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의 책이 두 권 포함돼 있다. R. 네스와의 공저인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사이언스북스, 1999/2013)와 <진화의 미스터리>(사이언스북스, 2009)가 그 두 권이다.

 

 

 

두 권 다 재구입한 책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는 다윈의학을 처음 소개한 책인데('진화의학'이라고도 불린다) 부제가 '다윈의학의 새로운 세계'다. 처음 출간시에 구입했으니까 1999년 1쇄본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당장 찾을 수가 없어 다시 구입했다(책은 스테디셀러로 올해 20쇄를 찍었다). 반면 <진화의 미스터리>는 원래 두산동아판(1997년)으로 먼저 나왔던 책이고 그걸 갖고 있지만 역시나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구입했다. 조지 윌리엄스의 대표작은 <적응과 자연선택>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존 올콕의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를 읽다가 다시금 상기하게 된 이름인데(예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알게 돼 <적응과 자연선택>은 원서를 구해놓기까지 했었다), 에른스트 마이어, 존 메이너드 스미스와 함께 20세기 진화생물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학자로 평가된다.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20세기의 다윈'이라고도 불린 에른스트 마이어의 책은 <진화론 논쟁>(사이언스북스, 1998)이 처음 소개됐고(분량도 너무 얇고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다), 이후에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2002), <생물학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철학과현실사, 2005), <진화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2008) 등이 더 번역됐다(<이것이 생물학이다>는 절판). <진화란 무엇인가>도 소장도서이긴 한데, 이 역시 어디에 두었는지는 신만이 아실 듯...

 

 

존 메이너드 스미스의 책도 국내에 세 권이 소개돼 있다. <생명의 떠오름>(이음, 2011)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고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후 50년>(지호, 2003)은 공저이며, <40억년 간의 시나리오>(전파과학사, 2001)는 나도 이번에 알게 된 책이다(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지만 번역이 좋지 않다는 귀띔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에른스트 마이어와 메이너드 스미스의 책을 둘러본 것이고, 사실 이 페이퍼는 다윈의학/진화의학 관련서가 더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는 것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는 원저가 1994년에 나왔으니 거의 20년 전 책이다. 당연히 이 분야에서 그간에 진전된 연구가 없을 리 없다. 다윈의학 초창기의 책이기에 최근의 성과까지 다룬 책이 더 번역되면 좋겠는데, 후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나온 <문명이 낯선 인간>(곤존, 2012)의 공저자 피터 글루크먼과 마크 핸슨이 바로 진화의학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두 사람이 공저한 <비만, 운명, 질병>(2012)과 <진화의학의 원리>(2009) 같은 책들이 우선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싶다.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있으면 좋겠다...

 

13.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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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갈무리, 2013)을 오늘 받았다. 지난주초에 주문했는데, 연휴 때문인지 오늘에야 배송이 됐다. 제목은 '리듬분석'이지만 음악책은 아니고, '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이란 부제가 책의 주제를 말해준다. 소개 문구에 따르면 '르페브르가 리듬의 관점에서 다시 쓴 <차이와 반복>'이라고(물론 차이와 반복이 리듬을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차이와 반복>까지?). 겸사겸사 국내에 소개된 르페브르의 책들을 검색해보니 네 종밖에 안 된다. 그나마 <현대 세계의 일상성>이 두 번 출간돼 권수로는 다섯 권이다. 읽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싶지만, 이 참에 <현대세계의 일상성>과 같이 손에 들어봐도 좋겠다.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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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분석- 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
앙리 르페브르 지음, 정기헌 옮김 / 갈무리 / 2013년 5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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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생산
앙리 르페브르 지음, 양영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4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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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 입문
앙리 르페브르 지음, 이종민 옮김 / 동문선 / 1999년 7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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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세계의 일상성
앙리 르페브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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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보았다. 국내 저자, 더 정확하게는 국내 시인 세 사람이다. 산문집과 시집을 펴낸 마종기, 김정환, 황병승 시인이 그들이다.

 

 

먼저 마종기 시인의 <우리 얼마나 함께>(달, 2013). 시인이자 의사로 평생을 살아온 특이한 경력의 시인의 의사생활에서 은퇴한 후 "십 년간 고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과 새롭게 적은 몇 편의 글을 엮어" 펴낸 산문집이다. 시집이 아닌 책으로는 에세이집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 2010)와 루시드 폴과의 서신교환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 2009)에 이어지는 책.

 

 

 

이미 <마종기 시 전집>(문학과지성사, 1999)까지 나왔었지만 이후에도 시작은 멈추지 않아서 <전집> 이후에도 세 권의 시집을 연이어 펴냈다. '전집'이란 말이 머쓱해지는데(한국 문학계에서는 '전집'이란 말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회갑 기념 시집 정도의 의미였다고 해야겠다. <마종기 깊이 읽기>(문학과지성사, 1999)가 <전집>과 짝을 이루는 책. 1960년에 나온 첫 시집 <조용한 개선>(문학동네, 1996)도 다시 나와 있다. 이번 산문집의 한 대목.

