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기획회의(299호) 말미에 실린 발행인의 말은 '어느 출판평론가 이야기'란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서재에 자주 드나든 분이라면 '어느 출판평론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의 저자이면서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최성일 씨이다. 한기호 소장이 그의 책 다섯 권을 한권으로 묶어서 펴내게 된 사정을 밝히고 있는데, 마지막에 적은 "지금이라도 그가 당장 병마를 뚫고 벌떡 일어나 이 작업을 계속 진행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바람이 무망하게 돼 안타깝다.   

개인적으론 저자와 아무런 면식이 없지만 그래도 책으로는 인연이 없지 않다. 그것은 그가 2009년 여름 예스24 웹진에 실은 에밀 시오랑(Emile Cioran, 1911-1995) 리뷰에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를 언급하고 있어서이다. 시오랑을 매개로 해서 한번은 인연이 닿았던 셈이니 '최성일-시오랑-로쟈'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겠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루마니아 태생의 작가 에밀 시오랑을 리뷰하기로 마음을 다잡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시오랑의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거나 무단·중복 번역된 그의 책 대부분이 절판 상태라 그런 건 아니다. 나를 멈칫하게 한 것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 지음, 산책자, 2009) 에필로그의 한 대목이다. “국역본들을 읽고 제대로 된 시오랑론을 쓴다는 건 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나대로의 시오랑론을 꿈꾸었으되, 아직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변명이다.” (...)

내 셈법이 정확하다면, 에밀 시오랑 편은 내가 1997년 이맘때부터 쓰기 시작한 번역서를 중심으로 엮은 외국 사상가와 저자 리뷰의 195번째 글이다. (국내 저자 리뷰를 더하면 200번째가 된다.) 같은 형식의 글을 오래 썼다 하여 품질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꾸준히 써 온 덕분에 이력은 붙었다.

로쟈의 한국어판 시오랑에 대한 불신은 원제목과 동떨어진 번역서 제목에서 기인한다. 내 수중에 있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한 우리말로 옮겨진 시오랑의 책은 5종이다(편역서 한 권은 제외). 시오랑의 대표작은 얼추 번역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말 제목으로는 어떤 책이 옮겨졌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또 다양한 이름 표기 방식은 혼란을 가중한다.

“에밀 시오랑의 이름은 루마니아어 발음에 따라 ‘치오란’이라고도 표기되는데, ‘찌오런’은 조금 과도해 보인다. 루마니아 태생이긴 하지만 20대에 프랑스로 건너와 시오랑이 평생 산 곳은 파리다. 그리고 외국어로 글을 써야 하는 운명에 대해서 비통해 하긴 했지만 시오랑은 프랑스 체재 이후에 대부분의 에세이를 루마니아어가 아니라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썼다.”(<로쟈의 인문학 서재>, 406쪽)

저자의 시오랑 읽기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뒤늦게 부듯한데, 저자가 실마리로 삼고 있는 것은 수전 손택의 시오랑론이다. 이 역시 처음에 이 블로그에, 그리고 나중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은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 에필로그를 통해서야 수전 손택의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이병용·안재연 옮김, 현대미학사, 2004)에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시오랑론”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손택의 두 번째 평론집 국역본을 갖고 있지만 그런 줄 몰랐다(이 책은 손택의 이름을 수잔 손탁으로 표기). 그도 그럴 것이 손택의 에세이 표제인 「반(反)자기사고-찌오런에 관한 고찰」만으로는 이게 시오랑론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루마니아 철학자 에밀 찌오런의 경우, 우리식 표기법으로는 에밀 치오런으로 해야 하나, 그곳 원래 발음인 ‘찌’와 우리식 표기인 ‘치’의 차이가 심해 이 경우는 원음에 가깝게 표기했다.”(‘역자 후기’)

수전 손택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시오랑은 보수주의자다. 시오랑에게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은 생육 불가능의 흥미 없는 관점이다. 때문에 과격한 혁명에의 희망을 그는 성숙한 정신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시킨다. 시오랑은 “루마니아 태생인데, 그곳의 저명한 지식인 망명자 대부분이 비정치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반동적이었다.” 젊은 날 에밀 시오랑은 극작가 으젠 이오네스코, 신화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와 함께 루마니아 문학의 새로운 기대주로 여겨졌는데, 엘리아데는 파시즘에 부역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리아데는 적어도 파시즘 성향이었다.

손택은 시오랑을 높이 평가한다. 시오랑은 “진정한 역량을 지닌 현역 저술가 중에서 가장 ‘섬세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의 하나이다. 뉘앙스, 아이러니 그리고 정제(精製)는” 시오랑 사고의 본질이다. 나는 시오랑에게서 ‘역설의 중첩’을 본다. 미국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마냥 다리를 두 번 꼰달지.

