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큼 확실하게 관련서가 출간되는 기념일도 드물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돌베개, 2011). 책 표지만 보고 주문해서 주중엔가 받은 책인데, 잠깐 펴본 바로는 상당히 학구적인 책이다. 일본의 한국어학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만만찮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1. 10. 08) 동북아 지적 대혁명, 한글 창제

“한글의 탄생과 성장은 지(知)의 혁명이며 문화의 혁명이다.” ‘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돌베개 펴냄)은 한글 원리와 탄생 배경, 성장 과정을 ‘언어란 무엇이고,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통해 통찰하고 풀어냈다.

그 과정에서 ‘소리가 글자가 되는’ 놀라운 구조를 확인하고, 하나의 글자 체계를 뛰어넘은, ‘말과 소리와 글자’가 함께하는 보편적인 모습인 한글을 그려냈다. 귓가에 들려오는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을 경이롭게 펼쳐냈다.

일본인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 탄생이 단순한 문자 발명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지적 혁명의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글 창제 이전부터 있어 왔던 수천 년 동안의 문자 생활 및 환경을 꼼꼼이 짚었다. 한자·한문만으로 글을 써왔던 15세기 이전의 한반도와 일본에서, 말과 다른 글을 표현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언어와 문자 관계를 살펴보게 이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창제를 ‘알파벳 로드(road)’, ‘자음문잣길’의 종언이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아시아를 가로지른 ‘자음자모 로드’의 종착지에서, 어슴푸레한 모음에 단호히 게슈탈트(형태)를 부여한 것이 훈민정음”이라고 강조한다. “훈민정음은 라틴문자처럼 모음자모와 자음자모가 직선상에 병렬된 2차원적인 배열 시스템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입체적 배치 시스템, 동적인 시스템을 확립했다.”고 밝혀낸다.

이런 분석으로 “훈민정음의 성립을 한국어사 및 동아시아 문화사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 언어학, 문자론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고찰해 보편적인 의의와 가치를 찾아내려고 했다.”는 평도 받았다.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이후 한글로 쓰여진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세종의 ‘에크리튀르(쓰여진 것과 쓰는 것) 혁명’이 어떻게 내용을 이뤄나가고, 한글의 내용을 담게됐는지를 동국정운, 석보상절, 천자문 언해, 두시 언해 등의 내용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저자는 현대일본미술전 가작상을 수상한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쓰여진 같은 제목의 저서를 번역한 것으로 2010년도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한국어와 한글을 외국학자의 낯선 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없었다면, 한글은 어쩌면 로마자 같은 문자로 쓰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말로 훈민정음 창제의 무게를 요약하기도 했다.(이석우 편집위원) 

11.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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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05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에 대해 적었다. 마감일에 급하게 보내느라 퇴고를 하지 못했었는데, 편집자가 교정을 보느라 고생을 했다. 한 곳은 더 보태서 고쳐놓는다.  

   

기획회의(11. 10. 05) 문학과 뇌과학, 서로를 비추다

<뇌를 훔친 소설가>. 소설 제목으로 그럴 듯하지만, 뇌과학과 문학을 다룬 인문서이다. 이렇듯 두 분야가 겹치거나 교차할 때는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경우는 저자 석영중 교수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이기에 ‘인문서’로 분류하고 리뷰를 쓴다. 그렇다고 나름대로 문학에 식견을 갖춘 뇌과학자가 비슷한 유형의 책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과학보다 앞서서 인간 두뇌의 비밀을 밝혀낸 여덟 명의 예술가들을 조명한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지호)의 저자 조나 레러는 신경과학 전공자이고 이 책은 ‘뇌과학서’로 분류돼 있다. 그렇게 ‘교양 인문학’과 ‘교양 과학’의 경계가 어딘지 모호하다면 그냥 ‘21세기 교양’으로 묶어도 좋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대로 뇌과학 정도는 현대인의 필수교양이니까.   