일흔이 넘은 내 나이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인데 그전에 몇 개 안 되는 아버지의 작품과 유물을 어떻게든 고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그 결심은 물론 내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유물을 보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했다. 미국에서 난 세 아들은 의사, 변호사, 사업가로 좋은 교육을 받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지만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아직 할아버지의 동화 한 편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또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비록 친할아버지라고 해도 유물을 대물려 간직할 자격이 없다고 내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작품과 유물' 얘기가 나온 건 시인이 동화작가 마해송 선생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바위나리와 아기별> 같은 작품은 나도 초등학생 때 읽은 기억이 난다. 부전자전 문학인으로는 마종기 시인과 비슷한 연배이자 친우 황동규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황동규 시인은 작가 황순원 선생의 장남이다). <아버지 마해송>(정우사, 2005)이란 책은 이번에 알게 됐는데, 품절이라 아쉽다.

 

 

장르 불문의 전방위 작가, 번역가로 활동중인 김정환 시인의 신작 시집 <거푸집 연주>(창비, 2013). 아주 오랜만에 창비시선으로 나온 시집인데, 시인의 한 마디도 "<순금의 기억> 이후 17년 만인가. 창비, 안녕? 대체로, promenade, 발표순을 따랐다."이다. <순금의 기억>(창비,1996)을 염두에 둔 것인데, 그렇게 적조했다 하더라도 김정환은 '창비 시인'이다. <창작과 비평>을 통해서 데뷔했을 뿐더러 첫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창비, 1982)도 창비에서 출간됐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이성복, 황지우 시집과 같이 읽던 김정환의 시집들도 기억이 난다. 아래는 이번 시집의 서시.

 

이제는 너를 향한 절규 아니라

이제는 목전의 전율의

획일적 이빨 아니라

이제는 울부짖는 환호하는

발산 아니라 웃는 죽음의 입 아니라 해방 아니라

너는 네가 아니라

내 고막에 묻은 작년 매미 울음의

전면적, 거울 아니라

나의 몸 드러낼 뿐 아니라, 연주가 작곡뿐 아니라

음악의 몸일 때

피아노를 치지 않고 피아노가 치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내 귀로 들어오지 않고 내 귀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너는 나의

연주다.

 

민주주의여.

 

'완전소중' 황병승 시인도 오랜만에 세번째 시집을 펴냈다. <여장남자 시코쿠>(문예중앙, 2005; 문학과지성사, 2012),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 2007)에 이어지는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 2013). 2000년대 들어서 가장 큰 찬반과 논란의 대상이 된(그는 '미래파 논쟁'의 중심이었다) 시인의 신작들이 기대된다. 시인의 말에는 이렇게 적었다.

 

어떤 밤에 우리는

연필의 검은 심을 모질게 깎고

이 고독한 밤을 바꿀 수만 있다면
이 고독한 밤을 바꿀 수만 있다면

서로의 얼굴을 백지 위에 갉작 갉작 그려 넣으며

납득이 가지 않는 페이지는 찢었다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 페이지'들로 채워진 시집이란 의미일까. 난해하다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그의 시들을 멀리 했던 독자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걸로도 읽을 수 있겠다.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고...

 

13.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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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박태균의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역사비평사, 2013). "2005년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펴내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박태균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현대사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사건들을 선정했다." 이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몰역사적 행태와 전도된 역사인식이 횡행하는 즈음이라 자연스레 손길이 가는 책이다.

 

 

두번째 책은 나간채의 <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한울, 2013). "광주항쟁 발발의 역사적 배경이 된 부마항쟁과 서울의 봄에서부터 시민의 힘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이룩했던 해방 광주의 자치공동체, 공수부대의 투입으로 좌절된 광주항쟁, 그리고 패배했던 항쟁을 부활시키고 오월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된 5월운동까지 치열했던 광주항쟁의 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세번째 책은 <살인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비드 그로스먼의 <전투의 심리학>(열린책들, 2013). "20년간 미 육군에서 복무한 예비역 중령인 데이브 그로스먼과 30년간 경찰 및 군 생활에 헌신한 로런 W. 크리스텐슨, 두 베테랑이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군인, 경찰이 경험한 수백 건의 실제 전투 사례를 수집하고 문헌 연구를 통해 체계화시킨 전투에 관한 대백과사전"이다. 네번째 책은 대니얼 드레즈너의 <국제정치이론과 좀비>(어젠다, 2013). 국제정치학 교재인데, '좀비'란 말이 붙으니 뭔가 읽어보고픈 책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책은 조엘 바칸의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알에이치코리아, 2013). '내 아이를 위협하는 나쁜 기업에 관한 보고서'가 부제인데, 저자는  "왜 거대 기업에게 아이들이 매력적인 소비자인지, 그들이 어떤 전략으로 아이들을 매수하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첨예하게 파고든다." 기업의 부도덕한 이윤추구를 고발했다는 전작 <기업의 경제학>(황금사자, 2010)에도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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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 한국현대사의 그때 오늘
박태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5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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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 끝나지 않은 5월운동
나간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5월
17,000원 → 17,000원(0%할인) / 마일리지 17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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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심리학-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의 심리와 생리
데이브 그로스먼 & 로런 W. 크리스텐슨 지음, 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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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이론과 좀비
대니얼 W. 드레즈너 지음, 유지연 옮김 / 어젠다 / 2013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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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관심도서의 하나는 저명한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2013)이다. 퓰리처상과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한 화제의 책.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2012)에 대한 관심을 잔뜩 북돋는 책이기도 하다(어디에 꽂혀 있는지 아직 못 찾고 있다). 책에 대한 리뷰는 중앙일보에 한 주 순연돼 실렸다...

