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책세상

이번달 출판문화(550호)에 실은 출판 칼럼을 옮겨놓는다. 주제에 대해서 고심하다가 '책중독자가 보는 책의 미래'에 대해 썼다. 원고를 써야 할 때쯤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돌베개, 2011)이 손에 잡히기에 읽은 게 빌미가 됐다.   

  

출판문화(11년 9월호)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는 질병, 책중독자

지난 7월에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교보문고, 2011)를 빌미로 ‘책으로 읽는 책세상’이란 주제를 다룬 바 있다. 구텐베르크 혁명의 결과이기에 ‘구텐베르크 은하계’로도 불리는 책의 지배적 형태가 전자책(e-book)으로 변화 혹은 진화해 갈 것인가가 책의 미래에 관한 핵심 쟁점이다. 책이란 말이 붙긴 했지만 ‘전자책’이 과연 책의 변신인지 아니면 책의 종말인지, 의견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그런 의견의 평균치나 평균적인 전망보다 더 궁금한 건 ‘책중독자’들에게 책의 미래가 어떻게 비칠까 하는 문제다. “책 없인 못 살아!”라고 외치는 책중독자들이 적어도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더 많은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의 고뇌를 보통사람들의 경우보다는 더 무겁게 평가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책중독자를 자처하는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독베개, 2011) 후기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문제가 책의 미래이면서 책중독자의 미래다. 때로 혹은 허구한 날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살짝 몸이 달아오르는” 책중독자들이 흠모하는 것은 물론 종이책이다. 책의 대명사로서의 종이책, 두께와 질감과 중량을 갖고 있는 책 말이다. 서점 혹은 책방이란 이 책들이 차려 자세로 진열된 공간이며, 책중독자란 기본적으로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자들이다. 이 책중독자들의 기본 영역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책을 사서 쌓아두는 것, 그리고 책을 읽는 것. 전자책이 대세를 차지하는 책의 미래라면 이런 기본적인 영역의 ‘구조변동’을 의미한다.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책의 구입은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운로드받는 것을 뜻하고, 독자는 손바닥 크기의 디지털 독서 기기를 주머니에 꽂아가지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니 독자가 아니라 ‘최종 콘텐츠 사용자’들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 책중독자들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 세상은 더 나쁜 세상은 아닐지라도 뭔가 다른 세상이며, 그 다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책중독자란 종도 도태되거나 멸종될지 모른다.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이미 많은 동네서점이 문을 닫은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옛날 옛적에 책이라면 종이책밖에 모르던 책중독자들이 있었더라……”    

사실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이미 생활의 기본 영역에서 빠져나간 지 오래다. 톰 라비는 1995년 즈음만 해도 다른 사람과 ‘우리의 사랑스러운 보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에벌린 워의 초기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정신적인 피붙이를 만나기까지는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이 걸리곤 했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나도 워의 소설 <한줌의 먼지> 같은 걸 읽지 않았기에 그의 말상대가 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런 고충에 대해선 맞장구를 쳐줄 수 있다. 책중독자용 수다를 요즘과 같은 대형서점에서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정은 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책방들의 사정이 예전에 크게 나았던 것도 아니다. 책방 주인 내지는 서점 직원과 책에 대한 수다를 나눠본 건 개인적으로도 서점 순례 경력이 30년이 넘지만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수다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을 만났을 때나 가능한 편이고, 대개는 온라인의 북커뮤니티를 통하는 게 빠르다. 다시 라비의 말을 옮기면, “문학에 관한 대화의 공간인 아마존닷컴이나 반즈앤노블닷컴, 또는 수많은 다른 웹사이트를 이용함으로써, 부지런한 ‘마우스질’로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고픈 욕구를 실컷 채울 수가 있다.”  

