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태풍이 지나가니 어느덧 9월이고 가을이다. 한낮의 더위는 한동안 계속될 듯싶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은 절기를 잊지 않았다. 9월은 '독서의 달'이기도 한데, 이름값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본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 2012). 지난 6월에 나온 책이니 오히려 선정이 미뤄진 감이 있다. 나부터도 지난 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았었으니까. 8월에 나온 책으론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 2012)이 있다. 숲에도 가보고 바다에도 가보고 하면 되겠다.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시카고'까지 다녀와도 될까. 정한아의 <리틀 시카고>(문학동네, 2012)도 8월에 나온 책이고 9월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외국소설로는 독일의 최근작들에 눈길을 돌려본다. 국적으론 스위스 작가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소설 두 편이 번역돼 나왔다. 1995년에 데뷔하여 평단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가라고 하는데, 데뷔작 <파저란트>(문학과지성사, 2012)와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문학과지성사, 2012) 두 작품이 번역됐고, 올해 나온 <임페리움>도 곧 소개될 예졍이라고. 2006년엔 북한을 방문하고 사진집 <총체적 기억 - 김정일의 북한>을 출간했다는 이력이 눈길을 끈다(이것도 소개되면 좋지 않을까). 샤를로테 링크의 <관찰자>(뿔, 2012)도 흥미를 끄는 작품. 작년에 독일에서 출간돼 한달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독일에선 이미 '국민작가'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평판으로 보아 우리에게도 더 소개될 듯싶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역사의아침, 2012)이다. "망국의 풍경으로부터 시작되는 한국 근대의 역사를 53가지 키워드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에서부터 일제의 잔인한 식민통치, 식민지시대의 다양한 풍경들, 독립운동의 씨앗과 발전과정, 망명정부와 만주의 삼부 통합운동까지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 겹쳐서 읽어볼 만한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역사비평사, 2012)이다. 근현대 여성 공간으로서 명동을 다룬 김미선의 <명동 아가씨>(마음산책, 2012)도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장-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갈무리, 2012)이다. 프랑스의 이 고명한 철학자의 책들이 몇 권 소개돼 있지만 이 책은 가장 쉽게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철학 입문서이면서 낭시 입문서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린이들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사랑하지 말자>(통나무, 2012)도 현 대선국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우주적 시각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도올 입문서로도 요긴하다는 생각이다. 서구의 동시대 철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나이젤 워버튼이 <철학 한입>(열린책들, 2012)가 요긴하다. 정말 '한입'만큼씩의 인터뷰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래도 먹음직스럽다.

 

 

아, '한입 철학'의 대표격으로는 황광우의 <철학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겠다. 3권으로 완간됐는데(2권도 표지갈이를 했다), '철학 멀미증' 독자라도 부담 없이 들어볼 만한 '콘서트'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츠베탕 토도로프의 <민주주의 내부의 적>(반비, 2012)이다. 문학이론가에서 사상가로 폭넓은 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저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거기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묵직한 저작 <정치질서의 기원>(웅진지식하우스, 2012)도 보탤 수 있겠다. 철학자 이정우의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인간사랑, 2012)도 '진보'라는 화두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우리의 생각을 자극한다.

 

 

 

'진보' 얘기가 나온 김에 진보 지식인 특강을 책으로 묶은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2012)도 읽을 거리다. 소위 '진보'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다산북스, 2012)도 같이 읽을 만한 정치비평서. 김대호, 윤범기의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필로소픽, 2012)는 이번 대선의 '최대 뉴스메이커'이자 최대 베스트셀러의 저자 안철수의 생각을 점검해보는 책.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에이드리언 올드리지와 존 미클스웨이트의 <경영의 대가들>(더난출판, 2012)이다. 저자들은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유문화사, 2011)도 같이 낸 바 있다. 국내에서도 많이 읽히는 경영이론가들, 경영 구루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로도 유용하다 한다. 경영서를 읽기 전에 읽을 책이라고도 하니 경영이론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삼을 만하겠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진정일의 <진정일 교수, 시에게 과학을 묻다>(궁리, 2012)이다. "저자는 한 평생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쳐온 과학자이다. 그러나 여느 과학자와 남다른 데가 있다. 평소 시를 좋아해서 시집을 늘 가까이 하였다고 한다. 자연스레 시 속에 등장하는 과학 용어에 주목하고 일반 독자들이 어려워하는 과학을 시를 통해 풀어 가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

 

 

 

