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의 <신화 이론화하기>(이학사, 2009)에 대한 소개를 옮겨놓는다. 서점에서 두어 번 손에 들었다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놓았던 책이기도 하다(언제 읽겠는가란 생각도 물론 했고). 필자는 공역자의 한 사람인 김윤성 교수로 <거룩한 테러>(돌베개, 2005)의 역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신화 이론화하기>는 <거룩한 테러>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교수신문(09. 09. 21) 신화와 신화학, 낭만적 몽상에서 비판적 직시로  

한때 신화는 ‘성스러운 이야기’였다. 적어도 20여 년 전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1906~1986)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던 당시엔 꽤 많은 이들에게 그랬고, 적지 않은 이들에겐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엘리아데와 그 독자들에게 신화란 우주와 인간을 있게 한 태초의 시원적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서, 거듭 공연됨으로써 우주와 인간을 태초로 회귀시켜 재생시키는 성스러운 드라마, 즉 의례의 대본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신화의 성스러운 후광은 바랬다. 세상이 세속화돼서가 아니다. 불변의 본질적 실체로서 성스러움은 없다는 생각이 힘을 얻은 탓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엘리아데의 후배 동료인 시카고대 종교학자들만 보아도 충분하다. 조너선스미스에게 신화란 이상과 현실의 틈새로 인한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려는 일상적 담화 놀이다. 엘리아데를 독창적으로 계승한 덕에 엘리아데 석좌교수가 된 웬디 도니거조차도 신화란 특정 집단에게 성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시카고대의 가장 젊은 50대 후반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은 더 나아간다. 그는 성스러움에 관한 엘리아데식의 존재론, 스미스식의 인식론, 도니거식의 수용론을 다 거부한다. 그의 입장은 굳이 부르자면 성스러움의 권력론쯤 되겠다. 그는 엘리아데의 제자지만,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람시, 바르트, 푸코 등을 취하면서 낭만적 몽상가인 스승의 그늘을 벗어났다. 그는 엘리아데가 청년 시절에 루마니아 우파 민족운동에 가담했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인 자신의 생각을, 유대인 제자의 말을 경청해준 따뜻한 스승으로서 기억하고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링컨은 엘리아데의 학문에서는 배운 것도, 취할 바도 없다고 씁쓸히 고백한다.

스승 엘리아데의 낭만적 신화와 결별
스승 엘리아데와 제자 링컨의 차이는 링컨이 신화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신화란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한다. 짧지만 빛나는 이 문구에는 분류체계에 대한 뒤르케임과 모스의 통찰, 허위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지배와 저항의 헤게모니에 대한 그람시의 감각, 대립쌍의 향연인 사고 구조를 꿰뚫는 레비스트로스의 시선, 이차적 의미작용의 기호체계를 파고드는 바르트의 기민함, 권력과 담론의 그물코를 파헤치는 푸코의 열정이 모두 녹아있다. 링컨의 이런 신화 이해가 신화를 성스러운 이야기로 보는 엘리아데의 낭만적 신화 이해와 만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둘 사이의 심연에는 다리가 없다.  

링컨의 책 『신화 이론화하기』는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로서 신화 텍스트를 분석하고, 동시에 그런 텍스트를 다루는 또 다른 서사 형식의 신화로서 신화학의 역사를 해부하는 더블플레이다. 1부에서 링컨은 우리를 고대 그리스인들의 텍스트로 초대한다. 사실 그의 논의는 매우 단순하다. 뮈토스와 로고스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이 본래부터 비이성과 이성 따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는 오랜 담론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느린 변화 결과다. 이 과정을 추적하는 그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이성의 진보 덕에 로고스가 뮈토스를, 이성이 비이성을 이겼다는 식의 근대주의적 승전보 따위는 던져버리게 된다.

