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제들에 대한 두툼한 평전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이번에 나온 건 양성민의 <한무제 평전>(민음사, 2012)이다(저자에 대해선 따로 소개돼 있지 않다). 작년에 <진시황 평전>(글항아리, 2011)과 <당태종 평전>(민음사, 2011)이 출간된 게 생각나 같이 묶어놓는다. 요즘 진순신의 <이야기 중국사>(살림, 2011)에서 명제국에 관한 대목을 읽고 있어서, 명 태조 주원장에 대한 평전도 기대해본다(한 분이 알려주셨는데, <주원장전>(지식산업사, 2003)이라고 출간돼 있다). 아래가 주원장이다(개국공신들을 모두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진순신이 전하는 일화.

청나라 세조 순치제(1643-1661)는 군신들과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를 논한 끝에, 그것은 한나라 고조(유방)도 당나라 태종(이세민)도 송나라 태조(조광윤)도 아닌 명나라 태조(주원장)이라고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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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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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광기의 제왕학- 만인 위에 선 자의 내면세계
자오량 지음, 김태성.이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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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 도적황제의 역사- 한 고조 유방에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까지
타카시마 토시오 지음, 신준수 옮김 / 역사넷 / 2007년 10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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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시황 평전-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본 제국과 영웅의 흥망
장펀톈 지음, 이재훈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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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하나는 로베르 플라실리에르의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우물이있는집, 2004)이다. '사라진 책들'이란 카테고리에 올려놓은 걸로 짐작하겠지만 절판도서다(알라딘엔 '품절'로 뜨지만 짐작엔 그렇다).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고, 헬레니즘 관련서들을 찾다가 눈에 띈 것인데, 내가 모르는 책의 8할이 그렇듯이, 2004년에 나왔다(나는 러시아 체류중이었다).

 

 

저자는 파리대학에서 그리스어문학 학과장과 고등사범 교장을 지낸 걸로 돼 있다. 정확하게 원제는 '페리클레스 시대 그리스의 일상생활'이어서 번역본 부제가 '페리클레스 시대'다. 1959년에 원서가 나왔지만 목차를 보니 내용을 꽤 알차게 구성돼 있다. 비슷한 컨셉의 책이 드문 듯싶어 소장하려고 했지만 책은 중고로도 나와 있지 않다.

 

찾아보니 출판사에선 몇권을 시리즈로 냈다. 가장 먼저 나온 건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우물이있는집, 2003), 그리고 자닌 오브와예의 <고대 인도의 일상생활>(우물이있는집, 2004)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표지로 보아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은 단발성으로 나온 것이고,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부터 '시리즈' 컨셉으로 간 듯싶다. 반응이 없었는지, 지금은 <고대 인도의 일생생활>만 절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판매량은 저조하다).

 

 

 

그리스에 관한 프랑스 학자의 책으론 자클린 드 로미이의 <왜 그리스인가?>(후마니타스, 2010)가 떠오른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그리스 고전한 담당 교수였다.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이레, 2008)의 저자 피에르 아도도 빼놓을 수 없는데, 역시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역임했다. 프랑스에선 나름 최고 석학으로 인정받은 학자들이다. 이 책들은 아직 살아있다.

 

 

 

<폴리테이아>(아르케, 2000)의 저자 자클린 보르드나 <고대 그리스의 시민>(동문선, 2002)의 저자 클로드 모세도 프랑스 학자인 듯싶지만 책을 안 갖고 있어서 구체적인 저자 정보는 모르겠다. <폴리테이아>는 절판된 상태이고, <고대 그리스의 시민>이나마 챙겨놓아야겠다.

 

 

 

고대 그리스, 하니까 또 생각나는 학자는 모시스 핀리(모제스 핀레이)다. <고대 세계의 정치>(동문선, 2003)의 저자인데(번역이 좋지 않다), 나머지 책들이 대개 절판본이다. 특히 <고대 노예제도와 모던 이데올로기>(민음사, 1998)는 여러 번 구하려고 애썼던 책이다. 제목에 '고대'가 들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구하기 어려워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현실은 일단 그렇다. 눈 밝은 독자들이 많아지거나 출판사가 계산에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막상 구하려고 하니 안 보이는 책들이 있어서 몇자 적었다... 

 

12. 02. 07.

