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계간지는 <자음과모음>(여름호)이다. 어느새 20호여서(창간된 지 만 5년이 됐다는 얘기다) '20호 기념 특별좌담'을 싣고 있기도 하다. 얼추 일별하고는 있었지만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는 걸 좌담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좌담의 타이틀이 그래서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고 붙여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호 리뷰란에 강병융의 <알루미늄 오이>(뿌쉬낀하우스, 2013)에 대한 리뷰를 청탁받고 실었다. 빅토르 최 헌정소설인지라 아주 오랜만에 빅토르 최에 관한 자료도 보고 영화 <바늘>도 찾아보는 기회가 됐다.

 

 

 

자음과모음(13년 여름호) 최승자는 어떻게 빅토르 최가 되었나

 

강병융의 『알루미늄 오이』는 읽는 소설이 아니라 듣는 소설이다. 그것도 카세트 테이프로 A면과 B면을 차례로 듣고 중간에 히든 트랙도 듣고, 나중에는 작가 인터뷰를 보너스 트랙으로 듣는 풀코스의 청각적 소설(실제로 책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소설의 각 장 제목이 된 노래와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건 독자의 선택이 아니라 작가의 선택이고 권유이다. 러시아 가수 빅토르 최(소설에서는 ‘빅또르 최’)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소설’을 제안받고 그가 내린 결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1980년대 러시아의 대표적 로커로서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를 풍미했던 러시아 대중문화의 영웅이자 전설을 한국소설로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 “독자들의 몸 혹은 마음을 ‘아주아주아주’ 조금이나마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쓴다는 강병융은 환생의 모티브와 알루미늄 오이라는 상징을 전면에 내세웠다. 빅토르 최의 사후의 삶, 곧 죽은 뒤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는 빅토르 최를 조명하기 위한 방책이다.   

 


1990년 여름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키노의 인기는 정점에 다다라 있었다. 그해 그는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고 일본과 한국에서의 공연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28살의 빅토로 최는 당시 카자흐스탄 출신의 영화감독 누그마노프와 영화 <바늘>(1988)을 이미 찍은 상태였고 다시 그와의 새 영화 작업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공연과 녹음, 촬영 등의 일정에 치이던 그는 휴식을 위해 라트비아의 리가 인근 별장을 찾는다. 어느 날 낚시 도구를 챙겨 혼자 차를 몰고 나섰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로 즉사한다. 8월 15일 새벽의 일이다. 사고 정황과 관련하여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그의 일부 노래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며 당시 대중의 인기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아 있었다) 사고 원인은 빅토르 최의 졸음운전으로 발표된다. 여름이 아직 끝나기 전에 그의 여름은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끝났다.


빅토르 최의 죽음을 도입부로 삼은 강병융은 바로 이어서 같은 날 새벽 한국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아버지의 시점으로 기술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잠시 정신을 잃은 아내는 뭔가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버스)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충돌의 순간 밝은 빛과 함께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이 최승자이다. ‘승자’는 물론 ‘빅토르’와 같은 의미를 갖는 이름이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가 죽는 순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 최승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면, 소설의 귀결은 응당 주인공의 ‘빅토르 최-되기’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빅토르 최가 노래했던 러시아 무대에 서서 그의 대표곡 <혈액형>을 부르는 것!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승자가 러시아어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배우는 과정과 러시아에 가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작가의 솜씨는 이 두 과정에 대한 묘사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 따르면 소설은 ‘있음직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마치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쓰는 것’이라는 게 강병융의 소설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전적으로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만 구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빅토르 최의 환생으로 태어난 최승자’라는 설정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속하지만 최승자가 러시아 무대에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최소한 얼마간은 ‘있음직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은 현실과의 접점을 전적으로 상실한 판타지로 넘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구상단계에서 빅토르 최와 한국과의 접점을 고민한 듯한데, 그가 찾아낸 것은 ‘소외된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다. 단서는 빅토르 최 역시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으로서 러시아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았을 거라는 점과 학교생활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카자흐스탄에서 1962년에 태어난 빅토르 최는 가족과 함께 다섯 살 때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지만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미술학교에서 낮은 성적 때문에 퇴학당하고 이후에 다닌 기술전문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다. 하지만 보일러 수리공으로 일하면서도 빅토르 최는 록음악에 심취하여 곧 러시아를 깜짝 놀라게 할 노래들을 만들어낸다. 그룹 키노를 결성하고 데모 테이프로 입소문을 내다가 1982년엔 첫 앨범을 발표한다. 스무 살의 일이다.

