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동안 한 독서모임의 강사를 맡게 됐다. 예전에 언질이 있었던 내용인데, 오전에 시간과 장소가 확정됐다는 메일을 받고서 대학강의처럼, 아니 그보다 '빡세게' 16주 강의안을 만들어 오후에 보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카테고리로 해서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읽기가 두루 포함돼 있는 그 강의안의 한 꼭지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문학과 그 유산'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둔 건 미국작가 레이몬드 카버(1938-1988)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1949- )이다. "체호프는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이다"라고 말한 작가가 레이몬드 카버이고, (하루키의 독자들은 잘 알 테지만) 그 카버를 또 직접 번역하고 해설을 쓰기도 한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렇게 해서 세 '단편작가'는 굴비처럼 엮인다.

 

 

 

 

레이몬드 카버의 책은 이전에 <숏컷>(집사재, 1996)을 사두었지만 아마도 박스에 들어 있을 듯하고, 이번에 새로 읽어보려고 하는 단편집들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집사재, 1996)와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집사재, 1996)이다. 이 작품집들은 문학동네에서 레이몬드 카버 선집이 기획되면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5)과 <제발 조용히 좀 해요>(문학동네, 2004)로 다시 출간됐다(역자는 다르다). 두 권 정도 더 출간되는 것으로 아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조만간 출간되는지 모르겠다.

 

 

 

 

풍문으로 듣는 하루키 문학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런 내게도 안면이 있는 문학평론가들이 적극 추천하던 게 그의 단편들이었다.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여러 단편집들 가운데 일차적으론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문학사상사, 1992)을 골랐다. 흥미가 생기면 더 읽어볼 것이다.

체호프 단편의 계보를 굳이 러시아 밖에서 찾는 건 러시아쪽 작가/작품들이 소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문학적 선배로 하드 보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단편들이 있다면, 체호프의 문학적 후배로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에 이삭 바벨(1894-1940, 사진)이 있다(바벨의 단편들은 예전에 <기병대> 등이 소련동구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소개된 바 있지만 현재는 절판됐다. 새로운 번역본이 어쩌면 올해 출간될 것이다).

그리고 레이몬드 카버와 동시대 작가로 러시아 문학에선 체호프의 '문학적 적자'로 평가받는 작가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1941-1990)이다. 1971년 망명해서 1990년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도블라토프는 생전에 체호프가 자신이 닮고 싶은 유일한 작가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작품집도 아마 1-2년내로 출간될 수 있을 것이다. 체호프 단편문학의 계승과 변주는 그때 가서 좀더 충실하게 조망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에 관해서 검색하다 보니까 그의 한 단편집에 번역/소개돼 있는 '글쓰기에 대하여'가 눈에 띈다. 이때 '글쓰기'는 총칭어가 아닌 '단편소설 쓰기' 정도로 한정하여 읽는 게 내용에 적합해 보이는데(소위 단편과 (장편)소설은 종류가 전혀 다르다는 걸 이 글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다), 아무려나 유익하고 흥미롭다. 레이몬드 카버 입문에 가름할 수 있을 듯해서 다시 옮겨놓고 몇 가지 이미지를 덧붙여둔다.



1960년대 중반, 나는 긴 대화체의 소설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 상당히 힘겹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소설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한 번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 소설을 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에는 얽힌 사연이 약간 있지만, 이 자리에서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지겨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내가 시나 단편 소설에 집착하게 된 이유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치고 빠지는 식의, 혹은 머뭇거림 없이 뛰쳐나가는 식의 방법만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무렵, 그러니까 20대 후반의 나이에 원대한 야심을 잃어버린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된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가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야심과 약간의 행운이 큰 도움으로 작용한다. 지나치게 큰 야심과 지나치게 더러운 운세는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작가들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정확하고 참신한 시선, 또한 그러한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게 맥을 짚어내는 것 등은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가프가 본 세상(The World According to Garp)>은 존 어빙이 본 신비로운 세상에 다름 아니다. 그 밖에도 플래너리 오코너, 윌리엄 포크너,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이 바라본 또 다른 세상도 있다. 치버, 업다이크, 싱어, 스탠리 엘킨, 앤 비티, 신디아 오지크, 도널드 바셀미, 메리 로빈슨, 윌리엄 키트레지, 배리 한나, 워슐라 K. 르귄 등도 모두 특유의 독자적인 세상을 만들어 낸 작가들이다. 위대한 작가, 심지어는 아주 좋은 작가들도 모두 자신의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창출해 낸다.

이것은 스타일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스타일 하나만을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쓰는 모든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백한 서명이다.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의 세계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주는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재능이 작가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특별한 방법을 가진 작가, 또한 그러한 방법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작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삭 디네슨(Isak dinesen)은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조그만 카드에 그 말을 적어서 내 책상 옆 벽에 붙여 놓을 생각이다. 지금도 벽에는 그런 카드들이 몇 장 붙어 있다. ‘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한 작가가 ’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적어도 길은 제대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내 책상 맡에는 체홉의 단편에서 따온 문장 하나가 적힌 카드도 붙어 있다. “.... 갑자기 모든 것이 그에게 있어 명료해졌다.” 나는 몇 안되는 이 단어들이 경이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그 단순한 명징성을 사랑하고, 그것이 암시하고 있는 계시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또 미스터리도 포함되어 있다. 그 전까지는 무엇이 그렇게 불명료했을까? 왜 그것이 지금에야 명료해졌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갑작스런 깨달음으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들이 있다. 나는 날카로운 안도감, 그리고 나름대로의 예감을 느낀다.

작가 제프리 울프(Geoffrey Wolff)가 문학도들을 향해 ‘값싼 트릭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얼핏 엿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역시 카드에 적어서 붙여야 한다. 나 같으면 ‘값싼’이라는 단어 하나는 빼 버릴 생각이다. 그저 ‘트릭은 안된다’하고 마침표를 찍으면 그만이다. 트릭이란 결국에는 지겨운 것일 수 밖에 없다. 집중 시간이 짧은 것과도 관련이 되겠지만, 나는 원래 지겨운 것은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극도로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 또는 시시한 농담 같은 글은 나를 금방 잠들게 만든다. 작가에게는 트릭이나 교묘한 잔머리가 필요 없다. 물론 작가가 반드시 그 지역 일대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작가라면 다소 멍청하게 보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가끔은 절대적이면서도 소박한 경이로움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입을 쩍 벌리고 이런저런 사물 - 일출도 좋고 낡은 구두 한 짝도 좋다 - 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몇 달 전 존 바스(John Barth)는 ‘뉴욕 타임즈 북 리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소설 창작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이 ‘형식의 혁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1980년대의 작가들이 이른바 ‘구멍가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걱정은 실험 정신이 자유주의와 함께 그 기세를 잃어 가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소설 창작에 있어 ‘형식의 혁신’이라는 우울한 논의를 접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글쓰기에 있어 ‘실험’이 경박함과 가소로움, 혹은 모방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실험이란 미명 아래 독자를 잔혹하게 짓밟고 소외시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그런 글은 세상 소식을 전혀 전해 주지 못하며, 혹은 모래 언덕 몇 개와 도마뱀 몇 마리는 있으되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 사막 풍경의 묘사에 그치고 만다. 그런 곳은 인간이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살고 있지 않는, 그저 극소수의 과학 전문가들에게나 흥미있는 장소일 뿐이다.

소설의 진정한 실험이란 원초적이고, 힘든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며,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 예를 들면 바셀미의 방식 - 을 다른 작가가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런 방법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의 바셀미가 있을 뿐, 만약 다른 작가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바셀미 특유의 감수성이나 무대 장치를 도용하려 했다가는 혼란과 재앙,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 기만을 초래할 수 있을 뿐이다. 참된 실험이란 파운드가 주장한 것처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자 스스로의 힘으로 작가들이 멀쩡한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들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기를 원할 것이고 자기네 세계에서 우리네 세계로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기를 바랄 것이다(*이 문장은 비문인데 확인해봐야겠다).

시나 단편 소설에서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여 지극히 상식적인 사물을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사물 - 이를테면 의자나 창문의 커튼, 포크, 돌멩이, 여자의 귀걸이 등 - 들에 거대하고 놀라운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한 독이 없는 대화를 통해 읽는 이의 등공에 오싹한 한기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예술적 기쁨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작가로는 나보코프(Nabokov)를 들 수 있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것이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이다. 나는 실험이란 기치를 내걸건 혹은 애꿎은 리얼리즘을 내걸건 간에,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되는 대로 써내려가는 식의 글쓰기는 무척 싫어한다. 아이작 바벨 (Issac Babel)의 뛰어난 단편 ‘모파상의 친구’에서(*'이삭 바벨'이라고 읽어줘야 한다), 화자는 소설 쓰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어떠한 무쇠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관통할 수는 없다.” 이것 역시 카드에 적어 붙일 만한 말이다.

