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는 한해의 마지막 날이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밀린 페이퍼거리만 하더라도 열손가락은 채워진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란 판단에 접었다(그래도 몇 가지는 오늘내일 적게 될 듯싶다). 이런 때는 사소해보이는 일부터 손을 대든 게 수다('상수'라고 적으려다가 자신할 수 없어서 '수'라고만 적는다). 제목은 미하일 조센코(1894-1958)의 단편집이다(지난해 나온 것을 뒤늦게 구입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조센코'로 표기되었다. '조셴코'와 '조센코'의 경합.
















조센코는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단편작가다(후반기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안톤 체호프의 뒤를 잇는. 단편집 <감상소설>만 나와있었는데(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다), 이번에 한권 추가된 것. 작품은 많기 때문에(체호프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다.  


"미하일 조센코는 소비에트 시대 때인 1930~40년대 러시아 풍자문학의 거장이다. 이 책은 미하일 조센코의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를 풍자한 단편소설들을 1부로 만들고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과 행동을 맑게 그린 단편소설들을 묶어 2부로 구성하였으며 3부에서는 조센코의 문학세계와 당시의 소비에트 러시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말이 나온 김에 적자면, 망명작가 도블라토프(1941-1990)도 러시아의 대표적 단편 작가다. 
















아, 조셴코의 표기가 '조쉬첸꼬'로도 돼 있었다. 두 권의 소설(<되찾은 젊음>은 장편)이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 다닐 하름스의 단편집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도 절판돼 아쉽다.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음에도 번역본 상황 때문에 다루지 못한다. 
















하름스는 러시아 부조리문학의 대표 작가로 다수의 작품이 영어권에 소개돼 있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좊은 작가다(하름스 작품에 대해 대학원시절에 쓴 리포트를 나도 올려놓은 적이 있다). 단편들 외에 <엘리자베타 밤> 같은 대표 희곡도 소개되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바람일 뿐이다. 아무려나 '연말정산'에 러시아문학 얘기도 하나 끼워넣는다는 의미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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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20-12-3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센코와 하름스의 절판된 책들을 어렵게 구해서 읽기는 했는데
샘 강의로 듣지 못해 아쉬웠던~

로쟈 2020-12-31 21:52   좋아요 0 | URL
네, 강의의 조건인지라..^^
 

많이 나온 얘기지만 코로나19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 수년(길게는 10년 이상) 세계의 판도와 역학을 바꿔놓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 대선이 중요한 관문이 되겠다. 요동하는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경고음(웨이크업 콜)에 누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에 달렸다. 새로운 리더십과 문화, 그리고 문명의 재발명까지도 바이러스의 경고는 촉구한다...

일찍이 레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십 년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에 일어날 일들이 몇 주 만에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서 창궐했던 많은 바이러스와 같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로 그런 역사를 가속시키는 위기이다. 민주적인 아테네는 끔찍한 역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을 잃어 제도가 흔들리고 군대가 쇠약해져 군사적인 스파르타에 굴복했다. (이 비극에 대한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위대한 역사책을 맨 처음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 토머스 홉스이다.) 그리고 두 개의 재앙, 키프로스Cyprian 역병과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역병은 로마제국의 붕괴를 재촉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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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찾던 책은 결국 찾았다(키보드는 밧데리 문제였다. 무선키보드란 걸 잊고 있었다). <푸코와 장애의 통치>(그린비)를 찾았던 것인데, 찰스 킴볼의 <종교가 사악해질 때>(현암사)도 나란히 있어서 빼왔다. 사실 재간된 책이어서, '다시 나온 책'으로 묶어서 한번 언급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이래저래 타이밍을 놓치거나 잊고 지나가는 일도 흔하다.   
















앞서 같은 제목으로 나온 건 2005년(에코리브르)이었으니, 15년만에 다시 나왔다(확인해보니 원저는 증보판으로 다시 나왔다). 한국어판도 자연스레 개정판을 옮긴 게 되었으니 단순한 재간본은 아니고 개정판이라고 해야겠다. 부제는 '타락한 종교의 다섯 가지 징후'.


"주요 종교에서 나타나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타락 현상을 묘사한다. 절대적인 진리 주장, 맹목적인 복종, ‘이상적인’ 시대 확립,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 성전 선포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 다섯 가지 징후를 분석함으로써 종교 안에서 타락의 행위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종교적 약속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종교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 종교에서 어떤 현상이 나타날 때 사악해졌다고 할 수 있는가? 저명한 종교학자 찰스 킴볼 교수는 종교가 사악해지는 징후로 크게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그의 주장을 무조건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하나의 진단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가진 종교, 나아가 우리 사회에 편만한 종교 현상을 재점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굳이 추천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타락한 종교의 사례(특히 교회)의 자주 접하고 있어서(오늘도 전광훈 목사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덧붙여, 종교 분야의 다른 책까지 꼽자면, 톨스토이의 신앙론을 다시 되새겨봐도 좋겠다. 누구보다도 타락한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톨스토이는 결국 1901년에 러시아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하기도 했다.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의 책들도(해리스와 데넷까지 포함하면 '무신론의 네 기사'다) 이런 맥락에서는 일독해볼 만하다. 
















