:18   좋아요 0 | URL
학문도 아나키스트적으로 하시는 듯...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29   좋아요 0 | URL
소개하신 박홍규 씨 논문은 잘 읽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47   좋아요 0 | URL
그리고 로자 님의 글도...근데 내용이 어렵네요.배틀로얄이나 파이트 클럽을 소재로 폭력론을 논한다...저 같으면 읽기는 해도 그런 글은 도저히 어려워서 못 쓸 것 같아요.
벤야민의 사상이 칼 슈미트와 비슷해진다는 대목이 인상적이군요.실패한 독일 소비에트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벤야민이 이에 대해 글을 썼다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며칠전 서점에 들렀을 때 프랑스의 '신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책이 깔려 있기에 의외다 싶었다. 더 의외인 건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프로네시스, 2008)란 타이틀. 같이 나온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프로네시스, 2008)은 여러 차례 출간됐던 책이므로 '오래된 새책'이고 작년에 썼다는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와는 30년의 터울이 있으니 합해놓으면 '프랑스의 한 좌파 지식인'의 30년 궤적이 되겠다. 레비의 입장에 동의하진 않지만(최근에 읽은 수잔 벅모스나 지젝 같은 좌파에 나는 더 끌린다) 그의 포지션은 한국사회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단적으로, 그가 '반미주의에 반대하는 좌파'이기 때문이다. 가령 '친미 좌파'는 한국에서라면 좌우 모두가 불편해하는 포지션이다. 그런 '불편함'이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의 친구이면서도 루아얄(사회당)에 투표했다는 레비의 의의가 아닐까 싶다(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할까?).

경향신문(08. 08. 02) “반자유주의·반미주의는 좌파가 뿌리쳐야할 ‘유혹’들이다”

저자 얘기부터 해야겠다. 그것이 이 현란하고도 신랄한 책을 읽어내는 출발점이기에. 베르나르 앙리 레비.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 서른살이던 1977년 처녀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통해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신철학’을 주창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좌파와 우파,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군부독재, 부시와 후세인 등을 싸잡아 공격해온 성역 없는 비판자. 스스로를 반-반미주의자(anti-antiamericanist)라고 부르는 인물. ‘친미 지식인’ 또는 미디어 노출을 즐기는 ‘지식-언론인’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보스니아, 수단 등 세계의 분쟁지역에 직접 뛰어들어 적극적 관심을 호소하는 현실참여 지식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초 출간된, 매혹과 환멸이 뒤섞인 현기증 나는 나라 미국을 탐색한 ‘아메리칸 버티고’를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겠다.

그런데 그가 때늦은 ‘이념 고백’을 했다. “나는 거의 유전적으로 좌파이다. 좌파는 내 가족과 같다. 그러므로 자기 가족을 와이셔츠 갈아입듯 바꾸는 법이 아니다”라고. 책의 집필은 2007년 1월23일 시작됐다.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던 니콜라 사르코지와 통화를 한 직후다. 저자는 2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사르코지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역시” 좌파 후보(세골렌 루아얄)에게 투표했다. 30년 동안 그와 투쟁을 같이 해온 앙드레 글뤽스만이 우파로 전향하는 등 지식인들의 ‘우파로의 이동’이 이뤄지던 때다.



책은 레비가 왜 좌파를 끝까지 고수했는지에 대한 변론서인 셈이다. 더 나아가 선거에서 패배한 좌파의 몰락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좌파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좌파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성찰했다. 원제를 직역하면 ‘나자빠진 거대한 시체’. 사르트르가 1960년 알제리 전쟁이 끝난 후 암울했던 시기 좌파를 표현한 말이다.

저자는 우선 자신을 비롯한 프랑스 좌파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네 가지 정신적 유산을 거론한다. 드레퓌스 사건, 비시 정부, 알제리 전쟁, 68혁명. “좌파에 속한다”는 것은 이 각각의 사건에서 드러난 인권수호,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권위주의·반전체주의라는 ‘반사작용’을 이용하는 방법을 되찾고 그것들을 ‘함께’ 작동시킬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인권문제를 등한시하는 반식민주의나 반파시즘 정신이 결여된 68혁명 정신 등 균형을 잃은 반사작용이다.