분명 그렇게 독서환경이 바뀌었다. 하기야 그런 변화된 환경이 아니었다면 나도 ‘인터넷 서평꾼’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비도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사실상 문학적 신실함을 증명해주는 거라곤 주변에 엄청나게 쌓아놓은 책 더미 외에는 없는 평민 책중독자가 자신의 초라한 신분을 넘어서 진정한 서평가가 될 수 있다.” 바로 인터넷 시대에는! 여기서 라비가 ‘평민 책중독자’라고 한 것은 본래 책중독이 상당한 재력과 서가공간을 필요로 하는 아주 ‘비싼’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서양 귀족들은 유명한 애서가가 세상을 떠날 경우 그가 남긴 장서를 모두 사들이는 게 관습이었다고 한다. 비좁고 불편한 책방에서 서성거리며 어렵게 책을 골라낼 필요도 없고, 일반 대중과 섞이는 일도 없으니 여유만 된다면야 아주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책방의 책을 모두 갖다달라고 하고선 “내가 원하는 건 갖고 나머지는 넘겨주겠소”라는 식으로 말했다. 예컨대 영국인 독서가 리처드 히버는 앉은자리에서 3만권을 사기도 했다고. 물론 그런 건 보통 사람들, 곧 평민들로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책중독자는 대개 재산가들이었다. ‘평민 책중독자’의 등장은 값싼 페이퍼백 혁명 이후의 일이다.  

분류하자면 나 또한 책중독자이다. 더 나쁘게는 평민 책중독자. “돈이 생기는 대로 우선 책을 사고 그다음에 옷을 사 입으리라”고 한 에라스무스의 말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면에서도 그렇고, 라비가 제시하는 책중독자 테스트 항목을 체크해보아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25가지 항목 가운데 ‘책을 몇 권이나 샀는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다’거나 ‘책을 사들이는 것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이 있다’, ‘책방 직원이 찾지 못하는 책을 당신이 찾아낸 적이 있다’ 등은 주저 없이 ‘예’에 해당하고 ‘책을 읽다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는 비록 해당사항이 없기에 ‘아니오’라고 답하지만 카드로 책값을 돌려막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던 경험은 해고나 징계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책중독자가 ‘되는’ 게 아니라 책중독자로 ‘태어나는’ 거라고 하면, 가족 중에 유독 나 혼자만 책중독에 빠진 걸로 보아 유전적 돌연변이인 것 같기도 하다(유감스럽게도 과학계는 어떤 유전자가 이 질환과 관계가 있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라비의 정확한 지적대로 대부분의 책중독자는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치유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영혼을 들어올릴 수 있기 전에, 우리는 중독이라는 시궁창에서 나뒹굴어야 한다.” 이게 치유법인가? 그렇다. “책 사는 데 돈을 몽땅 쏟아부어 고통과 죄책감을 일으킬 때까지 책을 사들어야 한다.” 그런 고통과 죄의식의 밑바닥에 도달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도움과 구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니, 이건 어떤 필연의 여정이다. 라비의 충고는 이렇다. “책을 많이 많이 사들여라. 그래서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는 질병이란 점에서 책중독은 사랑의 열병을 닮았다. 역사적으로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사람 실베스트르 드 사시는 “아, 내 사랑하는 책들!……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라고 부르짖곤 했단다. 전자책에 대한 책중독자들의 거부감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책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라는 식의 기분을 갖게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책중독자는 신기술을 반대하는 ‘러다이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과는 무엇인가. 책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사들여서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서가에서 빼내 냄새를 맡으며 훌훌 넘겨보다가 일부분을 읽고는 다시 꽂아두거나 쌓아둔다. 그러고는 다음날도 똑같을 일을 반복한다. 라비에 따르면, 굳이 라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것이 “우리 책중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련의 이벤트와도 같다.” 하지만 이제 ‘책의 미래’와 더불어 진정한 책중독자의 시대도 종말을 고할지 모를 일이다.  

