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제목을 다시 꺼내든 것은 다음달 7월에 아트앤스터디에서 지젝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달말 방한하는 지젝의 사유에 대해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한 '기초 강좌'다(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207.asp?lessonidx=off_hwlee16). 강좌 개요와 소개를 옮겨놓는다.

 

 

슬라보예 지젝은 더 이상 ‘동유럽의 기적’이라거나 ‘MTV철학자’라고 불리지 않는다. 대신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특별한 비결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철학의 임무가 ‘자기 시대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라면 그러한 임무에 가장 충실한 철학자로 우리는 지젝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본 강좌는 슬라보예 지젝 입문 강의로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과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교재로 하여 그의 철학적, 정치적 주장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다.

 

 

 

슬라보예 지젝이 다시 한국에 옵니다. 지난 2003년 첫 방한시 열띤 관심의 대상이 됐던 이 변방의 철학자는 그 사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돼, 더 막강해진 모습으로 우리를 다시 찾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오늘날 동시대의 가장 '핫'한 철학자이자 가장 문제적인 철학자로 만들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은 바로 그 슬라보예 지젝을 처음 읽으시려는 분들을 위한 입문 강의입니다. 골치 아픈 철학을 알아서 무엇 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절대로 들으실 필요가 없는 강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해서 뭔가 제대로 생각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지젝이라는 특급 '도우미'를 사유의 길잡이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9.11 이후에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생명정치 시대의 우리의 삶은 어떤 편견에 포획돼 있는지, 세계의 변화와 변혁은 가능한지,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개시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이 강의는 지젝이라는 길잡이에게로 안내하는 가이드 강의입니다.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젝의 애독자로서, 또 소위 '지젝 전도사'로서 로쟈는 여러분을 '지젝 존'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유를 향한 공동투쟁'의 길에 한번 동행해보시길!  

 

12. 06. 05.

 

P.S. 지젝의 강연 일정이 잡혔다. 이달 27일(경희대 평화의전당)과 28일(건대 새천년관) 저녁 7시다. 28일은 토크콘서트로 진행되는데, 나도 패널로 참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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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오전에 방한중인 마이클 샌델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고, 비교적 많은 분량이 지면에 실리게 됐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 출간이 이번 방한과 인터뷰의 계기가 됐지만 개인적으론 '공공철학자로서 샌델'이란 모습이 드러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동행했던 최원형 기자의 정리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2. 06. 04) 마이클 샌델 “내 철학은 민주적 시민정신…”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마이클 샌델을 만나다

2010년 국내 출간된 마이클 샌델(59)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서로는 드물게 100만부 넘게 팔리는 등 ‘공정사회’ 담론과 맞물려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샌델로부터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즉각적인 대답을 얻어내려 하거나, 샌델을 보수적인 ‘공동체주의자’로 규정하는 등 그의 입장을 곡해하거나 비판하는 흐름도 적지 않았다. 지난 1일 서울 한 호텔에서 최근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들고 방한한 샌델을 ‘인터넷 서평꾼’인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가 만났다. 이번 만남은 샌델의 정체성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공적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공철학자’임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샌델은 이날 저녁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강연에도 나와 ‘팝가수 레이디 가가 공연에 암표는 허용될 수 있는가’ ‘가수 비나 축구선수 박주영이 군 복무를 면제받아야 하는가’ 등 일상생활 속의 도덕적 딜레마들을 특유의 화법으로 제시하며 1만4000여명의 청중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이현우(이하 이) 당신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반향이 일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또 책이 한국 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은 혹시 없는가? 한국 지식인층에서는 당신의 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꽤 나오기도 했다. 특히 당신의 철학적 입장을 ‘공동체주의’로 생각하고 자민족중심주의나 공동체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이클 샌델(이하 샌델) 오래전부터 있었던 오해다.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국내에선 <정의의 한계>로 소개됐다) 2판 서문을 통해 똑같이 공동체주의라고 불리더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공동체주의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가 국내에 소개돼 여태까지 한국에서 빚어진 오해는 조금 불식되리라 본다. 이 책에서 당신의 입장을 공동체주의와 구분짓기 위해 ‘공화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당신을 ‘공화주의자’로 이해해도 좋은가?

