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란 말에서 당신이 어떤 이념적 경계, 가령 송두율 교수의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출판, 2002) 같은 책을 떠올렸다면 좀 미안한 일이다. 아래 기사에서 '경계인'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가리키고 나도 그런 뜻의 제목을 붙였다. '경계성 성격장애로부터 내 삶 지키기'란 부제를 가진 신간 <잡았다, 네가 술래야>(모멘토, 2007)에 관한 리뷰인데,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두 가지 근거를 갖는다. 하나는 우리 주변에 '경계인'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게 다른 하나다. 부제를 고려하건대 저자는 경계인들의 주변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로 책을 낸 듯싶다. '심리치료'로 분류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한 권 건져놓는다.   

한겨레(07. 08. 04) 경계성 성격장애인, 이 ‘웬수’ 같은 그대여!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이 시에는 폭발하는 질투와 좌표 잃은 사랑이 염천의 개처럼 헐떡인다. 그렇지만 문학적 열정과 회한이 상대를 할퀴고 끝내 자신마저 할퀴는 실제 상황으로 바뀐다면 그사람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이하 경계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피부의 9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은 사람과 같다. ‘정서적 피부’가 없어 사소한 접촉에도 심한 괴로움을 느끼니까. 경계인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예측 못할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자꾸 도망가는 것 같아 조바심내고, 검은과부거미한테 쏘인 것처럼 펄쩍펄쩍 미쳐 날뛴다.

경계인의 참담한 고백을 들어보자. “어제 약혼자에게 악을 쓰다가 약혼반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리적 이유는 없지만, 그가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머니와 통장을 뒤진다. 직장으로 찾아가서 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별일 없으면 안도감과 함께 창피함을 느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헛일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변 사람이다. 경계인은 누군가를 붙잡아 술래로 만들어야 하고, 그 대상이 된 사람들(이하 비경계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대체 자신이 왜 그 사람한테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경계인보다 더 참담한 비경계인의 말도 들어보자. “직장에서 귀가 시간이 5분이라도 늦어지면 아내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친구들과 외출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벨이 울린다. 스트레스가 심해 이제는 아내와 함께가 아니면 친구와 어울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경계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배우자, 연인, 가족, 친지 등 그들의 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 경계인을 아끼기 때문에 훌쩍 떠나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때로는 ‘감정 노동’이, 때로는 ‘정서적 전투’가 필요한 지피지기의 살벌한 전장이다. 비경계인의 생생한 증언이 이 책의 고갱이다. 그 생생한 증언은 ‘고독한 자에게 보내는 키스’이며 훌륭한 ‘생활의 지혜’다. 자, 주변을 둘러보자. 마치 80년대 ‘이런 사람을 신고하자’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간첩 식별법 같은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그 사람이 감정변화가 극심한지 △자신의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타인의 행동에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는지 △당신의 말과 행동을 의도와 다르게 왜곡해 공격하는지 △흑백논리의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지 △자신이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지 △바라는 바가 변화무쌍해서 도저히 비위를 맞출 수 없는지 △과음, 약물남용, 폭식, 난폭운전 등 자해적 행동을 하는지 △당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늘 빠뜨리는지를 살펴보자.

해당 사항이 많다면 당신은 피곤하다. 그러나 쉽게 매도하지는 말자. 경계인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수칙들을 숙지하면 비경계인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복음을 얻게 된다.

주변에는 비교적 중증인 나 자신을 포함해 경계인 의증 환자들이 여러 명 보인다. 실제로 1996년 서울 여자대학 3곳의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5.6%가 경계인이었다. 그들은 타인과 친밀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약물을 쓰기도 하지만 감정, 행동, 사고, 생리적 요인까지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각각의 사례들은 그와 당신 사이에 놓인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밀어내며 소통의 첫 단추를 끼우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계인도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가진 특징을 좀더 과장되게 지닌 사람들일 뿐이라는. 그러므로 경계성 성격장애인은 나와 당신에게 들이대는 반성의 거울이다.(손준현 기자)

07. 08. 04.

P.S. 혹 주변에 '경계인'이 없다면(그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지만)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영화들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김혜수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2004)가 그런 영화이다('경계인' 증상에 더 맞는 제목은 '피부 없는 미녀'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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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40   좋아요 0 | URL
끄윽, 채점해 보니 저도 경계선 인격장애군요.

