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 불리는 미셸 우엘벡의 신작 <지도와 영토>(문학동네, 2011)가 번역돼 나왔다. 2010년 무려 공쿠르 상 수상작이다. 사실은 지난주말 연휴에 읽어볼까 해서 구입했지만 두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다. 좀더 일찍, 뜨거운 여름에(하긴 올여름엔 주로 비가 내렸던 기억밖에 없지만) 나왔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비 개인 날의 공황 활주로를 보여주는 표지 사진을 보면, 이건 딱 공항 대합실이나 기내에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란 인상이다(지도책과 같이 들고!). <지도와 영토>는 <투쟁 영역의 확장>(1994) 이후 다섯번째 소설인데, 나는 <소립자>와 <어느 섬의 가능성>은 언젠가 구입했지만(<소립자>는 두 번 샀다) 지금은 또 다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가까이 닿는 건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교환한 편지를 묶은 <공공의 적들>(프로네시스, 2010)뿐이다. 거기서 우엘벡은 자신을 "나는 허무주의자에다 반동적인 인물이며, 냉소적인 사람인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에 여성 혐오론자"라고 소개했다. '우파 아나키스트'로 분류해준다면 영광이겠다고 덧붙이면서. 하지만 몇 페이지 못 가서 "내 안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과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습니다"라고 토로한다. <지도와 영토>의 경우에는 '마음에 들려는 욕망'이 그래도 우세했던 모양이다. 읽을 시간은 없을 듯하지만 그래도 번역돼 나온 책들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책을 모아두기라도 해야겠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1년 09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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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들- 작가의 길을 묻는 28통의 편지
베르나르 앙리 레비&미셸 우엘벡 지음, 변광배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1년 09월 13일에 저장
절판
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1년 09월 13일에 저장
품절
플랫폼
미셸 우엘벡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11년 09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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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구입한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시대의창, 2011)를 만지작거리다 생각난 기사를 옮겨놓는다. 알게 모르게 많이 출간되고 있는 러셀의 책들에 두고 '버트런드 러셀, 그가 꾸준히 읽히는 까닭은?'을 묻고 있다(요즘 트렌드로는 조지 오웰도 같이 꼽을 만하다). 출판동향 기사인데,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가 예전에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하여>(미토, 2003)라고 나온 적이 있기에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한다. 사실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자체가 '지식의 문제'와 '자유'를 주제로 한 1971년의 두 차례 강연을 토대로 한 것이므로 '올드한' 책이다(하지만 2003년에 뉴프레스에서 재출간됐다고). 여전히 뭔가를 말해준다면 둘중 하나다. 이 책이 고전이거나, 우리시대가 아직도 러셀의 시대에서 나아진 게 없거나...  

교수신문(11. 09. 06) '앎'에 대한 치열한 탐구정신과 시들지 않았던 비판지성

1970년 2월 2일 타계한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 최근 그의 저작과 그에 관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그가 '꾸준히' 읽히는 배경이 눈길을 끌고 있다.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2011.7),『촘스키, 러셀을 말하다』(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시대의창, 2011.9),『러셀의 교육론』(안인희 옮김, 서광사, 2011.9) 등이 최근 출간된 책이다. 지난 봄에는 『런던통신 1931-1935』(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11.4)과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버트런드 러셀 지음, 로버트 E. 에그너 편,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11.3) 등이 소개됐다.   



"자칭 역사학의 아마추어라면서 몸을 낮춘 그가 역사학자들에게 슬그머니 도전장을 내밀었다"라고 말하는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는 전문 역사학자들에게 러셀이 한 수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장한 세계 역사를 길지 않은 분량의 글로 흥미롭게 녹여냈"을 뿐만아니라, "전문 역사학자들을 향해, 역사에는 이토록 재미있는 국면도 있노라고, 독서 대중에게 역사를 읽히려면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한수 가르쳐줄 기세다"라고 평가한다.  

러셀이 사망한 1년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추모강연을 했던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의 지적에서 '러셀'이 꾸준히 출판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자기 연구실에 러셀의 초상화를 걸어 두고 있다는 촘스키는 당시 강연에서 "러셀이 온 생애에 걸쳐 세상에 보여주었던 것은, '앎'이란 문제에 대한 치열한 탐구 정신과 생애 마지막 무렵까지 시들지 않았던 비판 지성이다"라고 헌사했다. 촘스키가 강조한 것은 러셀이 추구해온 '지식'과 '자유'의 문제, 달리 말하면 인식론 철학(인간은 어떻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가)과 정치사상(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세상을 추구할 것인가)이었다. "세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혁하고자 한 것, 그것이 바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한 일이었다."  