그리고 이어지는 건 저자만의 시오랑 리뷰, 시오랑론이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역설의 중첩' 혹은 '복잡한 혼합체'라는 키워드로 시오랑 철학의 핵심을 간추리고 있다. 그의 솜씨를 음미해본다.  

에밀 시오랑은 고립무원의 괴팍한 사상가가 아니다. 손택은 시오랑을 키에르케고르, 니체, 비트겐슈타인로 이어지는 전통의 계승자로 본다. “이와 같은 후기 철학적인 현대적 철학 전통은 전통적인 형식의 철학적 화법은 이미 붕괴되어 없어졌다고 하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들에겐 아포리즘, 수기, 메모 같은 불완전한 화법과 우화, 시, 철학적 이야기, 비평적 해석 같은 위험을 무릅쓴 화법이 주된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수전 손택이 “단절된 논증”이라고 표현한 시오랑의 방법론은 라 로슈푸코나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객관적 아포리즘과는 구별된다.

“그의 에세이가 제공하는 것은 진단(diagnosis)이다. 정통 요법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이 하나의 객체, 하나의 사물로 바뀌어 가는 것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정신적으로 좋은 취미로 인정해준다.” 손택은 시오랑의 “목적은 진단에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격언집 <독설의 팡세>(김정숙 옮김, 문학동네, 2004)는 시오랑 철학의 핵심을 담았다. 시오랑 책의 한국어판으로는 드물게 저작권 표시란이 있는 이 책은 우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책 말미에 실린 ‘에밀 시오랑 연보’에서는 시오랑, 이오네스코, 엘리아데 세 사람을 20세기 초중반 루마니아 문학의 새로운 기대주라고 언급한다.

시오랑은 여러 개념의 정의부터 남다르다. 자유는 “건강한 자들이 늘어놓는 억지”다. 슬픔은 “어떤 불행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갈증이다.” 절망은 “대담해진 불행이며, 선동의 한 형식이고, 조심성 없는 시대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다.” 광기가 “확산의 경제학”이라면, “정신적 정상 상태는 폐쇄 경제학이며, 실패의 자급자족이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시오랑의 아포리즘은 이렇다. “예전에 철학자는 사색을 하되 글은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멸 받지는 않았다. 인간이 효율성 앞에 무릎을 꿇은 이래, 천박한 인간들은 작품이라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생산하지 않는 사람을 ‘실패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 ‘실패자’들이 바로 현자였을 것이다. 우리 시대를 구원할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현자일 것이다.”

이제 겹치는 아이러니, 수전 손택의 표현을 빌리면 “복잡한 혼합체”를 살필 순서다. “우울함이 사라질까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이, 우울함이란 치유될 수 없는 것이므로 그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크게 안도할 것이다.” 하나 더 보자. “더 큰 고통의 희망이 없다면 나는 이 순간의 고통이 영원한 것이라 해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시오랑은 80대 중반까지 삶을 이어 갔다. 세상을 비관한 그의 장수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자살의 유혹과 싸우는 데 들인 끈질긴 노력을 생각한다면, 나는 충분히 구원받고, 신(神) 속에 녹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시오랑은 자살을 반박한다. “우리의 슬픔에 그리도 기꺼이 봉사했던 이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자살은 낙관주의자의 몫이다. “그들은 낙관주의자가 더 이상 될 수 없는 낙관주의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살 이유가 없으므로 죽을 이유 또한 없다.”

산문집 <절망의 맨 끝에서>(김성기 옮김, 에디터, 1994)와 <절망의 끝에서>(김정숙 옮김, 강, 1997)는 같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중 번역된 책은 「부조리에 대한 정열」의 본문 글귀를 제목으로 삼았다. 먼저 번역된 책의 그 대목은 “절망의 절정에서”다.

<동구로 띄우는 편지>(김정숙 옮김, 이땅출판사, 1990)와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김정숙 옮김, 이땅출판사, 1992)은 한국어판 제목이 다른 같은 책이다. 앞서 나온 책은 표지에 원제를 부제목으로 썼고, 저자 이름은 ‘E.M. 치오란’으로 돼 있다. 다시 나온 책은 간기에 원제목을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저자 이름은 ‘에밀 시오랑’이다. <내 생일날의 고독>(전성자 옮김, 에디터, 1994)과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박현철 옮김, 산수야, 1995)는 다른 책이다. 앞의 책은 ‘명상집’을 내세운다. 뒤의 책은 산문집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일시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의 격언들은 사회면 기사 정도의 가치만 있을 뿐이다.”(<독설의 팡세>에서)

11. 07. 07. 