일단은 분위기 파악부터 해보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적은 대로 “뇌는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흥미로운 화두 중 하나다.” 과학계에서도 인간게놈프로젝트와 함께 뇌지도 프로젝트는 엄청난 연구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초국가적 메가프로젝트이다. 여파는 인접 학문에도 미치기 마련이다. ‘신경문학 비평’이라거나 ‘다윈주의 문학비평’ 따위의 분야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니 조만간 국내에도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대체 어떤 분야인가. 신경문학 비평은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거나 창작할 때 “두뇌에서 어떤 뇌세포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뇌 스캔으로 관찰하여 독서와 창작의 이면에 있는 생리학적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또 다윈주의 문학비평은 문학을 환경에 대한 적응의 표현으로 보고 “특정 작품의 특정 인물과 플롯은 그러한 생존방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소개된 책도 없지 않다. 영문학자인 질리언 비어의 <다윈의 플롯>(휴머니스트), 생물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바래시와 나넬 바래시의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사이언스북스) 등이 바로 다윈주의 문학비평에 속하는 책들이다.  

그렇다면 <뇌를 훔치는 소설가>를 통해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를 밝히고자 한 저자 또한 이러한 흐름에 일조하려는 것일까. 뜻밖에도 그렇진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화 문학이론과 신경문학 비평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현시점에서 다윈주의적이고 인지적이며 신경과학적인 문학연구 방법은 결국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로 귀착하고 만다는 판단에서다. 문학작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약간은 바꿔놓을지 모르겠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서로 도움을 주는 ‘상호조명’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책에서는 “문학적 내용과 자연과학적 사실이 서로를 비춰주는 가운데 드러나는 삶의 지혜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러한 의도 하에 저자는 뇌과학이 밝혀준 네 가지 ‘자연과학적 사실’을 골랐고 거기에 부합하는 ‘문학적 내용’들을 나란히 배치해놓았다. 그것이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네 장의 구성이다. ‘흉내’ 장에서 다루는 것은 거울뉴런의 발견이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들이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처음 발견한 거울뉴런은 “누가 몸짓을 하든 그 몸짓에 반응하는 뉴런”이다. 영장류에게도 타인의 시도에 반응하고 느끼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흉내, 곧 모방행동과 감정이입이 신경생리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시사한다. 즉 타인의 마음상태를 흉내 냄으로써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연구자가 보기에 “거울뉴런은 문학작품이 다루어왔던 특정 현상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증명해준 것이다.”   

그럼 뇌과학보다 한발 앞서서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흉내에 관한 어떤 진실을 말해주었는가. 저자는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야나를 일례로 든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만을 좋아했던 이 시골처녀가 오만해 보이는 포즈의 도시 청년 오네긴을 만나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무엇보다도 수많은 연애소설들 탓이다. “수백 권의 연애소설 속에서 수천, 수만 번의 사랑을 읽을 타티야나의 뇌에서는 소설적인 사랑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신경세포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표절의 여왕’이며 그녀가 오네긴에게 보낸 편지는 낭만주의 연애소설의 모사품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타티야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모방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오네긴과는 달리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몰입’에 관한 장에서는 ‘보상 신경전달물질’로도 불리는 도파민이 소개된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도파민은 “뇌를 각성시켜 집중과 주의를 유도하고 쾌감을 일으키며 삶의 의욕을 솟아나게 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 도파민과 관련한 사례를 찾자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키티와의 사랑에 흠뻑 빠졌을 때나 풀베기에 몰입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레빈의 모습이 전형적이다. 또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시를 쓰면서 체험하는 희열 또한 몰입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시대적 혼란과 개인적 역경 속에서도 “시 쓰기에 몰입함으로써 삶도 죽음도 초월하는 창조의 지복을 경험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몰입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몰입과 중독은 같은 상태의 두 가지 다른 이름이기에.    

‘기억과 망각’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뇌과학은 기억이 부호화, 저장, 인출, 망각이라는 네 단계의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기억에 대한 프루스트의 면밀한 관찰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과자를 통해서 주인공의 과거 기억이 환기되는 장면은 신경과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라고 한다. 물론 프루스트가 보여준 건 병적일 정도로 섬세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과 중첩되는 기억이며, 이러한 통찰은 현대 뇌과학의 발견과도 일치한다.   

