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청년 전태일의 50주기다.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도 50주년 기념판으로 다시 나왔기에 아침에 주문했었다(곧 배송될 예정). 관련서도 몇 권 같이 나왔다. 교통방송에서는 특집다큐도 만방송했기에 오전에 유튜브로 시청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또다른 책은 <전태일 실록1,2>(동연)인데, 두 권 합계 1200쪽이 넘는다. 저자가 37년간 300인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이소선 여사의 증언도 더했다고 한다. 
















아무려나 50주기를 맞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면 좋겠다. 나로선 한국현대문학 강의를 하면서 한국현대사에 관해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내달에는 황석영 소설들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1960년의 출발점이 4.19였다면, 1970년대의 출발점에는 전태일의 분신이 놓여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 관한 책도 다시 검색해보니 이병천 교수의 책이 신간으로 나왔다. <한국 자본주의 만들기>(해냄). 앞서 낸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속편이거나 개정판인 듯싶다.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관련서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타이틀만 봐서는 흥미로운 책들이다(이 주제의 책들을 훑어볼 시간이 없다). 그 가운데서는 오늘 발견한 저자는 피터 플레밍.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에 이어서 최근에 <슈거대디 자본주의>가 번역됐다. '친밀한 착취가 만들어낸 고립된 노동의 디스토피아'가 부제. 


"후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과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분석하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온 런던 대학의 피터 플레밍 교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슈거 대디 자본주의”라 이름 붙였다. 규제와 감시 체계의 테두리 바깥, 기술 진보와 금전 거래의 접점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라는 당의정을 다시 꺼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책은 경제적 이성을 공공재로서 다시 획득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끝으로, 오늘날의 전태일이 있다면 플랫폼 노동자가 아닐까 싶은데, 노동분야의 관련서로 다수의 책이 나오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부터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까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챙겨놓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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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공동편집자로 참여한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전3권)가 완간되었다. 1권이 2018년에 나왔으니까 만 2년만이다(번역에는 물론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을 듯싶다). 앞서 1,2권이 나왔을 때는 아직 완간이 안 됐으니까, 란 핑계를 댔었는데, 이제는 옴짝달싹 못하고 이 세 권의 두께와 마주하게 되었다. 
















제목에서 '경이로운'은 물론 '철학의 역사'를 수식하지만, 책의 존재 자체도 경이롭다. 이 정도 분량의 철학사가 1인 번역으로 무탈하게 완간되었다는 사실이 경탄스럽고, 두께와 함께 그 이상으로 묵직한 책값이 또한 탄복할 만하다(권단 8만원). 든든한 철학사 내지 철학사전을 장서용으로 마련했다고 하면 되겠다(독서용이라고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번에 나온 3권(현대철학)은 '독일 관념주의'를 첫 장으로 하여 '20세기의 철학과 과학'을 마지막 장으로 마무리된다. 다루는 범위가 넓어서 좁은 의미의 철학사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의 현대 인문학사로도 읽힌다(대략 역사학만 제외된 듯싶다).



포괄적인 철학사다 보니까 방대한 분량임에도 실제 주제별 기술은 압축적이다. 헤겔에 대해 10여 쪽이 할애되는 식이다. 그렇지만 '문학과 소설 속의 부르주아 서사시'나 (실존주의 장에서) '도스토옙스키와 철학' 같은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점은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짐작에 이탈리아 철학 내지 인문학 수준의 척도가 되는 시리즈이지 않을까 싶다(문득 이탈리아 문학기행 때 들렀던 밀라노의 서점이 떠오르는군).   


아무려나 세 권을 서가에 잘 모아두어야겠다. 몇 개 장은 바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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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20-11-1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정우 선생님의 세계철학사는 어떤가요? 완결은 아직 안됐지만

로쟈 2020-11-17 12:5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완결 기다리는중. 3권이 사실 어려운 부분이죠..
 

이번주 한겨레의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를 옮겨놓는다. 지난달 미국문학 강의에서 다시 읽은 케이트 쇼팽의 <각성>에 대해서 적었다. 분량상 에드나의 선택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한겨레(20. 11. 13) 자식보다, 내 목숨보다 중요한 것


생전에는 홀대받다가 사후에야 문학사에서 복권되고 정전 작가로 재평가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미국 문학에서라면 단연 허먼 멜빌을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데, 여성작가로는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케이트 쇼팽도 여기 해당한다. 1850년생으로 19세기 후반을 살았던 쇼팽은 두 권의 단편집과 두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고, 이 가운데 두번째 장편이자 대표작 <각성>(1899)이 오늘날 그에 대한 재평가를 떠받치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여주인공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다루었다는 이유로(미국판 ‘마담 보바리’로도 불렸다) 거센 비난을 받고 절판되었던 작품이다.