P.S.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의 미덕은 국내 소개된 저작의 목록을 거의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인데, 시오랑의 경우엔 중복을 포함해 7권이 나열돼 있다(나는 모두를 갖고 있다). 그중 <내 생일날의 고독>은 이번에 찾아보니 원제에 따라 <태어난 것의 잘못에 대하여>(실험출판사, 1981)로 먼저 소개된 적이 있다. 같은 역자의 번역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구할 수 있는 시오랑의 책은 한권도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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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1-07-0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최성일씨 돌아가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가 유작이 되겠군요.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는 쾌유기념 판매때 구입해놓긴 했는데요. 참 열정적이고 독특한 작업을 하신게 아닌가 싶어요...

로쟈 2011-07-08 18:21   좋아요 0 | URL
유례없는 작업이고, 앞으로도 혼자 하기는 힘들 듯해요...

비로그인 2011-07-07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11-07-08 18:22   좋아요 0 | URL
네, 꼭 필요한 분들은 일찍 떠나시네요...

singing 2011-07-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산하지 않는 사람을 실패자로 생각한다... 실패자가 현자였을 것이다...
별다른 소득없이..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하루다 싶었는데 그냥 좀.. 위로가 되네요..^^

로쟈 2011-07-08 18:22   좋아요 0 | URL
시오랑과 잘 맞으시나 봅니다.^^
 

기획회의(299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를 거리로 삼았다. 아렌트 읽기를 새롭게 자극하는 책이지만 책장이 잘 넘어가는 건 아니어서 애를 먹었다. 아렌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야스퍼스의 관계를 정리하다 보니 분량이 차버렸는데, 책의 전체적인 요지에 대해선 역자 해제를 참고할 수 있으며, 그게 더 빠르고 정확하다. 아렌트에게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새로움'과 '탄생성'이란 주제에 대해선 기회가 되면 따로 다뤄보고 싶다.

  

기획회의(11. 07. 05) 아렌트 읽기의 등불

“우리에겐, 가장 어두운 시대에조차 어떤 등불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읽기> 서두에 박혀 있는 문구다. 우리말 번역서보다 먼저 구입해둔 원서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자나 편집자가 가져온 듯싶다. 서론에 등장하는 말이지만 제사로선 한국어본에만 있는 셈이다. 문맥을 바꿔보면, 굳이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이 아니더라도 ‘어떤 등불’은 책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오락거리로 읽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렌트 읽기>란 제목을 달고 있으므로 책은 말하자면 아렌트 읽기의 ‘등불’을 자임한다. 사실 어둡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아렌트의 책은 여느 철학자들만큼이나 일반 독자가 읽기에 난해한 면이 있으므로 그런 등불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렌트 전기의 결정판이라고 불리는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의 저자가 안내하는 길이고 보면 기대치는 꽤 올라간다.   

아렌트에 대해선 김선욱의 <정치와 진리>(책세상, 2001)을 읽은 이후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돼 주섬주섬 읽고 책도 긁어모은 편이지만 나는 서론에서부터 배운 게 있다. 새롭게 알게 됐다기보다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그건 아렌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야스퍼스의 관계다. 18살이 되던 해 마르부르크대학교에 진학한 아렌트는 열일곱 살 연상이었던 철학자 하이데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이데거는 그녀의 첫 번째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카트린 클레망의 소설 <마르틴과 한나>(문학동네, 2003)에 그려질 정도로 지금은 널리 알려졌는데, 처음엔 엘츠비에타 에팅거의 ‘폭로’가 있었다. MIT 교수인 에팅거가 아렌트와 하이데거 간의 미출간 서신들을 참고하여 <한나 아렌트/마르틴 하이데거>(1995)란 작은 책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스캔들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영-브루엘의 평가는 싸늘하다. “에팅거의 책은 그것이 비록 아렌트-하이데거 서신에 근거하고 있다고는 할지라도 하나의 공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팅거는 “순진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대인 여학생과 매력적이지만 무정한 기혼의 가톨릭 교수”라는 두 배역을 설정하고 “열정적인 무모함과 배신, 그리고 배신당한 정부(情婦) 쪽의 노예적인 충성심이 뒤따르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영-브루엘이 보기에 이것은 한갓 ‘공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아렌트의 적지 않은 적진에 탄성을 일으켰고 그녀의 지지자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아렌트 읽기’는 이러한 스캔들과 무관하게, 그 너머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아렌트와 하이데거 사이의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철학적 입장이 중요한 것이라면 말이다.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철학적 차이에 주목하고자 할 때 중요하게 부각되는 인물이 동시대 철학자 야스퍼스이다. 야스퍼스는 하이데거의 추천으로 아렌트의 지도교수가 되며 그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영-브루엘에 따르면, “이 두 철학자들, 즉 야스퍼스와 하이데거는 각각 아렌트가 한 사람의 철학도에서 정치사상가로 변신하는 경험을 엮는 데 결정적인 씨줄과 날줄을 제공했다.”  비슷한 경향의 철학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공적인 세계에 대한 관점에서 야스퍼스는 하이데거와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나치에 대한 태도에서 두 사람은 대별된다.   