끝으로 ‘변화’ 장에서 저자가 다루는 건 뇌의 ‘가소성’ 문제다. ‘신경가소성’을 말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가소성 역시 좋은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의 뇌를 풍부하게 하는 한편, 외부 영향에 취약하게도 한다. 저자는 유달리 범속성과 범속한 삶을 자주 모티브로 삼았던 러시아문학, 특히 고골의 작품들과 곤차로프의 소설 <오블로모프>, 그리고 체호프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서 가소성이 갖는 역설적 이중성을 짚어준다.  

뇌과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문학과의 접점은 더 많아지고 깊어질 것이다. 문학이 얼마나 많은 뇌를 더 훔쳐다놓을지 궁금하다.  

11.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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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11-10-0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지시학을 지난학기 박사 마지막 수업에 들어서 뇌과학과 문학의 접점에 대해서 공부했었습니다. 로쟈님의 소개해 놓은 부분만 보면, 위 책은 문학 연구에 대해 새로운 빛을 준다기 보다는, 뇌과학을 문학을 통해 소개해놓은 것처럼 보이네요. ^^

로쟈 2011-10-08 08:21   좋아요 0 | URL
인지시학 소개한 책은 저도 구입해놓았는데, 강의도 있다니 놀랍네요. '새로운 빛'을 경험하셨는지요?^^

2011-10-08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2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2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1-10-26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시점에서 다윈주의적이고 인지적이며 신경과학적인 문학연구 방법은 결국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로 귀착하고 만다는 판단에서다. 문학작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약간은 바꿔놓을지 모르겠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서로 도움을 주는 ‘상호조명’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위 인용글이 석영중 교수 생각의 (혹은 『뇌를 훔친 소설가』의) 정확한 요약이라면, 석영중 교수 생각은 지극히 “나이브”하다고 할 수 있다. 『뇌를 훔친 소설가』 또한 (아직은 안 읽어봤지만) 범작일 가능성이 크다. 논문으로 치면 단순한 총정리 논문쯤(사실 총정리가 아닌 부분적 정리겠지만) 될 것이다. 위 서평만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무리지만,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의 뇌과학적 사실과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의 그 대응적 사례를 골라 짝지어 설명하는 것으로만 그쳤다면, “그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란 뜨악한 핀잔은 석영중 교수 자신이 듣게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연구 주제/설명 대상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문학 작품에서 이것 저것 뽑아와 대응시키고 (중언부언 동어반복적으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 문학과 학부생이나 초보 대학원생의 가장 흔한 논문 유형이다. 『뇌를 훔친 소설가』가 위 서평에서 요약한 대로만 했다면, 혹은 저런 식의 단순 정리 논문의 문학(비평)적 수식에 그친 것이라면, 그저 범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위 인용문에서의 발언 내용은 “그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에 그치는 단순 사례 수집/설명에서 한두 단계 더 나아가 심층적 통찰이나 독창적 사유를 제시하지 못했다는/않았다는 자기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석영중 교수께서는 마음철학/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철학 쪽은 과연 들여다보셨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저런 말씀 하실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뇌를 훔친 소설가』 류의 신경소설, 신경문학, 신경비평, 인지비평 관련서들이 숱하게 출간된 것으로 안다. 이쪽 방면의 학부 초월 융합적/통섭적 연구 붐과 성과는 석영중 교수의 인식과는 전혀 달리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라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국내의 한 교수님은 “인지혁명” 혹은 “패러다임 전환”까지 거론하신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한국에서도 『뇌를 훔친 소설가』 류의 저작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뇌과학, 인지과학, 문학, 인문학과의 만남이 풍성해지리라 기대하게 한다.

(2011-10-26 11:32)
 

오늘자 인물란의 톱뉴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다. 날짜로는 또 오늘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인물란이 부쩍 붐비는 즈음인데, 나는 그냥 소박하게 내가 아는 지인의 인터뷰 기사만 옮겨놓기로 한다. 방송대TV의 '책을 삼킨TV'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가수 '사이'다(처음엔 '싸이'인 줄 알았다).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그의 소박한 인생철학이 경향신문의 창간 65주년 기획특집 기사를 탔다.  


가수 사이의 은행 통장 잔액은 0이지만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그는 “돈이나 직장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폐가를 고쳐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지난달 28일 사이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11. 10. 06) “텃밭 있고, 노래하면 됐지 돈이 왜 필요하죠?”

