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서평을 둘러보다가 어제 지면에서도 지나쳤던(게재는 되었던 것일까?) 기사가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미스테리한 것은 아직 어느 온라인서점에서도 이 서평기사의 대상이 떠 있지 않다는 점. 무슨 유령 같은 책이다. 기자가 서평을 작성한 것으로 보아 언론사에는 '뿌려진' 듯하지만 다소 늦게 보내진 탓에 다음주로 서평들이 미뤄지거나 별로 주목을 못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한데 주제 자체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쪽이어서 책은 나오는 대로 훑어봐야겠다. 그 책의 타이틀은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시유시, 2007)이다.

원저의 제목은 <자본가 없이 자본주의 만들기(Making Capitalism Without Capitalists)>이며 지난 1999년 버소출판사에서 나왔다(부제는 '사회주의 이후 중부유럽에서의 계급형성과 엘리트 투쟁'이다). 이런 류의 책으로는 좀 오래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게 흠이긴 한데, 책에서 다루는 러시아나 동유럽 경제만 하더라도 2000년 이후에 상당히 변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는 맘에 든다.

한국일보(07. 03. 10)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동유럽의 脫공산주의 다시보기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속속 몰락하자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는 재빨리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헤겔-마르크스가 말하던 진화적 역사가 끝났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이 책의 저자들도 후쿠야마의 판단에 딱히 이의를 제기할 것 같진 않다. 대신 그 선정적 구호를 ‘역사의 다양한 종언’이라고 바꾸지 않을까.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의 주장을 요약하면 ‘자본주의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이다. 책은 그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특히 유산 부르주아 층이 빈약한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로 역이행하면서 밟는 다양한 경로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그 대표적 사례로 동유럽 국가의 변동 과정을 실증 분석한다. 설명에 따르면 사유재산을 가진 계급이 없었던 이들 나라에서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한 것은 교양 부르주아였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사회주의를 공격하던 반체제 지식인이었다. 예상과 달리 ‘노멘클라투라’로 불리는 귀족 관료는 신체제에서 기존 권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대신 신세대 관료라 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교양 부르주아와 손잡고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 등장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에서 두드러진,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로의 이행이었다. 이 같은 현상의 분석 틀을 마련하고자 저자들은 베버와 브루디외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한다. 전자에선 신분과 계급의 구별을, 후자에선 정치자본 문화자본 경제자본 등을 포괄하는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빌렸다.

이 관점에서 동유럽의 탈공산주의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사회 주체들의 역동성이 포착된다. 체제 변동에 뒤쳐질세라 개인들은 앞 다퉈 사회주의적 신분에서 자본주의적 계급으로 정체성을 조정한다. 바꿔 말하면 변화한 환경에 유리한 자본은 늘리고 불리한 것은 버리면서 자본 포트폴리오=아비투스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치열한 적응 과정을 거치며 문화자본을 가진 지식인-기술관료 연합은 정치·사회자본을 갖춘 엘리트 관료를 압도한다. 교양이 권력과 권위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진풍경이 펼쳐진 셈이다.

영미식 모델에 구애받지 않고 각각의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특성을 드러내는 것. 저자들은 이 야심찬 기획을 ‘신고전사회학’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으로 대표되는 고전사회학이 19세기 근대자본주의 이행을 분석했다면, 신고전사회학은 20세기 말 자본주의로의 역이행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설명이다.(이훈성 기자) 

07.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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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2 07:30   좋아요 0 | URL
오옷. 퍼갑니다. 애인이 체코에서 동유럽 역사 공부하고 있는데, 이 책을 체코에서 소개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로쟈 2007-03-17 23:18   좋아요 0 | URL
앉으나 서나 애인 생각이십니다.^^ 그나저나 희한하게도 알라딘에는 아직도 입고가 안돼 있네요.--;
 

지난주 강준만 교수의 칼럼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미 알라딘의 다른 서재들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옮겨놓는 것은 이달의 '사회적 독서'로 제안한 바 있는 고종석의 <바리에떼>와 무관하지 않아서이다. 컴퓨터의 하드를 교체하는 바람에 즐찾 설정부터 하나하나 다시 해야 하는 처지라서(예전의 하드를 카피해오는 건 좀 미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이래저래 불편한 터라 다른 학술적/시사적 동향들에 대해서는 며칠 관심을 접어두어야겠다(사실 그런 일들만 챙기는 걸로도 24시간을 꼬박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게 '생활'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생활만 돌보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는 '현실'이기에 피로와 무기력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게 요즘이다). 사실 혼자서 읽을 책들 읽는 데에도 늘 시간은 부족하거늘...

한겨레21(07. 03. 08) '고종석'식 진보주의를 위하여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 민주노동당(민노당)이 창당 기념일 행사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 형성에서 민노당의 발전과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지식인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면, 1순위로 누구를 꼽겠는가?

나는 고종석이다. 고종석의 반열에 오를 만한 다른 지식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주장을 염두에 두면서 최근 고종석이 펴낸 <바리에떼: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개마고원)이라는 책을 읽기를 권한다. ‘사람’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고종석의 ‘복잡성’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복잡성'에 대한 강조는 소설에 대한 쿤데라의 예찬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고종석식 진보주의'를 나는 따로 '산문적 진보주의'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은 '산문학의 정신'). 아니 무심코 읽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나는 자칭 ‘고종석 전문가’로서 그가 얼마나 ‘복잡한 사람’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예비 지식을 드리고자 한다. 고종석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아니다. 담담하게 해부해보는 것이다.

고종석은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나는 진보 정당의 지지자가 아니다”(203쪽)라고 했다. 고종석은 진보주의자가 아닐뿐더러 집단주의를 혐오한다. 그는 “만국의 개인들이여, 흩어져라! 흩어져서 싸우라! 민족주의의 심장에, 모든 집단주의의 급소에 개인주의의 바이러스를 뿌려라!”(30쪽)라고 선동적인 개인주의 선언을 한 바 있다.

고종석이 낙관적 열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나는 염세주의자에 가깝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탐욕과 포악과 비굴에서 사람에게 맞설 만한 동물이 있을지 모르겠다”(291쪽)고 털어놓았다. 이 정도면, 고종석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에게 왜 민노당이 감사장을 줘야 한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고종석만큼 효과적인 민노당 지지를 역설한 지식인은 찾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민노당 당원이거나 당원은 아니더라도 민노당 색깔을 가진 진보적 지식인들은 평소 글쓰기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민노당 당원들도 잘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로 논문식 글을 쓰는 지식인들이 다수다. 대중적인 글을 쓰는 지식인들도 있지만, 이들은 보수(자유주의 포함) 정당 비판에만 몰두한다. 보수 정당 비판이 곧 민노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 같은데도, 이들은 왜 민노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겸손하고 간곡한 자세로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보수 정당 지지자들에 대한 호통, 야유, 조롱이 주요 메뉴다. 비극은 많은 민노당 당원들이 그걸 말리면서 “손님 쫓아내지 말라”고 고언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고 속 시원해라” 하면서 즐긴다는 사실이다.

호통, 야유, 조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 차분하고 정중한 설득보다는 그게 더 필요할 때도 있고 효과를 낼 때도 있다. 문제는 시종일관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져 본말이 전도되는 사태다. 나를 위한 진보인가, 민중을 위한 진보인가? 고종석은 시종일관 겸손하게 민노당 지지를 설득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극우 편향을 개탄하면서 ‘이념적 정상화’를 위해 자유주의자들이 민노당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타이르고 호소한다. 이 책에도 그런 호소가 나와 있지만, 고종석이 정치를 주제로 쓴 많은 글엔 명시적·암묵적인 민노당 선전이 들어 있다.