사실 “아아, 결국 우리는 죽으리라”는 운명이 유별난 비애감을 자아내는 건 아니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애서가의 경우도 특별하지 않다. 책을 사랑하던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도래할 뿐이다. 사랑의 대상이 반드시 종이책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세대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달라질 수 있으니까. 세살 때부터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며 자라는 다음 세대에게는 전자책이 특별한 에로티시즘의 대상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책의 형태는 비록 달라질지라도 ‘읽는다’는 독서 행위는 적어도 당분간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1)에서 저자는 “내가 읽었던 책들과 나의 이전 자아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아를 형성시키는 이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적었다. 이 읽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빛이 사라지고 밤이 드리워질 때까지, 더는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읽게 되리라.”   

11.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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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9-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핫! 아코, 죄송합니다. 집사람하고 글을 읽다가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카드로 책값을 돌려막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던 경험은 해고나 징계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에서 둘 다 유쾌하게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마침 책이나 사서 읽으라고 들어온 '축의금(?)'-한 30만원가량 됩니다.-을 정말 책 사는데 다 쓸 것이냐고 옥신각신 중이었거든요. 집사람은 10만원만 쓰라고 못을 박았고, 저는 최소 5만원은 더 할당해줘야 한다고 연좌투쟁(?)중이었거든요. 덕분에 희망(?)이 보였습니다.^^ 여전히 바쁘시죠? 시험기간도 다가오네요.

로쟈 2011-09-20 23:13   좋아요 0 | URL
빵가게님도 얼른 책으로 수입원을 찾으셔야겠습니다. 원고료로 책값을 충당하는 게 한 방법이긴 해요...

미국사람 2011-09-2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러 다니는데 미친 놈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위안이 가는 그런 글입니다.

빵가게 님은 마누라 님의 바가지를 어떻게 견디어 내는지 궁금하군요. 하긴 여기 눈팅하는 분들도 그런 분이 많을듯...


로쟈 2011-09-20 23:12   좋아요 0 | URL
책중독자 연합회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Daniel 2011-09-20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심히 공감되어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저에겐 위로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1-09-20 23:10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합니다.^^

singing 2011-09-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글 없이 칼럼만 읽어도 바로 선생님 얘기란걸 단박에 알겠는걸요.ㅎㅎ
저도 읽다 웃음났어요..(웃을일 아녔나?^^)
어중간세대인 저로서는..아... 어두운 책의 미래는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로쟈 2011-09-20 23:10   좋아요 0 | URL
신용불량자 얘긴 책세상에서도 한 기억이 있는데요.^^;

Songbi 2011-09-2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민 책 중독자 하나 추가요^^ 왜 책장을 사도사도 이중삼중으로 꽂아도 자리가 없는 걸까요?? 서점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새 책 냄새에 짜릿한 황홀함을 느끼는 1인... 이보다 더한 쾌락이 어디 있을지... 얼마전에 과제로 이블린 워 단편 번역했었는데 재미있더군요ㅎㅎㅎ

로쟈 2011-09-20 23:09   좋아요 0 | URL
'이블린 워'가 왜 '에블린 워'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재밌게 지내시군요.^^

park6 2011-09-2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냄새를 맡으며 훌훌 넘겨보다가..." 이 구절을 읽고 킥킥 대면서 웃었습니다. 저도 습관적으로 책 냄새를 맡거든요. 그러다가 혹시 누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주위를 둘러보지요ㅎㅎㅎ

로쟈 2011-09-24 09:48   좋아요 0 | URL
일종의 페티시즘이죠.^^;

우리시온 2011-10-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유익이 되는 책위주로 선택하며 읽고 있습니다
특히 서점에 가면 인문한 책들을 주로 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책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는 ...일부러 종교를 언급하고 싶지않지만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책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책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수천년동안 사십명의 이상의 저자가 만들어진 <책중의 책>입니다
로쟈님과 그의 열혈 독자들에게 정중히 권해 드립니다
무종교이면 그냥 책들의 하나로서 읽으시면 됩니다
참고로 저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더 전진하고 진전된 곳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책중독자>이기 때문에 가눙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많습니다!