 

샌델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공화주의는 시민 생활과 민주주의적 시민정신의 미덕 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공동체주의와 다른, 그 사이에 있는 제3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철학’을 강조하는 입장을 드러낸 <왜 도덕인가?>(책의 원제는 ‘공공철학’)를 쓰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익숙지 않은 개념인데, 공공철학이 무엇인지, 그 필요성이나 의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샌델 공공철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포함해 나의 전체 저술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다. 철학적인 생각들을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취지다. 사생활에서나 시민적 삶에서나 철학적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문제들, 곧 정의가 무엇이고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시장에서 돈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관심은 (삶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활성화하고 논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대학의 학자들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모두가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철학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공공철학에 대한 열정은 어떤 계기로 생겼나? 철학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있었던 것인가?

 

샌델 고등학교 시절부터 토론을 좋아했다. 언제나 정치와 정치적 논의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대학에 와서도 철학보다는 정치, 역사, 경제 등의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철학에 매혹됐고, 학위를 딴 뒤에도 정치적인 토론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시장경제를 도구로서 갖고 있던 사회가 시장이 삶의 모든 영역을 잠식하게 하는 ‘시장사회’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면서 ‘불평등’과 ‘부패’의 문제를 다뤘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또 최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점거하라’(오큐파이) 시위 운동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샌델 돈과 시장이 건강, 교육, 가족 생활, 시민 생활 등과 같은 영역에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해 ‘불평등’과 ‘부패’ 두 가지 관점에 근거한 우려가 있다. 예컨대 돈을 써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면, 돈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는 부모들에게는 불공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또한 대학 진학의 원래 의미와 목적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부패’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은 학문적 우수성을 추구함으로써 명예를 얻고자 하는곳이지,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공정성에 근거한 반대와, 부패에 근거한 반대를 구분해야 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우리는 고등교육에 있어 공정성뿐만 아니라 재화의 존엄성까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거하라’ 시위 운동은 불평등에 관한 문제제기다. 대중들은 ‘긴급구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들의 세금으로 월가와 은행을 구제하는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월가와 은행들은 경기가 좋을 때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경제 위기를 자초했는데, 그들이 일으킨 손실은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일어난 뒤로 이런 불공평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이 문제는 아직 풀리지 못한 상태다.

 

새 책에서 경제학자들이 옹호하는 ‘인센티브’에 비판을 가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샌델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근거로 들며 내 비판에 반대한다. 그들은 시장은 중립적이어서 재화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 효율성만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며, 비시장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적 재화는 누군가 나에게 팔든, 선물로 주든 그 가치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선생님과 학생, 민주적 시민들 사이의 관계, 교육이나 건강 등의 영역에는 비시장적인 가치가 있고, 여기에 시장 메커니즘을 적용하면 시장적 가치가 비시장적 가치를 밀어내게 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당신은 책 속에서 “미국의 경우 시장경제를 가진 사회에서 시장사회로 이행하는 데 30년이 걸렸고, 그건 공적토론이 약화됐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또 다시 30년 이상이 걸릴까?

 

샌델 좋은 질문이지만 답은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어린이집 사례가 있다. 아이를 찾으러 늦게 오는 부모들을 일찍 오게 하려는 생각으로 벌금을 매겼더니, 벌금을 ‘요금’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늦게 온 부모들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시장적인 가치가 비시장적인 가치를 몰아낸 대표적인 경우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일을 겪은 뒤 벌금 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뒤로 더 많은 부모가 더 늦게 오게 됐다는 점이다. 의무감, 책임감 같은 비시장적 가치가 인센티브에 근거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해체·잠식·변질되면, 다시 복원시키기가 어렵다. 물론 대중은 지난 30년 동안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변화를 반영한 정치적인 논의도 최근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 수 있다.

 

당신은 ‘시장 대 도덕’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현재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시장을 도덕화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인 시장과 자본주의, 박애적 자본주의 등 ‘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다. 당신은 ‘시장은 도덕적일 수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 이와는 입장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샌델 그런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견해에도 동의한다. ‘도덕적 시장’이란 말을 무슨 뜻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그것이 교육, 건강, 시민·가족 생활 등의 영역에 시장이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나의 견해와 일치한다.

