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한국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08/wk20090803152714105430.htm). '독서의 달인'이 테마인데, 얼떨결에 그 '3인의 달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대단한 장서가에다 독서가인 장석주 평론가와 동급일 수는 없고 독서의 달인 '후보'(칸지다트) 정도는 가능하겠다. 그래도 관련기사이니만큼 스크랩하여 창고에 넣어둔다.   



주간한국(09. 08. 03) 그들의 독서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우리 시대 독서의 달인 3인을 소개한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는 2만 권의 장서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 해 평균 1~2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로쟈’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현우 씨는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다. 인문학, 사회과학, 사상서 등 깊이 있는 책에 관한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CBS정혜윤 라디오PD는 인터넷 서점 <예스 24>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책, 여행 관련 에세이를 연재하며 일반에 알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석주 평론가의 경우 새벽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다. 이현우 씨는 한번에 10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직업 상 따로 독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정혜윤 PD는 방송 중간에 5분씩 짬짬이 책을 읽는다. 이현우, 정혜윤 씨도 각각 1만 권과 5000권의 책을 갖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독서는 사유하는 힘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써요. 12시까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방송국에서 녹음하고.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 쓰고 책 읽을 수가 없어요.”

장석주 평론가의 일상은 마치 수도승 같다. 반복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평론가, 시인, 라디오 진행자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로 활동하는 그는 한 주에 평균 2박스 분량의 책을 사들인다. 일 년간 평균 1200~1500권을 산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쓰기도 하는데, 문학평론집 <상처입은 용들의 노래>와 서평 에세이 <취서만필>이 올해 상반기에 나왔고, 한국문학 100년 역사를 정리한 <나는 문학이다>가 8월 중 나올 예정이다. 9월에는 또 두 권의 책이 기다리고 있다. 앞의 3권 모두 책에 관한 비평, 에세이집이다. 그에게 독서는 생활이자 밥줄인 셈이다.

- 장서 2만권이면 얼핏 감이 오지 않는다.

“2만 권의 책을 읽은 건 아니고,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안산에 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가정집, 한 채는 책을 모아두는 곳이다. 홍대 근처에 작업실을 만든 지 3년이 됐는데 여기도 4000권 가량이 있다. 일본의 한 작가는 하루에 7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는 못한다.”

- 속독을 하나? 한 권 읽는 데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보통 사람보다 빨리 읽는 편이지만, 속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속독을 배운 적도 없고. 다만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보통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집중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자꾸 들춰보는 게 반복된다. 나는 3시간 정도는 집중할 수 있다. 책마다 다르지만, 인문학 서적의 경우 그 정도면 한 권 읽는다.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 독서 달인들이 추천하는 책은 탁월하다. 책 고르는 기준은 뭔가?

“좋아하는 책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미시사, 수학, 양자 물리학, 뇌 과학, 진화학. 기본적으로 미술, 건축과 같은 예술서도 좋아한다. 책 고를 때 기준은 사유를 자극할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생각하기 위함이다.”  



- 책을 읽을 때 특이한 버릇이 있나?

책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메모도 안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책과 더불어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서를 하는 동안 뇌를 입체화하는데, 책의 키워드를 입체 공간에 넣고 키워드들이 연결되는 방법과 전개과정을 하나의 마인드맵으로 만든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책을 따라 간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 독서의 달인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독서는 무조건 시간을 내야 한다. 영화나 인터넷, 다른 취미 생활 중 무언가를 빼고 책 읽을 시간을 자기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 책을 사면 언젠가는 읽는다. 책에 관한 책, 일간지 주말 북 섹션, 서평 기사 등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책 고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로쟈' 이현우
노예처럼 부려먹어라


이현우 씨는 깊이 있는 인문학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은 이미 젊은 지식인 사회에서 유명한 서평 블로그가 됐다. 서울대 노어노문과 강사인 그는 전공인 러시아문학 이외에도 들뢰즈, 지젝, 랑시에르 등 해외 지식인들의 국내 번역본에 관해 가장 먼저 서평을 올린다.  