로쟈 2011-10-22 09:10   좋아요 0 | URL
같은 중독자라니 반갑습니다.^^

가명 2020-09-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라비 <어느책중독자의고백> 업데이트: 일하는 척 하면서 서류 사이에 구멍을 뚫어 책을 읽을 필요는 이제 없습니다 우리에겐 전자책이 있습니다!

가명 2020-09-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요한건 단지 알트 탭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책 두 권이 최근에 나왔다. 22명의 한국인이 쓴 <한국학의 즐거움>(휴머니스트, 2011)과 벽안의 한국학자가 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2011)가 그것이다. 전자는 구입했고 후자는 주문을 넣을 참인데, 소개기사도 찾아서 미리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9. 17)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 펴낸 이만열 교수

이 땅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다. 생활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이주민이며,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종교인, 학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학자 등 그 삶의 양식도 다양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문학의 부활과 교육의 개혁이라고 외치는 이방인이 있다. 이만열 (47·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최근 낸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펴냄)에서도 그의 지론은 또렷이 드러난다



책의 부제는 ‘하버드 박사의 한국 표류기’. 부제 그대로 예일대와 타이완국립대, 도쿄대, 서울대에서 한·중·일 3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한국의 대학 교수로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풀어낸, 일종의 한국 사회 비평서다. 그중에서도 교육과 인문학 부분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겨냥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주문이 매섭다. 서울신문사 편집국에서 만난 그의 일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분명히 중국, 일본과는 다른 친화의 사교력을 갖고 있어요. 큰 장점이지요. 미국,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을 비롯한 한류가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과학 기술은 구석구석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우수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 “한국은 전쟁 후 압축성장을 통해 기적과도 같은 지금의 모습과 역량을 일궜지만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해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외형의 성장에 매몰된 내적 가치의 소멸은 성장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란 주장이다.

숭산 스님에게 감화돼 한국 선불교에 귀의해 지금은 독일에서 선원을 이끌고 있는 현각 스님과는 예일대 동기.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뒤 한국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었다는 점도 두 사람이 갖는 공통점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에 빠졌고, 나는 한국 유교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과 한국 문화가 좋아 살고 있는 점은 같지만 한국의 지식인으로 살고 싶다는 점은 현각과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낳은 1남 1녀도 모두 국제학교가 아닌 한국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을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는 멀리 있는 명제가 아니라 당장 부대끼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도 더 멀리 보고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아량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한’은 크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나라가 돼야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은 큰 문제라고 거듭 말한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하버드대 박사학위의 주제도 ‘중국의 통속소설이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이었다. 한국 문화는 고전, 현대를 가리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뛰어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외국에 알리려 들지도 않는 점이 항상 아쉽단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도 ‘시원하다’는 표현을 쓰고, 친구를 ‘웬수’라 부르는 반어법은 한국 문화의 유연함과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는 큰 단초이지요.” 미래의 학문과 관심 영역이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이 교수. 시대에 머물지 않는 세상의 순환 원리며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이야말로 한국의 찬란한 자산과 문화유산을 새롭게 부활시킬 지렛대라고 말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지요.” (김성호 편집위원)   

한국일보(11. 09. 10)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 한국문화…

어제 회식에서는 삼겹살과 소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도 남았지만, 아니다 다를까 된장찌개에 공기밥 없이 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추석 차례상을 물리고 한 상 차린 음식 다 먹고 난 뒤에도 역시 나물 반찬에 밥 한 술 뜨지 않으면 한 끼 못 먹은 게 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도 밥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이지만, 그네들은 쌀이 아닌 밀이나 메밀로 만든 면도 아주 즐긴다. 한국인에게 밥은, 특히 새하얀 쌀밥은 말 그대로 은유적 의미 하나 안 보태 '생명'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학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22가지 스케치를 담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함이라고 해도 좋고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 박은 사고방식, 행태라고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소묘다. 철학이나 종교, 마음, 사랑을 주제로 풀어놓은 글이 있는가 하면 음식, 건축, 미술 이야기가 있고 과학, 의학, 경제, 역사도 다룬다. '한류'의 본령이라 할 한국 드라마, 영화가 지닌 정체성을 탐구한 글도 있다.

