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밀린 원고 더미와 씨름해야 하는 처지에선 휴일도 달갑지 않다. 차라리 '휴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당장 읽을 책은 아니지만, 이번주에 구입한 도서목록에는 미국의 대한 환상에서 께어나라고 일갈하는 책 두 권도 포함돼 있다. 김광기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 2011)와 크리스 헤지스의 <미국의 굴욕>(아름드리미디어, 2011)이 그것이다. 서평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짝퉁 미국'인 나라의 미래는 좀 다를지 생각해봐야겠다...  

경향신문(11. 09. 10) "미국 위기 본질은 승자독식에 의한 신뢰의 위기”

미국 전역에서 도로를 파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닳는 아스팔트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자갈을 깔기 위함이다. 재정압박 때문에 낡은 도로를 방치하는 주 정부도 허다하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다루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석기시대’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뉴욕과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는 ‘집에서 닭 키우기’가 유행이다. 경기침체로 주식인 육류를 사서 섭취하기가 어렵게 되자 직접 병아리를 사서 키워 닭고기와 계란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48)가 최근 펴낸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생경하다. ‘치부’를 애써 들춰냈다기보다 일상 그 자체가 치부가 돼 버린 미국인들에 대한 세밀화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1990년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는 미국을 ‘하나의 전범’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2008년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콩깍지’가 벗겨졌습니다. 미국은 그 전에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몰락’을 말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사회학자로서 김 교수가 집중한 것은 경제위기의 통계적·수치적 측면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드러난 쇠퇴의 조짐들이다. 그는 작은 풍경들을 포착해 “고구마 줄기를 뽑아내듯” 그 속내를 읽는 데 집중했다.

2010년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의 이스트포인트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 3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인구가 4만여명인 이 작은 도시에서는 이날 혼잡으로 62명이 다쳤다. 경제위기로 미국에서 2010년 한 해에만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105만명에 이르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공공주택이 떠오른 때문이다. 노숙자 수가 불어나 관리비용이 증가하자 비행기를 태워 다른 주로 보내는 주 정부도 있었다. 

책에서 미국의 음울한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197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수감자가 줄었지만,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교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소자들을 조기석방한 때문이었다. 주 경찰들은 공용 신용카드를 주유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탓에 연료를 넣지 못해 순찰을 돌지 못한다. 공공학교들은 학생 수 탓이 아니라 운영할 돈이 없어 문을 닫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적 ‘신뢰의 위기’라는 것이다. “미국에 머물면서 아파트 잔디밭에서 아이들을 놀게 할 수가 없었어요. 온통 개가 쏟아낸 배설물들이 널려 있었죠. 처음 유학왔을 때만 해도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뉴햄프셔주에서 개똥이 너무 많으니 유전자를 검사해서 추적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해요.”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자체도 상환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 ‘가불 문화’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추천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신뢰하던 미국의 분위기도 사라졌다. 미국의 어느 중학교에서는 재정 확충을 위해 학생들이 20달러의 초콜릿을 사면 점수를 올려주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신뢰의 위기’는 고위층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자들은 회전문인사를 통해 다시 정·재계에 진출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의로 차를 버리거나 불을 지른 뒤 보험금을 청구하고, 렌터카에 기름 대신 물을 채워 반납하기도 한다.

이 신뢰의 위기는 결국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요즘 미국인들이 총과 닭, 씨앗을 사려고 안달인 까닭은 ‘나 외에 타인의 도움은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건국이념으로 내놓은 자유와 평등, 인권과 정의라는 것들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미국이 외환위기 때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투명성을 요구했지만, 금융위기를 보면 가장 불투명한 집단이 그들이었죠.” 김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학자적 양심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내일신문(11. 09. 10) 감추고 싶어하는 미국에 관한 5가지 불편한 진실

