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으로 두 작가에 대해 적는다. 맥스 비어봄과 앰브로즈 비어스. 이름만 들어서는 둘다 초면인데(실제로 맥스 비어봄에 대해선 처음 알았다) 맥스 비어봄의 <일곱 명의 남자>(아모르문디, 2013)이 이번에 나왔고, 앰브로즈 비어스의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아모르문디, 2013)이 지난 여름에 나왔다. 열띠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총서의 두번째, 세번째 책이다(<루키아노스의 진실한 이야기>가 첫 책이었다).

 

 

 

맥스 비어봄은 처음 소개됐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행복한 위선자>(바람, 2007)란 먼저 나왔었다(현재는 절판). 어떤 작가인가. "1872년에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의 머튼칼리지 재학시절에 재기 넘치는 수필들을 유명한 문예지「옐로북」에 발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898년에는 버나드 쇼의 뒤를 이어 「새터데이 리뷰」의 연극평론을 맡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10년 여배우 플로렌스 칸과 결혼하여 이탈리아의 라팔로에 정착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 귀국한 기간을 빼고는 1956년 운명할 때까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버나드 쇼와의 관계가 눈에 띄는데, "세기말 영국 문단을 풍미했던 위트와 풍자의 대가"라는 평판은 그와 연관시켜보면 이해가 간다. 이번에 나온 <일곱 명의 남자>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일곱 명의 남자>는 비어봄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작가들이 사랑한 작가이자 그 누구보다도 작가들을 깊이 이해한 작가인 비어봄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일종의 회고록 또는 에세이의 형식을 취한 단편 소설 6편을 모아 놓은 이 작품집은, 1919년 5편이 실린 <일곱 명의 남자>로 발표되었다가 1950년 1편이 추가되어 <일곱 명의 남자와 다른 두 남자>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이 6편의 작품을 모두 실었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재사(才士)의 작품이라 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읽고 나면 '맥스 비어봄'이란 이름이 입에 익을지도 모르겠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어떤 작가인가. "1842년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북 전쟁에 참전한 뒤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기자와 비평가로 활동했다.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낀 그는 1913년에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되었으며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안,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으나, 주로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 50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다. 특히 1906년에 재출간된 단어 풍자 사전 <악마의 사전>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그 <악마의 사전>(이름아침, 2005)이 나왔을 때 구입했던 터라(번역본만 몇 종이 나왔었다) 구면인 작가인데, 그 이상은 아는 게 없었다.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집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이 '작가'로서 새롭게 보게 해주었는데, 번역서로는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더 스타일, 2013; 생각의나무, 2010)이 더 출간돼 있다. "180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쓴 17편의 환상소설"이라고.  

 

소위 메이저 작가들에는 속하지 않지만,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작가의 작품집이 소개된 거라고 보면 되겠다...

 

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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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학동네가 창사 이십 주년을 맞는다.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겨울호)에는 이를 기념하여 '문학동네와 나'와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이란 특집이 마련됐는데,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의 한 꼭지를 맡아 쓴 글을 옮겨놓는다. 문학동네 산문집 몇권을 떠올리고 그 소감을 적었다.

 

 

 

문학동네(13년 겨울호) 문학동네 산문집을 떠올리다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이 분명 적지 않으련만 막상 한두 권의 책을 꼽으려고 하니 처음엔 얼른 떠오르는 게 없었다.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뭔가 대표할 만한 책을 속으로 찾았던 것인데, 결국 떠올린 건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비롯한 몇 권의 산문집이다. 가령 김화영의 『바람을 담는 집』과 이성복의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까지 거기에 속한다. 명백히 오랜만에 상기한 일이지만, 나는 이 책들을 여러 차례, 여러 권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바 있다. 언제든 다시 구입할 용의가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도 한번 더 구입했다. 좋은 책이 대개 그렇듯이 이번에도 제값을 치르지 않고 뭔가 거저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은 『풍경과 상처』였다. 이 ‘기행산문집’에 실린 글들을 나는 대부분 다른 지면에서 먼저 읽었다. 지금 기억으론 『현대시세계』 같은 잡지에 연재됐던 글들도 포함됐기에. 첫머리에 실린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조차도 한 작품집의 발문 격으로 실린 걸로 먼저 읽었다. 확인이 어려워 기억이 말해주는 바대로만 적자면 ‘내 마음속 호롱불 한 점’ 비슷한 제목이었다. 그게 어느 해 가을인지, 겨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지방 도시의 서점에서 책을 손에 들고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집으로 향하는 버스 칸에서 읽은 기억이 또렷하다. 마치 호롱불을 켜놓은 듯 환하게 상기되는 순간이다.


