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월드컵 기간이라 출판계와 서점계가 불황이라고 하는데, 그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론 주변에 쌓아놓고 있는 책들의 높이가 가속도가 붙은 듯이 올라가고 있다. 어제오늘만 하더라도 수중에 넣은 책이 열댓 권이 넘으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거기에 포핟돼 있는 책이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책갈피, 2010)이다. 전체 4부작 가운데, 3권이 이번에 나왔다.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시학사, 2001)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자세한 평전이어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토니 클리프는 트로츠키 전기 4부작도 갖고 있다). 일단은 어떤 책인지 소개기사를 참고하도록 한다.   

 

세계일보(10. 06. 26) 평등국가 꿈꾼 이상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최초로 국가 체제에 적용됐던 소련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혁명 전후의 러시아나 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가급적 레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스탈린주의가 레닌을 계승한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레닌은 스탈린의 폭압적 정권 쟁취를 비판했고, 스탈린 같은 폭압적 지배계급이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노동자 계급이 평등하게 국가를 건설해 이상 사회를 펼치는 것을 꿈꾼 이상주의자였다.”

레닌은 죽기 전 스탈린과 끊임없는 노선 투쟁을 벌였다. 레닌은 노농감찰부를 당 기구에 구성해 당의 관료화와 당의 지배 계급화를 저지하려 애썼다. 레닌의 머리에는 ‘옛 소련식 팽창주의’는 없었다. 동유럽에 폭압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하고 확산하려는 정책은 아니었다. 레닌은 불가피한 경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스탈린처럼 탱크를 보내 동유럽을 공산화한다는 야심은 없었다.

저자는 “레닌은 진정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진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소련은 사회주의 탈을 쓴 국가자본주의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닌 역시 노동자들이 단결해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필요하다면 폭력을 수반해야한다는 국가혁명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레닌은 스탈린과는 분명히 다른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꿈꿨지만 건설 방법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동안 출간된 많은 레닌 평전들은 레닌을 당대 현실을 초월한 성인처럼 묘사하고 그의 말과 글을 종교 경전이나 교리처럼 떠받들고 있지만 실은 대부분 아전인수격 해석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 책이 레닌의 장점과 정치적 위대성을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그의 오류와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저자의 이 같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정승욱 기자)  

10. 06. 25. 

P.S. '레닌 읽기'에 대해선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기에 따로 적지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읽고 싶지만 당장은 계획일 뿐이다. 그럼에도 토니 클리프판 레닌 평전의 마지막 권 <볼셰비키와 세계혁명>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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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6-26 14:54   좋아요 0 | URL
토니 클리프를 그냥 저널리스트라고만 소개하다니 좀 이상하네요.유명한 트로츠키 주의자라고 소개해야 하는데...아마 기자가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나봐요.

로쟈 2010-06-26 15:27   좋아요 0 | URL
저자 소개에 '저술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돼 있어요. 저도 '트로츠키주의자'로 알고 있었는데,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정설 트로츠키주의'와는 결별한 걸로 돼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6 21:42   좋아요 0 | URL
클리프의 저서 중 <소련국가자본주의>라는 책이 있는데 트로츠키의 소련체제 해석론과 공통점이 있느냐 여부로 이런 저런 논쟁이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정성진 씨가 이 분야의 전문가인데 정 씨 자신이 클리프가 주도한 사회주의노동당 계열이라서...우리나라 트로츠키 주의자들도 이쪽 계열이 강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2:36   좋아요 0 | URL
공산주의자들이 이 땅에 와서 지금을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할듯 싶습니다.
완전한 평등이라...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 몰랐던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 단 한번이라도 성공한적 있었던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듯...

