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다 별달리 즐거운 일이 없던 차에(물론 반대로 착잡하고 짜증나는 일들은 차고 넘친다) 모처럼 '즐거운' 기사를 읽었다. 한 신인 작가의 등장을 소개하는 기사들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정한아씨가 그 '신인 작가'인데 소설이야 안 읽어봤으니까 평가 유보이고(장편이라고 하지만 중편 분량의 경장편이 아닌가 싶다) 다만 소설을 쓰는 일이 너무 즐겁다는, 소설을 쓰는 자세가 즐겁다.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고백마저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그렇더라도 여하튼 '즐거운' 거짓말이다. 그 즐거움이 사진에서도 묻어나는군...

한국일보(07. 08. 01) 문학동네작가상 받은 소설가 정한아

“거짓말이란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늘 생각해요. 진심이란 건 이해받을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은 가장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자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죠. 제게 있어 소설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자인 정한아(25)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밝힌 문학관이다. 수상작 <달의 바다>는 바로 그 ‘아름다운 거짓말’에 관한 장편소설이다. 혼외로 낳은 아이를 친정에 버리듯 맡기고 훌쩍 미국으로 떠난 고모는 할머니에게만 몰래 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가 됐노라며 편지를 보내온다. 원형 탈모증에 걸린 취업 재수생 ‘나’는 할머니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고모를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 소설은 고모가 쓴 일곱 통의 편지와 ‘나’가 목격한 고모의 비루한 현실을 교차 편집한다.

3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씨는 자신의 첫 장편이자 수상작을 “한 호흡에 쓴다는 생각으로 보름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자이기도 한 그는 “단편을 쓸 땐 작업 내내 신경에 날이 서는데 반해, 장편은 어깨춤이 절로 나올 만큼 글이 술술 풀렸다”고.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는 후문이다.

작품 속 ‘나’의 가족처럼 정씨는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의 장녀다. 고모, 할머니 등 등장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도 실제 가족 구성원의 그것과 많이 겹친다고 정씨는 설명한다. ‘나’의 미국 여행 동행자로 등장하는,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남자 친구 ‘민이’도 여성적 성향이 다분한 친구를 모델로 삼았다.

이것이 꼭 경험이 일천하기 마련인 젊은 작가의 손쉬운 선택인 것 같지는 않다. 정씨가 가장 본받고 싶은 작가로 폴 오스터를 꼽으면서 “읽고 있으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다”는 이유를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구조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평론가 김화영), “생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느껴진다”(소설가 이혜경)는 호평과 함께, 특히 편지글 부분에서 보여준 문장의 밀도와 긴장감을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을 실감나게 묘사한 편지글은 정씨가 우주, 달 탈험 등 관련 전문서 여러 권을 탐독하며 일궈낸 결실이다.

혼자서 글 공부를 하다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이후부터 소설가 구효서씨를 사사하고 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애현씨도 한때 동학이었다. 대산대학문학상 상금 500만원에 이어 이번 수상으로 받은 2,000만원도 모두 할아버지를 드렸다는 정씨는 “작년 겨울 동문(건국대) 모임에서 만난 김홍신 선배에게 등단 작가라고 소개했더니 한숨을 푹 쉬며 가여워 하더라”며 웃었다. 물론 이 당찬 스물다섯살 소설가에게 ‘거짓말’의 즐거움은 창작의 고행에 비할 바가 아닐 듯싶다. 그의 다음 작품은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만날 수 있다.(이훈성 기자)


 

 

 

 

 

 

 

 

 

세계일보(07. 08. 01) 소설이 정말 좋다는 25세 ''명랑작가'' 정한아씨

장편소설 ‘달의 바다’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된 정한아(25·사진)씨가 31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젊은 소설가답게 명랑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설론을 밝혔다. “소설은 거짓말인데 세상을 아름답게 해요. 거짓말은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것 같아요.”