로쟈 2007-08-05 11:16   좋아요 0 | URL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philocinema 2007-08-07 17:50   좋아요 0 | URL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한 미국정신의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유병률은 0.7~1.0%정도 되며, 여자가 남자보다 3배 많다고 합니다.
또한 정신과 입원 및 외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인격장애 랍니다.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온 8년간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되짚어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마주하기 힘든 분들이 바로 "경계인"들이었습니다.

이 책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주변의 경계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7-08-07 18:36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대하기 어렵다니까 흥미롭네요...

philocinema 2007-08-08 11:38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 가장 대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대하기 쉬웠다는 것은 결국 의사의 입장인데, 쉬웠다는 것은 의사의 면담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는 얘기일테고(그래야 의사 입장에선 대하기 편했다는 생각과 치료가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테니까요!) 성찰이 충분히 이뤄져 인격에 변화가 왔다면 이제 더 이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아닐테니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가 없겠지요!


글은 처음 남기지만 2년전부터 이곳에 들르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올초까지 군에 있었던 군의관 생활동안 독서모임을 정기적으로 1주에 2번씩 가졌는데, 참석했던 분들에게 로쟈님 서재를 소개했고, 그중 몇 분은 로쟈님의 서재를 방문한 뒤 소개만 해드렸을 뿐인 제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더군요.
이 자릴 빌어 그 분들과 저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좀 엉뚱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나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구요.


로쟈 2007-08-08 11: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 혼자 떠드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많은데, 가끔씩 좋은 평들을 해주시면 감사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론 좋은 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고(그럼 세상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구요) 그게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게, 물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러러면 좋은 의학서적들도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

philocinema 2007-08-08 15:45   좋아요 0 | URL
실제로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건너편에 상대가 있어 말을 주고 받는다곤 해도 따지고 보면 자기 생각을 그냥 혼자 떠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그런 독백들 가운데에서도 귀 기울이고 싶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싶은 독백들이 있더군요! 바로 로쟈님의 독백이 그런 경우 였습니다. 적어도 제겐^^..
독백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으시니 어리둥절하다는 느낌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그 순간이 바로 독백으로부터 상호간 대화로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님의 말씀처럼 저 또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이 출간되고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답니다. 자기 분야의 specialist는 많아 보이지만 교양인으로서의 generalist는 만나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전 개인적으론 제 분야의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 나는대로 다른 분야의 책을 되도록 많이 접해보려고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만난 님의 글은 메마른 대지에 나리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좋은 의학서적이라!
워낙이 의학분야가 고유의 "인본주의"가 사라진채 상업적 자본주의와 결탁이 되어서 그런지 획기적이라고 발표되는 논문이든 책이든 다국적 제약회사의 입맛에 맞는 분야의 연구들만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것이 때론 부끄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기우의 대척점 어디선가 좋은 의학서적이 써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싶네요. 진화생물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로쟈님이 한 번 써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한겨레 북리뷰란에 연재되고 있는 '김윤식의 문학산책'의 이번주 이야기는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것이다(영화는 http://www.youtube.com/watch?v=7DWlVNCiM8E 참조). 칼럼을 읽다가 의문(호기심)도 생기고 개인적인 기억까지 겹쳐서 '조사'를 좀 해보았다. 몇 마디 보탠다. 모처럼 비가 시원스레 오는군...

한겨레(07. 08. 04) '콰이 강의 다리’의 조선인 포로감시병

휘파람 행진곡의 익살스러움을 아시는가. 그럴 수 없이 경쾌한 행진곡에 누더기 군복 차림의 영국군 포로의 행진이 화면 가득 펼쳐졌소. 차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두목 니콜슨 대령의 당당함, 그를 따르는 병졸들의 해맑은 표정. 영화 <콰이 강의 다리>(1957, 데이비드 린 감독)를 보고 있노라면 연합군 포로 수만 명의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태국·미얀마 접경 철도 건설(1942~43)의 비극은 가뭇없고 문득 저 헤겔의 주인·노예의 변증법만이 커다란 얼굴을 내밀고 있소. 다리 건설 과정을 통해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령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지 않겠는가. 설계도를 작성할 수 있는 노예란 벌써 노예일 수 없는 것. 이 점을 1930년대 코제브는 파리고등연구원에서 메를로 퐁티, 조르주 바타유 등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기껏해야 행진곡의 경쾌함이 가까스로 남았을 뿐. 