에반 코넬(Evan Connell)은 자신이 쓴 단편을 쭉 읽어 내려가며 쉼표를 하나하나 지웠다가, 다시 한 번 읽으며 쉼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살려 놓는 과정을 거치면 단편 하나가 완성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하건 그런 식으로 일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한 그 정도의 관심은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 어차피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어들밖에 없으니, 이왕이면 구두점 하나라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자리에 가 박히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만약 단어들이 작가 자신의 억제되지 않는 감정으로 뒤죽박죽이 된다면, 혹은 기타 다른 이유 때문에 정확하지 못하거나 명확하지 못하게 된다면, 독자의 눈은 바로 그 단어 위에서 미끄러져 버리고 만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독자 자신의 미적 감각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이러한 종류의 불운한 글을 ‘허약한 설명서’라고 표현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은 편집자나 마누라의 성화 때문에 서둘러 책을 써야 한다고 털어놓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말하자면 그것들이 아주 뛰어난 글을 쓰지 못하는 변명인 셈이다.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좀더 좋아졌을 텐데.”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 사실은 안하지만 - 말문이 막힌다. 어차피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만약 작가가 자신의 모든 힘을 모조리 내어,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과 그 힘들었던 노동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말을 한 내 친구에게, 제발 부탁이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좀 더 쉽고도 정직한 방법이 반드시 있을 터이다. 그러기가 싫으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글을 쓰고, 일단 쓴 다음에는 어떠한 정당화나 핑계도 내세워서는 안된다. 어떠한 불평도, 어떠한 설명도 필요치 않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는 ‘단편 소설 쓰기’라는 소박한 제목이 붙은 에세이에서, 글쓰기란 발견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단편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자기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기가 보기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때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지 의심스럽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착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었다. 작품이 끝나기 직전까지, 자기도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목발을 짚은 철학 박사가 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두 여인에 대한 묘사 부분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둘 가운데 한 여인에게 목발을 짚은 딸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중간에 나는 성경책 판매원을 끼워 넣었는데, 나에게는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가 목발을 훔치는 장면의 10줄 위를 쓸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목발을 훔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제서야 나는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 전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거기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을 쓸 때 이런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의 결점이 드러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털어놓은 글을 읽고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첫 문장밖에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지만, 꽤 괜찮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 며칠 전부터 내 머리 속에는 첫 문장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그는 진공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레이몬드 카버 전집 제 2권 ‘숏컷’에 수록된 ‘당신도 내 입장이 되어봐’의 첫문장이다; 옮긴이)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내가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것을 쓸 시간만 낼 수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시작되는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원래 시간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루 종일 - 12시간, 심지어 15시간도 좋다 - 시간을 낸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느 날 아침 책상에 앉아 그 첫 문장을 썼다. 그러고 나니 금새 또 다른 문장이 그 뒤에 달라붙었다. 나는 시를 쓸 때처럼 그 작품을 썼다. 한 줄 쓰고, 또 한 줄, 그리고 또 한 줄을 써나가는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단편 하나를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작품,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실상 단편쓰기란 곧 시쓰기이다).

나는 단편 소설에 어떤 위협이나 협박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는 약간의 협박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 작품이 널리 유포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긴장 역시 꼭 필요하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 처절한 행동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설 작품 속에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가시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단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다 털어놓지 않은 것, 그저 암시만 된 것, 사물의 평형한(때로는 망가지고 뒤집어진) 표면 아래 감춰진 풍경 등에서도 그런 긴장이 발생한다.

프리체트(V.S.Pritchett)는 단편 소설을 ‘눈꼬리로 힐끗 본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힐끗 본다’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언가를 힐끗 본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통해 생명력이 부여되고 그 순간을 조명하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나아가 운이 좋으면 - 또 운을 들먹인다 - 보다 깊이 있는 결과와 의미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단편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이 ‘힐끗 보는’ 데 투자하는 것이 균형 감각과 사물의 합당성에 대한 감각이 길러진다.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명쾌하고 구체적인 언어,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디테일은 구체적이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므로, 언어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단어는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 정도로까지 정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에는 변함이 없다. 제대로 사용된 단어는 모든 음계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07.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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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독서모임 사람들 부럽군요. 대학에서 하는건가요? 훔...

로쟈 2007-02-0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강료가 '비싸니까' 그렇게 부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락방 2007-02-0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 강의는 들어보고 싶은데요. ㅜㅜ

기인 2007-02-0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저도 얼른 강의해보고 싶어요 ㅎ :)

로쟈 2007-02-0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제가 분위기만 띄워놓았네요...
기인님/ 프라하 여행기는 너무 싱겁던데요.^^ 강의야 뭐 나이 차면 하게 되는 거죠. 또 나이 차면 그만 두고...

moonnight 2007-02-0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들어보고파집니다. 굉장히 알차리란 믿음이 생기네요. 학생들이 부러워요.

로쟈 2007-02-0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획은 제가 언제나 '알차게' 세웁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아니구요, 아마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릴 겁니다.^^;

나비80 2007-02-0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빡센 건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피곤한 일일텐데.
고생스러우시겠습니다^^

로쟈 2007-02-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주로 '계획'만 빡셉니다.^^;
 

며칠전 이번주 '필름2.0'에서 <송길한 시나리오 선집>(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출간 기념 특별상영회에 관한 화보기사를 읽었는데, 생각난 김에 지난달 중순에 게재된 김영진 편집위원의 칼럼을 옮겨놓도록 한다. '송길한'이란 이름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두루 본 관객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하다. 알라딘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黑潮)>가 당선된 이후 전업 작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약> <마루치 아라치> <둘도 없는 너> <낯선 곳에서 하룻밤> <짝코> <만다라> <우상의 눈물> <나비 품에서 울었다> <삐에로와 국화> <불의 딸> <안개마을> <비구니> <길소뜸> <티켓> <씨받이> <아메리카 아메리카> <불의 나라><명자 아키코 소냐> <동행>(MBC특집드라마 1, 2부) <아낌 없이 주련다>(종군위안부 노부코) <서울 만신> 등 90여 편의 작품을 집필했다. <짝코> <만다라> <불의 딱> <티켓>으로는 대종상 각본상을, <만다라> <길소뜸>으로 한국연극영화상(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길소뜸>으로 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시나리오상, <씨받이>로 작가협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권과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고문과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시나리오 선집 <비구니>와 장편소설 <명자 아키코 소냐> 등의 저서가 있다.

무려 90여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니까 내가 본 영화들의 상당수가 거기에 포함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거의 70-80년대 한국영화를 쥐락펴락하신 게 아닌가 싶다. 이만하면 '장인'이다. 송 작가처럼 자신의 인장을 영화에 새겨넣을 수 있는 후배 작가들이 앞으로 더 많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송길한 작가 <짝코> 상영회

좌권택 우희라.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송길한 작가를 가운데 두고 <짝코>의 주인공들이 다시 한자리에서 만났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 출간을 기념하는 <짝코> 특별상영회(주최 영상자료원,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짝코> 외에도 송길한 작가의 <티켓>을 촬영한 구중모 촬영감독, <짝코>에서 짝코를 쫓는 또 다른 주인공 최윤석, 송길한 작가의 <길소뜸> <만다라> 등을 촬영한 정일성 촬영감독, 배우 안성기, 지상학 작가, 김홍준 감독, 변영주 감독, 조선희 영상자료원장 등도 참석해 한 노작가의 소중한 선집에 박수를 보냈다. 임권택 감독은 “송길한 작가와 함께하면서 내 작품들이 중요한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주성철 기자)

 

 

 

 

 

 

 

 

 

필름2.0(07. 01. 18)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송길한 시나리오 선집을 단숨에 읽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시나리오 선집에는 <짝코> <길소뜸> <만다라> 등 주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작업한 그의 대표작들과 1980년대 중반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 중지된 <비구니>, 그리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용으로 쓴 <반란> 등의 미발표 신작이 실려 있다.

사춘기 시절에 본 뭔가 예술적 향기가 있는 한국영화라면 대개 송길한의 각본이었다는 추억을 환기하면서 역사, 구원, 욕망, 분단, 윤리 등 거창한 테마를 갖고 있는 그의 각본에 그토록 인간적인 숨결이 스며 있는가를 보며 새삼 놀랐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현대적 일상과는 거리가 멀며 그 세대의 역사적 상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을 역사책의 딱딱한 글귀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이웃으로 보여주는 게 그의 저력이었다. 깊은 맛이 있는 된장찌개를 먹는데 가끔 그 손맛의 주인이 겪은 신산스런 삶이 생각나서 울컥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여운을 그의 작품은 준다. 책상에서 머리로만 쓴 게 아니라 동시대 삶의 상처의 흔적을 몸으로 껴안고 있는 자만이 쓸 수 있는 그런 글이다.