올해 5월 지난 10년간의 서평을 모은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내기도 했다(*서평이라기보다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서평할 책을 고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들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핫’한 책이기도 하다. 웬만한 출판, 문학 기자보다 이들 책의 출간 소식을 먼저 알고 있을 정도다. 그는 “대학과 소수 고급독자-일반 대중독자로 나뉜 국내 인문학 시장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당신의 경우 인문, 사회과학, 사상서를 특히 많이 읽는다. 내용이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들인데, 전공을 공부하며 어떻게 이런 책들을 가장 빨리, 많이 읽어내나?

문학 공부는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공부라서 굉장히 폭 넓다. 인문학, 사상서를 읽는 게 외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정말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저자도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기자가 가져갔던 이주의 서평 책<네이션과 미학>을 가리키며) 고진도 나보다 훨씬 많이 읽지 않나.”

-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책 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앎에 대한 저항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르면 편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감히 알려고 하라’는 거다. 감춰진 진실을 알면 불행해지고 책임을 떠안게 되는 건데, 그걸 즐겁게 감수하는 것. 그것이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 로쟈의 서평은 자세하면서도 길다. 마치 한 권의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다. 자기만의 독서법이 있는가?

“서평과 학교 강의 등을 병행하다 보니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게 된다. 최근에는 10권 정도를 함께 읽는데 경우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발췌독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할 때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내용을 정리한다. 복사할 때 밑줄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원서와 함께 본다. 의역(*오역)이 아니라도 부주의하게 쓴 부분이 있다. 사상서는 해당 저자의 책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다음 책은 다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젝의 책은 처음 한 권을 소화하면, 다음 책은 어떤 철학자의 책보다 쉽다. 선입견을 버리고 읽었으면 한다.”

- 독서 달인 비법에 대해 말해 달라

많이 읽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초등학생의 경우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독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읽는 것을 어느 정도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책을 갈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선까지 저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겠지만,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해야 한다. 책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 한다.”

정혜윤 PD
책은 독자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CBS 정혜윤 PD는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행복한 책 읽기>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라디오 프로듀서다.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 서평을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서평책 <침대와 책>이 인기를 모으며, 인터뷰와 책 소개를 함께 엮은 에세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펴냈다.

그는 인터뷰 중 헤르만 헤세의 저서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등의 일부분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는데, 작가의 문체와 묘사를 거의 다 기억할 만큼 꼼꼼히 읽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말했다. “한 시간에 걸쳐서 줄거리를 말해드릴 수도 있어요.”

현재 영화음악과 재즈, 두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예스 24>에 고전에 관한 서평을 연재 중이다.

- <예스 24>에 서평을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연재 계기가 있었나?

“서평을 올리면 원고료 대신 책을 줬다. 책을 많이 받고 싶어 원래 2주일에 한 번 원고를 주는데 내가 일주일에 한 편씩 보내겠다고 말했다.” 



-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공지영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에서 패러디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문장 하나까지 기억하는 게 놀라웠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작가의 저서는 자기복제 같은 면이 있다. 한 작가의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성향, 문체 특징이 있는데 어느 순간 독자인 나와 맞는 순간이 있다.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책을 발견해도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 많고,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다시 못 읽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캐릭터와 현실의 사람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마치 ‘다시 못 볼 친구’처럼 본다. 내가 책을 특별히 면밀하게 기억한다면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 책은 얼마나 많이, 자주 읽나?

“생각보다 많이 읽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고전에 관한 원고를 연재 중이라 신간은 더더욱 못 읽는다. 일주일에 5권 정도 읽는 것 같다. 방송 중간에 5~10분씩 시간을 낸다. 개인적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 손 부분을 몸에서 제일 좋아한다. 이 부분에 무엇을 움켜쥐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간은 책이었다.”

- 책 고를 때 기준은? 안 읽는 책도 있나?

“싫어하는 책은 실용서, 자기계발서다. 자신의 계발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책을 고를 때는 보통 작가를 많이 본다. <연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도 좋아한다.

- 책 읽을 때 버릇이 있나?

“침대에서 온 몸을 비틀면서 읽는 걸 좋아한다. 따로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는 않는다. 라디오 PD를 오래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가 하나의 장면이나 말을 그대로 기억하는 거다. 책의 한 페이지가 사진처럼 찍혀 머리에 남는다.” 



- 당신에게 책은 뭔가?

