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스크랩해놓으려던 기사가 몇개 있었는데 '얼리 버드'가 된 김에 그중 하나를 챙기도록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기린 '김현 문학 전시관'이 고향인 목포에 세워져 지난달 30일에 개관했다는 소식이다. 20주기를 맞은 작년의 특집기사도 같이 묶었다. 개인적으론 대학 1, 2학년 때 가장 많이 읽은 저자의 한 사람이라 내겐 항상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김현 자신이 4.19세대로서 평생 그 나이에 멈춰 서 있었다고 고백한 걸 보면, 우리는 여러 개의 나이를 갖고 사는 게 맞다. 내겐 그 한 가지가 하숙방에서 김현의 평론집을 읽던 나이다.   

서울신문(11. 10. 01) ‘이상 다음의 근대인’ 평론가 김현 문학전시관 가보니…

평론은 문학 작품을 쓰지 못한 자의 자존심의 발로로 여겨졌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아름다운 문체와 감수성 넘치는 글로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그의 매혹적인 문장은 ‘김현체’로 명명되었다.

그의 고향 전남 목포에서 4·19 세대이자 한글 세대로 한국 문학 비평의 새 장을 연 김현을 기리는 문학 전시관이 30일 개관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목포에서 구세 약국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목포를 실질적인 고향으로 삼게 된다.

‘김현 문학 전시관’은 목포 출신 문학인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전시관이 있는 목포의 갓바위 문화타운에 터를 잡았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시관에 들어서니 어린 시절 김현이 가르며 뛰어다녔던 바닷바람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김현이 꿈꾼 것은 ‘억압 없는 사회, 억압하지 않는 문학’이었으며 그는 평생 이를 실천했다. 김현 문학 전시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동료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평소 아끼던 문구류,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 책상과 컴퓨터 등 그간 유족들이 보관해오던 유품 300여점이 곱게 전시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를 위해 김병익, 김주연과 함께 ‘문지4K’로 불리며 현재 김현문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김현 20주기에 맞춰 유품을 전달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세상을 떠난 김현의 문학 정신을 전시관에 살려 놓은 느낌”이라며 “거울 등으로 김현 비평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7살에 진도국민학교에 입학한 김현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목포 북교국민학교로 전학한다. 목포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복고로 전학하여 친형과 함께 서울에서 생활했다. 김광남이란 본명 대신 김현이란 필명을 사용한 것은 스무 살인 1962년 ‘자유문학’ 평론 부문에 ‘나르시스 시론’이 당선되면서다. 같은 해 김승옥, 최하림과 함께 소설 동인지 ‘산문시대’도 창간했는데, 동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곳이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이었다.

김현은 글 실력뿐 아니라 술 실력으로도 유명했는데, ‘산문시대’를 계속 발행하면서 술 실력이 늘고 사람을 ‘조직’하는 역량도 발휘되었다. 김현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쓴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를 “이상(李箱) 다음의 근대인”이라고 말했다. 30대의 김현은 1977년 서울 구반포 삼거리의 반포치킨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여기서 동료, 제자, 문인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셨다. 아직도 영업 중인 반포치킨은 공지영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인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문학 전시관 개관식과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김현이 목포로 이사해 ‘독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목포는 김현에게 사회이자 규범과 규칙으로 이루어진 제도였다.”고 설명했다.(목포 윤창수기자)   

서울신문(10. 06. 19) 이 세상 다 읽고 간 사람… 그 이름 김현

김현(1942.7.29~1990.6.27).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꼭 20년이다. 반복되는 노동과 휴식 등 일상의 삶에 치여 사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는 문학평론가다. 한자 또는 식민지 언어가 아닌, 모국어로 사유하고 그 감성으로 글을 쓴 첫 세대인 ‘4·19세대’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의 짧은 삶을 아쉬워하는 것은 단순히 한 세대의 빼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왕성한 독서욕과 성실한 읽기로 한국 평단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를 두고 “이 세상을 다 읽고 간 사람”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문체로 전개되는 그의 감수성 넘치는 비평은 훗날 수사학적 인상 비평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비평을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끌어올린 첫걸음이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지금도 그의 매혹적인 문장과 문체는 ‘김현체(體)’로 불리며 후학들의 전범으로 통한다.