‘슈퍼 백수’ 가수 사이(38)는 시골에 산다. 전업농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굶지 않고 불편한 것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5년 전 서울을 벗어났다. 참깨, 고추, 호박, 배추 등 필요한 먹거리는 집 앞 텃밭에서 해결한다. 더 많이 수확하려고 부지런히 밭일을 하지도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먹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텃밭에 벼도 심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고 싶을 때 읽는다.

“그냥 돈 버는 일 안 하고 편히 살고 싶었어요. 산 입에는 거미줄 치지 않잖아요. 시골은 생활비가 덜 드니 많이 안 벌어도 되고요. 거의 모든 문제가 돈에서 나오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는 백수는 아니다. 스스로 노래를 작사·작곡해 앨범을 두 장까지 낸 가수다. 두번째 앨범은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행사 중 ‘거리악사 페스티벌’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늘면서 각종 공연행사나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에서 노래를 해달라는 전화도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한 걸 좋아하잖아요. 특히 시골에서는 더 그래요. 근면에 대항하는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미에서 슈퍼 백수라고 불러요. 사실 빈둥거릴 때 가사가 잘 떠올라요.”

  

“사람들은 도대체 내말을 믿지 않아/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전기세 1600원/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그냥 줄이고 덜 쓰고 가난해도 괜찮을 걸….”(후략)>

그가 집에서 녹음·편집·앨범디자인 등 모든 것을 혼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음반에 실린 첫 곡 ‘아방가르드 개론 제1장’의 노랫말이다. 그가 가장 많이 낸 전기료가 한 달에 1600원이었다. 경남 산청에서 살 때다. 그러다 2년 전 더 많은 ‘사이’ 그러니까 더 많은 관계를 맺기 위해 충북 괴산으로 왔다. 폐교인 신기학교 사택에서 살다가 지금은 동네주민이 내준 칠성면 율지리의 폐가를 개조해 살고 있다.

“항상 빈집을 찾고, 농사도 남이 안 쓰는 땅에서 지어야 하니 개간해서 밭을 만들면서 화전민처럼 살았죠. 그러다 괴산에 와서 정말 넉넉하게 살고 있어요. 정말 전기의 고마움을 느꼈어요. 음식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고. 아마 남들처럼 소비하며 살아왔다면 그런 행복은 못 느꼈겠죠.”

그는 통장에 1원 한 푼 없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불안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덜 먹으면 되니까. 사실 살림은 산청에 있을 때보다 넉넉해요.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처럼 넉넉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돈이 생긴다고 저축할 생각도 없어요. 돈 생기면 읍내 나가서 느티(아들)랑 짜장면도 사먹고 쓰면 되죠. 저희는 엥겔계수가 100이에요. 하하.”

그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한다. 자칭 ‘유기농 펑크포크’의 창시자다. 겉은 포크인데 내용은 펑크 스타일이란다. 사람들이 하도 음악장르가 뭐냐고 물어보기에 지었다. 그의 이름처럼 뭔가와 뭔가 사이에 낀 애매한 장르다. 유기농은 시골에 살기 때문에 붙인 일종의 군더더기란다. 사실 자연과 생태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배경이다.

‘당근밭에서 춤추고 있는 노을은 노을보다 아름다워라/ 게으르다고 욕하신 대도 어디까지나 즐거운 마음입니다/마루에 누워 룰루랄라 죄송합니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얘길해도/얘길해도 믿질 않으니 이것 참 환장할 노릇/새우깡 라깡 데리다주고 어머니 앞에서 고백해봐요/당근밭 노을은 혼자보기 안타까워라.’(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부산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나 그냥 음악이 좋았다. 학교(해동고)에서도 옆 교실까지 들릴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전교에 소문난 가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 와서는 국립극장 기관실에서 1년반 동안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우울한 음악에 심취했다. 마치 신발을 쳐다보고 힘없이 걷는 것 같다는 ‘슈게이징(Shoegazing)’ 장르였다.