지금 판권면을 보니 저자는 1993년 가을에 서문을 적었고, 책은 1994년 1월에 나왔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거의 첫 책이 아닐까. 혹 출간으로는 첫 책이 아니더라도 분명 내가 구입한 걸로는 첫 책임에 틀림없다. 진작부터 김훈의 애독자였으니 책은 나오자마자 구입했을 터이다. 그리고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로 시작하는 글을 다시 읽었다. 나는 아예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어떤 용도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추 이십 년 전이니 기억이 흐릿한 건 이해가 되고 용서도 된다. 맘에 드는 시들도 복사해서 다녔던 걸 고려하면 별다른 용도는 없었을 것이다. 때론 그렇게 넣고 다니던 글들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읽히기도 했던 듯싶다. 좋지 않느냐고. 아, 너무도 오래전 일이다. 이십 년은 청년이 중년으로 늙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다시 구한 『풍경과 상처』는 2009년에 나온 개정판이다. 나는 개정판으로도 두어 번 구입했던 듯싶다. 저자는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는 내가 경배하는 만큼 자신의 문장을 경배하지 않는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는 고백의 뒷얘기를 이젠 들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기사를 쓰지 않게 된 것이 에세이를 그만 쓰게 된 것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짐작이다). 때로 전설은 그 자신이 전설임을 알지 못한다.

 

 


『바람을 담는 집』도 정말 오랜만에 떠올린 책이다. 책은 1996년 여름에 나왔다. 저자의 책은 여러 번역서들과 함께 『행복의 충격』 『프랑스문학 산책』 같은 걸 읽어둔 터였다. 지금 다시 펴보니 다양한 제재의 글들을 모은 이 산문집에서 특별히 어떤 대목에 꽂혔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지방에 있던 어떤 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강력하게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이도 나에게 호응했던 듯싶다. 돌이켜보면 저자의 번역보다도 산문이나 평론을 나는 더 좋아했다. 문학동네에서 ‘김화영 문학선’의 다른 책이 나오기 전이라 독서는 다른 곳에서 나온 『한눈팔기와 글쓰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적어도 산문집이라면 나는 ‘김화영의 모든 책’을 읽는다. ‘김훈의 모든 책’을 읽듯이.


『바람을 담는 집』을 오랜만에 뒤적이며 무엇이 나를 잡아끌었던가 생각해본다.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중학교 시절 이래 나는 용돈 중 가장 많은 몫을 책을 사는 데 써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책은 나의 삶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나 역시 그래 왔던 것이니, 마치 내가 쓴 책처럼 읽었으리라. 더불어 저자의 바람은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저자가 “나는 가끔 책이 없는 곳에 있을 때 기이한 해방감, 홀가분한 자유를 맛본다”고 적을 때도 완전 공감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만 하더라도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통로만을 제외하곤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책에 파묻히다’란 말이 언제부턴가 비유도 과장도 아니게 됐다. 저자의 표현으론 ‘책의 요새’고 ‘책의 감옥’이다. 분명 책이 없다면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나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책이 없는 방’을 꿈꿀 때가 있다. 책으로 가득찬 방과 책이 없는 텅 빈 방. 『바람을 담는 집』 이후로 내가 마음에 담는 집이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는 2001년에 나온 책이다. 이성복과 문학동네는 바로 연상하기 어려운 결합인데, 그의 산문집도 역시 문학동네에서 나온 게 됐다. 사실 책은 도서출판 살림에서 나온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과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이성복 문학앨범』에 실렸던 글들을 다시 묶고 거기에다 이후에 발표한 글들을 추가한 것이다. 추가된 글로 대표적인 게 바로 표제글로, 나는 책으로 나오기 전에 발표지면에서 읽었다. 역시나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녔고. 아니 그 정도로 그친 게 아니고 학부 일학년 문학개설 시간에 나눠주고 읽히기까지 했다. 그것도 러시아문학 전공 학생들에게. 지금이라면 그런 ‘열성’이 뭔가 과장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조금 젊었던 탓인지 개의치 않았다. 나눠준 다음에 일장 강의까지 한 것은 물론이다.


시인은 무엇을 말했던가. 아니 무엇을 말할 수 없었던가. 어느 비가 오던 날 주차했던 창유리 안쪽에 비에 젖어 들러붙은 석류 꽃잎을 바라본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시 시동을 걸면서는 와이퍼를 몇 번 움직여서 길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그날 그때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비에 젖은 그 작은 석류 꽃잎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인의 고백이다. 짐짓 고통의 고백이다. 그는 “그날 내 차의 창유리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가 한순간 와이퍼의 거센 몸짓에 휩쓸려나간 바알간 석류 꽃잎을 생각해”보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류의 철학 정신이라면, 이성복의 시 정신은 대상의 영역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물과 그 이미지를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그 자체로 진술한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날 비에 젖은 석류 꽃잎이 던지는 시각 언어는 이해 가능한 청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할 것이다.” 흠, 그런 불가능성에 대해 열띠게 강의했던가. 문학에 대해서 제대로 강의할 수 없는 강사의 무능력을 말이다.


