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 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앞선 페이퍼에서 날씨에 대해 적지 않았는데 폴란드 남부에 속하지만 체코보다는 위도가 높아서인지 확실히 기온 차이가 있었다. 새벽시간인 현재 크라쿠프의 기온 영하14도(체감은 영하18도). 어제는 영하13도였고 낮에는 영하7도까지 올라가긴 했어도 체감은 영하10도 이하였다. 이번주에 한국도 한파가 찾아온다고 하니까 여기만 춥다고 할 순 없겠지만 여하튼 겨울이고 겨울여행이다(2017년 겨울의 러시아문학기행이 떠오른다. 아침에 영하20도는 기본이었던).

추운 날씨에 해는 짧아서 자유시간의 선택지는 한두가지만 가능했는데, 쉼보르스카가 자주 다녔다는 카페와 무덤(2012년 사망. 10주기였던 지난 2022년은 폴란드정부가 정한 쉼보르스카의 해였다)을 선택한 분들도 계셨고 나는 다른 분들과 차르토리스키미술관을 선택했다. 이번 문학기행 일정에는 작가박물관 방문만 포함돼 있고 미술관은 빠져 있는데 크라쿠프가 자랑하는 국립미술관이라고 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입장료는 싸지 않았다. 화요일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건 사후에 알게 됐다). 다빈치의 또다른 모나리자라는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늦게 입장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는 다빈치의 그림만 보는 걸로 생각하고 방문했다(프랑스문학기행 때 모나리자를 본 것과 짝을 맞추는 의미도 있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다빈치의 그림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모나리자와 마찬가지로 신비로운 느낌,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를 느끼게 해주었다.

미술관을 나와서는 나 혼자 오전에도 지나간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는데 ‘쉼보르스카방‘이 따로 있다는 서점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놓았지만 위치는 확인했고 크라쿠프를 떠나기 전에 재시도해볼 생각이다.

날이 밝으면 오늘은 인근의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게 된다. 어제가 쉼보르스카의 날이었다면, 오늘은 아우슈비츠의 날이다. ‘아우슈비츠의 날이 밝았다‘는 표현이 가능한가? 날이 밝기 전에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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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6일차 일정이 종료되었다. 폴란드 시간으로는 저녁 7시가 되어가는 즈음이니까 한국이라면 퇴근길이거나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넘으면 해가 지는 터라(이즈음 아침 7시반에 해가 뜨고 4시10분에 해가 진다) 오후 5시만 돼도 한밤중의 느낌이다.

아침에 시에 적은 대로 오늘은 쉼보르스카의 날이었고 크라쿠프 도심을 둘러보는 게 핵심일정이었다. 다른 때보다 여유 있는 일정. 숙소를 나선 지 10분도 되지 않아 일행은 쉼보르스카의 집에 이르렀다. 현판에는 쉼보르스카가 1929년부터 1948년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어 번역에 실린 연보에는 8살 때인 1931년부터 크라쿠프에 거주한 것으로 돼 있는데, 착오인 듯싶다.

쉼보르스카는 1948년에, 자신의 시를 처음 실어준 잡지의 편집자 아담 브워데크와 결혼하여 크루프니차 22번지 다락방에 신혼집을 차린다(1954년 이혼). 하여 우리가 찾은 곳은 처음 크라쿠프로 이사와서 그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현판이 확실한 증거가 되는지라 쉼보르스카의 집 앞에서 일행은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머지 쉼보르스카의 장소들(자주 다닌 서점과 카페, 그리고 무덤까지)은 자유시간에 관심사에 맞게 가보기로 했다.

오늘 일정의 두번째 장소는 구시가지 광장이었다. 당연히 중심부에는 성당이 있고 광장이 있고 구청사와 시장이 있는 식이다. 문학기행에서는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아담 미츠키세비츠 동상이 주목거리. 민족서사시 <판 타데우시>에 대해선 이번 문학기행출발 전에 인용해놓기도 했었다. 바르샤바의 문학박물관에 가서 한번더 언급할 예정이다.

점심을 먹기 전, 세번째로 찾은 곳은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야기엘론스키대학(야기에우워대학)이다. 당연히 폴란드에서도 가장 오래된(14세기에 설립) 대학이면서 명사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천문학의 코페르니쿠스(교정에 동상이 서 있다)와 인류학의 말리노프스키, 그리고 사회학을 전공한 쉼보르스카가 바로 이 대학 출신이다(쉼보르스카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한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도 동문이다. 이들이 다녔던 대학 건물은 현재 박물관으로 바뀌었는데 일요일이라 휴관이었다.

점심식사를 예약한 곳이 과거 유대인 게토 구역(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였다고)의 이스라엘식당이어서 이동하다가 가이드의 안내로 한 성당과 주교관을 지났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동상이 서 있었다. 교황이 주교로 봉직했던 성당이고 머물렀던 주교관이라고.