원작소설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원작자 피에르 불의 소설 <콰이 강의 다리> 제1부에는 이런 대목이 있소. “니콜슨 대령은 두 사람의 거인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둘 다 조선인으로 사이토의 호위병이었다”(오징자 역)라고. 잇달아 이렇게도 적혀 있지 않겠는가. “한 주일 동안을 그는 고릴라 같은 조선인 보초병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보초병은 자기 개인의 특권으로 매일같이 쌀밥에 소금을 덧쳐주는 것이었다”라고. 또 썼군요. “니콜슨 대령은 또 다시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못생긴 조선인은 처음의 그 비인간적 대우를 다시 하라는 냉혹한 명령을 받았다. 사이토는 그 호위병까지 때렸다”라고. 일본군은, 포로 감시원으로 조선인을 사용했음이 조금은 드러나 있소. 8년간 말레이시아에서 토목기사로 종사한 작가이고 보면 이 점이 썩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오.

어째서 일본군은 포로수용소 감시병에 조선인을 사용했을까. 이 물음은 혹시 전범으로 연합군에 의해 처형된 홍사익(1900~46) 중장에도 이어질까(*사진에서 오른쪽 끝). 조선인으로 별을 셋이나 단 이는 홍사익뿐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 육사 26기이자 조선인으로 유일한 육대 출신의 홍사익이 필리핀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간 것은 1944년 10월. 처형 당한 것은 종전 이듬해 9월. 그렇다면 사이토 대령에게 모질지 못한 탓에 얻어맞은 고릴라처럼 생긴 조선인 감시병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잠시 볼까요. 조선인 학병으로 비극의 버마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귀환한 이의 기록에 따르면 귀국선 캠벨호엔 병정 40여 명이 위안부 5백여 명 그리고 포로감시원 7백여 명이 탑승했다 하오(이가형, <버마 전선 패잔기>). 기억에 의한 기록이기에 그 숫자의 정확성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요컨대 기록자의 말 그대로 ‘모두가 불운했던 민족의 제물들’임엔 분명합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전범으로 처형된 조문상(趙文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유령으로라도 지상에 떠돌 것이다. 그도 불가능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떠돌 것이다”라고.

<콰이 강의 다리>란 우리에겐 새삼 무엇일까. 하나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소설이다, 라고 스스로 묻고 대답해 봅니다. 환각으로서의 스크린이고 환청으로서의 휘파람 소리이다, 라고. 동시에 사실이고 역사이다, 라고. 그렇다면 실체란 없는 것일까. 만일 실체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거기에 놓인 실체란 저 헤겔이 말하는 주인·노예의 변증법이 아니었을까.(김윤식 / 문학평론가, 명지대 석좌교수)

07. 08. 04.

P.S. 몇 가지 조사해본 내용이란 건 원작자 페에르 불과 <콰이강의 다리>의 국역본에 관한 것이다(홍사익 중장에 대해선 이규태 칼럼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일단 시중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국역본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좀 의외이다. 칼럼에서 '오징자 역'이라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본이 나왔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오징자'? 불문학 번역자인 '오증자' 교수와 동일인인 듯싶은데 어째서 '오징자'일까, 하며 찾아보니 '오징자'로 검색되는 책들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는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었는데, '오징자 역'으로 돼 있는 건 삼진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2권(1976)이다(같은 번역의 다른 판본들도 나와 있다). 징후/증후에서처럼 한자 음독의 문제일까?  

원작자 피에르 불(1912-1994)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프랑스 작가이다('피에르 불레'로도 표기돼 왔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 바로 <콰이강의 다리>(1952)와 <혹성탈출>(1963)이다(팀 버튼이 리베이크하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얼핏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 싶지만, '탈출' 모티브로 묶이는 것도 같다.

이 <혹성탈출>도 예전에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승산서관, 1979) 등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역본에서 중역된 것이 아닐까 싶고, 그 일역본의 제목이 '혹성탈출'인 듯싶다(원제는 '원숭이의 혹성'이다). 이 정도면 대중적인 지명도를 갖춘 작가/작품인데 도서관에서나 찾아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

P.S.2. <콰이강의 다리>는 내게 언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를 떠올리게 해준다. 갓 전학온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덕분에 별다른 기억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이 선생님의 인상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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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색도 좋구요. 첨 들어보는 작간데 작품은 영화로 둘 다 본 적 있습니다. 그 두 작품 원작자였구나.

로쟈 2007-08-04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확인했습니다...