로쟈 2010-06-27 15:11   좋아요 0 | URL
지금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중요한 것이죠.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구요. '본성'을 고려한 다윈주의 좌파적 기획도 있을 테고, 본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획도 가능하겠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9:3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댓글은 항상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돈 후안 읽기'나 '톨스토이 중단편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으려다가 문득 6월 25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한국전쟁 읽기'로 방향을 튼다.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서들이 여러 권 더 출간됐지만 오히려 작년보다 못한 듯도 싶다.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아직도 완역되지 않는 것이다. 내달에는 그의 새로운 책 <한국전쟁>이 출간된다. 얇은 입문서인 듯한데, 그거라도 빨리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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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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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5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은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후에 일이 있어서 오전에 바쁘게 작성하여 보낸 원고인데, 매번 턱걸이하는 기분이 든다. '권장도서' 문제를 빌미 삼아 '몰상식한' 현실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적었다.     

경향신문(10. 06. 22) [문화와 세상]‘유해한 책’ 과 ‘유해한 현실’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들이 쓴 <교양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다 보니 ‘읽어서는 안되는 책 15권’이란 항목이 눈에 띈다. 일본에도 우리처럼 아직 ‘불온도서’라는 게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사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따로 골라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목록은 거꾸로 ‘한번 읽을 테면 읽어보라’고 광고하는 의미도 갖는다. 2008년에 국방부 불온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예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금지한 책의 목록에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셀린의 <밤 끝으로의 여행>,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포함돼 있다. 읽다 보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게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대한 평이고, 순진한 영혼을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는 책이라는 게 <차라투스트라…>를 읽지 말도록 권유하는 이유다.

그런 금지도서 목록과 반대되는 것이 권장도서 목록이다. 각 대학별로 제시하는 필독 고전목록 외에도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 목록을 들여다보면 문득 권장도서 목록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일단은 책이 너무 많으며, 따라서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다. 다 읽을 수 없기에 가려 읽어야 하고, 가려 읽기 위해서는 일종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믿음이 거기에 뒤따른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청소년에게 적합한 건 아니라는 판단에 동의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에서 등장인물인 술집 작부 백화의 “내 배 위로 연대 병력이 지나갔어”라는 대사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권장도서로는 불가하다는 주장과 마주하게 되면 ‘읽을 만한 책’의 기준에 합의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하더라도 기준에 따라서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에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반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청소년을 여전히 자율적인 주체라기보다는 훈육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문제다. 어느 정도의 독서력과 분별력을 갖춘 청소년이라면 어떤 책을 읽을지 말지는 스스로 판단하여 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권장도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행여 그들이 ‘전염병’에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항균실’에 감금해놓기보다는 면역을 키워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권장도서 목록 정도 가지고 과연 온전한 지도와 통제가 가능한지가 문제다. 과거 노출 수위가 높은 영화 장면들을 ‘가위질’하고 상영하던 것처럼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대사와 장면을 삭제한 ‘안전한’ 문학작품만 청소년들에게 읽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권장도서 목록에 빠져 있다고 청소년들은 <삼포 가는 길>을 안 읽게 되는 것일까?

아니,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해한 책’ 이전에 ‘유해한 현실’이다. 사실 술집 작부의 말보다도 청소년들에게 더 유해한 것은 관행적으로 향응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스폰서 검사’ 스캔들이지 않을까? 무얼 보고 배우라는 것인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안보의식을 고취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전쟁 시나리오나 공모한다는 서울시의 행태는 또 뭔가? 이런 ‘몰상식한’ 현실을 방기한 채로 과연 ‘청소년 권장도서’의 의의를 옹호할 수 있을까? 청소년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위해서도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권장할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10. 06. 21. 

P.S. 기사를 옮겨놓기 위해 검색을 하는데, 내일자 '책읽는 경향'에서 다루는 책이 <로쟈의 인문학 서재>다. 반갑기도 하고 일견 놀랍기도 한 마음에 이 또한 옮겨놓는다(그래도 '유해한 책'은 아닌가 보다).  

경향신문(10. 06. 22) [책읽는 경향]로쟈의 인문학 서재 

반복하자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 ESR가 우리의 존재 근거이자 원리이다. 인간이 ‘의미의 질병’을 앓는 동물인 것은, 그러한 ESR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이걸 우리의 대뇌가 급속하게, 불완전하게 진화한 결과로 본다.