촘스키는 러셀이 사르트르와 함께 제안했던 '러셀 법정(Rusell Tribunal: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국제법에 따라 심판하자는 취지로 제시한 민간 법정)'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적절한 러셀 추모 방안이라고 말했다. 삶의 막바지 단계까지 학문 탐구와 자유를 향한 투쟁을 그치지 않았던 러셀을 촘스키가 따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철학을 전공한 안인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말에서도 왜 지금도 러셀의 철학이 필요한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안 교수는 "인간의 자유와 그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지성에 대한 정열, 사랑으로 인도되는 지식의 수용 등,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 고찰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안 교수가 말한 '근본적 고찰'이란 러셀이 말하는 '마음의 자유, 정신의 자유'이다. "오늘날 산적한 교육문제는 이와 같은 근본의 부재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하는 안 교수는 러셀에게서 그 '근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최익현 기자) 

11. 09. 13.  

 

P.S. 개인적으로는 학부시절에 <서양철학사>를 비롯해서 러셀의 책을 여러 권 읽은 기억이 있다. 요즘 다시 나오는 책들에 자극을 받아서 새로 나온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와 여타의 책들을 다수 구입했다.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가 시발점이 되겠지만 촘스키와 러셀, 혹은 지식과 지식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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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3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3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옮겨놓으려던 기사를 찾아 옮겨놓는다. 김기찬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 2011)에 대한 리뷰기사다. 평소 사진책에는 주목하지 않아서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방송대TV의 '책을 삼킨TV'에서 다룬다고 하여 알게 됐다. 정서적인 만족도로 치자면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지난 세대 한국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울의 풍경이라지만 골목안 풍경은 내가 살았던 지방도시들의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사진에 찍힌 얼굴들도 그렇다. 2005년에 타계한 작가에게 뒤늦게 경의를 표한다. 



한겨레21(11. 09. 12) 좁은 길 사이 펼쳐진 아름다운 가난

사진하는 동네 바깥에서 김기찬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름 석 자를 대면 “누구?” 하고 되묻거나 “최민식, 강운구는 아는데…”라며 겸연쩍어하기 일쑤다. 이럴 때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사진 봤는데” 하며 반색하거나 “작가 이름이 뭐랬지?”라며 자세를 고쳐잡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다. 나물을 손질하는 아낙, 숙제 하는 아이들, 잡담하는 노파들, 흘레붙은 똥개 한 쌍 등 1970~80년대 한국의 대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빈민촌 골목길의 살가운 풍경이 그의 사진엔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 공지영이 달동네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쓴 자전소설 <봉순이 언니>의 표지를 장식한 것도 1994년 김기찬이 찍은 서울 도화동 사진이었다.

 

집의 연장이자 소통의 공간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 펴냄)은 김기찬이 <골목안 풍경>이란 이름으로 낸 6권의 사진집과 미공개 유작 34점을 한데 모은 책이다. 실린 사진이 500점이 넘는다. 김기찬은 1968년부터 골목길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서울역 뒤 산동네인 중림동이 주요 무대였다. 처음 중림동을 찾던 당시를 회상하며 2003년 김기찬은 이렇게 적었다.

“1960년대 말. 사진 찍는 것이 좋아서 카메라 한 대만 달랑 메고 서울역전과 염천교 사이를 오가며 삶에 지친 사람들을 찍다 흘러든 곳이 중림동 골목이었다. …중림동은 참으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이다’라고 결정해버렸다.”(589~590쪽)

30년 넘게 사진을 찍는 동안 골목길의 바깥 풍경은 현기증 나게 변했지만, 골목안의 시간은 정지돼 있거나 아주 느리게 흘렀다. 1990년대 중반에 찍은 사진이지만, 그 안에 담긴 모습이 2000년대보다 1970년대와 더 닮아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88올림픽을 치르고,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임에도 골목길의 아낙들은 길바닥에서 누룽지죽을 나누고, 아이들은 몰려나와 고무줄을 넘는다. 이들에게 골목길은 여전히 집의 연장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이런 김기찬의 작업은 종종 최민식의 그것과 비교된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 도시의 가난이다. 최민식은 거리에서 조우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해 찍었다. 김기찬은 산동네에 머물며 골목길이란 공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최민식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사진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는 순간)을 포착해 가난한 자의 삶에 대한 애정과 가난을 방치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반면 김기찬은 가난의 고통보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쳐보이려 했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 윤일성은 ‘분노하는 자의 시선’(최민식)과 ‘그리워하는 자의 시선’(김기찬)의 차이로 구분하기도 했다.(‘도시빈곤에 대한 두 가지 시선-최민식과 김기찬의 사진 연구’)