2007-08-0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06 00:1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랬다면 좀 쑥스럽군요.^^;
 

한겨레21에서 간혹 시집 대신에 '시 읽어주는 남자'를 읽는다. 최근에 나온 읽을 만한 시집들이 어떤 것이 있나 요긴하게 일람해볼 수 있는 연재 꼭지이다. 대개는 읽고 말지만 오늘은 하도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기에 옮겨놓는다. 시인과 평론가가 합창하며 말하기를 우리의 삶은 '백팔번뇌 콘서트'가 아닌가, 라고 하니 춤은 안되더라도 박자는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고(그래야 민폐를 안 끼칠 테니!). 자, 곧 당신 차례다. Are You Ready?

 

한겨레21(07.08. 02) 라라라~ 백팔번뇌 콘서트

SES’는 3명, ‘핑클’은 4명이었다. 한창 활동 중인 ‘원더걸스’는 5명이다. 그리고 이제 ‘소녀시대’가 온다. 이번에는 9명이다. 최근 온라인 틴에이저 커뮤니티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이 9명의 소녀들이다. 음반도 출시되지 않았고 방송 데뷔도 아직 안 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와 영상은 이미 인터넷에서 인기다. 그래서 보았다. 상큼한 노래, 발랄한 군무, 다 좋다. 그런데 9명이라니, 너무 많지 않은가.

천만에. 일본에는 초대형 걸그룹 ‘번뇌걸즈’가 있다. 이 해괴한 이름의 팀을 구성하는 멤버는, 놀라지 마시라, 총 108명이다. 그러니까 백팔번뇌인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 팀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들은 삼각편대로 대열을 맞추고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무표정하게 부르면서 그야말로 ‘엉거주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번뇌가 밀려왔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조롱하고 냉소할 힘도 없다. 어쩐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영상을 끄고 말았다.

물론 대중음악은 본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산업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 유가 더 많은 유를 낳는 장사의 영역이다. 인재를 발굴해 자본을 투입하고 스타로 만들어 잉여가치를 뽑아낸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튀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108명은 너무했다. ‘장사’가 되기는 할까? 이것은 무한경쟁 상업주의의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진부한 물음이다. 시인들의 뛰어난 상상력은 물음 자체를 바꾼다.

“라라라, 여긴 매우 비좁군요 머릿속은 당신이 모른 채 당신이 상연되는 콘서트장이죠 걱정 말아요 우린 아주 잠시 동안만 당신을 빌릴 거예요// 우리의 하모니는 서로를 비난하는 데 바쳐지죠 당신은 누구지요? 이름이 뭐예요? 우리는 의심 많은 소녀들, 머릿속은 고장 난 앰프처럼 먹통이 되겠죠 우린 점점 증폭되고 있어요.” 번뇌걸즈를 소재로 한 시 ‘번뇌스런 소녀들-리허설’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이렇다.

“우린 하루 종일 둥글게 둥글게 입을 모아요 각자의 목소리만 너무 사랑하는 우린 즐거운 소녀들, 라라라, 발성 연습은 언제나 아름다워요 당신이 당신을 잊어버릴 때까지 우린 노래 부를 거예요//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 라라라, 마지막 멤버가 도착했군요 당신은 서서히 돌 거예요 당신은 108개의 목소리를 갖게 됩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노래를 불러드리겠어요.”

최근에 출간된 김경인 시인의 첫 시집 <한밤의 퀼트>(랜덤하우스·2007)에서 골랐다. 이 시는 번뇌걸즈라는 이름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오히려 신선해졌다. 그래, 저기 108명의 ‘번뇌’들이 노래하고 있군. 그런데 당신은 뭐가 놀랍다는 거지? 저건 그냥 당신의 머릿속과 똑같아. 108명의 “의심 많은 소녀들”이 나와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늘도 콘서트를 열고 있어. 번뇌들, 내 머릿속의 소녀들, 끝없이 욱신거리는 내 영혼의 노래들.

번뇌걸즈를 보면서 상업주의의 복마전을 생각하는 일은 따분하지만, 그 소녀들을 ‘내 머릿속’으로 기꺼이 불러들이는 시인의 상상력은 재미있다. 예컨대 “우리의 하모니는 서로를 비난하는 데 바쳐지죠”라든가, “각자의 목소리만 너무 사랑하는 우린 즐거운 소녀들”과 같은 구절들은 실로 ‘번뇌’라는 굳은 단어에 대한 신선한 규정이면서 동시에 제 자신이 사랑스러운지 모르고 있기에 더 사랑스러운 소녀들 같지 않은가.