2부에서 링컨은 근현대 신화학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신화학은 그 연구대상인 신화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게 그의 논지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신화가 민족 정체성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이렇게 재발견된(날조된) 신화는 자민족중심주의와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림 형제의 민담학과 바그너의 오페라와 저술을 비롯한 숱한 신화와 신화학 담론이 링컨의 손안에서 그 은밀한 이데올로기를 폭로 당한다. 이어서 링컨은 니체에게서훗날 나치가 반기게 될 아리아주의의 원형을, 동양학자 존스에게서는 단일한 인도-유럽에 대한 착각을, 신화학자 뒤메질에게서는 우파주의와 반공주의를 들추어낸다. 3부의 첫 장에서 링컨은 좀 더 최근의 신화학을 개관한다. 그는 엘리아데에 대해서는 잠시 예우를 표한 뒤 접어두고, 대신 레비스트로스에 주목한다. 그의 구조적 방법은 계급, 젠더, 인종의 차이에 대한 감각과 이데올로기 작용에 대한 통찰로 보완하면 꽤 유용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어서 그는 고대 아일랜드 서사시에서는 젠더를 자연화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고대 그리스 텍스트에서는 사상 그룹들 간의 위계 다툼을, 고대 점술 텍스트에서는 종교 집단들 간의 경쟁을, 고대 북유럽 서사시에서는 상업자본주의의 전조를, 고대 조로아스터교 경전에서는 피억압자의 목소리를, 존스에게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욕망을, 또 그 주변의 인도인들에게서는 유쾌한 전복과 저항의 몸짓을 읽어낸다.

학문 진정성 보여주는 통렬한 논평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링컨의 분석을 따라가는 것은 고되지만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즐거운 책읽기를 약속한다. 특히 흥미로운 건 결론에서 ‘신화로서 학문’을 논하는 부분이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 학문 역시 신화, 즉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그것은 각주 달린 신화다. 각주를 사기극의 수단으로 삼거나 아니면 각주를 지식 횡포로 매도해 치워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각주와 학문성에 대한 링컨의 논평은 통렬하다. 각주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각주로 사기를 치거나 각주로 학문의 진정성을 지켜내는 상반된 사례들에 대한 분석은 학문에 필요한 정직성, 성실함,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신화 이론화하기』 읽기는 강 건너기다. 일단 한 번 건너가면 돌아올 수 없는 강. 물론 꼭 건너가야 할 당위는 없다. 싫으면 돌아서면 그뿐이다. 상상, 꿈, 실존, 의미, 성스러움 같은 기표들이 넘실대는 신화 정원의 낭만적 풍요는 등 뒤에 그대로 있다. 하지만 낭만적 신화 담론의 달콤한 향취에 신물이 났다면 과감히 링컨과 함께 강을 건너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링컨을 번역한 것은 이 책이 두 번째다. 나는 엘리아데를 통해 종교학에 입문했지만 마르크스와 푸코를 읽으며 링컨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금은 강 저편의 지난날보다 이편의 지금이 더 행복하다. 낭만적 몽상은 추억이 됐지만, 강 이편에서 이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냉철한 직시의 즐거움을, 정직하고 성실한 분석의 흥분을, 학문하기의 진정한 열락을 비로소 맛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0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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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9-23 19:50   좋아요 0 | URL
고교독서평설 에서 로쟈님이 쓴 데미안 비평 글 잘 봤습니다.

학창시절 허영심에 몇 번 사보던 책이었는데 ^^

인물과사상 9월호에서 서민 교수도 로쟈님을 언급하는데 반갑더라구요

건필하시길!

로쟈 2009-09-23 20:06   좋아요 0 | URL
데미안에 대해서 하나 더 쓰고 있습니다.^^; 마태우스님 글은 저도 봤습니다.^^ 편집자가 보여주더라고요...

목동 2009-09-24 13:28   좋아요 0 | URL
아침에 독서평설에서 로쟈님의 글(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을 그리다)을
읽었습니다. 좋더군요. 헷세의 '알'이 오늘의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중,고시절에 '데미안'을 읽었다면 성인이 되
어서도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우리가 유독 잘 흡수한 것들
에 대해 말씀처럼 연구(비평)할 필요하겠습니다.