●‘문학과 지성’ 창간… 48세 생애에 저서만 50권
순수·참여 문학 논쟁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던 1970년 가을, 그는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이들은 ‘4K’로 불렸다-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만든다. 이른바 ‘문지’가 또 다른 대척점에 섰던 ‘창작과비평’(창비)과 함께 한국 문단의 묵직한 성처럼 우뚝 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학주의 이데올로그’인 그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비평가”(황지우 시인)라는 찬사에 걸맞게 그는 한국 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김현은 담배만을 안주 삼아 거의 매일 문인들과 그리고 제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대학 3학년 때 늦깎이로 배운 술이었지만 그는 1980년대 ‘불꽃의 말’이라는 에세이에서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 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했을 정도로 술을 예찬했다. 심지어 몸이 너무 아플 때조차 “나 대신 마시라.”며 주변에 술값을 건넬 정도였다. 



●건강 나빠지자 술값 건네며 “대신 마셔 다오”
그럼에도 1990년 마흔여덟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뜨기까지 23권의 책과 6권의 공저(共著), 7권의 편서(編書), 19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어디 그뿐인가. 무수한 논문에 소설까지 몇 편 얹었다. 김현식 표현을 빌리자면 ‘아, 놀라워라.’다. 문청들의 가슴에 시(詩)의 지독한 우울함과 설렘, 외로움을 심어 놓고 떠난 시인 기형도(1960~1989)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만들고 해설한 이도 그다. 그러고는 이듬해 훌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형도처럼 숱한 문청들에게 좌절과 동경을 함께 안겨준 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면 ‘김현 신화’는 얼추 완성된다.

김현은 전남 목포에서 약품공급업을 하는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덕분에 구김살 없이 특유의 다독(多讀) 습관을 익힐 수 있었지만, 이는 또한 쉼 없는 갈등의 배경이 됐다. 김현은 언젠가 사석에서 “판사나 검사를 하지 않고 문학 나부랭이를 했다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꾸짖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갈등이 없었다면 뒷날 그가 정립한 ‘무용한 문학의 유용성론(論)’이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김현은 “유용함은 인간을 억압한다. 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쓸모없는 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라고 설파했다. 창조적인 문장과 수사적 표현은 평단(評團)을 넘어 작단(作團)까지 넘겨봤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66년 발표한 단편소설 ‘노숙’ 등이 대표적이다. 



●고향 목포에 문학관 건립… 김현문학상 제정 주장도
20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도 뜨겁다. 문학과지성사는 18일 서울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말들의 풍경과 비평의 심연’이라는 주제로 ‘김현 20주기 문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성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김현 비평은 인식론에서 논증의 구조, 그리고 문체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개성과 특이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고유명사로 통용이 가능하다.”며 김현의 문학사적 좌표를 명확히 했다. 이어 “일방적인 찬사를 통해 옹호하는 일이나, 수사적 전략으로 폄하시키는 일 모두 그를 특정한 테두리 안에 가두는 일인 만큼 폭넓은 연구를 통해 세대론적 시각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의 서울대 제자인 소설가 이인성은 스승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을 공개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1977년 9월8일 날짜가 적힌 편지에서 김현은 “바 선생(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지칭)의 ‘몽상의 시학’을 번역하고 있다.”고 근황을 밝힌 뒤 “가짜로 살고 가짜로 싸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마시오. 그 순간에 아픔은 말이 되어, 아픔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오.”라고 적었다. 너무 심각했다 싶었는지 “이러니까 교과서를 쓰는 것 같소.”라며 “일요일쯤 심심하면 놀러 오시오. 소주나 한 컵 합시다.”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애주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문학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김현의 고향인 전남 목포시는 올 연말까지 ‘김현문학관’을 세워 주요 저서와 필기도구, 편지, 일기장, 그림, 병상일지, 영수증 등 수천점의 유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김현문학상’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박록삼기자) 

김현

▲1942년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 출생(본명 김광남) ▲1957년 목포 문태고 입학한 뒤 서울 경복고로 전학 ▲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 입학 ▲1962년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으로 등단. 필명 ‘김현’ 처음 사용 ▲1968년 4·19세대 문인들이 대거 참여한 ‘68그룹’ 동인 결성 ▲1970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문학과지성’ 창간 ▲1974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임용 ▲1990년 간경화로 타계

11. 10. 03.  