이 시가 “번뇌스런 소녀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그것이 꼰대의 조롱이나 먹물의 냉소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이 시에 조곤조곤 감염된 탓인지 달리 생각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노동이란 것이 번뇌걸즈의 맨 뒷줄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 소녀의 그것보다 특별히 우아한 것도 아니다. 번뇌걸즈의 영상을 다시 튼다. 번뇌가 밀려온다. 그런데 나는 몇 번째 줄 어디쯤에서 노래하고 있는 거지?(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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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0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표정한 108명의 여인들이 똑같은 율동에 맞춰 의미없는 노래를 중얼거린다면..번뇌가 밀려오기도 전에 제법 공포스러울 듯 하기도 합니다.

로쟈 2007-08-0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영상은 보지 않았는데, 자못 일본스런 발상이란 생각은 드네요...

twinpix 2007-08-0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8면 대단하네요. 저번에 일본에서 초등학생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이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요.) 동영사을 본 적도 있었죠. 아무튼 시집이 관심이 가네요. 'ㅁ'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누가 썼을까 궁금해하며 봤는데, 신형철님이었군요. 역시, 좋군요. 흠흠

로쟈 2007-08-0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평론집이 나온다고 했는데, 8월에 나오는 건지 모르겠네요...

누에 2007-08-0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쟈님의 이미지와 백팔번뇌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묘한 느낌이 납니다.

로쟈 2007-08-0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뇌야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지요 뭐...
 

발터 벤야민의 책 두 권이 번역돼 나왔다는 단신을 접하고 귀가길에 서점에 들러봤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단다. 직원의 말을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새물결 책은 따로 주문하셔야 합니다." 비록 대형서점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규모는 되는 2층 건물의 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은 아니었다(하지만 내가 자주 듣는 종류의 답변이다. 하긴 어지간한 문학잡지들도 들어오지 않으니). 멋쩍어서 책세상문고가 어디 있는지 물어서 역시나 신간인 벤담의 <파놉티콘>(책세상, 2007)이나 집어들고는 계산대로 갔다...

집에 돌아와 벤야민의 신간에 관한 리뷰가 떠 있나 싶어 한겨레의 북리뷰로 들어갔다가 어떨결에 읽은 건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과 '천태산인' 김태준의 평전들이다. '좌파 혁명운동가'란 공통점이 있을까? 동시대를 살아간 두 빨치산/지식인의 행로가 두툼하게 재현돼 있는 듯해서 반갑다(<김태준 평전>은 아직 알라딘에 입고가 되지 않은 듯하다). 두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  

한겨레(07. 08. 04) 빨치산 대장 이현상 생애와 투쟁 복원

장편소설 <파업>(1989)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작가 안재성(47)씨. 2000년대 이후 그는 식민 시대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재유를 중심으로 김삼룡과 이현상 등이 전개한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재조명한 <경성 트로이카>(2004)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은 지난해의 〈이관술 1902~1950〉을 거쳐 이번에 새로 낸 <이현상 평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현상 평전>은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결성되어 전쟁 직후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투쟁을 벌인 남부군 대장 이현상(1905~1953)의 생애와 유산을 꼼꼼하게 더듬는다. 특히 남부군의 존재를 남에서도 북에서도 잊혀진 ‘역사의 미아’로 묘사한, 남부군 기관지 <승리의 길> 기자 출신 이우태(필명 ‘이태’)의 논픽션 <남부군> 등의 관점을 강하게 반박한다. 이현상이 북에서 보낸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는 설을 부인함은 물론이다.

전북(지금은 충남) 금산의 유복한 양반가의 막내로 태어난 이현상은 1920년대 후반부터 해방될 때까지 총 12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전향하거나 변절하지 않았다. 빨치산 시절 그는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존대했으며, 포로나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을 엄금했고, 오락시간이면 북에서 배운 탭댄스로 흥을 돋우곤 했다.

그런 그를 대원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과 호감을 표했다. 과묵하고 온후했던 그는 군사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 전황이 낙동강을 경계로 교착 상태에 빠졌던 1950년 8월에는 90여 명의 유격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두 달 동안 미군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으로의 퇴로가 막힌 채 산에 갇히게 되고부터 마지막 순간을 맞기까지의 3년 동안이 그의 생애의 절정이자 <…평전>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얼어죽고 맞아죽고 굶어죽는다’는 빨치산의 운명은 이 시기를 다룬 평전의 마지막 세 장에서 비극적 광휘를 한껏 내뿜는다. 이 시기의 유격 투쟁은 분명 불가피한 몰락을 향해 가는 하강 운동이었지만, 이현상의 인간적 면모는 몰락의 드라마를 배경으로 오히려 상승하는 듯 보인다.