‘달의 바다’는 꿈이 좌절된 이에게 건네는 위로다. 주인공 은미는 오랜 백수 생활 탓에 집안의 애물 취급을 받는다. 무직자의 우울한 생활은 고모와 만남으로 일대 변화를 맞는다.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돼 있다. 소설은 은미의 일상과 고모의 비밀스러운 삶을 교차시키며 인생을 긍정한다. 우주생활을 묘사한 고모의 편지와 가벼운 반전이 소설의 재미를 높인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를 존경한다는 그는 대학 2년 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미래를 고민하느라 6개월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며 “그때 ‘소설가 아니면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상한다. 2005년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단편 ‘나를 위해 웃다’로 문단에 나왔다. 지난 5월, 처음 써본 장편 ‘달의 바다’가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나선 셈. ‘달의 바다’를 쓸 당시, 대전에서 전원 생활을 했는데 “원고 쓰는 일이 무척 즐거워 간간이 디스코까지 췄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된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손녀의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셨다. 정씨가 잇달아 문학상을 수상하자 할머니는 “한아가 글 쓰는 동안 가족 모두 조용히 생활해라”며 집필 분위기를 만드신단다. 그는 젊은 소설가 중에서도 최연소 군에 속한다. 앞으로 70, 80년대 출생 소설가들과 한데 묶이거나 비교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소설가들과 겨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은연중에 표현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제겐 없어요. 저는 저만의 소설을 쓸 뿐입니다.”(심재천 기자)  

07.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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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정말 어리군요!!!!! 휴...
은연중에 표헌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없다, 라...

비로그인 2007-08-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진심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지가 더 의문이 가네요. 책을 봐야 작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도 놀랍고요. 그게 글에 표현을 안했다는건지, 작가내부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건지도요 ..궁금하네요. 사회에 대한 분노라는게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을 수도 있다라는 점이 너무 새로워요. 그럴 수 있는 문제일까..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분노와 동전의 양면이 아니던가 싶은데 .. 말이지요

로쟈 2007-08-0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인상 쓰는 작가들 틈에서(소설 쓰다가 주로 이 빠지고 욕창 걸리고 하더군요) 밝게 웃고 있는 작가를 보니까 기분전환은 되는 듯합니다. 분노/원한 없이 쓰는 소설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싶고. 하지만 압권은 소설쓰기가 너무 즐거워 췄다는 '디스코'입니다...

다크아이즈 2007-08-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질 안 한지 오래 된지라 간만에 로쟈님 뵙네요(!?) 요즘 '사회에 대한 분노' 따위를 들먹거렸다가는 젊은 작가 축에도 못낍니다. 짐짓 세상에 대한 분노와는 먼 척 해야 세련된 작가 소릴 듣는 걸요. 의도된 트렌드를 따르는 것 같아 미심쩍긴 하지만 로쟈님 말처럼 '디스코' 출 정도로 쓰는 게 즐겁다,는 대목에선 무척 부럽군요. 진정한 소설가는 이가 빠지고 욕창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치들의 껄쩍지근한(?) 표정이 궁금하네요.

로쟈 2007-08-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오랜만이네요.^^ 이번에 나온 소설은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라서 '장편'이라고 하기엔 좀 멋쩍긴 합니다. 이가 빠지거나 욕창에 걸릴 새도 없었을 거 같아요. 보름만에 다 썼다고 하니까...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단편을 인상적으로 봤는데 이번 소설도 굉장히 재미있을 거 같아 바로 주문했어요.
음, 근데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의 느낌이 왠지 다르군요. -_-

로쟈 2007-08-03 22:25   좋아요 0 | URL
단편도 읽어보셨군요! 흑백이 더 나은가요?..

twinpix 2007-08-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썼다는 게 부럽네요. 언제고 꼭 읽어봐야겠어요.

로쟈 2007-08-03 22:26   좋아요 0 | URL
즐겁게 쓰는/사는 건 재능이죠...

마늘빵 2007-08-0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밌군요. <달려라 아비> 쓴 김애란씨도 80년생으로 어리던데, 이야 이분은 더. '언젠간' 읽어봐야겠단 생각합니다. 정이현 소설이나 주문해야겠습니다. 우선순위가 있지. :)

로쟈 2007-08-03 22:26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들도 꼬박꼬박 챙기시는군요.^^

나비80 2007-08-0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겨울 몇 번 같이 모임을 하다가 소설 쓴다고 시골로 내려가더니 떡 하니 문학동네작가상 수상해서 나타나더라구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에 대산문학상에서 실력을 인정 받긴 했습니다만.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건 제대로 보신 듯 합니다. 술도 곧잘 하더군요.

로쟈 2007-08-03 22:2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인 듯한데요! 소이부답님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준에선 흑백이 좀 더 나은 듯... ㅎㅎ
이 소설은, 책 뒷부분의 심사위원들이 과찬한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어느 순간 '거짓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에잇, 그래도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어요. 문장도 별로고...

