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에서 '독서에세이'를 청탁받고 쓴 글을 옮겨놓는다. 강의차 최근에 조금 들여다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서 썼다. 지면사정으로 분량이 2매쯤 더 늘어났음에도 '서론' 정도에 머물렀다(루카치에 대해서, 혹은 루카치와 벤야민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길게 써볼 생각이다). 

  

대학신문(11. 10. 10)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루카치, 또는 유토피아에 대한 꿈

『대학신문』에서 원고청탁을 받는다고 반드시 대학시절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텐데, 연상효과 탓인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 생각났다. 내게 이 책은 80년대 후반 대학가의 풍경과 분리되지 않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학부시절에 읽은 가장 난해한 책 두 권이 『소설의 이론』과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두 책의 요지에 대해서는 ‘강의’까지 할 수 있게 됐지만, 직접 읽어나가는 건 별개의 문제다. 어느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전망이 어떻다는 걸 다 알더라도 그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읽기’는 ‘인식’과는 종류가 다르며 어쩌면 용도까지 다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읽기는 경험이니까.

가장 난해했던 책이란 인상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생각만큼 빨리 재회하게 되지는 않았다. 『소설의 이론』에 한정하자면 학부시절에 읽은 것과는 다른 번역본이 그간에 새로 나왔고, 그 또한 바로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뒀지만 진득하게 손에 들 기회는 내지 못했다. 아마도 단순한 책 한 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가 아닌가도 싶다. 가볍게 손에 들기에는 너무 무겁고 묵직하달까? 거창하게 말하면 『소설의 이론』은 그냥 ‘이론서’가 아니라 한 세대의 ‘청춘’이고 ‘역사’다. 하다못해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언제나 플래시백을 동반하는 청춘의 역사.

남학생의 경우 대학시절은 학부생시절과 복학생시절로 나뉜다고 억지를 부린다면, 내게 학부시절은 2학년까지였다. 5공화국 시절의 대학 2년을 용케 버티며 다니다가 3학년에 올라와서는 한달만 강의실에 고개를 내밀다 군대에 갔기 때문이다. 끌려간 건 아니고 자발적으로 갔다. 그게 89년 봄이었다. 그리고 복학한 게 91년. 보통은 동기들이 아닌 후배들과 강의를 듣게 되니 복학생에게 대학생활은 또 다른 풍경이고 또 다른 생활이다. 하지만 내 또래 학번에겐 ‘또 다른 역사’이기도 했다. 이 경우는 스케일도 커서 ‘세계사’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연이어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됐다. 곳곳에서 레닌동상이 철거되고 끝내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세상이, 아니 역사가 일상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바뀌어갔다. 어쩌면 사회적 격동이란 게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오히려 예외에 속했는지도 모른다. ‘기적적인 일상’이란 것 말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밤사이 꽃잎에 이슬이 맺히는 기적!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동기들과 소련의 ‘젊은’ 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의 희망처럼 보였고 더 강력해진 사회주의가 곧 우리 눈앞에 등장할 것처럼 여겨졌다. 착각이었다.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소련이란 나라는 ‘적성국가’였다. 동창회 자리에 나가 전공이 ‘소련’이라고 결연하게 얘기하면 박수를 받던 때였다. 하지만 학부를 졸업하기도 전에 소련이란 나라는 말 그대로 과거, ‘역사적 과거’가 됐다. 자칭 스탈린주의자였던 이들조차도 소련에 대해 욕을 퍼부었다. ‘역사적 사회주의’는 향수의 대상이거나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고는 다들 곧 무관심한 표정이 됐다. “역사는 끝났다!” 모두 심드렁한 표정으로 카페에 앉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어갔다.