마침내 그가 수긍하기 어려운 죄목을 뒤집어쓰고 평당원으로 강등된 뒤 의문의 죽음을 맞을 때에도 그는 끝내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책 말미에는 선배 소설가 김성동씨의 장문의 발문이 곁들여졌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07. 08. 04) "신념과 죽음 맞바꾼 지식인 제대로 평가하고 싶었다”

한국 현대시를 연구해 온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다소 뜻밖의 책을 펴냈다. <김태준 평전-지성과 역사적 상황>(일지사). 국문학자이자 일제 강점기·해방공간의 대표적인 좌파 혁명 운동가의 삶을 꼼꼼히 들여다본 것이다. 사상이 누리는 자유의 공간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김태준(1905~1949)이란 이름 석자는 여전히 드러내놓고 논하기에 부담스런 존재다.

경성제대 중국어문학과 출신인 그는 25살인 학부 3학년 때, 우리 문학의 근대적인 개별양식사로는 최초 저작인 <조선소설사> 원고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1931년엔 또 다른 양식사인 <조선한문학사>를 펴냈다. 이어 <조선가요>(1934)를 출간했고, 한국사, 민속, 종교, 한국고전 관계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30살 이전에 대부분의 기성 연구자들보다 많은 저서를 내면서 강렬한 주목을 받았다. 문단과 학계의 총아가 된 것이다. 이런 업적을 토대로 그는 34살 때 경성제대 문학부에서 전공 강의를 가르치는 최초의 조선인 학자가 됐다.

그의 삶은 1년 뒤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위원회(경성콤그룹)에 가담하면서 격랑의 한가운데로 빠져 들어간다. 이 당시 맺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 이현상과의 인연은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어진다. 삶의 비극적인 종지부도 공유했다.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것도 마찬가지다. 경성콤그룹 지하운동으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뒤 1943년 세상 밖으로 나온 김태준은 노모와 아내, 어린 아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게 된다. 해방을 1년 남기고 독립운동을 위해 국외탈출을 시도한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연안행’이다. 해방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서는 박헌영과 남로당의 행보에 자신을 일치시킨다. 남로당 특수정보부장으로 49년 11월 수색의 군처형장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교수는 “왜 김태준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식인으로서 그가 가진 신념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일관되게 지키고 또 (그것을 위해) 죽음까지 무릅써야 했던 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대학교수급 (지식인) 가운데 김태준처럼 총살형을 당한 경우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그가 유일하다”고도 했다. “신념 속에 죽었다”는 아우라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그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분’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와 이데올로기가 같은 북한 문학사에서 김태준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 그는 그쪽에서는 틀림없이 애국자다.”

곧 <북한문학사>를 펴내는 김 교수는 문학과 정치 관련 각종 북한 사서를 들춰보았으나 단 한차례도 김태준이란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남한의 연구도 미흡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전집이 없다. 기존 저작의 복사판 수준의 전집만 나와 있다. “김태준이 쓴 모든 자료를 엮어서 전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의 글이 굉장히 거칠다. 앞뒤 논리가 안 맞는 예도 부지기수다. 자료를 모두 모아 교정하고 정리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있는 그대로 김태준에 대해 적어 놔야겠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그에게 김태준의 공과는 뚜렷이 갈린다. 혁명가로서 김태준은 해방 이전까지는 반제투쟁의 투사였다. 그 당시 계급투쟁은 반제투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남로당 노선에는 비판적이다. 남로당의 ‘극좌모험주의’로 수많은 인명이 결과적으로 살상당했다고 본다. 남로당의 문화공작 책임자였던 김태준이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그의 지시로 지리산 문화공작대로 파견된 시인 유진오 등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그는 적었다.

학자로서의 연구 업적에도 자신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가장 불만스러운 점은 <조선소설사> 등에서 나타나는 ‘성급한 계급사관’이다.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는 이유로 다산 정약용을 소외시키거나, ‘비과학적’이라면서 단군 건국신화를 제외시킨 판단은 수긍하기 힘들다고 썼다. 하지만 △고려시대 패관문학을 소설의 갈래로 포함시킨 점 △박지원의 <양반전> <허생전> <호질>의 발굴 소개 △허균 <홍길동전>, 김만중 <구운몽>을 부각시킨 점 △〈심청전> <흥부전> <장화홍련전>의 소설사 등록 등은 굵직한 업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교수의 뇌리에 인간 김태준이 각인된 시기는, 14살이던 1946년이다. 당시 문학가 동맹 기관지 <문학>에서 김태준이 쓴 ‘연안행’을 읽었다. 반제투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 포위망을 뚫고 연안으로 탈출한 이야기가 “독서 능력이 보잘것없었던” 시절에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이 수기는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이 격화되면서 끝을 맺지 못한다.