로쟈 2007-08-04 14:16   좋아요 0 | URL
리뷰도 곧 써주시나요?^^
 

이번 아프간 사태에 관한 칼럼을 아침에 읽고 늦게서야 시간을 내 옮겨놓으려 하다가 그만 딴데 눈길을 팔게 되었다(칼럼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3017584024400.htm). 강렬한 원색이 잠시 뒤숭숭한 상념과 착잡함을 잊도록 해준 탓인 듯하다. '텍스트 인 바디스케이프'란 전시회 소식을 대신 옮겨놓는다(그러고 보니 같은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모네 전시회에도 못 가봤군)...

경향신문(07. 08. 01) 작가 27명의 ‘텍스트 인 바디스테이프’ 전

미술작품들은 대부분 다양한 소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문학이나 음악 등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화가나 시인, 음악가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한길 사람 속’을 나름대로 표현한다. 그 작품들로 관객, 독자, 청중들은 감동하고, 느끼고, 비판과 공감을 통해 또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텍스트 인 바디스케이프(Text in Bodyscape)’전은 작가들이 인간의 몸, 신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끝 없는 욕망이나 욕구, 기억, 지울 수 없는 상처, 꿈이나 희망, 고민, 향수, 불안한 심사 등이 다양한 신체의 풍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술관 본관 1층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모두 27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사진, 조각, 설치작품 8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마다 독특하게 드러내는 다채로운 내면세계가 한 여름의 한 때를 뜻깊게 한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선보이면서 매체 간의 특성들도 비교해 흥미롭다.

김윤경은 인도에서 기증 받은 많은 옷들을 큰 하나의 옷으로 재구성한 설치, 곽윤주는 징그러운 칼자국의 상처를 여자의 등에 표현하고 이를 찍은 사진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과거의 사건과 그 흔적을 이야기한다. 한 켤레의 하이힐과 흑백의 여행지 풍경을 담은 안경 등으로 구성된 영상(황혜선)에서도 기억과 연결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느껴진다. 밥그릇을 머리맡에 놓고 바닥에 엎드린 인물상의 조각작품(이종빈)은 배고픈 시절의 한 장면. 녹이 잔뜩 낀 밥그릇에 관객들은 동전과 지폐까지 던져넣고 있어 작품과 관객이 잘 소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 사진작업 당시 상황을 쓴 설명 팻말을 삽입한 김나음의 작품은 촬영 당시의 한 순간을 관객으로 하여금 되살리게 한다.

안재홍의 구리선으로 만든 거대한 인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어쩌면 불안정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 젖병의 고무 젖꼭지를 활용한 김주연의 설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벌거벗은 몸 위에 화려한 문신을 그려넣은 김준의 사진, 무한정한 번식을 괴기스럽게 담아낸 이희명의 설치 등은 원초적인 욕망, 욕구의 표현이다.

전시장에는 또 가는 스프링 줄에 인체 일부를 프린트해낸 설치(홍성철), 센서를 통해 관객의 몸짓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 영상작업(전인혁) 등 작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재료 등도 눈길을 끈다. 이종구 구경숙 민재영 이윤태 이배경 정소영 박진호 김병직 송은영 이건용 이수경 김선주 백기은 박수만 전수경 김재옥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은주 큐레이터는 “몸, 신체 담론이 풍성하다”며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몸 담론과 관계된다기보다는 작가들이 몸이 담고 있는 내면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12일까지.(도재기 기자)

07.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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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의 '오늘의 책' 연재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이름을 접하고 바로 스크랩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어느 세계문학전집에 <치인의 사랑> 같은 작품이 들어 있었던 듯도 하지만 박스도서인지라 확인이 되진 않는다) 일본 작가들 가운데 마땅히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야 할 작가라는 평판 정도는 듣고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을 꺼내자면 재작년초 모스크바 체류를 끝내고 귀국할 무렵에 가장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렸던 책 중의 하나가 다니자키의 <그늘에 대하여>(<그늘 예찬>)였다(클래식 문고본이라 책값은 3,000원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역본이 있을 듯하여 손에 들지는 않았는데, 찾아보니 <음예공간 예찬>(발언, 1996)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고 고운기 교수의 새번역본이 나온 건 그해 겨울이었다.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 책은 바로 구해서 연구실에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생각이 나서 집으로 옮겨왔다(어제 전철에서 '연애와 색정'을 읽었다). 다니자키와 그의 작품들을 영어로 옮긴 사이덴스티커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오늘의 책<7월 30일>] 그늘에 대하여

1965년 7월 30일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가 79세로 사망했다. 3년 후,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두 작가의 작품을 서구에 소개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1968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은 그가 받았을지도 모른다며 다니자키 없는 일본 근대문학은 '꽃 없는 정원'이라고 했다.