P.S. 작년에 20주기를 맞아 김현 비평에 대한 비평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얼추 생각난 건 <4월 혁명과 한국문학>(창비, 2002), <김현 신화 다시 읽기>(자음과모음, 2008), 그리고 임영봉의 <청년 김현과 한국문학>(경진, 2009) 등이다. 잡지의 특집들을 제외하고도 더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이 세 권으로도 실마리는 잡을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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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2011-10-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지역따지고 어디 학교 졸업 몇 회입니다~ 이런 것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김현이 중학교선배신 것은 자랑스럽네요.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네요. 평소 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올 가을에 꼭 기념관은 가봐야겠네요.

로쟈 2011-10-04 20:54   좋아요 0 | URL
고향이 목포시군요.^^

Daniel 2011-10-04 23:55   좋아요 0 | URL
예, 광주와 목포, 무안을 오고 갑니다.^^ 주소는 무안군인데 사실상 목포권인지라 어디 사냐고 하면 목포 옆 무안이라 해야 빨리들 알아들으시더군요. 아무래도 무안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philocinema 2011-10-05 11:23   좋아요 0 | URL
남악 신도시!

알케 2011-10-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때때로 멀고 먼 최전방에서 병정살던 시절 한달이나 지나 읽은 고종석이 쓴 네 매짜리 김현 오비츄어리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에게도 김현은 청춘의 상징같은 것이죠. 그의 책을 읽던 봉천동 자취방의 비 오던 날도 생각나고...

로쟈 2011-10-04 20:53   좋아요 0 | URL
전 신림동에 있었습니다.^^

canon 2011-10-0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신화 다시 읽기>에 실린 최강민의 김현의 신화와 우상의 탄생을 추천하고 싶네요.


로쟈 2011-10-04 20:53   좋아요 0 | URL
20년이 지나도 넘어설 '우상'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울프심 2011-10-0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의 비평집을 용돈 모아 사던 시절이 그립네요..!!그 책들이 지금 다 어디 가있는지?오래간만에 청춘이었던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로쟈 2011-10-04 20:52   좋아요 0 | URL
문청들의 한 시절이었죠.^^

미국사람 2011-10-0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이 죽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나와 동시대인이 죽었다는 생각이었는데 벌써 20년이 됐군요. 4.19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다는 김현의 이야기에서 80년 서울의 봄을 안고 살고 있는 나를 봅니다.

고종석의 글이 있어 링크 걸어둡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10/h2006100317263285150.htm

로쟈 2011-10-04 20:52   좋아요 0 | URL
생존했다면, 지금 어느덧 명예교수네요...

허스키 2011-10-0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찮게 <행복한 책읽기>를 읽고 있는 요즈음이라 눈여겨 읽어봅니다.

로쟈 2011-10-04 20:51   좋아요 0 | URL
유작으로 나온 때가 어느덧 20년 전이네요...
 

'사회인문학'에 관한 기사를 포스팅하다 보니 '신경인문학'에도 생각이 미친다. 최근에 나온 닐 레비의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바다출판사, 2011)의 번역팀이 '신경인문학 연구회'이다. 작년에 나온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바다출판사, 2010)의 속표지에 보면 신경인문학은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생겨나는 인문사회과학적인 쟁점들을 분석하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분야"라고 정의돼 있다. 여러 분야의 연구가 가능할 텐데, 현재 주목받고 있는 게 '신경윤리학'인 듯싶다. 저명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도 이 분야의 책이다. 조금 시야를 넓히면 뇌과학과 문학의 접점을 모색한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도 신경인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 분야의 책을 더 기대한다는 의미에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 뇌과학은 인간의 윤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홍성욱.장대익 엮음, 신경인문학 연구회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3월
19,800원 → 17,820원(10%할인) / 마일리지 99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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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뇌- 뇌과학으로 푸는 인간 본성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김효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구판절판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뇌과학, 인간 윤리의 무게를 재다
닐 레비 지음, 신경인문학 연구회 옮김, 홍성욱.장대익 감수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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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뇌를 훔친 소설가-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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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인문한국사업단에서 첫 성과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나도 바로 구입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언론홍보는 꽤 늦게 이루어진 모양이다. 지난주에야 관련기사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백영서 원장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사회인문학'이란 취지에 걸맞은 책들이 연말까지 몇권 더 출간되면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1) "인간다움을 갈구하는 사회… 대중과 소통하는 학파 만들 것"