 

나는 ‘도덕적 시장’이라는 것이 하나의 형용모순으로서,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샌델 나는 시장이 어디에 속하고 어디에 속하지 않은지에 대한 공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시장이 어떤 때에 ‘공공선’(public good)에 도움이 되며, 또 어떤 때에는 비시장적인 가치를 해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토스터, 텔레비전과 같은 물질적 재화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에 시장은 효과적인 도구다. 그러나 건강, 교육, 인간관계, 시민·가족 생활 등의 영역에서 시장적 가치와 돈은 비시장적인 가치를 해친다. 따라서 인간 활동의 어떤 영역이 시장에 의해 바람직하게 지배되고, 어떤 영역이 시장 대신 다른 가치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센티브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인센티브가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샌델 인센티브 자체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인센티브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일들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보상으로 돈을 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돈을 받기 위해 책을 읽지만, 점점 재미를 붙이면 나중엔 돈을 받지 않아도 독서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잘못된 습관만을 주게 될 수도 있다. 이게 내가 걱정하는 바다.

 

당신이 말하는 공적인 토론은 강의실 바깥에서도 유효한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 속 공론장은 왜곡되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했다가 보수파들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에서는 최근 진보정당이 내부 경선 과정의 부정·부실 의혹 때문에 많은 도덕적 비난을 사고 있다. 현실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

 

샌델 공적인 토론은 강의실 바깥에서도 물론 유효하다. 당신의 말대로 현실 정치에서는 왜곡도 생겨난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행위들은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걸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적 담론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생각을 진지하게 견지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득의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설사 그것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그 (민주적) 시스템을 남용할 위험을 안고 있다. 돈의 위력이 정치와 정치운동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은 그런 남용의 한 사례다. 이는 미국 사회도 늘 갖고 있는 문제다. 돈의 위력이 커질수록 부패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민주주의적 평등의 이상과 시민들의 평등한 목소리를 왜곡시킨다.

 

공적 토론을 위한 역량을 쌓기 위해선 ‘독서’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마침 올해는 한국 정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원활한 공적 토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샌델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독서는 시민으로 하여금 역사와 경제, 현재 세계적인 이슈, 다른 사회 등에 대해 알게 해준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무엇을 읽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교육, 역사, 경제, 철학 등을 아는 것이다. (독서는) 양보다 질이다.(정리 최원형 기자)

 

12.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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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것도 며칠 늦어졌다. 날씨는 진작부터 여름이었지만, 막상 6월 진입하니 느낌이 또 다르다. 이젠 '땀 흘려' 책을 읽어야 하는 계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그 전에 어떤 책들이 나와 있는지 먼저 둘러보는 게 좋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내 어머니의 연대기>(학고재, 2012)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본의 국민작가라 한다. 국내엔 <둔황>(문학동네, 2010), <칭기즈칸>(선영사, 2010) 등이 더 소개돼 있다.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자전소설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5월에는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사계절, 2011)가 출간됐었다. 올해 나온 책으론 강제윤의 <어머니전>(호미, 2012)과 <김용택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가 지난달에 나왔다. 물론 5월이 가정의 달이었기에. 카네이션 값 정도로 책 한권 더 사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류쨔이푸의 <쌍전>(글항아리, 2012)이다. 제목의 쌍전은 <수호전>과 <삼국지>를 가리킨다. 여느 책과 다르게 이 두 고전을 맹렬히 비판하는 게 특징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상당한 매력이 있어 분명히 사람들을 황홀케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어둡게 하는 매우 위험한 책이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우리가 읽은 고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류짜이푸의 책으론 미국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강의하는 딸 류젠메이와 나눈 편지를 옮긴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글항아리, 2012)도 같이 나왔다. 언젠가 마이리스트에서 같이 묶은 적이 있지만 같은 세대 중국 지식인 첸리췬의 <내 정신의 자서전>(글항아리, 2012)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음 거기에 더 보태자면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가 드디어 완간됐다. 작년 여름에 첫권이 나오고 지난달에 마지작 3권이 나온 것. 올 여름 독서의 강력한 '원정군'이지 않을까 싶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줄리언 바지니의 <에고 트릭>(미래인, 2012)다. 국내에 자주 소개되는 대중적인 철학자인데(철학 대중화에 애쓰는 철학자) 개인적으론 <빅 퀘스천>(필로소픽, 2011)에 해제를 붙이기도 해서 더 친숙하다. 제목 그대로 '자아'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 자아의 문제를 신경과학, 사회학, 종교학, 심리학 등에서 철학적으로 탐구해 들어간 흥미로운 탐구서란 평가다. 사회학쪽에서 이 문제를 다룬 책으로 앤서니 엘리엇의 <자아란 무엇인가>(삼인, 2007)도 같이 떠오른다.