그는 그만큼 중요한 작가였다. 영국 신문 타임즈는 그의 사망에 "성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118편이나 발표해 '동양의 D H 로렌스'로 불린다"는 부고 기사를 실었다. 타임즈의 보도처럼 다니자키 문학은 여체, 관능, 변태 같은 단어로 요약됐고 그는 종종 탐미주의 혹은 악마주의 작가로 불렸다. 잘 알려진 <치인(痴人)의 사랑>이나 <후미코의 발> 등은 그 계열의 대표작이다.

<그늘에 대하여>는 다니자키의 소설과 달리 국내에 비교적 덜 소개됐던 그의 산문집이다. 표제작과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 '뒷간' 등 흥미로운 주제의 산문 6편이 실려있다. 산문이라는 형식에 그는 한층 세심하고 유려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문장을 위해 하루에 원고지 3~4매 이상은 쓰지 못했다는 다니자키 글의 진수이기도 한 셈이다.

'그늘'은 일본적인 미를 설명하려는 그의 개념이다.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럼한 어떤 모습. '연애와 색정'에서는 '색기(色氣)'를 이렇게 풀이한다. "방종하여 노골적인 것보다도,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 것은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이다."(하종오 기자)

서울신문(04. 10. 09)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한국은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도 한국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덴스티커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 그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사이덴스티커는 1974년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에 오지만,이내 갑갑한 외교관 생활을 접고 도쿄에 머물며 프리랜서 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한다.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현대문학 3대 거장의 소설을 처음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일본인들도 현대어 번역 없이는 읽을 엄두를 못내는 고전 ‘겐지 이야기’를 10여년간의 고투 끝에 번역해내기도 했다.‘설국’에 대한 유려한 번역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원제 Tokyo Central,권영주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미국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자서전이다. 사이덴스티커는 1921년 2월1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월11일은 일본의 건국기념일. 이 때문에 그는 전생에서부터 일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병역문제로 고민하다 우연히 해병대 일본어 통역 요원으로 입대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책에는 전후 일본 문단의 풍경,번역에 대한 저자의 소신 등이 담겨 있다. 한국의 도자기와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준하에 대한 일화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일본의 미를 추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자가 일본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다니자키 준이치로, 국수주의 색채를 보이다 결국 할복으로 생을 마친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 등 전후 일본 문학을 이끈 이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사이덴스티커는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번역의 요령에 대해 한마디 조언한다. “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나도 ‘설국’의 서두를 보다 직역에 가깝게 했을 텐데….” 그는 “번역이란 끊임없이 뭔가를 내버릴 것을 요구하는,마구잡이에다가 가차없는 작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는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도 관심을 갖고 좋은 인연을 맺었다.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 슬쩍 밀반출한 한국 도자기를 평생을 옆에 끼고 살았다고 멋쩍게 회고하는가 하면 장준하를 가리켜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전형이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장준하에 대한 추억 한토막.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시끄럽고 싸움을 좋아하며 마늘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지만, 장준하는 그런 일본인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씨를 지니고 있었고, 매우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07. 07. 30 - 08. 01.

P.S. 다니자키의 책들은 영어로는 물론이겠지만 러시아어로도 다수 번역/소개돼 있다. <열쇠>의 러시아어본 표지.

Ключ

P.S.2. <세설>(열린책들, 2007)의 한국어본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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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갑작스레 '화두'가 됐다.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아프칸 인질 사건과 최근 출간된 도킨스의 종교비판서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이 이 화두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는 종교적 근본주의 내지는 종교 자체에 대해 새삼 성찰해볼 것을 요구한다. 그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 가운데 공산주의와 종교, 보다 정확하게는 '종교로서의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처갓집에 점심을 먹으러 건너갔다가 우연히 읽게 된 해외서평인데,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란 폴란드 책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종교로서의 주체사상'에 관한 기사도. 따지고 보면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들이긴 하나 그러한 비판이 함축하는 바는 더 음미될 필요가 있다. 가령, 나로선 '공산주의로서의 종교', '주체사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사실 이런 타이틀의 책들도 이젠 나옴 직하지 않을까?). 

조선일보(07. 07. 28) 공산주의는 종교를 패러디한 권력의 산물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Religiopodobny komunizm)
마르친 쿨라 지음|크라코프 노모스|181쪽|32즐로티

구 소련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레니나(Lenina), 니넬(Ninel) 등의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레니나는 레닌의 여성형, 니넬은 레닌의 철자를 거꾸로 부른 이름이다. 남자 아이에게는 블라딜렌(Vladilen)이라는 이름이 주어지곤 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약어인 셈이다. 유대인 아이들이 모세라는 이름을 흔히 갖듯이, 소련의 아이들은 러시아 인민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공산주의의 모세인 레닌의 이름을 가졌다.