김 교수는 김태준이 신념 때문에 연구를 계속하지 못한점을 몹시 아쉬워했다. “서울대에 남았으면 한국과 중국문학의 주인이 됐을 것이다. 업적이 괜찮다. 연안에서 귀국할 때도 서울에 가면 ‘난 이제 다른 것 그만두고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총살당하기 직전에도 ‘안정되면 고려시대 문학사를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연구자·학자로 남기에는 속된 말로 피가 너무 끓었다.”

신념을 저세상에 가져간 한 지식인의 남다른 행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생각을 밝혔다. “하나님에게 운명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자기 신념이나 믿음에 의해 사는 것이다. 지식인은 많이 안다. 고문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신념에 따라 살기가) 더 어렵다. 그의 신념·사상에는 여러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신념 속에 죽으니까 평가되었다.”

07. 08. 03.

P.S. <김태준 평전>의 저자인 김용직 교수에게서 오래전 '해방기 시문학사'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교재가 <해방기 한국시문학사>였는데, 지금 찾아보니 개정판마저도 절판된 상태이다. 아마도 15-6년 전인 듯싶다. <임화 문학연구>의 초판도 그맘때 나왔던 것 같고. 강단에서 주로 시를 가르친 저자의 관심이 의외로 지식인과 이념(신념)의 문제에 많이 쏠려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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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10   좋아요 0 | URL
강조하실 때 분홍색 대신 노랑색을 쓰니까 눈이 덜 피로하고 좋네요.

로쟈 2007-08-04 18:24   좋아요 0 | URL
주로 연한 색을 쓰는데, 분홍색을 너무 많이 썼나요?^^;

심술 2007-08-04 18:30   좋아요 0 | URL
네, 주로 분홍색을 많이 쓰셔서 그 동안 눈이 좀 아팠어요.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 정수복씨의 신간이 출간됐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 2007)이란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600쪽에 육박한다!). 지난주에 책이 나온 걸 서점에서 봤지만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이전에 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리뷰 정도만 챙겨두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옮긴 피에르 앙사르의 <현대 프랑스 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92)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벌써 15년 전이라니...

문화일보(07. 08. 03) 한국인의 병폐 낳은 巫敎-儒敎 ‘잘못된 만남’

한국인들은 상대방과 얘기할 때 흔히 “(무엇무엇이) 있거든요…”라는 말을 앞세운다.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들어간다. 상대방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응대한다. 속으로는 “그래 너 잘났구나… 어디 한번 해봐”라고 코웃음을 친다. 이어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듣기보다 자기가 무슨말을할까만을 골똘히 생각한다. 노래방에서 상대방의 노래는 듣지 않고 자기가 부를 노래만을 열심히 찾듯이. 대화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심각한 소통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그릇된 우월감은 자신을 제대로 성찰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인들은 20세기 전반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점’이라는 굴종의 경험에 치를 떨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인가.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로 진입하면서 폭발적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고 우쭐대고 싶어한다.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우월주의가 대표적이다. 이미 세계 초강대국이 돼 버린 일본을우습게 보는 것은 남한과 북한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

이 책은 우월주의와 근거없는 낙관주의, 감정우선주의, 이중규범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등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거침없이 무너뜨린다. 한국인의 병폐를 성역없이 들춰낸 박노자 오슬로국립대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이어 오랜만에 나온 비판적 한국인론이다. 무척 논쟁적이다. 곳곳에 뇌관이 묻혀 있다. 굿의 지역 공동체적 정감 회복이라는 의미가 부각되는 상황인데 무교(巫敎)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최근 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 심해지는 개인주의, 파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을 인정하는 개인존중사상과 개인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청연구원으로 지난 2002년 이후 두번째 파리 생활을 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머물렀었다. 집을 나온 뒤에야 기존 관습에 젖지 않고 집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다. 저자는 파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나 거리를 배회하면서 한국사회의 종교와 문화, 교육, 의식구조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곱씹어본 듯하다.

