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읽으려고 생각하다가 어젯밤에서야 책상맡에 놓은 책은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책읽는수요일, 2012)이다. 작년 아마존닷컴의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지만, 제목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원서의 부제가 '몽테뉴의 삶'이고, 번역서 표지에는 '프랑스 정신의 아버지 몽테뉴의 인생에 관한 20가지 대답'이 보충설명으로 박혀 있다. 몽테뉴의 삶과 사상에 관한 책이라는 얘기인데, 베스트셀러까지? 해답은 '더 타임스'의 리뷰가 말해준다. "몽테뉴 입문서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

 

 

 

나로선 '어떻게 살 것인가'란 제목도, 몽테뉴에 관한 책이라는 점도, 몽테뉴의 얼굴이 담긴 표지도(특히의 표지의 톤) 모두 맘에 들기에 바로 주문한 책이다. 덕분에 '책읽는수요일'이란 출판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몽테뉴라고 하면 '에세(essais)'의 창시자로도 유명한데, 몽테뉴 이전에는 그런 장르가 없었다고 한다. 하나의 장르 자체를 만들어낸 책이 <에세>이며 우리에겐 흔히 <수상록>이라고 알려진 책이다. 몇가지 제목이 경합을 벌이긴 했지만 <수상록>으로 안착된 듯싶다. 연구자들은 <엣세>라고도 부르지만. 

 

그런데 <수상록>을 손에 들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게 상상 이상의 분량이다. 국내에는 손우성 선생의 완역본이 나와 있다(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제목만 여러 번 바뀌었다). 몽테뉴가 1572년부터 1592년까지 20년 남짓 동안 쓴 것인데, 모두 107편의 에세이다. 거기서 끝난 건 뭔가 완결됐기 때문이 아니라 몽테뉴가 거기까지 쓰고 죽었기 때문이다. '시도하다'는 뜻을 가진 '에세예' 동사의 결과물이 <에세>라는 걸 상기하게 된다.

 

<에세>, 곧 <수상록>은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지만 당연히 두서가 없다.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어떻게 읽을지 말해주는 하나의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책을 주문한 이유다.

 

개인적으로 <수상록>과의 첫 인연은 중3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온 이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추천하면서 몇몇 에피소드를 들려주었고('습관에 대하여'가 인상적이었다) 막바로 서점에서 구입한 게 세로읽기로 된 선집이었다. 선집이어도 분량은 웬만한 책 이상이었다.

 

마땅한 새 번역본이나 완역본을 구경하지 못하다가 다시금 몽테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러시아 시인 푸슈킨이 몽테뉴를 읽었다는 걸 알면서부터이다. 몽테뉴 읽기가 '전공' 공부에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두 권짜리 두툼한 <수상록>을 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컬렉터로서 자랑거리의 하나다). 러시아어 제목은 <경험>이라고 돼 있는데, 나는 나중에야 흔히 '경험'으로 옮겨지는 러시아어 단어가 불어 '에세'의 번역어라는 걸 알았다. '해본다'는 뜻인 것.

 

 

 

홋다 요시에의 평전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한길사, 1999)도 좀 뒤늦게 구했다. 오프라인서점에서였다. 지금 확인해보니 1권이 품절로 뜬다.

 

 

 

국내 저자의 책으론 파스칼 전공자인 이환 교수의 연구서로 <몽테뉴의 '엣세'>(서울대출판부, 2004)와 <몽테뉴와 파스칼>(민음사, 2007)이 나와 있고(<몽테뉴와 파스칼>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박홍규 교수의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청어람미디어, 2004)가 몽테뉴에 대한 수상록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다소 빈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데, 마침 사라 베이크웰의 책이 부족한 부분을 꽤 상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의 첫 독서를 <어떻게 살 것인가>로 시작하는 이유다...

 

12. 01. 24.