송길한이 한창 활동한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다. 1970년대 그는 영화사의 주문에 따라 글을 쓰며 자기 재능을 탕진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당시 영화는 대중문화의 천덕꾸러기였다. 1980년대에 그는 다부지게 자기가 쓰고 싶은 소재에 매달렸는데 <짝코>와 <만다라>는 그의 작품세계의 일종의 분수령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대표작 <짝코>를 극장에서 본 대중은 극히 적었다. 우수 반공영화로 정부로부터 두 차례나 표창 받은 이 영화를 송길한과 임권택은 반공이 아니라 분단의 상처에 관한 것으로 찍었다. 그런데도 당시 그걸 알아주던 눈 밝은 시선은 많지 않았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외형적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꽤 성장했지만 송길한의 각본은 이제 영화화되지 않는다. 이런 재능은 길이 기억되고 또 오늘에 되살릴 의무가 후배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송길한은 왜 요즘 활동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재능이 낡아서일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그가 굳이 스크린에 불러오려는 여순반란사건과 같은 <반란>의 소재를 요즘 대중은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그와 동시대의 감독들이 이제 현장에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임권택도 이제는 송길한과 함께 작업하지 않는다. 이런 게 시나리오 작가의 비애라면 비애다. 파트너십이 작가의 명줄을 좌우하는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늘 함께 작업하는 토니노 게라와 같은 작가의 존재가 충무로에선 허락되지 않는다.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며 그게 안타까웠다.

송길한의 불행이라면 그에게 근기가 있었을 때 시대는 너무 옹졸하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시대는 곧 누구든 해야 할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대의 무능과도 통한다. 이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며 가장 통절했던 것은 역사상 가장 굵은 상처를 간직하고 살았던 송길한의 세대가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왕성했던 시기를 군사독재정권의 검열이 지속되던 수십 년 동안 보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송길한이 대수로울 것도 없이 회고하는 검열에 관한 한 에피소드는 너무 징그러워서 정떨어지는 그 시절의 강압을 드러낸다.

강원도 속초를 무대로 몸을 파는 다방 레지들의 삶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이란 영화는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에서 고초를 겪었고 그 개별사례는 희극적이다. “<티켓>의 타이틀을 외래어라고 못 쓰게 한 겁니다. 그래서 가서 그랬어요. 그럼 ‘잉크’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올림픽 티켓을 땄다, 무슨 티켓 하지 않느냐, 근데 왜 티켓이 외래어라고 안 되냐고 들이받은 거죠…. 그래서 제목을 ‘분홍티켓’이라고 바꿔 갔어요. 검열관들 반응을 보려고. 분홍티켓이라니까 그들도 어처구니없어 하며 아주 인심 쓰듯이, ‘그냥 쓰세요. 쓰는데 영화 맨 앞에다 자막이나 하나 넣으세요.’ 그래서 자막이 들어가게 된 거에요. 조셉 콘래드의 말, ‘인생은 한 장의 담배종이에 한 마디로 요약된다. 태어나고, 고뇌하고, 그리고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 말에서 담배종이를 티켓으로 바꿔 자막을 붙였죠. 그랬더니 그들도 만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걸었는데 검열관들이 자막이 있는지 없는지 한 일주일 동안 극장에서 확인하고 갔어요. 그래서 말했죠.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확인해보니까 티켓이 아니라 담배종이더라. 자막을 계속 붙이면 그쪽이나 우리나 쪽팔릴 텐데 괜찮겠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자막 떼어내라고 하더라고요. 코미디죠. 완전 코미디. 러닝타임 112분에 달하는 원판은 반사회적 영화로 찍혀 12분이나 가위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죠. 게다가 대사 중에 티켓이란 말은 모조리 삭제당하고 화면도 여기저기 단축돼 그야말로 난도질이나 다름없었어요.”



시나리오 선집 말미에 실린 변재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최고작으로 꼽힐 만한 <만다라>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쓴 시나리오다. 영화의 배경이 겨울이라 눈이 녹기 전에 원고가 나와야 했다는 것이다. 충무로 작가들이 가는 허름한 여관에서 그는 만 4일 동안 1분도 자지 않고 각본을 썼다. 조감독이 여관과 영화사를 오가며 송길한이 원고를 쓰는 대로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4일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써낸 이 비상한 집중력의 산물이 <만다라>라는 것이다.

송길한의 작품은 <짝코>나 <길소뜸> 등 분단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상흔을 소재로 한 것이나 <만다라>와 <비구니>에서처럼 불가적 구원이라는 큰 관념과 대결하는 소재와 만났을 때도 사람 사는 속내를 보여주는 찰진 친밀감을 준다. 그렇게 쓴 작품 대다수가 종종 허름한 여관방에서 단기간에 써내려간 결과물이라는 건 그의 평소 삶이 얼마나 촘촘한 경험으로 채워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번 시나리오 선집에 실린 <반란>이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송길한은 햇수로 만 2년, 만 1년여 동안을 여수에서 살다시피 했다. “간접적으로 루머로 들었던 사람들도 생존자로 포함시키고 취재를 했어요. 근데 거기 여수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목매 죽은 석천사 뒤 소나무가 있어요. 내가 글 쓰는 방이 석천사 그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객실인데 거기서 혼자 앉아 밤새워 글을 썼거든요, 근데 늦가을부터 막 바람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하니까 망자들이 살아 나타날 것 같더라고요, 섬뜩섬뜩했었지요.”

그가 동시대에 겪은 역사적 비극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시 그 시절을 살아보려는 노력이 뒤따른다. 그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어서 오래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송길한의 회고에 따르면 임권택 감독은 송길한에게 작업을 의뢰하면서 늘 ‘어이, 이번에 한번 또 죽어볼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 한번 써볼 거야?’라는 말과 전혀 다른 그 필사적인 어감에서 이 세대에게 절실했던 체험의 육화라는 고전적인 글쓰기 형태를 떠올리게 된다.

송길한의 시나리오는 손목을 놀려 쓴 게 아니다. 관객을 의식하며 쓴 게 아니다. 그가 보는 인생과 사람에 대해 쓴 것이다. 그건 재능 이상의 문제다. 그가 체험한 동시대의 곡절을 그의 마음과 손을 빌려 옮기는 것이다. <만다라>를 찍을 때 그는 헌팅을 위해 호남 일대를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돌아다니면서 식당 같은 곳에서 대통령이 된 전두환 장군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치를 떨곤 했다. 겨울공화국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었다. <만다라>의 첫 장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가 군인들의 검문을 받고 자기 신분을 증명할 길 없는 지산 스님이 타박을 받는 스산하고 살벌한 풍경은 그런 공기에서 나온 것이다.

1970년대 내내 영화사로부터 의뢰받은 싸구려 영화의 각본을 썼던 송길한은 시나리오 작가 그만 한다는 각오로 자기 작품을 쓴다는 의지를 세웠고 마침 경력의 분기점을 맞았던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그들의 첫 걸작인 <짝코>는 빨치산 망실공비와 그를 쫓는 지리산 토벌대 경찰의 평생에 걸친 추적극인데 그들은 자기 삶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쫓고 쫓긴다. 그들은 왜, 라는 질문을 죽기 직전에야 던진다. 잦은 플래시백으로 두 인물의 삶을 응축해 달려가는 이 영화의 각본은 기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에 남한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등치시키는 기적을 이뤄낸다.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아직 이만한 무게를 지닌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이력이 현재진행형이 될 수는 없는가를 생각했다. <반란>과 같은 그의 신작은 다큐멘터리를 위해 쓰인 것이라고 하지만 너무 설명적이고 나열형이다. 여기에 픽션이 가미돼야 하는데 송길한은 충분히 가미될 수 있다고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말한다. 이건 한 대가급 시나리오 작가의 명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너무 할 말이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아직 말할 게 많이 남아 있는 그 세대의 작업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라는 자책을 갖게 한다. 그가 계속 건필하고 한국영화계에서도 그의 작업을 끌어안는 그런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김영진 편집위원)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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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데리다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적어내려간 모스크바 통신을 예전에 정리해놓은 줄 알았더니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글의 일부였는데,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만 따로 정리해놓았던 듯하다. 로일의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이 출간된 걸 계기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책은 어제 구했다). 내용을 발췌하면서 일부 문구를 교정하고 이미지들을 첨가해둔다. 잠시 3년전 가을 모스크바로 되돌아가본다. 