“2004년쯤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해주던 모임 ‘투쟁과 밥’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밴드를 만들었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엉성한 발음으로 하는 구호가 너무 쏙쏙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죠. 거지처럼 살아도 괜찮구나 하고 겁이 없어졌죠. 시식코너에서 배 채우면서도 즐거웠어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홍대앞, 철거민촌, 새만금, 평택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지율 스님이 천성산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단식할 때는 광화문 옆 공터에서 100일 동안 매일 공연을 했다.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유럽 생태공동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8명이 1000만원을 들고 2주 동안 놀았다. 거기서도 길거리공연을 했고, 마을에서 일도 하며 밥도 얻어먹었다. 돌아올 때는 200만원이 남았다. 생태에 관심을 갖고 시골로 내려갈 ‘용기’가 생긴 것도 이때다.

“두려움 때문인 거 같아요. 돈 없고, 다닐 회사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집착하고. 그건 음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홍대도 자본에 먹히고 있잖아요. 외국 뮤지션 불러오는 비싼 티켓값의 무대에 서지 못하거나 TV의 밴드 발굴 프로그램에 들지 못하는 2류라는 두려움이 퍼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올해 ‘사고’를 쳤다. ‘돈이 위주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축제를 위해, 서울이 아니라 지역 그것도 시골에서도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작고, 어설프고, 불편한 축제를 준비했다’(안내문에서 인용).

지난 3일부터 1박2일 동안 ‘제1회 괴산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장르별로 홍대에서 유명한 뮤지션들을 한 팀 한 팀 고르고 설득했다. 자신과 경기 명창 권재은씨 등 8팀을 꾸렸다. 괴산에서 같이 음악하는 친구 집 앞 유기농 텃밭에 공연장을 만들었다. 화장실은 땅을 파서 간이로 설치했다. 무대를 밝힐 조명등만 설치했다. 객석은 손님들이 가지고 온 돗자리였다.

“돈이 짜놓은 것만 보지 말고 축제는 만들면 된다는 페스티벌 취지에 다들 동감해줬어요. 사실 참가한 팀들은 모시기 힘든 사람들이죠. 관람료는 즉석에서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이어서 얼마를 줄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성공할 거라 확신했어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후원금도 제법 모여 뮤지션들에게 차비라도 줄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후원을 받았는데 150만원이 모였다. 공연자들과 관객 모두 즐거워했다. 잠자리나 음식, 화장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50만원만 있으면 150명이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춤추고, 좋은 추억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여기저기서 축제를 더 키우자고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크기와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하게 놀 수 있게 할 생각이다. 키우면 골치 아픈 일이 많아져서다. 그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했지만 게으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 본 그의 공연 일정표는 빽빽했다(가을이면 으레 성수기라서 그렇단다). 방송대 케이블TV 책소개 프로그램에 격주로 출연한다. 음악이 그를 누구보다 행복하고 부지런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다”고.(박재현 기자)  

11.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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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10-06 19:17 
    가수 사이의 유기농펑크포크 —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 사이를 소개합니다~ (via 로쟈)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앞세운 시위로 미국이 들썩이고 있다 한다.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자본주의의 탐욕과 횡포에 대한 분노가 이젠 '세계화' 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간지마다 '위기의 월가'를 앞다투어 기획기사로 다루고 있는데, 우리라고 변화의 파고에서 예외가 아니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화답하듯 경향신문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뭉뚱그리자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비등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한다.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이달의 서울시장 보선은 변화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경향신문(11. 10. 04) 장하준 “불안한 경쟁 사회,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48·경제학)는 자신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문에서 “200년 전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100년 전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다”며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를 찾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최근 한국 경제에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0일 장 교수와 인터뷰하며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 경제에 새로운 사회계약’은 어떤 것이며 왜 그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어느 사회나 암묵적인 사회계약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암묵적 사회계약이) 생겼고 이후로 한 번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선택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미국이나 브라질처럼 어려운 사람한테만 선별적으로 복지를 하고 시장 논리에 철저히 따르는 ‘원조 자본주의’식으로 갈지, 세금을 많이 걷어서 불평등을 줄이는 유럽식으로 갈지 둘 중 하나다. 국민들은 이제 ‘바람직한 사회’가 뭔가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하는 단계가 됐다. 낙오자들은 죽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갈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 과거 2개의 암묵적 사회계약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었으며 어떤 변천과정을 겪었나.