작가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에 결판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이 책과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다.”(이윤주 기자) 

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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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8-0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면 읽는다"는 장석주 선생님 말에 공감합니다^^ 이책을 언제 읽나 하다가도 언젠간 읽겠지 하는 생각에 책을 사게 됩니다^^ 소설이 비교적 읽기 쉽고 인문서가 읽기 어렵다는게 상식인데 소설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씀이 재밌네요^^ 장선생에게 소설은 '전공서적'이고 인문서는 '참고서적'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로쟈 2009-08-04 23:04   좋아요 0 | URL
인문서는 발췌독도 가능하니까요...

2009-08-04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한장 2009-08-0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확실히 책을 사 놓으면 빌려 읽을 때 보다는 읽을 확률이 확실히 높아요. 하지만, 저 같은 보통사람(?)은 사 놓고도 안 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면지로도 못쓸 종이뭉치를 몇 만원을 주고 사놨구나 생각하면 오기로라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은 어떤 사람에게는 폐품용지가 되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말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멋진 말이네요.

로쟈 2009-08-04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사놓고 안 읽은/못 읽은 책 많습니다.^^;

카스피 2009-08-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분모두 대단하시네요^^

로쟈 2009-08-04 23:06   좋아요 0 | URL
젊잖게 미친 경우들이죠.^^

2009-08-0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4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08-0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인의 일상은 단순하며 일정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꼼꼼이 읽어보고 배워야 겠습니다. 좋네요.

로쟈 2009-08-04 23:07   좋아요 0 | URL
옆에선 보기엔 재미없는 일상이죠.^^

우동 2009-08-1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어떻게 해야 책을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을까요??

로쟈 2009-08-11 23:01   좋아요 0 | URL
책에서 많은 걸 얻어내거나 필요한 걸 얻어내는 걸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게 책을 잘 활용하는 일일 테니까요...

우동 2009-08-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쉬운데요?! 실천해봐야겠어요 ^^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며칠전부터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다시 손에 들고 주로 후반부를 읽었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단숨에 일독하긴 어려운 책이어서 이렇듯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읽어두는 것. 단, 원서와 같이 읽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젝의 독자라면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해봄 직하다(일독도 어렵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교정도 필요하다. 더없이 요긴한 번역본이긴 하나 으레 그렇듯이 분량이 분량인 만큼 실수와 착오도 드물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사소한 것이나 간혹 문제가 되는 오역도 있다. 그런 걸 고쳐가면서 읽으면 된다(조금 난해할 듯싶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책의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사실 지젝보다 난해한 책들도 부지기수다).    

가령, "여기서 우리가 제안해야 하는 것은 헤겔적인 '무한판단'으로서 타자성에 대한 적나라한('비승화된') 미움만을 전시하는 폭력적 직접성이 '쓸모없는' 그리고 '과잉적' 분출의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 아마도 이 우연일치에 관한 궁극적인 실례는 정신분석적 해석의 운명일 것이다."(590쪽)는 '제안'을 보자.  

일단 이 책에서 '정체성'이란 단어가 나오면 한번쯤 주의해야 한다. 이 'identity'란 단어가 '정체성'이란 뜻보다는 보통 '동일성'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speculative identity'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사변적 동일성'이다('사변적 정체성'이란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동일성'이라고 하면, 보통 '무엇과 무엇의 동일성'이란 구문으로 쓴다. 이 문장도 마찬가지다. 원문은 이렇다.   

"What we should propose here is the Hegelian 'infinite judgment' assertimg the speculative identity of these 'useless' and 'excessive' outbursts of violent immediacy, which display nothing but a pure and naked ('unsublimated') hatred of the Otherness, with the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 perhaps the ultimate example of this coincidence is the fate of psychoanalytic interpretation."(300쪽) 

핵심구문은 'the speculative identity of A with B'(A와 B의 사변적 동일성)이다. 다만 A에 해당하는 것이 관계사절까지 거느리고 있어서 다소 길 따름. 국역본은 이를 간과해서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옮겼다.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지구적 재귀화' 정도다('재귀화'는 울리히 벡 등의 성찰적/재귀적 근대론자들이 쓰는 용어다).    

유사한 사례를 더 들자면, "지속되는 '테러와의 전쟁' 속에 있는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일련의 중요한 정치이론적 결과들을 도출하도록 강요하는데..."(734쪽)에서도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This 'speculative identity of opposites)"은 마찬가지로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 동일성"이란 뜻이다. 여하튼 사단은 '동일성' '정체성' 등을 모두 카바하는 'identity'의 오지랖이 우리말보다 넓다는 데 있다('진리'와 '진실'을 다 카바하는 'truth'처럼).