 

 

P.S. 프랑스 학자 얘기가 나온 김에 중국학자 앙리 마스페로도 언급하고 싶다. <고대중국>(까치글방, 1995)이 절판이어서 못 구하고 있는데, <도교>(까치글방, 1999)와 <불사의 추구>(동방미디어, 2000)까지 모두 절판된 상태다. <도쿄>만 하더라도 예전에 서점을 오가며 보던 책인데, 이제서야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모슨 조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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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내과에 다녀왔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인간이 생로병사의 몸이란 걸 병원보다 더 명료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을까.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무의식적으론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미디어, 2012)를 손에 들었다.

 

 

다치바나는 2007년에 방광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엔 NHK PD와 함께 '다치바나 다카시가 암에 걸려서 이랬느니 저랬느니' 식의 다큐를 구상했다가 암 자체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가제로 시작한 작업이 2009년 늦가을에 방영된 'NHK 스페셜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란 다큐이다. 책은 이 다큐(1부)를 바탕으로 다치바나가 <문예춘추>에 연재한 '나는 암수술을 했다'(2부)를 더한 것이다. 아니 연재물이 방송에 많이 반영돼 있기에 다치바나는 2부를 1부보다 먼저 읽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서문은 대충 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절을 읽었다. 서두가 이렇다. "요즘 일본에서는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에 걸리고,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으로 죽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누군가는 암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나만 해도 지금까지 전처, 장인, 친구 등 주변의 여러 사람을 암으로 잃었습니다. 지금도 지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23쪽) 우리는 서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암과 교통사고가 사망사유의 수위를 다투고, 병사일 경우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지 않나 싶다(우리도 셋의 하나?). 중년의 나이이고 보니 주변에서도 암에 걸린 분이 드물지 않다.

 

놀라운 것은 암에 대한 책이 국내에 드물다는 것. 암 치유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암환자 가족들이 주로 독자다) 암이 무엇인지 대한 책, 말하자면 '암 생물학'에 관한 책은 아주 적다. 다치바나의 책과 같이 보려고 거실 책장에서 빼온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2011)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내가 갖고 있는 게 이 두 권이긴 하다). 그런데 다치바나의 책을 읽다 보니 그게 아주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얼마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도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이렇게 말한다.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국가적 정책 목표로 '암극복(War On Cancer)'을 내걸었습니다. 1940년대의 원자폭탄개발이나 1960년대의 우주개발(아폴로계획) 때처럼 나라의 예산과 지적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면 10년 안에 인류 최대의 난치병인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1조엔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습니다.(25쪽)

한데 40년 가까이 지나도 암정복은 아직 난망이다. 오히려 암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더 난해해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2008년 9월 15일자)가 암과의 전쟁을 총괄한 '우리는 암과 싸웠다... 그러나 승자는 암이었다(We Fought Cancer... And Cancer Won)'라는 기사를 실었을 정도입니다.

이어서 다치바나는 취재차 미국 방문시 만난 암 연구 권위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미국 암 연구의 중추 중의 중추인 MIT의 로버트 와인버거 박사"이다. 한데 이름이 'Robert Weinberg'이므로 '로버트 와인버그'라고 표기해야 맞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도 와인버그라고 나온다(이 저명한 암생물학자는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의 하나다). 어떤 인물인가.

 

박사는 암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며 전 세계 암 연구자들이 표준 교과서로 애용하는 <암 생물학>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암 생물학>이 어떤 책인가 싶어서 바로 또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지난달에 번역돼 나왔다! <암의 생물학>(월드사이언스, 2012). 목차를 보니 말 그대로 전문의학서이고 의대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의 저자가 다치바나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암 정복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 알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암이 애초에 어떤 병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26쪽)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암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완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치바나는 암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적어도 암을 대하는 그의 생각은 이렇다.

여기서 우리는 암과 아무리 철저하게 싸우려고 작정해도 그 투쟁은 대개 헛고생으로 끝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끝까지 싸운다'가 아니라 '암과 공생한다'고 할까, '암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28쪽)

해서 '완치'나 '정복' '극복' 같은 말은 암과 관련해서는 조금 눅여서 쓰는 게 현실적이며 좀더 지혜로운 태도로 보인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게 지혜라면 말이다. "암과의 투쟁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암 극복이란 골인 지점까지는 얼마나 더 달려야 합니까?"란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을 다치바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나의 질문에 모두들 진지하게 답해주었지만, 10년, 20년이면 극복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10년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제약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짧게 잡아도 20년이나 30년은 필요하다는 견해가 태반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일흔 살이니, 그 대답은 곧 내 살아생전에 암이 극복될 희망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29쪽) 

다치바나의 육성과 함께하는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는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12. 02. 04.

