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블로그에서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출간 기념 이벤트로 '온라인 저자와의 만남'을 갖는다(http://blog.naver.com/hyeonamsa/40205836381). '로쟈에게 물어보세요'가 소소한 이벤트 제목이자 내용 자체다. 2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러시아문학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남기면 내가 답변을 달 예정이다. 물론 이벤트에 사은품이 없을 수는 없고, 5명을 추첨해서 저자 사인본을 드릴 예정이다. 혹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읽고픈 독자라면 참여해보시길...

 

14.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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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식전, 식후가 막간인 듯싶다. 막간에 '이주의 고전'에 대해서 한마디 적는다. 한두 전에 나온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아카넷, 2014)이 계기다. 예전에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아카넷, 2005)와 같이 언급하면서, 아직 나오지 않은 이 책을 <일반정신병리학>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정신병리학 총론>으로 낙착됐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저작이라 번역본이 출간될 수 있을지 미지수였는데, 그래도 학술명저번역 총소의 하나로 나오긴 했다. "독서와는 별개로 책 수집가로서 내가 욕심을 내볼 수 있는 최대치"에 해당하는지라 구입은 아직 미루고 있다(<심리학의 원리>는 지난번에 구하긴 했지만). 물론 책값도 만만찮긴 하지만, 내 경우엔 보관할 장소가 없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이런 책을 책장에 꽂아두지 못하고 바닥에 쌓아두어야 한다면 장서로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잖은가!).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초판이 출간된 지 100년이 넘어감에도 여전히 정신의학의 기본 문헌이자 이정표가 되는 저작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고전이다. 책은 정신과(科) 영역의 무수한 현상과 증상을 특정 학설에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않고 현상학적으로 기술·정의·분류하고 있으며, 정신 증상을 평가·이해하는 데 필요한 폭넓은 영역에 대해 체계적 지식과 방법론을 제공하고 있다. 근자에 와서 철학과 정신의학 간에 개별 이론적 교류를 넘어 방법론적 차원에서부터 대화가 시도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병리학 총론>은 철학과 정신의학의 공동 수원지(水源池)로서 현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여전히 '정신의학의 기본문헌'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만(정말 의대 정신의학 전공자들이 아직 이 책을 읽는단 말인가?) 역사적 가치나,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갖고 있을 듯하다. 또 한편으론 야스퍼스 독자들에겐 다른 종류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고. 아무튼 개인 장서로 하기엔 무리가 따를지라도 도서관에서만큼은 비치해놓으면 좋겠다.

 

 

 

 

<정신병리학 총론>에 대해 적으려니 같이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나남, 2010). 역시나 네 권짜리 번역돼 나왔다는 점 때문인데, '언제 읽을까'라거나 '어디에 보관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어떤 책인가.

이 책 <정치경제학 원리>는 고전경제학의 오류를 집대성했다는 비판이 가장 혹독한 비판일 정도로, 고전경제학의 완결본이라는 점에는 거의 이론이 없다. 갈브레이스는 밀의 책이 경제학 최초의 교과서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저술을 통해서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수입도 챙기는 문필의 전통을 개척한 작품이며, 문학적 탁월성에서 다시는 필적할 상대가 없으리라고 보았다. 실제로 이 책 <정치경제학 원리>는 출판된 직후부터 1890년에 마셜의 <경제학원리>가 나올 때까지 영국 경제학계의 경전이었다.  

 

 

그러니까 경제학도나 경제학 고전 독자라면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학원리>(한길사, 2010)와 함께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 정도는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 이럴 땐 내가 경제학자가 아닌라는 게 아주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비록 의무는 아니지만, 욕심마저 막을 수는 없어서 적당한 공간이 마련된다면, 이 책들에도 한 자리 내줄 용의는 있다. <정신병리학 총론> 옆에 <정치경제학 원리>를 나란히 꽂아두는 것도 모양새가 나쁘진 않겠다. 어쩌면 정신병리학과 정치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은 서로 심오하게 내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14.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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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2013)을 제때 봤다(원제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다양성 영화 상영관이라 규모가 작은 극장이었지만 그래도 매진이었고, 한 시간 전에 예매해서 겨우 맨앞자리에 앉아볼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나오는 노래가 르윈 역을 맡은 배우 오스카 아이작이 직접 불렀다는 'Hang Me, Oh Hang Me'다. '날 매달아주오, 제발 날 매달아주오'(http://www.youtube.com/watch?v=YxcO53WATYw).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영화 절반은 본 셈이다.

 

 

 

연휴가 다 지나갔다. '날 매달아주오'라는 기분으로 다시 일상을 시작해보자...

 

14.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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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고전'을 골라놓는다. 거리가 될 만한 책은 더 있지만 일단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연암서가, 2014)와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아카넷, 2013) 새 번역본에 대해 적는다.