니체의 표현대로, 우리의 위장을 닮은 대뇌가 해야 할 일은 위장과 마찬가지로 소화 작용일 뿐이다. 그러한 작용으로써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기운 나게 하는 것이 본분이지만, 이 대뇌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소화해낼 수 없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What’s it all about?”(이게 다 무슨 수작일까? 혹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이 그 물음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에 대한 물음이고 요구이다. (203쪽)

지금 이 대목에서 니체를 읽어주고 있는 로쟈 선생이 환기해주는 사실은 인간이란 먹고, 살고, 낳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살고 다음 세대에게 그저 넘겨주는 역할만 하면 되는 ‘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먹고 살고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사실은 감동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 안도감이 섞인 감동을, 우리는 동물처럼 단순한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 자부심이 섞인 불편함을.(권해진 | 미래의창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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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보 2010-06-2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통해 니체,데리다,지젝 읽기가 좀더 명료해졌습니다.
다음 책 출간을 고대하는 독자로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로쟈 2010-06-22 17:25   좋아요 0 | URL
저자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2010-06-2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 두번째 이야기를 일부 발췌해놓는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5668 에서 읽어보실수 있다. 제목은 '사랑의 길'이라고 붙어 있는데 이야기의 빌미가 된 뤼스 이리가레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연마금속을 찾으러’ 가는 여정도 물론 ‘막연한’ 목적은 품고 있다. 나는 지난주에 이리가레의 <사랑의 길>(동문선, 2009)을 구입했고, 어제는 도서관에서 영역본(The Way of Love)도 대출했다. 그것이 시작이자 종점이 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2002년에 나온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리가레의 저작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인데, 이리가레는 서문에서 책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특히 어떤 식의 언어 사용을 통해 우리 사이의 사랑의 실천으로 존재할 수 있거나 존재해야 할 것을 예견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이의 사랑의 지혜를 준비하는 것인데, 이 영역은 서구철학이 스스로를 정의해 왔던 바의 지혜, 특히 정신적 지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만큼 핵심적인 영역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사이의 사랑의 지혜(wisdom of love between us)’를 준비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알랭 핑켈크로트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 ‘사랑의 지혜’는 ‘철학’(=필로소피아)의 어원이 되는 ‘지혜의 사랑’, ‘지혜에 대한 사랑’을 뒤집어 놓은 거울상이다. 즉, 그것은 철학의 거울상이자 ‘다른 철학’이다.(...)  

흠, ‘무릎과 무릎 사이’로 시선을 모아놓고 ‘다른 철학’으로의 여정을 떠들게 되면 어디서 ‘연장’이나 날아오는 게 아닐까? 아직은 ‘우리가 남이가’ 따위의 호소도 먹히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이’는 아직 ‘냉정한’ 사이다. 그러니 나는 뭔가를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무엇에 대해서? 가슴에 대해서! ‘가슴과 가슴 사이’에 ‘스페큘럼’을 갖다 대지는 않겠지만, 시선이 꽂히게 한다는 점에서는 ‘무릎과 무릎 사이’와 닮았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도 여성의 가슴은 엉덩이를 모방해 진화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 가슴과 가슴 사이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클리비지(cleavage)’다. 화학에서의 ‘분열’, 생물학에서의 ‘난할(卵割)’을 뜻하기도 하므로 한국어 ‘가슴골’보다는 용례가 다양하고 고상하다. 고상하다?   



고등학교 때인가 ‘cleavage’란 단어를 처음 보고 ‘감동’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런 ‘사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점(사실대로 말하면 그 ‘사이’에 주목한 것은 ‘cleavage’란 단어를 접한 이후다), 그리고 둘째는 전혀 야하지 않다는 점. ‘야하지 않다’는 인상이야 생소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슴골’과 비교할 때 적어도 ‘노골적’이진 않다. 이 여성적 ‘가슴골’과 대비되는 것은 무엇일까? 남성의 ‘등판’ 혹은 ‘등짝’이 아닐까? 정색하고 말하자면, 나는 ‘남성적 주체성’과 ‘여성적 상호주체성’의 대비가 이 ‘등판’과 ‘가슴골’을 통해서 신체적으로 구현된다고까지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10.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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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 2010-06-2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비지란 말이 어느새 많이 사용되는데.. 앙가슴이라는 우리 말도 있습니다. 전 클레비지 보다 앙가슴쪽이 더 어감이 좋더군요. (그런데 뭔가 불안한 느낌은...-.-;;; ) 그냥 순수하게 말입니다..