 

 

 

P.S. 암 관련서로 역시나 최근에 나온 책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의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비타북스, 2012)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책으로도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암 시리즈로는 <위암>, <유방암>, <대장암> 편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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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9-02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주의 책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애초에 생각했던 표제도서는 마쓰오 다카요시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소명출판, 2012)였지만, 생각보다 관심도서가 많아지면서 학술교양서는 따로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순서가 하이데거의 <근본개념들>(길, 2012)이었고, 마지막 차례가 아직 주문은 못한(오늘 아침에도 주문하려고 했지만 내주에나 배송이 되기에 미뤘다) 우주생물학자 크리스 임피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시공사, 2012)이다. 그 사이에 들어갈 책들을 고르다가 아예 순서를 거꾸로 세우기로 했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앞세우다 보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미디어, 2012)도 같이 묶는 게 좋을 듯싶다.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삼인, 2012)는 작가의 '인류문명에 대한 사색'을 앤솔로지 문명론이고, 어제 주문한 강양구, 박성민의 <정치의 몰락>(민음사, 2012)는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를 화두로 한 한국 정치판 읽기다. 그리고 다시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정치철학. 그렇게 생각은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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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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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It Ends: From You to the Universe (Paperback)
Impey, Chris / W. W. Norton & Company / 2011년 4월
45,620원 → 37,400원(18%할인) / 마일리지 1,8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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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생명 오디세이- 우주생물학의 교과서
크리스 임피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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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과 생명에 관한 지적 탐구
다치바나 다카시.NHK스페셜 취재팀 지음, 이규원 옮김, 명승권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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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건축전문지 공간(531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지면에는 오타가 몇개 있어서 바로잡는다. 위베르 다미쉬에 대한 언급도 잘못 돼 있어서 교정했다). 니꼴라 부리요의 <관계의미학>(미진사, 2011)에 대한 것이다(글에서는 저자명을 '니콜라 부리요'라고 표기했다). 생소한 프랑스 비평가의 책이어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을 배경으로 놓고 읽었다. 책 뒤에 실린 정연심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부리요는 1965년생으로 "1999년, 뉴욕과 런던 등에 비해 현대미술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파리에 팔레 드 토쿄(Palais de Tokyo)관을 설립하면서 일약 선풍을 일으켰다." 최근엔 팔레 드 토쿄를 떠나 큐레이터로 활동중이라고. 대표작이 <관계의 미학>인데, "1998년에 불어로 출판된 이 비평서는 2002년 영어로 번역되면서 미국 비평가들과 미술 이론가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영어본은 125쪽의 얇은 책으로 리뷰를 쓰면서 참고했다.

 

 

 