비판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단언한다. 미국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프로 스포츠, 연예산업과 유명인 문화, 리얼리티 예능 프로가 전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고 일상을 규정하는 나라,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과 돈,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그것들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용해 먹는 나라라고.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크리스 헤지스는 이런 미국에 메스를 들이댄다. 미국의 숨은 치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처한 위기,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미국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파탄의 조짐은 단순히 금융위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에서부터 일상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체제와 삶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사회에서는 본모습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고, 진실보다 광고와 선전이 더 설득력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는 잡동사니 정보와 유명인의 뒷공론이 지식이 되고, 포르노는 사랑이 되며, 교육은 체제 유지와 권력 세습의 도구가 되고, 심리학은 행복을 파는 돌팔이 과학이 되며, 빚은 경제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현실이 절망스러울수록 더욱 공상에 집착하며 선동과 허풍에 의존해 위로와 안심을 구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선동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오락을 제공하면서 독재정치로 나아간다. 오늘날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결탁한 이른바 '법인형 국가' '기업정부'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지적 능력, 도덕성, 교육, 정신, 경제 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음을 통찰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런 환상들에서 깨어나 자기 앞에 놓인 엄연한 한계와 맞서지 않으면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다.(안찬수 기자) 

11. 09. 10.  

P.S.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나온 대니얼 리그니의 <나쁜 사회>(21세기북스, 2011)도 참고할 만하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다룬 책으로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우리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를 모든 사회 분야에 걸쳐 연구한 최초의 학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정치.과학.교육.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마태 효과로 인해 일어나는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고, 사회를 ‘나쁘게’ 만드는 마태 효과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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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11-09-10 15:15   좋아요 0 | URL
한가위 잘 쇠세요!
뜬금없이...

로쟈 2011-09-10 18:51   좋아요 0 | URL
네, 즐거운 연휴 되시길...

토토랑 2011-09-11 03:10   좋아요 0 | URL
으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페이퍼네요. 지금 미국 샌디에고에 머물고 있거든요.
지난번 미국 외환부채 상한액 증액 법안관련 이슈때도 우리나라 언론에 오히려 기사가 나지..
미국엔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조차도 뭐 그거요~ 벌거 아녜요 하는분위기..왠지 물어본 사람이 무안해질정도의 시큰둥한 반응
대선 끝나고 나면 영향있겠죠 한마디 끝...

어느 동네를 가든지 카트에 짐 싣고 밀고다니는 노숙자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옆에 카운티에는 쌍둥이 학교 보내는데 Supply list로 학기초에 보내는 학용품만 백만원어치 샀다고 하네요..
미국에 오래산 시민권자들은 멕시코애들 노인들 과잉복지 때문에 재정이 어렵다는 그런 인식도 많은거 같아요. 다자녀 혜택이 좀 있다보니 멕시코나 이민자들이 자녀가 많거든요.

그치만 아직 영어 못하는 옆에서 보기에는,, 주급으로 주는 월급과 월세....
집세가 방 2개 조그만 아파트가 $1600 정도 하거든요. 수욜날 주급은 주는데 그날은 마트가 좀 붐벼요. 세금때고 월 400만원 받는다 쳐도, 주급이면 100만원..월세내야할돈 떼고 최소 $400 제하고, $600 남으면 마트한번 갔다오면 또 돈 나가고 이래저래 뭐 사면 또 없고. 정신바짝 안차리고 관리안하면 돈 모으기 힘들겠드라구요.

집값의 10% 현금만 들고 있어도 집 살수 있는데,,그게 월세보다 훨 싸게 치는데도.. 2~3 천만원 정도의 목돈을 마련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그 참 이런사람들이 우리나라오면 못살겠구나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여기서 Job 못잡은 애들이 우리나라와서 그냥 영어강사 몇년 뛰다가 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미국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 그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제네요. 로쟈님이 골라주신 책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1-09-11 09:53   좋아요 0 | URL
보통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미국과 실제 미국은 많이 다른 듯해요. <미국의 굴욕>의 원제대로 '환상의 제국'이라고 할까요...

미국사람 2011-09-15 03:09   좋아요 0 | URL
토토님 예기에 한마디 합니다.
저는 뉴욕쪽이라 서부쪽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합니다. 감안하시길

여기서는 지금 집값의 10% 가지고는 집을 못사구요 30% 정도는 주어야합니다. 문제는 30%를 주어도 은행에서 융자를 잘 안내줍니다.(단 금리는 엄청 쌉니다.) 토토님 말씀은 100%까지도 융자해주던 2008년 리만 브라더스 붕괴 이전 상황입니다.

지금 미국은 1945년 전쟁 종결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입니다. 1929년 처럼 대공황이 나야 되는데 대공황 경험이 한번 있으니 미 중앙은행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공황이 오는 것을 막고 있는 중이라 보면 됩니다.

