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뉴스레터 '독서인'의 '독서카페'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 2014)를 거리로 삼아 쓴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에 겨우 써보낸 원고다.

 

 

 

독서인(14년 7월) 지그문트 바우만에게서 배우는 희망

 

현재 영국 리즈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리즈의 현인’이다. 결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만도 20여 권에 이르고 주요 저작은 대부분 망라돼 있다. 독서 여건으로 보아도 우리시대 대표적 사회학자로 꼽을 만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한 사정이 인디고연구소에서 기획한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과의 인터뷰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 뒤이어 나온 ‘공동선 총서’의 둘째 권이다.


지젝의 인터뷰도 그렇지만 바우만의 인터뷰도 인디고연구소의 청년 일꾼들이 직접 질문지를 만들고 현지에 찾아가서 얻어낸 대답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바우만의 핵심 사상과 현재적 고민을 생생한 육성을 통해 접하도록 해준다. 적절한 눈높이의 질문과 깊이 있는 답변이 어우러져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에 가장 유력한 가이드 역할도 겸하고 있다.


사실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이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바우만의 사색과 성찰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시대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과 해명 말이다. 그 자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듯이 무려 65년 동안 현역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바우만은 사회학자의 소명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또 사회는 그 배후의 메커니즘과 어떤 연결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순환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는 일인데, 이것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보통 사람들로선 인식하거나 간파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갖기에는 다들 너무나 제한적인 시야와 사고 범위 안에 갇혀 있고 일상에 매몰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학자로서의 특권은 그러한 일상에서 한 발작 물러나 생각하고, 읽고, 관찰하고, 추론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점이다. ‘더 넓은 지평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바우만의 미덕은 그러한 여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 여유는 학자의 소명을 위한 여유이다.


사회학자의 소명이 제공해주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어떤 쓸모가 있는가. 바우만은 “아마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적 인식 자체에서 쓸모를 찾지 않고,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점에서 바우만을 실천적 사회학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실천은 ‘아마도’라는 단서와 함께한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실천의 문제는 각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각자’란 우리들 각자를 말하는 것이니 바우만을 경유해서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 셈이다.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있는가.


바우만은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대로 ‘좋은 삶이란 좋은 사회에서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이에 따르면 좋은 삶은 나쁜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공자의 생각이기도 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나라’를 ‘사회’로 바꿔놓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은 취지를 갖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삶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자가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복과 공동선을 도모해야 한다. 곧 나라에 도가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럼 또 다른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의 행복이나 공동선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다. 즉 “내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사회는 제쳐두고, 절대적인 개인의 영역만 더 좋게 만들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회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만 편하고 안락한 삶이 가능하도록 애쓰는 게 전부라고 믿는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사회 같은 건 없다”고 선언할 수도 있겠다. 개인들의 총합이 있을 뿐 사회라는 별개의 실체는 없다는 주장이니, 그 경우에는 따로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물론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은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학이나 사회학자도 존재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혹은 형이상학의 일종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의 존재 유무에 관해 대처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사회라는 게 존재하며 각자의 좋은 삶은 좋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라고 말해보자. 그런 좋은 사회를 상상하는 건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바우만은 그런 상상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은 누가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다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 때문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에 따르면,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이고,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흔히 이 둘은 결합돼 있었지만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따로 분리되었다. 권력은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에 정치는 지역적 경계 안에 머물게 되면서부터다.

 


이것은 국민국가에 한정된 정치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국민이 ‘주권자’이고 국민국가의 기관들이 그 대행자이긴 하지만, 시장 자본주의의 힘은 이미 주권적 역량과 범위 너머에 군림하고 있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러한 힘에 맞서야 하지만 현재로선 미약하다. 굳이 바우만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고통은 문제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견딜 만한 것으로 간주된다. 도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삶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을 희망이라고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 희망이 바우만의 비유대로 병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라 하더라도 우리가 수신한 그의 메시지를 다시 더 많은 병속에 넣어 띄워보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가 어느 순간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바우만을 읽으며 다시 정비하게 된 희망이다.

 

14. 07. 10.