유대인 아내와 결혼한 야스퍼스가 생계의 방편을 잃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치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힌 데 반해서 <존재와 시간>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국가사회주의의 주장에 동조하는 오류를 범한다. 알려진 대로 하이데거는 1933년 나치 집권 직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에 임명되며 그해 5월 나치당에 입당하고 ‘급진적인 나치 이념가’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비록 1년이 안 돼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므로 그의 동조는 일시적인 것이긴 했지만 결코 피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불미스런 연루는 그의 철학의 근본적인 관심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사회주의에 자신이 어떤 철학적 이념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적 스캔들 이후에 하이데거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선다. ‘세계’에서 물러나 관조적 고독 속에 침잠하면서 공적 영역에 대해서는 경멸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렌트가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동시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하이데거의 모습이었다.   

하이데거와는 대조적으로 야스퍼스는 “세계를 경멸하지도 자기 자신으로 후퇴하지도 않고 (...) 공적인 삶의 조류에 자신을 내맡기고 일관된 합당성을 견지하면서 공적인 이슈들에 관해 발언한 지식인으로서 거의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아렌트에게서 특별한 존경을 불러일으켰는데, 세계에 대한 사랑과 공적 영역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아렌트 철학의 밑바탕이기도 했다.  

아렌트는 브레히트의 시구를 빌려 자신의 시대, 20세기 중반 전체주의가 판을 치고 곧이어 전쟁과 대량학살이 인간성에 대한 모든 희망을 좌절시킨 시대를 ‘어두운 시대’라고 불렀다. 이때 어둠은 죽음이나 비극과는 다른 무엇이다. 무엇이 어둠인가? “어둠은 사람들 사이에 열린 빛의 공간들, 사람들이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공적인 공간들이 외면당하거나 회피당할 때 다가오는 어떤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공적 영역으로서 ‘정치에 대해 지겨워하는 태도’다. 이미 20대 중반에 아렌트는 낭만주의자들의 ‘자아로부터의 도피’를 맹렬히 비판한 바 있다. 그때 자아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의 자아’이다. 그러한 자아로부터의 도피가 아렌트가 말하는 ‘세계-소외’, 곧 세계로부터의 소외이다. 그것은 인간조건으로서 ‘세계-사랑’에 대한 반란이다. 하이데거가 세계-소외의 철학자였다면 아렌트는 야스퍼스와 함께 세계-사랑의 철학자로 다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 배운 것 한 가지를 너무 길게 적었다. 이후에도 저자는 타계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란 관점에서 아렌트의 생각과 그 현재적 의미를 반추해나간다. 저자와의 동행이 아주 평탄하지는 않다. 역자의 말을 빌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히 무겁고 진지한 필치”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 또한 매끄러운 편은 아니며 “미국과 유럽의 우파로서는(On the American and European right)” 같은 구절이 “미국과 유럽의 권리에 관한”(67쪽)이라고 번역되는 식의 오역도 군데군데 독서를 방해한다. 길잡이 등불치고는 사나운 등불이라고 할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옮긴이 해제’에 책의 요지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부터도 책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줄 수고를 덜었다. 

11.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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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2011-07-0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렌트 읽기'읽고 있는데(두번째로^^)저는 쌤의 글을 읽으며 다시 깔끔하게 정리되네요.ㅎㅎ
행위와 탄생성의 관계도, 용서를 정치의 필수조건으로 둔 것도...절로 줄을 긋게되었는데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어요.
찾아보니 푸른역사에서 '세계의 과거사청산'(안병직)이란 책이 있던데 도움이 될까요?

로쟈 2011-07-08 18:1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선 품절인데요. 푸른역사에서 할인가격에 구입하시면 될 듯해요.^^
 
“희망은 어찌 이리 폭력적인가”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돌베개, 2011)에 대한 지난번 리뷰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대목을 마저 적었다.  

   

경향신문(11. 07. 05) [문화와 세상]분노의 기쁨

‘분노하라’는 메시지로 프랑스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레지스탕스 투사 스테판 에셀의 올해 나이는 94세다. 1917년생인 그가 지난해 가을에 펴낸 <분노하라>는 30여쪽밖에 되지 않는 소책자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노투사의 단호하면서 열정적인 호소를 담고 있다.