만일 2009년 이후에 미국에 와서 현 상황만을 보고 미국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최악의 상황만 보일테니 토토님과 같은 관찰이 나오겠지요.

물론 현재의 미국은 지옥행 기차를 타고 있는 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1998년 한국의 환란 이후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소개하신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책도 비슷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읽어보지 않아 말하긴 어렵지만 개별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맞다고 하기 어려운 책일 겁니다.
 
민주주의 읽기

대선을 일년도 더 남겨놓고 있지만 서울시장 보선과 안철수 열풍으로 '정치의 계절'은 벌써 시작됐다. 그런 분위기에 부합하려는 듯 정치와 정치철학에 관한 책들도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아마도 곧 봇물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정치학' 전문출판사 후마니타스에 나온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와 <제프리 골드파브의 <작은 것들의 정치>가 바로 눈에 띄는 책들이다. 프랑스철학자 랑시에르의 국내 '데뷔작'이었던, 하지만 오역으로 한바탕 물의를 불러일으켰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새 번역자를 만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인간사랑, 2011)란 타이틀로 다시 나왔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다시 읽어볼 기회다. 개인적으론 강의준비도 할 겸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후마니타스, 2010)과 함께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2011, 10쇄),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문학과지성사, 2006, 3쇄)도 어제 주문해서 받았다. 달의 책 두 권은 모두 1999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는데, 아직 절판되지 않은 스테디셀러다. 이런 책들을 묶어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9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2011년 09월 09일에 저장
품절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8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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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9월 09일에 저장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배관표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9월 09일에 저장

작은 것들의 정치- 혁명 전통의 잃어버린 보물
제프리 골드파브 지음, 이충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1년 09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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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09 09:30   좋아요 0 | URL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 모델들은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90년 판으로 읽었는데, 새로 나온 책은 번역과 편집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헬드의 이 책은 로베르토 보비오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에 관련된 명저 중 한 권으로 꼽는 책입니다~

저두 서점에 가서 어떤지 구경이나 해 봐야 겠습니다!

로쟈 2011-09-09 09:52   좋아요 0 | URL
네, 말그대로 '교과서' 같은 책이네요...
 

오랜만에 영화 소식이다. 아마도 김기덕의 <아리랑> 이후인 것 같다. 홍상수의 열두번째 영화 <북촌방향>이 오늘 개봉했다. 데뷔작이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홍상수의 모든 영화'를 지지하는 입장에서(인상의 편차는 있었지만) <북촌방향>이 또다른 기대작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려운 제작여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매우 부지런하게 영화를 찍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작도 얼른 개봉되면 좋겠다. 조금 일찍 올라왔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08. 26) “방식 다르면 생각도 달라…‘즉흥 촬영’ 밀고 나갔다”

한국의 영화감독 중 의뭉스럽기로 따지면 홍상수(51)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술에 취한 채 쉽게 찍힌 듯한 어느 장면이 사실 50번의 테이크 끝에 얻어낸 것임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사실 그들이 받는 출연료는 거의 없음을, 굵고 뭉툭한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 속에 사실 인생에 대한 반짝이는 성찰이 숨어있음을, 아는 사람만 안다. 



9월8일 개봉하는 「북촌방향」은 그의 열두번째 장편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해 1~2년에 한 편씩 작품을 내놓던 그는 최근엔 1년에 2편을 내놓을 정도로 다산하고 있다. 그는 이미 프랑스 최고의 여우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차기작 「다른 나라에서」의 촬영까지 마친 상태다. 어떤 배우들, 어떤 관객들을 ‘신흥종교에 감화된 신도’처럼 거느린 그를 24일 서울 압구정에서 만났다.

-당신의 작품은 ‘최근작이 최고작’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홍상수 감독은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는데 그중 하나가 영화”라며 “싸구려로 안 하면 보답이 올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운”이라고 말했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미친놈도 아니고. 어떤 작품을 끝내면 ‘기분’이 있는데, 이번엔 나쁘지 않았다. 장르영화처럼 ‘이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 정해놓고 만들진 않는다. 다양한 반응이 있으면 그걸로 영화가 완성된다.”

-가수 백현진은 ‘술먹고 노는 장면은 홍상수가 제일 잘 찍는다’고 말했다.