돌이켜보니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마당이었으니 학부시절 강의실과 과방에서 명예롭게 울려 퍼지던 루카치란 이름이 퇴물의 대명사가 된 건 당연하다. 그는 교조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이었다. 하기야 “최악의 공산주의라 하더라도 최상의 자본주의보다 더 낫다”고 단언한 골수 공산주의자가 루카치 아니던가.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에서는 세계의 본질이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으로 ‘소설적’이고, 진리에는 소설적 계기가 있는 듯하다. 역사의 종말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포장되던 신자유주의의 치세도 지난 2001년 9.11 테러와 함께 종언을 고했다. 한 철학자의 표현을 빌면 ‘현실 사회주의의 종언’에 뒤이은 ‘자유주의 유토피아의 종언’이다. 죽었다던 역사는 다시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건재를 확인시켰다. “나 아직 안 끝났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점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그렇게 다시 길을 묻는 시대에 루카치를 손에 든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그는 『소설의 이론』 서두에 적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즉 지금은 복된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를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면? 다시 회복해야 한다면? 어쩌면 인류의 위대한 망상 혹은 오랜 망집일지도 모르는 이런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루카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복창하며 ‘황금시대’에 대한 열망이라고 불렀다. ‘진정하고 조화로운 인간들 사이의 진정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가능한 시대다. 혹은 문화와 문명이 인간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는 상태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 꿈을 포기할 수 없다고 루카치는 말했다.

애초에 『소설의 이론』 자체가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격으로 쓰였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본격적인 도스토예프스키론은 쓰이지 않았다. 그건 제1차 세계대전에 직면해 무엇이 파국에 직면한 서구 문명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를 고민하던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 나아가기 전에 러시아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근대 러시아문학 전체는 1917년 혁명에 수렴된다고까지 그는 적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자리는 ‘1917년 이전의 루카치’고, 우리가 다시 읽는 루카치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루카치’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지지와 옹호도 지금에 와서 다시 읽으면, “최상의 자본주의보다 못한 공산주의라면 공산주의도 아니다”란 뜻인가도 싶다. 현실사회주의를 ‘현실과 타협한 사회주의’란 의미로 이해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에게 꿈이 있는가.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사무엘 베게트)란 경구를 실천할 용기가 있는가. 그런 생각과 함께 『소설의 이론』을 다시 펼친다. 

11.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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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10-09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소설의 이론>을 읽어본 건 99년이니까 로쟈님하고 대략 10년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네요.^^; 추억을 되새기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역사와 계급의식>, <청년헤겔>도 구비는 해 놓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있네요. 로쟈님의 루카치 / 벤야민론도 기대하겠습니다. 중간고사 바쁘시죠?^^

로쟈 2011-10-09 23:49   좋아요 0 | URL
학부시절이라고 확장해놓긴 했는데, 대학1-2학년때 읽은 듯해요. 중간고사로 제가 바쁠 일은 전혀 없는데요.^^

빵가게재습격 2011-10-10 09:12   좋아요 0 | URL
아, 네.^^ 근데 시험 안 치시나요? 문제내시고, 채점...?^^;

로쟈 2011-10-11 11:04   좋아요 0 | URL
문제내는 건 너무 간단하구요, 채점은 기말에 몰아서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0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카치의 저작은 어렵지만 그의 생애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두툼한 전기가 한권 번역되면 좋겠습니다.리히트하임이 쓴 전기는 너무 얇아서...루카치가 지지했던 임레 나지를 다룬 영화가 있었는데 그의 최후를 보니까 그럭저럭 루카치는 임레 나지보단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로쟈 2011-10-09 23:51   좋아요 0 | URL
자전적 기록이 <맑스로 가는 길>로 나왔던 적은 있습니다. 두툼한 평전은 저도 아쉽습니다...

olikim 2011-10-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글 잘 읽었어요..안 그래도 오늘 수업 준비 때문에 벤야민의 The Storyteller를 읽다가 루카츠가 나오길래 찾아보려던 참이였는데 마침 선생님이 루카츠 관련 글을 올렸네요^^ 아 전 올가에요~ 선생님 블로그에 종종 들리곤 했는데 흔적은 처음 남긴 거 같아요..

로쟈 2011-10-11 11:00   좋아요 0 | URL
강의준비? 반가워, 오랜만이네.^^

미국사람 2011-10-1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영역본을 구한 뒤 복사를 떠서 읽으려했다가 두페이지 쯤 읽고 도저히 못 읽겠어서 그만두었는데 그리고 십몇년 지난 뒤 영역 불역을 모두 다 구했는데 읽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그 이후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책장에 그냥 있읍니다. 영어 좀 한다고 읽을 수 있는 책은 전혀 아닌 듯.. 죽기 전에 읽어보고 죽을지 모르겠네요.

로쟈 2011-10-11 11:01   좋아요 0 | URL
네, 독일 정신과학 전통에 익숙치 않으면 읽기 어려운 책으로 돼 있어요...

msjpolitics 2011-10-1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부때 루카치 책만 들었다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 교수님중에 한 분도 쏘련의 농업정책쪽으로 박사논문을 끝내자마자 소동구가 무너져서 참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네요.

