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5월과 6월에 사이아카데미에서 '예술가의 독서클럽'이란 강의를 진행한다. 문지문화원 사이(http://www.saii.or.kr/)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공동으로 기획한 '예술가 시리즈' 강의의 하나로 '예술가의 스테이트먼트' 강좌와 묶여 있다. 강의는 5월 2일부터 6월 27일까지(6월 6일 휴강)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다. 이번에 잡은 주제는 '종말'이며 강의 개요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지만 종말론이나 종말의식 자체는 유구한 내력을 갖고 있으며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시대의 ‘종말’이 상투적 상상력의 재탕이나 무감각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각 시대는 고유한 종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 시대는 자기 몫의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말은 곧 완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강의에서는 문학, 철학, 예술, 정치 등의 각 분야에서 종말의 논리가 어떻게 제시됐고, 종말의 상상력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 종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최소한 그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윤곽 정도는 그려보고자 한다.

 

 

1강) 5월 2일_ 시간의 화살과 종말의 의미 (스티븐 제이 굴드,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2강) 5월 9일_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3강) 5월 16일_ 인간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강) 5월 23일_ 근대문학의 기원과 종언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5강) 5월 30일_ 예술의 종말과 종말 이후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6강) 6월 13일- 미학이냐 미술비평이냐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7강) 6월 20일_ 파국의 묵시록과 종말의 상상력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 복도훈, <묵시록의 네 기사>)

 

 

 

8강) 6월 27일_ 신적 폭력과 혁명적 유토피아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2.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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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들을 한참 둘러보다가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은 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의 신작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알키, 2012)이다. 라마찬드란의 전작들을 다 갖고 있는 김에 이 역시 바로 주문해놓은 상태다. 책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뇌과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이룬 과학자인 라마찬드란 박사의 역작. 그가 이번에는 인간과 우주, 뇌와 정신의 궁극적인 기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정말로 특별하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원숭이의 그것과 달리 엄청난 진화를 거듭했고, 그 결과 어떤 종도 따라올 수 없는 지적 능력을 갖게 되었다. 저자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진화를 통해 특별한 한계를 뛰어넘은 뇌의 비밀을 깨기 위한 위대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내친 김에 주로 뇌과학과 심리학, 철학 관련서를 골랐다. <에고 트릭>(미래인, 2012)의 저자 줄리언 바지니와 <결혼하면 사랑일까>(부키, 2012)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는 구면이다. 바지니의 책은 <빅 퀘스천>(필로소픽, 2011) 등 여러 권이, 테일러의 책은 <형이상학>(서광사, 2006)이 번역돼 있다. 리처드 테일러는 이윤의 <굿바이 카뮈>(필로소픽, 2012) 덕분에 상기하게 된 철학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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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당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뇌의 두 얼굴
V.S. 라마찬드란 지음, 박방주 옮김 / 알키 / 2012년 4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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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트릭-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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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종교 본능- 마음이론은 어떻게 신을 창조하였는가?
제시 베링 지음, 김태희.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4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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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우울한 현대인에게 보내는 감동과 희열의 메시지
게랄트 휘터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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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405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미술사'로 관련서 몇권에 대해 적었다.

 

 

 

책&(12년 4월호) 미술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인 엘리엇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4월은 나들이하기에 좋은 달이다. 봄꽃이 만발한 고궁이나 미술관이라면 나들이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나들이에 따로 준비물이 필요할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미술책이라면 발걸음을 한결 더 가볍게 해줄지도 모른다. 어떤 책들이 있을까.


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창비)은 제목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책이다. 스위스 바젤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했던 저자의 라디오 방송 강연을 옮긴 것으로 10회에 걸쳐서 근대회화에 혁명을 가져온 10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강연이 1955년에 이루어졌으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구수한’ 이야기이다. 그가 고른 10명의 화가는 오노레 도미에부터 마르크 샤갈까지인데, 각각의 대표작 한편씩을 골라 간결하면서도 명석한 해설을 들려준다.


가령 도미에의 그림을 설명하기 전에 저자는 중세 초기 이후 서양회화의 역사를 네 단계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14세기초까지만 해도 화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기 때문에 원근법도 해부학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4세기초부터 15-16세기로 접어드는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고자 했다. 이때 화가들이 도입한 수단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사용한 것을 재발견한 것이어서 ‘르네상스’라고 불린다. 16세기 중반 이후 미술사는 한 번 더 전환을 경험한다. 역시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긴 했지만 그 현실은 화가가 보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색조의 회화이고 대상의 물질성을 대신하는 필촉의 물질성이다.

 

 

이러한 화풍의 마지막에 나타난 화가가 도미에이며 그는 대략 1850년경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단계의 회화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1850)를 통해서 그가 ‘데포르마시옹’, 곧 형태의 변형이 갖는 미술적·인간적 의미를 파악한 화가였다고 평가한다. 도미에가 열어젖힌 현대 회화의 길은 곧바로 반 고흐와 수많은 다른 화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우정아의 <미술, 역사를 만나다>(아트북스)는 회화사 자체의 발전과정이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에 담긴 세상의 변화를 읽어주는 책이다. ‘어떻게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그렸는가’에 초점을 맞춘 셈으로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시대부터 19세기말 후기인상주의까지가 이 책에서 다루는 변화의 범위다. 그림들은 자기 시대의 사회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하나로 밀레의 ‘이삭줍기’(1857)를 예로 들어본다. 저자는 이 그림의 배경인 19세기 프랑스에서 이삭줍기가 농촌의 극빈층에게 부농이 베푼 일종의 특권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추수가 끝나고 난 뒤 남은 밀 이삭을 이들이 주워가도록 한 것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곡식 알갱이를 줍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지만 이마저도 아쉬웠던 것이 당시 농촌의 처참한 현실이었다. 그림 속의 세 여인이 하루 종일 이삭을 줍더라도 겨우 빵 한 덩어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말을 탄 보안관이 멀찍이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고된 현실을 ‘이삭줍기’는 보여준다.