“헛소리다. 술자리 장면이라고 특별히 생각하는 건 아니다. 골목길 장면, 밥먹는 장면과 마찬가지다. (밥먹을 때도 반주를 먹던데) 글쎄. 왜 그럴까.” 



-전작들과 다른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제작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방식이 다르면 생각해 나오는 게 달라진다. <옥희의 영화>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구상이 없이 촬영을 시작했다. 이틀 전 정해 배우를 불러 1부를 찍고, 다시 정해 2부를 찍는 식이었다. 이번엔 그 방식을 더 밀고 나갔다. 전체적인 구상이 없이 첫날 찍고 둘째날 찍으니 틀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북촌방향」에선 김보경이 1인2역을 한다. ‘두 여인’의 테마는 당신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내가 오만가지 인물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삶에서 나온 것들이 새 배열을 찾고 새 표현방식을 찾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 비슷한 방식이 반복되는 것이다. 영화에는 말로 집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있다. 옛 여자와 닮은 여자를 찾는 것도 한 덩어리다. 그 덩어리는 우리가 피할 수 없고 공유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하는 영어 대사 영화다.

“파리에서 위페르를 본 적이 있다. 지나가는 말로 기회가 있으면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이번에 위페르 사진전을 준비하기 위해 내한한다고 전화가 왔다. 낮에 점심 먹는데 데려갈 데도 없어서 「오! 수정」과 「북촌방향」에 나온 고갈비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거기서 엉겁결에 출연하자고 얘기가 됐다.”

-갑자기 다작 감독이 됐다. 몇 편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나.

“그런 멍청한 목표가 있을 리가. 지금은 영화 만드는 게 중요하고 좋다. 건강이 허락하는한 계속 만들고 싶다.”

-작품에 대한 영감이 마구 나오나.

“‘이 때쯤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예를 들어 가을에 바람 부는 제주도에서 뭔가 찍고 싶다는 생각이다. 거기 맞춰서 한 번 해보는 거다.”

-영화, 책, 연극이 아닌, 주로 그림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침대 위에 화집이 몇 권 있다. 세잔, 마티스, 렘브란트, 피카소… 멍하니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 그림을 왜 좋아할까 생각하는 게 재미있다. 그렇게 두 세 장 보다가 잠든다.”

-요즘 영화는 잘 안보나.

“영화에도 원형이 된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을 접하고 내 나름대로 공부하는 건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많이 했다. 이제 그 이상으로 레퍼런스가 될 사람이 나오진 않는 것 같다.”

-요즘 당신 영화에 ‘착해서 좋아’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제일 좋은 건 착한 사람이다. 우리들이 아기들을 보고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아무리 머리가 헝클어져도 아기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슬금슬금 용기가 난다.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지만 이런 착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영화 「북촌방향」은
지방에 살면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는 감독 성준(유준상)은 서울에 놀러와 북촌에 사는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에게 연락한다. 영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성준은 북촌을 배회하다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고, 옛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고, 마침내 영호 무리와 ‘소설’이라는 카페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이 술자리는 기묘하다. 여러 차례 보이는 술자리는 하루에 일어난 일 같기도, 여러 날 반복해서 일어난 일 같기도 하다. ‘소설’은 시간이 뒤섞이는 마술 같은 공간이다. 선형의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나, 관객의 감각이 매혹적인 혼란에 빠지는 공간이다. 성준은 이곳에서 서툴게 피아노를 치고, 옛 애인을 닮은 카페 사장을 만나 동침하고, 마침내 탈출해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부는 성준이 이 지루하고 비루한 삶의 궤도에 영원히 포박됐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 수정」에 이은 홍상수의 두 번째 흑백영화다.(백승찬 기자)


11. 0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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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0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석과 이은주가 연인으로 나왔던 '오! 수정'...그때 이은주가 스무살이었을 겁니다.

그리고...김보경 좋아하세요? '친구'에서 이쁘게 나왔고 드라마 '깍두기'에서 김승수 아내로 나온 게 기억나네요.늘씬하고 세련된 여인 역을 하던데 홍상수 영화에선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군요.

로쟈 2011-09-10 10:39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봤는데, 이 영화에서도 매력적으로 나옵니다.