로쟈 2011-10-13 22:42   좋아요 0 | URL
논문 주제를 바꾼 사람들도 꽤 됐었지요. 그때로선 세상이 바뀌었으니까요...
 

러시아사나 러시아문화사에 관한 책은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는(참고해야 하는) 편이지만 원고도 청탁받은 게 있어서 겸사겸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계기가 된 건 세르게이 플라토노프의 <러시아사 강의>(나남)를 최근에 구한 것인데, <제국의 탄생>(웅진지식하우스)의 초반부를 읽다가 16-17세기 러시아의 영토팽창에 '급'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예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까지 손에  넣었다. 러시아사의 '표준' 역할을 해주던(내가 제일 처음 읽은 러시아사이기도 했다) 랴자노프스키의 <러시아사>(까치)가 절판된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됐는데 아쉬운 일이다. 복간되거나 적어도 그만한 다른 책이 대신 나오면 좋겠다(*다행히 새로 개정판 번역이 나왔다). 러시아문화사에 대한 표준은 당분간 <러시아문화사 강의>(그린비)가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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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1-10-09 21:40   좋아요 0 | URL
랴자노프스키 러시아사는 새로 나온 판본을 까치에서 계약했는데 언제 나올는지는... <러시아 문화사 강의> 알리기 너무 어렵습니다. ㅠㅠ

로쟈 2011-10-09 23:53   좋아요 0 | URL
아 개정판이 나오나 보군요. <러시아문화사 강의>는 유익한 책인데, 두께 때문에 엄두들을 못 내나 봐요. 독립된 장들이니 따로 읽으면 되는데요.^^;

달사르 2011-10-10 10:01   좋아요 0 | URL
와. 좋은 목록입니다. 저는 이덕형 님의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을 읽고는 러시아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요. 일단 이덕형 님의 여러 책들 위주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위의 목록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러시아문화사 강의> 역시 두꺼운가보군요. 하하. 두고 두고 읽어야겠습니다.

근데 역시..러시아 관련 책은 품절이 많군요..

로쟈 2011-10-11 11:03   좋아요 0 | URL
품절된 책들이 다시 나왔으면 해서 리스트를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이름없는괴물 2011-11-05 12:50   좋아요 0 | URL
까치사판의 러시아의 역사와 나남사판의 러시아 역사 중 어느 쪽이 더 쉽게 읽어질까요? 나남사판은 한번 도전했다가 영 읽히지가 않아서 중도 하차한적이 있어서요. 러시아 역사에 관한 책도 꼭 읽어보고 싶지만 뭘 읽어야 될 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로쟈 2011-11-05 16:24   좋아요 0 | URL
나남에서 나온 러시아사는 19세기까지입니다. 까치판은 예전에 잘 읽힌 기억이 있습니다. 8판이라고 갑자기 안 읽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

'10월의 읽을 만한 책'의 카테고리로 '중국의 지식인'을 만들어놓고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 등을 올려놓았었는데, 마침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지식인 문제는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다. 그간에 서구 지성사에 가려져왔던 '중국의 지식인' 문제가 지식인 문제 일반을 다룰 때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지식인' 문제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고...  

교수신문(11. 10. 04) 그들은 왜 사회의 중심을 세우는 데 실패했나    

이 책의 집필진은 중국의 지식계의 대표적인 지식인들로 구성되어있다. 黃平, 余英時, 杜維明, 徐復觀, 錢穆, 費孝通, 錢理群, 陳平原, 李歐梵, 桑兵, 章淸 등 역사, 철학, 사상, 문학, 문화, 정치, 사회학 등의 다양한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다. 포괄하고 있는 시기는 춘추전국시기에서 1905년 과거제도 폐지 전까지 제왕의 조력자이자 민간사회의 엘리트로 살았던 사대부 중심의 시기. 서양과의 충돌과 서구학문의 유입으로 신지식과 신지식인 집단이 형성된 시기, 사회주의 건설이후 지식인 사상개조로 인한 핍박과 상실의 시기, 개혁개방이후 새로운 지식인의 등장과 활발한 지식담론이 성행된 시기 등이다. 수록된 내용은 주로 지식인의 개념, 범주 및 유형, 고대 지식인의 구조와 역할, 지식인의 역사적 성격과 운명, 지식인의 주변화 현상, 지식인 집단의 몰락 및 도시 공간 속의 지식인 등 20세기 지식인에 대한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내용들을 총망라했으며, 나아가 지식인 사회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네트워크, 매체, 사단, 학회 등의 다양한 방법과 주제를 다루고 있다. 