밥 이야기를 좀더 해 보자. 민속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의 음식'이라는 글에는 1890년대 주막에서 개다리소반을 받아 식사하는 도포와 갓 차림의 남자 사진이 등장한다. 밥상 위에는 밥그릇, 국그릇과 김치 보시기, 간장종지, 장아찌, 나물, 콩자반 등을 담은 접시 등 모두 8개의 그릇이 놓여 있다. 인상적인 것은 밥그릇, 국그릇의 크기다. 밥그릇은 높이가 9㎝, 입의 지름이 거의 13㎝ 정도 되고 거기에 밥을 가득 담았다. 요즘 세 끼 분량쯤 된다. 국그릇은 더 크다. 주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피난기인 <쇄미록>에는 전쟁통인데도 불구하고 '한 끼'에 7홉(420g)의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였다는 것은 선교사 등 외국인의 기록에도 제법 등장한다.

주 교수는 이를 '조선 사회가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먹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들은, 늘 먹을 게 모자라 소식(小食) 문화를 정착시킨 에도(江戶) 시대 일본인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종교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쓴 소리로 시작하는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글도 읽어 볼만하다. '한국 종교는 망해야 산다'고 줄곧 이야기 해온 최 교수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종교의 순기능과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정말 특이한 것은 '공간적으로 동서양의 대표 종교가 다 들어와 비슷한 세력으로 각축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고대 종교와 현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다같이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가 없다는 거다.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영화도 물론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는 '한국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안 봐도 줄거리가 뻔하다'는, 그러면 당연히 재미가 없어야 할 한국 드라마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맛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톡 쏘아서 눈물 쏙 빼고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청양고추'의 맛에 비유했다. 뼈대는 엉성하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살들이 매우 맛깔스럽고 풍부하며 매력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쉽게 분석되는 뼈대의 취약성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각 부분이 선사하는 여러 풍부한 매력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을 계속 재미있게 보게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 근저에 자리잡은 한(恨)의 정체를 더듬거나(시인 장석주), 근대화 이후 주류가 된 일국사 중심의 역사서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보자(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문제제기도 있다. 광복 이후 한국식 경제 성장의 특징을 요약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지금 한국 경제는 그 같은 믿음과 분노의 상호작용으로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학'이라는 학술적인 용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이 책이 앞으로 한국학 논의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글은 비슷한 체제를 따랐다기보다 그냥 필자들의 단상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재미가 난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한 작은 대답을 이 책이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김범수기자) 

11.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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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말 북리뷰를 훑어봤는데, 모르는 새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관심도서는 이미 구입했거나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으니 일은 덜었다. 그래도 주말기분을 낼 수 없으니 좀 아쉽다. 대신에 오랫동안 미뤄둔 책들이나 주문을 넣었다(루카치의 미학 같은 책). 이주의 이슈도서는 석유고갈 시대를 다룬 <장기비상시대>(갈라파고스, 2011)다. 이 역시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석유 문제를 다룬 책들과 엮어서 읽어보려고 한다.  