김기찬에게 골목길이 그리움의 대상인 것은 그 자신이 산동네 골목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실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는 고백한다. “어렸을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 도심 한가운데, 빌딩숲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우리들의 고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삶이 힘겹고, 딛는 땅이 비좁고 초라해도 골목안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인정이 있고, 끈질긴 삶의 집착과 미래를 향한 꿈이 있다.”(33쪽)  

공동체를 향한 불멸의 소망
물론 가난한 자들의 삶이 왜 훈훈하고 아름답기만 했겠는가. 골목길은 세상의 모든 슬럼이 그러하듯 더럽고 냄새나고, 다툼과 악다구니가 넘쳐나는 비루함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기찬의 골목길 사진에서 남루와 비참의 기운이 풍겨나지 않는 것은 사진을 찍는 자의 마음과 시선이 부드럽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찾던 서울의 골목길이 급격한 재개발로 하나둘 사라지고 ‘제2의 고향’인 중림동마저 1997년 철거됐을 때, 작가의 그리움은 물리적 대상을 잃고 부유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말년의 작품 활동이 골목을 떠난 사람들의 변화한 모습을 담는 데 바쳐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소설가 신경숙은 “과거에 묶여 있는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주고자 한 노력”(478쪽)이라고 평가했지만, 평생의 업으로 삼으려던 작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작가의 슬픔이 화면 곳곳에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중림동 산동네가 사라지고 8년 뒤인 2005년 김기찬도 죽었다. 68살이었다. 도시연구자 김형국이 “사람이 한반도 땅에 정착해서 집단 취락을 이룬 이후 줄곧 이어져온 유구한 역사의 공간 양식”(228쪽)이라고 평한 골목길도 그 사이 서울과 대도시에선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이로써 골목길은 그리움의 대상에서 애도와 멜랑콜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골목길에 투사됐던 ‘공동체’를 향한 도시인들의 소망은 시간이 흘러도 소멸되지 않으리란 점이다. 이미 김기찬의 사진 속에서 그것은 ‘부재하는 현존’이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불멸의 삶을 획득하지 않았는가.(이세영 기자) 

11.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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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9-1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울에 30년을 살고 미국 온 사람인데 요즘 서울의 모습을 보면 한편 슬프고 한편 화가 납니다.

도시 개발을 이런 식으로 싹 밀어버리고해야 되는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아예 없어졌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곳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부 아파트로 되어 버렸고. 서울은 과거를 지우고 사는 곳입니다. 무식한 놈들이 서울 행정을 맡고 있는 탓이죠.

위의 사진을 보고 슬픈 생각이 나서 한자 적었읍니다. 김기찬은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만 아주 귀한 사진을 남겼군요.


로쟈 2011-09-13 09:58   좋아요 0 | URL
재개발 덕분에 먹고 살게 된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걸로 정치도 하고...

파란놀 2011-09-14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무라 이헤이, 토몬 켄.
이 두 사람을 나란히 읽어 본다면,
사진책이 '책'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느끼면 돼요.

로쟈 2011-09-14 17:58   좋아요 0 | URL
검색이 안되는 저자들인데요. 번역돼 있나요?
 

김기찬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 2011)에 관한 리뷰기사가 생각나 한겨레21을 찾아갔다가 읽은 건 '신형철의 문학사용법'이다. 몇번 옮겨놓은 적이 있는데, 박형준 시인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 2011)에 대한 감상도 '짠'한 데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21(11. 09. 12) ‘천진하게’와 ‘물끄러미’의 어긋남

8월30일 오후 4시경 서울 상수동의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은 나는 그 뒤로 거의 2시간 동안을 한 편의 시만 읽고 또 읽게 된다. 하필 맨 처음 펼친 시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문제의 그 시는 박형준의 새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이다. 그렇게 2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시인에게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제작만 몇 번을 다시 읽는 중입니다. 가슴이 아파요. 이런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읽겠습니다.” 그 시를 옮긴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총 10연으로 돼 있는 시의 전반부다. 뒷이야기는 이렇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여기까지다. 나는 이 시의 묘미가 부사(副詞)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복기했다.