무당광대 2011-09-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영화에선 관념적인 대화들을 많이 나누는데, 웃기면서도 슬프고 그래요. 딱 체홉 단편소설 같아요.

로쟈 2011-09-11 11:08   좋아요 0 | URL
체홉의 인물들보단 더 지적이긴 하지만, 서로 자기말만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점은 딱 닮았습니다.^^

msjpolitics 2011-09-14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은 너무 어릴때봐서 기억이 나지 않네요. 북촌방향은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요새 이리저리 "밤과 낮"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를 봤는데, 그 대사 하나하나가 웃기면서도 참 불편하게 만들더라구요. 유준상도 괜찮지만, 저는 김영호가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데, 안봐서 뭐라고 말하기는 좀 그러네요.

로쟈 2011-09-14 17:51   좋아요 0 | URL
<밤과 낮>을 아직 못 봤는데, 유준상의 연기는 좋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에서도 그렇고 '홍상수 연기'를 마스터하는 듯해요...

philocinema 2011-09-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과 낮은 홍상수 감독 전작품중 유일하게 dvd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상암동에서 홍감독 '전작전'할 때 가서 보고 왔지요.
dvd로도 출시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로쟈 2011-09-22 13:2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9-22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 수집중인데, <밤과 낮>만 안 보여서 늘 애태우고 있네요..^^

로쟈 2011-09-22 13:23   좋아요 0 | URL
영화에 대해서라면 샥샥님이 할말이 많으실 듯해요.^^
 

뒤늦게 이중톈을 읽고 있다. 그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지만 나는 지난 여름 <초한지 강의>(에버리치홀딩스, 2007)와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을 흥미롭게 읽으면서 비로소 그의 독자가 됐다. 최근 읽고 있는 건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 2008)인데, 발행일이 2008년 5월 15일이고 구매일도 똑같다. 책이 나오자 마자 구했다는 걸 알겠다('이중톈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놓은 날도 5월 15일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책들에 떠밀린 듯하고 정작 손에 든 건 3년도 더 지난 다음이다. 독서도 다 때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제국을 말하다>에 이어서 <제국의 슬픔>(에버리치홀딩스, 2007)과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은행나무, 2008)까지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책을 어디다 두었는지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저자 스스로 대표작이라 꼽기도 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 여름 것이 있기에 참고삼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07. 24) 중국제국의 재건과 ‘역사 망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퍼부은 독설에 가까운 촌철살인의 풍자다.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시나브로 국력이 쇠잔하고 분열이 이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껍데기만 남은 제국이었다.

중국이 초강대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며 제국은 더욱 아니라는 엄살 섞인 항변을 들고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볼테르의 명언이다. 현대 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를 당부할 때만해도 그런 이중성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부르짖는 지금의 중국이라면 사뭇 달라진다. 중국은 동양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이래 2132년 동안 제국으로 호령한 화려무비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기 역사저술가 이중톈은 화려한 중국 역사의 겉면보다 쓰라린 실패와 아픈 기억을 <제국의 슬픔>이란 책으로 담아낸 바 있다. 이중톈이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자신 있게 말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에서 과거 중국제국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제국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재구성했다. 이중톈이 진시황 이래 청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유지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官員代理) 세 가지로 요약되는 시스템이다. 진시황이 군현제와 그에 걸맞은 관원대리라는 하드웨어를 창조했다면, 한무제는 여기에다 윤리치국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해 완벽한 제국의 틀을 만들었다. 윤리치국이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가운데 유가를 정치의 도구로 채택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이후 모든 왕조는 이 트로이카를 앞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20세기 초 들어 강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이 시스템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만이 미래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처방했다. 중국 학계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몰라도 이중톈은 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중톈이기에 그의 한마디는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제국이란 제도는 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무너진 제국은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진다.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제국이 재건된다.

중국이 또다시 세계 제국으로 굴기하는 걸 보면 순환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과시한 ‘한·당(漢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이미 제국의 야욕을 세계 만방에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 때나 당나라 때나 한민족의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중국의 행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 제국이 될 지 모른다는 점을 확연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역사적 교훈은 제국이 혼자 강압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국계 미국 석학인 에이미 추아는 명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필요조건으로 ‘관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베이징의 봄 이후 중국은 청년 정신까지 성장을 멈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중톈도 지적하듯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리라.(김학순 기자)  

11. 09. 07. 