'시에게 과학을 묻는다'고 하니까 떠오르는 책은 시 쓰는 화학자(심지어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까치, 1996)가 떠오른다. 울프 다니엘손의 <시인을 위한 물리학>(에코리브르, 2006)도 결과는 모르겠지만 애초의 의도는 제목대로인 책이다. 방식은 좀 다르지만 그러한 '크로스오버'의 대표주자 정재승 교수의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어크로스, 2012)도 빼놓을 수 없는 과학서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송지원의 <한국 음악의 거장들>(태학사, 2012)이다. 저자는 드물게도 한국 음악사상사와 음악문화사를 전공했는데, <정조의 음악정책>(태학사, 2007),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고 - 옛 음악인 이야기>(태학사, 2009) 등이 그간에 낸 책이고 <한국 음악의 거장들>은 우리 전통음악의 거장들을 망라한 '한국음악 명인열전'. 일종의 '인물사전'으로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잊고 지내던 소리들을 다시 끄집어내놓고 그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

 

 

 

8. 교양

 

교양분야의 책으로 내가 고른 건 우치다 타츠루의 <일본변경론>(갈라파고스, 2012)이다. 독도문제로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 되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 좀더 알게 해주는 책인 듯싶어 골랐다.

불행한 근대사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 동시에 심정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가 일본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독서를 통해 일본을 이해하려 한다면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손에 들면 되겠지만 겸하여 일본문화론도 읽어보면 좋겠다. 일본에서도 화제와 논란을 불러 모은 우치다 타츠루의 <일본변경론>은 가장 먼저 손에 꼽을 만한 일본문화론이다. 두 가지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먼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나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그간에 한국 독자가 가장 많이 읽은 일본문화론이지만 모두 바깥의 시각에서 본 경우라면, <일본변경론>은 일본의 지식인이 쓴 일본문화론이다. 다음으로, 대개 ‘자국문화 특수론’에 함몰되고 마는 일본 내부의 일본문화론과는 달리 저자가 이웃나라 사람들도 ‘일본을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갖고 쓴 예외적인 일본문화론이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김정기의 <나를 좋아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인북스, 2012)이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커뮤니케이션 학자가 많은 나라로 꼽힌다. 신생 학문이다 보니 다른 전공자까지 몰리는 데다 헬스커뮤니케이션 등 현대사회에 유용한 영역의 확장도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학자들이 이론의 틀에 갇혀 있다 보니 실생활의 효용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다루는 학문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이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학의 대중 교양화를 위해 썼다는 데 미덕이 있다."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덧붙이자면, 최근에 <또 다른 세계화>(살림, 2012)란 책이 출간돼 알게 된 저자인데, 프랑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도미니크 볼통의 <불통의 시대 소통을 읽다>(살림, 2011)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어제 주문한 책이다.

 

 

10. 범죄소설

 

살인과 성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서 민심이 흉흉하기에 고른 주제는 '범죄소설'이다. '범죄'와 '범죄소설'은 별개라고 우기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용언의 <범죄소설 - 그 기원과 매혹>(강, 2012)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입문서격이라면 추리소설에서 범죄소설로의 이행을 다룬 줄리안 시먼즈의 <블러디 머더>(을유문화사, 2012)와 20세기 미국 범죄소설사로 레너드 카수토의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뮤진트리, 2011)은 '깊이 읽기'감이다. 현실이 범죄적인데, 굳이 범죄소설까지 읽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흠, 할말은 없지만...

 

12. 09. 02.

 

 

P.S. '9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란 번역제목으로도 친숙한 작품으로 스페인어권에서는 <돈키호테>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 소설. 그러니 군말이 필요없긴 하다. 국내에서는 안정효 선생이 옮긴 <백년 동안의 고독>이 중역임에도 아직까진 더 많이 읽히는 듯하다. 단권 번역이라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원전 번역인 민음사판도 통권으로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들고 다니기엔 분권이 낫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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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주제로 한 강의도 종종 하다 보니 독서법에 관한 책도 읽게 된다. 공부를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위해 읽는 셈인데, 오늘 배송받은 책은 이토 우지다카의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21세기북스, 2012)이다.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이 부제. 지금은 100세를 넘긴 하시모도 다케시라는 한 국어선생님의 '전대미문의 수업'을 소개하는 게 책의 골자다.

