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뜨인돌, 2009)를 보면, 끄트머리에 저자가 책에 관한 자신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책은 버리지 않는다, 빌리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자칭 '애서가'라고 해도 버린 책들이 몇 박스쯤 되고, 빌려주었다가 분실하거나 돌려받지 못한 책들도 꽤 되는 형편인지라 그의 '원칙주의'가 일면 부럽다. 책을 내버리지 않아도 좋을 만한 소장 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책을 빌리지 않아도 좋을 만한 재력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니까. 그는 집에 1만 5천 권 가량을 소장하고 있고, 별장에도 그 두 배를 소장하고 있다니까 대략 장서수가 4만 5천 권은 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 장서가의 기준이 어찌 되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면 도서관 규모이고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에 견줄 만하다.   

그런 나루케가 수만 권의 장서 가운데 손꼽는 책이라면 분야에 관계없이 눈길이 갈 만한데, 역사서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이야기>, 그리고 이와나미 서점에서 나온 <일본역사> 시리즈 등이고 경제서로는 노나카 이쿠지로의 <실패의 본질>, 마이클 포터의 <국가 경쟁 우위>가 필독서라고(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도 이들 경영서와 나란히 언급되고 있어서 이채롭다). 그렇듯 특별히 필독서로 거명되고 있어서 노나카 이쿠지로와 마이클 포터의 책을 검색해봤다. 내가 경영학에 과문해서 그렇지 세계적인 경영학자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노나카는 '지식경영', '지식창조경영'을 주창한 경영학자로 이름이 높은 모양인데, 찾아보니 개인적으론 레스터 서로 등과 공저한 <지식사회의 미래>(매일경제신문사, 2001)에서 한번 대면해봤을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지식'이란 주제로 자료조사를 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지식경영의 시대>(시그마프레스, 2003), <노나카의 지식경영>(21세기북스, 2009) 등 다수의 책이 국내엔 소개돼 있다. 나중에 다시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손에 들어봄 직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석학'이라는 마이클 포터의 책도 나루케가 언급한 <국가 경쟁 우위>(21세기북스, 2009)를 비롯하여 '전략 3부작'이 모두 소개돼 있다. <국가 경쟁 우위>는 1135쪽 분량에 액면가가 6만원인 책이다. 이런 별세계도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지만, 세일즈포인트로 봐서는 알라디너들과 거의 무관한 책인 듯싶다.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마이클 포터는 ‘현대 글로벌 경제에서 지속적인 번영의 원천은 무엇인가’ ‘왜 어떤 국가의 특정 산업은 성공하고 다른 국가의 특정 산업은 실패하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주요 10개국을 대상으로 4년여의 기간 동안 해당 10개국의 책임 연구자 40명 이상과 함께 100개가 넘는 산업을 면밀히 연구 조사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특정 산업에서 경쟁우위를 촉진하는 국가의 특징을 갈무리하고, 그 연구결과가 기업과 정부에 주는 시사점을 담았다. 

나는 별로 읽을 일이 없지만, 한국의 관료들은 이런 정도의 책은 읽어주는지 문득 궁금하다(국민의 권익보다 미국 쇠고기 회사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관료들 말이다). 

나루케의 책 덕분에 일본의 대표적 독서가인 다치바나가 생각이 나서 낮에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살도 안되는 100권>(청어람미디어, 2008)도 대출해볼까 했지만 소장도서가 아니었다. 대신에 들고 온 건 기타노 다케시의 책 두 권,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북스코프, 2009)와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씨네21북스, 2009). 기타노 다케시의 일본론을 읽고 나면 다치바나 다케시의 일본론 <멸망하는 국가>(열대림, 2006)를 읽고 비교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루케는 책을 빌려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책을 비롯해서 일본 저자들의 책은 대출해서 읽기에 딱 좋다(가라타니 고진이 예외적이다). 어렵지 않고 명쾌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서 범주에 드는 것도 아니기에 오래 품고 있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읽은 책은 기타노의 <생각노트>인데, 내가 알고 있는 비트 다케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책이다. 특히 "노력해도 안되는 놈은 안된다"(좋게 말하면,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고 말하는 그의 교육론은 오타쿠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과 맞물려 제값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통념에 불편해 한다("시민 마라톤 같은 데서 간신히 완주한 정도를 가지고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건 오버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도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동네 마라톤 수준의 기록만 나오는데 요란하게 칭찬하는 것도 꼴사납다."). 가령, 그가 오타쿠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내용은 음미해볼 만하다.     

"어찌된 일인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됐다, 그래서 포기한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자신을 칭찬하고 오히려 자기만족을 함께 끝을 내다니! 넘버원이 아니라도 좋으니 온리원을 지향하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상당히 묘한 논리다. 온리원이 되라는 것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 즉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귀찮고 번거롭게 경쟁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즉 '온리원'이라는 생각은 '경쟁상대가 아무도 없는 세계를 찾아내면 당신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최고를 좋아한다. 하지만 경쟁이 없는 세계에서 최고란 건 있을 수 없다. 정말로 의미 있는 일에서 오직 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는 놈이 있으니까 이기는 놈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기는 싫으니까, 자기 자식에게 지는 걸 인정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노력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느니 하면서 아이들에게 온리원이 될 수 있는 세계를 찾으라고 말한다. 경쟁을 부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최고라는 것에 연연한다. 그러니 오타쿠가 늘어나는 것이다. 경쟁 상대가 적은 세계에 틀어박혀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사람이 오타쿠다. 제대로 된 세계의 제대로 된 경쟁은 한심하다고 하면서 부정한다. 사실은 지는 것이 싫고, 상처 입는 게 싫은 것뿐이면서."(81-82쪽)  

인용한 대목에서 기타노 다케시다운 보수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진짜 보수'다(손을 써서 아들의 병역을 면제시켜주는 게 아니라 일부러 해병대에 보내는 보수 말이다). 김훈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나란히 비교해봄 직하다. 기회가 되면 '김훈과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지만, 일단 힌트만 주자면 둘다 자연사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태어나서 서로 경쟁하며 먹고 살고 짝짓기하다가 죽는 것이 자연사적 삶이고 인간의 삶이라는 것. 그런 생각이 잘 피력돼 있는 김훈의 에세이집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2009)가 이번에 재출간됐지만, 기타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레 김훈을 떠올렸다.  