 

P.S. 이중톈과 함께 또 몰아서 읽으려는 저자는 이중톈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중국사학자 레이 황이다. 그의 책도 번역된 건 모두 갖고 있는데, 일단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푸른역사, 2001)를 책상 가까이에 옮겨놓았다. 진순신의 <중국사 이야기>까지 더하면, 내내 중국사 이야기를 들으며 올가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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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의 위대함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11-09-08 06:08 
    요즘 중국을 보면 저 나라가 공산당 나라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사회 경제 제도에 자본주의의 요소들를 파격적으로 도입하고도공산당은 엄연히 존재하고 평범한 서민의 집 벽에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있는 현상은 참 묘하다.러시아의 초기사회주의자들은 농노를 해방시킨 짜리를 암살했다. 러시아는 혁명초기에 마지막 황제의 가족을 총살시키고 암매장했다.마지막 황후의 언니는 산 채로 우물에 던져졌다. 새 러시아에서 마지막 황제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베르톨루치의 <마
 
 
미국사람 2011-09-08 00:49   좋아요 0 | URL
에이미 추아를 석학으로 <제국의 미래>를 명저로 꼽는 것은 약간 심한 느낌..
여러가지 책을 잘 섞어서 배낀 정도의 책입니다.

그것보다는 애 키우는 법 소개서인 타이거 마더(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정도가 에이미 추아에게 맞는 듯 합니다.

예일대 교수 이긴 하지만 법대교수이니 수준에 오른 역사 서적을 쓰기에는 조금 힘이 부친 듯 합니다.

로쟈 2011-09-09 09:51   좋아요 0 | URL
독자에 따라 평가는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한국에선 예일대 교수란 후광이 있지요...

2011-09-08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획회의(303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리링의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에 대한 독후감을 적었다. 리링의 책은 이중톈의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과 함께 이번 여름에 읽은 가장 유익한 책이었다. 실제로 이중텐의 <백가쟁명> 원저는 <논어, 세번 찢다> 이후에 나온 책으로 리쩌허우의 <논어금독>(북로드, 2006)과 함께 리링의 <상가구>도 종종 언급한다. <상가구>도 얼른 번역되면 좋겠다...  

기획회의(11. 09. 05)  지식인 공자를 읽다

'공자'를 다시 읽고 있다. 아니 다시 보게 됐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싶다. 우리에게 ‘공자왈’의 공자만큼 친숙한, 고루할 정도로 친숙한 ‘성인’이 달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읽고, 다시 보게 됐는가. 두 종류의 공자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논어, 세번 찢다>의 저자 리링의 말이다. “역사적으로 두 종류의 공자가 있다. 하나는 <논어>에 있는,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있는, 살아있는 공자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 사당 안에 있는, 빚어지고 조각된, 향불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기 위한 공자이다. 전자는 진짜 공자이고 후자는 가짜 공자이다.” 이러한 일갈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공자가 더 사랑스러운가?”  

사랑스러운 공자? ‘공자’하면 자동적으로 ‘성인 공자’를 떠올리게 되는 우리로선 불경스럽게도 들리지만, 한편으론 통쾌한 느낌도 준다(사랑스러운 공자라니!). 새로운 발견의 쾌감이고, 해방의 쾌감이다. 리링의 제안은 물론 우리가 가짜 공자가 아닌 진짜 공자, 살아있는 공자와 대면해보라는 것이다. 그 진짜 공자는 ‘집 잃은 개’라고도 불린 불우한 지식인으로서의 공자다.  

 

우리 번역본에서 흔히 ‘상갓집 개’라고 옮겨진 ‘상가구(喪家狗)’를 리링은 ‘집 잃은 개’로 풀이하는데, 이 말의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다. 공자가 정나라에 갔을 때 그의 행색을 보고 한 정나라 사람이 공자의 제자 자공에게 몹시 지친 것이 마치 집을 잃은 개와 같다고 말한다. 자공이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니 공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외모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 잃은 개 비슷하다고 말한 것은 맞구나, 정말 맞구나!” 춘추시대라는 난세를 살면서 이상을 펴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말년까지 여러 나라를 주유했지만 공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성공한 건 많은 제자를 가르친 것이며 그들로부터 깊이 존경받은 일이 그의 생애를 가치있는 것으로 조명해준다. 요컨대 진짜 공자는 “성인이 아니라 민간의 학자이자 사립학교의 선생님이었을 뿐이다.” ‘집 잃은 개’라고 불려도 자기 처지가 정말로 그렇다고 맞장구친 이가 바로 공자였다.  

