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주 전쯤 나온 책에 휴 엘더시 윌리엄스의 <원소의 세계사>(알에이치코리아, 2013)가 있다. '주기율표에 숨겨진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비밀들'이 부제. 그리고 원제 자체가 <주기율표>다. 제목과 주제 때문에 떠올린 책이 두 권 더 있다. 샘 킨의 <사라진 스푼>(해나무, 2011)과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돌베개, 2007). 원소 이야기로서 나란히 읽어볼 만한 책들, 이라고 나머지 두 권을 찾았으나 책이사를 준비중이라 어림없는 상황이다. '사라진 주기율표'라고 할까.

 

 

휴 앨더시 윌리엄스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과학 칼럼니스트로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한다. '교양과학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준다고 할까. 소개는 이렇다.

주기율표를 중심으로 한 원소들의 숨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들려준다. 그러나 책의 어디에서도 주기율표를 찾아볼 수 없다. 휴 앨더시 윌리엄스는 “원소들을 주기율표에 나오는 순서대로 열거”하거나 “각 원소의 성질과 용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다른 책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즉 이 책은 원소와 화학을 다루고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 화학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휴 앨더시 윌리엄스는 원소에 얽힌 거의 모든 역사와 비밀을 집요하고 유쾌하게 파헤친다. 원소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연 상태에서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누가 어떻게 이것들에 이름을 부여했는지, 그리고 일상 속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친근하고 쉬운 문장으로 들려준다.

빌 브라이슨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원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찾아보니 저자의 신작은 <해부학: 인체의 문화사>다. 이 또한 번역되면 좋겠다.

 

 

원서의 표지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가장 오른쪽의 소프트카바가 맘에 든다. 번역되기 전이라도 책은 구해놓아야겠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도 영어본은 여러 종이 출간돼 있다. 지금 찾은 걸로는 펭귄판이 맘에 드는데, 번역본을 못 찾으면 책을 다시 구입하든지 해야겠다. 좋은 책은 두세 권 갖고 있어도 손해보는 게 아니니까.   

 

기억에, 주기율표를 외우던 시절이 중2 때인가 그런데, 그때 이런 책들이 있었다면 원소들의 세계에 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었을 듯싶다. 기껏해야 주기율표 노래에 따라 순서와 이름을 외우는 게 고작이었으니...

 

13. 11. 15.

 

 

 

P.S. 프리모 레비의 모든 책을 모아놓고 있지만 한동안 뜸하게 읽었다. 최근작 <멍키스패너>(돌베개, 2013)도 나온 김에 다시 책상 가까이에 갖다놓아야겠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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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은 맥스웰 베넷과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이게 한 사람 이름이다)의 <신경과학의 철학>(사이언스북스, 2013)이다. '신경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석'이 부제. 제목과 부제 모두 책의 난이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게다가 분량도 만만찮다. 이 주제의 세미나수업 교재 정도라고 할까.

 

 

그렇더라도 처치랜드의 <물질과 의식>(서광사, 1992)이나 최근에 <몸의 인지과학>(김영사, 2013)으로 다시 나온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옥토, 1997) 등에 관심을 가졌던 독자라면 도전해봄직하다. 원서는 2003년에 나왔다.

 

 

 

공저자 중 한 명인 P. M. S. 해커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권위자로 국내엔 <비트겐슈타인>(궁리, 2001)이 먼저 소개된 바 있다. 맥스웰 베넷은 뇌과학 전공이면서 생리학 교수. 두 저자의 만남이 곧 '철학과 신경과학의 만남'이기도 한데, 두 사람은 <신경과학의 철학>에 뒤이어 <인지 신경과학의 역사>(2008)를 같이 쓰기도 했다. 아마도 이 분야 전공자들에겐 필독서일 듯싶다.

 

 

다소 전문적인 책이지만, 신경과학이나 인지과학의 철학적 기초에 관심이 있는 독자, 혹은 대니얼 데닛이나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의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내친 걸음에 거쳐가볼 수도 있겠다. 뇌가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고투가 필요하다... 

 

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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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사회과학서에서 고른다. 한길그레이트북스로 나온 진 코헨과 앤드루 아라토의 <시민사회와 정치이론>(한길사, 2013). 분량이 방대해 두 권으로 분권돼 나왔다.

 

 

저자나 책 모두 내겐 생소한데, 이전에 소개된 적이 없으니 당연해 보인다. 사회학자 박형신 교수가 공역하고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 포함된 걸로 보아 '고전'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원서는 '현대 독일사회사상 연구' 총서의 하나로, 하버마스의 책들이 포함돼 있던 시리즈다(<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이나 <탈형이상학적 사유> 등의 원서를 이 시리즈에서 구한 기억이 난다). 책소개도 간단하게만 올라와 있다.