주말부터 모스크바에는 눈이 올 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눈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오늘도 눈 싸라기가 잠시 흩뿌리다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첫눈을 기다리고 있지만, 또 기다리니까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에 일단 오전까지 쓴 걸 PC방에 갖고 가서 인터넷에 띄우고, 지난 2월에 데리다가 가진 인터뷰 기사 '도래할 정의를 위하여(For A Justice To Come)'를 다운받아 와서 읽었다(http://www.indymedia.be/news/2004/04/83123.php). 그리고는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서 산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쓴다.



어제는 막심에게서 마음먹고 후설/데리다의 <기하학의 기원>을 샀다(나는 이 책의 영역본을 갖고 있다). 1996년에 나온 책이라 고서로 분류되어 250루블(10,000원)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전부터 봐두었던 책이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방치’하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데리다의 책을 한 권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서 어제 사러 간 것. 한데, 서가에 꽂혀 있지도 않았다. “데리다 있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없다면서 옆의 ‘그노지스’ 서점에 가서 문의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창고의 서가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든 것이 <기하학의 기원>이었는데, 보여주기만 하고 너무 비싸다면서 도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해서, 간신히 (비싸도) 괜찮다고 하며 그에게 잔돈으로 받은 250루블을 주고 그 책을 샀다.

Голос и феномен

막심네 가게를 나와서는 데리다의 또 다른 책 <목소리와 현상>을 살까 해서 ‘이데아’서점에 들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지만) 영역본을 다시 옮긴 이 책에 특별히 ‘해설’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손에서 놓고, 대신에 두툼한 러시아 상징주의 연구서와 함께 부르디외의 <실천적 의미>를 손에 들었다. 책을 둘러보는 틈에 서점 점원과 한 할머니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걸 엿들을 수 있었는데, 화제는 (강의 교재로 쓰이는지) 책상머리 잔뜩 쌓인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데리다의 죽음에 대한 시라크 대통령의 메시지, ‘우리 시대는 해체의 시대’라는 주장에 대한 논평을 거쳐서, “요즘은 너무 많은 책들이 있다”는 불평과 함께, 서로가 아는 어느 학자/교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교수는 ‘대화가 된다’는 게 반가워서인지 아예 ‘장기전’을 벌일 판이었다. 나는 계산을 치르고 자리를 떴지만, 하여간에 서점 점원과 대학교수와의 대화, 그런 게 (웬만큼은 책을 읽어줘야 가능한)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다.

내 생각에 다소간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관료 시스템과 엄청난 빈부격차와 민족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란 나라를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그 문화의 힘으로 보인다(물론 러시아에도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러면서 일탈적인 하위문화가 있으며 최근에 젊은층의 이 ‘하위문화’를 분석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로 수준 높은 중등 문학교육을 들 수 있다. 초/중/고가 분리돼 있는 우리의 학교 편제와는 달리 러시아는 전체가 통합되어 11학년까지 있다(대신에 대학이 5년이다). 그리고 매 학년 문학교육을 받지만,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되는 10-11학년에는 우리의 대학 1-2학년 교양 수준 이상의 문학교육을 받는다.

러시아문학 교과의 경우, 10학년 때는 19세기 문학을, 그리고 11학년 때에는 20세기 문학을 공부하는데 교재가 각각 500쪽쯤 되는 책 2권씩이다(그러니까 2년간 작품은 제외하고 러시아문학 ‘교과서’만 하더라도 2,000쪽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중요 작가와 작품들이 다 망라돼 있고, 매 단원/작가마다 작문과제들이 제시돼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배우는 것이 문학일반론과 세계문학(여기서는 ‘국외문학’이라고 부른다)이다. 대학입시에서 이러한 문학과목에 대한 ‘작문시험’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이다(프랑스의 철학시험에 대응하는 것이 러시아의 문학시험이다).

물론 러시아란 나라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으로서의 공통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위해서 언어와 문학 교육이 유독 강조되는 바가 없지 않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교육의 결과로 ‘책을 읽는 국민’들이 양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시절에 고전을 읽은 경험은 이후의 모든 독서와 사유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자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이 점은 중요하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국민 개개인의 교양 수준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갈라진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나는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이 나라의 문학교육 수준만큼은 부러워한다(물론 사회주의 시절엔 문학교육도 이념적으로 다소 편향돼 있었다)...

Соврем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теория

데리다가 세상을 떠난 지난 토요일, 가을비만 추적추적 약간 내리던 날에 나는 시내의 서점에 갔다가 <현대문학이론>이란 앤솔로지가 신간으로 나와 있길래 구입했고, 거기서 다시 데리다란 이름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일요일 오후에 빨래 더미를 들고 빨래방으로 내려가면서 그 책을 집어 들고 가서는 데리다의 약력을 훑어보면서 그가 “인문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를 발표한 게 새삼스럽게도 지금의 내 나이 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들른 인터넷카페에서 메일을 확인하다가 데리다의 죽음을 알리는 후배의 메일을 읽게 된 것. 이어서 자주 들르는 카페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차례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나는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된 그의 삶/죽음에 대해서 몇 마디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고, 멍한 상태에서였지만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제목의 글을 구상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글을 쓰는 대신에 모스크바에 들고 온 데리다 관련서들을 들추며 몇 쪽을 읽었다. 내가 이곳에까지 들고 온 건 얇은 책 3권인데, 데리다 자신의 책은 영역본 <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시카고대학출판부, 1995) 한 권이고(이 책을 챙겨 들고 온 건 순전히 그의 죽음에 대비해서였다!), 나머지는 리처드 비워즈워스(R. Beardsworth)의 <데리다와 정치적인 것(Derrida & the Political)>(루틀리지, 1996)과 니콜라스 로일(N. Royle)의 입문서 <자크 데리다>(루틀리지, 2003)이다(이 3권을 연말까지 다 읽는 것도 데리다의 죽음이 내게 남긴 숙제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해명하고 있는 비워즈워스의 책은 이미 필독서의 한 권이지만(그의 책으론 <니체 읽기>(동문선)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나온 로일의 책도 최적의 입문서에 값한다. ‘루틀리지판 비판적 사상가들(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것인데(나는 이 시리즈의 몇 권을 갖고 있는데, 모두 입문서로서 유력하다), 클레어 콜브룩(C. Colebrook)이 쓴 이 시리즈의 <질 들뢰즈>는 이미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알다시피 도서출판 앨피에서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미 <데리다 이후/데리다를 따라서(After Derrida)>(1995)란 저서를 갖고 있는 로일은 얇은 분량 속에서도 데리다에 관해 입문적으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재치 있는 필치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데리다 자신의 평은 이렇다. “(논변이) 아주 우수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점이) 분명하고 독창적이다.”(Excellent, strong, clear and original.) 나는 이 두 권의 책 또한 조만간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그 기대는 이번에 실현됐다).

О грамматологии

내가 갖고 있는 철학서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데리다의 책들과 그와 관련한 책들이다(100권이 조금 안된다). 나는 (독해력이 충분하지 못한) 불어본을 제외하고 내가 구할 수 있는 데리다의 모든 책들을 그간에 사들이거나 복사/제본해 왔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 92년인가 93년쯤에 프랑스에 유학을 가 있던 한 선배가 가야트리 스피박이 옮긴 영역본 <그라마톨로지>를 우편으로 보내왔는데, 그것이 내가 접한 최초의 데리다 ‘원서’였다(“봉주르, 데리다!”). 물론 <문학이론입문> 등의 책을 통해서 데리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었던 나로선 당장에 그 책을 읽어 내려갈 능력이 없었다(내가 그 당시에 지금의 독해력을 갖고 있었다면 진로를 바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가 아닌 파리로!).

비로소 그의 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몇 년 뒤 철학과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데리다 세미나를 청강하면서부터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열심히’ 읽지는 않았지만, 그걸 계기로 해서 데리다 읽기의 가닥은 잡을 수 있었고, 한때는 <기하학의 기원>(1962)부터 차례대로 데리다의 모든 책을 읽어보자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었다. 내가 세운 대부분의 계획들처럼 그 또한 중도에 틀어지긴 했지만(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책읽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데리다의 모든 책을 긁어 모으는 일만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데리다인가? 그건 데리다를 직접 읽어보면/읽어봐야 알 수 있다(당신은 왜 그/녀를 사랑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데리다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범례적 사례들이다. 해서, 데리다를 읽는 일은 그의 ‘읽어내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다. 데리다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텍스트를 가장 치밀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읽어내는 사람이다. 이젠 구호처럼 돼 버린 ‘해체(deconstruction)’란 그러한 정밀한 읽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정밀한 읽기가 ‘해체’로 귀결되는가? 그것은 그의 읽기가 텍스트의 의미가 구성되고 축조되는 중심, 혹은 이항대립적인 위계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수사적인가(혹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냄으로써 의미의 아포리아, 의미의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을 전면화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읽은 그의 인터뷰('도래할 정의를 위하여')의 한 대목: “[I]n this aggression against Iraq, American responsibility was naturally decisive but it didn’t come about without complex complicities from many other quarters. We are dealing with a knot of nearly inextricable co-responsibilities. I would hope that this would be clearly taken into account and that it wouldn’t be the accusation of one man only. Even if he is an ideologue, someone who has given the hegemony project a particularly readable form, he has not done it on his own, he cannot have imposed it on non-consenting people. So the contours of the accused, of the suspect or the suspects, are very hard to determine.”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서, 미국의 책임은 당연히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란 건 다른 많은 진영들과 복잡하게 연루돼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는 ‘공동-책임’이라는 매듭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나는 이 점이 분명히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어떤 특정인만을 기소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설사 그가 핵심 이데올로그인 데다가 그 헤게모니 전략에 특정한 형태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일을 자기 혼자서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해서, 누구를 기소할 것인가, 누가 혐의자인가, 혹은 혐의자들인가를 구획짓는 건 매우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이하의 번역은 모두 내가 이해한 바를 좀더 쉽게 옮긴 것이다.)

