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나오는 신간들을 따라가기도 벅차지만 그걸로도 모자라서 가끔은 무모한 독서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역사쪽 아이템들이 수집 목록을 늘려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이다. 박우수 교수의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열린책들, 2012)이 나온 게 시발점으로 가이드북이 나왔으니 이젠 챙겨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이 사극 시리즈 다수는 영화화돼 있어서 맘먹고 수집하자면 상당한 견적이 나온다).

 

 

오래전에 이대석 교수의 <셰익스피어 극의 이해: 사극과 로마극>(한양대출판부, 2002)과 이태주 교수 번역의 <셰익스피어 4대 사극>(범우사, 1999)을 구입하긴 했으나 독서로 진행되진 못했다. 그러던 차에 김정환 시인판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 가운데 3차분으로 사극(잉글랜드 민족사극) 11권이 출간됐다.

 

 

소개에 따르면 "이번에 출간된 11권은 플랜타저넷→랭커스터→요크→튜더 왕조로 이어지는 잉글랜드 왕조의 전환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장미전쟁, 백년전쟁을 마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사극들이다." 보통은 <존왕>부터 시작하는 사극 리스트를 <심벨린>부터 잡은 것이 이 전집판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보통 비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을 김정환 시인은 사극의 첫머리로 삼았다).

 

 

 

당장은 <리처드 2세>와 <리처드 3세>를 나남출판에서 나온 번역본 등과 같이 구입해놓았지만(이성일 교수의 번역본은 <줄리어스 씨저>까지 세 권이 나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체 리스트에 도전해볼 참이다. 시리즈의 순서대로 아침이슬판과 기타 다른 번역판들을 모아놓는다(전예원판 외에 일부 사극은 이덕수 교수의 형설출판사판이 나와 있다. 지만지판으로도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가 번역돼 있다).

 

<심벨린>

 

 

<존 왕>

 

 

<리처드 2세>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헨리 5세>

 

 

<헨리 6세 1부>

 

 

<헨리 6세 2부>

 

 

<헨리 6세 3부>

 

 

<리처드 3세>

 

 

<헨리 8세>

 

 

1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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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의 '사람과 책'에서 '로쟈, 고전과 만나다' 꼭지를 옮겨놓는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골랐다. 행복론에 관한 책들이 여럿 눈에 띄기에 '원조'가 될 만한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손에 든 것으로 러셀의 책으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러셀의 행복철학>(빅북, 2012)이란 책도 출간됐는데, 미리 나왔더라면 도움을 받았을 뻔했다.

 

 

 

사람과 책(12년 11월호) 자신을 벗어나야 얻을 수 있는 행복

 

이달의 고전으로 고른 것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행복의 정복>(1930)이다. 철학자 러셀을 대표할 만한 저작은 아니지만, <서양철학사>나 <철학의 문제들> 등을 제치고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함께 그런 관심의 상당 부분은 제목에 빚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용과 무관한 현혹적인 제목이 붙어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이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기술이라고 말하는 <사랑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행복의 정복>은 행복이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을 통해 정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한 통념대로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행복의 정복>이야말로 필독의 고전이 될 만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러셀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강의시간에 <서양철학사>(집문당)를 소개받고 두 권짜리 번역본에서 현대철학을 다룬 하권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시인 바이런을 다룬 장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사 책에서 칸트와 헤겔 등과 나란히 바이런을 다룬 건 러셀만의 독특한 안목과 파격을 보여준다. 박영문고로 나온 <결혼과 도덕>, <인간사회개조론> 외에 <종교는 필요한가>(범우사)와 <철학의 문제들>(서광사)이 학부시절에 읽은 책들이다. 그 이후에도 러셀의 책들은 간간히 구입했지만 <행복의 정복>에 대한 특별한 인상은 갖고 있지 않다.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처럼 문고판 대역본을 통해서 접한 기억만 있다.