로쟈 2009-09-24 19:23   좋아요 0 | URL
독서평설도 챙겨 읽으시네요!^^

목동 2009-09-25 00:18   좋아요 0 | URL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학문 역시 신화, 즉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다" 등은 "꿈보다 해몽이 좋다"와 "헛소리" 등을 연상케 합니다. "모든 끈나풀은 허공에 메달릴 수 없다"는 것과 "이 끈이 지상을 묶는 살아있는 뱀"에 사로 잡힌 느낌. 본능같기도 하고요.

로쟈 2009-09-25 20:51   좋아요 0 | URL
신화에 대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발언을 해 '설화'를 빚고 있는(더불어 자신의 인지도를 확연히 높인)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란 요구 자체는 본인의 발언 의도와 무관하게 전체 노동자의 새로운 연대를 위한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전도된 형태로서 이 '비정규직화'는 '정규직화'와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전체 노동자의 단일대오!). 그것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라는 효과적인 노동자 계급 통제수단을 기꺼이 포기(?)하는 반자본주의적 발상이며, 뒤집어 말하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사회주의적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발언 당사자나 현 정부가 그런 정책을 실행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사회주의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비전이 아니라 역량이다...    

경향신문(09. 09. 22) “박기성씨, 모든 노동자 비정규직화 주장”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 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노동 3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반노동 발언을 해왔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원장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원들과 점심식사 중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 공·사석에서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반노동 발언을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난 17일 노동연구원에 대한 국정 정무위의 2008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 심의에 출석, “사석에서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게 소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유 의원의 질문에 “사석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저는 그게 소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박 원장은 2007년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동 저서에서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한국노동연구원에 산별교섭 참가를 요구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원칙이고, 산별노조는 인정할 수 없으며 내 학자적 양심이자 소신”이라면서 거부했다.

유 의원은 “박 원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연구소장이라면 반노동 언동을 이해할 수 있으나,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장으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노동 3권은 국민주권의 핵심요체”라며 “헌법체제에 도전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후안무치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이인숙기자) 

0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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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23 08:44   좋아요 0 | URL
저도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 로쟈님과 비슷한 생각도 했답니다^^

로쟈 2009-09-23 17:45   좋아요 0 | URL
사실 허풍이어서 문제죠. 그럴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목동 2009-09-23 15:25   좋아요 0 | URL
머릿속 삽자루!

로쟈 2009-09-23 17:47   좋아요 0 | URL
'반노동'이니 삽자루도 아닌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0:30   좋아요 0 | URL
전 그저 놀라웠습니다.
그 직함과 발언의 부조화에 --;;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노동부 장관의 행태에서 익히 보아온 것인데요.^^;

빵가게재습격 2009-09-23 11:44   좋아요 0 | URL
그래도, 편견과 오만을 솔직히 말하는 '정직함'은 있군요. 입만 열면 '거짓말'인 파란지붕 사람들로서는 놀라운 인물기용인데요. 오랜만에 들립니다. 로쟈님 안녕하세요?^^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원장은 비정규직인지 궁금합니다...

빵가게재습격 2009-09-23 20:07   좋아요 0 | URL
원장이 비정규직이 아니면 정직한게 아니라 패러독스가 된다는 뜻인가요...'모든 그리스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로쟈 2009-09-23 20:05   좋아요 0 | URL
솔선수범한다면야 욕할 이유는 없겠죠...

이진이 2009-09-24 13:00   좋아요 0 | URL
노동연구원 선배한테 물어보니 연구소장은 3년계약의 비정규직이지만 전용차제공등 최상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네요. 글고 짤리면 다시 교수로 돌아가면 되니 tenure 보장 받는 정규직으로 돌아간답니다. 쿨럭~
근데 비정규직은 2년계약후 정규직 전환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3년 비정규직이면 실정법 위반 아닌가...