"연어나 철새, 고래 등은 출산을 하기 위해 무지하게 가혹한 여행을 하는 종이다. 인간에 이르기까지 긴 진화과정 어느 쯤에 인간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언젠가 플로리다 앞바다의 해저를 끝없이 헤엄치는 새우들의 행렬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산란기의 새우들이 엄청나게 떼을 지어 밤을 틈타 일제히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를 안 물고기들이 새우들의 대열을 덮친다. 새우들은 동료들이 잇따라 죽어나가고, 물어뜯긴 다리가 너덜너덜해져도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갔다. 마치 죽음의 행진 같지만, 그래도 새우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은 단 하나,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느라면 논리를 떠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도 저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지 하는 옛 생각이 들어서다."(80-81쪽)   

그런 관점에서 기타노는 편하게 얻을 수 있는 안락과 행복에 대해서 근심한다(<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다룬 바 있지만,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표현을 쓰자면 인간은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단골식당 주인 구마 씨가 요즘 아이들은 "뭘 먹고 싶니?"하고 물어도 "아무 거나요"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라고 하자, 기타노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지혜열'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연 요즘 아이들을 열이 날 만큼 생각하는 일이 있기나 할까?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다. 떼를 쓰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온다. 이렇게 천국 같은 생활에서는 생각이란 걸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천국이라고 해봐야 고작 다베호다이(무한 리필식당) 정도의 천국이다. 하지만 먹을 게 넘쳐나는 다베호다이에서는 오히려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먹는 기쁨도 덜하다."(84-85쪽)  

그와는 반대되는 그의 어린시절(우리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무엇인가를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 어린시절의 기쁨은 이런 식으로 거의 포기에 가까운 동경과 그렇게 동경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동경하는 게 있을까? 신형 휴대전화나 손에 넣지 못한 컴퓨터 게임? (...) 요즘 아이들도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처럼 세상이 새하얗게 반짝이는 듯한 기쁨을 맛보는 일이 있기는 할까?"(61-62쪽)  

부유한 젊은 부모들은 간혹 "내 아이는 고생을 모르고 자라게 해주겠어." "내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건 뭐든지 사줘야지."라는 생각도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적 본성은 단순하게도, 쉽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큰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끔 돼 있다. 결핍과 동경이 없다면, 만족과 행복도 없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지만, 고통과 굴욕이 없다면, '나'라는 정체성도 없다. 아빠가 잘해주는 것도 없다고 아이가 불평을 터뜨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게 아빠의 사랑이란다.' 사실 기타노 다케시의 충고는 한걸음 더 나간다. 

"'마이홈 파파'가 아니더라도 아이들 기분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안다. 어른들도 누구나 옛날에는 아이였으니. 알고는 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뭐든 잘 이해해주는 아버지가 너무 많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아양을 떨어서 어쩌자는 건가. 결국은 자기한테만 귀여울 뿐이지 않은가. 아버지는 아이가 최초로 만나는 인생의 방해꾼이어도 좋다. 아이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된다."(57쪽)  

그러니 나도 좀더 분발해야겠다!.. 

09. 10. 18.  

P.S. 독서광인 나루케 마코토도 독서에 길잡이가 되는 '책의 달인들'이 있다고 한다. 일본 최대 오프라인 서점이라는 기노쿠니야서점의 '북웹'을 주로 활용한다는 그가 평론가들 가운데는 세 사람을 지목하는데, 그 중 일본의 저명한 편집자이자 저술가라는 마쓰오카 세이고는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지의 편집공학>(지식의숲, 2006)과 <만들어진 나라 일본>(프로네시스, 2008)이 그의 책이다. 그리고 <자 놀아보세>(토향, 2008)라는 책에는 '한국과 일본의 제사(祭祀)감각과 샤머니즘'이라는 그의 글이 포함돼 있다. 나루케는 그를 일컬어 '지(知)의 거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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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쓰오카의 다독술과 편집공학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04 22:27 
    알라딘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추수밭, 2010)를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 서점에 잠깐 들렀다가 무슨 책인가 싶어 펼쳐봤는데, 우연히도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링크를 늘리는 편집적 독서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니시다 기타로의 책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책과 오오시마 유키코의 만화책과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책과 롤랑 바르트의 철학책이
 
 
나무처럼 2009-10-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케시와 김훈. 저도 다케시의 생각노트를 읽다가 김훈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매우 엉성한 리뷰 하나 끄적였는데... 무엇보다 저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고, 물론 저는 아주 얄팍한 인상비평에 그쳤지만^^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제 고민도 깊어졌네요. 한편으로는 엉성한 제 책읽기가 반성도 되고. 흐흐

로쟈 2009-10-18 22:2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보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이란 게 잘 바뀌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한계라는 게 있고, 좀 저질이고, 하다고 보는 거죠(그래서 좀 허무주의적이고요). 진보는 거기에 대해서 좀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많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거구요(그래서 낙관주의적입니다). 보수나 진보를 팔아먹는 것과는 좀 별개라고 봅니다...