한두 가지만 더 짚어본다. "여기서 첫번째 교훈은 지배 이데올로기('근본주의 대 자유주의')가 부과하는 선택이 실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세번째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 두번째 교훈은 근대성 또는 반성적인 '위험사회' 이론의 주제 중 하나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선택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682쪽)  

이 대목은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너무도 단순한 착오가 포함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The first lesson here here is that choice imposed by ruling ideology ('fundamentalism versus liberalism') is not a real one: we always have to look for a tertium datur. One of the topoi of the theories of second modernity or reflexive 'risk society' is that today, we are all exposed to too many choices."(348쪽) 'second modernity'(이차적 근대)가 '두번째 교훈'으로 잘못 옮겨진 것. '반성적인'이라고 옮겨진 'reflexive'도 보통은 '성찰적' 혹은 '재귀적'이라고 옮겨지는 듯하다.   

그리고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에 관한 얘기.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는 - 모택동에 의해 복권된 기괴한 세번째, '법가'의 입장, 평등주의적인 혁명적 공포의 지지자와 함께 - (전통적인 관습, 권위 그리고 교육에 의존하는) 유교와 (자발적인 자기-계몽을 추구하는) 도교 사이의 대립에 의해 지배되었다(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 유교와 도교는 서로에게 기생하며 둘 모두 체계에 대한 모든 대안적 선택들을 가로막는다."(683쪽)  

이 부분도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식별하기 어렵다. 원문은 이렇다. "The ideological constellation in ancient China was dominated by the opposition between Confucianism (reliance on traditionaal customs, authority, and education) and Taoism (spontaneous self-enlightenment) - with the uncanny third position of 'legalists' rehabilitated by Mao Zedong, partisans of egalitarian revolutionary terror. In our perception, today's  ideological constellation is determined by the opposition between necconserverative fundamentalist populism and liberal multiculturalism - both parasitizing on each other, both precluding any alternative to the system as such."(349쪽) 

특이한 경우인데, 역자는 하이픈의 범위를 착각하여 두번째 문장을 엉뚱하게도 "(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고 괄호안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both'가 가리키는 것이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유교와 도교'가 돼버렸다. '둘다'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유교와 도교는'이라고 해놓았으니 명백히 오역이다.  

첫 문장은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배치는 유교와 도가였고, 법가가 '제3의 입장이었는바, 이 법가는 마오쩌둥과 혁명적 테러를 주도한 평등주의 빨치산(파르티잔)들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게 요지. '지지자'이라고 옮긴 '파르티잔'은 짐작에 문화혁명시 '홍위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사소한 거지만 지젝의 번역서들에서 종종 반복되는 오역을 지적하고 마무리한다. '오역'이라고 하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역이라고 할 만한' 사항이다. 바로 'arguably'를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라고 옮기는 것.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슈만의 피아노 대작인 '유모레스크'는 그의 노래들로부터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는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715쪽)에서 첫 부분은, "'Humoresque,' arguably Schuman's piano masterpiece"를 옮긴 것이다. 'arguably'는 '논쟁할 수 있는'이란 뜻도 되지만, 보통은 '주장할 수 있는' 쪽이다. 여기서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런 식이 아니라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라고 할 만한 '유모레스크'는",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한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arguably'는 모두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란 식으로 옮겨졌는데, 이야말로 'arguable'하며 나로선 불편하다(다른 책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덧붙여 말하자면, 문두 부사로 쓰이는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것도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덧붙여 말하자면'이 문맥에 적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령 아부 그라이브의 이라크 포로 학대가 미국식 하위문화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는 이런 대목.  

"군부대에서든 고등학교 교정에서든, 신고식이 과도하게 진행되어 병사들 또는 학생들이 인내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 수준 이상으로 다치게 되거나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거나 (동료들 앞에서 맥주병을 항문에 삽입하는 것과 같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수행하게 되거나 바늘로 꿰어지는 것 같은 추문이 발생할 때 우리는 미국 신문에서 정기적인 간격으로 유사한 사진들을 보지 않는가(그리고 우연히도 부시 자신이 '해골과 뼈'라는 예일 대학의 가장 배타적인 비밀단체의 성원이었으므로, 입회하기 위하여 그가 어떤 의식을 감행해야 했는가를 알면 흥미로울 듯하다)?"(720쪽)  

여기서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건 뜬금없다. 이 경우에도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혹은 '덧붙여 말하자면'이라고 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자주 등장하여 독서를 불편하게 하기에 맘먹고 털어놓는다... 