공산주의의 종교적 특성에 주목한 것은 물론 마르친 쿨라(Marcin Kula)가 처음은 아니다. 저자도 인용하듯이, 사회학자 오소프스키(Ossowski)는 1956년 일기장에 “사회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신정국가의 신의 독재의 근대화된 형태”라고 조심스럽게 썼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폴란드의 신학자 티쉬네르(Tischner) 신부는 “공산주의는 종교의 적대자일 뿐만 아니라 캐리커처이자 패러디였다”고 선언했다.

무신론을 외치는 공산주의와 종교는 서로 적이라는 상식을 한 꺼풀 벗겨보면,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공산주의 역사철학은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마니교적 비전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라는 세속적 사탄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위대한 수령의 영도 아래 낙원을 향해가는 고난의 행군의 역사인 공산당 약사는 동족을 끌고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에 정착한 모세의 이야기와 닮았다. 결국 공산당 약사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같은 플롯 위에 서 있다.

교회와 당은 계시된 진리 혹은 절대적 진리의 유일하고 정당한 수호자이다. 교회와 당은 모두 밖의 이교도보다는 내부의 이단을 더 위험하게 여겼다. 트로츠키 주의와 수정주의를 비롯한 무수한 이단적 ‘주의’들에 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은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를 떠올리게 한다. 이단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기 때문에 이단이 되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공산주의의 로마였으며, 크레믈린은 세속의 바티칸이었다.

당 조직은 수도원과 유사하다. 교회법에 대한 순종, 엄격한 규율,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수도원의 조직은 당 조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들은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적 조직이라기보다는 굳건한 ‘형제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들 공동체는 개인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대신, 의식주에서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가톨릭의 역사 못지않게 공산주의의 역사 또한 많은 ‘성인’들을 낳았다. 이 성인들은 죽어서도 당과 인민에 봉사한다. 평양의 혁명 열사릉이나 크레믈린의 담장 밑에 묻힌 죽은 자들이 산 자를 인도한다. 붉은 광장의 ‘영묘’ 속에 누워있는 레닌의 시신을 필두로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 프라하의 고트발트, 하노이의 호치민, 베이징의 마오쩌둥, 평양의 김일성 등 방부 처리된 ‘성인’의 시신들은 부패한 가톨릭 성인들의 유해보다 기술적으로 근대화되었을 뿐, 기본 정신은 같다.

모로조프, 스타하노프, 레이펑 등의 각종 사회주의 영웅들은 바로 이들 사회주의 성인 따라잡기의 결과이다. 1980년대에 한국의 대학가에서도 널리 읽힌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중세 성인전의 사회주의 버전이며, 그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및 순교자 명부 등재 요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인민들에 대해 체제에 대한 순응과 동의를 넘어서 그들의 영혼까지 지배하고자 했던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 권력은 교회 못지 않게 많은 성인들을 필요로 했다.

공산주의는 사실상 ‘호모 소비에티쿠스’ 혹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인간혁명’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개인을 혁명과 공동체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만드는 작업은 각 개인의 실존적 근거까지 근원적으로 바꾸는 ‘개종’ 작업이기도 했다. 스탈린주의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인간혁명’의 프로젝트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쳐 그 원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한다. 매년 레닌의 기일마다 연구소와 문화 관련 국가기관을 다니며 그 안에 놓인 레닌 흉상에 꽃다발을 바치고 가는 문화부 고위 공무원이 있었다. 그는 저자가 근무하던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건물 안의 레닌 흉상에도 어김없이 꽃다발을 바치곤 했는데, 소장 비서는 그가 나가자마자 늘 그 꽃다발을 소장실의 화병에 꽂아버렸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자가 되지 못한 관료들이 남에게 성인처럼 굴기를 설득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 아니었을까?