고종석이 묘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야만에 대해 그 어떤 진보주의자보다 더 진보적 의분을 표출해왔으면서도, 자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 말이다. 문학평론가 백철(*'백철'이 아니라 '김철'이다)은 고종석의 소설집 <제망매>에 쓴 발문에서 고종석의 묘한 이념 지향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어떤 ‘좌파들’보다도 더 좌파적이었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더 우파적이었다.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아니 진보의 험난한 좌절들을 진실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는 충실한 좌파였고, 많은 좌파들을 부끄럽게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또한 충실한 우파였다.”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고종석은 한국형 진보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진보 세력이 ‘고종석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선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시험의 이름은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 정립 문제다. 개인주의는 오랫동안 사회주의와 갈등 관계를 유지했다. 사회주의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개인주의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해 유보적 자세를 취하곤 했다. 예컨대,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회주의에 공감했지만 사회주의가 개인과 천재에 반대하는 것을 싫어했다. 가치 있는 것은 오직 개인뿐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그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에 낸 <인간의 영혼과 사회주의>에서 “우리가 사회주의를 통해 이르고자 하는 것이 개인주의”라고 주장했으며, 조레스는 1898년에 낸 <사회주의와 자유>에서 “사회주의는 완전하고 논리적인 개인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개인주의의 논리적 완성으로 보았으며, 빅토르 바슈는 1904년에 낸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서 “일관성 있는 개인주의는 사회주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알랭 로랑의 <개인주의의 역사>)

한국에서 ‘개인주의를 거친 사회주의’를 시사한 이는 한양대 교수 임지현이다. 그는 “낡은 전통에 가위 눌려 있는 남한의 좌파 지식인들은 ‘사회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를 거친 사회에서만 건설할 수 있다’는 트로츠키의 회한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론 없이 곧장 실천으로 들어간 대표적 인물이 바로 고종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종석이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 가운데 사회주의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고종석은 진보주의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고종석은 한사코 자신이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개인주의와 진보주의가 양립하지 못하는 한국의 진보주의 풍토를 정면 돌파할 뜻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그게 고종석의 개인주의가 요구하는 ‘책임 윤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책임 윤리가 박약한 편이다. 책임 윤리란 어떤 일을 할 때 나타난 결과뿐만 아니라 예상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윤리의식을 말한다. 옳은 일이니까 결과에 개의치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다는 진보주의는 책임 윤리가 없는 모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선 곧잘 모험주의가 진보주의로 통용되기도 한다. 독재정권 시절에 형성된 습속이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지속된 탓이다.

이념을 떠나 일상의 차원에서도 책임 윤리가 강한 사람은 공직을 맡는 걸 두려워한다. 책임 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비극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공직자,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책임 윤리 부재 또는 박약을 들겠다. 대부분 고위 공직을 출세로 생각한다. 그건 ‘출세’가 아니라 ‘봉사’하는 거라고 반박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봉사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하고 남이 자신보다 좋은 봉사 기회를 갖게 되면 배 아파하고 헐뜯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단 말인가?

책임 윤리가 강한 사람은 함부로 공적 단체를 만들지도 않는다. 공공의 목적을 위한 단체면 성공 가능성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만들고 보는 게 우리 시민사회의 풍토다. 하다 안 되면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책임? 공익을 위한 이타적 활동에 무슨 책임? 책임 윤리가 강한 사람은 이타성을 면죄부로 내세우는 그런 반문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책임 윤리 유전자를 가진 고종석이 영원히 공직을 맡거나 상시적인 공적 단체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태까지 내가 분석해온 고종석은 그렇다는 것이다.

고종석은 진보마저도 책임 윤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뜻 “나 진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진보를 고위 공직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백철(*강교수가 작고한 평론가와 혼동한 모양이다)의 평가를 다시 읽어보라. 가슴에 와 닿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고종석은 과격한 개인주의 선언을 하였지만, 나는 실천에선 내가 고종석보다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이기주의에 더 충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12월 나는 고종석과 민주당 분당 문제로 논쟁을 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글이 <바리에떼>에 실려 있으므로, 이 이야기를 좀 해보자. 민주당 분당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에선 나와 그의 생각은 같았지만, 전체 또는 집단을 생각한다는 점에선 고종석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고종석은 “가난한 부모가 창피하다며 집을 뛰쳐나갔다가 세상에서 따돌림당하는 자식을 거두어 보살피는 어미의 심정으로 호남 유권자들은 신당을 감싸야 한다”(187쪽)는 주장을 폈다.

나는 이런 ‘부모·자식·어미’론이 부적절한 유추라고 생각한다. 고종석이 ‘참여정부의 파산’을 염려해 열린우리당 지지를 역설하고, 다른 대안으로 민노당 지지를 제시한 건 나로 하여금 “이 양반 개인주의자 맞나?”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고종석은 나의 주장이 ‘민주당 지지’를 ‘암시’한다고 해석했지만, 나는 “이 양반 진짜 개인주의자 맞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혹 ‘대안 중독증’이나 ‘독수리 5형제 신드롬’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노무현의 해체주의는 ‘창조적 파괴’라고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건 노무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말이냐고 내심 쏴붙였다.

나는 열린우리당은 내가 반대한 정당이므로 열린우리당이 파산하건 말건 아무런 책임 의식이 없는 반면, 고종석은 대선에서의 투표에 대한 책임을 말하면서 노 정권에 대한 책임 윤리마저 역설하는 게 아닌가! 고종석이 자유주의자요, 개인주의자라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노무현은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민의를 폄하하면서 결과야 어떻게 되든 모험주의라고 불러주기조차 어려운 도박주의로 치달리는데도 고종석은 그런 노무현까지 어미의 마음으로 껴안자고 역설했으니, 나로선 “오지랖도 참 넓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종석은 “노무현이 아무리 나빠도 최병렬이나 이회창보다는 수백 배 덜 나쁘고, 전두환보다는 수만 배 덜 나쁘다”(199쪽)는 논리를 내세워 특검법 통과에 한나라당과 공조한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나는 여기서 고종석의 평소 ‘쿨함’이 사라졌다는 게 흥미롭다. 이는 그가 ‘개인’보다는 집단적 ‘대의’를 앞세운 탓이리라. 나도 평소 대안을 어지간히 강조하는 편이지만, 잘못된 것을 비판함에 있어서 늘 그 결과와 대안까지 미리 생각하고 비판에 임하진 않는다. 그런데 고종석은, 비록 그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어를 혐오할망정, 사실상 국가와 민족을 염려하는 지극한 애국심을 발휘했으니 이 어인 일인가.

<바리에떼>엔 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성실한 반론이 실려 있다. 87쪽에서 137쪽에 이르는 긴 글이다. 고종석 스스로 “식민지 시기의 역사적 복권을 통해 민주주의 운동의 정통성을 흔들려는 온갖 ‘경제론’들의 급소를 이 글이 비교적 정교하게 움켜쥐었다고 나는 판단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이다. 최근 홍수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는 식민지 시절에 대한 모든 논란에 대해 명쾌한 교통정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종석은 복거일을 내내 비판하지만 그의 비판은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하다. 나는 복거일에 대한 과분한 대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복거일은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이며,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니 보수주의니 하는 건 편의적으로 동원되는 것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고종석이 복거일의 자기 교정 가능성에 대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건 자신이 복거일로부터 배운 점이 있다는 것에 대한 책임 윤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종석과 같은 희귀한 지식인이 있다는 건 한국 지식계의 축복이지만, 내가 정작 높이 평가하는 그의 미덕은 매사를 깊이 꿰뚫어보는 시력이다. 내 기준으론 보아선 과도할망정 고종석의 엄격한 책임 윤리가 곳곳에 스며드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물질적으론 낮은 곳에 있을망정 정신적으론 높은 곳에 서서 진보 아닌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부 진보주의가 고종석형 진보주의로 교체되는 그런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강준만)

07. 03. 11.

P.S. 내친김에 <바리에떼>에 대한 한겨레의 서평도 옮겨놓는다(알다시피 한겨레는 그가 한때 몸담았던 매체이다). '이너'도 '아우터'도 아닌 (보통은 남들에게 욕먹는) 그의 포지션을 나는 지지한다. 언젠가 적었지만 나는 고종석과 대동소이한 입장을 갖고 있다(차이라면 내가 그보다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덜 지지한다는 것 정도이다).  

한겨레(07. 20. 16) ‘이너’도 ‘아우터’도 아닌 고종석의 자유생각

1993년 첫 저서 <기자들>을 펴낸 저자가 17번째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지난해 3권을 출간했고 올해 1월이 가기 전에 다시 새 책을 펴냈다. 1년 사이 4권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한 인기글쟁이라는 점과, 그의 글쓰기가 밥벌이와 직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저자는 2005년 3월부터 직장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돈을 초월한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여가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 책은 삶을 털어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을 완비한 한 ‘행복한 글쟁이’의 자유로운 사변의 모둠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친구인 소설가 이인성의 산문집 발문에서부터 지난 대선에서의 호남 몰표를 옹호한 정치 에세이와 한국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 글까지 동시대를 종횡무진 횡단한다. 저자 글의 미덕은, 그가 소리높여 외치는 좌파적 주장이 편벽한 이념의 틀 속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실존적 성찰 속에서 잉태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의 텍스트가 놓인 지점이 공과 사를 버무린 제3의 공간에 있다는 점과도 상통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자유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부 복거일과 격렬히 대결한다. 일제와 친일세력에 대해 정황론을 들이대며 옹호하는 사부를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이 전투에서 그가 어떤 논리를 갖다 대더라고 그가 퇴직의 변으로 실토한 넋두리보다 더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점점 기력과 지력이 사그라드는 세월을 좀 더 자유롭게, 홀가분하게 살고 싶었다.” 식민 이상의 부자유스러움이 어디 있겠는가. 