"그다지 딱딱하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책도 요즘은 2,000~3,000부 나가는 게 고작이다. 10년 전에는 5,000부는 팔렸다.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책은 참 안 팔리는데 왠지 인문학 강의는 호황이다. 노숙자나 재소자를 위한 강의에도, 최고경영자(CEO)를 모은 강연에도 '인문학'이라는 간판을 달 때가 흔하다. 인문학은 과연 위기인가.

29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실에서 만난 백영서 교수는 "사람들이 인문학 강의를 찾는 것은 그런 강의를 들으면 뿌듯해지고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 같고 이제 내가 부속품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를 테면 종교적인 욕구나 인간다움에 대한 갈구 같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인문학 책은 갈수록 안 팔리는 것은 결국 출판이 그런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인문학 연구 방향이나 태도가 고립화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08년 11월부터 국학연구원이 시작한 사업이 있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다.

"사회과학은 정책적 학문이고 현상 분석이 강한데 인문학은 가치 판단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게 사회과학이라면 인문학은 왜 그러는지, 대안이 정말 필요한지 가치를 논의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고담준론에 빠지고 현실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둘을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은 사회화하고 사회는 인문성을 회복하는 '21세기 실학'을 모색하자는 거다."

물론 국내 학계에 이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끄는 '통섭원'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묶으려 하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이끄는 '비교역사연구소'는 탈민족주의를 화두로 역사, 문학, 철학을 섞는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좀더 차별화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분과를 넘어선 연구를 통해 인문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10년 기획으로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의 1단계 사업이 최근 끝나 그 성과 일부가 한길사에서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인문학의 형성>이란 책으로 출간됐다.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사회인문학의 정의와 구상을, <한국 인문학의 형성>에서는 근대 이후 국내 인문학의 역사를 통해 최근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살폈다.

백 교수는 첫 책에서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생각은 수정해야 한다며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사철'로 요약되는 인문학 텍스트 읽기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집필자의 면면을 보면 이 프로젝트의 전체 상(象)이 짐작된다. 박명림 교수를 비롯해 나종석, 소영현, 이경란 등 연세대 출신 교수ㆍ연구교수가 중심이고, 김재현(경남대) 박광현(동국대) 교수 등 중도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연말까지 국학연구원 교수들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집필한 <사회인문학과 소통>, 백영서 교수의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 박명림 교수의 <사회인문학의 창안> 등이 총서 시리즈로 더 나온다.(이윤주기자) 


국립박물관 인문학 강좌에 모인 시민들. 대학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인문학을 소재로 한 대중강좌·출판물의 활황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11. 09. 29) 인문학·사회학 소통을 논하다 

대학 인문학과의 붕괴 위기에도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대중강좌와 출판물 시장의 인기 아이템이 됐다. 점점 더 고립되고 자폐화하고 있는 대학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이 시급해 보이지만 출판과 언론이 주도하는 대중적·상업적 인문성을 인문학 본연의 사회성으로 정의할 수도 없다. 이에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만나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새로운 통합학문을 향한 학문체계를 제안하고 나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사회인문학’이란 이름 아래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회인문학이란 기존 분과 학문들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서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인문학 본연의 성찰성·공공성·비판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한길사가 공동기획해 최근 출간된 ‘사회인문학 총서’의 첫 권인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이들의 사회인문학 구상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먼저 백영서 교수(동아시아 현대사)는 대학 강단의 인문학에 대한 요구, 즉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관념은 수정돼야 한다면서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문학·철학·역사 텍스트에 정통하는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면서 작금의 고전을 연구하고 배우는 태도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인문학에서 고전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고전에 담긴 인문정신을 되살리면 현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주장하는 ‘인문 권위주의’로 미끄러질 수 있으며, 인식적 깨달음에 따르는 기쁨을 강조하다 보면 ‘인문 엘리트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고 경계한다. 그는 현재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인문정신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사회인문학을 구현할 수 있는 사례로 ‘공공성의 역사학’을 제안한다.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 학문과 사회 위기의 일부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세계 현실을 ‘허둥대는 공동체, 불안한 개인’으로 바라본 박명림 교수(한국정치)는 “사회의 인문성 회복과 학문의 사회성 회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즉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인문학을 1980년대의 사회과학과 현재의 시장학문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적 학문 패러다임으로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순수 인문학과 상업인문학의 간극이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 대중인문학은 인문적 호기심을 높일 뿐 대중의 참여성과 사회의 인문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대안으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현재 구분을 폐지하고 사회인문학으로 재배열할 것, 대학편제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철폐하고 기초학문을 통합한 문리(과)대학을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전체로서의 자연과 사회, 인간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장애를 초래하는 동시에 입시교육 체제로서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결정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분과학문과 지역연구, 개별국가연구의 결합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사회인문학의 다양한 실천양식도 논의된다. ‘글쓰기의 사회인문학’에서 최기숙 교수(한국문학)는 “오늘날처럼 학술논문이라는 제도화된 글쓰기 양식을 통해서는, 직관의 수사로 점철된 니체나 논(論) 설(說) 전(傳)에서부터 소품문과 소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글쓰기와 문제적 글쓰기를 아우른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가 나오기 어렵다”면서 감성과 직관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인문학적 글쓰기 방식을 제안한다.