 

 


가볍게 시작한 그림과의 만남이 좀더 깊이 있는 만남을 부추긴다면 본격적인 미술사를 손에 들 수도 있겠다. 들고 다니기엔 좀 불편하지만 이 경우 보통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표준적인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거기에 특색 있는 미술사 책을 더 얹자면 제임스 홀의 <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뿌리와이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제목 그대로 ‘왼쪽-오른쪽’이란 코드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들여다본 시도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건 그림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가령 ‘창세기’에서 이브가 “그 열매를 따먹고,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어서 그가 그것을 먹었다”고 말할 때, 이브가 어느 손으로 열매를 따먹고 건넨 것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화가는 이브가 아담과 뱀 사이 어디에 서 있고 사과는 어느 손으로 땄는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문화적 통념에 따라 흔히 ‘오른쪽=선, 왼쪽=악’으로 그려졌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미술사는 ‘왼쪽으로의 선회’라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의 문제의식 덕분에 무심코 봐왔던 그림의 왼쪽-오른쪽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듯 색다른 미술사라면 플로리안 하이네의 <거꾸로 그린 그림>(예경)도 뒤처지지 않는다.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을 다룬 책으로 ‘최초’라는 키워드로 읽어낸 미술사이다. 책의 마지막 ‘최초’는 ‘최초로 거꾸로 그린 그림’인데,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머리 위의 나무’(1969)가 미술사의 기록이다. 그럼 거꾸로 보아야 하느냐고? 그건 아니다. “그는 물체를 거꾸로 그려 주제의 의미가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감상자의 관심이 회화적인 결과에만 집중되도록 했다.” 또 다른 ‘최초’가 더 남아있다면 미술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2.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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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지난달 <햄릿>에 이어서 이달에 읽은 건 <돈키호테>다. 고전이 으레 그렇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한겨레(12. 04. 14) 눈에 콩깍지 씐 돈키호테, 우리 안에 산다

 

방랑기사 돈키호테의 대단한 모험담을 그린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세계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가 당시엔 이발사보다 나을 게 별로 없던 외과의사인데다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집안은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고 세르반테스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을 걸로 추정된다.

청년시절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바른손의 명예를 앙양하기 위해’ 왼손의 자유를 잃었다. 불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아 귀국길에 오르다 터키 해적에게 납치돼 5년간 북아프리카에서 포로생활을 한다.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이 불굴의 상이용사는 여러 차례 탈출을 꾀하고 반란을 주동하여 해적들까지도 경탄하게 만들었다. 결국 어렵게 몸값을 지급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오지만 조국은 그를 대우해주지 않았다. 허다한 ‘군인 출신 실업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고, 세르반테스는 창작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길도 순탄치는 않아서 그는 예순이 다 돼서야 <돈키호테>로 이름을 얻는다.

돈키호테는 누구인가? 우리에겐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괴짜’를 가리키는 별명이 됐지만 그는 일단 독서광이다. 행동가형 인물에겐 어울리지 않은 전력처럼 보이지만 여하튼 그는 사색가형의 대명사 햄릿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었을지 모른다.

그는 경작지를 다 팔아치워가며 자신의 서가를 기사소설들로 채우고 밤낮으로 읽었다. 그 결과 마침내는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 방랑기사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사라진 전설의 기사들을 모델로 하여 다시 복원하고자 한 기사도란 무엇인가. “처녀들의 순결을 지키고, 과부들을 보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나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는 ‘네 것, 내 것’이란 구별이 없이 모두가 행복했던 ‘황금시대’를 다시 꿈꾼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미치광이인가?

방랑기사로 나선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고 시골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전설적인 맘브리노의 투구로 오인한다. ‘불쌍한 몰골의 기사’ 주인의 착각이 너무 심한 듯하여 하인 산초조차도 핀잔을 던지자 돈키호테는 이렇게 나무란다. “자네에게 세숫대야로 보이는 그것이 나에게는 맘브리노 투구로 보이는 것이고, 또 딴 사람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

물론 돈키호테는 맘브리노 투구를 마법사가 술법을 부려 다른 사람에게는 세숫대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시각차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의 광기는 특이하다.

그는 자신이 늙은 시골귀족이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라만차의 돈키호테’라고도 생각한다. 부스럼투성이에다 말라비틀어진 말도 ‘로시난테’가 되고, 이웃마을의 농사꾼 처녀는 그가 사랑하는 귀부인 ‘둘시네아’가 된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눈에 콩깍지가 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객관적 진실’이 얼마나 텅 빈 것이고 말라비틀어진 것인지 알 것이다.

진실은 풍차와 거인 사이에, 맘브리노 투구와 세숫대야 사이에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는 유난스럽지 않다. 세르반테스의 파란만장 편력을 닮은 돈키호테의 모험담은 숭고한 이상을 위해 돌진하는 모든 이들의 모험담이기도 하다.

12. 04. 13.

 

 

 

P.S. 세르반테스에 관한 전기가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은 건 유감스러운데, 하는 수없이 최근에 영어본이라도 구입했다. 도널드 맥크로리의 <평범하지 않은 인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생애와 시대>다. 작품 읽기는 나보코프의 <돈키호테 강의>를 참고하고 있는데, 이 또한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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