유난히 자주 나오는 ‘친밀도’에 대한 언급도 그의 사유방식을 가늠케한다. “내가 아직 순수하지 않고 기품과 거리가 있는 것은 내가 황인숙과 충분히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시인 황인숙에 대해) “그와 나 사이에는 무수한 친구들이 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이너’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 내 자리는 없기 쉬울 것이다. 내 자리는 아마 ‘이너’와 ‘아우터’의 경계에 있을 것이다.”(소설가 이인성에 대해) 그리고 덧붙였다. “이방인들이 들이 쉬는 공기는 자유의 공기이므로.” 그의 글의 특장인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태도의 근원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이정도면 설명되지 않을까.(강성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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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3-11 19:37   좋아요 0 | URL
오마이뉴스에 노회찬이 대통령이 되면 매년 20조씩 걷어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나오네요. 좀 무서워 지는게 그러나 엿되면 뒷감당은, 지금 노무현 정부도 양극화를 내세우고 격차줄인다고 하다 더 벌어지게 만들고 있는데요.

심산 스쿨에 들어가보니 조중걸 선생이 암으로 강의를 중단했다고 나오더군요.
학생들에게 쓴 편지가 게시판에 있던데 안습되더군요.

로쟈 2007-03-11 20:20   좋아요 0 | URL
민노당은 그런 게 어필할 거라고 생각한 거 같군요... 생면부지이지만 조선생 얘기는 안타깝네요. 그의 본격적인 저작들이 나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팀전 2007-03-11 22:23   좋아요 0 | URL
저도 한겨레21 기사는 읽었습니다...
한겨레 기사 중 이 부분
.......저자 글의 미덕은, 그가 소리높여 외치는 좌파적 주장이 편벽한 이념의 틀 속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실존적 성찰 속에서 잉태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의 텍스트가 놓인 지점이 공과 사를 버무린 제3의 공간에 있다는 점과도 상통할 것이다.........

여기에 힘을 주고 싶어지네요.좌파 우파보다 우선시 되야할 것은 그의 이념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적 영역에서 살아내고 있는지..그거 아닐까 싶습니다.....그렇지 못한 '공부'는 제게 그다지 존경받지 못합니다.'자본론'을 100번읽고 암기할 수 있다 할지라도.

로쟈 2007-03-11 22:32   좋아요 0 | URL
저는 거기에 보태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책임 윤리가 박약한 편이다. 책임 윤리란 어떤 일을 할 때 나타난 결과뿐만 아니라 예상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윤리의식을 말한다. 옳은 일이니까 결과에 개의치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다는 진보주의는 책임 윤리가 없는 모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상식적인' 지적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마태우스 2007-03-11 22:35   좋아요 0 | URL
진정한 자유주의자 고종석... 저도 그분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많이 배웠죠.... 바리에따 주문했습니다 꾸벅.

로쟈 2007-03-11 22:45   좋아요 0 | URL
저도 재미있게 읽고 많이 배웠으니 '동학'이라 하겠습니다. 하니 제가 인사받을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작가와 문학사이'의 아홉번째 타자는 소설가 김중혁이다. '소설 이천년대'를 꾸려나가는 작가군의 한 사람. 자신을 '레고 블록'의 덩어리로 규정하면서 소설 쓰기 또한 그러한 '블록쌓기'적인 유희로 간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이 작가에 대해서 심진경 평론가가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이름도 그렇지만 외모 또한 '중량'이 좀 나갈 것 같은 작가에게서 그런 블록 얘기와 '무용지물의 박물학'을 듣는다는 게 좀 낯설 때도 있다. 그런 것이 또한 '소설 이천년대'의 특징인지도.  

경향신문(07. 03. 10) [작가와 문학사이](9)김중혁-낯섦으로 문학을 완성해가다

펭귄뉴스’라는 낯선 제목의 단편집 말미에 김중혁은 자신을 하나의 ‘레고 블록’ 혹은 수많은 레고 블록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라고 말한다. 이때 ‘레고 블록’과 ‘덩어리’는 다른 말이 아니다. ‘레고 블록’은 ‘덩어리’다. 수많은 ‘레고 블록’이 조립과 해체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이 ‘덩어리’는 다른 누군가의 ‘레고 블록’ 한 조각이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레고 블록’ 한 조각이자, 다양한 레고 블록들의 조합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라는 오래된 자기동일적 명제는 부정된다. ‘나’는 ‘나 이외의 것’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부정의 산물인 셈이다.

김중혁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자기 인식의 메커니즘은 그대로 문학에도 적용된다. 그에 따르면 소설이란 “세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해야만 겨우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1925년산 축음기 크리덴저’)과도 같은 것이다. 사용가치와 도구성을 상실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하는 일, 김중혁에게 소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소설은 엄청난 자기 연마와 수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문학은 무가치한 것이다. 즉 문학은 ‘무엇을 위하여’라는 실용적·도구적 목적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 김현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실용적, 관습적 가치를 반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가치와 의미를 꿈꾸게 한다. 그러니 문학이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김현 선생의 입론은 <한국문학의 위상>에서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도구는 그 도구성을 상실한 뒤에야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장난 타자기는 유용한 도구로서의 실용성을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49개의 이빨을 가진 ‘회색괴물’로 다시 태어난다.(‘회색괴물’) 타자기만이 아니다. 페달도 안장도 없는 자전거(‘바나나 주식회사’)나 촉각과 상상력으로만 읽을 수 있는 나무지도(‘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모두 원래의 용도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관습적 시스템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그래서 제품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낯섦을 통해서만 무용하지만 의미있는 사물이 된다. 그러한 사물은 자명하고 투명한 제품이나 상품과는 달리,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불투명하고 낯선 것으로, 상품의 세계를 교란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김중혁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무용지물’을 문학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뜻 몸 가벼워보이는 김중혁의 문학적 행보를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현대문학’에 다소 엉뚱하고 쓸모없는 발명품을 소개하는 카툰(‘인간개발 프로젝트’)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디오 기기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다양한 장르의 LP판을 수집하기도 하며, 새로 출시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사물-소설은 이러한 마니아적 취향과 감수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소설을 단순히 취향의 세계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러한 문학 아닌 것들의 뒤죽박죽 잡동사니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가치함의 가치라는 문학적 역설은 그렇게 ‘문학은 문학’이라는 자기동일적 순환논법을 거부하고 문학 아닌 쓸데없는 짓거리와 결합하고 교환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은 생산, 유통, 소비되는 상품으로써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결코 그러한 사실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보통의 상품과는 다른 사용법과 가치를 갖는 ‘사물’이라는 점, 그러한 사물이야말로 상품으로써의 문학이 갖는 부정의 존재방식이라는 점. 김중혁의 사물-소설은 그렇게 문학과 사물, 문학과 상품 사이를 넘나들면서 지금 우리 시대 문학의 존재의미에 대해 질문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07. 03. 10.

P.S. 연초에 게재되었던 '문화계 이 사람을 보라' 시리즈의 기사도 이 참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1. 04) [2007 문화계 이사람을 보라] 3. 소설가 김중혁씨

그 ‘유명한’ 김중혁(36)을 만났다. 패서너블한 안경테와 언밸런스한 헤어스타일, 왼쪽 귀고리가 먼저 눈에 띈다. 추운 날씨에도 안에는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겉에는 카키색 점퍼에다 숄더백을 걸친 것이 소설가라기보다 팝아티스트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면서 잡지사 기자로, 프리랜서로 다양한 글을 써왔던 경력 덕분에 자세는 낮고 행동은 민첩하다. 문단의 어떤 모임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작가로서 멋진 인사말을 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은 새삼 주목을 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한 존재다. 지난해 3월 첫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를 낸 뒤 모든 게 달라졌다. 그의 작품은 ‘마니아적 취향으로 사물의 세계에 천착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인간중심주의를 깬 존재’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감각을 바꾼 가운데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조명’ 등의 찬사를 받았다.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의 최종 후보로 오르내렸다. 한 중견작가는 “신인들의 작품은 새롭기는 하지만 좋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펭귄뉴스’는 새로우면서도 좋았다”고 칭찬했다.