 


당시 번지던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과 함께 곧 빅토르 최는 러시아 대중문화의 살아 있는 신화가 된다. 사회주의의 개혁이냐 몰락이냐, 라는 전환기에 놓여 있던 러시아 사회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고 빅토르 최는 그런 열망을 담담히 노래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쇳덩어리에는 열매가 나지 않는다”는 충고에 맞서 알루미늄 오이를 심었다. 그리고 그 오이는 열매를 맺었다! 불의의 죽음 이후에도 빅토르 최라는 이름은 그가 남긴 노래들과 함께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를 모델로 한 최승자의 성장기 역시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삶이다. 그에겐 종이학을 잘 만드는 ‘전’만이 유일한 친구다. 둘은 ‘찐따’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악마들’에게 얻어맞는다.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었던 승자에게 음악은 예외였다. 음악만은 그냥 그에게로 와서 친구가 됐다. 마치 화가가 꿈이었던 빅토르 최가 친구 막심이 들려준 블랙 사바스의 노래 <오키드>를 듣고서 음악에 감전된 것처럼, 미술을 좋아하던 승자도 어느 날부터 음악을 듣더니 아예 라디오를 끼고 산다. 그는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벌써 일 년>을 듣고 즐겨 불렀다. 브라운아이즈의 노래는 물론 작가의 고백대로 시대성의 표지다.


음악에서만큼은 재능을 보인 승자가 러시아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그를 괴롭히던 악마들(패거리)이 2002년 월드컵 때 ‘너 같은 새끼’가 한국을 응원하면 재수가 없다며 ‘러시아 같은 나라’ 노래나 부르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러시아말로 노래 못 부르면 너 죽인다! 쏼라 쏼라! 시불스키! 이렇게 알았어?”). 다행스럽게도 승자에겐 ‘구세주’가 있었다. 사촌누나인 승희가 러시아어 전공자여서 그에게 빅토르 최의 노래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혈액형>을 처음 들은 승자는 빅토르 최의 노래에 무섭게 몰입한다.  


승희가 승자를 빅토르 최의 노래로 이끌어준다면, 빅토르 최와 직접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은 올가의 몫이다. 작가는 올가를 빅토르 최의 열성팬으로 그가 죽자 추모하는 의미로 3년간 노숙생활을 한 인물로 설정했다. 올가는 빅토르 최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도 관심을 갖게 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경연대회에 입상해 한국에도 다녀간다. 2002년의 일이다. 빅토르 최와 윤도현 밴드의 음반을 사기 위해 들른 신촌의 음반 숍에서 올가는 블랙 사바스의 <오키드>가 흐르는 가운데 한국 점원과 빅토르 최에 관한 애기를 나누고, 월드컵 응원 열기가 한창인 도심에서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빅토르 최의 목소리를 듣는다. 올가는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만나게 된 승희를 통해 그 신촌의 점원이 승희였고 그녀가 들은 빅토르 최 목소리의 주인공이 승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작가가 소설 한복판에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가장 ‘있음직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할까. 하지만 이 마법적 순간은 이후의 모든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만능의 순간이기도 하다.