무엇이 분노하게 하는가. 에셀은 점점 더 커져가는 빈부격차와 인권의 문제를 든다. 물론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으니까. 가령 올해 30대 재벌그룹 총수와 직계가족 118명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 평가액은 지난해보다 13조원이 더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최저임금 협상에서 재계가 제시한 건 30원 인상이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상승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삭감안’을 협상카드로 내놓은 셈이다.

이 13조원과 30원은 현 단계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말해주는 지표처럼 보인다. 애당초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의 명분으로 내세운 ‘낙수효과’가 혹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상위 부유층이 주식소득으로만 13조원의 이익을 얻게 되면 그래도 30원쯤은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날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인권의 현주소도 가끔씩 놀라움을 자아낸다. 비근한 예로 등록금 시위로 연행된 여대생에게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요구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사건도 얼마 전 여론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일인가. 물론 그렇다면 우리가 따로 분노할 일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세상에 이해 못할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런 사례들이 진정한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지 않으며 보편적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그래서 결코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없다면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사실 <분노하라>를 통해 되새기게 되는 교훈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용인해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참여와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한 번 더 상기하게 된다. 더불어 불의에 맞서 분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노할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어판 <분노하라>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서 에셀은 그 비결을 ‘기쁨’이라고 말한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일 때 가능하다. 어떤 참여가 어째서 기쁨이 되는가. 자신의 존엄성과 행복을 지켜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 에셀의 체험담이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그에게 마치 의무라도 지우듯 들려준 교훈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한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에셀은 그 가르침을 평생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수용소에 끌려갔던 경험조차도 지나고 보니 긍정적이더란 낙관주의는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자신의 낙관주의를 에셀은 ‘나이 많은 노인이 지니는 특권’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노인이 그와 같은 낙관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기쁨’ 혹은 ‘행복’이란 비결은 의미가 있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경험과 함께 굉장한 연애도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에셀은 한편으로 시를 읽고 암송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도 셰익스피어와 괴테, 횔덜린의 시구를 음미했다는 그다. 분노와 기쁨과 시,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11.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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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ard 2011-07-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1-07-05 1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1-07-0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일이 있을 법한데, 특히 '많이 베풀 걸'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베푸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매달 유니세프 후원금을 내고 있는데, 작은 금액이지만 매달 실천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ㅋ이거 자랑인가요?)

부자들의 가장 큰 행복은 자선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11-07-05 22:18   좋아요 0 | URL
'박애자본주의'의 모토죠.

송야 2011-07-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일일히 지적하기는 어렵겠구요. 한 가지, 여대생 브래지어 사건은 한대련에서도 내부적으로 그 학생이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구치소로 연행된 후 몇 가지 비 정상적인 행동을 벌였고 그래서 경찰쪽에서 자살, 자해의 위험성을 고려해 그런 일련의 조치를 취한 것이죠.
노사간 임금협상이나 감세의 효과 부분에서도 로쟈님의 경제학적 무지는 여실히 드러나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만. 좌측에 보니 3년 째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었는데 경제관련 서적은 '신자유주의의 종말'따위의 제목을 가진 비경제인이 쓴 교양서정도만 읽으셨나봐요. 달인이시니까 글도 잘 읽으실텐데 이번 기회에 로쟈님 서재에 꽂혀 단 한번도 펼쳐지지 않은 채 먼지만 쌓인 '경제학 원론'을 읽어보시길. 1회독이라도 하고 나면 본문의 글이 너무나 창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박애자본주의'와 같은 의미도 본질도 불분명한 레토릭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생각도 사라질 겁니다.

미국사람 2011-07-06 00:13   좋아요 0 | URL
무엇이 앞뒤가 안맞는다는거지요?
노사간 임금협상이나 감세의 효과 부분에서도 로쟈님의 경제학적 무지는 여실히 드러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프리드만 같은 시카고 학파의 책만 읽다 오셨나요?
아니면 공병호 계열의 자기개발서나 읽고왔는지?
무슨 이유로 경제학 원론은 읽으라고 하는지 궁금해지는구요?


페크pek0501 2011-07-06 00:31   좋아요 0 | URL
글의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을 찾아내려고 다시 읽어 보았는데,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섬나무 2011-07-0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곽봉효 님땜에 로그인하느라 잊어먹은 메일주소랑 비번 찾아서 글쓰기 합니다.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있음이 분명해보이는 어투로 비방을 위한 반론을 위해 자신이 대단한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단어 몇과 책제목을 들먹이시는 걸로 보입니다. 왜냐구요?
곽봉효님이 들먹인'경제학원론'은 곽봉효님이 표현한'박애자본주의'와 전혀 짝이 안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지경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질 않습니까??? 에고 이 무슨 우셉니까...쯧

