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좀더 길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연암서가, 2014). 주로 피터 싱어의 책들을 번역해온 김성한 교수가 쓴 진화심리학 개설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진화심리학의 이론과 응용 정도라고 해야겠다.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건 남녀의 성 특징 내지 성적 행동의 특징까지인데(이게 1부다), 저자는 이를 응용해서 '연애의 기술'까지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다(여기까지가 2부). 그리고 할 걸음 더 나아가 연애 코칭에까지(3부는 '연애의 단계'다). 과감한 시도이면서 과욕으로도 보이는데,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왜 동성애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매혹을 느낄까? 왜 그들이 매혹을 느끼는 대상은 하필이면 동물이 아닌 인간 종의 이성(異性)일까? 노인이나 아기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젊은 남성들을 교육한다고 그러한 남성들이 그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될까? 왜 젊은 남성은 글래머인 젊은 여성의 나신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될까? 왜 이 세상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를 차는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남성들일까? 왜 누구는 연애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왜 누구는 모태 솔로로 살아갈까? (4쪽)

이런 물음을 공유한다면 흥미를 갖고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가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듯한 '모태 솔로'라면 더더욱. 하지만 생물학적인 답변으로 '인간은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이미 이성간의 매혹은 다 해명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좀 의아하긴 하다.

 

 

진화생물학 책은 입문서부터 대학 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고, 성의 진화 내지 성선택에 관한 내용도 많은 책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의 강점은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연애 코칭에까지 나선 것은 좀 과도했다. 특히나 '헌신'이란 자질 혹은 덕목으로 많은 문제를 해명하려고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연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특징인 '헌신'이다.(...) 필자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남녀의 여러 특징 중에서 '헌신'만을 가지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첫째,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녀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서 연애를 잘 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헌신 외에 마땅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둘째, 만약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 중에서 '헌신'처럼 상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책에서 소개한 남성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는 이와 같은 특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7-8쪽)

그러니까 재력이나 외모, 키, 체격 같은 다른 자질은 거의 결정되어 있는 걸로 보고, 그래도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뭔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헌신'이라고 보는 듯하다(태도는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통상 더 유리한 것은 '헌신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흠, 생각해보니 사례가 없진 않다. 좀 오래된 영화로 문성근, 김희애 주연의 <101번째 프로포즈>(1993)가 있었다. 어떤 내용이던가.

건설회사 계장인 구영섭은 99번이나 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노총각이다. 그러나 100번째로 첼리스트 정원과 선을 보게 된 영섭은 그녀가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임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약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원도 성실하고 순수한 영섭의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원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죽은 약혼자와 너무나도 흡사한 김준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늘 정원과 세상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던 영섭은 준기의 등장으로 그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예감처럼 정원은 진정한 사랑과 과거의 기억의 혼돈 속에서 준기에게 마음을 돌린다. 영섭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날 정원에게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받아달라 말하려고 하지만 시헙에 떨어지고 정원에게 주려던 결혼 반지를 강에 던져 버린다. 그러나 정원은 옛사랑의 기억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한 또 하나의 사랑을 깨닫고 야간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섭을 찾아간다.

기억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것 같은데, 결말이 '영화적' 엔딩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헌신만 갖고서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에게 대시하여 성공한 사례는 20년쯤 전에, 영화에서 한번 있었다고 할까(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는 문성근의 헌신이 아니라 김희애의 헌신이로군). 어째서 그런가. 사실 이 또한 진화심리학적 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헌신은 연애하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결정적이진 않다. 연애 코칭으로선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연애'라는 말의 용례가 제한적이어서 그렇지, '사랑'이나 '애정'으로 바꿔보면,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가' 혹은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좋아하는가'라고 바꿔보면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애'는 속칭에서 그렇듯이 '성관계'를 뜻하는 정도로 한정되지만, 인간은 유별나서 또 '수간'이란 걸 버젓이 저질러왔다. 그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책의 제목은 '왜 당신은 보통 동물이 아닌 인간과 섹스를 하는가' 정도로 눅여서 이해해야겠다. 아니 동성애자뿐 아니라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못한다는 무성애자까지 고려하면, '인간끼리의 연애'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진화심리학과 연애코칭을 결합하고자 한 시도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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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자본주의 관련서가 몇 권 출간됐지만 자주 다룬 주제이기에 학습법부터 현대사회, 사회적 영성과 관련한 책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타이틀북은 교육학 책이면서 뇌과학서로 분류되는 헨리 뤼디거 등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와이즈베리, 2014)다.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이 부제. 소개는 이렇다.