 

 

승희는 모스크바에 가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올가와 재회하고, 친구 전과 어머니를 잃은 승자도 2010년 승희의 초청을 받아 러시아로 간다. 8월에 빅토르 최 사망 20주기 페스티벌이 예정돼 있어서다. 승자의 노래를 듣고서 러시아 사람들은 “브라보, 빅따르 쪼이!”라며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승자는 모스크바의 명소인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최의 벽’에도 가보고, 올가의 소개로 빅토르 최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누그마노프와도 만난다. 승자의 목소리에 반한 누그마노프는 승자를 빅토르 최에 관한 자신의 기록영화에도 출연시키며, 승자는 결국 사망 20주년 추모 공연의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다. 최승자의 ‘빅토르 최-되기’가 이렇게 완결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아니 『알루미늄 오이』의 메인 트랙은 그렇게 일단락된다(책의 부록으로는 작가 인터뷰와 함께 빅토르 최의 노래 가사 원문이 작가의 번역과 함께 수록됐다).


‘빅토르 최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책으로 『알루미늄 오이』보다 조금 앞서 이대우의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뿌쉬낀하우스, 2012)이 출간된 바 있다. 그의 짧은 인생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며, 일종의 헌정 소설로서 『알루미늄 오이』는 그와 짝이 되는 책이다. 헌정 소설도 소설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절반은 ‘헌정’에 의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인생을 살면서 안 되는 줄 알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안 되는 줄 알면서 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는 게 작가의 고백이다. 그것이 소설에서 승자와 올가가 땅에 심는 ‘알루미늄 오이’의 상징적 의미이자 동시에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 소설로서는 너무 추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이것은 음악이 갖는 추상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빅토르 최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기억을 다시 상기시켜준 점에서는 작가의 노고가 결코 무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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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지난주말보다는 무더위에 적응이 됐지만, 그래도 원고를 쓰기에는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니어서 잠시 머리를 식혀보려고 한다. 세 명의 저자는 미리 골라두었는데, 인터뷰하는 기분으로 한 명씩 거명해본다.

 

 

 

먼저,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 "네 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일본인 최초로 미국예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작가"다. 예전에 <치인의 사랑>이라고 번역되던 작품이 이번에 <미친 사랑>(시공사, 2013)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역자는 김석희 선생.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먼저 나온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과 함께 그의 문학을 대표하게 됐다. 소개는 이렇다.

이국적인 미모를 지닌 열다섯 소녀 나오미를 집으로 들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내로 키우려 했던 주인공이 결국 그녀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다니자키의 문학적 주제인 '여체에 대한 숭배'와 '마조히즘과 결합된 관능적 욕망'을 가장 잘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이다.  

탐미적인 일본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거슬러 올라가면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이 원조인지도). 혹은 우리가 '일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상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계였는지도 모르겠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또 다른 대표작은 <세설>(열린책들, 2007)이다. 그리고 유명한 산문집으로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가 있다. 기억엔 <미친 사랑>(<치인의 사랑>)은 예전에 현대문학전집에서 처음 제목을 본 듯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그늘에 대하여>부터다. 대표작들이 새롭게 번역된 만큼 올여름엔 '독보적인 일본 작가'와 만나봐도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미국 작가 제임스 설터다. <어젯밤>(마음산책, 2010)에 이어서 <가벼운 나날>(마음산책, 2013)이 번역됐다(표지에 일관성이 있어서 맘에 든다). 설터는 1925년생으로 아직 생존 작가.

 

 

<가벼운 나날>은 1975년작으로 브렌던 길 같은 작가가 “생존 작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고 평한 바 있다고. 작가들이 칭송하는 작가의 소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일독해볼 만하다.

네드라와 비리 부부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이른바 '안정된' 결혼, '단란한' 가족의 빛과 그늘을 다룬다. 전원주택에서 두 자녀와 함께 부족할 것 없이 누리는 일상, 그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허무가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양면'이 아닌 '다면'을 지닌 것이 결혼이자 인생임을 말하며, 그래서 요약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세번째 저자는 작가가 아니라 프랑스의 사회학자, 아니 인류학자다. 마르셀 모스(1872-1950). 그가 삼촌인 에밀 뒤르켐과 같인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서울대출판문화원, 2013)이 번역돼 나왔다. <증여론> 외의 저작으론 처음 소개된 게 아닌가 싶다. 요지는 이렇다고.

