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에서 발행하는 월간 '다솜이 친구' 1월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감각의 도서관'이란 꼭지를 연재하게 첫번째 주제는 '경제'였고('새해에 읽는 희망의 경제'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 2014)와 <사기>의 <화식열전>(민음사판으론 <사기 열전2>에 수록돼 있다)을 다룬 신동준의 <사마천의 부자경제학>(위즈덤하우스, 2012)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이 되었다.

 

 

다솜이 친구(15년 1월호)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살림살이 걱정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경제가 무엇이길래? 새해의 첫 독서거리로 경제서를 고르는 독자가 던져볼 만한 질문이지 싶다. 경제란 무엇이고, 그것은 왜 중요하며, 과연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이달에는 그런 원론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해주는 신간과 고전을 함께 읽어보려고 한다.

 

우리가 경제학을 배워야 할 이유

경제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자연스레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우리에게 친숙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강의라면 좋은 출발점이지 않을까. 더구나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교과서’를 표방하는 책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다. 부제만 보면 두 가지가 포인트이다. ‘지금 우리를 위한’ 강의라는 것과 ‘새로운 경제학교과서’라는 것.


저자가 염두에 둔 ‘우리’는 일반 시민으로서 독자를 말한다. 흔히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수식으로 채워진 경제학은 전공자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몇 차례 경제위기를 통해 경험한 것은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경제학이 과학인 양 행세하지만 결코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의미의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딱 떨어지는 한 가지 답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의 경제이론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항상 복수의 답안이 선택지로 주어진다. 따라서 어떤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강도 높은 정치적 행위다.


‘새로운 경제학교과서’의 목표는 ‘책임있는 시민’이 갖춰야 할 경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학자이지만 장하준은 전문 경제학자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전문가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더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란 해리 트루먼의 말을 인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전문가란 아주 좁은 영역을 잘 아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대개 편협한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전문 경제학자들의 말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를 알고 이해하는 ‘경제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 ‘교과서’인 만큼 기본적인 지식과 시각을 다루지만 ‘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를 다룬 장만 읽어보아도 경제를 보는 시야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또 경제학의 다양한 접근법을 비교하는 장은 경제학파에 대한 일목요연하면서도 충실한 소개로 저자의 명성에 값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본성

근대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탄생한 만큼 경제학도 서양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재고하게끔 해주는 책이 있다. 너무도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의 <화식열전>편이다. 다양한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총 52명의 행보를 소개한 열전으로 신동준의 <사마천의 부자경제학>은 이를 일컬어 “동서양을 통틀어 사상 최초의 경제·경영 이론서”라고 부른다.

 

<화식열전>의 핵심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못 박은 것이다. 즉 부(富)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다. 화식(貨食)이란 무엇인가. ‘식화’라고도 쓰이는 이 말은 <서경>에서 따온 것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원칙 가운데 먹는 것(食)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재화(貨)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역사서의 <식화지>는 한 시대의 사회경제사를 기술한 것이다.

 


<화식열전>에서 사마천이 따르는 입장은 ‘관자’를 대표격으로 하는 상가(商家)다. 제자백가 가운데 상가는 부민부국, 곧 백성과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상도’를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겼다. <관자>에 나오는 주장으로 “백성을 얻는 방안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안은 없다.”는 것이다. 공자와 순자의 유가에서는 극기복례의 예치를 강조했지만 관중과 사마천은 필선부민(必先富民)이 통치의 요체라고 보았다. 치국평천하의 길은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민의 방도로 <화식열전>은 중농이 아닌 중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는 모두 중농을 근간으로 했다.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중상주의로의 전환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처음 이루어진다. <화식열전>의 지혜가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기>의 <화식열전> 편이 2천여 년 전의 저술이지만 21세기에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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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안 본 건 아닌데, 영화 얘기가 뜸했다. 연말 결산 기사를 보다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그래서 나도 볼 뻔했던)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의 <리바이어던>(2014)이 내겐 올해의 영화로 유력했겠다 싶어 몇 자 적는다. 올 칸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런던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agMj9DNUuRo). 홍상우 교수의 소개를 일부 옮긴다.

 

2014년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리바이어던>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 이익의 충돌을 소재로 하여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은 "러시아에서 날아온 새로운 걸작", "즈뱌긴체프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까?", "타르코프스키의 충실한 신봉자로 간주되는 즈뱌긴체프는 질감이 풍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선굵은 강렬한 영화를 창조했다" 등과 같은 호평이었다.