 

11인의 학자가 10년간 수행한 ‘교육현장 개선을 위한 인지심리학의 응용’ 연구를 집대성한 하버드대학교 출간 교육학 명저! 자기주도학습은 틀렸다. 최고의 선수는 훌륭한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 밑줄 긋기, 강조하기, 벼락치기, 반복 학습, 집중 연습은 안다는 착각을 일으킬 뿐 그렇게 익힌 지식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지식과 기술을 더 잘 배우고 더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즉각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학습법은 무엇인가? 독보적 실력의 신경외과의사, 미식축구 챔피언 팀 코치, 꼴찌에서 일등이 된 의대생, 농업 기술을 독학으로 익힌 정원사, 88세의 피아니스트와 기억력 대회 우승자까지, 생생한 사례와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된 학습법을 소개한다.

내주에 기말시험을 앞둔 중학생 아이가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책이지만, 이제 막 새로운 공부에 눈뜬 중년 독자들에게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두번째는 독일의 르포작가 그레타 타우베르트의 <소비사회 탈출기>(아비요, 2014).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가 부제다. 물론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점점 심각해져가는 재정 위기, 자원 고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는 이런 두려움이 한순간의 심리적 문제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특히나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로 점철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이미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그레타 타우베르트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정말 모든 것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면 어떻게든 최악의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여긴 저자는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1년간의 생존 연습을 통해 실험해보기로 한다.

우리도 점차 이러한 탈출법을 연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낭비로부터의, 쓰레기로부터의 탈출이 생존의 관건이 되는 시대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번째 책은 시각과 근대성의 문제를 다룬 <관찰자의 기술>(문화과학사, 2001)의 저자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2014)이다. '잠을 추방한 테크노자본주의 시대에 관한 보고서'로서 "‘24/7(Twenty-four seven)’ 체제, 즉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의 풍경과 일상을 분석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이라면 일독해볼 만한 책이지 싶다(수면 부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지만).

 

 

14인의 신학자와 비평가가 쓴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이 네번째 책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를 묻는다. "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이해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마음 · 감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공감 행위에 관한 신학적 · 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사회적 영성’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치유와 배려, 희생과 배품을 말하는 ‘윤리적’ 언설들이 가득하다. 지은이들은 그 안에서 영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망각해온 공동체적 · 관계적 영성을 찾아내고 그 효과를 새로이 읽어내고자 한다."

 

끝으로 청어람아카데미 대표이자 복음주의 운동가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2014). "가나안 성도는 누구이며 왜 교회를 떠났는지, 이들을 탄생시킨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아울러 이들의 존재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며, 이들이 찾아가는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간다." 가나안 성도가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다. ‘안 나가’를 뒤집어 나온 말이 ‘가나안’이고, '가나안 성도'란 오늘날 제도 밖에서 신앙을 찾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전체 그리스도인 수에 비하면 아직은 소수다. 그래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사회적 영성이건 신앙이건 간에 지금의 한국 교회 안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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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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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회 탈출기-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레타 타우베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아비요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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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13,800원 → 13,110원(5%할인) / 마일리지 550원(4%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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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김진호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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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쓰기를 다룰 때 언젠가는 한번 언급하려던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안톤 체호프 전문가 피에로 브루넬로가 엮은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청어람미디어, 2014). 부제가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으로 특이하게도 체호프의 <사할린섬>을 다룬 책이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섬>(동북아역사재단, 2013)이라고 번역돼 나온 책. 그러니까 <사할린섬> 입문서 겸 체호프적 글쓰기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체호프의 사할린섬 여행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가 쓴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원저는 2004년에 나온 이탈리아어본이고 2008년에 영어본도 출간됐다(다시 확인해보니 영어판은 다른 책이다.브루넬로가 편집하긴 했지만, 영어판은 제목 그대로 '체호프처럼 글쓰는 법'을 다룬다).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본을 옮긴 것인데, 이탈리아어본의 표지는 이렇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영어판에서, 부제는 이탈리아어판 제목에서 가져온 듯하다.

 

 

1890년 체호프가 만난 사할린섬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는 3개월 간 체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보고서 <사할린섬>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곤 할 수 없어도 강제수용소에 대한 좋은 보고서이다. 마치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결과물 같은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조사하는 동안 보고서는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저자는 <사할린섬>을 체호프가 의대 박사논문으로 구상했다고 말하는데, 나로선 들은 바가 없어서 이 대목은 체호프의 전기에서 확인해볼 사안이다).  