 

 

 

P.S. 여러 사정상, 그리고 습관적으로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편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이 읽고 있는 책은 프랑스 철학자 뤽 페리의 <사는 법을 배우다>(기파랑, 2008)이다. <미학적 인간>(고려원, 1994) 이후에 소개된 그의 책들을 대부분 갖고 있는데, 읽다 보니 가장 유익해보이는 책이 바로 <사는 법을 배우다>이다. 몽테뉴의 후예답게 서두에서 몽테뉴의 말도 한마디 인용하고 있다. "철학하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말이다. 사실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죽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방식은 아주 간단해. 철학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거야. 즉, 신이 아닌 인간은 반드시 사멸한다는 사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야.(19쪽)

인간이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유한한 존재란 일반론을 특수한 정황에 맞게 고쳐 말하면, 독서인으로서 나는 나의 서재에 유폐된 존재다. 아직 난장판인 방안을 둘러보며 연휴 기간중 책장을 정리하겠다던 계획을 1월말까지로 연장한다. 생각해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대로 읽어보려고 해도, 일단은 오늘치의 정리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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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에릭 라이너트의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부키, 2012)를 사러 서점에 갔다가 손에 든 책의 하나는 금장태의 <다산 정약용>(살림, 2005)이다. 밤에는 오히려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책은 작년 여름에 4쇄를 찍었으니까 꾸준히 나가는 셈인데, 사실 다산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한형조의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세계사, 1996)를 읽은 게 마지막인 듯싶으니 십수년 전이다. 그러다가 책이 눈에 들어온 건 나이가 들어서 동양고전과 한국사 쪽에 좀더 본격적인 관심이 갖게 되어서이다. 젊은 시절 마흔 이후로 미뤄둔 독서계획이기도 했지만.  

 

서울대 종교학과 재직했던 저자가 다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조선의 천주교 전래와 박해에 관해 공부하다가 이렇게저렇게 연결이 됐기 때문이다. 우선 이만채의 <벽위편>. 이 책은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했을 때 유교 지식인들과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배척한 사실에 관한 자료집"이라 한다(조선의 천주교 수용에 대해선 조광 교수의 연구서가 나와 있다). 종교학을 전공한 저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책. 이어서 <벽위편>은 마테오 리치에게로 관심을 이끈다. 명나라 말기 중국에서 활동한 이 예수회 선교사가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 <천주실의>를 읽게 된 것이다.

<천주실의>는 천주교 교리를 유교 경전의 사상과 조화롭게 만나도록 한 책이다. 16세기 말, 동양과 서양의 두 사상이 본격적으로 만나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15쪽)

 

 

어젯밤에 읽은 대목인데, 그래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몇 차례 출간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나온 <천주실의>(2010)가 정본에 해당한다.

 

 

 

마테오 리치의 다른 책으론 <중국견문록>(문사철, 2011)과 <교우론 외>(서울대출판부, 2000)이 더 나와있고,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 1999)이 유용한 평전이다(오래전에 구입하고 완독하진 못했는데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군).

 

금장태 교수가 대학원 과정에서 정약용과 서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할 무렵인 1960년대는 다산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였다고 한다. 이렇게 진술한다.

당시 북한에서는 최익한의 <실학파와 정다산>(1955)이 간행되었으나 당시에는 그 책을 볼 수가 없었고, 남한에서는 홍이섭교수의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 연구>(1959)가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뒤이어 이울호 교수의 <다산 경학 연구>(1966)이 간행되어 다산 사상의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16쪽) 

 

 

1960년대에는 읽을 수 없었다는 최익한의 책이 작년에 나온 <실학파와 정다산>(서해문집, 2011)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한에서 나온 홍이섭, 이을호 교수의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듯싶다. 아무튼 금장태 교수는 다산과 서학의 관계를 연구의 관심사로 삼았지만 당시에는 다산 사상이 서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공박을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놓고 반박을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다산 사상과 서학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상태라고. 그렇다면 저자의 핵심적 관점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정약용에게 한발짝씩 다가가면서 뒤이어 깨달은 것은 정약용이 서학의 세계관을 수용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 아니라, 서학의 세계관으로부터 충격을 받고 유교 경전의 세계를 새로운 빛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19쪽)

책의 부제가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산을 재조명한 연구서가 백민정의 <정약용의 철학>(이학사, 2007)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책인 듯싶은데, '주희와 마테오 리치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란 부제가 핵심을 요약해준다. 이 책과 함께 금장태 교수의 <다산 평전>(지식과교양, 2011)을 또한 장바구니에 넣었다(알라딘은 오늘까지도 주문이 먹통이다). 다산 평전을 검색해봤지만 의외로 본격적인 저작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다산 평전>만 해도 작년에 나온 책이니 이전에는 어떤 책이 읽힌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정약용과 마테오 리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것. 물론 기념비적으로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의 대표작 '1표 2서', 곧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만 갖추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는 <목민심서> 정도만 챙겨놓고 있는데(<흠흠신서>는 절판된 듯하다), 다음 목표가 일단은 <경셰유표1,2,3>(한길사, 1997)이다. <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 2011)까지 가려면 일단은 '다산의 발견'이 먼저일 테니까. 아,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 2011)은 '재발견' 이전에도 읽어볼 수 있겠다. 이미 갖고 있는 책이니까...