송야 2011-07-22 12:58   좋아요 0 | URL
'박애자본주의'라는 말은 경제학원론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기업인의 양태를 지극히 감정적이고 이타심에 기반한 도덕으로 재단하면서 상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경제행위를 감성이나 도덕으로 힐난한다면 결국 피해자의 열정적인 동의만 얻을 수 있을뿐 올바르거나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없죠. '성토만해도 좋다'라는 식의 자위행위가 노사간의 임금협상과 같은 지극히 경제적인 문제의 상응하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순진하거나 어리석거나 뻔뻔한겁니다.
이런 국지적인 문제를 꺼내고 싶진 않지만 본문에서 언급한 30원임금협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임금은 한 번 올리면 내리기가 좀처럼 쉽지않죠. 물가상승률과 비교하시는데 그렇다면 경기침체시에는 임금을 내리는 데 동의할까요? 공무원의 임금은 사기업에 비했을 때 얼마나 오르고 있을까요?
또 하나, 임금을 올리면 정규직의 허들이 높아져서 그렇게 싫어하시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늘어나겠죠. 그것도 기업인의 탓입니까?
모든 문제가 그렇습니다만 경제문제는 특히 복잡해서 단선적인 시선으로는 오히려 현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해결책을 내어놓게 됩니다. 노동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동업자정신 다 좋은 말씀이시죠. 하지만 이 문제를 감성의 시작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낸다면 도덕으로 아주 높은 수준의 하지만 실효성은 없는 주장만 일삼게 됩니다. 그리고 그걸 아실만한 분이 엉뚱한 소리를 하시니까 뜻하지 않게 비방처럼 보이는 어투를 쓰게 되었군요.

송야 2011-07-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으로 비-인문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도 공감하기 힘든데, 한대련 사건에서의 사실관계마저 교묘하게 왜곡시켜 인용하니 저의가 의심되는 겁니다.
 

작년이던가 원로사학자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까치)를 뒤늦게 알라딘 중고상품으로 구했다. 1980년에 나온 책의 1993년 재판본이었다. 물론 절판된 책이었기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좀더 기다렸다면 버젓한 책으로 구할 수 있을 뻔했다. 이번에 재출간됐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민까지, 1789-1871>(책과함께, 2011). 저자의 또다른 대표작 <자유주의의 역사>(책과함께, 2011)와 함께. 이 또한 민음사판으로 갖고 있는 책인데, 박스보관도서라 새로 구해볼 마음도 있다. 혹시나 싶어 소개기사를 찾다가 노명식 교수의 자비 전집 출간 사실도 알게 돼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동아일보(11. 06. 29) 12권 전집 자비로 찍어 나눠준 老학자

“한국사를 전공하는 친구인데 내 수업을 듣는 거야. 무척 기특해서 90점 이상 줬던 기억이 나네.”(노명식 전 한림대 교수)

“저까지 기억하시고 전집을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 수업은 다른 과의 학생들도 꼭 들어야 하는 명강의였지요. 특히 프랑스혁명사는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겐 필수과목이었어요.”(이재범 경기대 사학과 교수)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조촐하지만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한국 서양사학계 1세대 학자로 꼽히는 노명식 교수(88)는 지난 50여 년간 쓴 글을 모아 12권 분량의 양장본 ‘노명식 전집’을 출간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10여 명의 현직 교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전집에는 저서와 논문, 강의록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까지 수록됐다.

“비록 잡문이어도 내가 쓴 글을 온전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1950년대 지역 신문에 기고했던 글부터 최근에 쓴 글까지 모조리 찾아서 정리했어. 그 작업이 만만치 않더라고. 7년 넘게 준비했는데 그동안 내가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지.”

노 교수는 전집을 내는 데 들어간 비용 1억2000여만 원을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 스크랩한 자료를 문서 파일로 옮기는 데만 3000만 원 넘게 들어갔다. 1950∼1980년대 기고한 글은 워낙 한자가 많아 고학력자가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의 경우 제자나 지인들이 돈을 모아 전집을 내 헌정한다. 전집을 출간한 ‘책과 함께’ 출판사 류종필 대표는 “선생님께서 후학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며 제자들도 모르게 전집 작업을 진행하셨다. 비매품으로 지인과 제자, 학교 도서관, 사학 연구자들에게 기증했다”고 밝혔다. 류 대표도 노 교수의 제자다.