이런 인터뷰 대목에서도 데리다의 전형적인 논변이 반복되고 있다. “-이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복잡하며 결정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그래서 지젝이 아주 답답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그런 지젝보다도 더 명쾌하다. 데리다-지젝-고진은 그렇게 계열체를 형성한다).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어떤 긴급한 결정/결단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결단은 이루어져야 하고 단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그러한 결정/결단이 불가피하게 간과하게 될 사태의 복잡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서는 불가피한 폭력의 폭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보다 나은 결정/결단을 모색하는 지혜가 된다.

로일이 책의 서두에서 들고 있는 예이지만, 가령 ‘데리다’를 “1930년에 태어난 (그리고 이제 2004년에 사망한) 알제리출신의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이자 한 남성의 이름”(‘Derrida’ is the name of a man, a Jewish Algerian-French philosopher, born in 1930)이라고 규정할 때, 자명한 것, 자명하게 결정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남성’이란 무엇인가? ‘유태인’이란 무엇인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란 무엇인가? ‘1930년에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것 하나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규정이란 언제나 어떤 배제를 함축하기 마련이며, 그런 배제는 또한 폭력(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가령, 그는 ‘철학자’인가, 혹은 ‘작가’인가?(그는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였다고 한다.) 한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전적으로 한 명의 ‘작가’라거나 한 명의 ‘철학자’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나는 작가도 아니며 철학자도 아닙니다.” 그가 작가인가 철학자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는 관행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철학자라고 불릴 따름이며(한편에선 ‘철학자’ 데리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하지만), 그러한 직함으로 소통될 따름이다(즉 그러한 관행/제도는 임의적인 것이다. 최근에 일부일처제에 대해서 그가 제기했던 비판은 그러한 ‘임의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서, 그것은 ‘논리적인’ 결정이 아니며, 다만 편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일 따름이다.

다시 인터뷰에서 예를 들자면, 그는 ‘주권(sovereignty)’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 “Personally, when I have to take a position on this vast issue of sovereignty, of what I call its necessary deconstruction, I am very cautious. I believe it is necessary, by way of a philosophical, historical analysis, to deconstruct the political theology of sovereignty. It’s an enormous philosophical task, requiring the re-reading of everything, from Kant to Bodin, from Hobbes to Schmitt. But at the same time you shouldn’t think that you must fight for the dissolution pure and simple of all sovereignty: that is neither realistic nor desirable. There are effects of sovereignty which in my view are still politically useful in the fight against certain forces or international concentrations of forces that sneer at sovereignty.”

우리말로 옮기면: “개인적으로, 내가 주권이라는 방대한 주제, 내가 주권의 필수적인 해체라고 부르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때, 나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철학적,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주권에 대한 철학적 신학을 해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칸트에서 보댕까지, 홉스에서 슈미트까지, 모든 걸 다시 읽어야 하는 아주 방대한 규모의 철학적 작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모든 주권을,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게도 소멸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주권을 비웃는 어떤 세력들 혹은 그러한 세력의 국제적 조직들에 대항해 싸울 때 여전히 정치적으로 유용한 주권의 효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데리다가 요구하는 것은 주권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유용한 효과들을 전략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주권이란 건 국민-국가의 주권을 말한다.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한 국가의 주권은 차츰 보다 확장된 공동체의 주권에 양도될 것이다. 그것은 방향성이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아직도 다국적 자본 등의 반주권적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권의 실제적 효과가 요구되는 지점들이 있다. 러시아 정부의 (석유재벌) 유코스에 대한 ‘탄압’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억압적’ 주권은 한편으론 돈이 말하는(Money talks!)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Shut up!) 웅변하는 효과를 갖는다. 데리다가 취하는 건 언제나 결정불가능한 더블-스탠스이다. 그가 보기엔 그러한 자세가 현실적이며 바람직하다(realistic and desirable).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문제삼는 것은 (내 식으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의 환상, 커뮤니케이션의 형이상학(혹은 신학)이다(기호학에 대한 데리다의 핵심적인 비판은 기호학이 형이상학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제나 결정가능한, 계산가능한 것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백에 다름 아니다. 그에 대응하여 데리다가 끌어오고자 하는 것은 모든 종류의 결정불가능성, 계산불가능성으로서의 아포리아이다. 시간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미래가 아닌) ‘도래’(그리고 ‘죽음’)이며, 윤리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타인이 아닌) ‘타자’이다.



바로 이러한 ‘도래’와 ‘타자’, 그리고 ‘죽음’이 해체 이후에, 해체와 함께 오는 것이다(그는 ‘해체의 철학자’이면서 ‘도래의 철학자’이다). 해서, 해체는 테러리즘이나 가치론적 상대주의(혹은 무정부주의)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근원적인 아포리아, 혹은 근원적인 미스터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포리아/미스터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존 카푸토의 데리다 연구서 제목은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이다. 데리다의 종교론은 그에게 영감을 얻고 있는 카푸토(J. D. Caputo)의 <종교에 대하여>(동문선)에 잘 정리돼 있다. 믿을 수 없는 역자의 번역이라 보증할 수는 없지만). 데리다의 윤리-정치학은 거기에 근거한다.

흔히 그의 종교론은 ‘종교 없는 종교’,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으로 요약되는데,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을 보자: “I call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is a call, a promise of an independent future for what is to come, and which comes like every messiah in the shape of peace and justice, a promise independent of religion, that is to say universal.” 우리말로 옮기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건 도래할 어떤 것으로서의 자유로운(=계산불가능한) 미래, 마치 모든 메시아가 그러했듯이 평화와 정의의 형태로 세상에 도래할 어떤 것에 대한 요청이며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약속입니다.”

조금 더 읽어보자: “My intent here is not anti-religious, it is not a matter of waging war on the religious messianisms properly speaking, that is to say Judaic, Christian, Islamic. But it is a matter of marking a place where these messianisms are exceeded by messianicity, that is to say by that waiting without waiting, without horizon for the event to come, the democracy to come with all its contradictions.” “여기서 나의 의도는 반-종교적인 게 아닙니다. 즉, 종교적 메시아주의라고 합당하게 말할 만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해서 싸움을 걸자는 게 아닙니다. 대신에, 메시아성이 ‘기다림 없는 기다림’, 도래할 사건에 대한, 그 자체의 모든 모순들과 함께 도래할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기대지평도 갖고 있지 않은 기다림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아주의들을 초과하는 지점을 표시(언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that is: independence in respect of religion in general. A faith without religion in some sort.”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란, 종교 일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가리킵니다. 종교 없는 신앙 같은 것이죠.”(우리 종교적 인간은 종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데리다는 (배타적) 종교들을 공격하지만, 한편으론 ‘종교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신앙’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은 옹호한다(마치 진지하게 ‘고도를 기다리며’ 같지 않은가? 사실 한 대담에서 데리다는 자신이 베케트론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 ‘견적이 많이 나와서’란 이유를 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고진의 용어를 갖다 쓰자면, 데리다가 공격한 것은 ‘공동체의 종교’이고, 그가 옹호한 것은 보편종교로서의 ‘세계종교’이다. 쓰고 있는 용어들은 서로 달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통한다.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언제나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고유한 것(the proper)이었다(고유성은 언제나 배타적이다). 그가 마르크스와 공유하는 것은 확정적인 소유/재산(property)에 대한 의문(혹은 적대감)이다. 소유/재산은 ‘내 것인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이미 제기한바 ‘도래’와 ‘타자’, ‘죽음’, 그리고 (악명 높은 ‘차연’의 효과로서의) ‘의미’는 모두가 ‘내 것이 아닌 것들’이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 앞에서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것, 자신의 고집과 관성과 편견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Deconstruction, 즉 해체-구축이다.