시민사회 이론가 진 L. 코헨과 앤드루 아라토는 이 책에서 서구의 민주주의가 더 민주화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과거 실패한 서구 자본주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바로 코헨과 아라토가 말하는 ‘복지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성찰적 지속’이라는 관념의 바탕에 깔린 질문이며, 이 책에서 그들은 ‘자기제한적 급진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앤드루 아라토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니 <프랑크푸르트학파 독본>, <네오마르크스주의에서 민주주의 이론으로>, <시민사회, 헌법, 정당성> 등이 있다. 어떤 이론적 배경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하버마스에 관한 연구서도 갖고 있다).

 

 

아무려나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물음 자체는 우리에게도 매우 유효한 물음이므로, 시간이 남으면 읽어볼 만한 '고전'으로 치부할 수는 없겠다. 당장의 사유의 길을 모색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어볼 만하다...

 

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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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이 또 나왔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자음과모음, 2013). 일기가 아니라고 한 걸 '일기'라고 부른다는 게 역설적이긴 하지만, 여하튼 저명한 사회학자의 일기라는 점에서 최근에 출간된 손택의 일기와 노트, <다시 태어나다>(이후, 2013)도 떠올리게 해준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는 올해 출간된 바우만의 일곱 번째 책이고, <부수적 피해>(민음사, 2013)가 나온 지 한달도 되지 않았다. 가히 기록적이라 할 만한데, 내가 알기론 내년에도 네댓 권 이상은 출간될 예정이다. 1925년생으로 생물학적 나이로는 구순에 육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근간 리스트가 올라와 있을 정도로 사유와 저술은 현역이다. 놀라움을 넘어서 어메이징하다고 해야 할까(몇년 전 아내와 사별한 이후에도 그 저술의 리듬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번에 나온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는 바로 최근의 일기, 노년의 일기다. 2010년 9월부터 2011년 3월까지, 6개월 가량의 기록을 묶었다. 어떤 기록인가.

일기라고 해서 시시콜콜 ‘오늘의 일’에 대해 기록한 것이 아니다. 바우만이 ‘오늘의 사유’에 대해 기록한 책으로, 그의 전신과도 같다. 매일매일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바우만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경제침체에 따른 집시 인권 문제, 9.11테러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부수적 피해, 테러리즘에 대한 고찰, 유고슬라비아 내전 범죄의 군상 등 세계 정치 이슈부터 미국 대학생 취업대란을 초래한 국가의 역할 진단, 빈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로부터의 불평등 같은 경제 이슈 그리고 인터넷 익명성의 무책임, 페이스북의 영향력, 다문화주의의 선택성 등 사회문화적인 이슈를 다루는 이 일기에서 바우만의 사상을 모두 볼 수 있다.

일기의 형식을 빌린 사색과 통찰의 기록이라고 해야 할 텐데, 특별한 문턱이 있을 리 없으므로 바우만의 사유에 입문하는 책으로 삼아도 좋겠다. 나는 어제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바우만의 일기에서 손택의 일기를 떠올린 건 주문했던 손택의 원서들을 어제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편집하고 있는 그녀의 일기는 세 권으로 묶일 예정인데, 영어판도 2권까지 나온 상태다. 한국어판이 곧 따라가면 좋겠다. 1권에 해당하는 <다시 태어나다>는 1947년 14세 때의 기록부터 담고 있다. 우리로 치면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나이인데, 소녀 손택은 당차게도 자기가 믿는 바를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믿는다

1. 죽음 이후에는 어떤 개인적인 신도, 삶도 없다고.

2.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자유, 즉 정직이라고.

3.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른 점은 지성이라고.

4. 행동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은 궁극적으로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 불행하게 하는가라고.

5. 누가 됐든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6번과 7번 항목 없음)

8. 여기에 더해, 나는 (7번뿐만 아니라) 이상적 국가는 정부가 공공시설과 은행, 광산을 통제하고 교통, 예술장려금, 생활하기에 충분한 최소한의 임금,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지원이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여야 한다고 믿는다. 임신한 여성은 태어날 아이가 적출이든 사생아이든 구분하지 않고 국가가 돌봐 줘야 한다.

첫번째 항목에서 '개인적인 신'은 흔히 '인격신'으로 번역되는 'personal god'을 옮긴 것이다. 세번째 항목에서 사람들 사이에는 지성의 차이만 있을 뿐이란 믿음도 눈길을 끄는데, 나머지 차원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고로 우리가 계발할 수 있는 건 각자의 지성뿐이다). 대체로 그녀의 이 소녀시절 믿음은 일생에 걸쳐 관철된 듯싶다. 그런 점에서도 한 지성의 탄생 장면이라고 부름직하다.  

 

바우만의 노년의 일기와 손택의 젊은 시절 일기가 내겐 만추의 일용할 양식이다...

 

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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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안내다. 출판도시 문화재단에서는 지난 2일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김민웅 교수와 함께 하는 토요 북콘서트'를 진행중인데, 이번주 토요일(16일)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됐다. 장소는 파주출판도시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라운지이며, 참가신청은 홈피를 통해서 하실 수 있다(www.pajubookcity.org). 행사는 짤막한 '초대손님 이야기'와 대담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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