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중앙일보에 실은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중년의 독서'가 갖는 의의에 대해 적으려고 했는데, 서언 격인 '중년의 의미'에 대한 글이 되어 버렸다. 여하튼 핵심은 중년이 독서의 최적기라는 것이다. 입시에서 해방된 예비대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이번 겨울에 '독서 삼매경'을 경험해보길 바라마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 정도 절호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14. 11. 25) 중년의 의미

 

가을도 마지막 한 주를 남겨놓고 있다. 겨울 문턱이라고는 하지만 계절의 실감이 예전만큼 뚜렷한 건 아니다. 한파만 닥치지 않는다면 난방이 된 실내에서 다른 계절과 큰 차이를 못 느끼며 생활하는 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계절이 바뀌더라도 실내온도의 편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만큼 둔감해지는 건 자연스럽다. 초등학교 때 교실 난로를 지피기 위해 아침마다 당번 학생이 연탄을 나르던 일이 새삼 낯설게 기억될 정도다. 보온도시락을 갖고 다니는 아이가 많아질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양은도시락을 난로에 얹어놓았다가 점심시간에 따끈하게 먹는 아이들도 많았다. 요즘 같으면 모두가 추억 속에만 있는 ‘체험’ 대상이다.

옛날얘기를 잠시 꺼낸 건 아무리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더라도 저물어가는 가을이 중년이란 나이에 대해 새삼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에 대한 감각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오십을 일컬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육십을 넘긴 ‘청년’들도 드물지 않다. 통계상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간주하므로 그 이전까지는 넓게 보아 중년이다. 대략 마흔에서 예순까지의 연령대다. 조금 실감나게는 한창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중년에 속한다.

중년의 용도는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중년은 이례적인 시기다. 대개 생물종들의 생애주기는 성장기와 생식기(번식기), 그리고 짧은 생식후기로 이루어진다. 자신과 같은 DNA를 가급적 많이 퍼뜨리는 게 모든 생물종의 자연사적 사명이기에, 생식기 이후의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으로 간주된다. 극단적으로는 교미 뒤에 바로 암사마귀의 먹잇감이 되는 수사마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암사마귀보다 사냥도 못하는 수사마귀가 새끼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영양분이 되는 게 전부인지도 모른다.

생식 이후의 시기로서 긴 중년을 갖는 건 인간만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핵심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긴 성장기를 갖는다는 점에 있다. 탄생 이후 생식기에 진입하기까지의 기간을 성장기라고 한다면 인간의 성장기는 유례없이 길다. 더구나 생물학적 성숙이 이루어진 뒤에도 자녀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위와 부양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추가시간이 성장기에 포함된다. 생식기 이후의 중년이 갖는 생물학적 용도는 이렇게 긴 성장기를 갖는 자녀가 생식기에 진입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는 데 있다. 자녀의 사교육비와 학자금 때문에 등골이 빠진다는 한국 학부모들의 모습이야말로 중년의 의미를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 그렇게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나면 우리에겐 여생으로 노년이 남는다. 의학의 발달로 노년이 연장되긴 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나이다. 손주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하는 걸로 노년의 용도를 새롭게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건 물론 모든 생명체를 ‘DNA 운반체’로 규정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사적 사명을 떠안은 생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적 삶을 향유하는 예외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이 예외성은 자연적 본성이나 DNA의 명령에 거스르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입시를 앞둔 자녀들을 보살피는 데만 온힘을 쏟느라 머리가 세고 등골이 빠지는 대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일례가 될 수 있다. 자연사적 사명 외에 다른 의미를 유한한 삶 속에서 발견하고자 애쓰는 것도 ‘반란’이라면 반란이다. 생물학적 명령에 반기를 들고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이 반란의 요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거창할 건 없다. 정신적 삶은 독서하는 삶이다. 어떤 부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중년의 뇌는 가장 똑똑한 뇌라고 뇌 과학자들은 말한다. 기억력만 다소 떨어질 뿐 판단력이나 이해력에 있어서 성장기를 능가한다. 독서의 최적기가 있다면 바로 중년인 것이다. 중년이라고 해도 평균수명을 고려해보면 이제 반 고비를 좀 지났다. 지나온 과거가 한 세대이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도 한 세대다. 중년의 의미를 다시금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만하다.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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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자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유문화사, 2009)를 가리킨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겨울에 완독해볼 철학서로 염두에 두고 지난주부터 행방을 찾고 있다(책들이 여러 곳에 보관돼 있는 탓에 발품과 추리력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갑자기 염세주의에 끌려서는 아니고, 최근에 가이드북이 될 만한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실상 을유문화사판 새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도전하기도 만만찮았던 책이다. '데.칸.쇼'라고 하여 데카르트, 칸트와 함께 (일본과 한국에서) 서양철학의 대명사였던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이지만, 이 방대한 주저를 무턱대고 손에 드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가이드북'이란 말로 염두에 둔 건 최근에 나온 로버트 윅스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입문>(서광사, 2014), 이동용의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동녘, 2014), 그리고 김진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기>(세창출판사, 2013) 등이다. 경험상 이 정도 장비면 아무리 험한 봉우리라도 도전해볼 만하다.