 

12. 01. 22.

 

 

 

P.S. 한국 유학과 유학자들에 대한 많은 연구저술을 갖고 있지만 금장태 교수의 주된 연구주제는 '종교로서의 유교'이다. 편역서인 <유교는 종교인가1,2>(지식과교양, 2011)란 물음이 주제를 이끄는 물음이다. 찾아보니 최근작으로는 <한국유교와 타종교>(박문사, 2010)도 나와 있다.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이라면 '유교'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겠지만, 나의 관심은 일단 공자나 정약용에 머문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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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프랑수아 퀴세의 <루이비통이 된 푸코?>(난장, 2012)다. 아직 리뷰기사는 없고, 지난 11월 방한하여 황석영 작가와 나눈 대담기사만이 올라와 있다(작년에 중앙대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도 발표한 바 있다). 원제는 <프랑스 이론>이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의 프랑스산 이론이 미국 지식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거꾸로 미국 지식계가 이들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일종의 지식사회학? 이 책과 함께 이번주 관심도서 몇권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이미 갖고 있거나 곧 구입할 책들인데, 리뷰기사를 따로 스크랩해놓을 수 없으니 앞으론 '이주의책'이란 태그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 것으로 대신할 참이다(일이 좀 줄긴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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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프랑수아 퀴세 지음,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 난장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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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대통령
미셀 팽송 & 모니크 팽송-샤를로 지음, 장행훈 옮김 / 프리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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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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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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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플라톤의 <향연> 가운데 한 대목을 읽고 있다. <향연>에 대해서는 강의를 진행중이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7-8종이다. 활달한 대화체의 느낌은 주지 않지만 표준적인 건 정암학당 전집판의 <향연>(이제이북스, 2010)이다.

 

 

 

한겨레(12. 01. 21) 고대 그리스 ‘최고의 사랑’은…동성애라네

 

‘사랑에 관한 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책, 바로 플라톤의 <향연>이다. 플라톤의 작품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분량을 고려하면 믿기진 않는다. 번역종수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다음으로 많은 것이 <향연>이다. 이래저래 플라톤의 독자라면 두번째로 많이 손에 들 법한 책이다.

<향연>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 자리에서 일곱명의 연사가 사랑의 신 에로스를 각각 찬양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야기의 정점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이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파이드로스만 봐도 그렇다. 다른 신들과 달리 에로스에 대해선 변변한 찬가조차 없다는 게 평소 그의 불만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사랑으로 하자는 제안은 그의 발상에서 비롯됐기에 그는 향연에서 ‘이야기의 아버지’라고 호명된다.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에로스는 카오스(틈)와 가이아(땅)에 이어서 생겨난 가장 오래된 신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 ‘최대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물론 ‘사랑’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건 특별한 유형의 사랑이었다. “사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고결한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연인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었다네”(박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라고 옮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이라고 하면 좀 명확해진다.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사랑받는 사람’ 역시 남자다. 다만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이가 좀 어리기에 ‘소년 애인’이라고 옮겼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중년 남자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미소년이다. 인생에서 최대로 좋은 것이란, 두 남자가 각각 그런 상대를 갖는 것이다. 국가나 군대가 이렇듯 사랑하는 자와 소년 애인으로 구성된다면 아무리 적은 수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게 파이드로스의 장담이다. 실제로 테베에서는 남성 커플 150쌍으로 이루어져 혁혁한 공을 세운 ‘신성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이상적인 사례가 뜻밖에도 아킬레우스다.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곧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만 엉뚱한 소리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아직 턱에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에라스테스)가 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브래드 핏)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보다 연장자로 나오지만 실상은 거꾸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에로스적 관계에서는 두 가지 ‘소중히 여김’이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스의 신들이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나선 것은 그래서 높이 칭송된다고 파이드로스는 말한다. 제법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향연>의 나머지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여볼 수 있겠다. 그리스의 속담을 약간 비틀면, 훌륭한 사람은 초대장이 없이도 향연에 참석할 수 있다.

 

12. 01. 21.