바밤바 2009-10-19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ㅎ 덕분에 읽어야 할 책이 늘었네요. 로쟈님이 쓰신 책도 조만간 읽을 예정이긴 한데 위에 소개한 책 중 읽은 책이 하나도 없네요 ㅠㅠ

라로 2009-10-19 16:10   좋아요 0 | URL
저는 단 한권 로쟈님 책~.ㅎㅎㅎ

로쟈 2009-10-19 17:38   좋아요 0 | URL
저도 반 이상은 안 읽은 책입니다. 기억해 두는 것이죠. 제 책도 읽으신다니 미리 감사드립니다.^^

다이조부 2010-08-2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 검색 타고 왔어요 ^^

오타쿠 가상세계의 아이들, 기타노 다케시 생각노트, 로쟈샘 책~ 읽은 책들이

눈에 보이네요. 보통 선생님이 남기는 리뷰에는 모르는 책 투성인데 이렇게

익숙한 책이 많긴 처음이네요 ㅋ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이건 '내 얘기'다 싶어서 손에 든 책인데(그래서 '열권' 속에 포함된 책인데) 시작부터 거침없는 말투가 인상적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나 <마시멜로 이야기>, <시크릿>처럼 내가 읽지 않았고 읽을 생각도 없는 책들을 편식하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구제불능이다!"라고 일침을 놓는 것도 '내 말이!'란 동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저자는 내가 안 갖고 있는 가공할 무기까지 들이미는데, 만약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장담하건대 중산층 이하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단언이 그것이다(흠, 한번에 열권씩 읽는 건 마찬가지인데도 '중산층 이하'인 경우는 무엇인지?).   

저자의 약력이 궁금한 대목인데, 사실 그게 이 책의 또다른 핵심이기도 하다.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1955년생. 대학 졸업후 마이크로소프트사 입사. "탁월한 업무 능력과 통찰력, 조직력을 인정받아 35세의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사 일본법인의 사장 취임." 더불어, "일본 비즈니스계를 통틀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독서가 중 하나". 그러니까 그는 재벌 2세가 아니면서 30대에 CEO가 된 신화적 인물이자 샐러리맨들의 '로망'적 인물인 것. 그 '비결'로 꼽는 것이 특이하게도 자기만의 독서법이다.  

"내가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의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하게 남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 남이 읽는 방식으로 책을 읽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8쪽) 

흥미로운 건 모든 부분에서 남과의 차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독서법"이라는 것. 거기에 이런 부추김. 책을 읽는 방법만 바꿔도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질 수 있다! 이건 거의 '협박' 수준인데, 솔직히 나로선 부러운 감마저 없지 않다("단 한권의 책밖에 읽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라!"는 영국 정치가 디즈레일리의 경구가 이 책의 에피그라프이다).  

책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는 바람에 서평도 자주 끼적이는 형편이지만 나는 한번도 '인생역전'이라거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다!'는 말을 입에 담아보지 못했다. '인문학 강사'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는바, 나는 책읽고 떠든는 게 직업인 '특이한 독서가'이지 '부러운 독서가'는 아닌 것이다(흠, '인터넷 서평꾼'이란 타이틀과 운을 맞추자면 '인터넷 독서꾼'이라고도 부름 직하다). 그래서 저자의 어조가 부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남과 비슷하게 살면 된다'는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남이 가는 곳에는 가지 않고, 남이 먹는 것은 먹지 않으며, 남이 읽는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꾸준히 실천하면 된다."(7-8쪽) 

 

사실 이 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이러한 주문에 다 집약돼 있는 듯싶다. 남들이 읽는 책을, 남들이 읽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읽지 말라는 것. 이것이 나루케 마코토식의 '자기에의 배려'이면서 존재미학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란 물음은 그러한 배려와 미학을 당신은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많이 알려진 경구이지만(출처가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란 건 이 책에서 알았다)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맞혀보겠다."는 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이 저자의 대전제이다. 그러니 남과 같은 걸 먹으면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남과 같은 책을 읽으면 역시 남들과 구별되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게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렇다고 유독 나만 읽는 책, 나만 읽을 수 있는 책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의 방점은 '남다른 독서법'에 찍히며, 그것이 '열권을 동시에 읽는' 초병렬 독서법이다. "물리학, 문학, 전기 및 평전, 경영학, 역사, 예술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적극적으로 넘나들며 동시에 읽는 것을 말한다." 개개의 책은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읽는 책의 조합은, 그것도 열권의 조합 정도 되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진다(조합의 가능성이 2의 십제곱이니까!).  

나도 당장 책상 주변에 있는 책들을 꼽아보았다. 읽고 있거나 당장 이번주에 읽어야(들춰봐야) 하는 책들이다(절반은 강의나 원고와 관련하여 읽는 책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몇권의 관련서 +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과 푸코에 관한 책 몇 권 +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몇 권의 관련서 + 후카사와 나오토 등의 <슈퍼노멀> +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와 지젝의 책 몇 권 +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 <20세기 러시아소설>(영어본) + 오이겐 핑크의 <니체 철학>과 니체 관련서 몇 권 +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 +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 이런 식으로 각자가 열권의 조합을 만들어보면,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독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이런 걸 제안하면 저자도 염두에 둔 의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하루하루 너무 바빠서 한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벅찬데요."(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딱 그렇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효과가 있겠어요?" 이런 반문에 대해서 나라면 "하긴 그렇기도 해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말 텐데, 나루케 마코토는 당당하다. "초병렬 독서법을 실천하면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풍요로워진다." (굳의 나의 사례를 덧붙이자면,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변모시킬 수 있는지는 극히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 같은 책은 각자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초병렬 독서법 자체는 나대로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 책에서 특별히 건질 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저자의 궁핍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이다. 아마도 독서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법한 궁상이고 궁핍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3년간 옷도 거의 사 입지 않고 술 담배나 유흥비도 일절 돈을 쓰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박봉이었던 터라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 매달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책을 사는 데 투자했기 때문이다."(80쪽) 