문학동네 창립 이십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돼 짤막한 연설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적어나가려고 했지만, 어렴풋한 기억의 언저리에서 몇 권의 책을 끄집어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내가 받은 감동과 내가 느낀 공감의 극히 일부밖에 말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유감으로 끝내는 건 멋쩍기에 내게 ‘문학동네’가 떠올려주는 이미지를 끝으로 보탠다. 아마도 1996년쯤일 듯한데, 나는 두 동생과 같이 거주할 전셋집을 여러 곳 보러 다녔다. 비온 날도 있었던 걸로 보아 여름이었지 싶은데, 벼룩시장에 올라온 광고들에 뜬 전화번호를 통해 몇 집 찾아보다가 결국 마땅한 집을 고르게 됐다. 산동네 빌라 삼층이었고, 방이 세 칸짜리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집이 문학동네와 무슨 관계가 있나? 집을 보러간 날 내가 쓰게 될 큰방의 이전 입주자는 국문학 전공의 여학생이었는데, 놀랍게도 책장에 계간 『문학동네』가 창간호부터 쭉 꽂혀 있었다. 나대로는 당시에도 꽤 많은 책을 갖고 있는 편이었지만 계간지는 드문드문 구입했기에 아연 긴장할 만한 장면이었다. 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던 다른 계간지들 대신에 『문학동네』가 눈에 띄게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세상이 바뀌었구나’라고 느꼈다면 과장일까. 오늘의 문학동네를 생각하면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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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은 신경진의 <고찰명: 중국 도시 이야기>(문학동네, 2013)이다. 최근 이중톈의 신간 <이중톈 중국사>(글항아리, 2013)의 1권이 나오기도 해서 다시 검색하다가 그의 <독성기>(에버리치홀딩스, 2010)를 주문할까 말까 망설인 터였다. 이중톈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는데, 아마도 유일하게 빠진 게 <독성기>이다. 그의 '중국 도시 읽기'다. <중국 도시, 중국 사람>(풀빛, 2002)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는, 이중톈의 책으론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것이기도 하다.

 

 

<독성기>에서 이중톈은 "동서남북을 대표할 만한 도시(베이징은 북, 상하이는 동, 샤먼, 광저우, 선전은 남, 청두는 서, 우한은 중국의 중심), 성·시·탄·도·부·진·특구 등 중국 도시의 성격(베이징성, 광저우시, 상하이탄, 샤먼도, 청두부, 우한 삼진, 선전 특구), 그리고 독특하고 기발한 문화를 가진 가장 특색 있는 7개 도시를 선정"해서 다룬다. 아무래도 <독성기>와 비교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고찰명>은 어떤가. 소개는 이렇다.

중국의 25개 도시를 3장으로 나누어,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1장 ‘顧, 5000년 돌아보기’에서는 먼저 동양의 로마였던 시안을 필두로 중국의 5000년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도시들을 묶었다. 난징, 뤄양, 베이징, 항저우, 지난, 하얼빈, 창춘을 소개한다. 중국의 1인자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을 창당한 1921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2021년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1949년부터 100년이 되는 2049년 중국의 꿈을 이룩하겠다고 13억 중국인과 약속했다. 시진핑의 ‘두 개의 100년’을 읽을 수 있는 근대 도시들은 2장 ‘察, 100년 살펴보기’에 모았다. 우한, 창사, 톈진, 광저우, 충칭, 선양, 구이린, 하이커우, 홍콩으로, 신산한 근대 중국인들의 삶이 녹아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3장 ‘明, 20년 내다보기’에서는 상하이, 선전, 다롄, 청두, 우루무치, 라싸, 쿤밍, 타이베이를 다루고 중국의 미래를 전망했다. 그 속에 중국인들이 그리는 미래 중국이 녹아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중국을 보는 세 가지 방법'이다.

 

 

중국 도시에 관한 책으론 <중국 개항도시를 걷다>(현암사, 2013)처럼 '개항도시'들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도 있고, 이하라 히로시의 <중국 중세 도시 기행>(학고방, 2012)처럼 도시의 역사적 흔적에 초점을 맞춘 책도 있다. "쑤저우蘇州와 카이펑開封, 항저우杭州" 세 곳을 다루는데, 나도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도시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덧붙여 <중국의 도시 노동시장과 사회>(한울, 2011/2002)와 같은 학술서도 나와 있다. 상하시를 중심으로 중국 노동시장을 분석한 책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책들은 모두 교양서로 읽어봄 직하다. 한데 모아서 읽어봐야겠다...