 

 

그리고 원저는 독어로 쓰인 까닭에 직접 읽을 수가 없어서 영역본을 이번에 대신 구입했다(두툼한 책 두 권이다). 오늘 배송된다는 메일을 받고서 생각이 나서 적는 페이퍼이다.

 

 

한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외에 더 소개된 쇼펜하우어의 책으로는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유문화사, 2013),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아카넷, 2012),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 2010) 등이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독서가 순탄하게 진행되면 마저 구비해놓을 참이다...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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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한 명의 철학자와 두 명의 동서양 작가를 골랐다. 먼저 <호모 사케르>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신작이 나왔다. <벌거벗음>(인간사랑, 2014). <사물의 표시>(난장, 2014), <도래하는 공동체>(꾸리에, 2014)까지 포함하면 올해 나온 세번째 책이다.

 

 

10편의 에세이로 구성돼 있는데, 제목 그대로 '벌거벗음'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신학적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아래는 바네사 비코로프트의 전시작품(<벌거벗음>, 109쪽).

 

 

개인적으로는 카프카의 <소송>과 <성>을 다룬 에세이들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간다. 내년초에 카프카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어서 더 눈여겨보게 된다.

 

 

두번째 저자는 로맹 가리. 주요 작품들이 계속 번역되고 있어서(올해만 세 권이 더 나왔다) 그의 신간 출간이 뉴스는 아니지만 이번에 나온 <인간의 문제>(마음산책, 2014)는 국내에 소개된 첫 산문집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957년부터 권총자살한 1980년까지 쓴 글들을 모은 것인데, 인터뷰도 몇 편 포함돼 있다. 로맹 가리 독자들에겐 좋은 연말 선물이 될 듯하다.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마음산책의 여덟 번째 로맹 가리 책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첫 산문집 <인간의 문제>가 출간되었다. 1956년 12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뒤부터 세상을 뜬 1980년까지 그가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33편 글을 엮은 최초의 책이다. 당대, 역사,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 문제 전반에 관해, 에세이, 특별 대담, 각종 신문이나 잡지, 여러 책에 수록한 글들이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그의 도저한 작가적 여정은 물론 개인사까지도 아우르며 소설과 영화만으로 도달할 수 없었던 로맹 가리라는 대지의 새로운 발견을 선물한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 로맹 가리의 모습을, 그가 일궈온 문학 세계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인도 작가 쿠쉬완트 싱.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델리>(아시아,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1993년에 처음 소개됐던 작품. 원작이 1990년작이므로 바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편이지만 쿠쉬완트 싱은 인도에서 가장 저명한 작가의 한 명. 가디언지는 이렇게 소개했다.

 

99세의 나이로 사망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쿠쉬완트 싱은, 체제 비평과 위선에 대한 도전자로서 인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인도 최고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싱은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언제나 풍부하고 열린 정신과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했고, 무엇보다도 관대했다.

국내에는 <델리>와 함께 절판된 <몬순>(혜문서관, 1992)밖에 소개된 적이 없어서 전모를 가늠하긴 어렵다. 몇 작품 더 번역되면 좋겠다. 참고할 만한 소개는 이렇다.