기존의 이론들은 분류체계를 인간의 정신이 저절로, 그리고 자연적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설명하는 등 주로 개인의 정신 활동의 산물로 설명했다. 그것들은 표상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정신이 작동하는 원리를 규명하기는 했으나 분류 개념들이 형성되고 결합되는 방식들과 변화의 양상 및 과정들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뒤르케임과 모스는 기존의 인식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류체계라는 집단표상이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작용하는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을 추적해 봄으로써, 분류의 기원과 원시적 분류 형태들의 중요성을 논리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고찰해 보려 한다.

학술서에 속하는 책이지만 저자들의 명망 때문에라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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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처음 소개되는 저자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이주의 발견'으로 묶어놓는다('이주의 뉴페이스'라고 할까. 카테고리는 '로쟈의 전투'다). 지난주에는 생각만 품고 있다가 미처 실행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시 생각난 김에 바로 적는다. 물론 눈길을 끄는 책이 있어서다. 카렌 호의 <호모 인베스투스>(이매진, 2013).

 

 

저자나 제목(원제)가 드러나지 않아서, 좀 궁리를 했는데 외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조합해본 'Karen Ho'가 저자의 이름이라서. '미네소타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라고만 소개된다.

 

 

<호모 인베스투스>라는 제목보다는 '투자하는 인간, 신자유주의와 월스트리트의 인류학'라는 부제, 특히 '월스트리트의 인류학'이란 말이 책의 내용을 잘 집약해준다. 소개는 이렇다.

천문학적인 연봉과 말쑥한 정장, 주당 110시간 고된 노동과 해고 뒤 15분 내 책상 빼기. <호모 인베스투스>는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 직원들의 이런 모순된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해 세계 금융 시장의 호황과 불황이 생산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캐런 호는 1997년부터 3년 동안 정장 한 벌로 지하철 에프선을 타고 다니며 인류학의 불모지인 투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화이트칼라 착취 공장과 투자 은행 직원의 채용과 해고, 노동 조건과 보수 체계, 위계적인 공간과 옷차림 등을 분석했고, 정리 해고를 이윤 증대와 동일시하는 주주 가치가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역사와 이 과정에 월스트리트가 기여한 방식을 정리했다.

 

원제는 청산하다는 뜻의 'Liquidated'. 번역본이 제목으로 '호모 인베스투스'란 신조어를 고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엔 'Homo investus'를 검색했다). 역자는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유강은 씨.(알라딘엔 '유강'이라고 오기됐다). 

 

 

 

한편, '월스트리로 간 인류학자'라는 설정 때문에 떠올리게 된 책은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김영사, 2009)이다. 도시 빈곤층에 대한 연구를 위해 현장조사를 하다가 갱단에까지 들어가게 된 사회학자의 경험담을 그리고 있는 책.  

수디르 벤카테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실상 주류 사회로부터 분리된 책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최하층 도시 거주지역의 축도인 시카고의 공영 주택단지로 들어갔다. 그후 10년 동안 마약판매 갱단과 함께, 매일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연구를 한다.

이름으로 봐서는 미국사회 비주류 학자가 학계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몸으로 때우는 거' 아닌가란 인상도 들게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흥미로운 인류학/사회학 보고서를 읽을 수 있다면 독자로선 나쁠게 없는 일이다. 벤카테시의 책 가운데는 도시 빈민의 지하경제를 다룬 것도 눈길을 끈다.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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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아직 손에 들지 못했지만 짐 홀트의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21세기북스, 2013)로 골랐다. 제목이 귀에 익어서 보니 올초에 '세계의 책' 카테고리에서 한번 언급했던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6111661). 궁금했던 책을 예상보다 빨리 읽을 수 있게 돼 반갑다.