“등단 6년 만에 책을 냈는데 재미있는 한해였어요. 계간지에 한 편씩 발표할 때는 얻지 못했던 독자들의 관심과 반응이 실감으로 다가왔고요. 책이라는 물질이 자기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중혁 소설에는 자전거, 라디오, 타자기, 전화 등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것들이 등장한다. 지나간 추억이 올드 팝송이나 빛바랜 사물 속에서 반추되는 것처럼 작은 실마리로부터 농축된 이야기를 끌어낸다. 대중문화적 감성과 깊은 인생철학, 쿨한 서사와 예리한 감수성의 포착, 폭넓은 관심사와 집중력이 조화되면서 독특한 개성을 발휘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창시절부터 빌보드차트 100곡을 외우고 다녔던 음악광이자 요리, 여행, 영화,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박학다식과 취미를 자랑한다. 첨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컴퓨터 라디오 등 기계에도 관심이 많다. 일러스트도 직접 그린다.

“못해도 재미있다 싶으면 해요. 그림을 잘 못그렸는데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왜 학교 다닐 때 책에다 낙서하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력과 글, 그림이 모두 들어간 낙서야말로 종합예술인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영화를 봐야 하고 그럼 만화가 밀려 있고 좋은 전시도 많고…. 그는 놀 때가 가장 바쁘다. 그래도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소설쓰기다. 모든 경험이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소설쓰기라는 한 꼭지점으로 수렴된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의 70%만 한다는 것이 그의 삶의 원칙이다. 그래야 남은 힘으로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시로 문학에 입문했다. 경북 김천 중앙초등학교 4학년때 만난 가장 친한 친구 김연수(소설가)와 중·고교 문예반에서 시공부를 했다. 그후 계명대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4학년때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여러차례 낙방했으며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펭귄뉴스’를 내면서 등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온 뒤 ‘페이퍼’ 등 잡지에 음악칼럼, 인터뷰를 썼으며 ‘리브로’ ‘베스트 레스토랑’ ‘트레블러’라는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소설에만 매달리지 않은 이유는 억지로 쓰기보다는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 걸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청탁이 쇄도하면서 6개 단편을 쏟아냈다. 다음 소설집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섬세한 감정을 건드리는지, 왜 소리를 들으면 상상하게 되는지 등이 관심사다. 1~2편만 더하면 소설집을 묶어낼 수 있지만 거기서 멈췄다. 그 대신 지난 연말에 한 일간지 주말판 기자로 취직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꾸준히 장편을 쓰자는 생각이다. “소설집을 또 내는 것은 왠지 기만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는 “내 단편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장편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가로 각광 받으면서 더욱 소설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취직한다니까 주변에서 우려하는 분도 많았고요. 그러나 소설을 쓰자고 강박관념을 가지면 소설이 안써질 것 같고, 소설만 쓰기에는 바깥에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아요. 전업작가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요즘 재미있는 책으로 자기 또래 작가들의 소설을 권한다. 이기호 박형서 편혜영 김애란 한유주 등에게 입사동기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평생 같이 직장 다니면서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는 생각인데 그들이 커가는 걸 보면 샘도 좀 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힙합에서 피처링(다른 뮤지션이 한 소절을 연주해주는 것)처럼 ‘내 소설에서 잔인한 부분은 편혜영에게 맡겨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다. 그러기 위해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그의 새해 목표다.(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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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문학에서의 '피처링'이라.. 패러디와는 또 다른 맛이네요.
대사는 김훈, 서사는 윤대녕.. 뭐 이런 것! ㅋ

로쟈 2007-03-1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닐 거 같습니다. 그게 생산적인 '합작'이 된다면 편견을 가질 이유도 없겠구요. 단지 그게 생각만큼 잘될까 싶은 것이죠...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여파도 있고 해서 보드리야르의 책들을 좀 뒤적거렸다. 그가 쓴 푸코론의 제목을 비틀어서 '보드리야르 잊어버리기'란 제목의 페이퍼도 써볼까 하면서. 한데 뒤적거리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잊을 만큼 남아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알라딘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은 <시뮬라시옹>이고 <소비의 사회>가 그 뒤를 잇는다. 내가 조금 훑어본 책들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건축과 철학>과 <암호>이고 아침엔 <시뮬라시옹>의 몇 페이지를 읽어봤다. 재작년 국내에서 개최된 보드리야르의 사진전 제목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는데, 과연 보드리야르는 우리 곁에 '존재했던'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간에 우리가 보고 읽었던 건 '보드리야르'라는 가상, 시뮬라크르가 아니었던 것인지. 관련기사들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해본다. 기사는 재작년 전시회와 최근의 부음에 관한 것이다.  

한겨레(05. 06. 30)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 사진전

사진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디지털 기법의 보급으로 현대 사진은 찍는 각도는 물론 콘텐츠까지 조작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진이 매체에 나오면 그 이미지를 진짜로 지레 단정해 버리기 일쑤다. 복제된 현실이 일상을 지배한다는 시물라크르 이론으로 세계적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장 보드리야르가 20여년간 사진을 찍은 건 이런 역설적 현실을 비틀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사진은 왜곡을 밥 먹듯 하는 매체다, 따라서 사진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드리야르 사진전은 가상현실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온 이 철학자와 관객이 사진을 두고 벌이는 지적 게임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컴퓨터 디지털 프린팅으로 인화한 사진들은 지나치는 주변의 일상 풍경을 슬쩍 찍은 것들인데, 통상적인 사진찍기의 어법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순수한 이미지 채집가를 자처하며 찍은 이들 사진은 미국, 유럽, 남미 등 대도시의 폐허같은 뒷골목, 삭아가는 건물, 구조물의 단면을 찍은 것들이 상당수다. 뉴욕 뒷골목 붉은 빛 벽돌건물의 격자 구조, 포르투갈 바닷가 포구의 바닥돌, 바닷물에 잠기는 방파제의 일부분, 물잔에 거꾸로 투사되어 한 풍경으로 담긴 파리 바스티유 광장 등의 작품들은 노출시점, 촬영각도에 구애받지 않고 찍은 것들이다. 상파울로에서는 합성수지 차단벽의 울퉁불퉁한 곡면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컴컴한 뒷골목을 찍었고, 성당 의자바닥에 은은하게 비치는 황금빛 햇살을 잡아내기도 한다.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자신을 유혹하는 순수한 이미지 자체를 찍은 것들이라고 미술관쪽은 설명한다.

하지만 익숙한 듯 낯선 사진들이 작가의 희망처럼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시의 묘미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흔히 보는 시선과 다른 독특한 지점에서 스냅사진 찍듯 대상물을 찍는다. 물속에 가라앉은 차에서 수면 위로 삐죽 튀어나온 차 문틀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불가사의한 일상의 한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이미지 장난은 3층 들머리에 있는 ‘조각 같은 사람’이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진흙을 온통 덮어쓰고 몸에 청색 진액을 칠한 알몸 여자의 모습은 연출사진 같지만 알고 보면 길거리를 가다 개그맨의 퍼포먼스를 그냥 찍은 데 불과하다. 그는 사진의 고정관념 즉 정확한 기록 재현이라는 의미를 의식하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작업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앵글을 보는 그의 시선 속에 끼여든 욕망은 과연 실체가 없는 것일까. 전시장 해설사들은 생각 없이 보라고 강변하지만 전시장 벽에 붙은, 이미지의 순수성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선문답같은 어록을 보면서 관객은 더욱 의미를 따지게 된다.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보라는 작가와 그의 철학적 행보 때문에 더욱 의미에 고심하는 관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간극이야말로 이 전시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노형석 기자) 

'공석중인' 보드리야르의 사진을 몇 작품 감상했다면(보다 자세한 소개는 오마이뉴스의 기사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58556를 참조) 이제 얼마간은 좀 본격적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늘어놓아야겠다. 일단 내가 참조한 건 프레시안의 최연구 기획위원이 쓴 기사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이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70308092524&s_menu=문화). 두 문단을 건너뛰고 읽어본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기억에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보드리야르의 책이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1992)이다. <사물의 체계>(백의, 1999)는 그보다 좀 나중에 소개됐는데, 이 두 권의 초기저작이 '사회학자'로서 보드리야르의 기여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저작들에 입문하기 위한 '키워드'로서의 암호들을 제시해주고 있는 근작 <암호>(동문선, 2006)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암호'(패스워드)는 바로 '사물(The Object)'이다.

유감스럽게도 "보드리야르에 관한 책 10여 권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보드리야르 연구가"는 '대상'이라고 옮겼지만(그렇게 옮기려고 했다면 보드리야르의 데뷔작도 역자는 <사물의 체계>가 아닌 <대상의 체계>라고 옮겼어야 했다). 이미지는 <사물의 체계> 영역본의 표지(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이기도 한데, 최근엔 Verso에서 다른 표지로 재출간됐다). 그리고 옆은 <암호>의 영역본.