난생 처음 이스라엘 음식을 먹고 가진 자유시간의 일은 졸음이 몰려와서 따로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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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츠 드바 라지
두 번은 없다
쉼보르스카의 유명한 시
어제 쓰려다 만 시
두 번은 없다
두 번 올 것 같지 않은
폴란드 크라쿠프
오늘은 쉼보르스카의 날
체코에서 볼 수 없었던 맑은 날
(날씨에는 국경이 있단 말이지)
오늘은 온전히 크라쿠프의 날
평생 다시 올 것 같지 않기에
오늘은 크라쿠프의 생일날이어도 좋지
1945년 1월 18일은
크라쿠프가 나치독일로부터 해방된 날
그러니 생일이어도 좋은 날이지
오늘은 2026년 1월 18일
크라쿠프의 해방 81주년을 축하해
마침 눈앞에 크라쿠프 중앙역이 보여
나는 시를 쓰기로 했지
어제 쓰다 만 시는 버리고
(어제는 17일이었으니)
오늘을 기억하는 시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
중앙역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아직은 이른 아침이야)
나는 폴란드 사람들이라고 알아맞힌다
해방된 사람들이 있었지
아직 전쟁중이어도
독일군이 도망가고 크라쿠프는 해방됐지
폴란드문학의 임시정부가 됐지
크루프니차 22번지에 문인식당이 열리고
묽은 양배추 수프와 검은 빵을 먹으러
시인들이 모여들었네
젊은 거장 체스와프 미워시가 있었고
쉼보르스카도 있었지
대학 신입생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문학소녀
˝비스와바, 너는 담배를 너무 피워.
나처럼 보드카를 마셔야 오래 살아.˝
체스와프가 말했네
오랜 세월이 지나 알게 되지
미워시는 69세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93세에 타계하지
쉼보르스카는 73세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89세에 타계했네
체스와프가 옳았네
하지만 쉼보르스카가 틀린 건 아냐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쉼보르스카에게는 충분한 시간
비스와바는 크라쿠프를
쉼보르스카의 도시로 만들었지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크라쿠프가 해방되고
쉼보르스카는 곧 시인이 되었지
쉼보르스카 시의 역사가 시작되었지
우리가 크라쿠프를 찾게 만들었지
이 아침에 내가
크라쿠프의 역사를 기억하게 했지
축하의 인사를 전하게 했지
모두가 쉼보르스카가 해낸 일
한번의 인생으로 쉼보르스카가 해낸 일
두 번은 없어도 충분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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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5일차. 이제 후반부로 넘어간다. 브르노(체코)에서 크라쿠프(폴란드)까지는 4시간반 정도 소요될 예정. 어제 적은 대로 체코에서 아침 먹고 폴란드에서 점심먹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겸하여 야셀스카 거리에 다녀왔다. 어젯밤에 주소와 동선을 알아두고 실행한 일인데, 카렐 차페크와 로베르트 무질이 살았던 집이 야셀스카 거리에 있고 숙소에서는 15분쯤의 거리. 심지어 두 집은(물론 두 작가가 살았던 시기가 다르지만) 같은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차페크는 1905년-1907년에 신혼의 누나집에 얹혀서 브르노의 명문 김나지움을 다녔다(앞세대의 알폰스 무하와 레오시 야나체크, 다음 세대의 쿤데라가 동문이다). 1907년 전학을 가서 김나지움 졸업은 프라하에서. 쿤데라는 같은 김나지움을 1940년대 후반에 다녔고 1948년에 졸업했다.

시차를 둔 차페크의 이웃 무질(차페크보다 10살 위다)은 가까운 곳의 브륀(지금의 브르노) 공대에 다녔다(그 공대 건물은 현재 마사릭대학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벽의 현판에 따르면 1898-1901년 사이의 일이다(그의 아버지가 공대 교수였다. 작년 오스트리아 문학기행 때 클라겐푸르트의 무질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기치않게도 브루노에서(물론 무질 시기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도시 브륀이었지만) 무질을 만나다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르노와 곧 작별하며 멋진 선물을 챙겨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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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브르노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진행한 일정을 적는다. 이번 문학기행에 브르노를 포함한 건 순전히 쿤데라를 고려해서다. 한국에서 체코문학의 존재는 전적으로 쿤데라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프라하 혹은 체코 작가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라면 단연 카프카에 이어서 쿤데라를 꼽게 된다(차페크가 뒤를 잇는다. 물론 체코 내부에서라면 순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쿤데라와 체코의 관계는 복잡하다. 8년전에(2017년 가을) 프라하를 찾았을 때만 해도 쿤데라는 체코 국적을 여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서점에서 쿤데라의 책을 보지 못했다).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는 1979년 <웃음과 망각의 책>이 시비거리가 되면서 체코국적을 박탈당했었다. 화해가 이루어지는 건 2019년에 와서 체코정부가 적극적으로 관계회복을 시도하면서부터다.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하게 되었고 2023년 타계한 뒤에는 유해도 고향 브르노로 옮겨진다(작년 1월). 한번 적은 대로 올 7월에 묘지에 안치된다.

모라비아지방의 중심도시여서 브르노에는 모라비아주립도서관이 있는데(체코에서 두번째로 큰 도서관이라고), 도서관 1층(우리에겐 2층)에 쿤데라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일행이 브르노를 찾은 이유다. 점심식사 후에 곧바로 찾아간 곳도 바로 쿤데라도서관. 나중에 쿤데라박물관이 생길 지 모르겠지만(그의 생가도 브르노에 있다) 당분간은 쿤데라 아카이브 노릇을 하게 될 장소이다. 실제로 한국어판 전집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나온 쿤데라 책 3000종 이상을 모아놓고 있었다.

사생활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수한 작가답게 쿤데라도서관에는 쿤데라 개인과 관련한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프라하의 카프카>처럼 <브르노의 쿤데라> 같은 책자도 나오면 좋겠다). 다만 그의 책들만 있었다(그가 애정했던 라블레의 책 정도가 예외로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그땐 송동준 교수의 독어판 번역본)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고향, 그가 묻히게 될 도시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으니 감회가 없지 않았다(문학기행을 진행하는 이유다).

쿤데라도서관 방문으로 4일차 문학일정은 마무리되었고 일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브르노 구시가를 둘러보았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야간투어의 느낌이었다. 날이 밝으면 크라쿠프로 떠나기 전에 다시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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