때문에, 디컨스트럭션은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독법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흔한 오해처럼 데리다가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고 말할 때 그가 모종의 ‘텍스트주의’를 제창한 것은 아니다. ‘바깥이 없는 텍스트’란, 스피노자에게서 ‘세계’가 그러하듯이,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이다.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세계) 바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윤리적, 정치적 결단을 함축한다. 이 결단은 계산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레닌-지젝의 ‘광기’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결단의 사례로 떠올리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즉 ‘리컨스트럭션(Reconstruction)’이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그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파국에 직면하여 좌초하고 말았다. 그것이 1991년의 일이다. 데리다는 그 직전인 1990년, 그러니까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바 있다. 그해 2-3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여행의 결과로 발표한 것이 이다(모스크바 어딘가에 가면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책에서 이 영문 텍스트를 복사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전문인지 발췌본인지 알지 못하며(기억하지 못하며) 불어로 발표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다(*러시아어본이 가장 먼저 출간된 이후에 불어본이 나왔고 이후에 영역 텍스트가 출간됐다). 그것의 러시아어본은 <모스크바의 데리다: 여행의 해체>(1993)인데, 아직 책을 직접 구경하지는 못했다(*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복사본을 갖고 있다. 아래의 책이다).



이제 곧 이 철학자에 대한 ‘전기’도 나오겠지만(*작년에 제이슨 파월이 쓴 최초의 전기가 출간됐다), 나로선 데리다의 모스크바 여행이 90년대에 이루어질 그의 작업의 신호탄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1986년에 넬슨 만델라에 대한 텍스트를 발표한 바 있지만, 그의 관심이 소위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죽음의 선물>은 1990년 12월, ‘선물의 윤리학(The Ethics of Gift)’을 주제로 개최된 학술회의를 계기로 작성되며,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77 인권 헌장>을 공표한 혐의로 체포되어 심문(고문?)을 받던 중 뇌출혈로 사망한(1977. 3. 13) 체코의 철학자 얀 파토치카의 한 에세이를 분석하는 걸로 시작한다(그리고 키에르케고르 읽기로 넘어간다). 이어서 이듬해인 1991년에 발표하는 것이 <다른 곶: 오늘날의 유럽에 대한 성찰>이며(동문선에서 국역본이 나와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 <우정의 정치학>(1994) 등을 연이어 출간한다(그러니 <모스크바의 데리다>를 찾아 읽어야겠다).



이러한 해체론의 정치학과 더불어 말년의 그의 저작목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아듀’에 대한 책들이다(조사(弔辭)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이 묶일 정도이다. 한데, 그의 조사는 누가 읽었는지/읽을 것인지?). 한편으로, 그는 ‘도래’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착실하게 준비해온 셈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건 오히려 우리쪽인 듯하다(내가 이런 식의 글밖에 쓰지 못하는 이유이다). ‘포스트-데리다’, ‘데리다 없는 철학의 시대’를 우리는 당분간 그렇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데리다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의 시대).

데리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누도록 하자. “데리다여, 안녕!” 아듀! A Dieu!(그는 진정 나의 우상이고 신이었다!) 그와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이제 그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덜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데리다 없는 데리다’가 대신 언제까지라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짐작하건대, 행복하게도 나는 그의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데리다의 텍스트들을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텍스트들은 텍스트-무한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텍스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해서, ‘텍스트 바깥은 없다’. 그리고 거기엔 나대로 덧붙이자면, ‘자연사의 바깥은 없다’는 니체적 메시지가 반영돼 있다. 한 대담에서 얘기한 것이지만, 데리다는 내세(來世) 따위를 믿지 않았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숙고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해서, 사르트르의 죽음에 대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쳐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제거 불가능한) ‘거리’를 나는 사랑한다(니체라면 ‘운명애’라고 불렀을 것이다. 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은 그 ‘운명애’이다). 어떠한 종교로도 위안 받을 수 없는 그 차이(差移)를!..

04. 10. 12./ 07.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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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를 소화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하군요. -_-
데리다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요. 집에 <글쓰기와 차이>가 있는데 아직 못봤죠.

로쟈 2007-02-0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자신에게 많은 걸 말해주는 철학자를 많이 읽으면 되는 것이죠...

아포지 2007-02-04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를 언제쯤 "책"으로 읽어 볼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로쟈님도 그러하지만, 저도 "책"이라는 매체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힘내세요

로쟈 2007-02-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대부분의 페이퍼는 그냥 온라인용이어서요.^^;

sommer 2007-02-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데리다-가라타니'의 삼인조가 흥미롭네요. 그 삼인조가 모두 '초월론적'인 것에서 각자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데리다의 해체-이후에도 남아 있는 '초월론적인 시차'에 강조를 두어 실재의 참조점으로 활용하고 있는게 지젝이라면, 가라타니는 데리다 없는 해체를 여전히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젝이 끊임없이 데리다를 '비난/참조'하면서 나아가고 있는 반면에, 가라타니는 데리다를 '대체'하고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로쟈 2007-02-0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ture님이 그 삼인조에 대해서 책 한 권 쓰시길! 빨리 안 쓰시면 제가 쓰는 수가 있습니다!(이런 게 공갈협박인가?..)

섬나무 2007-10-1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이런 류의 페이퍼는 참으로 매력적입니다.개인적으론 아무런 수고없이 귀한 열매를 얻은 듯한 느낌입니다.^^오늘은 로일의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7-10-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꺼이 읽어주시니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가 '한국 SF'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창작 SF를 기준으로 한 건 아니고 SF소설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해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고. 장르소설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나의 관심은 장르가 아니라 작가이다) 흥미를 끌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지난 2002년 쥘 베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컬렉션 가운데 완역판 <해저 2만리>는 벌써 절판이다. 완역본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없는 것인가?). 

문화일보(07. 01. 03) 꿈과 상상력 키워준 ‘한국 SF’ 100주년 맞다

한국 과학소설(Science Fiction·SF)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1907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가 ‘해저여행기담’이란 제목으로 재일유학생 학술지인 태극학보에 번안, 연재된 것이 본격 한국 SF의 효시. 한국의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1950, 1960년대에 인기를 끈 SF 만화 ‘라이파이’(김산 작)를 보며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의 세계적 로봇 공학자들이 어린 시절 공상과학만화 ‘아톰’을 보며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최초의 산업용 로봇 제작회사 ‘유니메이션’의 대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을 보며 상상력을 길렀다고 고백했다(*예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아시모프의 자서전은 그의 소설들 이상으로 재미있다). 이처럼 과학을 주제로 한 허구적 이야기, 즉 SF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의 과학을 가늠해볼 수 있는 꿈의 놀이터다. 만화, 영화, 드라마 등으로 변주되고 있는 SF의 본 바탕은 물론 소설이다.

한국 SF의 역사가 100년으로 결코 짧지는 않지만 그동안 창작물이 거의 없이 번역물에 의존, 소수의 마니아 독자에 의해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SF 전문가들은 올해가 국내 SF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전기로 보고 있다. 창작 SF가 쏟아지는 한편 월간 전문잡지가 탄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출판사들이 수지 타산을 이유로 SF 출간을 속속 포기하고 있고, 신인 발굴 등용문에 대한 지원 기금도 폐지될 위기여서 향후 SF의 활로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국의 척박한 땅에 긴 생명력 = 1907년 ‘해저여행기담’에 이어 1908년 이해조가 역시 번안작품 ‘철세계’를 출간했다. 1925년엔 박영희가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이 나타난 카렐 차페크의 작품 ‘R.U.R’를 번역한 작품을 선보였다(*차페크의 <로봇>이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한데 이 책 또한 품절이군).

1929년에 김동인이 ‘K박사의 연구’라는 SF단편을 발표했으나,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해방 이후 청소년용 과학소설인 한낙원의 ‘금성탐험대’와 문윤성의 ‘완전사회’가 인기를 끌었으나, SF 전체로 보면 순수문학작품에 비해 문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적 주목도가 크게 떨어졌다.



1987년에 나온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작)는 국내 창작 SF의 전기를 이룬 작품. 이후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아마추어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요즘도 각광을 받고 있는 ‘듀나’가 이때 등장한 SF 작가다.


그러나 국내 독자들은 여전히 소수 마니아에 불과해서 창작물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SF를 주로 펴낸 출판사 행복한책읽기 대표 임형욱씨는 “2004년에 SF잡지 ‘해피 에스에프(HAPPY SF)’를 냈는데, 창작물 작가와 독자가 없어서 결국 2년 만에야 2호를 냈다”고 전했다. 그는 “20세기 말까지는 국내 SF출판물이 90% 이상을 번역물에 의존했다고 보면 된다”며 “21세기 들어서 국내 창작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들어 국내 창작 SF가 잇달아 나와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씨 등 신예작가의 작품집 ‘누군가를 만나서’가 나왔다. 내달에는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편집주간으로 있는 웹진 ‘크로스로드’(http://crossroads.apcp.org/)가 출판사 황금가지를 통해 창작 SF단편집을 펴낸다.