가령, 국역본 <암호>에서 '대상'이란 항목은 이렇게 기술된다: "나의 관점에서 대상은 전형적인 '암호'였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나는 이러한 관점을 택했다. 왜냐하면 나는 주체의 문제와 결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상의 문제는 대상의 해결책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나의 사고방식으로 남아 있다."(13쪽)

'사물'을 '대상'으로 옮긴 것도 불만스럽지만(물론 'object'는 그렇게 옮겨질 수도 있다. 다만 문맥상 '사물'이 보다 적합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대상의 문제는 대상의 해결책을 의미'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역시나 보드리야르식의 난해한 문장일까? 영역본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이 영역본은 국역본이 나왔을 때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했던 것이다). "For me, object will have been the 'password' par excellence. I chose that angle from the beginning, because I wanted to break with the problematic of the subject. The question of the  object represented the alternative to that problematic, and it has remained the horizon of my thinking."

보드리야르를 이해하는 '첩경'과도 같은 대목인데, 다시 옮기면 "나에게 사물은 암호 중의 암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러한 관점을 취했는데, 왜냐하면 주체라는 문제틀과 단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문제는 그 문제틀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대표했으며,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의 지평으로 남아있다." 물론 여기서 '그 문제틀'이란 '주체라는 문제틀'을 가리키며, '주체'로부터의 탈피를 기획했던 보드리야르에게 '사물들'의 세계와 그 체계는 처음부터 핵심적인 관심사였다는 것.

보드리야르가 이어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그러한 관심/선택을 낳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다. "말하자면 1960년대에 생산의 우위에서 소비의 우위로의 이행은 대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자체 속에서 만들어진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이 서로에게 말했던 것, 즉 대상들이 만들어냈던 기호체계와 통사론이다. 그리고 특히 대상들이 현실세계를 참조하게 했다는 사실보다는 소비와 이익의 명백한 힘이 현실 세계를 믿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13-4쪽)

말하자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생산 패러다임에서 소비 패러다임으로 이행해가면서 '사물'이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 더불어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자본의 정치경제학' 대신에 '기호의 정치경제학'이 문제되기 시작한다. 영역본에 근거해서 다시 옮기면: "1960년대, 생산 우위로부터 소비 우위로의 이행은 사물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말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공장제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즉 기호들의 체계와 그것들이 발전시킨 통사론이었다. 특히나 사물들이 실제의 현실을 지시하는 것보다 확연한 것이 소비의 전능성과 우리를 현혹시키는 이익이라는 사실에 끌렸다." 이제 이 '사물들'은 사용가치의 세계에서 기호적 가치의 세계로 넘어갈 것이었다.   

 

 

 

 

"이 기호학적 형식화의 이면에는 확실히 사르트르의 <구토>와 강박관념의 대상, 즉 해로운 실체인 많이 언급된 근원에 대한 무의지적 기억이 존재했다..."고 보드리야르는 고백하는데, 번역문은 아주 실망스럽다. 영역문 "Behind this semiological formalism there was no doubt a memory of Sartre's Nausea and that famous root which is an obsessive object, a poisonous substance..."으로 보아 '많이 언급된 근원'이라고 옮겨진 'that famous root'는 '그 유명한 마로니에나무 뿌리'이기 때문이다. "실존적 회의에 빠져 절망하던 어느 날 저녁, 로캉캥은 심한 구토감을 느끼고 공원으로 달려가 벤치에 앉는다. 벤치 옆에 서 있는 마로니에 뿌리를 보며 사색에 잠기고 마침내 구토의 정체를 알게 된다."라고 할 때의 그 뿌리(보드리야르식 허무주의의 기원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불문학 전공자인 역자는 과연 <구토>를 읽어본 것일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이 얇은 책을 한 달간 읽게 된다. 한 대목만 더 인용한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대상들로 구성된 이 동물상과 식물상의 탐구이다. 이러한 탐구를 위하여나는 널리 퍼져 있었던 모든 학문들, 즉 바르트의 예를 따라 정신분석,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특히 언어학적 분석을 이용했다."(15쪽)

보드리야르를 따라 읽기 위해서는 '당대의 모든 학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암시해주는 대목인데, 나는 번역문을 읽다가 구역질이 날 뻔했다. '대상들로 구성된 이 동물상과 식물상의 탐구'가 '사물들의 동물상과 식물상에 대한 탐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건 차치하고, '바르트의 예를 따라 정신분석'이란 건 대체 무엇인지? 영역은 이렇다: "I used all the disciplines current at the time: psychoanalysis, the Marxist analysis of production and, especially, following the example of Barthes, linguistic analysis."

 

 

 

 

보드리야르가 당시에 유행하던 학문으로 거명하고 있는 건 정신분석, 정치경제학적 분석(생산의 분석), 그리고 언어학적 분석이다. 물론 기호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인 롤랑 바르트와 관계된 것은 정신분석이 아니라 언어학적/기호학적 분석이다. 가령, 바르트의 입문서 <기호학 요강>이나 학위논문인 <모드의 체계>, 혹은 문화현상에 대한 실제적인 분석인 <현대의 신화> 등이 보드리야르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찌하여 '바르트의 예를 따라' 애매한 독자들까지 삼천포로 빠져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고작 해야 번역본의 세 페이지(영역본의 두 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역자가 보드리야르의 '암호들'을 우리에게 제대로 일러주고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보드리야르식 시뮬라시옹의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보드리야르'가 아닌 것인지... 다시 프레시안의 기사로 돌아간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소위 주저라고 할 만한 보드리야르의 저작 중에서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책은 <상징적 교환과 죽음>으로 보인다. (푸코의 생전에 나왔지만 푸코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푸코 잊기>는 <푸코를 잊어버리기>(<세계의문학>, 1989년 가을호)로 번역/소개된 바 있고, <유혹에 대하여>, <아메리카> 등은 번역돼 있다(하지만 읽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보드리야르는 러시아어로도 여러 권이 번역돼 있는데, <푸코 잊기>, <사물의 체계>,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상징적 교환과 죽음>, <악의 투명성>, <아메리카> 등을 나는 갖고 있다(인터넷에 온라인으로도 떠 있다). 아래는 작년에 출간된 러시아어판 <암호>(2006). 

Пароли. От фрагмента к фрагменту
  
그의 포스트모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구호는 보드리야르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는 똑같은 논리에서 "9.11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미 <시뮬라시옹>에서는 "베트남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런 진단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CNN이 아니라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이다. 내가 갖고 있는 국역본 초판에서 이 영화를 다룬 글(영역으로는 두 쪽짜리의 짧은 글이다)은 어찌된 일인지 'Apocalypse now(세계의 종말 지금)'이란 표제를 갖고 있고 본문에서는 <아포칼립스 나우>라고 옮겨졌다.

아무래도 역자가 <지옥의 묵시록>은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국내에 개봉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하다(개정판에서는 번역이 수정됐는지 모르겠다). 그런 심증은 영화에서의 '특수효과(special effects)'를 내내 '특이효과'라고 옮기는 데에서 더 굳어진다. 게다가 "코폴라는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경기병대의 모자를 씌워, 바그너의 힘찬 음악에 맞춰 베트남 촌을 뭉개버리도록 할 수 있다."(초판 114쪽)는 문장은 상식 이하이다.

불어본이라고 해서 단수를 복수('조종사들')로 적어놓았을 리는 없는데, 영역본을 옮기자면 "Coppola can certainly deck out his helicopter captain in a ridiculous hat of the light cavalry, and make him crush the Vietnam village to the sound of Wagner's music."(60쪽)이고, 작전중 철모 대신에 경기병 모자를 고집하는 이는 '조종사들'이 아니라 헬기 부대장인 로버트 듀발이다(그는 아침에 맡는 네이팜탄의 향기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지옥의 묵시록>의 초반부를 압도하는 이 헬기 폭격 장면을 이 글을 번역하면서 역자가 참조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strafing Charlie's Point

보드리야르가 <지옥의 묵시록>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 영화 자체가 전쟁의 완성이고 종결이어서 전쟁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곧 전쟁이 되었다는 것.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아포칼립스 나우>는 전세계적 승리이다. 산업적, 군사적 기계들의 힘과 동등하고 우월한, 펜타곤과 정부들의 힘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힘 때문에."(115쪽)

여기서 '산업적, 군사적 기계들'이 'industrial and military complexes', 곧 '군산복합체'를 가리킨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문제인 것은 'cinematographic power'란 주어가 생략된 것. 실제 불어본이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영역본에 따르면 이 문장은 이렇게 다시 번역될 수 있다: "<지옥의 묵시록>은 전세계적 승리다. 영화의 힘은 군산복합체의 힘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우월하며, 또 펜타곤과 정부의 힘에 맞먹거나 그보다 우월하다."