여성문학이란 무엇인가. 흔히 창작자가 여성인 경우를 가리키지만, 더 중요하게는 여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뜻한다. 여성 문제란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상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불거진다. 아버지와 남편으로 대표되는 남성에 대한 예속상태에서 어떻게 동등한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가, 여성의 고유한 자아와 정체성을 어떻게 새로 정립할 수 있는가 등이 수반되는 과제다. 그런 관점에서 주인공 노라의 각성과 가출을 다룬 입센의 <인형의 집>(1879)도 여성문학에 부합한다. 그리고 여성의 각성 내지는 각성된 여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각성>은 <인형의 집>의 연장 선상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각성>의 주인공 에드나 퐁텔리에는 28살로 미국 뉴올리언스의 상류층 주부다. 남편은 중년의 사업가이고 둘 사이에는 네 살, 다섯 살의 두 아들이 있다. 에드나는 여름휴가차 머문 휴양지에서 로베르라는 청년과 만나 새로운 감정에 눈뜬다. 바로 그즈음에 에드나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는 남편의 타박을 듣고 전에 없던 눈물을 흘린다.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타박은 흔한 일이었고, 비록 잔소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남편은 친절하고 헌신적인 편으로 주변에서는 ‘최고의 남편’으로 치켜세워지는 남자였다. 그럼에도 에드나는 이례적인 압박감과 함께 고통까지 느낀다. 이는 자신의 위치, 그리고 주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라고 설명된다.


에드나의 각성은 자연스레 주부 역할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 남편 퐁텔리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각성>에는 에드나와는 다른 유형의 여성도 등장한다. 휴양지에서 친구가 된 아델 라티뇰인데, 라티뇰 부인은 2년 간격으로 세 자녀를 둔 상태에서 넷째를 가지려 한다. 그녀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행복을 느끼고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충실한 여성이다. 당시에 쓰던 표현에 따르면 아델은 ‘모성애가 넘치는 여성’(마더-우먼)이었고, 반면에 에드나는 그렇지 않은 여성이었다. 에드나는 두 아들을 사랑했지만 때로는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기도 했다. 에드나는 아델에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에게서 ‘나 자신’은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에드나에게 ‘나 자신’은 결혼생활에서 찾아질 수 없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그녀의 ‘나 자신’이 아니었다. 가까이에 있는 라티뇰 부부가 가장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여주었지만 에드나는 그들 부부의 삶을 끔찍하게 여겼고 아델에게는 연민을 느꼈다. 비록 로베르에게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로베르는 ‘당신을 떠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쪽지를 남기고 에드나를 떠난다. 설사 에드나와 로베르가 결합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결혼생활은 에드나가 꿈꾸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드나가 바다를 향해 계속 헤엄쳐나가는 장면이 <각성>의 마지막 장면이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잠시 떠올리지만, 에드나는 자신이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수영을 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에드나는 어린 시절 푸른 초원을 걷는 기분을 느낀다. 그녀에겐 그 자유가 목숨보다 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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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후의 교수들과 인문학의 미래

6년 전에 쓴 독서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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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간 밀린 책들이 많아서 페이퍼 거리도 쌓여 있는데(처리에 며칠이 걸릴 듯싶다) 일단 제쳐놓고 오늘 눈에 띈 책에 대해서. 미국의 심리학자 샌드라 립시츠 벰(샌드라 벰)의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김영사)이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저자인데, 젠더 문제에 관한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 한다. <젠더의 렌즈>가 대표작.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색다른 가족>(1998)의 번역본이다('언컨벤셔널 패밀리'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저자 자신의 결혼생활을 모델로 실험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탐색과 제안을 담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여성과 남성,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 사회 관습이 부여한 성역할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족 형태를 고민했던 페미니즘 학자의 자전적 실천기.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아내가 희생하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은 구분되며 딸과 아들을 성별에 맞게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동등한 파트너이자 부모로 역할을 다하고 젠더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한 저자는 학문적 페미니즘이 일상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낮에 케이트 쇼팽의 <각성>에 대한 짧은 리뷰를 쓰느라 여성과 결혼과 가정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 터라 샌드라 벰의 책에도 눈길을 주게 된 것. 샌드라는 심리학자인 남편 대릴과 학생과 교수의 관계로 만나 결혼하고 '평등주의 결혼생활'을 실천했다고 한다. 
















다른 실험적 사례로는 헬린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도 떠올려볼 수 있겠다. 한편으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은 또다른 결혼에 대한 모색일 텐데, 조만간 보부아르에 관한 페이퍼를 적으며 따로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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