책은 이어 오늘날 좌파가 뿌리쳐야 할 ‘유혹’들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저자가 보기에 20세기 좌파의 몰락은 전체주의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 결과 붉은색의 전체주의인 공산주의와 갈색의 전체주의인 나치즘의 결합이 목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전체주의적 유혹의 붕괴 이후 그것을 대신하는 두 번째 유혹이 횡행하고 있다. 이 두 번째 유혹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그 유혹이 좌파가 아닌 우파적 영감에서 얻어졌다는 것. 저자가 “우파적 좌파” “현기증을 일으키는 좌파”라고 비판하는 지점이다.

저자는 좌파가 뿌리쳐야 할 유혹들로 반자유주의, 반미주의, 반유대주의, 파쇼이슬람주의, 보편성의 위기 등을 꼽는다. 우선 반자유주의. 혹 그것은 자유주의를 지구상 모든 악의 원천으로 돌림으로써 지역 국가들을 독차지하고 국민들을 약탈하는 엘리트들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는 것 아닌가. 그리고 ‘반자유주의적 수사’에 담긴 파시스트적이거나 나치적 수사학을 간과하지는 않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서 최근 조르주 아감벤이나 슬라보예 지젝 등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자유주의가 결국 나치즘으로 향했던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가 재발견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다음은 반미주의.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그것은 미국의 잘못”이라면서 미국을 인류의 모든 죄악과 과실의 동의어로 만드는 것은 좌파들을 같은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반미주의는 바보들의 진보주의”라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반미주의에는 반유대주의가 숨어있다. 저자는 반미·반제국주의가 ‘제국 대 반제국의 대립’ 구도 이외 모든 문제들의 발언권을 박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세계 각지의 억압받고 핍박받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좌파가 반미·반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파쇼이슬람세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비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흩어지고 나뉘어진 인류라는 가정 위에 세워진 ‘차별주의’라는 낡은 독트린이 대거 회귀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민주주의·인권·사람에 대한 존중 등 보편주의를 통해 차별주의의 유혹을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카뮈, 사르트르 등을 거론하면서 ‘감상적 좌파’에 맞서는 ‘우울한 좌파’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회의적이었지만 투쟁하고 염세적이었지만 검소하고 실천적이었으며 권력을 무거운 부담으로 여겼던 이들 말이다.

프랑스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하고 있어 따라잡기 쉽지 않은 책이다. 게다가 옮긴이의 말처럼 “거의 폭력에 가까운 다양하고도 많은 정보”가 수많은 인용과 비유, 화려하면서도 호흡이 긴 문체에 녹아들어 있다. 옮긴이가 세세하게 달아놓은 수많은 주석과 함께 읽어내는 끈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프랑스 좌파의 과제들로 제시한 화두들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에 다름 아니다. 특히 프랑스와 우리나라, 둘다 실용주의와 경제 우선 정책을 내세운 우파 후보가 나란히 승리한 공통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저자가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몇 가지 이유.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의 태도” “사르코지가 표방한 실용주의, 아니 기회주의” “어떤 사유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기 때문”. 30년 전 출간된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도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김진우기자)

08.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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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2 01:28   좋아요 0 | URL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귀환'에는 저 또한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측면이 있지만, 그의 '위치' 자체가ㅡ오히려 현재에 더ㅡ'문제적'이라는 점은 저 역시 공감하게 됩니다.

로쟈 2008-08-02 18:02   좋아요 0 | URL
친미 보수주의자들이 이 정도 포지션으로만 이동해도 '대화'가 좀 되지 않을까 라는 게 제 '망상'입니다...

람혼 2008-08-03 03:44   좋아요 0 | URL
120% 동감합니다.

드팀전 2008-08-02 15:44   좋아요 0 | URL
반미주의는 바보들의 진보주의다..라는 말이 재미있군요.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무곳에나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붙이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걸로 놓치는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지..