 

이 작품의 주요 사건은 바렌츠 해 부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지만, 개인의 이익과 권력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이 양자의 갈등에서 누가 승자가 되는지는 분명하다. 영화에서 시장은 평범한 가정의 집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집에서 주인공 니콜라이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집을 빼앗으려는 시장은 이미 마피아 두목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경찰, 법원 등 모든 권력 기관을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 그는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능숙하게 처치한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칸에서 시사가 끝난 후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는 당혹감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즈뱌긴체프 감독이 이러한 급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리라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 포커스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이 영화에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 관리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 불법적인 국가 사업 동업자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뒤봐주기,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축성에 나서는 교회 등 현대 러시아의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홍상우)

유가 하락으로 인한 루블화 약세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고,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정치사회적으로 푸틴 시대에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싶었는데(사정은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다) 즈뱌긴체프의 러시아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현실을 구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증언은 될 터이니까.

 

 

1964년생인 즈뱌긴체프의 장편영화 데뷔작은 <리턴>(2003)이었다. 200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2000년대 가장 중요한 러시아 영화의 한 편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이후에 <추방>(2007), <엘레나>(2011), 그리고 <리바이어던>(2014)까지 네 편을 찍었다(국내에는 <추방>만이 '즈비야긴체프'란 감독 이름으로 출시돼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템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친 김에 올해 나온 러시아 관련서 가운데, 두 권만 언급한다. 토머스 레밍턴의 <러시아 정치의 이해>(한울, 2014)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치에 대한 개관이다.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인데, 사실 너무 비싸서 구입은 보류하고 있지만 구성상으로 보자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러시아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러시아 정치의 역사적 연원에서 시작해 소련 시기 정치체제의 유산,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리더십, 행정부와 의회, 러시아 정당체제의 성격, 러시아의 정치문화, 러시아 시민사회와 이익집단, 러시아 경제의 변화와 현황, 러시아 사법체계의 속성, 러시아의 국제관계 등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또 한권은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 절망적인 세계를 보여주지만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는 즈뱌긴체프와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아다. 그들의 정신으로 지탱하는 러시아...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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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이맘때 TV에서는 각종 시상식이 생중계된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올해의 책'을 골라보았다. 좋은 책은 많기에 조건으로 세운 건 내가 쓴 책 혹은 리뷰를 쓴 책이어야 한다는 것. 그 가운데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2014)와 승계호 교수의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반니, 2014)는 최근에 따로 다뤘기에 제외했다. 그래서 고른 건 유일한 단독 저서로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 그리고 이번에 2,3권이 한꺼번에 나온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시리즈. 이어서 세 권의 에세이 혹은 비평서로,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이후, 2014),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2014), 토니 주트의 <재평가>(열린책들, 2014) 등이다. 올해도 번역서 리뷰에 치중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내년에는 국내서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봐야겠다. 아무려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 고른 책이란 점에서 조촐하긴 하지만 나대로 기억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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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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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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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침묵- 진보를 비롯한 오늘날의 파괴적 신화에 대하여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문강형준 / 이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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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3 세트 - 전3권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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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많이 언급된 일로 올해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14년을 이틀 남겨놓고 출판 쪽에서는 끝내 마땅한 관련서가 나오지 않는가 했더니 '서프라이징'하게도 한 권이 출간됐다. 박상섭 교수의 <1차 세계대전의 기원>(아카넷, 2014)이다.

 

 

마키아벨리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가와 폭력, 특히 전쟁이 주된 관심 분야였다. 사실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기원'이란 제목을 붙이기 어려운데, 국내 학자의 저작으로 읽을 수 있게 돼 반갑다. 소개는 이렇다.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사라예보에서 울려 퍼진 총성으로 기억된다. 슬라브 민족주의자 프린치프 가브릴로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쓰러뜨린 총탄은 세계의 화약고 발칸에 불을 붙였고, 1차 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간인을 제외한 사상자만 1,000만을 헤아리는 대(大)전쟁의 '기원'을 모두 설명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영국과 독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패권국들의 경쟁이 그 정점에 이르던 20세기 초, 전쟁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기원>은 구조와 행위자라는 거시적 지평과 미시적 분석을 통해 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종합적으로 밝혀낸다.