종교학자 바트 어만의 신작으로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이 어떻게 발명되었는지를 다룬 <두렵고 황홀한 역사>(갈라파고스)도 참고할 만한 책. "내게 어만의 책은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라고 마이클 셔머가 평했는데, 셔머의 책 <천국의 발명>과 <믿음의 탄생>도 앞서거니뒤서거니 도움이 되겠다. 종교가 사악해질 때, 두 눈 크게 뜨고 읽어볼 만한 책들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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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하는 일이 책들과의 숨바꼭질이다. 찾는 책이 보이지 않아서 벌이는 일(일주일 전에 만졌던 책을 다시 찾는 게 매번 미궁을 뒤지는 것 같다). 흔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자주 주의를 딴곳으로 돌린다(흠, 데스크톱의 키보드도 말썽이어서 같은 문장을 여러번 치고 있다. 이것도 스트레스군). 리커버판으로 다시 나온 이제니의 시집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문학과지성사)을 펼치게 된 사정이다. 

















언제 다룬 적이 있던가. 확인해보니, 지난봄에도 '불만'을 적었었군. "나는 왜 많은 젊은 시인들이 자폐적 세계에서 발화연습만을 거듭하고 있는지 이해 불가하다"고. 그렇다면 험담의 재탕이 되겠다. 


소개된 약력에 따르면 이제니 시인은 1972년생이고, 2008년 신춘문예로 데뷔, 2010년에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창비)를 펴냈다. 이어서 두 권은 문지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은 모르고>(2014)와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2019)이다. 출간 2년이 안 돼 리커버판이 나온 셈이군. 최근작은 현대문학사에서 나온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2019)다. 시집 제목대로, '있지도 않은 문장'의 세계가 이제니의 시세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있지도 않은 대상/세계를 적은 문장들의 세계, 그게 또한 '흘려 쓴 것들'의 세계다. 


이상이 선구적인 사례인데, 무의미시는 언어를 기호로 사용하며 시란 그 기호의 퍼포먼스다.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시가 기본적으로 의미를 배제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한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이상의 '오감도'를 중단시킨 건 독자들의 항의였다. 기본적으로 끝이 있을 수 없는 기획이다). 무의미의 남용과 범람. 의미란 지시대상(세계)과의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데, 그 지시대상을 지워버렸기에 아무런 통제나 구속을 받지 않게 되는 것. 남는 건 언어의 기호적 유희다(좋은 경우에 재미 정도는 제공한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에서 아무거나 선택해도 무방하지만, 가령 '구름에서 영원까지'를 보자. 원시가 행갈이를 하지 않고 쓰되, 구두점은 찍었다. 


고양이는 구름을 훔쳤다. 슬픔이 그들을 가깝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너의 이름뿐이다. 한때의 기억이 구름으로 흘러갔다. 흔들리는 노래 속에서 말없이 걸었다. 침묵은 발소리로 다가왔다. 돌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의 저편에서 날아오는 것. 시간의 저편으로 달아나는 것.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어둠은 빛을 발하며 어제의 귓속말을 데려왔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영원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한떼의 구름이 기억으로 흩어졌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은 언젠가 네가 주었던 검은 조약돌. 바다는 오늘도 자리에 없었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어둠이 너를 몰고 갔다. 휘파람을 불면 바람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너의 이름은 나와 돌 사이에 있었다. 나의 이름은 너와 물 사이에 있었다. 구름은 물과 돌 사이에 있었다.(...)


고양이, 구름, 돌, 빛, 어둠, 바람, 주머니, 바다 등이 오브제로 등장하고, 슬픔, 기억, 이름, 침묵, 죄, 영원 등이 소환되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정서의 구심점이 없다. '슬픔'을 지목할 수 있지만, 구체성이나 무게감을 갖고 있지 않아서 슬픔의 정서를 환기하지 않는다('막연한 슬픔'의 표현이라고 읽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 '흘려 쓴' 세계다. 아무것도 붙잡거나 붙들지 않고 흘려보내는 세계. 의미를 비워내거나 배제하는 시. 언어의 율동에 대한 연습이라고 하면 최대치의 평가가 될 것이다. 이 율동은 다양하게 변주될 수도 있다. 어차피 의미와 무관하기에 대충 뒤섞어도 된다. 