 

 

 

1950년대부터 이분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 수업은 "교과서는 들춰 보지도 않은 채 얇은 소설책 한 권으로 3년 동안 공부"하는 '기적'의 수업이었다. 이걸 미독(味讀)이라고 부르는데, 음미하면서 읽는다는 뜻이겠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시모토의 제자들은 전후 빠르게 전개된 성장사회, 속도사회에 역행하기라도 하듯 느리게 그러나 착실하게 '배우는 힘'과 '살아가는 힘'을 익혔다. 그 결과 <은수저> 수업 3기에 해당하는 1968년 졸업생은 사립학교 사상 최초 도쿄 대학 최다 합격이라는 위헙을 달성한다. (5-6쪽)

성공작이었다는 얘기다. 제자 중의 한 사람은 2009년 일본의 최고재판소 제23대 사무총장에 취임한 야마사키 도시미쓰인데, 하시모토의 슬로 리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우연히 재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궁극의 만능선수랄까요,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事象)을 다룹니다. 판결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법률지식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교양이랄까,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사고방식, 그리고 모든 사물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는 사고입니다. 그런 모든 사고의 뿌리를 하시모토 선생님께 배웠다고 생각합니다."(31쪽)

찾아보니 제자들에겐 '에티 선생님'이라고 불린 하시모토 다케시의 책도 번역돼 나왔다.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슬로 리딩>(지식트리, 2012)이 그것이다. 책소개는 이렇다.

슬로 리딩의 창시자이자 하시모토 다케시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배움’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주고자 ‘은수저 슬로 리딩법’을 고안해 냈다. “배우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단순히 “‘논다’라는 기분으로 배우면 되지 않겠니?”라고 대답하기보다는 교사 스스로 아이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게 교재를 개발하고 교안을 마련하고자 한 데서 슬로 리딩법은 시작됐다. 이후 하시모토 선생의 ‘슬로 리딩’ 학습법은 그의 제자들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 도쿄대학 총장 하마다 준이치, 최고재판소 사무총장 야마사키 도시미쓰, 가나가와 현지사 구로이와 유지 등이 집필한 <기적의 교실>, <은사의 조건> 등에 소개되었고, 이를 NHK에서 자세히 취재, 방송함으로써 일본 열도에 슬로 리딩과 고전 읽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100세를 맞이한 하시모토 선생은 나다 중학교로 복귀, 토요 특강을 통해 원조 ‘슬로 리딩’을 강의하고 있다.

100세 이후에도 강의를 한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여하튼 그의 슬로 리딩이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킨 듯싶다.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 2008)에서 제안하는 '슬로 리딩', 곧 지독(遲讀)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모든 책을 다 '지독'하거나 '미독'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권 정도는 그렇게 읽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적 효과면에서도 그렇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독서력>(웅진지식하우스, 2009)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는 하시모토의 '슬로 리딩'에 대해 평해달라는 주문에 '걸어서 가는 소풍'을 비유로 든다.

일반적인 독서는 버스를 타고 휙 가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발짝 두 발짝 걷다가 길가의 꽃에 이끌려 발을 멈추고 이내 걸음을 옮기는, 그런 산책 같은 소풍은 결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시모토식 '슬로 리딩'입니다.(41족)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이러한 '슬로 리딩'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속독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하시모토 선생이 교재로 사용한 나카 칸스케(간스케)의 <은수저>(세시, 1997)는 번역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절판됐다.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은수저>만이 미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사이토 다카시는 "<은수저>처럼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읽으면 실력이 붙는 작품"을 꼽아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답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초등학생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중고생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대학생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인이라면 <논어> 정도가 좋습니다. 장르는 서로 다르지만 각각의 세계가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가치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41쪽) 

모두가 '구면'인 작품이라 반가운데, <논어>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모두 강의해본 작품들이다. 특히 <죄와 벌>은 6주간 읽은 적도 있다. 3년짜리 '슬로 리딩'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한 1년간 읽는 건 해볼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 이곳저곳에서 하고 있는 지젝 강의도 마찬가지인데, 얇은 책이더라도 몇달 간 같이 읽는다면, 그만큼 '실력'이 붙지 않을까. 그런 게 슬로 리딩의 힘이다...

