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4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마이클 해링턴의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 2014)를 글거리로 삼았는데, 리뷰는 간단하게만 적었다. 원서를 주문해놓은 터라 학습 삼아서 다시 정독할 계획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 장석준의 <사회주의>(책세상, 2014)와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돌베개, 2014)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시사IN(14. 04. 05) 사회주의라는 또 하나의 약속

 

사회주의 이론과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오래 품고 있던 숙제였기에 마이클 해링턴의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는 대번에 손에 든 책이다. 원제가 <사회주의: 과거와 미래>이고 저자 역시 '신뢰할 만한 사회주의자'라는 평판을 듣는 미국의 대표적 사회주의 정치사상가라고 하니 믿어볼 만했다.

 

 

'오래된 희망'이란 제목의 문구에서 미리 예상할 수 있듯이 저자는 사회주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위한 희망'이라고 믿는다. 물론 예상되는 반론은 '백 년도 더 된 낡은 이념'이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저자는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이에 답하고자 한다. 하나는 과거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교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다시 사회주의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주의가 '자유와 정의'를 위한 체제가 아니며 따라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마르크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성취이고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그 이전의 권위주의 시대를 해체하면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공간과 권리"를 가질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자들은 이 가능성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사회 정치적 환경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적 사회화에 맞서서 해링턴은 이와는 다른 방향의 '사회주의적 사회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라는 또 하나의 약속이라고 할까.


물론 20세기에 우리가 경험한 역사적 사회주의 혹은 현실 사회주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국가주의화를 '잘못된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지만, 옛 소련으로 대표되는 '독재적 공산주의' 역시 '자유와 정의의 걸림돌'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저자는 '사회화'의 의미에 대해서 정작 사회주의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과 대표적 사회주의 이론들이 근본적인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잘못된 이론적 기초 위에 세워진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사회'를 가리키는 이름이 됐다.

 

그럼 사회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해링턴은 현실 사회주의를 "생산수단은 국유화되어 있지만 민중은 이론적으로만 경제를 지배할 뿐"인 집산주의 체제였다고 규정한다. '가짜 사회주의'라는 것인데, 핵심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과소평가에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아래서는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구현될 수 없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사회주의 아래에서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존립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레닌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취급했다." 이러한 생각이 필연적으로 옛 소련을 볼셰비키 독재와 스탈린의 일인 독재로 몰고갔다. 소비에트 모델이 몰락한 이유다.


이러한 과오를 딛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새로운 사회주의는 어떤 것인가. 해링턴이 제안하는 사회주의는 민주적 지배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주의적 사회화다. 이것은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은 장기적인 변화이자, 다수의 지지가 꾸준히 확보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힘을 결합시킬 필요가 있으며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서도 장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도덕적, 지적 개혁을 포함하는 사회주의적 전환은 "마르크스를 포함해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 근본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반사회적인 사회에 맞서는 사회주의적 사회화는 불가피하다.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을 우리가 여전히 꿈꾼다면,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아직 우리의 희망이다.

 

14.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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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의 '명사의 서재' 코너에 실린 짧은 인터뷰를 옮겨놓는다(http://ch.yes24.com/Famous/Index/409). 질문에 답한 내용이 간추려 편집됐다.

 

 

한글을 깨친 이후에 자연스럽게 책과 접하게 됐고, 이후에 특별히 멀어진 기억은 없고요. 초등학교 3학년경부터 특히 독서에 빠져 지낸 듯합니다. 책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고 자주 혼난 기억이 납니다. 독서의 계기가 따로 없었네요.

요즘 독서 계획은 단기적 측면과 장기적 측면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여러 강의와 원고와 관련한 책을 읽고, 또 매주 화제가 될 만한 책을 독서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가령 미국의 노예제도에 관한 책들과 종교개혁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몇 권 구했고, 세르반테스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더 주문해놓은 상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문학과 철학, 역사에 대한 제 나름의 입문서를 계획하고 있어서 그와 관련한 책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도서 외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들을 좋아했습니다. 에미르 쿠스투리차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도 좋아합니다. 빔 벤더스와 왕가위도 좋아했고요. 왕가위의 <아비정전>,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 등을 꼽아두겠습니다. 그렇게 꼽게 되는 영화들이 10여 편은 되는 것 같은데, 매 시기 ‘이런 영화도 있구나’란 경탄과 위로를 건네준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또 하나의 약속>입니다.

제 온라인 서재 이름은 ‘로쟈의 저공비행’입니다. 작업실을 갖게 된다면 고졸한 이름을 궁리해보겠습니다. 필명 ‘로쟈’는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니코프의 애칭입니다. 로지온의 애칭이에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러시아문학에서 친숙한 주인공이 마침 떠올라서 쓰게 됐습니다.