 

 

P.S. 참고로 인터뷰의 이탈리아어본이 작년에 먼저 나왔다. 영어본도 근간인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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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시리즈의 하나로 <정신의학의 권력>(난장, 2014)이 출간됐다. 1973-74년 강의를 엮은 책으로 "이듬해 강의 <비정상인들>과 더불어 푸코의 또 다른 걸작 <감시와 처벌>(1975)을 예고하고 준비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도 흥미를 끄는데, 얼추 이 강의 시리즈도 다섯 권 이상 출간됐다. 몇 권이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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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권력-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3~74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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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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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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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해석학- 1981-1982,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 / 동문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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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29호)에 실은 '인문학 크로스'를 옮겨놓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주제로 삼아 몇 권의 책을 읽은 독후감이다. 분량상 충분히 다루지 못한 대목은 나중에 따로 기회를 마련해볼 생각이다.

 

 

책&(14년 7월호) 진화론과 창조론 끊이지 않는 논쟁

 

이번 주제의 길라잡이가 된 책은 신학자 신재식 교수의 <예수와 다윈의 동행>(사이언스북스)이다. 제목에서부터 암시되지만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하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이미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 과학자 장대익 교수와 공저한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에 참여하여 종교와 과학의 공존가능성을 모색한 바 있는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좀더 본격적으로 전개한 책이다. ‘종교’와 ‘과학’이라고 뭉뚱그렸지만 구체적으론 기독교(예수)와 진화론(다윈)이다.


보통은 서로 무시하거나 기피하는 게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와 진화론이 보여주는 관계의 양상인데,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2년의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 근본주의 개신교 성향의 단체에서 시조새에 관한 기술과 말의 진화에 관한 기술 일부를 삭제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청원했고 이를 몇 곳의 교과서 출판사가 수용하자 과학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서까지 “한국, 창조론의 요구에 항복”이란 기사를 실으면서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떠들썩한 진행과정과는 달리 한국 개신교 교계는 이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서 진화론은 여전히 거론조차 해서도 안 될 ‘금기’이며 기피 대상”이어서다. 그는 이런 금기를 넘어서는 첫 걸음을 떼고자 한다.    


일단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혁명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함축을 해명한다. 다윈의 진화론이란 무엇인가. 자연선택을 핵심개념으로 하는 그 메커니즘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자연계에서는 기하급수적인 증가의 원리에 따라서 생존 가능한 개체의 수보다 더 많은 개체가 항상 탄생한다. 둘째, 대부분의 자연적인 개체군에는 변이가 존재하며 변이 중 어떤 것은 유전된다. 셋째, 개체들 사이에서 생존 투쟁이 벌어지고 각 생물들은 서로서로 경쟁하게 된다. 넷째, 이러한 생존투쟁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로운 특성은 계속 누적되어 새로운 종이 생겨나도록 작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전제가 되는 명제는 지구가 수십 억 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생물은 그러한 조건에서 발생해 간단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왔고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진화론이 함축하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당장 이 세계를 창조주가 계획하고 설계했으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흔히 창조-진화 논쟁으로 불리는 이 충돌을 가리키는 이름이 ‘종교전쟁’이다.


‘전쟁’이라고 해서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등하게 맞서는 것은 아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150년이 지나는 동안 발견된 진화의 증거들이 압도적이기에 비록 진화론도 진화해왔다고는 하지만 진화 자체는 자명한 사실로 간주된다.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의 사실성이다. 신학(theologia)을 신(theos)에 대한 합리적 학문(logos)으로 규정하는 저자는 기독교가 합리주의 정신을 배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교와 과학이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는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며 신학적 합리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는 상통할 수 있다고 본다. 과학사가 로버트 머튼을 인용하면, 오히려 “청교도 윤리를 잉태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결합은 근대 과학 정신의 본질을 형성한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반드시 전쟁으로만 치달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전쟁이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비난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종의 기원>을 읽었거나 생물학 입문서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는 지적이다. 그와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다윈주의에 대한 거부와 반진화론 운동이 미국의 개신교 교단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반진화론이야말로 참된 신앙을 지키는 것이며 미국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는데, 이것은 미국적 특징인 동시에 특히 미국 남부 지역의 특징이다. 창조-진화 논쟁은 철저하게 미국 기독교 역사의 경험과 관련된 논쟁이며, 따라서 보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상당히 국지적인 문제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유독 강한 거부감을 보인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주로 미국인의 종교적 성향 때문이다.