 

12.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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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강의가 끝나고 늦게 귀가해 잠시 '이주의 책'을 고르다 보니 자정을 넘겼다. 여느 때보다 책을 덜 구입한 것도 아니지만, 이번주에는 딱히 눈에 띄는 책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것도 기회다' 싶어, 좀 어렵다는 철학책들로만 골랐다(생각보다는 쉬울 수도 있지만). 타이틀은 칸트의 <형이상학 서설>(아카넷, 2012)에서 가져왔다. 칸트의 책을 '이주의 책' 머리에 올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 '개강맞이' 이벤트라고 해도 좋겠다(이번 학기엔 대학강의를 맡지 않아서 나대로는 '이벤트'를 할 만하다!). 칸트 자신이 기획하고 저술한 칸트 철학 입문서로 흔히 <프롤레고메나>라고도 음역되는 책이다. 원어명을 다 옮기면,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다소 뒷북이긴 하지만,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강의>(세창출판사, 2012)도 얼마전에 출간됐다(오늘에야 알았다). 나로선 난해하기만 했던 아도르노를 육성의 도움을 빌면 읽을 수 있게 될지 궁금하다. 이 두 권에다 국내 학자들의 책 세 권을 더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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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서설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2년 9월
27,000원 → 25,650원(5%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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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 강의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지음, 이순예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7월
39,000원 → 35,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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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로 재구성한 서양철학의 역사
최재식 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2년 8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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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의 매체철학-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심혜련 지음 / 그린비 / 2012년 8월
23,000원 → 21,850원(5%할인) / 마일리지 69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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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문학의 대가 카를로스 푸엔테스(1928-2012)의 작품을 몇권 주문한 김에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났기에 약간 뒷북성 리스트이긴 한데, 그래도 국내엔 소개된 책이 많지 않다. 생전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남미문학 3대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이 세 작가의 작품들을 요며칠 수집하고 있다). 대표작 <아르떼미오의 최후>(<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은 절판된 상태로 중고로 구입했는데,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의지와 운명>(2008)은 노벨문학상 후보작이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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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서성철 옮김 / 까치 / 1997년 8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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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붐 그리고 포스트붐- 중남미 단편소설 선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예문 / 2005년 7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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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우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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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복한 가족들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경주.김정하 옮김 / 뿔(웅진) / 2010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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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온 택배 중의 하나는 좀 무거운 남성잡지다. <지큐(GQ)>(139호). 표지를 보니 GQ는 'Gentlemen's Quarterly'의 약자다. 내겐 낯선 잡지인데(남성지고 여성지고 구입해본 적이 없으므로) 지난달에 '입문서'에 대해 청탁받고 쓴 짧은 글이 이번 9월호에 실린 것. 입문서라는 ‘구태의연한 소재’에 대한 ‘날카로운 답’을 주문받았었다. 여러 권을 거명해도 됐지만 짧은 분량이라 그냥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해 몇 마디 소개하는 데 그쳤다. 잡지의 270쪽에 실려 있다. 글의 속도감을 살린 편집자의 손길이 인상적이다.

 

 

 

GQ(12년 9월호) 입문서

 

제목에 ‘입문’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책들이 있다. 입문서다. 혹은 ‘개설’이나 ‘개론’이란 말이 붙을 수도 있다. 그것도 입문서다. 입문서는 그 자체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기에 군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닥치고 입문’이라고 웅변하고 있기에. 군림하고 있기에.

 

 

 

그런 당당한 입문서들 옆으로 ‘-하는 법’이란 제목이 붙은 책들도 있다. 이 또한 입문서일 확률이 높다. 최소한 입문서 흉내를 내거나 입문서 행세를 하는 책들이다. 그런 부류 가운데 ‘서평가’라는 자리에서 고른다면, 단연 눈에 띄는 책이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08)이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2)도 펴낸 저자이니 이 방면으론 뭔가 아는 저자다.

 

그는 단순히 ‘읽은 척 매뉴얼’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자못 진지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두 가지다. 첫째는 독서와 비독서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책을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으로 구분하는 건 단순한 이분법이다. 물론 불가능한 구분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읽은 책이더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책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이미 읽은 부분을 잊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억은 언제나 선별적이고 독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읽은 책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얼마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셈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둘째로 책이 너무 많다는 점. 한권의 책을 읽느라 다른 열권의 책을 읽지 못하는 게 오늘의 독서 현실이다. 이 경우에도 독서의 이면은 비독서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기로 선택하는 건 동시에 어떤 책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비독서가, 역설적으로 대단히 적극적인 독서 전략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무독서와 다르게 비독서는 모든 책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 독서를 자제한다. 가령 350만권의 장서를 알기 위해서 제목과 목차만을 읽는 한 소설 속 도서관 사서는 비독서의 실천가라고 할 수 있다.

 

독서와 비독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독서 입문서로도 활용 가능하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도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는 책들을 다 읽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독서의 조건은 비독서다. 그런 사실을 자각하도록 해주는 책이니 독서 입문서로도 단연 권할 만하다.

 

12.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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