다시 프레시안의 기사: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자취는 현대사회학과 철학에 큰 족적이 아닐 수 없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뒤르켐)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마음놓고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게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07. 03. 10.

 

 

 

 

 

 

 

 

 

 

 

P.S. '사진작가'이기도 한 보드리야르의 사진론을 옮겨놓는다. <불가능한 교환>에 포함돼 있는 것인데, 나는 이 책의 영역본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국역본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아서 일단은 '배치'만 해놓는다.  

Photography, Or The Writing Of Light

Jean Baudrillard
Translated by Francois Debrix

The miracle of photography, of its so-called objective image, is that it reveals a radically non-objective world. It is a paradox that the lack of objectivity of the world is disclosed by the photographic lens (objectif).2 Analysis and reproduction (ressemblance) are of no help in solving this problem. The technique of photography takes us beyond the replica into the domain of the trompe l’oeil. Through its unrealistic play of visual techniques, its slicing of reality, its immobility, its silence, and its phenomenological reduction of movements, photography affirms itself as both the purest and the most artificial exposition of the image.

At the same time, photography transforms the very notion of technique. Technique becomes an opportunity for a double play: it amplifies the concept of illusion and the visual forms. A complicity between the technical device and the world is established. The power of objects and of “objective” techniques converge. The photographic act consists of entering this space of intimate complicity, not to master it, but to play along with it and to demonstrate that nothing has been decided yet (rendre evidente l’idee que les jeux ne sont pas faits). “What cannot be said must be kept silent.” But what cannot be said can also be kept silent through a display of images.

The idea is to resist noise, speech, rumors by mobilizing photography’s silence; to resist movements, flows, and speed by using its immobility; to resist the explosion of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by brandishing its secrecy; and to resist the moral imperative of meaning by deploying its absence of signification. What above all must be challenged is the automatic overflow of images, their endless succession, which obliterates not only the mark of photography (le trait), the poignant detail of the object (its punctum), but also the very moment of the photo, immediately passed, irreversible, hence always nostalgic. The instantaneity of photography is not to be confused with the simultaneity of real time. The flow of pictures produced and erased in real time is indifferent to the third dimension of the photographic moment. Visual flows only know change. The image is no longer given the time to become an image. To be an image, there has to be a moment of becoming which can only happen when the rowdy proceedings of the world are suspended and dismissed for good. The idea, then, is to replace the triumphant epiphany of meaning with a silent apophany of objects and their appearances.

Against meaning and its aesthetic, the subversive function of the image is to discover literality in the object (the photographic image, itself an expression of literality, becomes the magical operator of reality’s disappearance). In a sense, the photographic image materially translates the absence of reality which “is so obvious and so easily accepted because we already have the feeling that nothing is real” (Borges). Such a phenomenology of reality’s absence is usually impossible to achieve. Classically, the subject outshines the object. The subject is an excessively blinding source of light. Thus, the literal function of the image has to be ignored to the benefit of ideology, aesthetics, politics, and of the need to make connections with other images. Most images speak, tell stories; their noise cannot be turned down. They obliterate the silent signification of their objects. We must get rid of everything that interferes with and covers up the manifestation of silent evidence. Photography helps us filter the impact of the subject. It facilitates the deployment of the objects’s own magic (black or otherwise).

Photography also enables a technical perfection of the gaze (through the lens) which can protect the object from aesthetic transfiguration. The photographic gaze has a sort of nonchalance which nonintrusively captures the apparition of objects. It does not seek to probe or analyze reality. Instead, the photographic gaze is “literally” applied on the surface of things to illustrate their apparition as fragments. It is a very brief revelation, immediately followed by the disappearance of the objects.

But no matter which photographic technique is used, there is always one thing, and one thing only, that remains: the light. Photo-graphy: The writing of light. The light of photography remains proper to the image. Photographic light is not “realistic” or “natural.” It is not artificial either. Rather, this light is the very imagination of the image, its own thought. It does not emanate from one single source, but from two different, dual ones: the object and the gaze. “The image stands at the junction of a light which comes from the object and another which comes from the gaze” (Plato).

This is exactly the kind of light we find in Edward Hopper’s work. His light is raw, white, ocean-like, reminiscent of sea shores. Yet, at the same time, it is unreal, emptied out, without atmosphere, as if it came from another shore (venue d’un autre littoral). It is an irradiating light which preserves the power of black and white contrasts, even when colors are used. The characters, their faces, the landscapes are projected into a light that is not theirs. They are violently illuminated from outside, like strange objects, and by a light which announces the imminence of an unexpected event. They are isolated in an aura which is both extremely fluid and distinctly cruel. It is an absolute light, literally photographic, which demands that one does not look at it but, instead, that one closes one’s eyes on the internal night it contains. There is in Hopper’s work a luminous intuition similar to that found in Vermeer’s painting. But the secret of Vermeer’s light is its intimacy whereas, in Hopper, the light reveals a ruthless exteriority, a brilliant materiality of objects and of their immediate fulfillment, a revelation through emptiness.

This raw phenomenology of the photographic image is a bit like negative theology. It is “apophatic,” as we used to call the practice of proving God’s existence by focusing on what he wasn’t rather than on what he was. The same thing happens with our knowledge of the world and its objects. The idea is to reveal such a knowledge in its emptiness, by default (en creux) rather than in an open confrontation (in any case impossible). In photography, it is the writing of light which serves as the medium for this elision of meaning and this quasi-experimental revelation (in theoretical works, it is language which functions as the thought’s symbolic filter).

In addition to such an apophatic approach to things (through their emptiness), photography is also a drama, a dramatic move to action (passage a l’acte), which is a way of seizing the world by “acting it out.”3 Photography exorcizes the world through the instantaneous fiction of its representation (not by its representation directly; representation is always a play with reality). The photographic image is not a representation; it is a fiction. Through photography, it is perhaps the world itself that starts to act (qui passe a l’acte) and imposes its fiction. Photography brings the world into action (acts out the world, is the world’s act) and the world steps into the photographic act (acts out photography, is photography’s act).4 This creates a material complicity between us and the world since the world is never anything more than a continuous move to action (a continuous acting out).

In photography, we see nothing. Only the lens “sees” things. But the lens is hidden. It is not the Other 5 which catches the photographer’s eye, but rather what’s left of the Other when the photographer is absent (quand lui n’est pas la). We are never in the real presence of the object. Between reality and its image, there is an impossible exchange. At best, one finds a figurative correlation between reality and the image. “Pure” reality — if there can be such a thing — is a question without an answer. Photography also questions “pure reality.” It asks questions to the Other. But it does not expect an answer. Thus, in his short-story “The Adventure of a Photographer,”6 Italo Calvino writes: “To catch Bice in the street when she didn’t not know he was watching her, to keep her in the range of hidden lenses, to photograph her not only without letting himself be seen but without seeing her, to surprise her as if she was in the absence of his gaze, of any gaze…It was an invisible Bice that he wanted to possess, a Bice absolutely alone, a Bice whose presence presupposed the absence of him and everyone else.”7

Later, Calvino’s photographer only takes pictures of the studio walls by which she once stood. But Bice has completely disappeared. And the photographer too has disappeared. We always speak in terms of the disappearance of the object in photography. It once was; it no longer is. There is indeed a symbolic murder that is part of the photographic act. But it is not simply the murder of the object. On the other side of the lens, the subject too is made to disappear. Each snapshot simultaneously ends the real presence of the object and the presence of the subject. In this act of reciprocal disappearance, we also find a transfusion between object and subject. It is not always a successful transfusion. To succeed, one condition must be met. The Other — the object — must survive this disappearance to create a “poetic situation of transfer” or a “transfer of poetic situation.” In such a fatal reciprocity, one perhaps finds the beginning of a solution to the problem of society’s so-called “lack of communicability.” We may find an answer to the fact that people and things tend to no longer mean anything to each other. This is an anxious situation that we generally try to conjure away by forcing more signification.

But there are only a few images that can escape this desire of forced signification. There are only a few images that are not forced to provide meaning, or have to go through the filter of a specific idea, whatever that idea might be (but, in particular, the ideas of information and testimony are salient). A moral anthropology has already intervened. The idea of man has already interfered. This is why contemporary photography (and not only photo-journalism) is used to take pictures of “real victims,” “real dead people,” and “real destitutes” who are thus abandoned to documentary evidence and imaginary compassion.8 Most contemporary photos only reflect the “objective” misery of the human condition. One can no longer find a primitive tribe without the necessary presence of some anthropologist. Similarly, one can no longer find a homeless individual surrounded by garbage without the necessary presence of some photographer who will have to “immortalize” this scene on film. In fact, misery and violence affect us far less when they are readily signified and openly made visible. This is the principle of imaginary experience (la loi de l’imaginaire). The image must touch us directly, impose on us its peculiar illusion, speak to us with its original language in order for us to be affected by its content. To operate a transfer of affect into reality, there has to be a definite (resolu) counter-transfer of the image.