 

<과학전쟁>에서 장대익 교수가 소개한 2004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62퍼센트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고, 55퍼센트의 미국인은 신이 인간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다고 굳건히 믿는다. 이러한 신앙적 보수주의를 토대로 나온 것이 창조과학운동과 지적 설계론이다. 창조과학운동은 성서의 창조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운동이고,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의 빈틈을 창조주의 ‘지적 설계’에 대한 반증으로 삼으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운동과 입장이 모두 과학으로서 자격미달이며 고작해야 사이비과학에 불과하다는 게 장 교수의 평가다.

 

한국에서도 창조-진화 논쟁이 부각된 것은 한국 기독교계가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197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 창조과학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공계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다. 그리고 창조론 진영은 1990년대에는 미국의 지적 설계론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주력해왔다. 미국의 창조론 ‘직수입 대리점’인 셈인데, 아직까지 이 문제와 관련한 법정 투쟁까지는 벌어지지 않은 것이 미국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1925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열렸던 스콥스 재판(일명 ‘원숭이 재판’)과 1981년 미국 아칸소 주에서 열렸던 동등시간 교육법(진화론을 가르치는 것과 동등한 시간 동안 창조론도 가르치도록 요구한 법) 재판 등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법정 투쟁들이다.


이 중 스콥스 재판에 대해서는 김윤성 교수가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발단은 1925년 테네시 주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미국의 진보진영은 즉각 이에 반발했는데, 특히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쪽에서는 법정 투쟁을 통해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자 했다. 존 토머스 스콥스가 자원자로 나서서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되었고, 이 재판에서 당대의 명사였던 윌리엄 제임스 브라이언과 클래런스 대로가 정부 측과 미국시민자유연맹 측을 대변해 유명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이 재판은 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재판은 진화론 교육 금지법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스콥스는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교육계와 출판계에서는 논란을 두려워해 오히려 진화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라슨의 <신들을 위한 여름>(글항아리)는 바로 스콥스 재판의 진행과정과 문제의 발단에서부터 뒷이야기까지 자세히 다룬 논픽션이다. 저자는 이 재판의 교훈을 “이성의 힘이 종교적 반계몽주의를 내몰았다는 것”에서 찾지만 역설적으로 반진화론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보수 기독교 하위문화 내부에서는 계속 성장해나간 추세다. ‘원숭이 재판’ 이후 80년도 훨씬 더 지난 시점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그래서 ‘예수와 다윈의 동행’도 요원한 것은 변함없는 종교적 성향 때문이다.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에도 미국의 10명 중 9명이 신의 존재를 믿으며, 그 중 상당수가 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저자의 전망의 부정적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역사가 미래를 예측하는 지표라면 한동안은 악천후가 이어질 것이다.”

 

14.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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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4-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한주 건너뛴 '이주의 책'을 고른다. 집에서는 아직도 인터넷이 안 돼(일이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될 줄 몰랐다. 광랜이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가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피씨방에서 간단히 적는다. 주로 역사와 인류학 분야의 책으로 골랐는데, 타이틀북은 로런트 듀보이스의 <아이티혁명사>(삼천리, 2014). 최근 흑인 노예제와 관련한 책을 손에 들다 보니 관심이 갔다.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이 부제.

 

 

아이티혁명사를 다룬 책으론 자연스레 C. L. R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필맥, 2007)을 떠올리게 되는데, 듀보이스의 책은 "큰 틀에서 제임스의 견해를 따르고 있지만,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의 전기 형식으로 서술된 <블랙 자코뱅>의 한계를 넘어 아이티 사회와 카리브 해 노예들의 삶을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두번째 책은 '빅토르 세르주 선집'의 첫 권으로 나온 <한 혁명가의 회고록>(오월의봄, 2014). 수잔 와이스만의 <빅토르 세르주 평전>(실천문학사, 2006)이 나온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건 그 자신의 자서전이다.