로쟈 2008-08-02 18:01   좋아요 0 | URL
'반미=좌파'라는 프레임을 깨는 것이 좌파의 확장이 될는지, 투항이 될는지는 어조 잘 모르겠습니다. 한데, 사실 촘스키나 하워드 진을 '반미 좌파'라고 분류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구요(미국 정부를 비판하지만 그들은 미국을 사랑하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24   좋아요 0 | URL
이 양반이 1990년대 초에 쓴 <자유의 모험>을 봤는데 어째 좀 삐딱하고 냉소적인 거 같아요.재주는 많은데 경박한 것 같기도 하고...<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은 주로 진보파들을 때렸기 때문인지 당시 황혼기의 사르트르가 격하게 욕했다고 하더군요.

로쟈 2008-08-02 17:59   좋아요 0 | URL
외모도 출중한 테레비-지식인이죠. 다만 '친미 좌파'라는 포지션이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1   좋아요 0 | URL
이제 세월의 심술이 그의 외모에 나타나더군요.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 우리나라에 막 주간 조선에 번역되던 때의 사진은 배우 같더군요.그때가 1978년인데...물론 저는 그 당시의 주간 조선을 10여년 전 헌책방에서 1년치를 구했어요.혹 제 나이에 대해 오해하실까봐 알려드려요.

로쟈 2008-08-02 23:4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미니멈 40대 중반이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21   좋아요 0 | URL
40대라뇨! 제 몸매와 목소리가 20대인데...얼굴은 10대! 보약을 잘 못 먹은 10대처럼 생겼지만요.어우...사진을 공개하든지 해야지 안되겠어요.

로쟈 2008-08-03 20:29   좋아요 0 | URL
'미니멈'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40   좋아요 0 | URL
헤헤헤...그냥 화끈하게 직설적으로 20대라고 해주시면 안되나요?미니멈하면서 애매하게 하는 것보단요.

로쟈 2008-08-03 22:47   좋아요 0 | URL
화끈하게는 50대 후반이신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3:21   좋아요 0 | URL
으....

2008-08-03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4 22:53   좋아요 0 | URL
헤헤헤...
 

교수신문에서 좀 지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중국 칭화대에서 공자철학을 강의하는 서양인 교수에 관한 것이다. '화제'거리여서 옮겨놓는 건 아니고(하지만 한국대학에서 퇴계철학을 강의하는 벽안의 교수를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롭긴 하다), 기사 중에 한국 기독교인을 가리켜 '유교적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는 대목이 눈에 띄어서이다(사실 한국 기독교인들도 제사를 거부하는 것 말고는 유교적 인간 아닌가?). 참고할 만한 관련서들을 잠시 생각해본다(찾아보니 '윤동주 시에 나타난 유교적 기독교'를 다룬 논문도 눈에 띈다).  

교수신문(08. 07. 07) 碧眼의 이방인은 ‘유교’를 어떻게 가르칠까

중국대학에서 서양인이 공자철학을 중국인에게 가르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다니엘 벨 (Daniel A. Bell) 중국 칭화대학 교수가 종종 듣는 말이다. 유교의 종주국에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유교를 강의한다는 것은 마치 뭍에 사는 토끼가 물에 사는 고기에게 어떻게 헤엄치는가를 가르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을 벌써 4년째 하고 있다.

 

캐나다인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하던 벨 교수는 운명을 바꾸는 만남에 마주쳤다. 바로 중국인 부인을 만난 것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중국에 ‘올인’했다. 그 운명적인 만남을 순순히 받아들인 벨 교수는 그 후로 중국에 와서 중국인 부모님을 한 집에 모시고 살고 있다. 공자의 가르침대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려는 것이다. 그랬더니 정말 복도 굴러왔다. 그는 방문교수 신분으로 왔지만, 현재 중국 명문 칭화대학 정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교수직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박사학생 지도교수’ 자리에까지 빠르게 승진했다.