We deplore the disappearance of the real under the weight of too many images. But let’s not forget that the image disappears too because of reality. In fact, the real is far less often sacrificed than the image. The image is robbed of its originality and given away to shameful acts of complicity. Instead of lamenting the relinquishing of the real to superficial images, one would do well to challenge the surrender of the image to the real. The power of the image can only be restored by liberating the image from reality. By giving back to the image its specificity (its “stupidity” according to Rosset),9 the real itself can rediscover its true image.

So-called “realist” photography does not capture the “what is.” Instead, it is preoccupied with what should not be, like the reality of suffering for example. It prefers to take pictures not of what is but of what should not be from a moral or humanitarian perspective. Meanwhile, it still makes good aesthetic, commercial and clearly immoral use of everyday misery. These photos are not the witness of reality. They are the witness of the total denial of the image from now on designed to represent what refuses to be seen. The image is turned into the accomplice of those who choose to rape the real (viol du reel). The desperate search for the image often gives rise to an unfortunate result. Instead of freeing the real from its reality principle, it locks up the real inside this principle. What we are left with is a constant infusion of “realist” images to which only “retro-images” respond. Every time we are being photographed, we spontaneously take a mental position on the photographer’s lens just as his lens takes a position on us. Even the most savage of tribesmen has learned how to spontaneously strike a pose. Everybody knows how to strike a pose within a vast field of imaginary reconciliation.

But the photographic event resides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object and the lens (l’objectif), and in the violence that this confrontation provokes. The photographic act is a duel. It is a dare launched at the object and a dare of the object in return. Everything that ignores this confrontation is left to find refuge in the creation of new photographic techniques or in photography’s aesthetics. These are easier solutions.

One may dream of a heroic age of photography when it still was a black box (a camera obscura) and not the transparent and interactive space that it has become. Remember those 1940s farmers from Arkansas whom Mike Disfarmer shot. They were all humble, conscientiously and ceremonially standing in front of the camera. The camera did not try to understand them or even catch them by surprise. There was no desire to capture what’s “natural” about them or “what they look like as photographed.”10 They are what they are. They do not smile. They do not complain. The image does not complain. They are, so to speak, caught in their simplest attire (dans leur plus simple appareil), for a fleeting moment, that of photography. They are absent from their lives and their miseries. They are elevated from their miseries to the tragic, impersonal figuration of their destiny. The image is revealed for what it is: it exalts what it sees as pure evidence, without interference, consensus, and adornment. It reveals what is neither moral nor “objective,” but instead remains unintelligible about us. It exposes what is not up to reality but is, rather, reality’s evil share (malin genie) (whether it is a fortunate one or not). It displays what is inhuman in us and does not signify.

In any case, the object is never anything more than an imaginary line. The world is an object that is both imminent and ungraspable. How far is the world? How does one obtain a clearer focus point? Is photography a mirror which briefly captures this imaginary line of the world? Or is it man who, blinded by the enlarged reflection of his own consciousness, falsifies visual perspectives and blurs the accuracy of the world? Is it like the rearview mirrors of American cars which distort visual perspectives but give you a nice warning
- -”objects in this mirror may be closer than they appear”? 11 But, in fact, aren’t these objects farther than they appear? Does the photographic image bring us closer to a so-called “real world” which is in fact infinitely distant? Or does this image keep the world at a distance by creating an artificial depth perception which protects us from the imminent presence of the objects and from their virtual danger?

What is at stake (at play, en jeu) is the place of reality, the question of its degree. It is perhaps not a surprise that photography developed as a technological medium in the industrial age, when reality started to disappear. It is even perhaps the disappearance of reality that triggered this technical form. Reality found a way to mutate into an image. This puts into question our simplistic explanations about the birth of technology and the advent of the modern world. It is perhaps not technologies and media which have caused our now famous disappearance of reality. On the contrary, it is probable that all our technologies (fatal offsprings that they are) arise from the gradual extinction of reality.

Notes

1. A Translation of Jean Baudrillard, “La Photographie ou l’Ecriture de la Lumiere: Litteralite de l’Image,” in L’Echange Impossible (The Impossible Exchange). Paris: Galilee, 1999: pp. 175-184.
2. There is here a play on the French word “objectif.” “Objectif” means objective (adj.) and visual lens (subs.) at the same time.
3. This term is in English in the original French version.
4. An unsatisfactory translation of “la photo ‘passe a l’acte du monde’ et le monde ‘passe a l’acte photograph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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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10 21:5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떤 분의 강의에서 <시뮬라시옹>에 대한 얘기를 듣고 책만 사두었는데 아직도 읽지 못했어요.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한 둘이 아니지만.. 철학 관련 책은 어려워서 읽다가도 마치질을 못하네요..;;; 암튼 퍼가서 찬찬히 읽어보렵니다. ^^

로쟈 2007-03-10 23:01   좋아요 0 | URL
그 어려움이 부정확한 번역으로 더 가중된다는 게 유감입니다. 다 돈주고 사서 읽는 책들인데도...
 

낮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옮겨놓는다고 해놓고 깜박한 기사가 있다. 이른바 '석궁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재판이 주초에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대학사회에 던지고 있는 한정숙 교수의 칼럼이다. 재판관련 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3. 09) 교수의 품위, 대학의 품위

이 일이 다시 상기되는 것을 본인들은 쑥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던 장희창 교수는 1987년 재직하던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해직당했다. 그는 86년 봄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한 대학교수 시국성명 발표 당시, 재직 대학에서 이 일에 앞장섰다. 교수들은 대통령을 선거인단 간선제로 뽑게 돼 있던 5공 헌법을 고쳐 국민이 직접 선출토록 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당연한 일에 동참했던 그는 그 직후부터 대학 당국한테 시달림을 받다가 끝내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그가 대학교수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깝게 여기던 동료에게 회식 자리에서 가벼운 기분으로 한 말과 행동이 ‘품위 없음’의 사례로 찍혔다. 대학 쪽은 교수를 해직시키면서도 그가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것을 근거로 대지 않고 ‘품위 없는 교수’라는 이유를 댐으로써 인간적 모멸을 더했다. 얼마 후 대학에서는 입시부정이 있었고, 장 교수와 함께 시국성명에 동참했으나 대학에 남아 있다가 부정에 항의한 두 교수도 마저 해직당했다.

그 후 제기한 복직소송에서 이들은 계속 패했고 한국사회의 어떤 제도권 기관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직 뒤 20년 만인 지난해 복직을 할 때까지 학원 강사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사는 동안, 이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생각해 보자. 독재정권에 저항한 교수들과 그들을 내쫓은 대학, 어느 쪽이 품위 상실의 주역인지.

서울 쪽 한 대학에 재직하다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교수가 복직소송 2심에서 패했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판결 번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2심 담당법관과 옥신각신하다가 상대에게 상해를 입혔고, 이 때문에 형사범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첫 공판이 있었다. 그가 재직 대학의 수학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서 탈락했음은 대한민국이 다 안다. 그런데 대학 쪽은 인간적 갈등에서 빚어진 몇 사례를 극단화시키고서 그를 ‘교수 품위를 떨어뜨린 인물’로 몰아 해직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대학이란 데가 그렇게 품위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은 아니다. 성추행자도 있고 소위 ‘또라이’도 없지 않다. 정작 이런 사람들도 대학이라는 강자의 비위만 거스르지 않으면 무사하다. 조직 이기주의 아래 보호받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철칙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었고 해직이 그 대가였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종교재판을 주관한 교황청과 학문적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갈릴레이, 이 둘 가운데 인간의 품위에 치명타를 가한 쪽은 누구일까. 갈릴레이는 극한 상황을 피하고자 자기 학설을 일시적으로 철회했다지만, 김 교수는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법원에서는 종교재판 때 같은 극한 상황이 없으리라 믿었기에 변호사도 없이 혼자 법리를 따져가며 재판에 임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 자명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리라 믿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를 인간적으로 모욕한 강자의 정의를 수호했을 뿐이다.