◆“사느냐, 죽느냐” 올해가 기점 = 올해 국내 SF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SF전문잡지인 월간 ‘판타스틱’의 창간이다. ‘판타스틱’은 SF 작가이자 편집자인 박상준씨가 창간 준비팀장을 맡아 3월말 창간을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팀장은 “황우석 스캔들에 이어 우주인 선발, 한국형 인공위성 개발 등의 소식으로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SF 독자층도 두꺼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SF 중흥의 요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비관적인 조짐들도 있다. 3년 전부터 시행해 온 ‘과학기술창작문예’가 올해 과학기술부의 예산 삭감으로 폐지된 것이 SF계를 낙담시켰다. 한 SF작가는 “신예 작가의 산실인 ‘과기문예’가 부활되지 않는다면, 작가 지망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나쁜 조짐은, 그동안 SF소설을 출간해 왔던 15, 16개의 출판사들 중 일부 대형사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 대형사의 출판 포기는 다른 중소형사에도 영향을 미쳐 창작물 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임형욱 대표는 “월간 발행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 ‘판타스틱’이 성공한다면 국내 창작 SF뿐만 아니라 해외 우수 작품의 수입도 활발해질 것이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아무도 이 분야에 투자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SF계는 암흑기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장재선기자)

07. 02. 03.

P.S. 러시아 SF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내 경우엔 단연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Stalker)>(1979)이다. 스트루가츠키(스뜨루가쯔끼) 형제의 SF소설 <길가의 피크닉>(1971)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열린책들)은 작년 여름에 재판이 나왔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스뜨루가쯔끼 형제는 일본 문학을 전공한 형 아르까지(1925-1991)와 천체 물리학자인 보리스(1933- )로, 둘은 반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SF소설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196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구소련 정부의 냉대로 침묵을 강요받고, 작품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1974년작인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은 현대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외계로부터의 압력을 받는 과학자들을 그렸다. 학자들이 정체모를 외계의 압력을 받는다는 것은 학문이 정치의 지배를 받는 구소련의 상황을 풍자한 것. 생존을 위해 타협할 것인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가며 학자적 양심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러므로 단순한 픽션만은 아니다."

그들 형제의 또다른 대표작 <길가의 피크닉>도 그런 의미에서 소개됨 직하다. 한번 강력히 추천해봐야겠다.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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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하던 대로 경향신문에서 '작가와 문학 사이' 연재를 옮겨놓는다. 오늘의 한국문학을 이끌고 나가는 젊은 시인, 작가들의 면면을 매주 한 사람씩 확인해보는 일은 즐겁고도 자극적이다. 이번주에 소개되는 작가는 작년에 첫 장편소설 <리나>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작가 강영숙씨이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의 작가리뷰와 함께 작년 한국일보에 실린 작가의 수상소감을 같이 옮겨놓는다. 어제 세상을 떠난 스승 오규원 선생에 대한 언급도 소감에는 들어 있다(시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꾼 건 스승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작가로서건 여성작가로선 앞으로 '큰 작가'로 성장해가는 것이 독자의 바람이면서 돌아가신 스승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경향신문(07. 02. 03) [작가와 문학사이](5)강영숙-여성을 배반하는 여성작가

강영숙은 여성작가다. 그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여성문학이 ‘붐’을 이루었을 때 여성작가라는 레테르는 비평적으로 옹호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지금 작가들에게 ‘여성’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협소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다. 법률상 여성인 작가들조차 이제는 그냥 작가로 불리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여성? 웬 여성문학?” 그러니 강영숙을 여성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미안할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영숙은 여성작가다. 그런데 여성작가이되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배반하는 여성작가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반명사 여성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그녀들은 덩치가 크지만 힘이 세지 않고 무신경하면서도 섬세하다. 강하면서 나약하고 대범하면서 소심하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인물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다면체적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쉽게 포착되기 어렵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일종의 중간자가 되고 싶었다”(‘자이언트의 시대’)는 작가의 고백은 관습적인 성별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즈음 강영숙만큼 여성의 성과 육체를 문학적 사유의 매개체로 적극 활용하는 작가가 있을까. 소설 ‘봄밤’(소설집 ‘날마다 축제’ 수록)의 마지막 구절인 “임신이었다”는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의 마지막 구절인 “초조였다”를 떠올리게 한다. 임신은 초조로 상징되는 사춘기 여자아이의 첫 번째 성장통에 이어지는 제2의 성장통을 암시한다. 오정희 소설에서 초조를 겪는 여자아이의 육체적 변화가 그대로 중국인 거리로 상징되는 낡은 세계의 몰락과 미군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재연하는 것처럼, 강영숙 소설에서 임신한 여자의 육체는 이 세계의 비극적 기미를 포착해냄으로써 그러한 세계의 비극성이 빚어낸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이제 여성의 육체는 강영숙에 이르러 세계의 고통을 통각하고 재현하는 허구적 장소가 된 것이다.



장편소설 ‘리나’의 ‘국경’은 그러한 여성의 육체적 감각법을 통해 구현한 허구적 장소를 상징한다. 일차적으로 ‘리나’는 고통스럽지만 이미 익숙해진 탈북자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리나’가 성취한 득의의 영역은 매춘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탈북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작가는 주인공 리나의 국적을 지우고 기원을 삭제함으로써 탈북자 리나를 국경을 넘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국경 탈출자 일반에 관한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하여 ‘리나’는 불법체류 노동자의 사연이거나 자본의 유통 경로를 따라 남하하는 매춘여성에 관한 기록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도 언제나 저쪽에서 이쪽으로 경계를 넘어가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과정에서 이전의 ‘나’ 위에 다른 존재들이 겹치고 쌓이는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복수적 존재가 된다. 리나의 ‘국경 넘기’는 바로 그런, 이쪽과 저쪽에도 포섭되지 않는 복수적 존재로서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결국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리나는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그러한 ‘국경적 삶’은 고집스럽게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경 넘기를 통해 리나는 다른 무수한 국경적 존재들과 만나 그들의 비극적 상황을 자신의 육체 위에 허구적으로 구축한다. 우리는 그들을 타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타자는 주체의 바깥에 거주하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나’의 단단한 외피를 말랑말랑하게 만들면서 ‘나’ 안으로 들어와 종국에는 ‘나’와 구별되지 않는, 이미 ‘너’가 아닌 존재들이다. 강영숙에게 여성은 그렇게 ‘너’를 ‘나’ 안으로 들여와 섬길 수 있게 하는 문학적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니 강영숙은 어쩔 수 없이 여성작가다.(심진경|문학평론가)

한국일보(06. 11. 20) 제39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강 영 숙

"우린 모두 리나처럼 슬픔의 자루 하나씩 달고 사는 건 아닐까"
"소설 쓰는 건 벼랑끝서 행하는 피나는 소통 따뜻하고 시원한 공기 한뼘 선물 받은 기분"


올해도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중 한 사람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할아버지들이 꽉 들어찬 인사동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몇 통 했다. 후보에 오를 때마다, 올해도 괜찮은 단편소설 하나는 쓴 거라며 연례행사를 치르듯 그냥 흘려보냈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저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촌스럽게도 덜컥 몸살이 나버렸다. 데뷔 후 8년 동안 몸 속에서 함께 살았던 그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이 몸살이 기분 좋아졌고 누군가 지나가면서 머리를 한 대 가볍게 툭 친 것처럼 어리둥절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혹시라도 작가적 기절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다. 나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시절 내내 기초 종목인 장단거리 달리기와 넓이뛰기 선수는 물론 스케이트 선수와 배구 선수로 지냈다(*이 작가에게서 '자이언트' 모티브의 기원이겠다). 일기를 자주 쓰기는 했지만 그저 그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직업을 가지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겠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지겹기도 하지만 그런 느낌은 금세 잊고 똑같은 삶의 패턴으로 다시 돌아간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작가다운 일상이란 것도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깨워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직장일과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약속이 없는 날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간다. 3년째 재택근무자인 나에게 천장이 높은 도서관은 공부방이자 사무실이고, 도서관에서 보는 노을은 아주 쿨한 주홍색이다. 그러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겨워지면 시내로 나가 영화클럽 멤버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80년대 후반의 문예창작과는 시인 지망생들로 넘쳐 났고 나도 아주 섹시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은 학생들 중 하나였다. 오규원 선생님의 충고로 장르를 소설로 바꿨고, 데뷔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발광도 했지만, 그 긴 시간이 역설적으로 어떤 순발력 같은 것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춘천에서 살다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로 이주한 열 다섯 살 이후부터 아주 긴 일기를 썼다(*춘천은 인천에 이어서 작가 오정희의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은 슬픔에 떠밀려 다니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한 척의 거대한 배 같았다고 할까. 습작 때도 그런 막연한 도시 이미지를 묘사했다. 그러나 쓰면서도 내가 무엇을 쓰는지, 내가 왜 쓰는지 알고 시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릴 적, 부엌 석유곤로 위의 냄비에서 솟아나는 흰 김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 항상 밝은 성격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무엇인가를 응시할 때, 아주 가끔씩 마음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상한 슬픔을 느끼곤 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슬픔의 자루 하나씩을 허리 끝에 달고 다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수많은 ‘리나들’ 또한 국경을 넘은 후부터 일정 기간 동안의 시간을 자루 속에 넣어둔 건 아닐까. 누구에게나 그런 사라진 시간은 있는 것 같다.