 

집착을 줄여 얻은 행복
사실 젊은 시절에 행복론을 들먹이는 건 좀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물리시간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걸 배운 이후로 나는 ‘행복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것도 있을 거라고 단정했다. 일정량의 행복이 보존되는 만큼 내가 남들보다 더 행복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은 불행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남들보다 불행해지고자 애쓰지는 않았지만 과도한 행복은 경계 대상이었다. 그래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가 적당하다고 여겼다. 러셀의 진단에 따르면 행복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확신을 나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거꾸로 불행에 대해서는 은근한 지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행복 추구를 은연중에 거부하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러셀은 잠을 설친 사람들이 그렇듯이 불행한 사람들 또한 늘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랑한다고 꼬집는데, 내가 그런 격이었다. 그는 그런 태도를 꼬리 잃은 여우가 하는 자랑에 비유한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 여우는 다른 여우들에게도 꼬리가 없는 편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망신만 당한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일부러 불행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게 러셀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행을 고집하려 한다면 <행복의 정복>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아니다, 거꾸로 받아들이면 ‘불행의 탐닉’으로도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러셀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행복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행복하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찬송가가 ‘세상에 지친 이 몸에 죄로 된 짐을 지고’였고, 다섯 살 때는 만약 일흔까지 산다고 하면 겨우 인생의 14분이 1을 버틴 셈이니 여생이 얼마나 지루할까 고민에 휩싸였다. 삶을 증오하던 사춘기에는 늘 자살을 꿈꾸었지만 수학을 좀더 알고 싶다는 욕구로 버텨냈다고 한다. 나중에 화이트헤드와 공저한 <수학의 원리>나 간추려 쓴 <수리철학의 기초>는 그런 인내가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노년에 이르러 삶을 즐기게 됐다. 어떤 비결인가. “이렇게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더 압축하면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었다. 그런 직접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러셀은 불행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 믿음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책의 집필 동기다. 

 

외부에 대한 관심이 행복의 비결
물론 모든 불행에 대한 처방을 제안하고 있지는 않다. 러셀은 행복이 부분적으로는 외부적 환경에 달려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개인적 심리도 그 외부적 환경에 속하는 사회제도의 산물일 때가 많다. 따라서 행복을 증진시키려면 의당 사회제도의 변혁이 필요하지만 <행복의 정복>은 그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그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결혼과 도덕>이나 <사회개조의 원리> 같은 책에서 다루었다). 문제는 외부적 요인이 충족되었을 때에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다.

 

“일용할 양식과 몸을 누일 곳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소득, 일상적인 육체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한 외적 원인이 없이도 불행하다면 어째서 그런가? 러셀은 이런 불행은 대부분 세계에 대한 그릇된 견해, 잘못된 윤리와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런 불행은 사회제도의 변혁까지 가지 않고서 개인의 힘으로도 좌우할 수 있다. 무엇이 불행의 원인인지 깨닫고 개선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발상에 따라 러셀은 <행복의 정복>을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원인’, 두 부분으로 구성한다. 그가 보기에 불행의 원인은 단순하다. 아무 이유 없이 불행해 하면서 그 불행의 원인을 우주의 본질로 돌리는 ‘바이런적 불행’에서부터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까지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의 원인을 뭉뚱그리자면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몰입이다.

 

러셀에 따르면 자기 몰입에는 죄인과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 과대망상증에 빠진 사람, 세 유형이 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끊임없이 자신을 탓하는 유형이 죄인이다. 자기도취형은 죄인형과는 반대로 자신을 찬미하며 남들에게도 항상 찬미를 받고자 한다. 자기도취형이 남들에게 매력 있는 사람으로 비치길 갈망한다면 과대망상형은 권력을 가진 사람, 그래서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성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아무리 역사상의 위인이라 하더라도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므로 언젠가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패배하고 결국엔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당한 나폴레옹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기중심성이 불행의 주된 원인이라면 우리는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닌 바깥에 쏟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러셀이 보기에 “행복한 사람은 자유로운 애정과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도덕가들이 얘기하듯이 자기부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이타적일 필요도 없다. 가령 도덕가들은 사랑은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지만 러셀은 그것이 어떤 한도를 넘어설 만큼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제한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행복의 비결은 단순하다.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열정 그리고 흥미로운 삶