너의 이름은 나와 돌 사이에 있었다. 나의 이름은 너와 물 사이에 있었다. 구름은 물과 돌 사이에 있었다. 고양이는 구름을 훔쳤다. 슬픔이 그들을 가깝게 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영원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한떼의 구름이 기억으로 흩어졌다. 돌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어둠은 빛을 발하며 어제의 귓속말을 데려왔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어둠이 너를 몰고 갔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너의 이름뿐이다. 시간의 저편에서 날아오는 것. 시간의 저편으로 달아나는 것. 휘파람을 불면 바람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흔들리는 노래 속에서 말없이 걸었다. 침묵은 발소리로 다가왔다. 한때의 기억이 구름으로 흘러갔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은 언젠가 네가 주었던 검은 조약돌. 바다는 오늘도 자리에 없었다.(...)


이렇게 문장들을 뒤섞어놓아도, 별로 차이가 없는 시, 그게 무의미시다(이런 시의 생산은 AI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무의미한 시로 수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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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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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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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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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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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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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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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을 시간에 시집 한권을 읽었다.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이번에 파울 첼란 전집(시인의 또 다른 유작이 되었다)이 나오기도 해서(일차로 두권이 나왔다) 다시금 손이 갔다. 이번 문지판은 문학동네 포에지 같은 재간본이 아니라 리커버 한정판이다(문지에서도 재간본은 R시리즈로 나온다).

2018년 독일에서 세상을 떠나(뮌스터에 묻혔다고) 허수경은 생몰연대를 같이 적게 된 시인이다. 1964년생. 진주 시인.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던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가 첫 시집. 나는 출간된 뒤 시간이 좀 지나서, 시집이 평판을 얻은 뒤에 사서 읽은 듯하다(당시 문지와 창비시인선, 그리고 민음시인선과 실천문학 시인선까지가 독서 범위였다). 지금도 첫번째 시집이 가장 나았던 것 같은 인상이다.

문지에서 나온 <혼자 가는 먼 집>(1992)은 두번째 시집. 이번에 다시 읽으니(리커버판은 해설을 빼서 슬림해졌다) 역시나 첫번 시집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다(<슬픔>을 읽은 지 오래 되었으니 이 또한 기억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목도 그렇고 넋두리가 너무 많다. 이런 장면.

잠깐, 광화문 어디쯤에서 만나 밥을 먹는다
게장백반이나 소꼬리국밥이나 하다못해 자장면이라도
무얼 먹어도 아픈 저 점심상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
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 별달리 상처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가볼까,
캐나다, 계곡? 나무집? 안데스의 단풍숲?
모든 관계는 비통하다, 지그시 목을 누르며
밥을 삼킨다
이제 나에게는 안 오지? 너한테는 잘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들끼리
가까이하는 일도 큰 죄야, 심지어 죄라구?

‘서늘한 점심상‘의 두 연이다(이 시는 두 연 더 이어진다). 서로 어긋나서 다투는 연인의 모습, ‘비통한 관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비유컨대 당사자들은 이 장면이 몰카처럼 찍히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치 않는 듯하다. 즉 시인 자신도 시라는 걸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은 시다. ˝지금이라도 떠나가볼까˝라고 적었는데, 독일행의 힌트가 될까.

상당수의 시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의 심정을 담은 심경시로 읽힌다. 비록 절실한 감정을 읊조린 것이겠으나 (적어도 나 같은)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시는 드물다. 그나마 건진 건 ‘저이는 이제‘ 같은 시다.

저이는 이제 술을 팔지 않는다네
헐한 술을 빚던 저녁이 저이에게 있었던가
낡은 저녁 의자에 기대 노을 산숲처럼 끄덕이네
아주머니 차 한잔 파셔요 고향에 당도 못 한 나 같은 사람에겐
가슴으로 대신 누룩밭을 거두는 것을 당귀차라도 한잔.
저이가 술을 팔 때 나는 무얼 팔았던가
아주머니 편강 한쪽 주셔요 고향에 당도 못 한 저이 같은 가슴으로
생강밭을 고르는 것을 생강편 같은 인가 근처로 가는 것을
갈 수 있다면 아주머니
고향에 가지 말고 저랑 둘이서 당귀차나 끓이셔요
이미 건너온 저 물에서만 퍼내도,
퍼내도 아주머니
낡은 저녁 의자 좀 빌려주세요

직설적이지 않은 은근한 넋두리가 될 때 시의 리듬감도 살아나고 어조에 여유도 묻어난다. ˝넌 왜 날 버렸니?˝와 ˝저랑 둘이서 당귀차나 끓이셔요˝의 차이다(성숙도의 차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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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2-3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로쟈 2020-12-31 23:48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새해복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