베이징대 교수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의 대가로 통한다는 리링은 그런 공자의 모습을 재조명하기 위해 <상가구>란 책을 펴내는데 원래는 2004-2005년에 베이징대에서 <논어>를 통독한 수업 강의록이다(<상가구>도 ‘리링 저작선’으로 번역돼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제목이 주는 인상 때문에 리링은 원색적인 비난과 저열한 인신공격에 시달린다. ‘성인’을 모욕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가 <논어, 세번 찢다>를 연이어 펴낸 건 그런 비난에 대응하여 무엇이 오해인가를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의도가 없을 리 없다. “나의 연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사회에 불어닥친 복고의 광풍을, 거의 미친 듯이 보이는 이 기이한 현상을 겨냥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논어>를 이해하려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지침을 <논어, 세번 찢다>에도 적용해보자면, 이 ‘복고의 광풍’은 왜 문제가 되는가. 

리링이 ‘지난 20여년’이라고 지칭한 건 대략 1980년대 말부터다. 이후에 지금까지 중국에서 크게 성행하고 있다는 공자 존숭 현상은 리링으로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상식과 이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해서다. 무엇이 상식인가. 일단 공자가 계급사회의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논어>에서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이 한 구절에서 대구를 이룰 때 ‘사람’은 인텔리(군자)를 가리키고 ‘백성’은 대중(소인)을 뜻한다. 공자의 관심은 오직 군자와 관련이 있을 뿐이며 소인과는 무관했다.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건 마르크스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한 종교이지만 공자는 도덕적인 가르침만 남겼을 뿐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리링이 보기에, 공자에 대한 대중적 숭배는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논어>의 한 대목을 리링을 따라 읽어본다. ‘자로’편에서 ‘화이부동’이란 유명한 문구가 나오는 대목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동일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함을 추구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신영복의 <강의>(돌베개)에 보면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이다. 신영복은 그런 해석이 ‘화동론’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새로 해석한다. 이런 근거에서 ‘군자화이부동’은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여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소인동이불화’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는 게 옳다는 견해를 밝힌다. 종합하면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란 뜻이 된다.    

 

반면에 리링은 ‘화’를 상류사회에서의 ‘조화’란 뜻으로 읽으며 이것은 구별의 기초 위에서 추구된다고 말한다. 구별이란 차이이고 차등이다. 조화란 고양이와 쥐처럼 서로 다른 것을 한군데 섞어놓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그에 비하여 ‘동’은 하층사회에서 부르짖는 ‘평등’으로서의 ‘동’이다. ‘동’이란 남녀가 같고, 군관과 사병이 같다는 등의 사회적 평등을 의미한다. 군자는 이러한 동을 말하지 않으며, 묵자식의 ‘같음을 숭상함’은 공자가 보기에 소인의 도이다. 공자는 인(仁)을 말하지만 그 또한 구별과 차등에 근거한 사랑으로 평등이나 박애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리링의 주장이다. 요점은 ‘공자왈’의 신화를 걷어내자는 것이다. 일종의 ‘공자 바로 보기’다. 

그런 점에서 리링은 1919년 중국의 5.4운동 정신을 계승한다. 당시 ‘공자의 거점을 타도하자’란 구호를 그는 ‘전통의 단절’에 대한 요구로 이해하지 않는다. 실제 타도대상은 ‘공자의 거점(孔家店)’이 아니라 ‘주가의 거점(朱家店)’이었고, 이는 공자가 성전에서 내려와 제자백가로 되돌아가게끔 했다. 난세를 살았던 한 지식인이 공자 본래의 모습이며, 리링은 “내가 그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은 그를 지식인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인 공자’보다는 그가 제시한 ‘지식인 공자’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공자는 어느 쪽인가. 

11.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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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9-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쏙쏙 들어오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저희 애기는 벌써 콜록이랍니다.^^;

로쟈 2011-09-07 17:29   좋아요 0 | URL
네 조심하고 있습니다. 저는 10월쯤 되면 애를 먹곤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