만약 법관 재임용제도로 법관들도 함부로 해고된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변호사 개업이라는 출구가 없다면, 법관들은 ‘내 탓이오’라고만 여기고 이를 받아들일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대한수학회는 김 교수 해직을 두고 지금껏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이 사건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미스테리한 일이면서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수학자들의 '계산법'이라지만 나의 상식으론 이해되지/납늑되지 않는다). 10년도 넘게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채 유랑 세월을 살아 온 그의 큰 울음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석궁이 등장했다. 소속 연구자가 학문적 양심을 수호하려다 고통받을 때 학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경향신문(07. 03. 06) ‘그들만의 재판’ 겨눈 ‘석궁 교수’

“판사님이 법에 따라 판결하시겠다고 약속하거나 맹세할 수 있습니까?”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석궁테러’ 사건 피고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50)는 당당했다. 판사는 “답변하지 않겠다. 당연한 얘기다”라며 고개를 돌렸지만, 표정은 몹시 곤혹스러워 보였다. 판사와 피고인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순간이었다.

5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김 전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김 전 교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법정에 들어섰다. 손에는 작은 법전 한 권과 대학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날 김 전 교수는 시종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이며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규정과 원칙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재판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공판 내내 숨기지 않았다. 본인 확인을 위해 판사가 사는 곳을 묻자 “성동구치소입니다”라고 답해 법정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수용자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의 피고인 심문 때는 심문 내용을 문서로 요구해 꼼꼼히 읽어가며 심문을 받았다. “‘불만’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거나 “석궁을 ‘겨누었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달라”는 등 표현 하나하나를 반박하거나 수정했다.

김 전 교수와 재판부는 공판이 끝날 무렵 ‘충돌’했다. 검찰측 증거신청 절차가 진행될 때 김 전 교수가 “나도 증거신청할 권리가 있다. 내 의견도 물어달라”고 이의를 제기, 논쟁의 막이 올랐다. 김 전 교수가 “검찰은 증거가 각각 어떤 공소사실을 입증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판사와 검사는 김 전 교수를 설득하는 데 5분이 넘도록 진땀을 빼야 했다.

변호인측과 재판부의 신경전도 날카로웠다. 변호사가 김 전 교수를 계속해서 “김교수님”이라 부르자 판사는 “피고인으로 부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기욱 변호사는 “공판에서 피고인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공판이 끝날 때까지 김 전 교수를 ‘피고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임종인 의원은 “법조인들만의 용어와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김 전 교수가 신선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말했다.(박영흠기자)

07. 03. 10.

P.S. 내친 김에 예전에 읽었던 도정일 교수의 칼럼까지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19) 타락한 문화가 ‘석궁’을 쏘았다

한때 국제 학계에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개의 축 가운데 어느 쪽으로 더 쏠리는가에 따라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규정해보려는 연구를 꽤 열심히 진행했던 적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충돌론’을 들고 나와 문화에 대한 사회과학의 관심을 정치학 쪽으로 납치하게 된 1990년대 초반까지 10년 남짓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같은 분야의 상당수 연구자들을 매료했던 것이 바로 그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라는 화두다. 당시의 연구들을 보면 북서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개인주의 문화’의 강세지역에 속하는 반면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부 유럽 일부 국가들이 ‘집단주의 문화’의 강세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계열의 연구들은 그 방법론이 너무 단순하고 연구에서 얻어진 발견들도 상식을 크게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진부한 것일 때가 많다. 집단주의 문화가 개인의 행복보다는 집단의 이익과 명예를 중시하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가족 등 친밀집단에 대한 충성을, 수평적 평등관계보다는 수직 위계서열과 상부권위에 대한 숭상을, 개인의 도드라짐보다는 집단의 내부 인화와 화합을 더 중하게 여긴다. 속담을 빌리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시끄러운 바퀴에 기름“ 칠해주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집단을 앞세우는 문화에서는 소속 집단에의 무조건적 복종이 강조되고 소속원들은 자기 집단을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은 물론 목숨까지 바칠 용의도 갖고 있다. 집단문화에 대한 이런 식의 기술은 이미 낯익은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의 가치서열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소위 ‘개인주의 문화’가 된다는 식의 주장도 별로 새로울 것 없어 뵈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 1980년대식 문화연구에 귀담아 들을만한 발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반드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액면가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적 가치들은 인간사회의 문화적 ‘보편’이 아니라 ‘특수’이며 지역적 크기로 따져도 세계의 70%는 오히려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지리적 이동성이 높아지면 질수록 개인주의적 가치들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개인주의가 개인이기주의로 변질하는 정도도 높아진다, 이런 문화적 변동은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당시 연구자들이 내놓은 이런 발견은 지금도 경청할만한 것들이다.

민주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개인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역시 당시 연구가 내놓았던 발견 사항의 하나다. 미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는 지금도 개인의 품위와 그의 사회적 책임을 나란히 강조하는 건강한 개인주의 문화 모델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당시 연구에서 나온 발견의 일부다. 한때 미국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과 이익 말고도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알았으나 현대 미국의 개인주의에서는 다른 어떤 고려사항보다도 개인 이익의 최대화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의 미국 백인 중산층 사람들은 자신을 개인적 특성, 선호, 욕망의 집합으로 정의하는 반면 아시아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사회관계의 망 속에서 자기 위치를 규정한다. “그래서 내게 득 되는 것이 뭐지?”가 현대 개인주의의 지배적 질문 방식이다. 그러나 만사를 개인 이익을 잣대로 해서 따지고 드는 극단적 이기주의 성향이나 탐욕은 인간본성의 항구한 법칙도 보편사항도 아니다- 이런 주장도 지금의 경제학이나 생물학이 들으면 웃을 소리 같지만 그 80년대 연구들이 내놓았던 발견의 일부다.

어떤 문화도 완벽하게 집단주의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80년대 문화연구자들이 설정했던 집단주의/개인주의의 구별 역시 순진한 2분법의 적용이기보다는 학문적 연구를 위한 순수모델, 또는 ‘아이디얼 타이프’의 일종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변화가 어떻게 문화변동을 유도하고 가치체계를 서서히,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시키는가라는 문제다. 지난 30년 혹은 40년간 우리 사회에 발생한 변화들, 특히 경제적 변화가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 인생관, 정체성 규정방식, 교육목표 등 문화적 차원에 일으켜 온 지형변화는 실로 심대한 데가 있다. 전체 그림을 놓고 보면 가장 현저한 문화변동의 패턴은 ‘집단주의적 문화로부터 개인주의적 문화로의 대이동’이다.

이 이동 패턴의 어떤 부분은 정치 민주주의나 개인의 품위 향상 등 사회발전이나 인간발전에 긍정적인 것인 반면 어떤 부분은 아주 부정적이다. 이 부정적 변화들 중에서 우리가 백번도 더 주목할 것은 1980년대 연구자들이 집단주의/개인주의로 분류한 문화적 특성들 가운데 가장 나쁜 것들을 용케도 골라서 뭉쳐낸 ‘악성조합’의 측면이다. 집단주의 문화나 개인주의 문화의 좋은 가치들은 다 내버리고 집단주의의 가장 나쁜 것들과 개인주의의 가장 나쁜 것들만 골라 선택 조합하고 결합시키는 것이 악성조합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 집단주의의 가치, 이데올로기, 지향들과 근대 개인주의적 문화 요소들이 아주 어지럽게 혼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혼재양상의 지배적 특성은 두 문화의 악성조합, 곧 문화의 타락상이다.

이 타락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거의 매일, 하루에도 수백건씩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전직 대학교수와 판사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석궁사건’이다. 사건의 발단 지점을 들여다보면 대학, 학회, 정부 부서, 사법 당국 등 우리 사회의 위세당당한 집단들이 집단주의 문화의 악성 요소와 개인주의 문화의 악성 요소들을 잘도 결합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집단주의가 악성의 개인주의와 결합하면 집단이기주의 혹은 ‘집단적 개인주의’가 된다. 개인주의가 악성의 집단주의와 결합하면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집단의 뒤에 숨어서, 집단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개인 집단주의’가 나온다. 이런 악성조합의 결과는 문화의 타락이다. 그 타락은 누가, 무엇이, 치유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타락 앞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울어야 할 이유를 갖고 있다.(도정일/ 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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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0 13:2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역시 법 쫌 공부해 둬야겠군요.

로쟈 2007-03-10 13:46   좋아요 0 | URL
기인님 공부가 언리미티드입니다.^^

3794 2007-03-10 15:13   좋아요 0 | URL
대한수학회 이사가 당시 성균관대 수학교수였다고 김명호 교수 홈페이지 나와있네요. http://geocities.com/henrythegreatgod/kms2.htm 기사보고 들어가봤는데 정확히 누구 사이트라고 나온곳이 없네요.ㅡ.ㅡ

로쟈 2007-03-10 15:26   좋아요 0 | URL
'한국식 수학'은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들이 또한 이 사회의 '주류'라는 사실도...

마노아 2007-03-10 23:45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