 

1차 세계대전에 관한 기본서는 역시나 저명한 전쟁사가 존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9)로 돼 있다. 피터 심킨스 등 3인 공저의 <제1차 세계대전>(플래닛미디어, 2008)도 이 전쟁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

 

 

올해 나온 책으로는 피터 하트의 <더 그레이트 워>(관악, 2014)가 있지만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원서는 옥스포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짐작대로 1차세계대전의 기원을 다룬 책도 다수 출간돼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숀 맥미킨의 <1차 세계대전의 러시아 기원>을 읽어보고 싶다. 오래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잊어먹은 책이로군...

 

1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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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용으로 오늘 주문한 책들 가운데는 새로 번역된 <안나 카레니나>가 포함돼 있다. 한국어본이 아니라 영어본이다. 올해는 무려 두 종의 새 번역본이 각각 옥스포드대와 예일대 출판부에서 출간됐다(둘다 11월에 나왔는데, <안나 카레니나> 번역사에서 올해는 기념비적인 해일 거라고 혼자 상상한다). 물론 상당히 많은 번역본이 이미 나와 있지만(최초의 영어본은 1901년에 나온 콘스탄스 가넷 여사의 번역판인 듯싶다). 하지만 예전 번역판들이 톨스토이의 문체를 잘 못 살리고 있다는 게 새 번역판 역자들의 판단이다.  

 

 

옥스포드판은 로자먼드 바틀렛(Rosamund Bartlett)이 옮겼고, 예일판은 매리언 슈워츠(Marian Schwartz)가 옮겼다. 둘다 베테랑 번역자이자 저술가로서 영어권 러시아문학 번역계의 중견으로 보인다. <안나 카레니나>만 놓고 보자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라고 할까. 예일판에는 원로 러시아문학자 게리 솔 모슨의 서문도 붙어 있는데, 모슨은 <우리시대의 안나 카레니나>(2007)의 저자로서 그간에 <안나 카레니나> 번역이 상당히 미흡하다고 지적해온 바 있기에, 그의 기대를 충족시킨 번역본은 과연 어떤 수준인지 궁금하다. 예일판만 구입하려다, 아마존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읽은 대목에서는 옥스포드판도 가독성이 좋아서 같이 주문했다. 영어본으로도 <안나 카레니나>는 두어 종 갖고 있는데, 이제 그 수가 한국어판과 비슷하게 됐다(한국어판으로는 다섯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매학기 강의에서 다루게 되는데, 주로 이용하는 건 문학동네판이다(몇 차례 강의할 기회가 있었고,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문학동네, 2013)에 해제도 쓴 인연이 있다). 안정감 있는 번역이긴 하지만 몇몇 고유명사 표기와 유명한 첫 문장 번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에서 인용본으로 쓴 건 펭귄클래식판이다. 문학동네판이 원로 학자의 번역이라면 펭귄클래식판은 젊은 세대 연구자의 번역이다. 더 낫다, 못하다와는 무관하게 언어적 감각에서 그런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이 번역판으로 읽은 독자가 많지 않아서 강의에서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민음사판도 많이 읽히는 번역인데, 좀 투박한 느낌을 준다. 세 번역본을 자세히 비교해본 건 아니지만(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 힘들다) 아무래도 나로선 좀더 잘 읽히는 번역본을 선호하게 된다. 새로운 기준이 될 만한 영어판 두 종을 입수하게 되면 영어 번역에서 어떤 차이들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김에, 한국어판에 대해서도 검토해보고 싶다(그럴 여유가 생길까?).

 

 

여하튼 묵직한 하드카바본의 두 영어본을 주문해놓고 잠시 기분을 내느라 페이퍼를 적었다. 리뷰 기사를 몇 개 읽어보다가 다시금 1935년작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을 맡았던 그레타 가르보의 사진과 마주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드는 안나의 이미지다(러시아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안나다. 참고로 가르보는 스웨덴 출생이다). 그간에 안나 역을 맡았던 비비언 리나 재클린 비셋,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도 비교가 안 된다. 실제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 이미지를 살려내지 못해 유감스럽지만. 게다가 브론스키 역의 배우가 최악의 캐스팅이었고(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브론스키!).

 

아무튼 겨울은 <안나 카레니나>를 포함해 러시아문학 작품과 만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당신이 그런 기회를 놓치겠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을 저렴하게 만드는, 최소한 마흔 일곱 가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러시아문학을 읽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다...

 

1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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