“첫번째는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보호무역, 보조금 등을 통해 ‘개발’이라는 대전제 아래 우리 기업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보호해준 시스템이었다. 토지개혁을 통해 소농을 보호하고 큰 점포의 입점 규제 등을 통해 소매상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종신고용이란 보호장치를 만들어서 주류 경제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생존할 수 있게 해줬다. 그땐 복지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평등을 유지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재벌들이 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더니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첫번째 체제가 완전히 깨졌다. 사회 전체가 시장주의로 전향해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종신고용이 깨졌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리해고가 늘면서 고용안정성이 줄어들었다.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농민보호장치가 무너지고 소상인들은 대기업들이 소매업에 진출하면서 심한 압박을 느꼈다.”

- 현재의 경제·사회적 모순과 불평등,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경쟁이 중요하다 하면서 10~15년 해보니까 어땠는가. 모든 사람이 불안하고 모든 국민이 불행하다. 이래서는 사회가 지탱이 될 수 없다. 한 번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주고 실업 기간 동안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고, 가족들이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틀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의 직업 선택이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에 청년들이 다른 직종보다 의사나 공무원 취업에 몰렸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먹고살아야 하는데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공대, 자연대에 안 간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멕시코를 제외하고 사회복지 지출이 가장 적은 나라에 들어간다. 이를 고쳐야 한다.”

- 한국 기업생태계는 대기업 위주로 왜곡돼 있다. 사회계약을 다시 쓴다면 경제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기업들이 엔진 역할을 하는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대기업도 정부의 보호와 도움으로 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는 법인세나 소득세 등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 부분이 고도의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 분야다. 중소기업 문제는 단순히 효율성만 고려할 순 없다. 미국에서 쇼핑센터들이 자꾸 외곽으로 나가 도심 공동화(空洞化)가 됐는데 일반적인 시장주의 논리에서 보면 도시가 죽는다는 부분은 계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론 굉장히 큰 비용이다. 도태된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이를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단기적인 이윤 계산으로만 돌아간다.”

- 저출산은 한국 사회의 기반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다. 사회계약과의 상관성도 높다고 보는데.

“한국은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다. 육아·교육 여건이 어려워서 그렇다. 이렇게 30~40년 지나면 (외국인들이 많아져서) 한국은 유전자적으로 한국인이 (주류가) 아닌 사회가 된다. 사회가 다문화로 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이민 와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다문화, 다인종에 대해 ‘질색팔색’하는 분들이 복지국가엔 반대하고 있다. 모순적이다. 이민을 받아들이든지, 복지국가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애를 낳아 양육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우리 여성들이 일종의 출산 파업을 하겠는가. 복지국가는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회계약을 다시 쓰지 않으면 사회갈등도 커지고 경제 활력도 떨어진다. ‘우리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심혜리 기자)   

한국경제(11. 10. 05) 젊은층 분노의 깃발 들다

실업난과 생활고에 분노한 미국 젊은이들의 월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3주째로 접어든 시위는 지난 1969년 뉴욕의 전원도시 베델 평원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 사랑과 평화를 갈구했던 록페스티벌 우드스탁에 비유돼 ‘월스트리트의 우드스탁’으로 불릴 정도로 큰 상징성을 갖게 됐다.

이번 시위는 금융위기를 초래해 수많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으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고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월스트리트와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시스템에 대한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의 바탕에는 글로벌 금융자본의 횡포 및 세계화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이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과거에도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은 존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깊은 불황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재정적자와 증세를 둘러싼 미 정치권의 대립도 이러한 갈등을 고조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를 초단위로 넘나드는 금융자본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세계경제를 한꺼번에 위기에 빠뜨리고 대중을 피폐하게 만드는 불안정한 삶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 금융사들은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여전히 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부담은 정리해고나 임금 삭감 등을 통해 힘없는 일반 국민들만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이번 시위의 목표는 월가를 피고인석에 앉히는 것이었다. 월가는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자기 집에서 내쫓긴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다. 미국의 실업률은 9%를 웃돌고 있으며 구직단념자까지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16.2%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어 수많은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좌절을 맛보고 있다.