벨 교수는 칭화대학이 문화혁명(1966~1976)이후 처음으로 인문학부에 채용된 외국인 교수다. 그는 또한 중국지도층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공산당간부 양성의 산실인 공산당중앙학교에서 열린 비공개회의에 초대받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紙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중국에 온 이후 발견한 서양인의 중국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예를 들면 “중국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전제주의 국가가 아니다. 대부분 서양국가의 중국에 대한 생각과 정책은 중국에 대한 편견에 기인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비하면 중국은 학문자유의 천국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이런 ‘중국옹호’의 발언과 그가 중국인 부인을 둔 사실, 그리고 중국에서 받는 특별한 대접 때문에 많은 서양 사람들은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공산당에게 세뇌당한 줄 알아요,” 그가 칭화대 부근 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말했다.

사실 그는 중국에 대해 좋은 점만을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중국에 대한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중국정부가 1989년 ‘천안문사태’의 희생자들에게 사과를 표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대부분의 중국인은 그 때 중국정부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그처럼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정부가 좀 더 ‘안정적이고 합법적이게’(stable and legitimate) 되면 언젠가는 사과를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하버드대 유교학자 뚜웨이밍(杜維明) 교수는 한 강의 시간에서 유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동양의 중국, 한국, 일본 중 한국의 유교전통이 종주국 중국보다 현재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유교학자로서 다니엘 벨 교수 역시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개화기때 한반도에서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지식인들은 다름 아닌 유교학자들이었다. 서양학자들은 이들을 ‘유교적 기독교인’(Confucian Christian)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머리에 갓을 쓰고 않아 성경책을 읽었고, 교회에 가서는 남녀가 따로 앉아서 찬송가를 불렀다. 기독교인인지만 생활방식은 여전히 유교적인 모습을 유지한 것이다. 벨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유교적 기독교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유교사상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역할도 했다고 분석했다. “유교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대학교수의 사회적 권위가 큽니다. 그들의 말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독재 시절에 이에 반대하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성명은 당시 정부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문화혁명뒤 유교가 많이 천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르크스 사상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와 지식인들도 새로운 눈으로 유교를 바라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벨 교수가 말했다.(써니 리 / 중국통신원·베이징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08. 08. 01.

P.S. 나는 한국인을 이해하는 키워드, 혹은 '문화적 DNA'가 '유교' '기독교' '한국전쟁'이 아닐까 싶었는데(10가지 코드는 강준만의 <한국인 코드> 참조), '유교적 기독교인'이란 개념 덕분에, 둘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런 관심 때문에 언제부턴가 읽어보려고 하는 책은 '벽안'의 도이힐러 교수가 쓴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과 정수복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 2007)이다. 리뷰들이야 여럿 읽어뒀지만 아무래도 직접 통독해봐야 생각할 거리들을 더 얻을 수 있을 듯하다...

P.S.2. 말이 나온 김에 도이힐러 교수의 관련기사도 옮겨놓는다. 한국학 전공자인지라 방한이 이례적인 건 아니고 작년 가을에도 한국을 찾았었다('한국사회의 기독교적 변환'이란 책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곧 이명박 장로님이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할 텐데 말이다).

경향신문(07. 10. 11) 도히힐러 교수 “한국인들 한국학을 몰라”…‘지원 인색’ 꼬집어

“한국에서는 아직 ‘한국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72)는 11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린 ‘도이힐러 교수와 함께 한국학 40년을 회고한다’ 토론회에서 한국학의 국제화 수준을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한국학이 개설된 외국 대학에도 담당교수 1명이 어학, 역사, 문학, 경제를 한꺼번에 가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한국학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특히 국내 한국 관련 학문 연구자의 의사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 학계에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연구자가 거의 없어 외국연구자와 토론하는 데 애를 먹는 일이 많다”고 지적하고 “한국사를 연구하더라도 국제화를 추구한다면 의사소통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출신인 도이힐러 교수는 40년 전인 하버드대 유학시절 한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1967년 한국 관련 자료를 얻기 위해 서울대 규장각을 찾아왔다. 도이힐러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구한말 외교사를 공부하던 중 서울대에 개항과 관련된 사료가 풍부하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67년에 무작정 한국을 찾아왔다”고 회고했다. 이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국학의 매력에 푹 빠져든 도이힐러 교수는 73년에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고, 75년에 스위스 취리히대 한국학 교수로 임용됐다. 88년 한국학 연구센터가 있던 런던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한국학의 불모지인 유럽에 한국학의 뿌리를 내렸다.