 

인상적인 건 체호프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안톤 체호프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는 식사 초대에 응하고, 낚시를 하거나 길을 가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든 이웃의 말을 믿고, 편견 없이 정직하게 관찰하고, 소식을 직접 확인하고,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 못지않게 체호프에세 배울 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체호프의 놀라운 사교성'이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래하는 자와 함께 노래할 수 있고, 술고래와 더불어 취할 수 있는 그의 개방적인 성격" 말이다. 톨스토이처럼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성격이다. 체호프가 알렉세이 수보린에게 보낸 편지글을 빌리자면, "톨스토이 등은 "장군처럼 뼛속 깊이 독재적인 사람들"이다.(16쪽)

 

체호프는 톨스토이를 누구보다 존경했지만, 의사 출신 작가답게 인물이나 (<부활>에 대한 혹평에서도 확인되듯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사할린섬>의 보고서 문체 또한 그런 태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할린섬>은 갖고 있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이사 뒤에 아직 찾지 못해서(한국어본은 또 어디에 있나?), 아직 완독을 미뤄두고 있는데,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는 좋은 자극이자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여차하면 영어판도 구해볼까 싶다).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심지어 아직 읽거나 되읽을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내년에는 체호프에 대한 (집중)강의도 계획해봐야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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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북플이 생기면서 즐찾이 하루에 수십 명씩 늘어나고 있고(오늘로써 5000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친구신청도 쇄도하고 있다(오늘로써 120명이 넘어섰다). 가만히 있어도 활동량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없던 피로감마저 느껴진다(뭔가 일을 하나 더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너무 많은 친구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조만간 겪게 될 듯한데, 오프라인에서는 친구들과 분기에 한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이렇게 '사교적'이 되다니 알 수 없는 게 온라인 세계다(그럼에도 아직 북플에 익숙지 않아서 검지로 클릭하는 것만 하고 있다). 푸념은 푸념이고, '이주의 책'을 고르려다가 따로 처리해야 할 저자들도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한번 더 고르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두 역사학자만 따로 적기로 한다. 미시사로 유명한 내털리(나탈리) 데이비스와 한국사 연구자 에드워드 슐츠다.

 

 

먼저, 내털리 데이비스. 1928년생이니까 이젠 상당히 연로한 학자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르탱 게르의 귀향>(지식의풍경, 2000)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주된 연구분야는 16세기 프랑스사다. 16세기 프랑스의 선물 문화를 다룬 <선물의 역사>(서해문집, 2004)와 16세기 한 무슬림 책략가의 삶을 다룬 <책략가의 여행>(푸른역사, 2010)에 이어서 이번에 나온 건 <주변부의 여성들>(길, 2014)로 '17세기 세 여성의 삶'이 부제다. 1995년작.

유럽과 일본의 종교를 비교 연구해 이른바 ‘다중적 근대성’을 주장한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근대화: 비교의 관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책에서 그녀는 17세기 세 여성, 즉 독일계 유대인 상인 글리클 바스 유다 라이프, 프랑스 출신 가톨릭 선교사 마리 기야르,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를 넘나들며 활동한 신교도 화가이자 곤충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을 비교한다. 유럽 내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았고 종교, 직업, 계급이 달랐고, 결혼생활의 방식과 자녀 양육에 대한 태도까지도 모두 달랐던 세 여성의 삶을 각각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데이비스는 17세기 유럽의 도시 여성의 삶에 열려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하고자 한다.

17세기 여성의 삶이면 문학작품을 통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운데, 그런 난점을 돌파해줄 만한 책으로 여겨진다. 원로 학자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작.

 

 

그리고 미국의 한국학자로 고려사가 전공인 에드워드 슐츠.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를 영역하기도 한 학자다.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무신과 문신>(글항아리, 2014)이 이번에 출간됐다. '한국 중세의 무신정권'이 부제.  '무신정권시대'라는 용어로 우리에게 각인된 상식에 어떤 통찰을 더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려의 무신 집권기를 다룬 책으로, 해외 한국학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저작이다. 최충헌의 무신정권을 집중 연구한 저자는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무신정권과의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궁리는 연구로 이어졌다. 저자는 박정희와 최충헌 모두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고, 또한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한계 속에서 문치文治를 중시한 것 역시 공통점으로 꼽는다. 저자는 무신 정권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평가들과 달리,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제도적으로 어떠한 발전을 이루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역사 해석의 한 관점을 제시한다.

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는 해외 한국학의 좌장격인 제임스 팔레 교수의 견해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슐츠 교수의 책은 한국사의 중요한 발전이 일어난 1170년부터 한 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의 수립 과정에 대한 매우 소중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 기간은 12세기 후반 일본 가마쿠라 막부와 일부 닮았지만, 고려에서 무신은 중앙에서 권력을 장악해 국왕을 무력화시킨 반면 문신은 그대로 관직에 두었다. 이런 무신정권 시대는 한국이 저항하는 세력에 맞서 중국 방식의 문신 통치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며, 고려왕조의 관습과 제도가 문신이 통치하며 왕권이 강화되고 유교 규범이 지배한 조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고려 역사의 이런 중요한 시기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업적이다.