 

 

 

<시시포스 신화>(1943)는 <시지프 신화>나 <시지프의 신화> 등의 제목으로 번역돼 왔던 책. 사실은 지난해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출간 70주년, 탄생 100주년, 다시 읽는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 오늘날 카뮈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부조리'라는 키워드는 인간 실존이 처한 기묘한 상황을 규정하기 위한 철학적 전문용어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체득하고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묘사하기 위한 일상적 개인어의 차원에서 이해될 때, 공감의 폭은 넓어지고 그 울림은 깊어질 것이다.

명징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카뮈의 에세이들이 아주 잘 읽히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영역본을 포함해서 여러 번역본을 구한 이유인데, 엊그제 새로 나온 번역본과 비교해서 읽어보려고 했으나 몇 권이나 되는 책을 방에서 찾지 못했다. 어이없긴 하지만 요즘은 익숙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카뮈에 대해선 일련의 강의도 했고, 따로 책도 쓸 예정이어서 <시시포스 신화>도 다시 정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에 이어서 박찬국 교수가 옮긴 <안티크리스트>도 새로운 읽을 거리. 책세상 전집판과 청하 전집판(<반그리스도>)과 함께 읽어봄직하다. 개인적으론 아주 오래 전에 청하판으로 읽고 다시 보지 않은 텍스트라 새로 관심을 갖게 된다. 소개는 이렇다.

니체의 최종적인 사상을 담은 결정체. 니체는 이 책을 2년 내에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대규모로 발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누이동생에 의해 네 군데가 삭제된 상태로 출간되었다. 삭제된 부분은 1955년 니체전집에서 복원되었고, 1969년 고증본에서는 ‘그리스도교 탄압법’이 덧붙여져 출간되었다. 본 한국어판 번역은 이 고증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니체에 관해서는 최근에 정동호 교수의 <니체>(책세상, 2014), 강영계 교수의 <아티스트 니체>(텍스트, 2014) 등이 출간돼 읽을 거리는 부족하지 않다. 입문 독자라면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2012)이 두툼하면서 충실한 안내서다.

 

여하튼 견물생심이어서 새로 나온 책을 보면 읽을 욕심이 생긴다. 이달엔 시시포스와 안티크리스트를 독서의 한 가지 주제로 삼아도 좋겠다...

 

14.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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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이현우의 <애도와 우울증: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무의식>은 소개하기 힘든 책이다. 보통 내가 글을 싣는 지면은 학술지도 아니고 대학원의 학보도 아니다. 그런데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라니! 두 사람이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임은 분명하지만, 김소월과 이상도 아니고 김수영과 김춘수도 아니다. 이 글의 끝에서 다시 거론하겠지만, DJ DOC의 전 멤버 한 명이 예전의 멤버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촌극과 그 추이를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불특정다수를 위한 '읽을거리'로 변용하는 데 더 오래 애를 먹었을 것이다.- 107쪽

지은이는 이 책의 1장 첫머리를 "예술에 대한 프로이트적 가정에 따르면 예술창조의 전제조건은 삶의 파탄이다. 즉 뭔가 억울하게 당했다는 느낌 없이,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감정 없이 예술을 창조할 수는 없다."라는 글을 시작하면서, 특히 낭만주의 예술에서는 예술가의 상실 체험이 가장 큰 창작 동기가 된다고 말하다. 이때 그들의 예술 행위나 창작품은 상실에 대한 위안이거나 보상물이며, 예술가들은 그들의 유년 시절 체험이나 기질에 따라 각기 '애도형 유형'과 '우울증형 유형'으로 나뉜다. 지은이에 따르면 푸슈킨이 전자고, 레르몬토프는 후자다. - 107쪽

애도란 상실을 겪은 주체가 상실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전이시킨 것을 일컫는다. 예컨대 애도란 옛 애인을 새 애인으로 대체시킨 경우로, 새 애인이 옛 애인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옛 애인의 형상을 차츰 철회한 끝에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경우다. 반면 우울증은 옛 애인을 끝내 잊지 못하고 헤어진 옛 애인을 나와의 동일시 속에서 보존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미운 사람은 나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버림받은, 못난 '나'이다. 대상과의 분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르시시즘과 자아 분열(혹은 자아 고문)에 빠진 우울증적 주체는 다른 대상으로 전이가 불가능하다.- 108쪽

이 책은 낭만주의를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두 정념적 범주로 해석하려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푸슈킨에게 있어 근원적 상실의 대용품이었던 정치적 낭만주의의 좌절이 미학적 자율성으로 치달아가는 전환점을 포착하고 있다. - 108쪽

사족이다. 자신이 DJ DOC에서 퇴출당한 이유가 '박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옛 멤버를 고소한 전직 가수는,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장사(葬事)지내지 못했다. 저 사안의 명예훼손 여부를 떠나, 17년이 지나도록 박치라는 말을 스스로 웃어넘기지 못할 정도였으니 애도에 실패한 것이다. 고소장을 들고 경찰서 앞에서 인터뷰를 했던 그는, DJ DOC에서 퇴출당한 이래로 17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못했고 노래방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패한 애도는 우울증이 된다. -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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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5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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