쉬지린 교수가 편선한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는 중국의 대표 지식인들이 바라본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무려 중국 고대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중국의 지식인 역사를 핵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20세기는 그야말로 대변혁의 시기였다. 20세기 중국의 지식인들이 겪은 변화는 그야말로 사상적인 면에서의 가치전환일 뿐만 아니라 사회사적인 면에서의 신분, 지위, 역할의 대변환이었다. 이 책은 후자에 초점을 맞춰 지식사회사 측면에서 이러한 대전환기 사회정치와 문화사상의 상호작용 속에서의 지식인의 역사를 연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쉬지린 교수는 20세기 중국 지식인을 어떻게 엮어나갔는가. 중국의 근대 사상계에서 서구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미친 점은 바로 지식구조일 것이다. 관료와 지식인이라는 이중적 역할에서부터 중심과 주변을 넘나드는 경계인으로서의 중국 지식인은 어떠한 근대 중국의 지적 구조를 형성해나갔는가. 또한 20세기 중국의 지식지형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식인은 국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나갔는가. 이것이 이 책의 초점이다. 쉬지린 교수는 이를 ‘단절된 사회 속의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쉬지린 교수는 현대 지식인이 처한 사회는 지식인의 중심인 사민사회가 아니라 ‘중심이 없는 단절된 사회’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의 단절인 것이다. 과거의 사대부는 원래 국가와 사회를 일체화하는 중추적 기능을 수행했으나 1905년 과거제도의 폐지에 따라 사대부 계급은 와해되고 국가와 사회 사이에도 더 이상 제도적인 소통을 수립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단절은 각 계층 간의 단절이다. 각 계층사이에는 공공의 가치관과 제도적 토대가 결여돼 사회에는 더 이상 중심이 없게 됐고 상호 제도화 된 유기적 관계도 결핍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절된 사회의 난국 속에서 지식인은 국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그는 전통사회에서의 사대부계층과 국가, 사회의 유기적 관계는 오늘날도 모두 붕괴했다고 말한다. 과거제도의 폐지는 현대 지식인으로 하여금 국가와의 내재적인 체제관계를 잃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강렬한 소외감을 낳았으며, 또한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민간사회에서 벗어나 도시로 흘러들어가 국가로부터 소외됐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유리된 표류하는 지식인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북경, 상해 등의 대도시로 간 지식인들은 현대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지식공간 즉, 학술 집단과 문화매체를 마련했다. 학술 집단은 지식생산영역의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문화매체는 지식유통영역의 신문, 잡지, 출판업으로 구성됐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이 지식공간들은 고대 중국에서는 없었으며, 제도화된 네트워크 규모로 출현했던 적도 없었다. 이는 현대 지식인들이 의지하는 유일한 사회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핵심이 되는 상업사회와 권력이 핵심이 되는 국가체계가 존재함에 따라 자신들의 작은 사회인 학술 집단과 문화매체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국가, 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상실했다. 현대 지식인은 더 이상 사회의 중심이 아니며, 도리어 ‘단절된 사회’에서 더욱 더 주변화된 존재다.

이는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사회는 새롭게 국가로부터 해방됐으며 지식인 또한 주변에서 중심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商工社會의 궐기로 인해 지식인은 또 다시 주변화됐으며, 이번에는 국가에 의해 전복당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게 전복당한 것이었다. 시장사회로 인해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갈망은 멀어져 간 것이다.