로쟈 2009-09-24 16:24   좋아요 0 | URL
대학의 비정규 박사처럼 그것도 예외적 비정규직인가 봅니다.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philocinema 2009-09-23 12:02   좋아요 0 | URL
생각과 발언이 일치하는,
가면을 쓰고 위장하지 않는,

이 시대 보기 힘든 솔직하신 분이군요!

그의 가문 문턱위 벽면엔 이런 액자가 폼 나게 걸려있을듯,

"너의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가감 없이 얘기하라!"

로쟈 2009-09-23 17:38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 발언만큼은 사회주의적입니다. 저는 스탈린시대 강제적인 농업 집산화를 떠올렸어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2:41   좋아요 0 | URL
어쩜 바로 제생각입니다.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없으면 비정규직 차별도 없을테고 정규직들의 무능과 횡포도 해결할 수 있겠죠. 모두가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가 되는거져!!!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4:21   좋아요 0 | URL
일단 국회의원이랑 대통령부터 비정규직화했으면 합니다!

게슴츠레 2009-09-23 12:54   좋아요 0 | URL
일전에 몇몇 분에게서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더랬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꿈꾸던 그러한 사회가 아니냐고 농반진반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재밌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으로 어떻게 생물학적/사회적 생존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등, 로쟈 님이 '역량'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의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그럴싸한 레토릭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발상의 참신함에 미소짓기에는 약간의 쓸씁함이 들어 사족을 달아 보았습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7:17   좋아요 0 | URL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 이라는 말은 언제나 불가능합니다. 누가 누굴 보장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도가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사는 세상 설계.. 불가능한가요?

로쟈 2009-09-23 17:37   좋아요 0 | URL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면 '비정규직 독재'도 가능한 '혁명적' 상황인 것이죠. 문제는 밀어붙일 능력이 없다는 것이구요...

카스피 2009-09-23 19:35   좋아요 0 | URL
사실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을 두는 것부터 우습지요.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군 정규직,누군 비정규직입니까.근로자들도 은근히 차별을 인정하는 것 같더군요.

로쟈 2009-09-23 20:04   좋아요 0 | URL
그게 핵심이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정규직 노조 같은 '분열'을 키워주니까요...

hereisnt 2010-01-18 13:24   좋아요 0 | URL
저 책 일괄적으로 받았는데 읽어야 되나 내내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않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지면서
저런 사람이 노동연구원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무거워 집니다.

로쟈 2010-01-19 09:56   좋아요 0 | URL
이후에 아마 사직한 걸로 압니다...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인 <법률>(서광사, 2009)이 박종현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예고는 돼 있었지만 그래도 놀랍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고 예상보다 두툼하다. <국가>(증보판 2005) 이후의 노작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론 승계호 교수의 플라톤 연구서를 읽어보고 싶어서 <법률>의 번역서를 찾은 적이 있는데, 예전에 나온 적이 있지만 아마 중역이었을 듯싶고 도서관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번에 번듯한 번역서가 출감됨으로써 <고르기아스>에서 <국가>를 거쳐 <법률>에 이르는 플라톤의 여정을 '재발견'할 수 있을 듯싶다. 몇 개월은 잡아야 할 여정 같지만. 반가운 마음에 리스트를 만들어둔다(<플라톤 다시 보기>는 박홍규 교수의 신랄한 플라톤 비판서이다). 한편으로, 영어나 러시아어 본은 모두 온라인에 공개돼 있는데 우리는 아직 고가의 번역본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인문학 여건의 '격차'를 말해주는 듯싶기도 하다...

 

P.S. <법률>에 대한 리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78766.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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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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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9-22 15:21   좋아요 0 | URL
플라톤은 이상적인 통치자가 없을 때 차선책으로 <법률>의 필요성을 강조했죠. 누구든 이상적인 지도력을 펼친다며 착각한면 독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가>의 명예훼손에 대한 <법률>소송 등,,,

로쟈 2009-09-23 18:43   좋아요 0 | URL
네, 한데, 법치주의가 좀 묘하긴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자에는 자로>에서 그려놓은 것처럼요...