불굴의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 자서전. 히틀러가 지배하는 유럽을 벗어나 멕시코로 건너온 뒤 쓴 자서전이다. 애덤 혹스칠드는 이 자서전을 '걸작'이라 칭하면서 "20세기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다른 위대한 정치 저술(아서 퀘슬러의 <한낮의 어둠>과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과 동급에 놓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번째 책은 윌리엄 T. 로의 <중국 최후의 제국>(너머북스, 2014).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로 나온 청제국사. "서구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새로운 중국사 서술을 개척한 조너선 스펜스의 계보를 이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청대사 전문가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기념비적인 연구서인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청대사 3권을 포함한 최신의 국제적인 청대사 연구 성과를 종합한 것이다." 캠브리지 중국사의 10, 11권이 청제국사를 다루고 있기에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네번째 책은 시공간을 좀 건너뛰어서 아마존 야노마뫼 족을 다룬 나폴리언 섀그넌의 <고결한 야만인>(생각의힘, 2014).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도 모습을 비추었던 야노마뫼 족은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한 1964년 당시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야생의 원시 부족이었다. 이 책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나폴리언 섀그넌'은 '나폴레옹 샤뇽'이란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었다(학계에서는 어떻게 표기되는지 모르겠다). '에덴의 마지막 날들'이란 부제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가 처음 번역됐던 책. <고결한 야만인>은 섀그넌(샤농)의 회고록이다.    

 

 

끝으로 인류학 입문서 한 권. 웨이드 데이비스의 <웨이파인더>(정은문고, 2014). "TED 인기 인류학 강연자이자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속탐험가 웨이드 데이비스와 떠나는 인류문화여행." 웨이드 데이비스는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 2013) 등의 책으로 소개된 저자다. 좀비의 고향 아이티를 다룬 책이니, <아이티혁명사>와 같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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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혁명사-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 삼천리 / 2014년 7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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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주 지음, 정병선 옮김 / 오월의봄 / 2014년 7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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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
윌리엄 T. 로 지음, 기세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7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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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야만인- 아마존 야노마뫼 족과 인류학자들, 두 위험한 부족과 함께한 삶
나폴리언 섀그넌 지음, 강주헌 옮김 / 생각의힘 / 2014년 7월
25,000원 → 25,000원(0%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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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상주의의 대표 철학자로 주로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의 호적수로 알려진 로버트 노직의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김영사, 2014)가 재출간됐다. 오래 전에 <인생의 끈>(소학사, 1993)이라고 나왔던 책이다. 오래 전,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에 저자의 명망에 기대 바로 구입했지만 인상적이진 않았다(좀 밋밋한 느낌이었다). 다시 읽으면 놓친 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외에는 별반 읽을 게 없었던 철학자의 책이라 반갑다. 부제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궁극적 물음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소크라테스적 탐구’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현대 철학의 걸작! 30세에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정교수가 되었으며 20세기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노직. 그가 날카로우면서도 해박한 식견, 유려함이 빛나는 ‘소크라테스적 논변’으로 삶의 본질과 의미를 꿰뚫는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증으로 26가지 인간 존재의 핵심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쳤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건 제목과 연관된다. '성찰하는 삶' 내지는 '성찰적 삶'. 알려진 대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서양철학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래서 '성찰하는 삶'을 원제로 갖고 있는 책이 여럿 되는데, 제임스 밀러의 <성찰하는 삶>(현암사, 2012), 애스트라 테일러의 철학자 인터뷰 <불온한 산책자>(이후, 2012), 그리고 정신분석가 스티븐 그로스의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나무의철학, 2013) 등이 그렇다.

 

 

말이 나온 김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 몇 권. 황광우의 <사랑하라>(생각정원, 2013)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이고, 폴 존슨의 <그 사람, 소크라테스>(이론과실천, 2013)은 가장 만만한 분량으로 읽을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입문서. 그리고 베터니 휴즈의 <아테네의 변명>(옥당, 2012)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관한 자세한 배경 설명을 제공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등의 대화편을 읽을 때 요긴한 참고가 된다...

 

14.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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