 

그에 상응할 만한 업적이 국내에는 뭐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통사의 일부가 아니면 학술논문들이 좀 있으려나. 말이 '국학'이지 어떤 주제이건 간에 막상 깊이 있는 저작을 찾으려고 하면 빈곤해 보이는 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인 듯싶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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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목전에 둔 11월의 마지막 주말, 이라고 해도 특별한 감회는 없고 오후에 일정이 있을 뿐이다. 외출하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로만 골랐는데, 작고한 재일 은둔작가 손창섭을 머리에 올린 건 정철훈의 <내가 만난 손창섭>(도서출판b, 2014) 때문이다.

 

 

몇년 전에 <잉여인간> 등 손창섭의 대표작 몇 편을 강의한 적이 있고 그때 연구자료도 여러 권 구해 읽었었다. 그래도 <내가 만난 손창섭>이 미리 나왔더라면 아주 요긴했을 것 같다. 거꾸로 이제라도 손창섭을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겐 유익한 참고가 되겠다. 부제는 '재일 은둔 작가 손창섭 탐사기'. 손창섭의 독자라면 자전적 단편 '신의 희작'이 얼마만큼 실제에 부합하는지 궁금할 텐데, 이 역시 탐사기에서 확인할 사항. 이 탐사기의 출간과정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손창섭(1922-2010). 전후(戰後)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손창섭은 월북 작가도 아닌데, 생몰 연대 가운데 한쪽은 지난 30년 간 비어 있었다. 1973년 일본인 아내 우에노 지즈코와 딸 도숙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국내 문단과 소식을 끊고 있었던 재일(在日) 은둔 작가 손창섭을 찾아나선 이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문학저널리스트인 정철훈(55)이다. 일찍이 단편 '신의 희작'(1961)에서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전부가 싫은 것이다.”라며 이 땅의 시인과 소설가들의 선민의식을 냉소했던 손창섭의 행방이 궁금했던 지은이는 2005년 <손창섭 단편 전집 1.2>(가람기획)과 장편소설 <유맹>(실천문학사)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이 책들의 인세는 과연 손창섭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품고 손창섭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손창섭을 아는 분 누구 없습니까?”라고 물은 지 4년. 아무 응답도 들려오지 않자 정철훈은 과거 손창섭과 알고 지냈던 국내 출판계와 문학계 인사들을 직접 수소문한 끝에 손창섭의 일본 주소를 손에 넣은 뒤 무작정 일본으로 향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인 셈.

 

 

 

작가 황석영 선생의 <여울물 소리>(창비,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초판을 읽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뿐한 마음이다. 장편소설로 보자면 <바리데기>와 <강남몽>에 이어지는 작품. 작가의 말에서 "어쨌든, 나는 이 작품으로 한 시기를 끝내면서 새로운 들판을 찾아 떠나려 한다"고 적었다. 그렇게 읽어달라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시대의 거장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작가는 초판본(2012)의 오류를 바로잡고, 1년여에 걸친 치열한 퇴고를 통해 한결 정갈한 작품으로 <여울물 소리>를 재탄생시켰다. 1894년 사회적으로 고착된 부패와 외세의 내정간섭에 맞서 들불같이 타오른 혁명의 현장을 배경으로 작가는 피폐해진 민중의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소설은 '반동의 시대'인 19세기 후반부를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꾼(전기수)이자 혁명가인 주인공의 생애를 무게감 있게, 때때로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경쾌하게 그려낸다. 임오군란(1882)과 동학혁명(1894), 청일전쟁과 갑오개혁(1894)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전면과 배면에 등장함으로써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만든다.

올해 나온 황석영의 작품으론 한국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온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2014)과 김석만 등이 각색한 <한씨연대기>(지만지, 2014)가 있다. 그렇게만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재일 지식인이자 저술가 서경식 선생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가 출간됐다. '순례'로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2002),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1)에 이어지는 것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 서경식이 ‘조선 민족’ 미술가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토대로 묶은 미술 순례의 기록이다. 저자는 55세가 되었던 2006년부터 2년 동안, 연구를 위해 한국에 체재하게 되었고, 너무 늦어 때를 놓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참에 같은 민족의 언어, 습관뿐만 아니라 문화, 특히 미술에 대해 가능한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그 바람을 조금씩 이루어나갔다. 조국의 민주화를 갈구하며 머나먼 이국에서 미술관들을 순례한 지 20년, 서경식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조선’의 미술, 미술가들과 만났다. 이 책은 그 길고 긴 여정의 중간보고다.

'중간보고'라고 하므로 저자의 순례는 앞으로 더 이어지는 모양이다. 서양미술과는 달리 '조선미술'은 비교적 쉽게, 그리고 가까이 접할 수 있을 듯싶어서 그의 순례기가 기대된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그랬듯이 미술을 바라보는 속깊은 눈을 우리는 조선미술에 대해서도 갖게 될 것이다...

 

1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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