 

13. 11. 28.

 

 

 

P.S. 중국의 도시들과 비교해봄직하기에 유럽의 도시들에 관한 책도 찾아봤다. <도시로 보는 유럽통합사>(책과함께, 2013)이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 "도시라는 주제를 통해 유럽과 유럽통합에 접근함으로써, 다양하고 특색 있는 유럽의 도시들이 어떻게 유럽의 핵심을 형성하고 유럽통합을 이루어냈는지를 그려내고자 기획된 책"이다. <유럽 도시와 문화>(동아대출판부, 2012)는 유럽의 도시들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서 다뤘는데, 간명한 소개가 될 법한 책이지만 벌써 절판됐다. 반면에 에디트 엔넨의 <도시로 본 중세유럽>(한울, 1997)은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인데, 중세사 참고문헌으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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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이 출간됐다. <지구의 정복자>(사이언스북스, 2013). 개인적으로는 작년인가 미리 하드카바 원서까지 구입해놓은 책인데, 소프트카바가 나오기까지 기다렸으면 더 좋았겠다(그런 인내심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부제.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겸사겸사 윌슨의 책들을 리스트로 모아놓는다.

 

 

이 책은 먼지보다 못한 미세한 복제자에서 출발해 지구 전체를 뒤덮고, 우주 진출을 모색하는 사회성 생명의 역사를 '집단 선택 이론'의 관점에서 재구축한다.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인류학, 심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을 종횡무진 오가며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는 도덕,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의 기원을 밝혀낸다. 지구를 정복한 사회성 생물의 정복사를 통섭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진화 생물학의 역사 속에서 획기적인 책이자,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에서 퓰리처상 2회 수상자라는 그의 통섭적이고 전설적인 경력을 총결산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지구의 정복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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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언덕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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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하여- 개정판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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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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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회의(356호)의 특집은 '2013 출판계 키워드 50'이다. 그중 '소프트인문학' 꼭지를 맡아 짧게 쓴 글을 옮겨놓는다.

 

 

 

기획회의(13. 11. 20) 소프트인문학

 

‘소프트인문학’은 사전에 등재돼 있진 않지만 대략 ‘쉬운 인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쉬운 인문학이란 말도 모호한데 ‘인문학의 문턱을 낮춰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 인문학’이라고 해도 좋겠다. 원래 어려운 걸 쉽게 풀어주는 건 사기가 아니냐고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도 많다. 마치 어려운 고전을 다이제스트로 만들어서 떠넘기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색하는 이들은 보통 소프트인문학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소프트인문학은 ‘하드인문학’과 경쟁관계에 놓인 것도, ‘본격인문학’을 대체하려는 것도 아니다. 정색하고 영역관리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가령 판매 부수로만 보자면 ‘올해의 인문서’에 값하는 주현성의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만 해도 그렇다. ‘우리 시대를 읽기 위한 최소한 인문 배경지식’을 부제로 내걸었고, ‘한 권의 책으로 인문의 기초 여섯 분야를 꿰뚫는다’는 걸 콘셉트로 잡았다. 무모해 보이는 발상이지만 ‘한권’으로 모든 걸 정리해주겠다는 책은 이전에도 있었다. ‘두꺼운 책’ 붐을 가져왔던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들녘)이 나온 게 2001년이었다. 이 책이 계기가 돼 출판사에서는 아예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시리즈를 펴내기도 했다. 소프트인문학이 느닷없는 경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한권으로 집약하겠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면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 카는 소련사의 권위자이기도 한데, 그가 펴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는 무려 열네 권짜리다. 소련사 전공자라면 기꺼이 읽어나갈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똑같은 관심과 열정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카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한권짜리 다이제스트판 <러시아혁명>을 펴냈고 이게 국내에도 소개됐다. 오히려 너무 얇아서 불만스럽지만, 사실 소련사 말고도 읽어야 할 책은 부지기수이니 독자로선 고마운 일이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 포착한 건 그런 책에 대한 사회적 수요다. 이 책의 독자가 본격적인 인문서 독자와 얼마나 중복될지는 모르겠지만 상호배제적일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소프트인문학에 맛을 들인 독자가 어려운 책을 경시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문학에 해가 될까. 아니면 더 깊이 있는 공부와 독서로 이끄는 길잡이이자 촉매가 될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좀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라도 독자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책들이 더 나올 필요가 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뒤이어 나온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2>와 김경집의 <인문학은 밥이다>(알에이치코리아)이다. 2권에서 주현성은 전작에서 다룬 범위를 더 확장했고, 김경집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 세계를 풍성한 상차림으로 안내한다. 더 읽어볼 책들에 대한 소개도 충실하다. 많은 분야를 다룰 뿐 결코 물렁하지 않다.

 

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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