로쟈 2010-06-21 20:32   좋아요 0 | URL
'클레비지'라고 읽으시는군요. 저도 그렇게 적었는데, 편집자가 '클리비지'라고 고쳐놓았어요. 발음이 그렇더라구요. '앙가슴'은 전혀 뜻이 와닿지 않는데요.^^;

조아 2010-06-21 23:13   좋아요 0 | URL
사전적 의미를 보면, 두 젖 사이의 가운데 이니 클리비지와 같은 부분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표현은 아닌것 같지만 서도요.

그래도. 중학생시절 읽던 판타지소설에서 나온 뽀얀 앙가슴이라는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은 것을 보면.. .. 뭐 때가 그런 떄여서 겠지요...;;

푸른바다 2010-06-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eavage에 이런 다양한 뜻이 있는 건 잘 몰랐군요.^^ Cleavage는 광물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쪼개지는 현상을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로쟈 2010-06-21 20:33   좋아요 0 | URL
네, 어원이 쪼개지다 쪽 같아요. 그런 의미가 확장돼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성적이란 인상을 주나 봅니다...

hnine 2010-06-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eavage는 수정난에서 일어나는 '난할'을 뜻하기도 합니다 ^^

로쟈 2010-06-21 23: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더군요. 저도 본문에 적었습니다.^^

hnine 2010-06-22 08:15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그렇네요 ^^
지금 로쟈님 동영상 강의 들으면서 다른 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주로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잉여 공간,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네요^^
이리가레의 책 표지는 심장 인가봐요.

로쟈 2010-06-22 15:48   좋아요 0 | URL
네, 표지가 의미심장합니다.^^
 

지난주에 나온 가장 예기찮은 책은 박홍규 교수의 '루이스 멈퍼드 읽기'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와 번역서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이다.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 문명비평가의 전모를 소개하고 20대에 출간한 그의 처녀작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인데, 멈퍼드(멈포드)가 자칭한 '제너럴리스트'란 말은 박홍규 교수에게도 더 없이 잘 적용될 듯싶다. 

  

멈퍼드는 '스페셜리스트(전문가)'와 대비하여 '제너럴리스트'를 "개별적인 부분을 상세히 연구하기보다 그러한 파편들을 하나의 질서 있고 의미 있는 패턴 속에 통합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사람"(<유토피아 이야기>, 17쪽)이라고 정의한다. 박 교수는 이를 '전인(全人)'이란 말로 옮겼는데, 그 자신이 진정한 전인이자 우리시대의 '르네상스인'이라고 해야겠다(대표적인 다작 저술가인 저자는 최근 들어 매년 5권 이상의 저/역서를 출간하고 있는데, 오직 강준만 교수만이 이에 비교될 수 있다).  

자유와 자치, 자연이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가치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박홍규 교수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멈퍼드 또한 '소박주의자'에 '아나키스트'였다고 평한다. 멈퍼드는 어떤 인물이었나?  

루이스 멈퍼드(1895-1990)의 94년 긴 생애는 20세기와 거의 겹친다. 기술적 전문가들에 의한 거대한 물질 만능주의 시대인 20세기에 그들이 섬긴 거대한 권력, 도시, 기계를 비판하고 소박한 자유, 자치, 자연을 존중하는 르네상스적 전인으로서 살다 간 20세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비평가이며 지성인이자 지식인이고 휴머니스트였던 사람이 멈퍼드였다.(<메트로폴리탄 게릴라>, 27쪽) 

"그런 멈퍼드의 삶과 사상을 검토하여 우리의 지적 스승으로 삼고자 이 글을 쓴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멈퍼드는 60년에 걸쳐서 28권의 저작을 남기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연대별 주제별로 재구성하여 멈퍼드의 사상을 조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고정적 직업도 갖지 않았지만 삶과 앎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지적 거인이자 '가운을 걸치지 않은 철학자'에 대한 경애감이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책이다. 덕분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편하게 멈퍼드의 '게릴라전'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독자의 몫은 이제 그 게릴라전에 '동참'하는 것일까?).     