이날 모인 제자들은 대부분 1970, 80년대 노 교수가 성균관대 재직했을 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다. 20년 전부터 매년 설날과 스승의 날에 노 교수를 찾아뵈었다고 했다. 올해 스승의 날 모임은 노 교수의 전집 출간에 맞춰 일정을 늦추어 이날 가졌다. 뜻밖에 노 교수의 전집을 택배로 받고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 제자도 있었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선생님은 할 말은 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며 “1972년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이 잡혀가시지 않을까 걱정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노 교수는 1976년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경희대 교수직에서 해직됐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이를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키워드를 제시해 학생들이 배울 내용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한 후 강의하셨는데 당시로선 선진적인 방식이었다. 나도 수업 전 온라인 게시판에 키워드를 제시해 학생이 그 내용을 채워오게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제자들은 스승의 전집에 대해 ‘동시대의 사료’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 당시 상황을 글로 남긴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현대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며 “그렇기에 이 전집은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지은 기자) 

11.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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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7-06 05:06   좋아요 0 | URL
노명식 선생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가 다시 나왔군요. 아마도 80년대 당시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프랑스 역사에 관한 몇 안되는 책중 하나였읍니다. 꽤 잘쓴 책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이를 능가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조선일보 프랑스 특파원 이었던 신용석이 앙드로 모로아의 프랑스사를 내었던 것이 80년인가 81년으로 기억되고요. 정말 80년대에는 우리말로 된 프랑스에 관한 역사책은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노명식선생이 파리컴뮨 이후부터 드골 시대까지에 관해 쓴 책이 탐구당에서 문고본으로 나와 있었는데 책제목은 가물가물. (어딘가 발표한 논문을 책으로 낸것 같은데 아주 딱딱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7-06 16:53   좋아요 0 | URL
탐구문고에서 나온 것이 <프랑스 제3공화정 연구>입니다. 요즘은 안 나오죠.파리코뮨 진압하고 바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시작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7-06 16: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잊을 만하면 읽습니다.혁명과 왕정복고가 연속되는 이 시기는 정치학이나 사회학 공부에도 좋더군요.얼마 전 나폴레옹 전기를 읽으면서 맥을 잡으려고 또 읽었죠.한국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미국사람 2011-07-06 23:36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훌륭한 점은 번역이 아니고 직접 쓴 글이기 때문에 글이 살아있다는 점 일겁니다. 읽으면서 쓴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거든요. (하긴 읽은 지가 30년정도 되었네요.)

번역투 문장은 아무래도 어색하거든요. 저는 김화영선생한테 불어를 배운 사람인데 카뮤 번역으로 유명한 김화영선생의 글마저도 직접 쓴 글이 번역소설보다 훨씬 뛰어나요.

주경철이 옮긴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다가 한국말이 너무 어색해서 영역본을 읽는게 나을거라는 생각에 그만두었거든요. 주경철이 나쁜 학자는 아닌데도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7-07 17:01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사 분야의 민석홍,노명식 이런 분들의 글이 좋지요.저는 헌책방에서 아주 싸게 구했습니다만... 그 뒷세대로 유럽사 분야에선 임지현 씨 글이 읽기 쉽고 재밌게 잘 쓰고요.

미국사람 2011-07-07 23:44   좋아요 0 | URL
임지현이 누군가요? 혹시 민족주의는 반역 이다라는 책을 쓴 사람인가요? 제가 한국 사정에 조금 어두워서...

노이에자이트 2011-07-09 07:49   좋아요 0 | URL
예.그 책 맞습니다.

turk182s 2011-07-07 02:10   좋아요 0 | URL
헐 ..파리코뮌과..추억이 새록 새록 하네요새내기때 선배가추천한책
 

이번주 관심도서 가운데 '사회적 독서' 거리로 분류해도 좋음직한 책은 김상구의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해피스토리, 2011)와 강명관의 <성호, 세상을 논하다>(자음과모음, 2011)이다. 주중에 이미 한번씩 언급했던 책들인데, 주말에 올라온 리뷰 가운데 한편씩 골라 스크랩해놓는다. 개인적으론 강명관 교수의 <성호사설> 읽기 덕분에 조선 유학자들 읽기를 성호 이익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대로는 '발견'인 셈이다... 

서울신문(11. 07. 02) 상상초월 한국 종교계의 어두운 실상

서방세계는 한국을 ‘종교 천국’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 부러움이 담긴 이 말은 언뜻 듣기엔 더할 나위 없는 찬사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칭송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비아냥의 수사이기도 하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이 자유롭게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 그 비아냥은 물론 종교 본연의 범주를 벗어난 채 세속적 가치에 매몰된 불법, 탈법의 비정상적인 세태를 겨냥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기독교의 퇴조는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 800년 역사의 성당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고, 700년 이상 된 교회를 유치원으로 만들기도 한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선 600년 이상을 지켜온 유서 깊은 성당이 개인 화실이며 상가 건물로 바뀐 사례가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한다.