흥미진진한 분석과 유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전근대적 동유럽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종교를 닮게 됐다는 저자의 결론은 다소 아쉽다. 민족, 조국, 국가, 계급 등의 세속적 실재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의 신성화’ 혹은 ‘정치종교’는 그 자체로 이미 근대성의 산물인 것이다. 막스 베버가 근대에서 ‘탈주술화’와 ‘재주술화’를 동시에 읽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근대적 합리주의가 정교분리에서 보듯이 전통종교의 헤게모니적 지위를 박탈했지만, 근대야말로 새로운 유형의 세속적 종교성이 만들어지는 온상인 것이다(*참고로, 임지현 교수가 주도한 <대중독재2>는 '정치종교와 헤게모니'를 주제로 하고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쟈코뱅이 공화주의 사상에 입각해 정교분리를 외치면서 국가교회였던 팡테온을 혁명열사와 민족 영웅의 성스러운 묘역으로 만들었을 때, 이미 정치종교는 근대적 헤게모니적 지배장치로서 꿈틀대고 있었다. 주기도문을 그대로 패러디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 총통을 위한 기도문이나 종교를 닮은 공산주의는 모두 근대 권력의 무한한 지배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21세기 남한사회에서 스스로 종교가 되고자 하는 근대 권력의 욕망은 얼마나 큰 것일까? 나라 사랑의 표현인 우리의 ‘국민의례’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의 정치종교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세계일보(07. 05. 18) 北 주체사상 종교로 볼 수 있나

미국의 종교 사이트 ‘어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이 최근 “어마어마한 신도수(1900만명)를 가지고 있고, 그들 인생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다” 등의 이유로 북한 주체사상을 종교로 규정, 세계 10대 종교로 올려놓자 국내 관련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드히런츠닷컴은 심지어 ‘주체교’를 유대교(12위·신도수 1400만명)보다 앞세웠다. 그런데, 왜 ‘주체’를 종교로 파악했을까.

 

 

 

 

 

 

 

 

 #주체사상이 종교인 이유
어드히런츠닷컴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체사상은 명백히 종교”라고 못박았다. 사이트는 북한 체제가 옛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에서 연유됐음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독특한 변이를 이룬 점에 주목한다. 또,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승을 공식적으로 부인한 점도 언급했다. 사이트는 “지금 상황에서 주체사상을 공산주의의 이단적 갈래라고 구분하는 것은 불교를 힌두교에 포함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순위 선정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종교가 성립되려면 ‘교주(敎主)’ ‘교리(敎理)’ ‘교단(敎團)’ 등 크게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일견 그 요건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주체사상을 태동시켰던 김일성을 교주로 볼 수 있고, 주체사상 자체를 교리로 파악할 수 있으며,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북한사회 전체를 하나의 교단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전 조선노동당 황장엽 비서도 김일성의 수령절대주의 독재가 계급독재와 다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동안 남한사회에서 주체사상을 거의 ‘종교’ 수준으로 보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미 국내에는 주체사상을 종교로 인식한 ‘북한사회의 종교성-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종교양식 비교’(김병로 지음, 통일연구원 펴냄)라는 저서까지 출간된 바 있다.

#국내 신학자·종교학자들의 반응
주체사상이 10대 종교로 ‘둔갑’한 것에 대해 국내 신학 및 종교 학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신학자인 이정배 감리대 교수는 “주체사상을 종교에 포함시키는 건 신학적인 면에서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주체사상은 아주 인위적인 통치이념으로 자기초월적 기능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종교엔 자기초월·자기비판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숭고하게 이끄는 체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회학 입장에서 종교로도 볼 수 있지만, 이 경우 미국과 대결 상황에서 발생한 아주 기형적인 형태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교·인류학자 김성례 서강대 교수 역시 부정적 입장이다. 그는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히틀러의 나치즘도 종교“라면서 “한 세대만 지나면 소멸할 유사종교일 뿐”이라며 통계의 의미를 축소했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땔감으로 쓰인 ‘가장된’(disguised) 종교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정일이 죽고, 계승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간단히 와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매우 정치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일 뿐인데, 북한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계 결과가 초래할 파급력을 우려했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실장은 “주체사상을 충분히 종교로 볼 수 있다”며 유연하게 말한다. 단, 종교의 범주가 넓고 역기능도 있음을 전제한다. 장 실장은 “내세관과 초월적 요소가 없어도 종교라 부를 수 있다”며 “심지어 사람을 미혹하고, 괴롭히는 종교도 있지 않은가”하고 반문했다. 장 실장은 “‘종교’란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체사상을 달리 볼 수 있다”면서 “통계 결과보다는 종교의 개념을 좀더 확실히 한 뒤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방 세계의 시각과는 달리, 북한은 주체사상을 하나의 철학과 사상 체계로 선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불거져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심재천 기자)

07. 07. 29.