 

 

덧붙여 6월에 읽을 만한 철학자로는 단연 마이클 샌델과 슬라보에 지젝을 들고 싶다.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 홍보를 겸하여 현재 방한중이고(개인적으론 이번에 인터뷰할 기회도 가졌다) 지젝은 이달말에 방한할 예정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므로 이번 기회에 책으로 안면을 터두는 것도 좋겠다. 지젝의 경우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부터 손에 드는 걸 추천한다. 샌델의 데뷔작 <정의의 한계>(멜론, 2012)는 가장 '철학적'인 책인데, 개인적으로 아직 완독을 못했다. 6월엔 시간을 내봐야겠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맥스웰 맥콤스의 <아젠다 세팅>(엘도라도, 2012)이다. 찾아보니 <현대사회와 여론>(한울, 1995)이란 책이 소개됐던 저자다. 소개에 따르면 "맥콤스 교수는 196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채플힐 연구팀을 주도하여 언론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아젠다 세팅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저자는 그 후 30여 년간 아젠다 세팅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풍부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말하자면 '아젠다 세팅'에 관한 최고 전문가인 셈. 그렇잖아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아젠다 '세팅'이나 '선점'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를 테니 미리 '선점 독서'를 해두는 것도 좋겠다.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론 미국 사회에 대한 책 두 권이다.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와 매트 타이비의 <오 마이 갓!뎀 아메리카>(서해문집, 2012). 모두가 반면교사 거리가 될 만한 책들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의 <러시>(청림출판, 2012)다. "도전과 경쟁의 삶이 바로 행복"이라고 설파하는 책. 반대의 입장에서 시장과 자유경쟁이라는 신화를 비판한 저스틴 폭스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제목에 이끌려 얼마 전에 구입한 책이다. 덧붙이자면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비즈니스맵, 2012)도 같이 구입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김병소의 <풀잎 위에 알고리즘>(해마을, 2012)이다. '풀과 꽃들의 디자인 자연 속에 아름다운 수학과 생명의 의미들'이 부제. 풀잎(식물)과 알고리즘(수학)을 같이 다룬 책으로 "들판이나 산에 갈 때 식물도감과 함께 가지고 갈 수 있는 낭만적인 수학책"이라고. 수학 교양서로 장우석의 <수학, 철학에 미치다>(페퍼민트, 2012)도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론 로버트 크리스의 <측정의 역사>(에이도스, 2012)를 이달에 읽어보려고 한다. 측정 또한 수학과 무관한 영역은 아니므로 관련서라고 우겨도 되지 않을까.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박삼철의 <도시 예술 산책>(나름북스, 2012). 한낮의 땡볕이 아니라면 6월은 걷기 좋은 계절인데, 그에 맞는 책이라고. "지금 당장 걷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미술 안내서가 되어 줄 책".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를 주제로 한 책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앤 미코라이트의 <도시를 보다>(안그라픽스, 2012),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에서 엮은 <도시 속의 역사>(라움, 2012) 등이 최근에 나온 책.  

 

 

개인적으론 최근에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 대한 해설서로 박정태의 <철학자 들뢰즈, 화가 베이컨을 말하다>(이학사, 2012)가 나왔기에 읽어보려 한다. 베이컨의 그림도 오랜만에 볼 겸.

 

김수영을 위하여 

 

8. 교양

 

교양분야의 책으로 내가 고른 건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 2012)다. 추천사는 이렇게 적었다.