"입사 2년째에 결혼을 했으니 아마도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는 주로 카레나 두부 등 재료비가 싼 음식 위주로 식단을 꾸려야 했고, 100원이라도 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식이라고는 결혼한 첫해 12월에 딱 한 번 집 근처의 횟집에서 식사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책만큼은 악착같이 사서 읽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81쪽) 

이 정도면 '나루케 마코토 만세!'다(그의 아내도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에 별점을 인색하게 줄 수밖에 없는 건 문학작품을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책'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문학작품에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작만큼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것도 드물다."(165쪽)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런 게 일본 독서가들의 '성공 노하우'인 것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급 비밀'을 털어놓아도 된다는 것인지? 책의 서문만 읽고 덮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나도 일단은 자동차 부품회사에 들어갔어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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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 지식의 경계를 허무는 창조적 책읽기
    from 희망을 보고, 나는 쓰네 2010-01-07 18:26 
    얼마전에 서점에 나갔다가 이 책의 표지를 보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구만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라디오에서 책소개를 해주는것을 듣고 읽어본 책... 35살의 나이에 일본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에 오른 저자가 남들이 읽는 성공학, 자기개발 책이나 읽는것은 원숭이나 하는짓들이고, 독서를 통해서 진정한 성공을 하려면 다양한 책을 동시에 읽어서 뇌를 긴장시키며, 다양한 정보 습득을 통해서 통찰력과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꽤 독설적인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닉네임2 2009-10-1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고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에 빠졌어요. 단지 시간때우기나 엔터테인먼트인가. 하지만 영국에서 공부할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과학잡지에서 문학작품이 단지 엔터테인먼트 이외에도 정말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지요.
아래 제 블로그에다 그 글을 번역해 올려놓기도 했는데요.
http://blog.naver.com/jaeyuna/70032937732

소설은 사회의 시뮬레이션이며 소설을 읽음으로써 사회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여튼 문학이 없는 세상은 글쎄요. 로쟈님 서평의 앞부분에 상당히 동감하면서 마코토 라는 사람도 참 멋있겠구나 생각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명작이 '인생의 식량'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보니...별로 매력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로쟈 2009-10-18 15:16   좋아요 1 | URL
네, 예술의 진화적 효용에 대한 주장도 그래서 나오고요. 하지만, 실용적이지 않은 일도 필요하지요. 사실 '삶' 자체가 그다지 실용적이지도 않구요...

목동 2009-10-1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초병렬독서법에 대해 동의합니다. 저는 지난 5개월여간(저공비행시작) 처음으로 5권이상의 책들을 펼쳐 놓고 읽었지만 조금 산만했습니다. 로쟈님의 경우는 재미와 직업적(전공적)인 속성이 함께 있지만 저의 경우는 비전공적인 호기심이 전부로 조금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구매량과 독서량은 비례한다는 체험을 하게되어 기뻤습니다.

한편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기초지식이 없는 분야(철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정치학 등)의 책은 가독력이 떨어졌습니다. 인문사회학분야에 대한 비전공자인 저로서는 장애요인이었습니다. 초병렬독서법이 현실적인 응용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저에게 독서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 무리였습니다.

저에게 기축(허브) 장르(소설)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나라별 역사소설, 참여소설 등으로 선택을 병용함으로서 장기적인 독서력을 키워보려 합니다. 이 계획은 저비용 노후설계중에 하나입니다.

또 하나 우려스러웠던 것은 저자 및 저서에 대한 어떤 계층이 형성되어 있음에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마치 문화 우월주의 같은 것입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알 수 없는 장벽이랄까, 책 만큼은 순수하다는 기존의 제 관념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물론 인문학적 텍스트의 우월성은 인정하지만 혹시 편향적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간의 소통이 생각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고로 타분야 대한 광범위한 기초지식이(교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제 생각으로 대학에 인문사회교양필수를 전학년에 포함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9-10-18 15:15   좋아요 0 | URL
어느 분야건 책에는 난이도가 있기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잘 가늠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남들 따라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읽는 거니까요...

mcjhu 2009-10-1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책을 찾아봐야겠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우 20대부터는 전문성을 키워야하니,
20대 이전에 문학작품을 읽어놓으라,
뭐 대충 이런 뉘앙스로 기억합니다만...
(정확한 건 집에 가서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이 책, 아직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 없지만,
저자도 그런 생각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꼭 사봐야겠다는 생각이드는게,
저자와 저자 아내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이 되는군요.
사서 지난 달 둘째를 낳은 아내에게 먼저 읽게 해야겠습니다.
자식이냐, 책이냐.
숨막히는 갈등 속에 뻔한 대답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로쟈 2009-10-18 15:14   좋아요 0 | URL
제, 그런 '입막음' 효과가 있을 듯해요. '책이나 읽고 있다'는 소리도 덜 들을 수 있겠고...

도다리맨 2009-10-18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저 초병렬독서법을 강령으로서 받아들이지 말고 좀 느슨하게 습관화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 제가 관심 있고 오랫동안 보관해서 읽어야 될 것 같은 책, 또는 어려워서 책 옆에 낙서를 하면서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책들은 마음잡고 공부를 하듯이 읽습니다. 주로 사서 읽는 책들.