‘교회의 몰락’으로까지 관측되는 이런 상황은 한국에선 영 딴판이다. 세계 20대 교회로 꼽히는 교회의 절반이,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가 있는 곳이 바로 이땅이다. 미국 다음으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도 바로 한국이다. 서방세계가 ‘종교 천국’이라는 찬사 아닌 찬사를 쏟아내는 이유가 분명 있는 것이다.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김상구 지음, 해피스토리 펴냄)는 그 ‘종교 천국’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 종교계의 어두운 실상을 낱낱이 까발린 책이다. 믿음을 팔아 부와 권력을 사는 한국 종교의 부끄러운 행위를 정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흑서인 셈이다. 책에서 파헤쳐진 실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동산실명제를 교묘하게 비켜가는 명의신탁, 억대의 월봉을 받고도 소득세 한푼 안 내는 목회자, 신도들의 신앙심을 담보로 받은 대출 이자를 헌금으로 내는 교회, 인가받지 않은 신학대학원을 통한 학위 장사, 한 해 예산이 수십억∼수백억원 수준인 교회를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교회세습…. 요즘 개신교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체를 비롯해 종교계 안팎에서 요동치는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괜한 게 아님을 고스란히 들춰내는 고발의 연속이다.

책을 관통하는 온갖 비리와 일탈의 핵심은 단연 특혜와 불평등으로 모아진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이기에 가능한 부의 축적과 권력의 획득, 그리고 종교계 내부의 성차별과 직제의 모순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 많은 특혜의 홍수 속에 갈수록 심해져 가는 종교 주체들의 도덕 불감증이 가장 문제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래서 투명한 종교, 건전한 종교를 세우기 위해 종교법인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못 박는다.(김성호 편집위원)    

경향신문(11. 07. 02) 조선의 감추고 싶은 치부… 어쩜, 지금이랑 똑같네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의 비망록을 곱씹은 책이다. 딱딱하게 여겨질 고전을 알기 쉽게 풀었다. 성호가 직접 얘기하는 듯하다. 과거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생동감 있는 해석을 곁들인 저자의 공력이 돋보인다.

옛것이지만 메시지는 예스럽지 않다.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성호의 비판적인 시선을 오늘날에 끌어와 저자 나름의 독설과 교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감추고픈 조선의 치부가 21세기 한국에도 오롯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호사설>을 전부 싣지는 않았다. 다만 조선 특유의 사회상을 드러내면서도 성호의 사상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을 골라 38개의 주제로 정리했다.

“손 가는 대로 기록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큰 더미를 이루었다”는 성호의 말을 지은이는 겸손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밥상머리부터 시작해 인간의 도리, 사회, 치국까지 주제는 광범위하다. 저자는 <성호사설>을 “조선시대 지식인의 학문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매김한다.  

책 표지의 그림이 말해주듯 <성호사설>의 화두는 ‘백성’이다. 성호는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위정자들, 그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부를 착복할 수 있도록 보장된 사회구조가 백성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믿었다. <성호사설> 곳곳에서 성호는 관리들의 탐학(貪虐)을 비판한다. “재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도 백성을 쥐어짜는 무리가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살찌우니, 백성이 어떻게 곤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는 눈이 먼 거지를 회상하던 성호는 궁핍한 유민이 양산되는 이유를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저자는 한발 나아가 “신자유주의라는 학정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상이 이 시대의 유민을 낳”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줄곧 성호의 메시지를 오늘날 시류에 비춰 전달한다. 예로 고기반찬이 없어도 식사가 즐겁다는 성호의 말에 저자는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꼬집고, 대형할인점과 ‘에스라인’ ‘몸짱’ 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욕한다. “죽음의 잔치가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가 가동시키는 산업 때문이다.”

탐관오리의 배를 불려주는 ‘돈’에 대한 성호의 일갈에 특히 눈길이 간다. 단순하지만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성호의 화폐론이 그것이다. 저자의 풀이대로라면 성호는 화폐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로 본다. 재산이 오직 실물형태로 존재한다면 부의 축적에는 제한이 따른다는 얘기다. “대개 곡식과 포는 가벼운 화폐와 사뭇 다르다. 백성을 쥐어짜는 자들도 많이 가질 수가 없다.” 성호는 화폐가 곧 착취의 수단이고 화폐의 존재가 백성을 궁핍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에 저자는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던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을 지목하며 “부패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부패한 인간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가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백성은 힘들다. 성호는 통치자가 백성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오류라고 꼬집는다. 책은 아울러 “나라에 아내를 내쫓는 법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혼문제 등 당시의 온갖 군상을 에누리 없이 증언한다. <성호사설>에 비쳐진 오늘의 현실, 책장을 넘길수록 갑갑하고 화가 치민다. 하지만 따끔따끔하다. 그리고 통쾌하다. 그때그때 아무 장을 펼쳐들어도 유익할 이 책은 인문시리즈 뉴아카이브 총서 세 번째다.(고영득 기자) 

11.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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