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법학교수의 책,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2012)와 박경신의 <진실 유포죄>(다산초당, 2012)가 국내서로서는 '이주의 책'에 값하지만, 언론리뷰들에서 많이 다뤄질 듯해서 나는 들뢰즈의 처녀작 <경험주의와 주체성>(난장, 2012)을 이주의 타이틀 책으로 골랐다. 데이비드 흄에 대한 연구서로서 들뢰즈의 첫번째 책이지만 국내에서는 마지막으로 번역된 책이라는 게 흥미롭다. 영어본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봐야 하지만 오래 기다린 책이다.

 

들뢰즈의 책을 고른 김에 이론서 범주에 속하는 책들을 같이 묶어놓는다. 찰스 더버의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책읽는수요일, 2012)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상상해볼 수 있는 책. 원제는 <마르크스의 유령>이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홉스봄의 지적 여정을 다룬 그레고리 엘리어트의 <홉스봄, 역사와 정치>(그린비, 2012), 그리고 영국의 문화사학자 피터 버크의 <문화 혼종성>(이음, 2012)도 겹쳐 읽어볼 만하고, 새로 나온 '우리시대 고전읽기/질문총서'의 첫권으로 임옥희 <타자로서의 서구>(현암사, 2012)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비판> 해설서이다. 시리즈의 책으론 문광훈의 <사무사>(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읽기)와 홍성민의 <취향의 정치학>(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이 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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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주의와 주체성- 흄에 따른 인간본성에 관한 시론
질 들뢰즈 지음, 한정헌.정유경 옮김 / 난장 / 2012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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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찰스 더버 지음, 강정석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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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홉스봄, 역사와 정치
그레고리 엘리어트 지음, 신기섭 옮김 / 그린비 / 2012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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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혼종성- 뒤섞이고 유동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
피터 버크 지음, 강상우 옮김 / 이음 / 2012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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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의 원서들도 들어 있다. 얼마전 그의 책으론 세번째로 번역돼 나온 <삶의 미학>(이학사, 2012)을 구입하고 번역본들과 짝을 맞추기 위해 그 세 권의 원서도 주문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삶의 미학>보다 먼저 나온 책이 <몸의 의식>(북코리아, 2010)과 <프라그머티즘 미학>(북코리아, 2009)이다.

 

 

<삶의 미학>은 제목보다도 부제에 더 끌렸는데,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은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이 그 부제다. 한데 한국어판 머리말을 읽으니 번역본은 '영어판 원본'과 좀 다르다!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프래그머티즘 철학자로서 나는 책이란 것이 사색을 위한 도구이지, 원본의 형식을 물신화하는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영어판 원본의 재생산이나 번역 또는 복제품을 한국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보다는 유용하고 상황에 맞게 갱신된 텍스트를 제공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7쪽)

허를 찔렸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훌륭한 생각'이라고 인정해줄 만하다. 과연 얼마나 달라진 것인지는 비교해서 읽어봐야 알겠지만. 더불어 책이 놓인 전반적인 맥락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도 요긴한 참고가 된다. 그의 미학적 주장의 핵심은 '몸미학(somaesthetics)'으로 압축되는 듯하다.

 

 

이 책은 내가 <프래그머티즘 미학>(1992)과 <실천하는 철학>(1997)에서 탐구하기 시작했던 삶, 예술, 체화, 철학 그리고 문화라는 주제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노선을 지속하면서 예술과 감정, 쾌, 지식, 엔터테인먼트, 문화 그리고 스타일의 본질적 관련성이나 미적 경험에 대한 훨씬 더 풍성한 구체적 분석을 제공한다. 이 책은 미학의 관례적 영역을 뛰어 넘어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과 삶의 행위를 다루는 분야의 나의 몸미학 이론에 대한 해명을 더욱 발전시킨다.(8쪽)

그럼, 그의 기본 입장은 무엇인가?

나의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주된 목적은 순수예술의 영역을 넘어서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미적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예술과 삶을 더욱 밀접하게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양한 삶의 예술을 고양시킴에 있어서, 예술적 스타일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프래그머티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시뮬라크르 또는 이미지보다 오히려 생생한 경험을 강조하고, 더욱 적극적이고 건강한 의식, 즉 윤리와 공적 삶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의식을 갖고 삶을 미적으로 가꾸는 데 목적이 있다.(8쪽)

'프래그머티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도 불렀지만, 저자는 '삶의 예술로서의 윤리학'이라는 이념이 훨씬 오래 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다. 그 뿌리란 일단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윤리적-미적 이상이다. 이 그리스철학의 전통에 흥미롭게도 '동아시아 유가사상의 전통'에 더해진다. 서양 미학자의 책에서 <논어>의 많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좀 특이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 연결고리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유가철학은 나의 미학 이론이 서양의 동료 학자들로부터 쾌락주의적이라고 비난받았을 때, 예술에 대한 경험에 있어서 정감과 쾌의 가치를 옹호할 수 있도록 나에게 큰 용기를 안겨주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서양 미학자들이 예술의 지적 내용이나 예술의 형식과 해석적인 의미 또는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느낌과 향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유가철학자들은 그 대신에 예술의 인식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가치와 모순되기보다 오히려 그것들을 심화시키거나 풍성하게 해주는, 예술의 정서적 측면이나 기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3쪽)

 

 

미학의 쾌락적 차원과 공자 사상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저자가 편집한 <프래그머티즘의 범위와 철학의 한계>에 실린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다. 아무튼 저자가 이러한 이론적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도달하게 된 것이 몸미학인데, "나의 가장 최근 저작인 <몸의 의식>(2008)은 이러한 개념들과 몸미학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이며, 심리적인 차원과 관련된 많은 논제를 다루고 있다."(17쪽) 이상이 프래그머티즘 미학에서 몸미학으로 이어지는 여정의 간략한 개요다.