공간(12년 2월호) 관계의 미학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에 따르면 예술은 앤디 워홀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그는 아예 시간과 장소까지 명시한다. 때는 1964년, 장소는 뉴욕 이스트 74번가의 스테이블 갤러리에서였다. 팝아티스트 워홀이 비누상자 ‘브릴로 박스’를 전시장에 쌓아놓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레디메이드 브릴로 박스가 아니라 워홀이 합판으로 만든 브릴로 박스였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둘의 차이를 식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똑같게 보이는 두 상자가 어떻게 해서 하나는 그냥 상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이 되는가? 어떤 사물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는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떠안긴 질문들에 대해 이 철학자는 ‘예술의 종말론’으로 응수한다. 전시장의 브릴로 박스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듯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게 단토의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만약 예술에 대한 정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또 유효하지도 않다면 예술의 역사는 거기서 끝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고 음울해 할 이유는 없다. 종말은 동시에 해방이기에. 단토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미리 말해줄 수 있다. 예술의 종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히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헤겔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는 자유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들의 상황이다.”(<예술의 종말 이후>)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1998)은 예술의 종말론에 대한 한 대응으로 읽힌다. 물론 프랑스 이론가답게 미국 철학자의 주장을 대놓고 상대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위베르 다미쉬를 인용하여 예술의 종말론을 반박할 따름이다. 그에 따르면 예술 종말론자은 ‘게임의 종말’과 ‘플레이의 종료’를 혼동하고 있다. 한 가지 게임이 끝나더라도 예술이라는 경기는 다른 방식의 게임으로 지속될 수 있고, 실제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예술적인 활동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태와 양상, 그리고 기능이 변화하는 게임이지 불변하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다”라는 게 부리요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몫은 새로운 게임, 새롭게 전개되는 예술창작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텐데, 부리요가 보기에 1990년대 이후 미술비평과 철학은 직무유기 상태다. 그 때문에 “1990년대 예술을 둘러싼 오해들”이 빚어지며 “현대의 예술적 실천들은 대부분 해석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 예술가들은 무슨 작업을 하고 있고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 부리요가 들고 있는 몇 가지 사례만 나열해보자면,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는 한 컬렉터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그에게 태국식 수프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남겨주었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는 5월 1일(메이데이)에 사람들을 초대해 공장의 작업공정 라인 위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실행하도록 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는 20여 명의 여자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빨간 가발을 쓰게 한 후 관객들이 문에 난 구멍으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작가들의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작업 목록은 한참 더 이어진다. 이러한 예술적 실천들은 과연 해석이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부리요의 대답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상 “오늘날 사회적 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비평가의 기본적 임무에 속한다. 그는 그 변화를 ‘관계의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풀어낸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의 해체 이후에 전개된 1990년대 미술이라면 탈정치적, 탈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 쉽지만 부리요의 생각은 다르다. 분명 계몽주의 철학과 함께 ‘해방의 기획’을 갖고서 태어난 정치적 모더니티가 종말을 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버전의 종말일 뿐이다. 관계의 미학은 목적론 대신에 ‘우연한 만남’은 존재론적 근거로 갖는다. 철학적 전통에서 보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혹은 ‘우발적 유물론’에 기댄다. “기원도 없고, 그에 선재하는 의미도 없으며, 하나의 목적을 부여하는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우연성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유물론이다.


더불어 세계적인 도시화와 도시문화의 탄생은 관계의 미학의 사회학적 배경을 이룬다. 거주 가능 공간의 협소함은 가구나 오브제의 규모 역시 다루기 쉽게 작아지도록 유도했다. 또한 도시의 근거리 경험은 만남 혹은 마주침은 생활의 기본조건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미술 전시는 사적인 소비 매체인 텔레비전이나 일방적인 이미지 앞에서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연극 공연장, 혹은 영화관과는 다른 유형의 관계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예컨대 전시회에서 작품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펼쳐놓는다. 우리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작품을 보고 논평하고 움직인다. 이때 미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장소가 된다. 부리요는 그러한 공존과 상생의 창출이 해방이라는 모더니즘의 기획을 어떻게 보충하는지 주목한다.


관계의 미학을 예술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형태에 대한 이론으로 정의하는 그는 형태를 또한 ‘지속적인 만남’이라고 부른다. 이 만남이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인 한, 예술에서 유토피아적 계기는 계속 보존된다. 그렇다면 예술은 죽었지만 또 죽지 않았다. 어떤 예술의 종말 이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얼굴들’이다. “모든 형태는 나를 바라보는 얼굴”(세르주 다네)이란 의미에서 그렇다. 지금, 예술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바라봐.”

 

12. 02. 03.

 

 

P.S. 위베르 다미쉬(다미슈)는 국내에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궁리, 2003)에 붙인 서문으로만 소개돼 있는 듯싶다. 그의 <구름의 이론> 등은 흥미를 끄는 책이다. <구름의 이론>은 러시아본도 나와서 구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구면'이군.

 

 

한편 <관계의 미학>에서 부리요가 다미쉬를 인용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위베르 다미쉬는 "예술의 종말"에 관한 이론들에서 "게임의 종말fin du jeu(game)"과 "경기의 종류fin de la partie(play)" 사이의 유감스러운 혼동의 결과를 이해했다: 게임 자체의 의미를 재검토하지 않은 채 사회적 맥락이 급격하게 변화하자마자 새로운 경기가 공표되었다."(29쪽)

'게임의 종말'과 '경기의 종류'라는 대구에서 '경기의 종류'는 아무래도 '경기의 종료'의 오식인 듯싶어서, 리뷰에서는 '게임의 종말'과 '플레이의 종료' 짝으로 바꾸었다.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예술이란 활동에서 그냥 하나의 게임(스테이지)의 종말일 뿐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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