러셀은 열정과 사랑, 가족, 일, 일반적 관심사, 노력과 체념 등을 ‘행복의 원인’으로 열거하는데,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는 내향성의 극복이다. 왜 내향적인 성향이 문제가 되는가. 러셀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소시지 기계가 두 대 있었다. 돼지고기를 원료로 해서 소시지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이 중 한 대는 돼지에 관심이 많아서 엄청난 양의 소시지를 생산했지만, 다른 한 대는 “돼지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람?”이라고 말하며 시큰둥해 했다. 이 기계는 돼지에 대한 관심을 끊는 대신에 자신의 내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계는 작동을 멈췄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해보아야 이 기계는 자신의 내부가 공허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 두 기계의 차이가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열정을 잃은 사람 간의 차이라고 러셀은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소시지 기계와 같아서 외부 세계로부터 원료가 공급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어느 것 하나에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고 흥미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거기서 더 바란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이상한 행성과 이 행성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인류사의 원대한 조망 속에서 살아간다면 개인적으로 어떤 운명을 산다고 해도 강한 행복감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러셀의 행복론이다.

 

12. 11. 17.

 

 


P.S. 행복관의 역사에 관해서는 시셀라 복의 <행복한 개론>(이매진, 2012)가 유용하다.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과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비교한 장도 포함돼 있는데, 이 두 책은 같은 해에 출간됐다.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행복이란 무엇인가>(공존, 2012)과 엘리자베스 파렐리의 <행복의 경고>(베이직북스, 2012)도 행복론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책. <행복의 경고>는 이번주에 주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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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 아침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2)에서 가져왔다. 저자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강좌 '죽음'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성격의 책. 조락의 계절에 일독해볼만한 교양서일 듯싶다. 두번째 책은 하이데거의 <사유의 경험으로부터>(길, 2012). 하이데거 연구자이자 번역자였던 신상희 박사의 유작 가운데 하나다(다른 하나는 지난 여름에 나온 <언어로의 도상에서>(나남, 2012)다). 하이데거가 생전에 쓴 최초의 글(1910)에서 최후의 글(1979)까지 다양한 주제의 짧은 글들을 모았다. 가장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하이데거의 책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 책은 피터 브라운의 평전 <아우구스티누스>(새물결, 2012).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책이라면 에티엔느 질송의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성균관대출판부, 2010)과 함께 '이 두 권'이라 할 만하다(국내에 별다른 책이 소개돼 있지 않다). 분량과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리고 네번째 책은 코니 커닝햄의 <다윈의 경건한 생각>(새물결플러스, 2012)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적극 추천한 책. "도킨스와 그의 동료들은 종교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커닝햄의 이 책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다윈주의의 과학적 가치를 완전히 받아들이면서도, 다윈주의의 한계에도 빛을 던져준다. 이런 책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우리 시대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이 지젝의 주장. 경건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묵직한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안드레아스 바그너의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와이즈북, 2012). 정재승 교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안드레아스 바그너는 이 책에서?모순과 패러독스로 가득 찬 우주와 자연에서 생명체들이 처한 운명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으며, 그것이 생명 현상의 원동력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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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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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경험으로부터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신상희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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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격변의 시대, 영혼의 치유와 참된 행복을 찾아 나선 영원한 구도자
피터 브라운 지음, 정기문 옮김 / 새물결 / 2012년 11월
48,000원 → 43,20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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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윈의 경건한 생각- 다윈은 정말 신을 죽였는가?
코너 커닝햄 지음, 배성민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11월
36,000원 → 32,4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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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하워드 진의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일상이상, 2012)이다. '시민권력을 위한 불온한 정치사'가 부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올해 나온 원서(<이뤄지지 않은 역사의 약속>) 자체가 하워드 진의 유작이다.