쿠쉬완트 싱이 일흔다섯 나이에 발표한 이 작품은 저자가 25년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1950~60년대의 왕성한 활동 이후, 일흔의 노구로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시발점과 같은 작품이다. 완성도는 물론 소재와 주제의 강렬함 때문에 출간 즉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 인도에서 호평과 악평, 극과 극의 의견이 충돌했다. 호평은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그려냈을 뿐 아니라 델리의 역사를 다채로운 기법으로 소설적 구성 속에 담아냈다는 것이었고, 악평은 쿠쉬완트 싱을 <악마의 시>로 유명한 살만 루시디와 동일시하여 <델리>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슬람교를 음해하려는 선전 캠페인이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순전히 에로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델리>는 소위 ‘잘 나가는’ 인도 소설의 대표 주자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7대 소설을 뽑자면, 인도의 국민 작가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와 <델리>,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문제작이자 부커 상 같은 큰 상을 수상한 걸작이기도 하다.

 

 

거명된 일곱 작품 가운데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행 열차>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셈이니 조만간 구색이 맞춰지길 기대한다. <화이트 타이거>와 <적절한 균형>도 조만간 구해놓아야겠다...

 

1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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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가 한국에도 상륙한다면 모를까 백신을 맞힐 아이도 없기에 후나세 슌스케의 <백신의 덫>(북뱅, 2014)은 나와 무관할 책일 줄 알았다. 두 가지가 놀라운데, 일단 저자의 책이 국내에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는 점(나는 초면이다), 그리고 백신이 생각보다 문제가 많으며 심지어 음모론과도 연계된다는 점.

 

 

저자는 소비자문제 및 환경문제 평론가라고 소개되는데, 국내에 출간된 책만 해도 열댓 종에 이르고 그 가운데 작년과 올해에 나온 책이 일곱 권이다. 이 정도면 건강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저자가 아닐까 싶다. 최근작 <굶으면 낫는다>(문예춘추사, 2014)의 메시지는 신선(?)하지만, <백신의 덫>의 주장은 섬뜩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백신의 어두운 이면을 들춘다. 병의 예방을 위해 맞는 예방접종의 각종 부작용 및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소멸해 사라진 병이나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병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백신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경위와 실체를 파헤친다. 과도한 의료행위로 보이는 백신 접종이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의무처럼 일반화된 이유는 뭘까?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거대 제약회사다. 후나세 슌스케는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거대한 세력에 맞서 백신의 유해함을 제대로 알고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강제적인 의료 시스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신 접종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세력, 곧 거대 제약회사의 배후로 저자가 지목하는 '어둠의 세력'이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양대 가문이다. 잉글랜드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장악한 로스차일드 일가는 거의 모든 산업분야의 주요 기업도 소유하고 있는데, 제약쪽에선 화이자와 클락소 스미스클라인이 로스차일드계 기업이다(믿거나 말거나 세계의 부 가운데 7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이런 책이야말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 리뷰가 필요하다), 저자가 제기하는 충격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백신을 통해 인구를 억제하려고 한다는 음모다. '인구 삭감을 위한 생물학 무기'로 백신이 사용되고 있다는 폭로다. 1990년대에 빌 게이츠와 데이비드 록펠러 등이 개발도상국의 예방접종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WHO를 통해서 신형 파상풍 백신을 지카라과, 멕시코, 필리핀 등에 공급했는데, 이 백신에서 hCG라는 호르몬 성분이 검출되었다. 파상풍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임신 저해 물질'이다. 결국 각국에서 이 백신에 대해서는 접종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저자에 따르면 인구 삭감 계획은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다. 1978년 빌더버그 회의에서 헨리 키신저는 "세계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빌 게이츠도 2010년 한 강연에서 "현재 세계인구는 68억이며 90억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백신이나 의료, 생식 건강서비스(중절 등)를 잘 운용하면, 아마도 10-15%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록펠러가의 니콜라스 록펠러는 "세게 인구는 적어도 절반으로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이 발언을 공개한 영화제작자는 2007년에 의문사를 당했다고. 게다가 CIA 극비작전 가운데는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 내전을 부추켜서 서로 죽이게끔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백신 접종을 '의료 마피아'가 추진하는 '인구 삭감 계획'이라고 보는 저자의 관점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합성의약품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음모론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 히로세 다키시의 책들도 떠올리게 한다(세계를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해서는 일본 저자들이 일가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그래서 덩달아 로스차일드가에 대한 책도 오전에 몇 권 주문했다. 니얼 퍼거슨의 <로스차일드>(21세기북스, 2013)와 프레드릭 모턴의 <250년 금용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주영사, 2008) 등이다.