소영현 교수(근현대문학)는 ‘비평의 장소와 비평(가)의 임무’를 통해 삶의 비평으로서의 문학비평에는 타인의 시선을 내 안에 품는 망명자의 질문법과 타인과의 정서적 공감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자의 사회적 실천’이란 장에서 이경란 교수(근현대 농업사연구)는 마을공동체 운동과 인문학의 선순환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마을인문학’을 사회인문학적 실천의 구체적 모델로 제안한다.

이와 함께 대학 인문교육의 제도화 과정과 이념에 대한 연구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살펴보는 두번째 총서 ‘한국 인문학의 형성’도 출간됐다. 이어 ‘사회인문학과 소통’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의 길’ ‘사회인문학의 창안:개념·범주·지향·적용’ 등이 사회인문학 총서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김은진기자) 

11.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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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1-10-02 22:11   좋아요 0 | URL
한국인문학의 역사를 보면서 거룩한 계보를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네요 ^^

로쟈 2011-10-03 08:04   좋아요 0 | URL
인문학 전공이신가 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10-04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좀 심심(?)했네요.^^;;

로쟈 2011-10-04 20:55   좋아요 0 | URL
형식 자체는 문제의식만큼 파격적이지 않지요.^^;
 

지난달 기획회의(304호)의 특집은 '읽고 쓰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리뷰 특집인데, 서평과 서평가의 역할에 대한 간단한 총론에 이어서 최성일, 이권우, 정혜윤, 고명섭, 장정일, 김은섭, 명로진, 윤미화 등이 대표 서평가로 다뤄졌다. 거기에 나도 포함돼 있는데, 한겨레신문의 최원형 기자가 맡은 꼭지의 제목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를 위하여'라고 붙여졌다. 로쟈식 서평의 방법과 지향점에 대해 잘 짚어주고 있어서 반가웠다. 일부를 발췌해놓는다.  

 

로쟈의 방법 

로쟈는 책과 책을, 사상과 사상을, 이 작가와 저 작가를, 대표 저작과 입문서를, 원본과 번역본을 어디에선가 불러와 끊임없이 묶고 엮고 꿰어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로쟈의 이런 작업 방식을 '배치하기, 짝짓기, 지도 그리기, 교정하기' 등으로 정리한 바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를 나란히 놓고선 '윤리로서의 미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슬라보예 지젝을 놓고 그 사상의 뿌리를 쥐고 있는 헤겔과 라캉, 마르크스를 오락가락하기도, 지젝을 앞세워 탈이데올로기 시대 이후의 한국문학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확장된다는 점이다. <책을 읽을 자유>에 모아놓은 자크 데리다에 대한 글 모음을 보자. 데리다 사상의 핵심이 뭔지, 주요 저작은 뭔지, 그의 사상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어떤 입문서를 참조하면 좋은지, 데리다에 대한 중요한 비평가들은 누가 있는지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이 내용물은 한두 번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읽기-쓰기가 반복되면서 축적된 것이다. 