푸른바다 2009-09-22 18:02   좋아요 0 | URL
방대한 <법률>이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군요. 박종현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화이트헤드는 <법률>을 플라톤의 만년의 범작으로 평가절하하지요... <고르기아스>는 번역본이 있던가요? 서양 인식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테이이테토스>는 번역된다는 소문도 없는 것 같네요^^

로쟈 2009-09-23 18:43   좋아요 0 | URL
<고르기아스>는 옛날 번역이 있는 걸로 알아요...

2009-09-23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3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외부 강연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번주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겸 감독 정성일씨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인터뷰어는 김혜리 기자. 데뷔작 <카페 느와르>에 관해 검색해보니 베니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내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일반개봉될 예정이라 한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 17분이다. 이 '리얼 시네필'의 영화세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은 주말에나 링크해놓아야겠다). 

뉴스엔(09. 09. 17) 영화평론가 정성일 감독데뷔작 베니스영화제 호평 

영화평론가 출신 연출자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영화 ‘카페 느와르’(제작 영화사 북극성)이 지난 12일 폐막한 제6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상영을 마쳤다. 비록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비평가 주간 섹션에 진출한 ‘카페 느와르’는 관객의 열띤 호응과 관심을 받았으며 상영 후 관객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런 관객들의 관심도가 현지 언론과 관계자들의 눈길을 더욱 잡아 끌게 했다. 독특한 형식미와 영화 곳곳에 감독이 의도한 기발한 정치적 의미들로 인해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걸작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 브르노 토리는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영화다”, 선정위원 안토 줄리오 맨치노는 “신인감독 작품으로는 보기 힘들 걸작이다”, 부위원장 겸 선정위원 프랑체스코 디 파체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를 발견한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영화다”고 호평했다.

한편 ‘카페 느와르’는 오는 10월8일 개막하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도 진출한 상태. 이는 베니스 영화제의 비평가 주간 섹션 진출에 이어서 두 번째 국제영화제 진출이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은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뽑아 상영하는 섹션으로 매년 그 해에 화제와 관심을 받은 한국영화가 초청됐다.

2008년 제13회에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등이 상영됐다. ‘카페 느와르’는 이번 부산 영화제를 통해 첫 국내 상영을 할 예정이어서 영화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카페 느와르’는 슬픈 사랑에 중독된 영수(신하균)와 그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 미연(문정희), 그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또 다른 미연(김혜나) 그리고 영수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만나는 선화(정유미)와 은하(요조), 다섯 사람의 사랑을 그린다.(홍정원기자)  

09. 09. 21.  

P.S. 기사의 마지막 문단 정도가 내가 얼추 들었던 영화의 줄거리인데, 인터뷰를 읽어보니 영화는 1,2부로 구성돼 있고 1부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기초한 것이라면 2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 토대한 것이라 한다. 감독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화의 시작점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의 초점은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베르테르>에 나타난 계급 갈등이라고("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란 이런 걸 가리키겠다). 영화의 두 부분은 어떻게 관련되는가? 

"아주 상투적으로는 두 부분은 각기 삶과 죽음입니다. 1부의 원작은 괴테의 18세기 독일 이야기(<베르테르>), 2부의 원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19세기 러시아 이야기(<백야>)예요. 즉, 혁명 전 유럽과 혁명 뒤 러시아죠. 한쪽이 액추얼한 가능성이라면 다른 하나는 버추얼한 가능성이죠. 주인공 영수를 따라가면서 두 개의 시대정신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어느 쪽에 마음을 기댈지는 관객의 선택이에요. 저는 우리 시대가 정치나 자본주의에 대해, 자기의 삶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발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 중간에 브레이크를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갖고 영화를 봐도 좋겠다. 참고로 영화의 부제는 '세계 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다.'이 영화를 이렇게 보아주세요'라는 가이드라인인데, 감독의 표현을 빌면, 이 영화를 볼 때는 '교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고. 나로선 좋아하는 배우 정유미의 출연작이기도 해서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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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27 23:34 
    '라캉'으로 검색을 하니 제일 먼저 뜨는 기사가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카페 느와르>에 대한 소개평이다. 안 그래도 뒤늦은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번 보고 싶던 차였다(지난주에 언론시사회가 있었고, 오늘은 VIP시사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참에 스크랩해놓는다.       무비스트(10. 12. 27)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감독으로
 