 

 

번역본의 제목이 저자가 다루는 다양한 범위의 이슈들을 축소시킨 감이 있는데, 지난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진보적 잡지 <프로그레시브>에 실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진의 마지막 저작이자 유작이 이 칼럼집인 셈이다. 책상 가까이에 있길래 아침에 무심결에 집어서 몇 쪽 읽어봤는데, 이 걸출한 역사학자이자 진보적 지식인, 그리고 빼어난 교육자의 면모를 두루 확인할 수 있어서 '하워드 진 입문서'로도 아주 요긴하다 싶다.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2002) 옆에 나란히 꽂아둘 수 있을까. 한 인터뷰 꼭지에서 자서전의 제목을 왜 그렇게 붙였느냐고 물으니까 하워드 진의 대답은 이렇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말이냐고? 강연장에서 나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내 자서전의 제목을 뭐라고들 잘못 말하는지 아는가? "중립적인 현장에서는 자신을 훈련시킬 수 없다(You Can't be Training in a Neutral Place)"라고 한단 말이지. 그런 점을 노렸다고 할 수 있는데 '중립'과 '기차', '훈련'이란 말이 서로 엇갈려 이 제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한 것이었다.(53쪽)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워드 진의 가장 큰 미덕은 모든 이슈들에 자신의 관점을 아주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전달한다는 점인데, 가령 진보의 핵심 가치로서 평등주의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적 가치의 핵심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하지 않고 인간은 누구나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 있다는 생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 어디에서든 불평등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덧붙이기를,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평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건 현실에서 성취하기엔 어렵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입고 있는 스웨터는 내가 입고 있는 스웨터보단 좋다. 그러나 우리가 둘 다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사실, 그게 중요하다."(11쪽)

이런 '스웨터론' 같은 언어가 우리에겐(더구나 요즘 같은 대선 국면에선) 더 많이, 그리고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진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반전에 대한 열정적 옹호에 할애하고 있는데, 번역본 제목의 빌미가 된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거짓말'에서는 당시 미국 대선후보들의 대외 정책 공약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대외 및 군사 정책에 대해서는 아예 무슨 변화에 대한 말 자체를 입밖에 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 모두가 정당소속을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국방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력 증강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습게도 이건 무슨 육체미 과시하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 근력 자랑하는 것도 아닌데, 보다 많은 바디 빌딩 기구를 사겠다면서 우리에게 그 돈을 다 내라고 하고,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면서 동네 뒷골목에서 다른 애들을 죄다 괴롭히고 자기가 대장인데 지면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고 우기고 있는 식이다.

우리가 진정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라면, 전 세계 인구의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미국이 전 세계 부의 25퍼센트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겠는가? (...) 미국인들을 뺀 나머지 전 세계 인구 96퍼센트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바로 우리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존심이 있다면 이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어떻게 지지를 표명할 수 있겠는가? (94쪽)

에둘러 말하지 않으며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2000년 대선이면 좀 지나간 시점의 얘기지만, 그렇다고 시의성이 만료된 것도 아니다. 최근의 미 대선과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대선에 적용해봐도 그렇다. 진의 말대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두루뭉술하게 '좋은 애기들'만 늘어놓기보다는 좀더 확실하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공표하는 후보가 앞장서 나왔으면 싶다. 어려운 가치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 있다"는 걸로도 충분하다. 미국의 양심, 하워드 진조차도 가져보지 못한 정부를 우리는 가질 수 있을까. 기대와 염려가 교차한다...

 

1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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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차 살만 루슈디를 읽는다. <악마의 시>가 처음 번역돼 나왔을 때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정작 맘먹고 읽게 되진 않았는데, 이번에 참고할 만한 연구서와 관련서들까지 구해서 대략적인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데뷔작 <그리머스>(1975)를 제외하면 주요 장편들이 대부분 소개돼 있다. <한밤의 아이들>(1981), <수치>(1983), <사탄의 시>(1988), <무어의 마지막 한숨>(1995), <분노>(2001), <광대 샬리마르>(2005), <피렌체의 여마법사>(2008) 등이다. 올해는 회고록 <조셉 안톤>을 펴냈는데,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장편들만으로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나의 일차적인 관심작은 <한밤의 아이들>, <수치>, 그리고 <악마의 시> 세 편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국내에서도 곧 개봉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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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무선)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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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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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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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11,800원 → 10,620원(10%할인) / 마일리지 590원(5% 적립)
2012년 11월 14일에 저장
품절
악마의 시 - 상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2년 11월 1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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