  

한겨레(11. 09. 17) 석유 고갈 시대 그린 ‘21세기판 신곡 지옥편’

미국인 지은이의 이름을 보지 않고 책을 펼쳤다면 한국 웹사이트 토론방의 논객이 쓴 것으로 착각할 만한 책이다. 석유 문제를 꾸준히 주목해온 사회비평가인 제임스 하워드 컨스틀러의 책 <장기비상시대>는 신랄하고 통쾌하고 그리고 음울하게 석유 고갈 이후의 시대를 조망한다. 자기네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속으로는 강한 이스라엘을 원하는 아랍 나라들, 이를 묵인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가면놀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를 펑펑 쓰는 미국 시민들에 대해서도 ‘합의된 집단 최면상태’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 감각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석유 없는 세상’을 뜻하는 제목 <장기비상시대>에 ‘장기’란 말이 붙은 것은 그 어떤 대체에너지도 석유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 태양력, 풍력은 사실상 석유에너지로 만들어진 핵연료나 전지 등을 사용하는 석유에너지의 연장선인 탓이다.

석유는 지구가 만들어낸 거의 완벽한 고효율 에너지다. 방수재료 정도로만 쓰이던 석유가 1850년부터 본격적으로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대전환을 맞았다. 석유에 힘입어 각종 산업이 막대한 부를 만들어내면서 19세기 중반 10억명이던 지구 인구는 200년도 못되어 70억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인간에게 자신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체이며 과학기술은 한계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지은이는 통박한다. 그리고 석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지금도 정치인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뭐 어떻게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기대감에 취해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은 석유가 가져다준 환상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또 정치·경제적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석유 때문에 시작된 전쟁이며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왜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는지를 시대순으로 조명한다. 또 석유가 가져온 이 풍요의 시대가 지금 어떻게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국제경제, 지역경제, 환경, 보건 등의 관점으로도 살펴본다. 특히 석유 잔존량의 60%가 매장돼 있는 중동 국가와 미국의 유착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은 국제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기자 출신답게 풍부한 예시를 보여주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지은이는 석유시대 이후 세상인 장기비상시대가 이미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 유전은 시추량의 80%가 바닷물인 상황이고, 영국의 북해 유전은 2005년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50%나 줄어드는 등 석유 고갈의 징조들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비상시대는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인류가 앞서 겪었던 세계대전이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석유를 둘러싼 미래 전쟁에 견주면 축구경기 수준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강조한다. 석유가 예상보다 빨리 고갈될 경우, 가스와 전기가 끊긴 고층 건물들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고,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도시 주변의 타운하우스들은 빈민가가 되며,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많은 이들이 농업에 다시 종사하는 신봉건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2005년 이 책이 나왔을 때 미국 언론들은 ‘21세기판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권은중 기자) 

11. 09. 17. 

 

P.S. 석유 고갈 혹은 종말 문제를 다룬 책들을 골랐다. 조금 더 가벼운 분량으로 다룬 책들도 몇 권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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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398호)에 실린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고른 건 조선시대 세계지도다. 관련서가 많지는 않지만 요긴한 책들이 몇권 있어서 골라보았다.   

책&(11년 9월호) 우리 지도에 담긴 세계의 인식 

세계란 무엇인가?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대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질문이다. 세계사, 곧 세계의 역사라면 ‘세계’라는 단위 혹은 개념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이 세계라는 개념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가 하는 문제는 늘 품고 있는 관심거리다. ‘세계’란 말 이전에도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면 이건 철학적인 문제로도 비약한다. 주로 다양한 종류의 세계사가 이런 물음을 촉발하는데, 방향을 조금 틀어서 ‘세계지도’는 어떤가란 흥미도 생겼다. 세계에 대한 공간적 표상으로서 세계지도는 말 그대로 세계를 그린 것이니까 세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아주 직접적인 자료이다.  