P.S. 러시아 공산주의와 관련하여 언급해두고 싶은 책은 니콜라이 베르쟈예프(1874-1948)의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1937). 우리말로는 <러시아 지성사>(종로서적, 1975)로 옮겨졌는데, 영역본을 중역한 책이다(영역본은 http://www.questia.com/PM.qst?a=o&d=297502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러시아 전통사상과 공동체의식에서 찾는다. 20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베르자예프의 책들은 과거에 몇 권 번역된 바 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되었다. 분량도 얇은 만큼 이 책만큼이라도 재번역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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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9 23:28   좋아요 0 | URL
모든 거대 담론이 신학적인 지점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사상도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임지현 교수가 조선일보에 글을 쓴 것을 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학자들이 우파들과 모종의 이해의 일치를 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임지현은 '적대적 공범자'?)

로쟈 2007-07-29 23:51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박정희주의)와 주체사상(김일성주의)가 실상 '적대적 공범자'였던 걸 상기해볼 수 있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7-07-30 00:12   좋아요 0 | URL
지금의 조선일보를 박정희주의로 볼 수 있을까요? 조갑제 같은 사람 제외하고는 대세는 신자유주의로 알고 있는데요...

로쟈 2007-07-30 00:22   좋아요 0 | URL
지금이야 이명박주의쯤 되나요?(성장주의, 친미주의 혹은 기득권주의?)사실 '생활우파'란 말이 시사해주듯이 '머릿속 이념'은 한국에서 별거 아니거나 속임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포장이거나 알리바이인 셈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조선일보는 순진한(노골적인) 면이 있습니다...
 

조선일보(07. 07. 28) 뿌리깊은 영국·러시아 갈등…‘신냉전’으로 가나

러시아 전(前)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살해용의자 인도요구 논란을 둘러싸고 외교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러시아가 무력충돌까지 갈 뻔했다.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나 러시아 Tu-95 전폭기가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 북해(北海)의 영국 영공까지 근접비행 했다가 영국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출격하자 회항했던 것. 2001년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지 6년만의 일이었다.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망명지 영국에서 푸틴 반대운동을 하던 전 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毒殺) 용의자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인도 문제였다.

영국은 5월부터 러시아에 루고보이가 영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신병을 넘겨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매번 거부했다. 발끈한 영국은 16일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하고, 러시아 관리들의 영국 입국비자 발급 간소화 문제를 재검토한다고 엄포를 놨다. 하루를 그냥 지켜봤던 러시아는 이날 “대응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전폭기의 근접비행을 시도했다.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19일 영국 외교관 4명을 맞추방했다.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영국과 러시아의 ‘신(新)냉전’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외교관 맞추방 사건을 양국의 ‘작은 위기(mini-crisis)’라고 규정하고, “이는 극복될 것”이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하루 뒤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는 영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영·러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왜 그럴까. 표면적인 갈등 이유는 살해용의자 인도를 둘러싼 자존심 대결이지만, 벌써 수백 년간 국제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영·러의 주도권 다툼과 감정적 대립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토니 브렌튼(Brenton) 주러 영국대사는 지난 22일 “영국과 러시아 관계는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그동안 양국관계가 불편했다는 얘기가 된다.

영국과 러시아의 감정싸움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스크바국립대의 마리나 벨랴코바 교수는 “19~20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중흥기를 막은 나라가 영국이고, 이 때문에 러시아인의 마음 속에 영국은 적국(敵國)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물리친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2세(1855~1881년)가 황제에 오르면서 남진(南進)을 시도하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등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점령해나가자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 세력의 확장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양국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거대한 게임(Great Game)’이라고 불리는 전쟁을 치렀다.

그뿐 아니다. 러시아는 1860년 아이훈 조약을 통해 극동과 사할린 일대로 영토를 넓혀갔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일본과 1902년 영·일 동맹을 체결했고, 여기서 러시아의 확장정책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러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을 즈음해 러시아에서는 서구(西歐)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 간의 대립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슬라브주의자들이 승리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세계의 대문호마저 1989년 타임(Time)지에 기고한 글에서 “서구는 영적으로 황폐한 곳이고, 러시아는 윤리적으로 고결한 곳”이라고 인식할 정도였다. 그만큼 영국이 러시아사에 남긴 그림자가 컸다는 방증이다.