 
philocinema 2009-09-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어달전 홍상수 감독 '극장전'의 DVD를 관람하던중
comentary를 진행하던 정성일씨의
영화에 대한 놀라운 관찰과 깊이 있는 분석을 들으면서,

안 그래도 평소 그의 글에 매료되었던 저는,

'정성일씨가 직접 영화를 찍으면 어떤 영화가 될까'라는 설레이는
상상을 해보았었는데, 그의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예정이라는 소식은
가슴을 쿵쾅거리는 설레임을 안겨 주는군요!

그런데 과연 그의 영화를 개봉해줄 개봉관이 충분할지를 생각해보면 암울합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선 올 봄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단 한군데의 멀티플렉스에서 딱 1주일만 걸고 내렸는데,
그나마 홍감독은 재야의 이름값이라도 있지...

여하튼 정감독의 영화를 대전서 개봉 않는다면
다른 지역에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입니다.

PS: 극장에서 이미 보았지만 또 보고 싶고
관심 있는 주위 사람과도 영화를 나누고 싶어
주문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DVD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오늘 퇴근후 아내와 다시 보려합니다.
기다려집니다.


로쟈 2009-09-21 18:5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중성이 강한 영화는 아닐 텐데, 상영시간도 길어서 정말 몇 개 극장에서나 개봉될 거 같아요...

마노아 2009-09-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데 혹시 카테고리 정리하셨나요? 뭔가 좀 사라진 느낌이...

로쟈 2009-09-21 18:43   좋아요 0 | URL
요즘 정리할 시간도 없는데요.^^;

마노아 2009-09-21 19:3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서재지수는 떨어졌어요. 그래서 글을 숨겼나 했지요.^^

로쟈 2009-09-21 20:23   좋아요 0 | URL
마이리스트의 카운트가 잘못 돼 있는데요...

목동 2009-09-2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을 비슷듬히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어디를 향할까요?
아, 쓸어지는 그녀(진보)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소주에
취해 깃발같은 꿈을 포기하지나 않았을까요? 혹시 어디 숨긴
권총을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요!

로쟈 2009-09-21 21:39   좋아요 0 | URL
<백야>에 권총 얘기는 안 나오는데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 저도 좋아하는 배우예요. 정성일 교수도요. 그의 <영화의 이해>를 수강했던 적이 있답니다. 무려 15년 전 일이네요. 김혜리 기자 인터뷰 좋죠. 어쩌면 그리 되는지~

로쟈 2009-09-21 21:38   좋아요 0 | URL
첫 평론집까지 출간된다고 해서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굴까 2009-09-2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평론가가 드뎌 입봉을 하셨군요. 예전에 정성일씨가 쓰신 KINO 의 평론들의 현학적(?)인 표현에 좌절했던 기억이 있군요...너무 어렵게 쓰셔서..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라깡의 어법으로 말하면.... 구조화 되어 있다"..뭐 이런식..ㅠㅠ 물론 로쟈님이 보시면 다 이해하시 겠지만.... 영화도 왠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로쟈 2009-09-25 20:53   좋아요 0 | URL
네, 비문도 가끔씩 나오죠. 그래도 그만한 열정(이면서 순정)을 가진 평론가는 반세기에 한명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월요일자 '책읽는 경향'에 소개되는 책이 오래전에 읽은 톰 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열화당, 1977; 아트북스, 2003)이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미술관련서를 가끔씩 챙겨놓지만, 책을 손에 든 지는 좀 된 듯하다. 그림책을 보면서 휴일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경향신문(09. 09. 21) [책읽는 경향]현대미술의 상실  

<현대미술의 상실>(톰 왈프·열화당)은 학창시절 교내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터라 ‘상실’이라는 제목에 유독 마음이 닿았다. 문고판의 이 얇은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술이론에 끌려가는 현대미술에 대한 야유와 독설이 가득 차 있었다. 책을 볼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저자의 쉽고도 정확한 비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이 책은 원제 'The Painted Word'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론’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다. 또한 미술과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미술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작동되고 견인되는 것에 대한 지적과 개탄이기도 하다.   