오지 도시아키의 <세계지도의 탄생>(알마, 2010)은 그런 관심에서 손에 들 만한 책이다. “지도가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데, 특히 세계지도에 대한 저자의 기본 관점은 유익한 지침이 된다. 지도의 구성요소로 과학성‧실용성‧사상성‧예술성 네 가지를 드는 그는 현대 지도에서는 과학성과 실용성을 중시하지만 사상성과 예술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도의 역사 자체가 사상성‧예술성에서 과학성‧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천해왔다. 그것을 저자는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지도’로 변화해온 것이라 정리한다. 세계도와 세계지도를 개념상 구분하는 것이다. 세계도에서 세계지도로의 변화가 곧 ‘세계도의 근대화’이다. 이러한 근대화를 선취한 것은 중세 이슬람의 이드리시 세계지도이지만, 세계도의 근대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이며 이를 주도한 나라가 포르투갈이었다. 1502년에 제작된 칸티노 세계지도는 지도에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알리는 지표이기도 했다.   

세계지도가 그러한 탄생사를 갖는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지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이 분야의 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개리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는 발군의 저작이다. 단행본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세계지도학계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지도학의 역사를 조명한 <세계지도학 통사>(전8권) 가운데 ‘한국 지도학’ 편에 해당한다. 한국 지도학의 발달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을 뿐더러 서구 학계에 한국 전통 지도학을 알리는 데 기여한 저술이다. 저자는 전통시대에 한국문화가 중국 문명에서 많은 것을 빌려 썼고 지도학도 예외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중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고 말한다. “중국 문명이 지도제작 기술을 주도했지만, 한국의 지도는 이 관계로만 정의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 문명 내부의 위대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단히 쓸모 있는 매개체이다”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왕조 초기인 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보통 <강리도>로 칭해지는 이 지도는 동아시아 지도제작 전통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는 남아 있지 않고 몇 개의 사본만이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류코쿠대학 소장본으로 레드야드는 14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1480-1534년 사이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도 있다). <강리도>는 14세기 중국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중국‧한국‧일본 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도를 연구해서 통합적으로 만든 지도이다. 레드야드에 따르면 이런 시도 자체가 당시의 지도 제작 표준에 비추어 놀랄 만한 것이다.  

<강리도>는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유럽의 윤곽까지 보여주는데, 한국을 매우 크게 확대하는 대신 일본 열도도 남중국해에 멀찍이 표시해놓은 게 특징이다. 이러한 상대적 크기와 배치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15세기 초 조선의 세계관이다. 중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놓되 조선이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일본은 가능한 한 멀리 두려고 했다. 오지 도시아키의 구분에 따르면 <강리도>는 확실히 ‘세계관’을 표현한 ‘세계도’였다.   

현재 사본들이 모두 일본에 소장돼 있는 만큼 <강리도>에 대한 연구는 일본 학자들에 의해 많이 진행되었다. 미야 노리코의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소와당, 2010)는 <강리도>의 원천에 대한 연구서이다. 지도 자체는 조선의 것이지만 <강리도>는 당시까지 축적돼 있던 동아시아 지성의 산물로 큰 의의를 갖는데, 저자는 <강리도>의 모태가 된 두 장의 중국 지도, 청준의 <혼일강리도>와 이택민의 <성교광피도>를 추적하여 <강리도>의 탄생배경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준다.   

오상학의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창비, 2011)은 제목대로 ‘조선의 지도에 담긴 세계’를 읽어내려는 시도로 한국 지도학 연구 동향과 성과도 가늠하게 해준다. 저자는 15세기 <강리도>에서부터 17‧18세기의 원형 천하도, 그리고 19세기 최한기의 <지구전후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도에 담긴 세계인식을 추적하며, 특히 원형 천하도의 의의를 높이 사고 있다.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기에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가 제시한 윤곽의 ‘상세도’로 읽을 수 있다.   

11.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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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1-09-1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리도의 비대칭성을 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누구누구의 뇌지도'가 생각나네요. 동글동글한 섬 모양은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어요.