리나는 어쩌면 밖으로 나가려는 삼라만상, 모든 존재의 여정을 대변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리나와 나를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피차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드러내고 싸워야 한다. 그것은 불편한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일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피나는 소통의 과정인 동시에 뒤로 돌아서면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환각의 공간을 헤매는 것처럼 모호한 일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나>는 우울증의 소산이다. 나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제안하는 일에 참여하고 소설을 쓴다(*이 작품이 내게 떠올려주는 소설은 카프카의 <성>이다. 나는 작가가 '국경'이란 테마로 또다른 카프카적 세계를 더 발견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멜랑콜리에 유머를 칵테일한). 일의 양이 많지 않아 잠시라도 짬이 나면 슬픔들이 마음을 치고 머리로 올라온다.

긴 노동이 끝난 후에, 따뜻하고 시원한 공기 한 뼘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내 눈과 뱃속이 열을 받아 다시 따뜻해지길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한번도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텍스트 한 편을 구상하기 위한 시간을 죄책감 없이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순한 양처럼 착해져서 아침에 좀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 온갖 다짐으로 마음이 몹시 분주하다.

07. 02. 03.

P.S. 보너스 트랙으로 <리나>의 출간을 다룬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직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지나쳐도 좋겠다(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을 다룬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4739 참조). 읽을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이 탈출소녀의 이야기를 사서 그냥 서가에 꽂아두시길. 그러다 좀 우울할 때 읽어보시면 되겠다. 아니면 어디로 탈출할 때 여권과 함께 가방에 넣으셔도 좋겠고...

한겨레(06. 09. 16) '국경 탈출’을 사랑한 소녀  

소설가 강영숙(40)씨가 첫 장편 <리나>(램덤하우스코리아)를 펴냈다. 주인공은 열여섯 살 소녀 ‘리나.’ 그는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국경을 넘어 탈출길에 오른다. 그의 조국은 대륙의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이고, 그가 향하려는 곳은 “내가 태어난 나라와 같은 말을 쓰지만 때깔이 전혀 다르고 풍요로운 곳이라고 알려진 P국”(344쪽)이다. 그가 남쪽으로 오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작가는 구체적인 나라 이름과 지명을 괄호침으로써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러 흐릿하게 만든다. 그 결과, 국경을 건너는 리나의 탈출 이야기는 영토와 경계를 넘는 탈주와 모험에 관한 일반적인 서사로 옮겨 가게 된다. 독자는 물론 이 소설을 리나라는 이름의 한 탈북자가 겪는 시련과 고난의 이야기로 읽을 자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의도는 ‘탈북 수기의 소설화’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나는 결국 ‘P국’으로 가지 못한다. 소설의 중후반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리나는 대륙의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로질러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 제3국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제3국에서 다시 대륙으로 들어와 동북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륙을 한 바퀴 돌아 떠나온 지점에 다시 와 있다는 황당한 사실을 안 리나는 울지도 않았다.”(191쪽)

물론 애초에 리나는 ‘P국’으로 가고자 했다. 그곳은 무엇보다 풍요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국경을 넘어 대륙에서 마주친 풍요의 일단을 엿본 리나의 생각이다: ‘내가 가서 살게 될 P국은 이 나라보다 더 잘산다고 했어. 나도 저 여자들처럼 청바지와 구두를 신겠지. 정말 대학에도 갈 수 있을까. 배가 터지게 먹기는 할 거야.’(26쪽)

감시와 단속을 뚫고 몇 개의 국경을 넘는 탈출이 손쉬울 리 만무하다. “국경은 그저 퇴로가 없이 사방이 막힌, 비탈지고 조용한 산길의 일부일 뿐”(13쪽)이라고는 하지만, 그 국경을 넘어 다른 영토로 스며들기까지는 숱한 고난을 거쳐야 한다. 장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산길을 걸어야 하는 탈출자들이 취하는 행동을 보라.

“오후가 되자 노인들은 머리카락을 뒤져 이를 잡아먹었고 남자들은 땅속을 파거나 바위를 들쳐 누에처럼 생긴 벌레를 잡아 구워 먹었다.(…)리나도 잠자리 두 마리와 전갈처럼 생긴 벌레 한 마리를 먹었다.(…)사람들은 불 앞에 모여 앉아서 자기 팔을 입으로 물고 있거나, 겨드랑이를 긁어서 나온 것들을 입 속에 넣거나 발 새에 낀 때를 빼먹었다. 머리가 긴 신혼의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48쪽)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은 대로, 탈출자들이 겪는 참상이 효과적으로 묘사된다. 이런 시련과 시험을 거쳐 리나는 드디어 ‘P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뜻밖에도 식구들을 버리고, 아울러 ‘P국’을 향한 꿈도 과감히 접은 채 또 다른 모험 길에 나선다. 그것이 반드시 “너네 나라는 미쳤고 P국은 썩었어”(109쪽)라는 선교사의 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탈출의 초기 단계에서 식구들과 헤어져 노예노동과 성적 착취에 시달렸으며, 자본주의적 풍요의 더러운 이면을 엿본데다, 특유의 삐딱한 기질과 모험 충동이 결부되어 내려진 이런 결정은 소설 <리나>를 탈북자들의 수기와 뚜렷하게 구분짓는다. “탈출이란 것이 이제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투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혈액이 든 비닐 주머니처럼 느껴졌다.”(117쪽) 이제부터 리나의 탈출은 목표를 향한 다가감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탈출 자체를 위한 탈출로 성격을 바꾼다.

이후 리나의 삶의 유전은 현란하다 싶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어렵게 넘어간 제3국에서 대륙으로 되돌아온 그는 우연한 계기에 천막 극장의 가수가 되었다가는 집창촌의 창녀로 팔려 가고, 집창촌이 헐린 뒤에는 또 다시 대륙 북동쪽 경제자유구역의 공장 노동자로 전신한다. 소설의 중후반부 이야기는 톈진 정도로 짐작되는 이곳 공단지대에서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리나는 나중에는 공단 외곽 술집 주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최초의 노예노동과 성적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남자를 죽였던 리나는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 리나가 “어쩌나, 난 다시는 살인은 안 하려고 했는데…”(261쪽)라며, 흡사 실수로 예쁜 꽃병을 깨뜨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소설의 어조는 결코 어둡거나 심각하지 않다. 리나의 낙천적이며 강인한 성격 탓이겠지만, 극도의 고통과 수난조차 한 바탕 유쾌한 모험담쯤으로 그려진다는 데에 소설 <리나>의 개성이 있다.

모험과 탈출을 사랑하는 리나로서도 공단지대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술집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쑬쑬했다. 그러나 가스 탱크가 폭발하는 바람에 공단은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 가운데, 살아남은 리나 역시 화학 가스에 노출되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정부는 공단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리나는 또 다시 국경을 넘는 탈출 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이번에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 “코뿔소처럼 생긴 유목민의 나라”(340쪽)가 목적지다. 리나의 수중에는 그를 ‘P국’으로 데려갈 만한 달러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리나는 그 돈을 선교사에게 건네며, 이미 ‘P국’에 정착한 식구들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탈출이 지닌 근본주의적 속성을 또 다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시 국경. 소설의 앞과 뒤에는 리나가 넘으려는 두 개의 국경을 묘사한 비슷한 문장들이 배치되어 있다.

“저만치 앞 허공에 푸른 둑처럼 펼쳐져 있는 국경은 어느 순간 활짝 열릴 거라고 믿었다.”(11쪽)

“리나는 또다시 저만치 앞 허공에 푸른 둑처럼 펼쳐져 있는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348쪽)


리나의 삶은 하나의 국경에 이어 또 다른 국경을 거듭해서 넘는 월경의 연속이다. 소설에는 “세기가 바뀌고 난 후 전 세계의 국경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310~311쪽)는 문장도 있거니와, 몸살은 중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회복과 신생의 가능성 쪽으로도 열려 있지 않겠는가.(최재봉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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