 

 

두번째 책은 오랜만에 나온 레비나스의 책 <신, 죽음 그리고 시간>(그린비, 2013)이다. '레비나스 선집'의 첫 권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몇 권 더 나올 모양이다. "대학교수로서 마지막으로 행한 두 개의 강의(1975~1976)를, 그의 제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롤랑이 책으로 엮었다."

 

 

세번째 책은 같은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다. <20세기 서양철학사의 흐름>(이제이북스, 2006)을 통해 처음 소개됐던 저자. 소개에는 1969년 고등사범에서 데리다, 푸코 등과 수학한 걸로 나오는데, 연배로는 사제지간이라고 해야겠다. 인종주의에 관한 책들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데이비드 고티에의 <리바이어던의 논리>(아카넷, 2013). '토머스 홉스의 도덕이론과 정치이론'이 부제다. 말 그대로 <리바이어던>에 대한 연구서이자 해설서. 고티에는 아주 오래전 <합의도덕론>(철학과현실사, 1993)이란 책으로 소개됐었다. 대학원 때 구입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20년 전이다! 마지막 책은 권명아 교수의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부제여서 눈길을 끈다. "풍기문란 연구는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작업"이라고 저자는 적었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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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 죽음 그리고 시간
에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자크 롤랑 엮음, 김도형 외 옮김 / 그린비 / 2013년 5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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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의 역사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하정희 옮김 / 예지(Wisdom) / 2013년 6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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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바이어던의 논리- 토머스 홉스의 도덕이론과 정치이론
데이비드 고티에 지음, 박완규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24,000원 → 22,800원(5%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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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들에 대한 압박(과부하)에 시달리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페이퍼를 적는다. 뭔가 '주제'가 있는 것 같은 제목이지만, 실상은 건국대 몸문화연구소라는 곳에서 연이어 펴낸 세 권의 책을 나열했을 뿐이다.

 

 

<폭력의 얼굴들>(쿠북, 2013), <포르노 이슈>(그린비, 2013), <권태>(자음과모음, 2013)가 그것이다. '폭력'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폭력의 얼굴들>을 구하고 나니 나머지 책들도 자동적으로 관심도서가 돼버렸다. 대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은 보통 특정 주제의 학술대회를 열고 거기서 발표된 논문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들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특이한 것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출간됐다는 점. 무슨 학술총서 개념이 아닌 것이다.

 

<폭력의 얼굴들>을 펴낸 '쿠북'은 건국대출판부의 자매 브랜드이기에 이상할 게 없지만(이 연구소의 책은 대부분 쿠북에서 나왔다), <포르노 이슈>나 <권태>는 일반 출판사에서 나왔고 그건 최소한의 대중성은 자신한다는 뜻도 된다(소위 '먹힐 수 있다'고 본 것이겠다). 실제로 <포르노 이슈>나 <권태>는 목차만 보더라도 <폭력의 얼굴들>보다는 좀더 구미가 당긴다.

 

 

'권태'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따로 생각나는 인문서가 별로 없지만(물론 소설들은 좀 된다) '포르노' 혹은 '포르노그라피'는 한때 유행을 타는 듯했던 주제였다.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책세상, 1996),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동문선, 1996), 캐서린 매키넌의 <포르노에 도전한다>(개마고원, 1997) 등이 나오던 때다.

 

 

이후 국내 학자들의 다소간 학술적인 책들도 보태졌는데, 윤혜준의 <포르노에도 텍스트가 있는가>(나남, 2001), 박종성의 <포르노는 없다>(인간사랑, 2003), 연동원의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연경문화사, 2006) 등이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포르노에 관한 책들을 사람들이 포르노만큼 즐기는 건 아니어서 크게 이슈화 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프로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부제로 한 <포르노 이슈>는 포르노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의 '발제문' 역할은 해줄 수 있을 듯하다...

 

13.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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