2010년 국제학술회의 차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를 방문한 쉬지린 교수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와 유사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전통사대부에서 현대지식인으로 나아가면서 끌어 안아야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현대사회의 公民意識이다. 공민의식은 사민사회에서는 탄생할 수 없으며 단절된 사회에서도 쌓아나가기 어렵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건전한 공민문화와 민주정치이며, 이러한 것들은 바로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제도화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내용 측면에서 이후 보완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테면, 개혁개방이후 중국 사회의 전환에 따른 지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지식인 문제가 본격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돼 하나의 지식담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중국 지식계, 사상계의 분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형성됐던 계몽 진영이 90년대에 이르러 사상 면에서 거대한 분화를 보인다. 1990년대 인문정신이 계몽진영을 인문파와 시장파로 분리시켰고, 90년대 상반기 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은 개혁진영을 자유파와 산좌파라는 두 극단으로 분열시켰다. 이에 따라 1990년대는 지식담론에 대한 논의는 활발했지만, 중국사상계 내부에는 통일된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고 대립과 분열이 출현했다. 이는 결국 지식의 사상분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분화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지식구조와 유형의 분화이자, 지식(인)의 분열, 사상가치의 분열이기도 하다(쉬지린『중국지식네트워크』). 이러한 1990년대 이후 지식계의 대분화를 통한 중국 지식담론의 계보와 지형을 분석한 논의가 보충될 필요가 있다.(박영순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11.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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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번역자'로 단연 꼽을 만한 이는 사마천의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다. <본기>, <세가>, <열전>에 이어서 이번에 <표>와 <서>를 마저 번역 출간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할 만한 일을 혼자 힘으로 오랜 노고 끝에 완결지었으니 경의를 표할 만하다. 안 그래도 여름에 <사기>의 앞에 나온 세 권은 구입을 했는데, 이제 마저 짝을 맞춰놓아야겠다.

  

한겨레(11. 10. 08) “14년 걸려 중국서도 드문 ‘표’ 번역까지 했죠”

중국 역사서 최고 고전인 <사기>처럼 유명한 책도 없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52만6500여자에 달하는 <사기> 전체를 우리말로 완전하게 옮긴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추리고 다듬은 편집본들만 접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중문학자인 김원중 건양대 교수(사진)가 최근 <사기 표(表)>와 <사기 서(書)>를 번역 출간해, 14년 동안 이어오던 <사기> 완역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전체 130편으로 이뤄져 있다. 김 교수는 1997년 <사기 열전>(2권)을, 지난해에는 <사기 본기>와 <사기 세가>를 번역했고, 이번에 <표>와 <서>를 출간해 비로소 <사기>의 모든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난 5일 만난 김 교수는 “20여년 동안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번역에 매달렸다”며 “끝내고 나니 10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정도로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으로 김 교수는 ‘혼자 <사기>를 완역한 학자’, ‘<삼국지>와 <사기>를 함께 완역한 학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홀로 사기를 번역한 사례는 없으며, 중국에서 이 고전을 현대 중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국가 주도로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해 이뤄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한 ‘표’는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된 역사적 사실 관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한 기록물로서, 중국에서도 번역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혼자 번역에 매달려 이 대장정 같은 작업을 마쳤다. 중국 중화서국에서 냈던 <사기> 표점본(고문에 구두점을 찍은 판본)을 바탕삼았는데, 철저히 원전 중심주의를 지키면서도 가독성 높은 번역을 추구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번역된 말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잘된 번역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또 우리나라만의 번역 정체성을 살리고픈 마음에 중국어·일본어 번역본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에 대한 집념은 국내 번역 현실을 우려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나왔다. 중국의 ‘24사(史)’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완역된 작품은 자신이 번역한 <사기>와 <삼국지>뿐이다. 일본에서는 <한서>, <삼국지>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완역돼 있었으며, <표>를 포함한 <사기>의 완역도 지난해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국내엔 저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다”며 “문제는 학자들이 번역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학문적 토양”이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번역을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 등 학문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꼭 필요한 번역본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사기>를 번역하면서 백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미 <사기>에 깊이 매혹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왜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형가의 이야기, 곧 실패담을 굳이 써넣었을까요? 아내의 충고를 듣고 태도를 바꾼 안자의 마부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은 왜 써넣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곧 2500년 역사를 통해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만사의 근본과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던 사마천의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한 권으로 읽는’, ‘하루 만에 끝내는’ 등의 제목이 붙은 편집본을 봐서는 고전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쓴이의 의도를 생각하며 글 전체를 천천히 읽어내려갈 때 비로소 그 심오한 뜻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최원형 기자) 

11. 10. 08.  