'르네상스적 제너럴리스트'답게 전방위적 저술을 남기고 있지만 멈퍼드의 저작 목록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내겐 <허먼 멜빌>(1929)이다. <모비딕>(1851)의 작가, 그 멜빌 말이다.  

멈퍼드 시대까지도 멜빌은 해양소설을 쓴 비주류 작가로 낮게 평가되었으나 멈퍼드는 멜빌의 개성과 그 발전에 대해 흥미를 기울여 그를 단테와 같은 도덕적 철학자로 평가했다. 멈퍼드는 특히 <모비딕>을 <햄릿>이나 <신곡>과 같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147쪽) 

 

멈퍼드가 쓴 <허먼 멜빌>은 300쪽이 넘는 본량의 본격적인 작가론인데, <모비딕> 읽기를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터라 관심을 갖게 된다. 김석희본도 출간된 김에 내년에는 <모비딕>에 대한 강의도 기획하려고 한다(<모비딕>과 멜빌의 책 몇 권을 바로 주문했다). 오래 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와 멜빌을 비교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내년에는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1977년에 멜빌 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을 정도로 멈퍼드의 멜빌 연구는 높이 평가됐다고 하며, 멜빌과 함께 그가 찬양한 작가가 <악령>의 도스토예프스키였다고(토마스 만의 <마의 산>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모비딕> 얘기가 나오니까 떠올리게 되는 작가는 알베르 카뮈다. 그건 지난주에 <페스트>에 대한 강의를 한 때문인데, 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카뮈는 멜빌의 <모디딕>을 사숙한 걸로 돼 있다. "멜빌은 카뮈의 창조를 상징과 신화의 차원으로 승격시키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었다는 게 김화영 교수의 설명이다. <모비딕>을 정독하고 노트했다는 내용은 <작가수첩1>에 들어 있으며, 카뮈의 '허먼 멜빌'이란 짧은 작가론은 <스웨덴연설/문학비평>에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론 이번에 다시 읽으며 <페스트>가 '카뮈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생각이 들었다(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카뮈는 이반 역을 맡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자세한 건 방학때 쓰고자 하는 <페스트>론에 적어두려고 한다. 아무려나 허먼 멜빌을 매개로 루이스 멈퍼드와 알베르 카뮈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오늘의 발견이다... 

10.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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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이스 멈포드와 유토피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19 00:40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와 박홍규 교수의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 출간 기념으로 박홍규 교수의 대담 자리를 갖게 됐다. 도서출판 텍스트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일시는 8월 24일(화) 저녁 7시 30분이고, 장소는 청어람아카데미 지하소강당이다. 알라딘 이벤트는 http://blog.aladdin.co.kr/culture/3896091 참조.
 
 
노이에자이트 2010-06-2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선상반란,특히 노예반란에 관심이 많아 멜빌의 중편'베니토 세레뇨'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추리소설로도 최고입니다.그런데 요즘 번역본이 안 나오더군요.

로쟈 2010-06-20 22:46   좋아요 0 | URL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모비딕>과 <바틀비>, <빌리버드> 정도인 듯해요...

2010-06-20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6-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석희의 새 번역본 <모비딕>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그냥 두고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화려한 일러스트가 포함되긴 했지만 저작권 문제가 없는 소설책 한권에 그토록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더군요. <모비딕> 영어 원본을 읽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읽기 어려운 영어문장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보면 <모비딕>은 제대로 된 번역본도 없었다는데 김석희 번역본은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로쟈 2010-06-21 08:22   좋아요 0 | URL
네, 목돈 들어가는 책입니다. 청소년판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기대가 되는 번역본이죠...

2010-06-2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1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