중소기업ㆍ자영업자들의 좌절도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영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또 금리는 낮지만 은행 대출의 문턱은 크게 높아져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경제신뢰도는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월가는 ‘대마불사’라는 모럴해저드 속에 정부로부터 7,0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고 있다. 고위임원들은 무능한 경영에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스톡옵션과 현금 등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기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또 위기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개혁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3일 벌어진 시위에서 월가 금융기업을 상징하는 ‘좀비부대’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라’는 플래카드들을 들었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탐욕스런 월가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조지 소로스 등 월가 개혁을 요구해온 인사들도 시위대의 명분에 공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위가 월가,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직이 부재하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는 만큼 ‘아랍의 봄’처럼 미국의 거대한 시스템을 뒤바꿀 만한 변혁을 가져오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것이라는 관측 또한 여전하다.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유명 인사들의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수전 서랜던은 시위에 참여해 “미국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 간격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유명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도 이들에 동조하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소로스는 3일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의 탐욕에 대해 반대하는 월스트리트 시위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시위대에 대한 지지와 참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수백명의 시위자가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피자ㆍ사과ㆍ샌드위치 등 시민들의 기부가 넘쳐난다.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대 교수는 독립방송 데모크라시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이번 시위가 결과를 맺으려면 미국인들에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고 정치적인 역량이 있는 가시적이면서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월가 점령하라" 분노한 젊은이들에 발칵

'미국의 메인스트리트(서민들의 거리)가 마침내 월가에 대반격을 가했다.' 3주째 이어져온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미국 청년들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노동계 등 시민들의 지지 확대로 세를 불리고 있다. 시위는 미 전역 10여개 도시로 번져나가고 있으며 호주ㆍ캐나다ㆍ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는 항의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가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자본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입힌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창했던 것처럼 이제 시장경제와 세계화 추세에도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카진 조지타운대 교수는 "어떤 사회적 운동이든 불만 표출이 첫 단계"라며 "이번 시위가 지속적인 사회운동으로 승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3일 미 언론 등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등에 반대하는 중장년층까지 가세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CNN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본떠 '시카고를 점령하라' ' 로스앤젤레스를 점령하라'는 등의 모토를 내세운 웹사이트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동조시위도 보스턴ㆍ볼티모어ㆍ프로비던스ㆍ로스앤젤레스ㆍ샌프란시코ㆍ미네소타ㆍ하와이 등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24일 수백명의 시위대를 뉴욕경찰이 페퍼스프레이ㆍ그물ㆍ수갑 등을 동원해 강제 연행하고 지난주 말 브루클린브리지에서 800여명이 연행된 후 동정여론이 일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뉴욕의 20만명에 달하는 의료산업 종사자들을 대표하는 의료노동자연맹 1199SEIU는 시위대에 비상구급 키트를 제공하고 추가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시민들의 발인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TWA)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중교통노동자연맹도 5일 뉴욕시청에서 시위대가 모여 있는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 공원까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TWA노동연맹은 연맹 소속 운전사들이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을 수송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맨해튼 연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같은 노동계의 가세는 시위대에 조직화와 체계적인 리더십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위는 미국 밖으로도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캐나다 통신은 '토론토 주식시장을 점령하라'는 단체가 오는 15일 토론토 증권가인 베이가(Bay Street)에서 가두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도쿄를 점령하라'는 페이스북이 열렸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ㆍ유럽 등에서도 유사한 사이트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뉴욕=이학인특파원)

11.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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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6호)에 실은 서평은 옮겨놓는다. 마감 전날까지 고심하다가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위즈덤하우스, 2011)을 서평감으로 골랐다. 서평엔 요점만 간추렸지만 중반 이후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와 읽을 만했다. 책 자체는 1976년에 나왔으니 '올드'한 책이고 한국어판도 예전에 나온 적이 있다. 저자에게 집필 동기를 제공한 책은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지적생활>(1873)인데, 현재 구할 수 있는 판본으론 <지적 즐거움>(베이직북스, 2008)으로 소개돼 있다.   