 

 

더불어, 이제 더 맞거나 맞힐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백신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따지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주의를 요한다!). 로버트 시어스의 <우리집 백신 백과>(양철북, 2014)나 팀 오시의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어문각, 2006) 등이 가정 상비약처럼 집안에 챙겨놓을 만한 책. 아니 '상비약'이란 비유가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후나세 슌스케의 <약, 먹으면 안된다>(중앙생활사, 2013)를 떠올려 본다면(의사나 약사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저자일 듯). "약, 절대로 먹으면 안돼!"란 말을 대놓고 한다면, 혹 이런 대꾸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너, 약 먹었냐?"

 

1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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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배송받은 연간물은 <2014 한국출판연감>(대한출판문화협회, 2014)이다. 이런 연간물까지 받은 건 출판계 개관 파트에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인문사회' 편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막상 포스팅하려고 보니 아직 올 연감은 알라딘에 입고가 되지 않은 모양이고, 2013년 연감만 뜬다. 정가 120,000원이나 하는 책을 일반 독자가 구매해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기에 지난해 실었던 글을 옮겨놓는다. 2012년에 출간된 인문사회 도서에 대한 간략한 (그리고 어느 정도 주관적인) 개관이다.  

 

 

2013 한국출판연감: 인문사회

 

전반적인 출판시장의 침체가 계속됐던 2012년에도 인문사회 출판의 대세는 ‘힐링’이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악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그 뒤를 이어서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 <엄마수업>, <방황해도 괜찮아> 등과 김난도 교수의 후속작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이 사회적 분위기를 집약해준다. 연말 대선에 발맞춰 정치 관련서가 부쩍 많이 출간됐던 것도 2012년의 주된 출판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몇 권의 화제작과 이슈를 지표로 삼아서 2012년 인문사회 출판의 흐름을 짚어보기로 한다. 

 