P.S. 국내에선 <사기> 완역에 도전한 학자가 한 명 더 있다. <사기> 전문가 김영수 교수도 <본기1>(알마, 2010)을 펴내면서 장정에 들어간 상태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또한 완결되기를 기대하면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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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10-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이나마 다 찍은 줄 알았는데 '표'와 '서'가 또 나왔군요. 저는 책을 읽고 나니 책속의 이야기보다 사마천에 대해 두고 두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로쟈 2011-10-09 11:54   좋아요 0 | URL
네, 대단하긴 하죠.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써냈으니 말이에요...

미국사람 2011-10-11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중 교수가 사기완역이라는 대단한 일을 해냈군요. 번역을 업적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는 빨리 바뀌어야합니다.

미국에서는 인디아나대학에서 8권짜리 완역이 나와있어요. Ssu ma Ch’ien (1994), The Grand Scribe’s Records (1994 부터 2008년까지 간행) 학술서적이라 가격은 권당 100불 정도이니 일반인이 사서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만 도서관에는 상당히 깔려 있더라구요. 읽어보려했더니 지명과 인명이 중국발음인데다 한자가 전혀 병기가 안되어있어서 두어페이지 읽고 그만두었읍니다. (항우나 유방같은 이름의 중국발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읍니다.) 다만 주석까지 빼곡히 달려있어서 우리의 일반 번역서와는 비교가 안되는 높은 수준입니다.

일본쪽 사기 번역은 찌꾸마 문고 쪽이 (史記 全8巻)』小竹文夫・小竹武夫 共訳、筑摩書房〈ちくま学芸文庫〉、初版1995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사기 연구서적 쪽으로 가면 한국과 일본은 거의 상대가 안되는 수준입니다. 중국 고전을 교과서로 과거를 500년 이상 실시했던 조선의 후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개탄할만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한서도 예전에 번역되어나왔는데 우리는 언제 한서 번역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동양사하려면 한문 중국어 뿐아니라 일본말까지 필수로 해야 됩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로쟈 2011-10-11 11:02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정보네요. <자치통감>의 경우엔 그래도 얼마전인가 완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24사가 조금씩은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직 요원하겠지만요.^^;
 

'이주의 학술서'라 할 만한 책은 정연태 교수의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푸른역사, 2011). 소개기사조차도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이란 제목을 달았다!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정리하는 데 요긴할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8)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는가는 국내 역사학, 경제사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최근 교육부의 역사 교육 과정 개정 작업에 '일제에 의한 근대적 제도의 이식 과정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한 데서 새삼 드러나듯 이 논쟁은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과도 오버랩된다.

한국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지만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로 피어나지 못했다는 식민지 수탈론이나, 식민 지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이식으로 근대화에 진척이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일면을 부각해서 보려 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가톨릭대 정연태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둘러싼 최근 10년간 자신의 논문을 엮은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서 이 같은 논쟁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그는 '근대사 굴절에 대한 책임을 손쉽게 외세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주체적 한계를 직시하고 반성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발전 잠재력과 역동성도 동시에 포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기에 더해 근대 자체를 비판하는 '탈근대론'도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의 쌍생아처럼 취급하여 백안시하거나 민족성ㆍ식민성을 근대성의 묶음 속에 집어넣어 뼈도 없이 녹여 버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비판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은 이 같은 학문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서양인의 한국근대사 인식이다. 서양인의 왜곡된 동양관 같은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조선과 조선인에 호의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이들은 당시 조선 실정에 대해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발전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양반ㆍ관료층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고갈됐고, 민중은 근로ㆍ저축 의욕 감퇴로 나태와 빈곤의 늪에 빠졌으며, 국가 경제는 후진적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당장은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도 대동소이하다.

이 같이 중층복합적인 시대 상황을 조선 후기의 포구 도시인 충남 강경에 대한 미시 연구 등을 통해 재확인하면서 그는 '장기(長期) 근대사론'이라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안한다. 한반도의 근대가 해방과 함께 압축적으로 끝났다고 볼 것이 아니라 남북통일까지 미완의 것으로 보자는 문제 제기다. 이론(異論)이 적지 않겠지만 열린 민족주의 등 건강한 민족주의의 실천적 완성이라는 숙제까지 포함한 이 개념이 실익 있는 근대사 논쟁에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음에는 틀림없다.(김범수기자) 

11. 10. 08.   

P.S. 기억에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새로운 물꼬를 터준 이는 '회색지대'론을 주장한 윤해동 교수였는데, 이후에 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다. 정연태 교수의 책이 가이드가 돼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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