로쟈 2011-09-17 09:12   좋아요 0 | URL
저렇게 다 그려넣은 세계지도가 처음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제목이 <교사로 산다는 것>(양철북, 2011)이어서 교사들을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 조너선 코졸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12년 내내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야 하는 학부모와 교사를 위해 집필되었다." 그러니 '학부모'도 읽을 책이고, 비록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적 불평들을 고발하는 내용이지만(저자는 그러한 고발과 비판에 주력해온 교육자이자 지식인이다) 우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면 경청해볼 만하다.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이 부제. '교육계의 촘스키'로도 불리는 코졸의 책으론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문예출판사, 2008)과 <야만적 불평등>(문예출판사, 2010)이 더 소개돼 있다... 

 

경향신문(11. 09. 03) 정의 향한 비판정신 아이들이 갖도록 교사들이 도와줘라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전도 유망한 백인 청년이 있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지배 엘리트의 삶을 보장받았지만, 흑인들이 사는 빈민 지역인 보스턴 록스베리의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로 1965년에 지원했다. 학교는 열악했다. 교실은 부족했고 4학년 아이들의 학업 수준은 1·2학년 수준에 머물렀다. 교사에게 맞아 손가락이 뒤틀린 아이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버린 아이들이 즐비했다. 신참 교사는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규칙과 명령으로 도배된 게시판의 자료를 뜯어냈고, 사회교과서를 교실에서 치워버렸다. 그 자리에 호안 미로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걸었고, 슈만과 라벨의 음악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결국 그는 쫓겨났다.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시를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그 다음날, ‘교과 과정 불이행’이라는 죄목이었다.

누구인가? 미국의 가난한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살아온 교육운동가 조너선 코졸(75)이다. 그는 첫 부임지에서 쫓겨난 지 20년 만에 빈민가의 공립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학교는 여전히 인종 분리와 빈곤 문제를 겪고 있었다. 코졸은 교실 현장에서, 또 숱한 저작들을 통해 미국 교육정책 속에 도사린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와 투쟁했다. 그중에서도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야만적 불평등>은 국내에도 번역돼 많은 교사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안겼다.

 

<교사로 산다는 것>은 1981년 미국에서 첫 출간됐다가 2009년 개정판으로 다시 선보인 책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두 종의 저서보다 먼저 쓰였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내용이 많다. 모두 15개의 항목으로 이뤄졌다. 그 하나하나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곱씹어볼 만한 것들이다.

코졸은 가장 먼저 교사들에게 “아이들이 정의를 향한 비판정신과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을 갖도록 도와주라”고 권한다. 그는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라고 생각해’ 혹은 ‘나는 ~를 느껴’라고 말하라고 강조한다. 명령에 복종하거나 이미 주어진 정답을 되뇌는 교사가 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본보기”가 되어라는 의미에서다. 또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아’라는 점잖고 교양있는 말은 “말썽부리지 않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관행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극단도 극단 나름이고,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책의 곳곳에서 교사들에게 싸움의 깃발을 쥐여주는 코졸이 특히 공들이는 대목은 ‘잘리지 않고 싸우는 법’이다. 노련한 전략가인 그는 “체제가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흑인해방 운동가 말콤X보다는 교과서가 더 좋아하는 마틴 루터 킹을 거론하라는 것이다. 다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백인 친화적이고 인내심 많은 인물로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주장을 옹호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던 진면목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교과서가 숭배하는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에도 “교과서가 이상하게 왜곡시켜놓은 것”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헬렌 켈러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쟁했던 것을 가르치고, 교실에 붙어 있는 헬렌 켈러의 사진 밑에 그가 했던 ‘우리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다’를 써 붙여놓으라”고 권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책에는 가슴을 파고드는 인상적인 문장들이 적지 않다. 그중 이런 것도 있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문학수 선임기자) 

11. 09. 14.  

P.S. 책의 해제는 이계삼 교사가 쓰고 있는데, 그의 교단 에세이들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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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9-15 02:28 
    [책]교사로 산다는 것 — 조나단 코졸의 책 등. (via 로쟈)
 
 
2011-09-1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7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8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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