그리고 좀 읽기에 수월한 책이면서 흥미도 있는 책(저기 위에 기타노 다케시 같은 책 또는 희곡이나 단편, 내가 익숙한 사상가들의 입문서류, 평전류)은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두어시간 정도 읽습니다.(물론 노트는 옆에 놔두고) 전 하품이 계속 되고 입면기환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일부러 잠을 자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더라도 일부러 '잠자야지'하고 자는 건 뭔가 지는 느낌도 들고;; 억지로 잠도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좋은 책 하나만 읽어도 다른 책들과의 연관관계가 생기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10권까지는 아니더라도 3~5권 정도 동시에 읽으면 더욱더 남는 독서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포인트는 메인으로 읽는 책 말고 다른 책들은 난이도도 좀 낮은걸로 고르고 부담없이 읽는 것입니다. 책들을 빨리 읽어야지라는 생각만 없다면 병렬독서법도 굉장히 실효성 있는 방식 같습니다.

로쟈 2009-10-18 19:07   좋아요 0 | URL
네, 대개 이런저런 사정상 병렬독서법은 하게 되지요. 저자는 '초병렬독서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게 좀 다르지만. 사실 소설을 그런 식으로 읽는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의 소설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비로그인 2009-10-18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은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다" 맞는 말 같은데요... 적어도 틀린말은 아니잖습니까? 문학에서 가르쳐준다는 삶의 지혜라는 거라 해본들.. 얼마든지 요약해서 나타낼 수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쓸데없는 주인공들의 사생활을 시간낭비해가며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즉, 인생은 약육강식이고 오로지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하는 인간 부류들한테는 문학작품이 무의미한게 당연하다 봅니다. 마치, 섹스라는 건 어디까지나 후손을 낳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특정 종교인한테는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섹스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거 처럼요.

제 결론은, 나루케 같은 사람의 발언이 틀렸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그리고 분명 나루케 자신도 느낄, 특정 즐거움에 대한 감각(소설읽기의 즐거움 등)을 굳이 부정해가며 실용성을 무슨 신앙처럼 애써 부여잡고 있는 불쌍한 인간으로 밖에는 안보이네요.

뭐, 사실 불쌍하다고 말할 주제는, 제 입장이, 아니니까... 그래도 한마디는 하고 싶은데... 인생 뭐 급하게 살 필요 있나요? 그래봐야 당신도 결국은 죽어...요.

p.s 참고로, 저런 사람한테 인류 최고의 지적 성과물들을 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호기심에서(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연구를 했다는 걸 말해가며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로쟈 2009-10-18 19:13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이 <마시멜로>나 <시크릿>의 독자들에겐 어필할 수 있고, 그건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대신에 저자는 역사서를 탐독하니까 '불상한 인간'까지는 아니구요. 취향이 다른 것이죠. 아니면 저도 '골프의 즐거움'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에 불과하구요...

비로그인 2009-10-18 20:19   좋아요 0 | URL
문학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뜻에서 남긴 댓글은 아니구요. 제가 느끼기에는, 저만의 오해인지는 모르겠으나, 문학을 좀 우습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골프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골프를 멸시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너무 강한, 신념보다는, 맹신 같은게 느껴져서... 성공가도 위주로 달린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역시 선생님과 (아마도) 같은 의미에서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은 듭니다.

로쟈 2009-10-18 20:28   좋아요 0 | URL
'전략적인' 가치죠.^^ 그래도 저자는 모험소설들은 좋아하는 듯해서 몇 권을 추천해놓고 있기도 합니다...

픽션들 2009-12-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댓글들, 읽으면 참 재밌어요. 아주 재밌는 컬트소설을 읽는 것처럼요.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남영신,까치)에 준?하여, 문장과 단어선택도 아주 탁월하고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적확한 표현이 무릎을 탁 치게 하거든요.
가끔, 로쟈님의 댓글의 핵심에 대해 살짝 저공비행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에 대한 답글을 보면 로쟈님은 성격이 좋으신 건가요? ㅎㅎㅎ

저는 로쟈님의 저공비행 덕분에 안정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덕분에 위의 책은 제목만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내내 건강하세요.

로쟈 2009-12-27 09:20   좋아요 0 | URL
댓글 독자도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페크pek0501 2010-01-11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건 작가의 무지인 것 같습니다. 책을 낸 작가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겠지요.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지 인간관계가 생기는데 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일의 지혜란 상대방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 아닐까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문학을 모르고 산다면 지바고가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라라를 사랑하는 그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불륜을 저지른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닥터 지바고>와 <안나 카레니나>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그래서 인간학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한지도 문학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지요. 아마 문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세상의 현상만 보고 그 본질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인간세상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되는데,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경험하게 만듦으로써 지혜를 얻게 합니다.

전 비즈니스맨들에게도 필요한 건 소설읽기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10-01-19 09:55   좋아요 0 | URL
비즈니스맨들이 소설을 읽으면 비즈니스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페크pek0501 2010-01-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를 읽고 갑니다.

hereisnt 2010-01-1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이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읽는 글이 이 글이구요. 음 이런 책은 별로 안좋아해서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같은 모랄까 독서방법론이랄까요
책은 각자 개성대로 읽으면 되는데 딱 부러지는 어조로 이렇게 해라 이러면 왠지 정형화된 인간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하게 되서요 ㅎㅎ 각자의 개성을 창조적이게, 풍부하게 만드는게 책 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로쟈님의 리뷰로 읽은셈 치고, 저 역시 "시크릿"이나 "마시멜로우"같은 책은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로쟈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한층 더 가벼워 지는 군요

문학작품의 가치는....글쎄요 이 작가가 감수성이 발달할 시기에 다른 것이 먼저 발달해 버린 사람인거 같습니다. 모 약력을 보니 이성적 면이 특수하게 발달한 사람인거 같기도 하고. 문학작품이 가치가 없다는 식의 말은...글쎄요...잘못됬다기 보다는(모 그거 안읽어도 죽진 않잖아요 ㅎㅎ) 안됬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이 작가도 나이들면서 언젠가는 문학작품의 가치를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항상 우리는 진리를 알기엔, 남에게 무언가 확언을 해주기엔 "너무" 젊은 법이니까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고등학교때 세계고전문학을 많이 읽었었는데(모 많이는 아닌거 같기도 하고 ㅎㅎ), 대학교부터 한 10년간은 그 덕에 버티고 살았던 거 같아요. 운전면허 문제집같이 정답을 딱히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런 알찬 블로그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앞으로 종종 놀러오겠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10-01-19 09:55   좋아요 0 | URL
네, 감사. 가끔 들르시면 됩니다.^^;