그는 92년 자신의 한국학 연구를 결산한 ‘한국의 유교적 변환: 사회와 이데올로기연구(하버드대 출판부)’를 발간, 한국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런던대 퇴임 후에도 취리히로 돌아가 한국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내 젊음을 바친 한국학을 더 파고들겠다”면서 “조선시대 사회사를 대한 논문도 곧 집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강병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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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25   좋아요 0 | URL
도이힐러 여사는 2003년 경에도 우리나라에 왔죠.한국남자와 결혼했는데 사별했고 한국에 올땐 시댁을 방문한다고 합니다.그런데 인터뷰 기사를 보면 조선유교에 대해 너무 호의적인 해석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마치 계몽사상 이전 유럽 지식인들이 중국의 관료정치인들을 칭찬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 같았어요.예전에 김용옥 씨가 "서양인이 어떻게 한문문헌을 잘 해독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지 말라.우리나라 학자보다 한문해석 실력이 더 뛰어난 이도 많다."고 했죠.그리고 도서관에 가시면 이번에 개정판 나온 이인화<머나먼 제국>뒤에 서평으로 나온 도날드 베이커(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교수)의 글을 읽어보세요.그는 천주교를 수용한 조선 후기 유학자를 연구한 학자입니다.티비에서 보기도 했는데 정말 한국어를 잘 합니다.

로쟈 2008-08-02 20:15   좋아요 0 | URL
한국인이 서양학문을 하는 것보다 두 배는 어려울 텐데(적어도 우리는 무얼 읽어야 하는지는 알고 시작하지요), 여하튼 배울 점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3   좋아요 0 | URL
미국인 중 한국학하는 이들 중에선 평화봉사단 출신이 많더군요.
 

부고기사를 옮기는 일이 드물지 않아졌다. 다 아는 소식이지만 오늘 새벽에 소설가 이청준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는 이미 접했기 때문에 의외의 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데뷔작 제목처럼 가뿐하게 '퇴원'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후배 소설가는 문상을 다녀왔다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나는 개인적인 인연을 따로 갖고 있지는 않아서 다만 한 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빌 따름이다. 지금쯤 태평양 항로 어디메쯤 가고 계실까?.. 고인과 막역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추모의 글도 같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7. 31) '한국 현대소설’ 개척한 4·19세대 대표작가

작가 이청준은 삶을 캄캄한 밤에 산길을 더듬어가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도정에서 문학은 ‘방금 누가 지나갔으니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이란다. 그가 평생을 바친 ‘소설이란 거짓말’은 그 말의 가치를 믿음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안고 남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위무, 인생의 부끄러운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는 씻김질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지적인 작가, 서구 장르인 소설을 한국화시킨 작가 이청준의 타계 소식은 문단과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이른 나이인 데다 투병 중에도 쓰던 소설을 마무리한 그의 창작혼이 더욱 애틋함을 자아냈다. 지난해 폐암 말기 소식이 전해진 뒤 1년여 투병해오던 그는 항암치료를 중단한 뒤 급속히 병세가 악화됐다.

최인훈, 김승옥과 더불어 4·19세대 작가로 출발한 이청준은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억압된 시대를 살아오면서 비인간적인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한국적 모더니즘의 언어로 수행했다. 100쇄를 돌파해 현대문학의 금자탑을 쌓은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매잡이’ ‘이어도’ ‘소문의 벽’ ‘비화밀교’ ‘서편제’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현실비판은 대상과 동일한 차원에 서는 법 없이 그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삶의 원형질에 대한 탐구로 승화됐다. 그런 관심은 만년에 신화의 세계로 확대됐다. 그는 등단 초기 서너 군데 잡지에 관여하고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잠시 적을 둔 것을 제외하고는 글쓰기에만 골몰했다.