이따금 다시 책을 펼칠 때면 깔끔한 정장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자의 사진을 접한다. 그 사진은 1997년 작고한 미술평론가 고(故) 이일 선생을 생각나게 한다. 장안의 멋쟁이로 통했던 이일 선생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른바 잘 읽히는 비평문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분을 통해 미술비평과 이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결국 그분이 학과장이었던 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졸업 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선생께 청탁한 전시도록 서문이 그분 생전의 마지막 원고가 되었다.

다양한 비평문과 평론집을 매일처럼 접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글들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오래 살아계셨으면 하는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선생의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이 마냥 그립다.(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09. 09. 20. 

P.S. 미술 작품 자체보다 미술 이론이나 비평이 더 득세하게 된 시대가 말하자면, 톰 울프가 진단하는 '상실의 시대'인데, 대략 그린버그의 모더니즘과 액션 페인팅 이후이다. 아서 단토의 표현을 빌면 그 '상실의 시대'는 '예술의 종말 이후' 시대이면서 '철학하는 예술'의 시대이기도 하다. 

    

소위 '이론 이후' 미술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구해놓은 책이 몇 권 있는데,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와 마크 치담 등의 <미술사의 현대적 시각들>(경성대출판부, 2007) 등이 그것이다. 다시 검색해보니  겐 도이의 <미술사의 유물론적 이해>(경성대출판부, 2007)도 흥미롭겠다.  

 

덧붙이자면 키스 먹시의 책 두 권 <이론의 실천>(현실문화연구, 2008)과 <설득의 실천>(경성대출판부, 2008)도 챙겨놓기만 하고 아직 손에 들지 못한 책들이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다닐 수 없는, 할 포스터 등의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07)는 내 집 마련 이후에나 소장하려고 하는 나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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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이라 하면 내포한 '의미'로 체계적인 해석과 주장일테고, 반대로 '무의미 하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것과 통할 것 같습니다. 미술이 미술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니면 서로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호성이나(위장성) 희귀성 때문이겠지요. 현대미술에 대해 편히 읽을 수 있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조영남/한길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미술로부터 위안(순수한)을 얻어 개인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로쟈 2009-09-21 18: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한데, 그게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필연적이기도 한 듯해요...

목동 2009-09-22 21: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빈틈이 없으세요...

2009-09-2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nousee 2009-09-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미술하면서 이 블로그에 가끔씩 접속해 제게 밀린 소개글들 읽는 것이 소중한 시간인데 저 기사를 보면 도무지 미술은 없으면서 있는 척한다라고만 싸잡아 얘기하고 싶은 분위기로 얘기되는 거 같아 조금은 실망스럽네요.. 쿤데라가 말했듯이 '설명할 수 없는 것' 앞에서의 놀라움이 창작의 이유라고 한다면 그걸 설명하는 비평가들의 헛다리와 창작을 혼동하는게 반복되는 느낌이 들때도 있구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미술가가 조영남이라는 사실이 조영남의 화투그림이 좋은거라는 건 딴 얘기아닌가요? 그리고 이일 선생은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답게 주례사비평의 원조님이시기도 하지요...쉬운게 좋은 거고 좋은게 좋다는게 전 싫네요...

로쟈 2009-09-25 20:50   좋아요 0 | URL
이일 선생이 그러셨군요.^^ 사실 저는 톰 울프의 책이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대신에 단토의 책들을 좋아합니니다.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말'이 전공이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