쿠키별 2010-03-2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 한나절 즐겁게 놀다갑니다. 저도 로쟈님의 댓글을 꼭 읽는 편이죠. 로쟈님의 강의에 언젠가는 꼭 또 참석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감성만족 2011-01-2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열권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별 특별한 노하우는 아닌 것 같네요. 책 욕심이 많다보면 자연스럽게 이것 저것 읽다보면 10권 정도는 항상 ~ing 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역도 과학, 미술, 경영, 경제, 문화심리, 문학, 역사, 인문 등 8가지 분야는 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1년에 200권의 책을 읽으면 그중에 100권은 문학 서적인데 그래서 중산층 이하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봅니다.^^ 시간 될 때 이사람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중산층 이하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무슨 비밀을 알려 줄지도 모르니까요...^^

로쟈님 블로그 알게되서 기쁩니다. 처음 느낌대로 역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시는 군요 ^^

구름고래논술토론 2011-04-1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덕분에 책 한 권 잘 읽었습니다. 독서법에 대한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렇게 잘 쓰여진 서평을 보니 한 권을 후딱 해치운 듯한 뿌듯함이 느껴지네요. ^^

yamoo 2011-07-2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 가는 곳에는 가지 않고, 남이 먹는 것은 먹지 않으며, 남이 읽는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꾸준히 실천하면 된다.

흠 저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엄청난 성공을 했네요..전 완전 빌빌 거리는데..ㅎㅎ 제가 사는 신조 중 하나가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사는 거라... 저자가 하라는대로 꾸준히 하면 뭘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해보고 싶은 동기 부여는 되네요^^

"사실 나는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작만큼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것도 드물다."는 저자의 말에 한 70%쯤은 동감합니다~ㅎㅎ

흠...저도 10권씩 조합해서 읽어 나가야 겠네요..ㅎ
레옹 뒤기의 <일반 공법학 강의> + 신채호 <조선상고사> + 스티븐 제이굴드 <풀하우스> + 사이먼 싱 <암호의 과학> + 데이비드 흄 <오성에 관하여> + 요셉 슘페터 <경제발전의 이론> + 르 코르뷔지에 <프레시옹> + 아도르노 <미학과 문화> + 서우석 <음악과 현상> + 칸딘스키 <점 선 면>

거울속정원 2013-07-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인터뷰를 보다 리뷰가 읽고 싶어서 들어왔습니다.
로쟈님의 글 뿐 아니라, 댓글 다신 분들도 독서를 즐기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이렇게 훌륭한 독서를 죽어도 못하기 때문에 약간 의기소침 해 졌지만.

그런데 이 책,
책에 관해 말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로 저자가 하고픈 말은 성공에 관한 이야기로군요.




 

최근 여론조사의 화제 중 하나는 MB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 상승이다. 40%는 넘어섰다고도 한다. 이런 조사에 한번도 참여해보지 않아서 어떤 방식으로 설문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정상적인' 여론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 한국의 부유층이 40%가 아닌 이상, 여론조사가 사실에 근접한다면, 이건 체념 모드이거나 자학 모드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 그런 체념/자학에 빠지기엔 너무 이르다(아직도 이 정부는 '바닥'을 보여주지 않았다!). 국민의 건강보다 미국 쇠고기 회사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정부기관의 행태는 그런 체념/자학에 편승하는 것일 테니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심판할 때다. 잊지 않기 위해서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10. 17) 국민보다 미 쇠고기 회사 챙기는 정부   

일본 농림수산성은 지난 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수입금지 물질인 등뼈를 포함시켜 수출한 업체가 ‘타이슨 프레시 미트(Tyson Fresh Meats)’ 사라고 공개했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변질 등의 사유로 불합격되더라도 미국의 어느 업체가, 어떤 작업장에서 생산한 물량인지에 대해 ‘미국 업체의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우리 검역당국과 대조적이다.

우리 검역당국은 그러나 국내 축산농가가 항생물질 잔류 허용기준치를 위반하면 해당 농가의 주소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을 책임진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미국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하면서 국민 건강과 알 권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고,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16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검역에 불합격한 미국산 쇠고기는 모두 15만3790㎏에 달했다. 24개 작업장이 94건을 위반해 작업장별 평균 위반건수는 약 4건에 달했다.

◇미국의 영업비밀 보호가 우선=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해 11월 검역당국에 미국산 쇠고기 작업장별 검역위반 세부내역 공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검역당국은 “해당 작업장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수출작업장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민변은 지난해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역당국은 공개를 거부한 채 항소한 상태다.

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외국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주겠다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작업장들의 위반 실태가 공개되면 미국 업체들이 한국의 수입위생조건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인데도 우리 검역당국은 되레 저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슬그머니 정보공개 지침 개정=강 의원이 확인한 결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행정소송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정보공개운영지침을 개정해 동축산물 수출입 합격 및 불합격 실적(회사명, 품목, 수량 및 수입일 등)을 경영·영업상 비밀보호란 이유로 비공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검역당국이 국내 도축과정에서 잔류물질 위반이 적발될 경우 적발일자, 농가주소, 도축장명까지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강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출작업장의 검역위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중잣대이자 미국에 대한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2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면서 우리보다 수입위생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일본은 검역당국의 홈페이지를 통해 위반업체의 상세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우리 검역당국도 과거에는 검역 불합격업체의 이름이나 작업장 정도는 공개했으나 요즘은 정보 통제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오관철기자) 

0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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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0-18 16:10   좋아요 0 | URL
소비자의 알권리면에서 그 대상이 누군든 무관함이 국민정서다. 문제는 국내 정책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양자(수입자과 수출자)간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현상중에 하나는 소비자의 대표격인 국내 정책위반자들의 팔이 밖으로 꺽인다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는 해부학적으로 기형에 속한다.