2003년 장편소설 12권, 중·단편 10권 등 25권짜리 전집(열림원)이 나온 뒤로도 장편 ‘신화를 삼킨 섬’,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등 여러 권의 책을 발표했다. “벼랑에 서있다는 각오로 쓴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장인정신이 빚어낸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집이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 ‘당신들의 천국’이다. 1976년 발표돼 2003년 100쇄를 돌파한 이 책은 소록도 나환자촌을 배경으로 권력의 문제를 추적한다. 주인공 조백헌 원장은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매립공사를 강행하지만 환자들의 불신과 그로 인한 내적 방황을 겪는다. 권력은 그것을 쥔 자를 끝없이 시험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작품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그의 소설은 현실을 곧바로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선학동 나그네’, 역시 영화 ‘밀양’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에서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가해자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을 그린 데는 제5공화국과 광주항쟁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있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현실에 패배한 사람들이 억압하는 현실과 상처받는 개인이라는 이항대립을 초월해 새로운 억압으로 추락하지 않는 이념의 질서를 창조하는 모색 과정”을 이청준 소설의 특징으로 든다. 실패하고 갈구하는 개인, 탐색과 추리 기법, 액자구조, 다원적 시점, 열린 결말 등은 그런 문학적 목표에 도달하는 문학적 장치다. 권오룡 한국교원대 교수 역시 “인정이냐, 부정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이청준 문학의 애매성은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모순의 긴장을 끝까지 견뎌내는 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세계에 대한 비극적 상황인식, 실패자에 대한 공감은 그의 가족사와 분리되지 않는다. 좌익활동을 했던 아버지는 작가가 여덟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장남이던 형님도 일찍 유명을 달리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자연스레 어머니와 가족, 일가친척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것이 부담스러워 오히려 모두가 바라던 법대가 아닌 문리대를 택하고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그의 삶의 원형이자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여긴 작품이 단편 ‘눈길’이다.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고향집에서 대처로 공부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마지막 잠을 재우고 다음날 새벽, 떠나보낸 뒤 눈위에 찍힌 자식의 발자국을 되밟아 돌아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세상 정처없는 것들의 가엾음을 드러낸다. 광주 서중에 입학하면서 외사촌 누이집에 더부살이하게 됐을 때 어머니가 손수 갯벌에서 잡아온 게를 망태기에 넣어 들려보냈는데 그것이 썩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의 심정 역시 작가가 즐겨 들려주던 유년기의 한 자락이다.

남도의 정서는 이청준의 삶과 문학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남도 판소리와 문인화의 현묘한 경지는 ‘이어도’나 ‘서편제’의 신비로우면서 승화된 한의 정서로 고즈넉하게 되살아났다.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던 작가는 임권택 감독, 김선두 화백 등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나누면서 삶의 호사와 여유를 누렸다.

이청준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과 자상한 배려를 잊지 못한다. 책이 나오면 막내 편집자까지 꼭 밥상에 초대했고 자신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앞에서 늘 겸손했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꼭 들려있었고 여행을 떠날 때면 배낭에 술병을 반드시 챙겼다. 철저하면서 조용하고 익살스러웠으며, 평생 동지로 지낸 문학과지성사 동인들을 만날 때 빼고는 문단 나들이가 잦지 않았다.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석양녘 장 보따리 싸는 심정”이라고 했던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이청준 없는 한국문학, 예정된 일이었지만 슬프다.(한윤정기자)

경향신문(08. 07. 31) 그대, 이제 그대의 천국으로 가시는가

쉬엄쉬엄 왔는데도 숨차고 다리 후들거려 ㅅ의료원 영안실 빈 의자에 잠시 앉아있자니 뒤에서 들리는 소리.

-김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돌아보니 그대가 아니겠는가.