2012년 봄에 출간돼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다. 그보다 먼저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처음 소개된 저자는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철학으로 박사학위와 교수 자격을 취득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2010년에 출간돼 호평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얇은 분량에 비해 만만찮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책이 국내에서 수만 부나 팔려나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무엇이 어필한 것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제목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피로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피로사회’란 말만큼 리얼하게 다가오는 말도 드물었으리라.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말하는 ‘피로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자기 착취 사회를 가리키는 ‘성과사회’와 그로 인한 ‘우울사회’의 대안이라는 점이다. 그는 탈진의 피로와는 대조되는 무위의 피로, ‘근본적 피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막간의 시간’을 가능케 하는 피로다. 곧 피로사회는 성과사회의 착취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다. 우리에게 더 와 닿는 표현으로 하자면 ‘휴식사회’나 ‘안식사회’라고 해야 할까. 자기계발서의 지향과는 정반대의 문제의식을 내장한 <피로사회>가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간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피로사회>의 조용한 붐은 2012년의 화젯거리로 모자라지 않는다. <시간의 향기>까지 저자의 책이 연이어 소개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마도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낸 도쿄대 교수 강상중과 함께 국내 독자에게는 가장 친숙한 재외 인문학자로 꼽히게 될 성싶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직시하도록 돕는 것은 인문사회 도서의 기본 덕목이다.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위기 국면은 현재의 지배적 체제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요청하는데, 2012년에도 그러한 요청에 부응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국내서로는 서민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선대인의 <문제는 경제다>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경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부제대로 ‘버리고, 바꾸고,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짚어본 책이다. 제윤경‧이헌욱의 <약탈적 금융사회>도 가계 부채 1000조, 하우스 푸어 150만 가구 시대가 어떻게 도래하게 됐는지를 살피면서 그 책임을 추궁한다. 요지는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금융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고 책임은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약탈적 금융 시스템’에 있으며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역서 가운데서는 마우리치오 마자라토의 <부채 인간>이 ‘부채’가 단순히 개인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문제라는 사실을 밝힌 책이다. 오늘날에는 국가기관마저 금융기관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신자유주의는 부채의 억압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파괴한 일상적 삶의 체험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은 미국의 사회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이다. 2011년의 화제작 <긍정의 배신>을 통해서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강력한 신념 체계로서 긍정주의는 신랄하게 공박한 바 있다. 2012년에도 ‘워킹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와 ‘화이트칼라 구직기’ <희망의 배신>이 연이어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원제와는 다르지만 번역본의 제목에는 모두 ‘배신’이란 말이 붙어서 ‘배신 3부작’이라고 불리게 됐다. <노동의 배신>은 저자가 50대 후반의 나이에 저임금 노동의 실상을 몸소 겪고 쓴 일종의 ‘체험 삶의 현장’으로서 저임금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구직난을 다룬 <희망의 배신>에서 저자는 기업체 임원급으로 취업하려고 수개월간 유료 코칭도 받고 네트워킹 행사에도 참여하고 이미지 카운슬링도 받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기술과 노동을 파는 블루칼라 노동자와는 ‘자기 자신’까지 팔아야 한다는 사실은 화이트칼라의 노동현실을 잘 집약해준다. 요컨대 일자리의 안정성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희생되고 있는 것이 그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의 필연적 귀결이 저자가 ‘중산층 대참사’라고 부른 중산층의 몰락이다.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현실이 아니라는 데 ‘배신 3부작’이 갖는 실감이 있다. 그것은 현직 사회부 기자가 대한민국 청춘들의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묶어낸 임지선의 <현시창>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실감은 자연스레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과 그 대안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조이스 애플비의 <가차 없는 자본주의>와 E. K. 헌트의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 크리스 하먼의 <좀비 자본주의>,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등이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함께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면, 하워드 진과 앨런 마스의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왜 사회주의인가>와 세바스티안 둘리엔 등의 <자본주의 고쳐쓰기>,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등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선하고 변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끄는 철학자는 2012년 6월에 방한 강연을 갖기도 했던 슬라보예 지젝이다. 인디고 연구소에서 슬로베니아의 지젝 자택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과 방한 강연을 묶은 <임박한 파국>, 그리고 아랍의 봄에서부터 월가 시위까지 2011년의 위험한 꿈들에 대한 분석으로서 <멈춰라, 생각하라> 등이 2012년에 나온 지젝의 책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지젝은 먼저 ‘임박한 파국’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자 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중국, 북유럽 등 성공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국가 기능이 망가져 있는 콩고와 같은 나라도 포함한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애플만 하더라도 아이패드의 위탁제조업체 폭스콘의 공장은 중국에 있다.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말미암아 중국 노동자들을 연쇄 자살로 내몬 기업이다. 이런 폭스콘이 새로운 성공신화를 쓴 애플의 이면이다. 중요한 것은 폭스콘 없는 애플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그러한 어두운 이면과 배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러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매뉴얼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멈춰라, 생각하라’는 주문을 던지는 지젝은 오늘날 좌파의 임무는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에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대선이 있었고, 연말에는 우리도 대선을 치렀다. 결과적으론 박근혜·문재인 양자 대결이 됐지만 선거의 가장 큰 변수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였다. 대선에 출마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대담 형식을 통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적, 언론사 파업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안철수의 생각>은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이와 더불어 강준만의 <안철수의 힘>도 멘토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철수의 가능성을 짚은 책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한국사회의 민감한 이슈로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도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임에도 불구하고 표절 문제를 둘러싼 다소의 논란과 함께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나꼼수’의 멤버 주진우의 <주기자: 주진우의 시사활극> 역시 이슈 도서로서 열띤 반응을 얻었다. 2012년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가 될 만한 책들이다.

 


독자들의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문 저자들의 활약도 2012년의 수확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제주도편)은 최대 베스트셀러 시리즈 저자의 명성을 이어갔고, 스캔들, 학벌, 중산층문화 등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욕망에 대한 개인적 고백을 시도한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는 인문 에세이의 범위를 넓혀주었다. <인문 고전 강의>의 후속편으로 펴낸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와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으로 김수영 시인을 다룬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는 각자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여일하게 밀고나간 책이다.

 

 

국외 저자로 시야를 돌리면,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가 10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와 책과 혁명에 관한 일본의 젊은 비평가 사사키 아타루의 강연록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열혈 인문독자들의 지지를 얻은 책으로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연말에 출간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 인문적 사유의 힘을 보여준 2012년의 책이었다.

 

1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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