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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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급 서적일 수록 비평이 필요하군요.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의 경우 바른 것과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구별 능력이
부족합니다.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책에 대한 맹신으로)

원문-> 번역(한글,한자) -> 독자의 이해의 경우,
(심심하면 한자사전을 자주 본다는 김훈님의 말이 생각남)
한 독자가 원문에 대한 직독을 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번역에 해당됨.

외국서적에 대한 번역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 고급 텍스트를
번역하시는 분들께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로쟈님 덕분에 '비평과 번역'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어쩜 '곁다리'라는 말은 인문학의 대중적인 친근미를 더 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비전공자 입장에서)

제 맘속에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철학,문학,미술 등의 용어에 대한 공부 부족으로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구요.(사변적 동일성,,,등) 영어 단어는 알지만
문장으로 엮어지면 몰라버리는 경우와 같겠지만요

로쟈 님이 뒷 따르며 흘려버린 것을 운좋게 줍는다는 의미에 동감입니다.
한 책을 놓고, 독자의 의견과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비평이나 오류에 대한 수정은 독자에게 좋은 정보라 생각합니다.

조선 말, 일제, 6.25 등, 역사의 질곡을 거치면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많은 것같습니다. 어차피 인간 사회가 파란만장 하지만요.
분야별 더 좋은 번역서들이 많이 출판되도록 민.관으로부터 지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8-04 13:29   좋아요 0 | URL
네, 지원도 필요하고, 더 중요하게는 독자층이 늘어나야겠습니다...

목동 2009-08-05 07:23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서재5(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를 읽고서야 '~들어주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번역비평은 원한의 지평을 넘어서야 한다.'외 몇 문장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특히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읽기(~서재,391~405쪽)를 읽을 때는, 음~ 해체된 백제의 미륵사지서탑(국보11호)을 재건할때 느낄 만한 떨림과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수사반장처럼)

저는 '책세상'의 '릴케 전집'를 가지고 있는데, 꺼내 '비가'를 찾아 읽으려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제목이 다른지?)

자연과학에서 원문 번역과 인문학에서 번역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제(자연) 분야에 번역서들을 가끔 볼 때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하곤 했는데. 풍부한 언어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또한, 번역서 책값이 대체적으로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해가
되더군요.(제2의 창작)

로쟈 2009-08-05 21:40   좋아요 0 | URL
책세상판도 <두이노의 비가 외>라고 돼 있을 듯한데요...

푸른바다 2009-08-0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말하는 '신보수파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가 무엇인지 번역으론 와 닫지 않는군요^^ 이 경우는 우리나라에서의 어법을 볼 때 '민중주의' 보다는 포퓰리즘이 더 적절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근본주의'라 함은 조지 부시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말하는 것인가요? 암튼 네오콘과 미국 민주당간의 대립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제 이해가 맞는 지 모르겠네요. MB 정권도 어찌보면 근본주의적 포퓰리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사실 미국 민주당보다도 리버럴하지 않지만...

저도 시차적 관심은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로쟈 님과 더불어 조금씩 읽어가야 겠군요^^

로쟈 2009-08-04 22:50   좋아요 0 | URL
두어 장을 꼼꼼하게 읽으면 나머지 장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에 대한 지젝의 입장은 '상식'과는 좀 다릅니다.'민중주의'란 번역어는 번역본을 그냥 따른 것이구요...

seerblest 2009-08-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guably는 로쟈님 지적대로 오역이 맞습니다. 보통은 문장 전체를 수식하면서 "틀림없이"란 뜻으로 쓰이는 부사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이 아니라 (오히려) "논쟁의 여지(필요) 없이"가 더 정확한 본래의 뜻이죠. 따라서, "슈만의 걸작으로 뽑기에 손색없는 유모레스크" (혹은, 누구라도 슈만의 걸작이라고 손꼽을(주장할) 유모레스크)가 정확한 번역이겠죠. 부사로서의 arguably는 누구라도 기꺼이 그렇게 주장하듯이의 어감을 뜻하니까요.