로쟈의 지향 

로쟈가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독서공동체'다. 그는 <책을 읽을 자유>에서 책 제목을 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적인 성격의 서평을 쓰면서 내가 바란 것은 그렇게 함께 읽는 '우리'의 확산이었다. 사회적 관심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좋은 책을 통해 얻은 시각과 통찰을 서로 나누고, 더 나아가 '책을 읽는 문화'를 다져가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로쟈의 읽기, 쓰기는 로쟈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읽기, 쓰기 속에서 퇴적물을 남기는 로쟈의 글쓰기는, 고매한 자기 세계에 빠져들어 불후의 명문을 써내는 것과도, 대중이 바라는 지식에 대해 시의적절한 명강의를 펼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자유를 누리는, 독서공동체에만 충실하게 복무하고자 한다. 인터넷 서평꾼이나 곁다리 인문학자와 같이 조금 '비뚤어진' 정체성을 달고 있는 이유나, 글 모음이나 서재 등을 통해 자신의 정신활동을 최대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엔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적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필자는 글의 마무리로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전망에 대해 적었다.  

로쟈와 함께 

따라서 로쟈와 함께 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에 참여하려 한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는 혼잣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로쟈처럼 나의 정신활동도 투명하게 까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공부해야 독서공동체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로쟈와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존재는, 학계와 출판계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 구실까지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역 짚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또는 번역자나 출판사의 얼굴 봐서 번역의 오류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 로쟈가 여러 차례 오역을 짚고 문제를 제기한 뒤로 출판계 전체에 번역에 좀더 공을 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와, 이 정도라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앞날은 더 밝은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지 않겠는가.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란 생각이 자극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내가 바라는 '독서공동체'는 아니다. 최근에 나온 클레이 셔키의 책이 주장하듯이 '많아지면 달라진다'가 애당초 내가 가졌던 모토이다. 그래서 '대중지성'이나 '지식 품앗이'란 말도 곧잘 썼다. '오역 짚기'도 저마다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일조할 수 있는 일이다(보통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을 따름이다). 여하튼 독서공동체는 '느낌의 공동체'이기도 하고 '생각의 공동체'이기도 하며 '관심의 공동체' '의지의 공동체'이기도 할 것이다. <애도와 우울증>에 대한 저자 인터뷰에서도 기대를 밝힌 바 있지만 '러시아문학 공동체'도 희망해볼 수 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말하는/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과연 뭐가 달라질까, '로쟈'가 가장 궁금해하는 일이다... 

11.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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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경 2011-10-0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마지막에 단 코멘트까지 읽고 떠오른 건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에서 언급한 몇 대목이네요. 가령 휘트먼에 대해: "여기서 그는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그것은 광신이나 정치적 학파에 전혀 때묻지 않은 '자유로운 독서가들'의 사회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같은.
이번 <기획회의>는 손에 집고 읽어봐야겠네요^^

로쟈 2011-10-03 08:0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미국도 아직은 휘트먼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사회로군요...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몹쓸 낭만주의'라는 기획전을 연다(http://www.arkoartcenter.or.kr/artcenter_kor/exhibition/exhibition_artcenter_pr.jsp). 20명의 작가가 출품한 작품이 두 곳의 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이 전시회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는데, 자료로 쓴 발표문을 옮겨놓는다. 낭만주의란 기표, 몹쓸 낭만주의란 기획에 대한 소감을 적었다.   

몹쓸 낭만주의? 몹쓸 낭만주의! 몹쓸 낭만주의는 우리가 혹은 우리시대가 낭만주의를 다시 소환하고 호명하는 이름이다. 낭만주의는 ‘몹쓸’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나서야 동시대 미술장 속으로 ‘재입장’한다. 그것이 재입장의 조건이다. 낭만주의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 위한 방책이고 간계이다. 그것은 왜 몹쓸 것인가. 왜 몹쓸 낭만주의인가. 