저자는 545쪽에 이르는 이 책에서 방대한 담론을 풀어놓기 전에 우선‘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에 딴죽을 걸겠다고 선언한다. 문화적 문법을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영어문법을 모르면 무시당하듯 여러번 문화적 문법을 어기면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 되고, 계속 어기면 ‘미친 사람’이 돼 버린다는 것.

저자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교역국가가 됐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기존의 전통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한 경험은 빈곤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먼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등 6가지 근본적 문법으로 정리했다. 이어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6가지로 분류한다. 이 12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분출된다.

저자가 예로 들었던 황우석 사태에서부터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에 이르기까지 지식인, 대학사회에서도 윤리적 불감증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할 때도 이 같은 요소들은 유용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터지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재발을 막는 근본적 방법보다는 공적 자리에 있는 책임자를 찾아내 그를 사퇴시키거나 법적 책임을 묻는 일로 마무리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특히 종교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도교, 불교, 기독교 등 외래종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교와 결합함으로써만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사회의 기저에 무교 - 유교 결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적 문법이 끈질기게 작용하고 있다. 나쁜 일을 피하고 현실에서 복을 바라는 무교는 현세적 물질주의를 강화시켰다. 무교의 조화론은 갈등회피주의라는 문화적 문법의 뿌리다. 또 무교의 현세주의적 세계관이나 조화론은 이후 도래한 불교와 기독교에도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한국 기독교에서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가족이기주의와 연고주의는 유교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이 책에 따르면 유교도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권력과 질서의 유지, 국민동원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됐다.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시됐고 이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논리로 정당화됐다. 또 한국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개인주의 = 자기만의 이익추구 = 무질서 = 무정부주의 = 혼란 = 난장판’이라는 등식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이제 한국사회는 권위주의를 해체하면서 수직적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치 중심의 사회운동도 문화중심의 사회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분야의 역할강화, 가족관계와 종교단체, 학교 교실의 민주화 등과 함께 영성훈련, 문화체험, 자원봉사, 우정과 연대의 발견, 독서토론 등을 통해 개인 내부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뇌관이 개인주의에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주체성과 자주성과 독자성을 갖춘 개인을 뜻한다. 저자는 “개인존중사상이 없는 한 나이와 성별, 출신가문과 출신학교, 지역을 기준으로 한 서열의식과 권위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한 공동체 논리 앞에 개인을 줄 세우는 오래된 문법은 계속 통용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진수기자)

한국일보(07. 08. 04) 우리의 의식은 아직 상투를 틀고 있다

사회학자 정수복(53)씨.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대 초까지 강의와 시민운동,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던 그는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자로 5년간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탐구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해 의도적인 ‘떨어져보기’를 시도하며 끌어낸 한국인론이다.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근대는 미완이고 절름발이’라는 선언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근대의 꼴을 이룩했지만,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전근대의 정신적 유산을 떨치지 못했다고 본다. 그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발생한 황우석 사태가 상징적이다. 이때 한국 지식인들은 “개인이나 공동체나 너무 까발리면 생존하기 어렵다.

큰 공적을 이룬 분들은 공헌도 크지만 과정에서 오류도 있기 마련”이라며 희박한 윤리의식과 도덕불감증을 날것으로 보여줬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시나브로 확산되는 박정희 전두환 이승만 등 전근대적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역시 그의 확신을 굳혔다. 그는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란 개념을 동원해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문화적 문법이란 구성원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마음의 습관, 의식구조 등을 아우르는 개념. 이는 다시 한국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내면화한 근본적 문법과 20세기 들어와 형성된 파생적 문법으로 나뉜다.

근본적 문법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이고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 중심주의다. 이 문법들의 기원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전통종교와 사상인데 지은이는 특히 유교의 부정적유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령 유교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한국인들은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못했고, 이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자율적이고 근대적인 개인’들의 출현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좌파건 우파이건 남한이건 북한이건 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한 위계질서나,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봉건적 수직적 질서를 강화했던 북한사회가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주역으로 청년층과 여성들을 주목한다. 2030이라 불리는 청년세대는 나이, 직위, 영향력으로 유지되던 수직적 위계질서를 인격존중, 설득, 격려로 유지되는 수평적관계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오랫동안 남성지배적 문법에서 배제돼 있었던 여성들도 기존의 문법을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해석하며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계를 낡은 문화적 문법으로 파악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이 책을 썼다”며 “한국사회에 독자성과 존엄성을 지닌 개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주의가 고양될 때 낡은 문법들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왕구 기자)

07.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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