로쟈 2009-08-04 22:49   좋아요 0 | URL
잘 정리해주셨네요. 짐작엔 형용사 arguable에 너무 의지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크레월드'라는 웹진 8월호의 '파워블로거'란에 '로쟈의 저공비행'이 소개됐다(https://www.creworld.co.kr/200908/intro/power_blogger.jsp). 얼마전 간단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기사에 일부 반영이 됐다. 옮겨놓으려고 하니 같은 폭의 봉지에 또다른 봉지를 집어넣는 듯하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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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다리, 곁가지 ,,, 마음에 듭니다.(가지를 쳐나가면 될 듯싶다.)
책을 버리며, 책읽는 법을 배울 것 같아요.

로쟈 2009-08-03 21:10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공부죠...
 

2-3년내로 쓰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을 세라'는 제목의 책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자기 반영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데, 그런 관심사에서 <책 읽는 뇌>(원제는 '프루스트와 오징어'이지만)나 뇌과학, 그리고 인지주의에 관한 책들도 조금 들춰본다(이 경우에도 내게 가장 유익한 건 지젝의 책들이다). 아무래도 조금씩은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맛보기로 삼자면 아래와 같은 '드루들'이 내가 생각하는 컨셉이다. 예전에 로저 프라이스의 <낚시질하는 물고기>(창해, 1994)란 책이 소개된 바 있는데,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폰카로 찍어 옮겨놓는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 드루들의 제목이 'Fish fishing', 곧 '낚시질하는 물고기'다.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끄럽게 굴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드루들(droodle)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시비를 걸었다. “왜 낚시바늘에 미끼가 달려 있지 않은가?” 혹은 “어떻게 낚시줄을 묶을 수 있었는가?” 등등. 그 대답은 이렇다. 이 물고기는 영리하므로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끼는 필요없다. 게다가 물고기를 잡는 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낚시질하는 그 자체에만 흥미가 있다. 이 드루들에 가까이 다가가서 잘 살펴보면, 낚시줄은 그 물고기의 할아버지가 단정하게 세로매듭으로 만들어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력과 은총>(1996)이란 책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고 나는 이렇게 적었더랬다. "'8월에 내리는 눈'과 같은 책, 나는 언젠가 그런 걸 쓰고 싶다." 8월이어서 문득 그 생각이 났다... 

09. 08. 02.  

P.S.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그 이후에 나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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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8-0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습니다...물고기도 8월의 크리스마스도..

로쟈 2009-08-03 17:38   좋아요 0 | URL
네, 휴가도 못갈 처지라 이미지만이라도...^^;

목동 2009-08-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낚시꾼은 가장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정하고
강물에 낚시 바늘을 담근다. (하얀전쟁/안정효)

로쟈 2009-08-04 00:26   좋아요 0 | URL
낚시도 좋아하실 듯한데요.^^

비로그인 2009-08-04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낚시질하는 물고기 그림과 약간의 글을 퍼갑니다.
 

시사칼럼을 하나 읽고 스크랩해놓는다. 국가와 법이 지배계급의 도구에 불과하며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MB정권은 입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뒷북성 주장이지만, 이런 정도의 상식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형편이어서 퍼나르기로 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에 이어서 MBC 접수 수순을 밟고 있는 MB정권은 계급투쟁을 어떻게 하는지 '지대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는 경구를 두고두고 확인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   

시사IN(09. 07. 25) 마르크스주의 테제를 입증하려는 MB 

옛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와 법을 지배계급의 ‘도구’로 파악했다. 이에 대하여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테제가 너무 단선적이라고 비판하며, 국가와 법의 ‘상대적 자율성’ 테제를 제시했다. ‘상대적 자율성’ 테제는 자본주의 국가와 법 제도 속에 들어 있는 인권 보호·노동 보호·사회복지 등을 위한 법제는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산물이기에, 이를 지키고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실천적 시사를 던졌다.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언급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행태 때문이다. 근래 이명박 정권은 ‘실용’을 내세우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정치·사회 세력을 ‘적군’과 ‘아군’으로 선명히 나누고 적군에게는 축출과 진압이라는 몽둥이를, 아군에게는 자리와 혜택이라는 꿀단지를 안기고 있다.