다른 분석도 있다. 100년 역사에 가까운 양국 정보기관들의 경쟁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 MI(보안국)-6은 98년, 러시아의 FSB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최고의 정보기관들이다. 특히 소련시절 KGB와 그 후신인 러시아 FSB(연방보안국)에 대한 영국 정부의 경계심은 예사롭지 않다. 이번 사건의 본질도 영국의 사법권이 러시아 정보기관에게 유린당했다는 반발 때문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MI-6은 소위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1930년대부터 30여년간 유린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케임브리지 링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학생 5인방이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KGB 사주를 받아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간첩망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Kim Philby)여서, ‘필비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필비는 MI-6에 검거되기 직전인 1965년 소련으로 망명,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에서 거주하며 영웅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MI-6은 조직 자체위상이 흔들림은 물론, 미국 정보기관 CIA와의 협조체제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영국 부동산 회사 랜드마크그룹(Landmark Group)은 “KGB가 1950년부터 약 40년간 작성해온, 영국 내 103개의 주요 도시 현황에 관한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도가 건물 하나하나의 구조와 재질, 면적 등까지 기록해놓는 등 너무 정밀하게 제작돼 있어, 요즘의 디지털 지도보다 더 정확했다는 것. 지도전문가인 존 데이비스(Davis)가 “이 정도의 지도를 만들려면 공중촬영 후 지상을 걸어가며 직접 확인해 정보를 추가해야 가능하다”며 KGB의 능력을 평가했을 정도였다. 영국 정보기관도 이 지도를 본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과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1989년 외교관 11명 맞추방, 1996년 4명 맞추방에 이어 지난 16일 다시 4명을 맞추방하기에 이를 만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히 이번 사건 때는 알렉산드르 그루쉬코(Grushko) 러시아 외교차관이 “영국외교관 80명까지 추방할 수 있다”고 경고할 만큼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현재 주러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신분의 인력은 모두 45명. 그런데 어떻게 80명을 추방할 수 있다는 걸까. 이는 러시아내에서 비공개로 활동하는 정보기관 요원까지 모두 내보내겠다는, 러시아측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었다.

외교전쟁 촉발의 또 하나의 원인은 영국의 반(反) 푸틴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루고보이 신병 인도 논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영국, 그 중에서도 런던에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러시아로서는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반푸틴 세력 결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핵심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란 말이 있다. 그는 지금도 반푸틴 쿠데타 등을 공개적으로 외치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베레조프스키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운운한 베레조프스키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망명 지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러시아 정부는 반푸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망명객 21명에 대해 러시아로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영국으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했다. 또 토니 브렌튼 주러 영국 대사는 작년 7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러시아 국내단체 ‘다른 러시아(Different Russia)’ 회의에 참석했다. 크렘린은 사전에 “비우호적 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브렌튼 대사는 이를 강행, 친(親)크렘린 청년단체인 나시(Nashi·우리들)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이른바 ‘빅3(Big3, 영국 독일 프랑스)’ 중에서 유독 러시아에 비판적이다. 올 초부터 폴란드·체코에 미국이 자국의 미사일방어(MD)의 일부인 요격미사일과 레이더기지를 각각 설치한다고 발표하고 러시아가 반발할 때,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안보우려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복잡하게 꼬인 영·러 간의 갈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스크바 외교가에서는 양측 모두 칼을 빼든 만큼, 쉽사리 칼집에 다시 넣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더 이상 식민시대의 강국이 아니며 러시아는 단 한 번도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영국 스스로가 잊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24일 발언은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영국에선 고든 브라운(Brown) 정권이 이제 막 들어선 만큼 러시아에 대한 강경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5월 퇴임하지만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유지됨은 물론, 후계자가 푸틴 정책을 거스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영국계 석유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로열더치셸이 투자를 하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이란 핵문제, 코소보 독립 문제, EU와 러시아 간의 파트너십 구축 등에서 양국의 상호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영·러 간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봉합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조선일보(07. 07. 28) 푸틴 인기 높다보니…

보드카 ‘푸틴카(Putinka)’, 식용 해바라기씨 ‘푸트니예(Putniye)’, 만두 ‘펠미니 푸티나(Pelmini Putina)’…. 요즘 러시아 상점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어 표기 Путин)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푸틴 이름이 붙은 상품 판매가 늘고 있다. 그간 마트료쉬카(목각인형)와 티셔츠 등 기념품에 국한됐던 푸틴 상표 제품들이 푸틴 인기를 활용해보려는 일부 기업인의 발상으로 작년부터 술 등 식품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상표등록법상 ‘푸틴’ 자체상표 등록은 불가능하지만, 단어형태를 약간 바꾸거나 합성어를 만들면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상품은 경쟁제품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지 않은데도 판매가 증가했다. 보드카 ‘푸틴카’의 품질은 중급 이하로, 0.5? 1병의 소매가는 220루블(약 8600원)이다. 판매량 1위인 고급품 ‘루스키 스탄다르트’(270루블)와 비교할 때 품질이 뒤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터키계 하이퍼마켓인 람스토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푸틴카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30% 이상 늘었다. 26일 발표된 ‘전(全)러시아여론센터’ 조사 결과, 푸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무려 83%로 나타났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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