김수영은 누구였던가. 그의 시는 무엇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가. 저자는 한마디로 ‘자유’라고 말한다. “김수영을 읽어 낸다는 것. 그것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하는 행위다.”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 그것이 자유이고 자유의 의지다. 남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제대로 살아내겠다는 의지. 저자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갔던 김수영의 시와 삶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그러한 삶의 초상을 그린다. 시인의 초상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가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적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지난달엔 <김수영> 전집을 다시 구입했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책은 김용규의 <숲에서 온 편지>(그책, 20120)다. "2009년에는 <숲에게 길을 묻다>를 내기도 한 저자는 충북 괴산의 군자산 자락에 ‘백오산방(白烏山房)’을 짓고 5년째 혼자 살면서 농사와 저술, 강연을 겸업하고 있다" 한다. 조금 뜬금없을지는 모르지만 체호프의 드라마 <숲귀신>(<바냐아저씨>는 <숲귀신>의 개작본이다)과 같이 읽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10. 12세기 혁명

 

내 맘대로 고르는 이달의 주제는 '12세기 혁명'이다. '12세기 르네상스'라고도 부르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때문에 '급'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그래서 급하게 찾은 책이 로버트 스완슨의 <12세기 르네상스>(심산, 2009)와 자크 르 고프의 <중세의 지식인들>(동문선, 1999) 등이다. 이달에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생각난 김에 주제로 정해놓는다. 독서 압박용이다.

 

12. 06.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고른다. 이유는 딱히 없다. 아니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걸 읽고 다시금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엊그제 일이긴 한데, 그간에 새 번역본이 여럿 더 나온 것도 자극이 됐다. 예전에 읽어보려고 했을 때는 <유령의 집> 같은 제목으로나 번역돼 있었다.

 

 

아,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에서도 헨리 제임스에 관해 장이 간주곡으로 하나 들어가 있다. 지젝이 주로 다루는 건 <비둘기의 날개> 같은 작품이지만 헨리 제임스의 문학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첫번째로 고른 책이 <나사의 회전>인 것이고. 사실 더 읽어보고 싶은 건 그의 최고작이라는 <여인의 초상>이지만, 오래전에 절판되고는 나올 기미가 없다. 이 또한 세계문학총서에 빨리 포함되면 좋겠다. 아래는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여인의 초상>(제인 캠피온 감독)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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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에 잠시 누리는 '망중한'이 이주의 책을 고르는 일인데, 이번주엔 눈길을 끄는 책이 많지 않을 뿐더러 중구난방이다. 겨우 수습하는 모양새를 만드느라 타이틀책으로는 김경일의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푸른역사, 2012)을 고른다. '가족과 결혼으로 본 근대 한국의 풍경'이 부제다. 저자의 전작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푸른역사, 2004)에 이어지는 책이라고.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후스의 <백화문학사>(태학사, 2012)가 그 뒤를 잇는 책이다. "근대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본 최초의 중국문학사"라고 소개된다. 927쪽 분량이니까 짐작엔 이주에 나온 가장 두꺼운 책일 듯싶다.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길, 2012)도 이주의 책으로 골랐다. '이미지의 정치학'이란 부제와 목차에 이끌려 주문했는데, 어떤 책인지는 실물을 봐야 알겠다. 씨네21 필진들이 쓴 <시네마 톡>(씨네21북스, 2012)은 오랫만에 고르는 영화책이고, <최초의 것>(지식트리, 2012)는 독일의 고고학자가 쓴 책이다. 지난주의 <크로마뇽>(더숲, 2012)에 이어서 고고학 책들에도 눈길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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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 가족과 결혼으로 본 근대 한국의 풍경
김경일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6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2012년 06월 02일에 저장
품절
백화문학사
후스 지음, 강필임 옮김 / 태학사 / 2012년 5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40원(3% 적립)
2012년 06월 02일에 저장
품절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지음, 김홍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5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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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비꼴라쥬 시네마 톡-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진짜 영화 이야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6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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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문지 공간(535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국 철학자 슈스터만의 <삶의 미학>(이학사, 2012)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미 소개된 책들과 함께 언제 통독해보면 좋겠다.

 

 

 

공간(12년 6월호) 삶의 미학

 

<프라그마티즘 미학>과 <몸의 의식>이 국내에 소개됨으로써 이름을 알린 미국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의 새로운 책 <삶의 미학>(이학사, 2012)은 제목보다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이란 부제가 먼저 눈길을 끈다. ‘예술의 종언’론에 대한 비판과 ‘미학적 대안’의 제시가 저자의 주된 관심사라는 걸 시사해준다. 예술의 종언이란 무엇이고 가능한 미학적 대안이란 또 무엇인가.