 



최근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를 펴냈습니다.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수립과 그 해체가 이루어진 20세기를 앞둔 19세기에 러시아 문학을 꽃피웠던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는 소감을 접할 때 가장 뿌듯합니다. 일종의 입문서이자 안내서로서 자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니까요. 많은 분들에게 러시아문학과 만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14.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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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에 대한 해설서가 나왔다. 역자인 조현준의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 2014). <젠더 트러블>이 나왔을 때 '주디스 버틀러 읽기' 리스트를 한번 만든 적이 있는데, 해설서가 나온 김에 한번 더 만들어놓는다. 그 사이에 나온 책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최근 '사랑'에 대한 정의를 놓고 말들이 많은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남녀'를 다시 명시해서다. 지극히 제한적인 정의이긴 하지만 버틀러에 따르면 애당초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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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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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에 나왔더라면 감격했을 뻔한 책이 뒤늦게 나왔다. 알지르다스 쥘리엥 그레마스의 유작 <정념의 기호학>(강, 2014)이다. '물적 상태에서 심적 상태로'가 부제. 당시에 영역본을 구하지 못해(책은 나와 있다. 나중에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다) 잘 읽지 못하는 불어본까지 구했던 책이다(책의 '물성'은 느낄 수 있으니까). 이유가 없지 않았다. 학위논문에서 애도와 우울증을 다루면서 그레마스의 모델을 원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타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념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모델화할 수 있을까란 문제.

 

 

 

격세지감으로 지금은 거의 잊혀지고 있지만 파리 기호학파의 좌장으로 그레마스는 롤랑 바르트와 함께 프랑스 기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특히 서사학 분야에 큰 공적을 남겼고 정념의 기호학은 그가 말년에 새롭게 개척한 분야. <정념의 기호학>은 제자 퐁타뉴와 공저로 펴냈는데, 일종의 '시범적' 성격의 저작이다. 그 이후에 얼마만큼 더 진척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문이기도 하다(적어도 나는 별로 들은 바가 없다).

 

 

 

그레마스의 책으론 <의미에 관하여>(인간사랑, 1997)가 번역돼 나왔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고 번역도 좋지 않기에 번역의 의의가 별로 없는 책이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김성도 교수의 연구서 <구조에서 감성으로>(고려대출판부, 2002) 정도를 도서관에서 참고해볼 수 있겠다. 아, 박인철 교수의 <파리학파의 기호학>(민음사, 2003)은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그레마스 기호학의 배경과 주제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다.   

그레마스의 주저는 <구조의미론>인데, 알라딘에서는 영역본이 검색되지 않는다. 그의 서사학은 러시아의 민담 연구자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의 발상을 발전시킨 것인데, 프로프의 책은 서너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기호학이나 서사학은 십수 년 전에 한창 관심을 가졌다가 지금은 옛사랑처럼 감흥을 잃은 상태다. <정념의 기호학>이 흥미를 다시 북돋아줄 수 있을지 한번 뒤적여봐야겠다...

 

14.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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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철학책 한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때론 얇은 게 미덕이다). 파스칼 샤보의 <논 피니토: 미완의 철학>(함께읽는책, 2014).

 

 

저자의 이름은 생소한데(그래서 '발견'이지만) 질베르 시몽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를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시몽동의 철학>(2003). 이게 영어판(2013)으로도 나와 있는 걸로 보아 주목 받는 젊은 철학자인 듯하다. <논 피니토>의 원제는 <철학의 일곱 단계>.

 

 

저자와 책소개는 이렇게 떠 있다. "동시대 철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철학자 파스칼 샤보의 책. 철학자들이 좀처럼 던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철학 속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찾고자 하는가? 철학자들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파스칼 샤보는 신중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이 반성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난해하고 불투명한 것에 자족하는 철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시대 철학자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흥미를 갖게 하는 건 이 짧은 책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철학에서 무엇을 찾는가'. "오로지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철학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밝히려 할 때가 그렇다."(13쪽) 그리고 이 질문은 언제고 던져질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질문이 충분히 흥미롭다면, 독서는 이미 절반은 보상받은 것과 같다. 나머지 절반은 책에서 이런 대목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철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철학자로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로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명제를 고안한 테오필 고티에를 따라 철학을 위한 철학을 주창한다면 용기 있는 소견일 수는 있을지언정 철학이 나아갈 방향 혹은 옹호해야 할 입장을 제시해주지는 못 할 것이다. 삶, 그리고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의무와 부당함을 망각한 사상가만이 그런 명제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철학은 삶과 사유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코사 멘탈레(cosa menatle), 즉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일 뿐이다.

얇고 가벼운 책이라 며칠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어보려고 한다. 참, 시몽동의 책도 번역돼 있다.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그린비, 2011). 이건 좀 묵직한 책인데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라고 한다(파스칼 샤보의 책 말고도 시몽동에 대한 연구서들이 영어권에서 나오고 있다).

시몽동은 자신의 박사학위 부논문인 이 책에서 기술적 대상들의 발생과 진화의 과정, 기술적 대상과 인간의 관계 맺음, ‘기술성’ 자체의 본성을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들을 단지 이용가치만을 갖는 ‘물질의 조립물’로 보는 관점, 반대로 기술적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는 테크노크라시적 관점, 그리고 (영화나 SF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인간을 적대하는 위협적인 ‘자동로봇’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모두 비판하면서 인간과 기술적 대상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기술철학'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철학자는 <에코그라피>(민음사, 2002)의 공저자 베르나르 스티글러다. <기술과 시간> 시리즈 말고도 다수의 저작을 활발하게 펴내고 있다. 영어판으로 올해 나오는 것으로 예고된 두 권의 타이틀 역시 흥미를 끈다...

 

14.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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