 

 

 

중앙일보(13. 05. 25) '중세의 종말'을 알린 그 책 … 쾌락을 옹호하다

 

15세기 이탈리아를 다룬 책이라면 자연스레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된다. ‘근대의 탄생’이란 제목의 문구도 르네상스를 염두에 둔 표현이겠다. 하지만 책의 제목 『1417년, 근대의 탄생』(원제 The Swerve·일탈)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1417년’은 어떤 사건과 관련된 것일까.

 

1 1425년 문헌 수집가였던 포조 블라촐리니의 필사본 원고.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글을 옮겨 적은 것이다. 2 포조의 초상화. 그가 68세에 쓴 『운명의 성쇠에 대하여』에 실려 있다

힌트는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라는 부제에 담겨 있다. 문제의 ‘책 사냥꾼’, 포조 브라촐리니가 독일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필사본을 발견한 것이 1417년 겨울이었다.

희귀본 고서(古書)의 우연한 발견이야 책 사냥꾼에겐 기쁜 일이었겠지만, 단지 그만한 일로 ‘1417년’을 역사에 남을 만한 연도로 삼는 것은 과장이 아닐까. 하지만 그 책이 기원전 1세기에 쓰인 루크레티우스의 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시 세계사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문제도서였기 때문이다.

 

 

이 필사본의 발견 전후 과정을 추적한 저자는 “이 책의 발견이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가져온 출발점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대체 어떤 책인가. 지난해 국내 소개된『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2012)는 총 7400행에 달하는 운문 대작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나 오비디우스가 서사시를 써 내려간 형식으로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학파의 물리학·우주론·윤리학을 종합했다. 흔히 쾌락주의로 알려진, 헬레니즘 시기 중요한 철학 사조의 하나인 에피쿠로스학파의 적자가 바로 루크레티우스다.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쾌락주의를 재발견한 것이 왜 문제적인가. 바로 무신론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루크레티우스 자신은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가 믿는 신은 인간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신이었다. 그가 보기에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신경을 쓰거나, 여러 종교적 제의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상상하는 것은 천박한 신성 모독에 불과하다. 이러한 특이한 무신론은 자연스럽게 물질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들의 세계란 ‘사물의 씨앗’이라는 불변체가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결합했다가 다시 갈라지고 재결합하면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세계가 ‘파괴할 수 없는 물질로 구성된 사물들의 부단한 변형’으로 생성된 것이라면 신의 창조는 개입할 여지도 없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으며, 신의 섭리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사물은 그 구성 입자들의 일탈로 탄생하게 되며, 이 일탈은 무작위적이기에 자유의지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사후세계란 없다고 했다. 지상에서의 삶이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전부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 구세주께서 채찍질을 견뎌내시지 않았던가”라고 되물으며 채찍질을 정당화했던 중세인의 생각과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중세는 고통의 추구가 승리를 거둔 시대였다. 사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이 스스로에게 매질을 가했다. 구세주를 닮고 싶다면 그가 겪은 고통을 몸소 겪는 것 이상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필사가이자 고대 필사본 수집가였던 포조가 1000년이 넘게 망각 속에 잠들어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발견함으로써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일탈하는 계기를 얻는다.

저자가 보기에 다빈치·갈릴레오·베이컨·알베르티·미켈란젤로·라파엘로·몽테뉴·세르반테스의 작업을 포함하는 일련의 문화적 운동은 모두 생명을 찬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질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심과 육체의 요구에 대한 긍정이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었다면 르네상스는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을 가장 잘 체현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에피쿠로스에서 루크레티우스로 이어진 세계관의 끈이 15세기 초 한 책 사냥꾼에 의해 발견돼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 되고, 또 점차 널리 퍼지면서 근대 세계가 탄생하게 됐다는 게 이 책이 제시하는 근대 탄생의 서사다.

 

흥미를 끄는 것은 저자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란 책을 발견한 일도 지극히 우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학부시절 학년 말이면 여름 한철 읽을 책을 구하러 대학 구내 협동조합서점에 들르곤 했다는 그는 어느 날 에로틱한 표지에 끌려 영어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10센트에 구입한다. 그 우연한 발견과 독서가 결국 책 사냥꾼 포조 브라촐리니와 근대의 탄생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낳은 것이니 우연, 혹은 ‘일탈’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13. 05. 18.

 

 

P.S. <1417년, 근대의 탄생> 덕분에 그린블랫의 책들과 르네상스 관련서를 몇 권 주문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고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길사, 2003)는 눈에 띄지 않아 다시 주문했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 두 권도 더 얹었다. 책들은 언제나 가지를 치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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