또 하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출작업장의 검역위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중잣대이자 미국에 대한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발상" 에서 '사대주의'라는 말에 주목한다. 나라간 정상적인 교역은 경제적 효과가 우선시되는게 통례다.

미국,일본,한국의 도축시스템 수준 차가 통상혐상의 차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가능하면 빨리 국내 도축시스템에 대한 인력과 구조조정(위치,설계,운영 등)으로 국제적인 수준을 갖추며, 더 나아가서는 다른 수출품목간 간섭에 의한 피해가 없도록 해당 정책자들은 사명감을 갖는것이 바람직하다.

로쟈 2009-10-18 18:53   좋아요 0 | URL
기사에서도 비교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하는 일을 왜 한국 정부는 못 하는가란 불만을 갖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미국 정부도 외국의 수입 쇠고기에 대해서 그렇게 태만하게 처리하진 않을 테구요...
 

오늘자 조선일보 출판면에는 '출판시장, 좌파의 귀환?'이란 칼럼이 실렸다. '귀환?'이라면, 언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파들이여,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읽혔다. 이런 내용이다.  

현실정치에서는 친노(親盧)나 좌파세력이 권력을 잃었지만 출판계에선 최근 오히려 눈에 띄게 그런 성향의 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비교적 활발했던 우파 학자나 지식인들의 저술활동은 뜸하네요.

이런 현상은 대형서점의 '정치사회'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진영이 강세를 보였던 분야는 '역사', 특히 한국현대사 쪽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좌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현대사 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등이 유행한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이 이제는 '정치사회' 쪽으로 이전한 셈입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성공과 좌절》(1위), 《내 마음속 대통령》(3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11위) 등 노무현 전(前) 대통령 관련서들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유시민씨가 지난봄에 낸 《후불제 민주주의》(5위)도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론을 제창하며 좌파의 새로운 논객으로 떠오른 우석훈씨가 88만원 세대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동을 펼쳐야 하는지를 담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4위, 백기완의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7위입니다. 8위와 9위도 우석훈씨의 책들입니다.

심지어 10월 말 출간 예정인 유시민씨의 차기작 《청춘의 독서》는 예약판매만으로 16일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맬서스의 《인구론》,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등 자신이 젊은 시절 영향을 받은 책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한국 좌파는 이미 출판시장 장악으로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이한우 출판팀장)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비교적 활발했던 우파 학자나 지식인들의 저술활동"이 무얼 지칭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우파 역사학자들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정도다. 하지만, 당시에 '우파' 지식인들이 득세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흥미롭다. '잊지 말아야 할' 주체가 '한국 좌파'가 아니라 '한국 우파'이기 때문이다. '한국 우파'(='우리는')이 암묵적인 주어인바, 이 문장은 본래 "우리는 한국 좌파가 이미 출판시장 장악으로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썼어야 명료했다. '출판시장 장악 -> 정권획득'으로 이어질지 모르니 현재의 출판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아무려나 기사 덕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검색해봤다. 교보에서만 예약판매를 하고 있는데, 책은 '오래된 지도'로 모두 14권의 책을 다루고 있다. 특이하게도 러시아 문학작품들이 포함돼 있어서 페이퍼 거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목차만 봐도 대략의 내용은 어림해볼 수 있다). '청춘의 독서' 리스트다(맬서스의 <인구론>은 절판된 상태다).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청춘을 읽는다>(돌베개, 2009)도 근간 예정이므로 올가을 독서계에는 때아닌 '청춘'이 난무할 듯싶다.   

머리말 - 오래된 지도를 꺼내들다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책
- 다수의 평범함이 인류를 구원한다  



2. 권력의 유혹에 무엇으로 맞서야 하는가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 지하대학에서 배우다
- 벌거벗은 임금님을 발견하다
- 지식은 맑은 영혼과 더불어야 한다  



3. 청춘을 뒤흔드는 혁명의 매력 :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 한 장의 정치선언문이 영혼을 뒤흔들다
- 교과서가 되어버린 혁명서의 비애
-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4. 불평등은 원래 자연의 법칙인가 : 맬서스, <인구론>
- 냉혹하고 기괴한 천재, 맬서스
- 자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자연은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 편견은 천재의 눈도 가린다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대위의 딸>
-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
- 희극으로 그려낸 반란의 풍경
- 얼어붙은 땅에서 꽃이 피어나다
- 위대한 시인의 허무한 죽음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 <맹자>
- 역성혁명론을 만나다
- 백성이 가장 귀하다
- 아름다운 보수주의자, 맹자의 재발견
- 이익이 아닌 가치를 탐하는 태도  



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 <광장>
-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
- 혁명 없는 혁명 국가
- 주사파, 1980년대의 이명준
- 심장의 설렘을 포기할 수 없는 자의 선택  



8. 정치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 사마천, <사기>
- 사기의 주인공, 한고조 유방
- 사마천의 울분
-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을 부른다
- 권력자의 인간적 비극
- 정치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다  