 

 

 

'예술의 종말'이란 주제는 아서 단토란 이름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고 실제로 <삶의 미학>에도 자주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단토의 책의 어느새 절판된 것들도 있다). '예술의 종언 이후'란 주제에 늘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는데, 그에 부합하는 책이 출간돼 반갑다. 조만간 시간을 내봐야겠다...

 

12.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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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에 관한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데, 인용한 기사 때문에 비공개 처리됐다. 이번에 전쟁사가 안토니 비버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다른세상, 2012)가 나온 김에 다시 만들어놓는다(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이 승전기념일이다). 지난번에 나온 책은 모스크바 공방전을 다룬 앤드르 나고르스키의 <세계사 최대의 전투>(까치, 2011)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 혹은 독소전쟁에 관해서는 몇권의 책이 소개돼 있기에 같이 리스트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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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사상 최악의 전쟁
안토니 비버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2년 5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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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
앤드루 나고르스키 지음, 차병직 옮김 / 까치 / 2011년 12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2년 05월 15일에 저장
품절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2년 05월 15일에 저장
구판절판
독소 전쟁사 1941~1945
데이비드 M. 글랜츠,조너선 M. 하우스 지음, 윤시원.남창우.권도승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3월
29,500원 → 26,550원(10%할인) / 마일리지 1,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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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7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조금 읽기 편한 책으로 고른 게 피터 매캘리스터의 <남성 퇴화 보고서>(21세기북스, 2012)인데, 생각보단 '하드'했다. 당신이 역사상 가장 못난 남성이라고 반전도 없이 몰아붙이는 책이니!..

 

 

 

주간경향(12. 05. 22) 역사상 가장 못난 현대 남성

 

“지금 이 책을 읽는 남자나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남자는 역사상 가장 ‘못난 남자’다.” 호주의 고인류학자 피터 매캘리스터가 쓴 <남성 퇴화 보고서>의 도발적인 서두다. 사실은 책 전체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니 서두이면서 동시에 책의 결론이기도 하다. 고인류학자로서 남자를 포함한 인간 연구에 몰두해온 그가 처음부터 ‘악의적인’ 의도로 남성을 해부대에 올려놓은 건 아니었다. 고백대로라면 저자는 이전 남성과 비교해 ‘호모 매스큘리누스 모더누스’(현대의 근육질 인간)의 미덕에 대해 쓰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껏 지구를 걸어 다닌 호모 사피엔스 수컷들과의 비교과정에서 그런 미덕을 찾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발견한다. 그의 ‘남성인류학’이 승리가 아닌 패배의 기록으로 채워진 이유다.


저자는 힘, 허세, 싸움, 운동능력, 말재주, 미모, 육아, 성적 능력, 8가지 비교 범주를 통해서 현대 남성이 과거의 조상들에 비해 얼마나 나약하며 모자란가를 조목조목 입증해나간다. 현대 남성에 대한 이토록 ‘상세하고도 굴욕적인 자료들’을 낳은 선행연구들도 놀랍고 이를 빠짐없이 참고한 저자의 집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면, 먼저 ‘힘’에서 현대 남성은 과연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근육질 몸매에 대한 과도한 집착마저 보이는 현대인이지만, 고대인과의 비교 결과는 실망스럽다. 저자는 2004년 세계팔씨름연맹 챔피언으로 이두근의 둘레가 55cm나 되는 알렉세이 보에보다를 대표로 내세웠지만, 키가 153cm인 네안데르탈인 여성과의 팔씨름에서도 진다는 결과를 얻는다. 네안데르탈인 남성은 상체 근육이 여성보다 50%나 더 많다고 하니 애초에 비교 자체가 무리다. 더 굴욕적인 건 침팬지조차도 근육의 힘이 인간보다 네 배나 더 강하다는 점.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가 ‘퇴화한 유인원’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무리가 아니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일찍이 인간을 ‘털없는 원숭이’라고 명명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털없고 약한 원숭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자신의 용감함을 과시하려는 ‘허세’는 또 어떤가. 가령 미국 해병대에서는 교관들이 훈장 뒷면의 뾰족한 바늘로 병사들의 가슴을 찌르는 ‘블러드 피닝’(Blood Pinning)의 전통이 있고, 미국 도시 갱단의 입회식에서는 신입회원이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동전 여섯 개를 주워야 하는 ‘공짜로 동전 줍기’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호모 사피엔스 남자 조상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애교스럽다. 선사시대 캘리포니아의 한 부족 소년들은 성인식 때 독침개미들이 우글거리는 구덩이에서 뒹군 다음 쐐기풀로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브라질 카야포족 남성은 맨손으로 말법집을 습격한 뒤 말벌에게 쏘이는 ‘말벌 싸움’을 평생 열 번 정도 치러야 했다. 고문과 사냥의 시련, 그리고 두개골 절개수술 같은 주제로 옮겨오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게 현대 남성이다. 고대 부족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방도가 무모한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위안을 삼는 수밖에. 