  

매경이코노미(11. 10. 12) 서재 없는 당신, '지적생활' 포기하시오

‘지적(知的)’이라는 평판을 들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 ‘지적생활’은 어떨까? 아예 ‘지적생활자’로 나서는 것 말이다. 궁금하다면 일본의 평론가이자 영문학자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위즈덤하우스)을 펼쳐보시는 게 좋겠다. 모든 사람이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닐 테니 모두를 위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혹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적생활을 영위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면, ‘지적생활의 ABC’에 대해서 간명하면서도 요긴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지적생활의 핵심은 일단 책이다. “지적생활이란 꾸준히 책을 사들이는 삶”이라는 정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형편에 맞게 책을 지속적으로 사는 것이 지적생활자의 기본 자세다. 물론 그렇게 사들이자니 부수적으로, 아니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게 보관장소의 확보 문제다. 저자의 냉엄한 경고에 따르면 “이 공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지적생활의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은 그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대학시절에 헌책방에서 일본의 교육자 도쿠토미 소호의 <근세일본국민사> 50권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주 탐나는 책이었고 책값도 3000엔으로 무척 쌌지만 2인 1실의 기숙사방에는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룸메이트의 동의도 구하지 못해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일로 그는 자신의 처지가 뼈에 사무치게 한스러웠다. ‘책을 쌓아둘 만한 공간’, 간단히 말해 서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지적생활자에게 서재는 보통 방 한 칸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적생산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장서가 자료로 필요하고 서재는 자연스레 ‘도서관’의 규모를 갖게 된다. 영어로는 서재와 도서관을 통칭해서 ‘라이브러리(library)’라고 부르므로 지적생활을 위해서는 ‘나만의 라이브러리’가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 라이브러리가 영문학자인 저자가 <독일 참모본부>란 책까지 쓸 수 있었던 비결이다. 독일 유학시절에 우연히 독일 육군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서양전쟁사에 관한 책을 한권씩 모았고 어느새 방 한가득 채우게 됐다. 역대 참모총장에 관한 기본문헌부터 평전까지 섭렵하다 보니 독일 근대사 분야의 전문가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독일 군부에 대해서는 정통하게 됐다. 그렇게 오랜 기간 수집해온 자료가 있었기에 실제 집필은 아주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다. 지적생활이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방대한 장서를 갖춘 서재와 지적생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춘다는 건 물론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독립(independency)’이 필요하다. 이때 독립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가리킨다. “나는 인디펜던트다”라고 말하면 굳이 월급에 의지하지 않아도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라 한다. 애초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최대한 일찍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안정적인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문 혹은 지적생활에 매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부는 우리에게 시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를 보면 질투심으로 가슴이 쓰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려받은 유산이 많지 않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23세에 학문에만 몰두하겠다고 결심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결혼도 포기했다. 그러고는 37세에 비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가 일대일대의 작업으로 최초의 영국통사라 평가받는 8권짜리 <영국사>를 완성한 것은 그런 결심과 노력 덕분이었다.  

“지적생활을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는 중병을 제외하고는 가족이다”라거나 여성의 경우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아 키워야 한다면 지적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저자의 충고를 접하면 혹 지적생활에 대한 꿈을 접을 사람도 있겠다. 지적생산에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습관까지 필요하다고 하면 두 손을 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분수에 맞지 않게 지적생활을 꿈꾼 이들이 마음을 접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을 듯싶다. 

11.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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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린의 생각
    from ptec's me2day 2011-10-05 09:48 
    나에게 지적생활은 쓸데없는 사치일까? 우선 이책을 읽어보고 판단해 봐야 겠다.
 
 
yamoo 2011-10-04 20:53   좋아요 0 | URL
지적 생활~ 하면, P.G. 해머턴 아닐까요? 이 분야의 독보적인 고전 중 한 권 같습니다만..골라 주신 책들도 찾아 봐야 겠는 걸요~^^

로쟈 2011-10-05 07:42   좋아요 0 | URL
네 <지적 즐거움>이 같은 책입니다. '지적생활'이란 말의 원조더군요.^^

gangmina 2011-10-05 10:21   좋아요 0 | URL
지적생활의 방법이 새책의 구간인가요? 앞선 책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건지 궁금하네요~~ ㅎ

로쟈 2011-10-05 18:19   좋아요 0 | URL
역자가 같은 걸로 보아 내용은 별 차이가 없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