 

P.S. 고대 그리스에선 동성애가 사랑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기에 사실 칼럼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정확하게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 이제이북스판에서는 "한데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아이스퀼로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네"라고 옮겼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해도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에라스테스(사랑하는 자)라는 말이다"라고 각주에 설명돼 있지 않다면 모호하게 읽혔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위 말해 에로스적 관계이지만 대등하진 않다. 고대 그리스에선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안 난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에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 아이스퀼로스는 잘못 말한 것이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더 살펴보면, 안티쿠스판에서도 그냥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네"라고만 옮기고 있는데, '사랑했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독자로선 둘의 관계가 헷갈릴 수 있다. 지만지판에서는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으로 묘사한 것은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옮겼는데,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 아니다'라고 정리하게 되면 우리말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예출판사판에서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애인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잘못입니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잘못은 아니더라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도 유의해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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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실은 '문화와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어제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마땅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해 최악으로 보낸 지각원고다. 자기 글을 블로그에 게시하는 건에 대해서는 오늘 오전에 알라딘측에서 회신이 왔다.

저작권법을 조사해보니,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기고한 신문 기사의 경우, 별도의 신문사 허락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블로그에 전문을 올려도 괜찮다고 합니다.(원고료를 받는다고 해서, 그 저작권이 신문사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잘 모르고, 로쟈님이 직접 기고하신 글을 브라인드 처리하고 메일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이 경우는 내가 갖고 있던 상식이 법과 상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하튼 그래서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에 대해서는 이 서재에 계속 공개해놓는다.

 

 

 

경향신문(12. 01. 20)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나라

 

새해를 맞아 조선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는 계승범 교수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를 읽은 것이 계기다. 알다시피 1392년에 개국한 조선은 200년 뒤인 1592년 최대의 국난을 맞이한다. 임진왜란이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아무런 대응태세도 갖추지 못한 조선의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국사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혹시나 배웠더라도 지금은 다 잊은 조선의 군역제에 대해서 다시 배운다.

조선 초인 15세기만 하더라도 군역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였다고 한다. 군역에 종사하는 장정들에게 국가에서 일정한 반대급부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일부 토지도 지급하고 보인(保人)도 붙여서 군역에 따른 경비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군역의 의무를 지는 군호(軍戶)는 대개 양반이거나 경제력이 있는 상민들이었고, 경제력이 따르지 않는 상민은 보인으로만 편성됐다. 즉 아무나 군역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군역은 권리는 줄고 의무만 느는 쪽으로 변질됐다. 의무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군역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16세기 중반에는 15만 군호가 대부분 하층민으로만 채워졌다. 양반이나 상층 상민은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듯 군역이 문란해지니 국력이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임진왜란 전 16세기 말에 이르면 군역 대상자의 총수가 4만7820명이고, 그중 정예병은 7920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의 관군밖에 없었으니 약 20만명에 이르는 일본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부산에 상륙한 지 18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까지 치고 올라왔던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놀라운 것은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뒤에도 양반의 군역은 부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금 양반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무엇이 문제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사족(士族)도 군역을 지고 노비는 농민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지배층 선비들은 자기들의 특권(군역면제)과 재산(노비)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비록 7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조선의 국방은 개선된 게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거친 이후에 200년이 넘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청제국의 질서 속에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후일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 조선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가기까지는 불과 십수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계승범 교수는 “선비가 건설한 조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고 꼬집는다. 더불어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의 소위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면제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다섯 배나 높다는 통계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는다. 실상 출범 초부터 유난히 병역면제자가 많았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각종 비리 게이트에 연루되고 있다.

그중 외교통상부와 총리실 직원들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등에 업은 씨앤케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다이아 게이트’는 현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참담한 도덕 수준을 다시금 직시하도록 해준다. ‘우리가 아는 정부는 없다’고 해야 할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권만을 고집하고 사익에만 열을 올리는 세태는 과연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0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진년 한 해 동안 고민해볼 일이다.

 

12. 01. 20.

 

 

 

P.S.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조선사 전체를 다시 보는 신랄한 문제의식과 함께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어쨌든'이란 말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게 옥에 티다). 그래서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 2009)와 <정지된 시간>(서강대출판부, 2011)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와 같이 읽은 책은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이다. 사림의 등장 이후 조선 후기사에 대한 서술로 명쾌하다. 학계의 '주류적인' 시각이 궁금해서 읽고 있는 책은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의 <조선시대 당쟁사1,2>(아름다운날, 2007)이다. 이이화, 강만길, 이덕일의 책들도 좋은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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