멀리는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기소, 가까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전격 감사와 황지우 총장의 교수직 박탈,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의 임기 전 사퇴 등의 일이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누리꾼, 촛불 시민과 언론인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속에서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 노동 보호와 사회복지 등 사회·경제적 기본권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대표 시민단체가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기존의 보조금도 끊으면서, 정권 옹위에 앞장선 정체불명의 단체에게는 다액의 보조금을 주고 프로젝트도 발주한다.

한편 정부와 집권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의 사유를 제한하지는 않고 그 고용기한만을 연장해주려 애를 쓴다. 임금이 낮고 통제가 용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많이 쓰기를 원하는 기업에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은 사먹어도 재래시장을 고사시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장을 막을 계획은 없다. 종부세·법인세·소득세 등 경제적 강자의 세금은 대폭 줄이면서, 간접세는 인상해 서민의 조세 부담을 높이고 있다. 거대 건설업체가 환호하는 4대강 개발사업은 이미 착수되었다. 지난주에는 집권당이 ‘날치기’라는 무리수를 써서 신문·방송 관련 법률을 통과시켜 정권 창출의 공신인 조선·중앙·동아 보수 언론사의 숙원을 해결해주었다.

권력이 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고 냉소를 보내고 말기에는 너무하다. 지배계급과 지지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계급의 도구’ 테제의 타당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려 하는 듯하다. 대립하는 계급 이익을 조정하거나 절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인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를 전 국민이 실감하게 하려는 모양이다. 미국 부시 정권의 구호인 “온정적 보수주의”에서 ‘온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구호인 “따뜻한 보수”와 “따뜻한 시장경제”에서 ‘따뜻함’을 찾기란 무망(無望)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통합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자기 길을 분명히 선택했다. 강자와 지지자를 위해서 철두철미 봉사하고, 반대자는 강경하게 억누르며, 약자에게는 립 서비스 수준의 위로와 빵 부스러기 수준의 배려를 베풀기로. 그러나 이 순간 기세등등, 환호작약하는 집권 세력에 당 태종의 명신(名臣) 위징(魏徵)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역풍’의 기운은 벌써 느껴지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해 오만방자해진 이명박 정권의 일방통행은 필연적으로 ‘거리의 정치’를 불러올 것이다.

서민 대중과 진보와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왔다. 대의민주주의의 규정력(規定力)은 강력하다. “정권 퇴진”이 구호로 나오고 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투표를 통하여 선출된 정권을 임기 전에 퇴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은 이명박 정권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어떠한 정권과 정책, 그리고 어떠한 집권 전략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안경환 교수의 인권위원장 퇴임사를 되새겨본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좀 더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조국_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9.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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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09-08-02 17: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랜만에 들립니다. 건강하시죠?^^ 글에 공감하지만, '칼을 벼리기'보다는 반성부터 해야 할 듯 싶은데요...

로쟈 2009-08-03 17:39   좋아요 0 | URL
적이 코앞에 있어서 '반성부터'는 어려울 듯하고요, '반성도 하면서'라고 해야겠어요.^^;

목동 2009-08-03 06:26   좋아요 0 | URL
책의 겉표지는 이 대통령님의 글씨체인듯 한데요?

이 대통령님 콧날의 옆모습을 보셨던 가요?
그 분의 콧날 아래에 반듯하게 다문 입 모양에서 지긋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냉탕과 온탕이 분명하듯, 포화가 쏫아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히 대처하는
전사의 분명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무엇을 알고싶은 사람이, 첫 번째 사람에게 무엇을 물었을 때,
두 번째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경우, 묻는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을 왕따
시키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느끼는 배신감.

박지성이 아인트후벤에서 뛸때 득점력이 떨어지자 관중은 야위합니다.
'지성'이 관절 수술 후 회복되어 득점력이 늘자 관중은 곧 '지성~'를 노래합니다. 그때 '지성'은 배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스포츠의 냉정함.

냉엄한 현실속에서 무언가를 원안대로 해내야 하지만 왜곡될 수 밖 없는 것들을 상상합니다. 함께한 집단의 특성이 자신의 몸에 냄새처럼 스며있습니다.

영부인이 준비한 식탁의 음식들을 맛있게 드신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공간이 다르지만 속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로쟈 2009-08-03 17:40   좋아요 0 | URL
국민과 민심을 '적'으로 간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