아무래도 힘에서는 밀린다면 반대로 자상함 같은 덕목에선 승산이 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또한 역부족이다. 요즘은 어린자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아빠’ 모델도 등장했다지만, 좋은 아빠 상은 아프리카의 아카 피그미족 남성의 몫이다. 그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자녀와 함께 보낸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의 약 4분의 1 동안은 아이를 품에 안고 지내며 아예 아내와 더불어 아이를 데리고 잔다. 심지어는 아기에게 젖도 물린다. 현대 남성을 ‘부족한 아빠’로 몰아붙이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현대인이 자랑할 만한 성적 능력과 성적 자유, 금욕까지 더 비교해보지만 모두 완패다. 그래서 결국은 제목대로 ‘남성 퇴화 보고서’가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 조상 이래로 퇴화를 거듭해온 여정, 하지만 이 ‘남자의 진실’이 저자의 소회대로 한탄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못난 남자’라는 걸 아는 유일한 남자일지도 모르니까.

 

12.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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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로쟈의 콜렉션' 페이퍼를 적다가 인터넷이 불안정해 날려버렸다. 그만두려다 잠시 기분전환을 하고 다시 적는다. 할일이 많은 탓에 계획보다는 간단히 마무리해야겠다.

 

 

 

빌미가 된 책은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문학과지성사, 2012)와 프랑코 베라르디의 <노동하는 영혼>(갈무리, 2012). 각각 프랑스 철학자와 이탈리아 맑스주의 이론가의 책이다. 낭시의 책은 국내에 여럿 소개됐지만, 대부분 공저이고 단독 저작은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 2010)에 이어 두번째이다. 역자는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5)를 옮긴 김예령 박사로 불문학 전공자이다. <코르푸스>는 제목과 부제 '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가 말해주듯 '몸'을 주제로 한 책이다. "프랑스 철학계의 거장 장-뤽 낭시의 몸에 관한 사유"라는 문구가 뒷표지에 적혀 있다.

 

 

 

데리다의 제자로도 유명한 낭시는 영화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는데(언젠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듯싶다), 옴니버스 영화인 <텐 미니츠 첼로>에 클레르 드니의 '낭시를 향해서'가 그에게 바쳐진 영화다. '기차여행 그리고 10분의 철학적 대화'가 이 단편영화의 내용이다.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영화는 유튜브에도 떠 있다. 다만 불어 대사에 스페인어 자막이다).

 

철학자 장 뤽 낭시와 그의 학생 중 한 사람인 안나가 기차여행을 하며 서로 나누는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낭시는 '침입자'라는 단어로 이민자들이나 타자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안과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인종융합에 관한 미국적 개념인 '도가니'가 차이를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며 더불어 이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길게 이어진 대화가 끝난 후 그들의 자리에 한 흑인이 들어와 조용히 묻는다. "언제 도착하죠?"

 

 

<코르푸스>보다 먼저 뒤적인 책이 <노동하는 영혼>인데,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취지는 "이 책에서 나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시대의 자본주의적 착취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갈무리, 2011)와 통한다. '아우또노미아 총서'의 한권이면서 동시에 '인지자본주의'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됐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착취의 조건과 코뮤니즘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란 카피가 책의 요지를 잘 집약하고 있다.  

 

 

 

저자 프랑코 베라르디(비포)는 펠릭스 가타리와 같이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낭시와도 안면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서문을 쓴 제이슨 스미스는 낭시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학자. 낭시의 <헤겔> 영역자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자크 랑시에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 편집에도 관여했다. 최근에는 필립 암스트롱과 함께 낭시와의 긴 인터뷰집 <정치적인 것과 그 너머>(2011)를 출간했다고. 불어본이어서 욕심을 버렸지만 다른 책들을 모두 주문했다(낭시의 <헤겔>은 갖고 있는 책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낭시와 비포 사이에 스미스가 있는 형국이다.

 

 

낭시가 공저자로 참여하거나 낭시의 글이 포함된 나머지 책은 <문자라는 증서>(문학과지성사, 2011),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문학과지성사, 2005)가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도래하진 않은 철학자이지만, 존재감은 서서히 느끼게 해준다...

 

12. 05. 13.

 

 

 

P.S. <노동하는 영혼>에 부친 제이슨 스미스의 서문 제목이 '파업과 영혼'이다. 덕분에 '영혼'에 대한 관심이 촉발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궁리, 2001)를 다시 주문했다(소재불명이어서). 같이 참고할 책은 이정우의 <영혼론 입문>(살림, 2003)과 장영란의 <영혼의 역사>(글항아리, 20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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