반지하방에 사는 사내가 있다. 사과나무에 “간신히” 열매가 맺힐 때 그에게도 “간신히” 사랑이 왔다. 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래서 여자는 허리가 아팠다. 여자가 한동안 오지 않는다. “때 이른” 낙과처럼 “때 이른” 이별이 오려는가. “하지만” 사내는 여자를 기다린다. 요를 사두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면 요를 깔고 사랑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는 왔다. 이 “물론”은 절묘하다. 두 개의 뉘앙스가 함께 있어서다. (1)그래,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사랑은 뜻대로 되는 거지! (2)이 답답한 사내야, “물론” 오기야 하겠지, 그러나 그런들?

언뜻 (1)인데 결국은 (2)였다. 사내는 요를 깔고 “천진하게” 웃지만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녀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선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영영 떠났다. 사내는 지금 사과나무를 보며 울고 있지만, 뭘 알기는 하고 우는가? 요 하나가 방을 다 채울 만큼 작은 그의 방이 문제였다는 것을, 사랑하는 여자를 침대에 눕히지도 못하는 그 가난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런 줄을 모르는 이의 간절함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잔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 시는 결국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라는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니, 더 짧게는, “천진하게”와 “물끄러미”의 어긋남에 모든 게 들어 있다. 사내가 창피해했거나 화를 냈거나 혹은 허세라도 부렸다면, 그녀는 희망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내는 “천진하게” 웃었다.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이 사내는 바뀌지 않겠구나, 나는 이 천진함을 견디지 못하겠구나, 결국 이 사내를 미워하게 되겠구나. 그러니 그녀의 “물끄러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을까.

그날 저녁에 사람들을 만났고 이 시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의견이 갈렸다. 요를 산 뒤부터의 이야기는 남자의 슬픈 환상인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 여자가 오기는 했으되 다른 여자가 아니었겠느냐고 짐작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 물었다. ‘생각날 때마다 우는’ 남자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나는 되물었다. 허리가 아프다 했더니 침대가 아니라 요를 사는 남자가 슬퍼서 떠나는 여자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여하튼 너무 슬픈 시라고 투덜거리며, 우리는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쳤다.(신형철_문학평론가) 

11. 09. 11.   

P.S. 시를 읽으며 떠올린 건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란 구절로 시작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마무리되는 시이다. 예전에 학원에서 중학생들한테 국어를 가르칠 때, 지문에서 나올 때마다 왜 이런 시가 교과서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었다.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너무 '노골적'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가난하면 사랑도 버려야 한다'는 게 이 시의 '교훈' 아닌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도 비슷한 싱숭생숭함을 느끼게 한다.  

한편, '천진하게'와 '물끄러미'의 대조를 읽어낸 이 칼럼에서 평론가가 준비한 비장의 부사는 물론 '경쾌하게'다. 그리고, '여하튼'. 여하튼 경쾌하게! 칼럼에는 이 '너무 슬픈 시'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1)가슴이 아파요. 이런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우리는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쳤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여하튼 남은 연휴를, 골목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처럼 경쾌하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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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진하게'와 '물끄러미' 그리고 '경쾌하게'가 서로 어긋났던 기억이, 추억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그 무수한 '심심하게'들이 생각납니다ㅎㅎ 명절이라고 마땅히 갈 데도 없는 저 같은 '심심이'를 위해 좋은 글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석 잘 쇠세요~^^

로쟈 2011-09-12 14:59   좋아요 0 | URL
마땅히 갈 데가 있다고 덜 심심한 것도 아닌데요.^^ 연휴 잘 보내시길...

서투른_독서 2011-09-12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을 누일 방이 절실했던 대학시절, 눅눅하고 어두워 심장까지 축축해져버릴 것 같던 자취방이 생각나네요. 한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불안을 껴안고 잠들어야 했던 그 시절... 다리를 뻗으면 허술한 문에 엄지발가락이 닿았던 고시원과 자취방... 그래도 그때는 가난이 수치의 대상이 되지 않아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굳이 시인의 말이 아니어도) 눈물이 나네요. 이 시대의 대학생,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밤입니다.