-웬일이라니, 그대 장례식에 오지 않았겠소. 그런데 그대야말로 웬일이오? 이렇게 나와도 괜찮겠소?

-잠시 나왔을 뿐이외다. 뭐 별일 있겠어요?



그렇다. 무슨 별일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는 평소처럼 낮은 소리로 또 눈짓으로 이런저런 말을 나눴소. 요즘 날씨란 장마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둥, 황소도 병에 걸려 자빠지기 일쑤라는 둥, 그야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는 둥, 기름 값이 천정부지라는 둥, 이승엽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는 둥.

이 평소처럼 낮은 소리, 낯익은 눈짓 속에 있자니 어느새 숨결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후들거리던 다리도 거짓말처럼 멀쩡해지지 않겠는가. 대체 이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이젠 일어설 수조차 있었소. 뿐이랴. 능히 걸을 수조차 있었소.

그대의 손에 이끌려 영안실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워라. 그대는 어느덧, 거짓말처럼 순백의 꽃밭 속 검은 사진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소. 또 놀라워라. 내가 향을 피워도 아무 말 없었소. 다시 또 놀라워라. 절을 두 번씩이나 해도 모른 척 하지 않겠는가. 그대 이래도 되는 일인가.

하릴 없이 쫓기듯 물러날 수밖에.

밖에는 그대를 보내는 친지들 꿀벌처럼 모여 웅웅거리고 있었소. 생수에, 깡통 맥주에 취해 무성히 그대 흉보기에 정신들이 없어 보였소. 옆에서 누가 듣는 줄도 모를 만큼 신바람이 났소.

이 무구한 자기기만, 이 천진한 인간다움.

나도 신바람이 날 수밖에.

대서양 해안까지 흘러간 제주도 문주란 씨앗을 소재로 소설 한 편 쓰기 위해 멕시코까지 찾아간 이 잘난 소설쟁이가 귀국할 때의 일. 금연의 비행기 속에서 위스키 한 병을 몽땅 비웠다 하오. 이 굉장한 애연가에겐 그 길이 상책이었으니까. 인천공항에 내려도 끄떡없었다고 그는 큰소리쳤다 라고. 주석에서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 얘기를 신바람 나게 했소.

그러자 누군가 대번에 항의했소. 왈, 반만 맞고 반은 틀렸소 라고. 이 목격자의 증언은 이러했소. 인천공항에 내린 이 잘난 소설쟁이는 가방 찾을 생각도 까맣게 잊고 호기롭게 리무진에 올랐다 라고.

나도 어찌 쉽사리 질까 보냐. 재빨리 이렇게 대들었소. 그래도 그는 귀국 직후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2005)를 썼다 라고. 또 덧붙였소. 이 소설쟁이는 소주에 취하기만 하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기 엉터리 평론가가 있다!”라고 외치기 일쑤였다고.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그는, 키 큰 평론가 김현의 표현으로 하면 제 어미를 팔아 ‘눈길’(1977)을 썼고, ‘자생적 운명’을 다룬 천금 무게의 ‘당신들의 천국’(1976)을 썼소. 조국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다시 그곳을 잊어야 했다’(2007)를 그만이 쓸 수 있었소.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4·3 사건의 합동위령제를 다룬 대작 ‘신화를 삼킨 섬’(2003)을 썼소. 그것은 다름 아닌 이상욱(‘당신들의 천국’)이 정요섭으로 변장하여 제주도로 간 얘기에 다름 아닌 것.

민족적 악업에 대한 자기 정화력이란 무엇이며 치유의 가능성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 묻고, 있다 라고 스스로 우기는 이 야생 당나귀 모양 고집스러운 키 큰 소설쟁이 이청준이여, 우리의 국민작가 이청준 사백이여.(김윤식 |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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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김윤식 선생다운 글쓰기에 그만 슬며시 얼굴 위로 미소가 찾아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장례식장에서 있을 법한, 그런 미소였습니다.

로쟈 2008-08-01 12:20   좋아요 0 | URL
이청준의 '축제'도 떠올리게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