거창하게 역사적 낭만주의를 다시 회고할 필요는 없겠다. 낭만주의는 정의 불가능하다는 ‘엄살’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용도에 맞게 개념을 한정하자면,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대한 옹호이고, 규격화된 형식에 대한 조롱이며, 현실 너머의 이상에 대한 동경이고, 과도함에 대한 예찬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가 시를 일컬어 “감정의 자연스런 분출”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달리 낭만주의에 대한 정의로도 유효했다. 낭만주의는 그렇게 규범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넘친다. 그것은 거침없다. 바로 그렇게 거침없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며 반항적이다. 낭만주의는 자유를 구가하며 혁명을 노래한다. 릴케의 시구를 빌리자면 ‘너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세상은 한때 혁명의 시대였고 낭만의 시대였으며 낭만주의의 시대였다. 세상은 바뀔 것처럼 보였고, 바뀌는 게 응당했으며, 그렇게 뒤바뀔 세상은 역사적 필연으로도 보였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계산되고 관리되는 사회?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며, 모든 리스크는 주식처럼 분산‧관리되고, 개인은 스펙과 커리어로 통제된다. 간명하게도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낭만주의는 역사적 과오이거나 향수이거나 시대착오적 광기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낭만주의, 너는 졌다’라고 현실은 말한다. 한때 낭만주의는 자신의 정점에서 예술을 절대화하고 예술가를 세계의 새로운 창조자로 공포했지만, 이제 그것은 신화가 됐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술일반의 대명사로까지 격상됐던 낭만주의는 예술의 과거사이자 뒤안길이 되었다. 현실을 과소평가한 대가인가. 혹은 현실의 저주인가.     


강민수, idyll(광장), 혼합기법, 155x195, 2010 ⓒ강민수 

그리하여 낭만주의는 죽었다. 예술은 낭만이 아니다, 라는 부인도 예술가들의 입에서는 나왔다. ‘예술이 밥 먹여 주더냐’라는 유구한 조롱도 맞장구치며 이와 함께했다. 예술은 현실이고, 예술은 실용이라는 선언도 어쩌면 놀랍지 않다. 하지만, 방부 처리하여 냉동고에 집어넣듯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일까. 예술은 무엇에 대한 믿음이던가. 우리에게, 우리시대에 여전히 예술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다면, 그리고 여전히 예술에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예술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자 꿈이고 우리 감각과 감수성의 갱신을 의미한다면, 예술은 꿋꿋하게도 여전히 낭만적인 것 아닌가. 낭만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자기 자리이다. 어떤 것의 최대치를 그 본질로 규정할 수 있다면, 낭만주의는 예술 자체이기도 하다. 현실과의 영원한 불화를 자기 존재의 불쏘시개로 갖는 한, 예술은 언제나 낭만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낭만주의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이면서 낭만주의가 되돌아오는 이유이다. 컴백홈. 컴백낭만주의.   

하지만 이 ‘돌아온 낭만주의’는 현실의 압도적인 위세 속에서 자신의 몸을 낮춘다. 낭만주의는 배제의 제스처, 거세의 포즈를 동반할 때만 현실 속으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검열을 통과하려고 할 때 이제 낭만주의가 붙일 수 있는 표찰은 ‘새로운’이 아니라 ‘몹쓸’이다. 몹쓸 낭만주의는 목에다 밧줄을 건 낭만주의다. 당신은 이 낭만주의에 대해 마음껏 욕하고 비아냥거려도 좋다. 이것은 ‘몹쓸’ 낭만주의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용어들을 무료로 대여해줄 수도 있다. 무슨 뜬금없는 낭만주의냐고 반문하는 건 기본이다. 아직도 그대는 낭만주의냐고 조롱할 수도 있겠다. 혹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낭만주의도 돈이 되나요?  

그런 포즈가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그건 당신의 몫이다. 잘 챙겨 가시길 바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몹쓸 낭만주의’란 명명 자체가 당신의 고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 전시가 앞세운 ‘주권적’ 제스처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비난과 비방과 비아냥거림은 전혀 새롭지 않은 ‘표절’에 불과하다. 당신의 안목은 당신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새롭지 않다. 그것은 미적이지 않으며, 윤리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당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당신의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몹쓸 낭만주의’는 그런 점에서 한 번 더 몹쓸 짓을 했다. 이 시대에 감히 예술이 살아있다고 말하려는 시도, 그럼으로써 현실의 승리를 껍데기로 만들려는 시도 말이다. 자신의 목을 내놓은 낭만주의는 이로써 한 번 더 부활한다. 그리하여 낭만주의가 돌아왔다. 이번엔 좀 몹쓸 놈이다.  

11.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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