로쟈 2011-09-12 15:00   좋아요 0 | URL
세월이 더 좋아져야 정상인데요..^^;

singing 2011-09-15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며 감동한 저는...;;;ㅠㅠ 저라면 감동했을 듯해서.. 제가, 이래서 안된다니까요;;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그림자마저 생생한 요라니..젊은이가 해줄 수 있는 것의 최대치가 요라서 그 사랑의 생생함인지, 요에 함축된 어쩔 수 없는 가난의 생생함인지..(그림자라니 후자쪽?)
암튼 아픈시네요.. 아프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추석 연휴에 묻히게 됐지만 오늘은 9.11 테러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에서 나온 관련서들이 그래도 조만간 몇권은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서로는 이슬람권 전공자들이 쓴 <이슬람>(청아출판사)이 9.11 이후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책으로 돼 있다. 그밖에 어떤 책들이 있는가란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도 생각나는 대로 몇권을 주워섬겼는데, '추천서'라기보다는 '관련서'로 든 것이었다. 지난주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11. 09. 03) '추악한 전쟁' '경도와 태도' 등 읽어볼 만

"글쎄요. 아직 번역 안 된 해외서적 가운데는 읽을만한 게 더러 있긴 한데." 중동전문가인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부교수는 9ㆍ11 테러와 이후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다소 망설이는 눈치였다. 전문가의 머릿속에 이거다 하는 책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국내의 관련 도서층이 빈약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뜸을 들인 뒤 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3권. 우선 미국 abc방송 기자 존 쿨리가 쓴 <추악한 전쟁>(이지북 발행)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지원한 이슬람 테러 조직이 결국 미국에 칼끝을 겨누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경도와 태도>(21세기북스). 9ㆍ11을 전후해 자신이 쓴 칼럼과 일기를 모은 책으로 9ㆍ11로 자살을 감행한 이들은 누구이며 이슬람 세계는 왜 이들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 미국인들은 왜 분노의 표적이 됐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펼쳐져 있다. 최근 출간된 <진리를 향한 이정표>(평사리)도 추천 목록에 들어갔다. 이슬람 과격파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이드 쿠틉이 옥중 집필한 책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념 구조를 알 수 있다. 



인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활발한 서평활동을 하고 있는 이현우씨는 슬라보예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테러리즘의 정신>(동문선), 테리 이글턴의 <성스런 테러>(생각의나무)를 추천했다. 9ㆍ11과 테러의 이면에 도사린 철학적인 문제들을 짚어본 책들이다. 지젝의 책은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인간사랑)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출간됐으나 절판된 것을 이씨 등이 새로 번역해 낼 계획이다. 지젝은 책과 같은 제목의 창비웹진 투고에서 9ㆍ11로 분명해진 것은 '이런 폭력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미국이 이제 직접적으로 이런 폭력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슬람 역사서로는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가 쓴 <이슬람문명>(창비), 레바논계 프랑스 소설가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아침이슬) 정도가 많이 읽혔다. 최근 출간된 미국 저술가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뿌리와이파리)도 반응이 좋다.(김범수기자) 

11. 09. 11.  

P.S.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 대해선 작년에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연재를 통해 다룬 바 있는데, 내달에는 이 연재를 묶은 단행본과 함께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나는 새 번역본 출간을 제안하고 감수를 맡았다). 나름대로 9.11 10주년의 의미를 생각해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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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9-1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개정판이 나온단 말씀이시죠?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과 엮어 필히 업어와야겠네요!^^

로쟈 2011-09-12 15:01   좋아요 0 | URL
네, 10월중엔 나올 듯해요. 독촉을 받고 있으니.^^;

쉽싸리 2011-09-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연재하신 지젝관련 글을 책으로 내신다니 반갑습니다. 연재를 초반에 좀따라가다가 놓쳤었거든요. 아무래도 책으로 엮여야 든든한거 같아요.^^

로쟈 2011-09-12 15:0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헌내 2011-09-1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재번역이라...ㅋ 기대됩니다!!!!

로쟈 2011-09-12 15:02   좋아요 0 | URL
네, 이번엔 많이 읽히면 좋겠어요...

singing 2011-09-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또 나오는군요 ^^ 책꽂이에 로쨔쌤컬렉션 자리도 마련했겠다, 이제 준비할 건 질끈머리끈이네요ㅎㅎ. 연재를 미처 따라가지못하구 주저앉았는데...
보드리야르도 어려웠구...겁은 나지만 도전!!^^..

2011-09-1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8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