예술의 종말에 대한 주장은 19세기초 헤겔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전개과정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예술이 더 고차원적인 단계에 그 역할을 인계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일종의 바통터치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고대의 예술과 중세의 기독교, 그리고 근대의 철학이 그렇게 정신의 역사라는 레이스의 주자들이다. 헤겔에 따르면 예술은 한때 예술에 형식적 힘을 부여했던 정신의 요구를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하며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기독교를 거쳐 철학의 몫으로 돌려진다. 전성기를 지난 예술은 비록 계속 존속하더라도 ‘과거의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곧 예술의 종말이다.


20세기 들어서 새로운 예술의 번성과 함께 잠시 주춤하던 예술의 종말론은 1930년대에 이르러 다시금 표명되기 시작한다. 발터 벤야민은 두 가지 종말론적 서사를 정식화하는데, 기술복제시대가 예술적 아우라의 쇠퇴를 가져옴으로써 예술이 가치의 숭고한 영역에서 물러나는 것이 종말의 한 양상이라면, 무질서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전통적인 미적 경험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또 다른 종말이다.


분석철학자로서 이러한 종말론에 가세한 이가 아서 단토이다. 단토는 헤겔주의에 입각하되 예술의 독자적인 역사를 해명하고자 한다. 무엇이 하나의 대상을 예술로 만들며 그것이 왜 예술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예술사의 진화동력을 ‘미메시스’로 규정한다. 얼마만큼 닮았는가가 예술적 형상화의 발전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 복제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닮음을 발전의 척도로 간주할 수 없도록 만들며 이에 따라 예술은 자연스레 종말에 이른다.


역사철학적 관점과는 별개로 제도적 시각에서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는 쪽도 있다. 예술을 특별한 사회 역사적 제도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따르면 예술은 18세기에 처음 등장하며 근대성의 기획과 함께 강화되다가 포스트모더니티의 도래와 더불어 종말을 맞는다. 예술이 근대성의 산물인 만큼 근대성의 종언과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슈스터만은 이러한 예술 종말 서사를 용인하지 않는다. 제한적으로 규정된 예술의 종말이 예술 전체의 종말을 의미할 수 없으며 동시에 그것이 미적 경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의 조건 속에서도 미적 경험이 여전히 가능하다면 예술의 갱생 에너지는 다 소진된 것이 아니다. 폭넓은 미적 경험과 미적 가치 개념의 회복은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슈스터만의 ‘프래그머티즘 미학’은 미적 경험이 근대성의 구획을 넘어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성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은 그 이후에도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단토의 예술종말론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비식별성’을 비판한다. 단토는 예술작품과 비예술작품, 곧 워홀의 브릴로 박스와 상품 브릴로 박스를 지각적 속성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적 경험은 예술을 적절하게 식별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에 대한 정의는 ‘지각’이 아닌 ‘해석’의 몫이 되며 감성학으로서 미학은 이제 비평에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단토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슈스터만은 이 비식별성 문제를 대상이 아닌 주체에 적용해보자고 제안한다. 매우 강렬한 예술작품에 대해서 동일한 해석을 제시하는 두 명의 관람자가 있는데, 한명은 그가 보고 해석하는 대상에 전율을 느끼는 인간이고, 다른 한명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지각 정보를 처리할 뿐인 사이보그이다. 작품에 대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해서 사이보그가 예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면 핵심은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경험이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고양되고, 강렬하며, 유의미하고도 정감적인 경험”으로서 미적 경험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때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될 것이다. 거꾸로 미적 경험이 여전히 유효하며 계속 보존될 수 있다면 예술은 아직 종말에 이르지 않았다. 저자가 인용한 T. S. 엘리엇의 말을 빌면, “종말은 또 하나의 시발점이다.”


바로 그러한 견지에서 슈스터만은 자신의 이론적 기획이 “순수예술의 영역을 넘어서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미적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예술과 삶을 더욱 밀접하게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미학적 대안은 ‘프래그머티즘 미학’과 ‘몸미학’이란 이름으로 이미 정식화돼 있으며 <삶의 미학>을 그것을 더욱 확장하려는 시도들을 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컨트리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베를린의 도시미학에 대한 성찰에서 문화다원적 자기창조에 이르기까지 미학적 실천은 여전히 살아있다.

 

12.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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