9. 고통도 힘이 될 수 있을까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굶주림과 폭력으로 가득한, 지극히 평범한 하루
- 슬픔과 노여움의 미학
- 이반 데니소비치 탄생의 비밀
-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다윈, <종의 기원>
- 해설을 먼저 읽어야 할 고전
- 다윈과 월리스, 진화론의 동시발견
- 다윈주의는 진보의 적인가
-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 베블런 <유한계급론>
- 부富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 사적 소유라는 야만적 문화
- 일부러 낭비하는 사람들
- 지구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경제학자
- 인간은 누구나 보수적이다  



12. 왜 가난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 조지, <진보와 빈곤>
- 뉴욕에 재림한 리카도
- 꿈을 일깨우는 성자聖者의 책
- 타인을 일깨우는 영혼의 외침  



13.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나’인가 :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보이는 것과 진실의 거리
- 명예 살인
- 언론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14. 사회는 진보하는가 : 카, <역사란 무엇인가>
- 랑케를 떠나 카에게로
- 회의의 미로에 빠지다
- 식자우환識字憂患
- 이 격려를 다시 받아들여야 할까

후기 - 위대한 유산의 계보  

09. 10. 17. 

 

P.S. 유시민 전 장관의 '노무현 시민학교 특강' 취재 기사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726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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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0-1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초만 하더라도 진보파들이 노무현과 그 측근 때리기가 유행이라서 후불제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욕을 먹더니 참...염량세태란...

2009-10-17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밤바 2009-10-1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선의 저 기사 읽고선 마지막 문장 주어가 없어서 아리송 했는데..
로쟈님 글 보니까 심증이 확증이 되는군요. ㅎ

로쟈 2009-10-18 15:18   좋아요 0 | URL
네, '우석훈 지못미'라고 쓰신 거 저도 봤습니다.^^

2009-10-19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속에 책 2009-12-03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독서> 지금 막 다 읽고 혹시 로쟈님이 이 책에 대해서 뭔가 코멘트 해놓으신게 없나해서 들어와봤는데 조선일보에서 이런 기사를 다 썼군요. 마지막 문장이 제겐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네요..어이없는 웃음을 말이죠 ^^;;
그러찮아도 여기 나온 책들을 한번 정리해보아야겠다 했는데, 깔끔하게 먼저 정리를 하셨네요.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나온 책이긴 하지만 짐작에 지난 한달을 통틀어 학술사전 분야에서 가장 의미있는 책이라 할 만한 것은 <칸트 사전>(도서출판b, 2009)이다. 현대철학사전 시리즈의 첫 권이지만, 올초에 나온 <헤겔사전>에 이어 두번째로 나왔다. 이제 비로소 '칸트에 헤겔까지' 독일 관념론을 독파하는 데 필요한 연장을 다 구비하게 된 듯싶다.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을 다시 손에 들어도 좋지 않을까.

 

일본학계의 칸트연구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인데, 용어 번역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백종현 교수의 칸트 번역서들서 사용된 용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한 가지 공부이겠다. 책을 손에 넣기 전에 일단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문화일보(09. 10. 12) ‘칸트의 모든 것’ 한권의 책으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칸트사전’(도서출판 b)이 출간됐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현대철학사전 중 제1권으로, 올해 초 나온 제2권 ‘헤겔사전’에 이어 출간된 이 사전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158명의 칸트 연구자들에 의해 집필된 ‘칸트사전’(코분도·弘文堂)을 독일 철학 연구자인 이신철 건국대 강사가 완역한 것이다. 사카베 메구미(坂部惠) 일 도쿄(東京)대 명예교수와 아리후쿠 고가쿠(有福孝岳) 교토(京都)대 통합인간학부 교수 등이 편집고문을 맡고 구로사키 마사오(黑崎政男) 도쿄여자대 문리학부 교수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1997년 펴낸 ‘칸트사전’에는 일본의 칸트 연구 역량이 총집결돼 있다.

칸트 철학의 기본개념들과 칸트 연구에서의 핵심사항 등 이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항목들은 800여개에 달하며 ‘관념론’·‘대립’이나 ‘독일의 칸트 연구’ 등과 같이 철학사의 주요한 개념들과 연구사의 중요 쟁점들은 짧은 논문 한 편 분량으로 상세하게 해설돼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칸트의 강의록들에 대한 해설 및 칸트 연구와 관련된 다양하고 폭넓은 참고 자료들이 실려 있다. 특히 칸트 철학이 일본에서 수용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칸트에 대한 ‘창조적 독해’의 방향을 시사하기도 한다. 역자가 덧붙인 ‘한국어판 칸트 저작 및 연구문헌 일람’도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순수이성비판’ 등 3권의 비판서를 남긴 칸트의 철학은 그 이전의 철학사 전체가 그곳으로 흘러들어오고 또 그 이후의 모든 철학들이 어떤 모양으로든 그곳으로부터 발원하고 있는 하나의 광대한 호수에 비유된다. 특히 칸트의 사유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모든 근본문제들과 기초개념들이 다듬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칸트 철학에 대한 독해가 여러 철학적 사유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나 정작 칸트 철학에 대한 이해는 지난한 과제이다. 칸트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방대함과 가닥을 찾기 어렵게 얽혀 있는 개념들의 그물망, 칸트 철학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해석 때문이다. 이 점에서 텍스트 비판에 기초해 칸트 철학의 의의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발견하려고 노력한 이번 사전은 칸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는 내년에 현대철학사전 시리즈로 ‘마르크스사전’과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잇따라 출간할 예정이다.(최영창기자)  

09. 10. 17.  

 

P.S. 최근에 나온 칸트 번역서로는 <형이상학적 진보/ 발견>(이제이북스, 2009)가 있다. 연구서로는 칸트 전공자인 강영안 교수의 <칸트의 형이상학과 표상적 사유>(서강대출판부, 2009)가 저자의 칸트 연구를 집약해놓은 책으로 기대를 갖게 한다. 덧붙여, 칸트 연구서로 빨리 번역되었으면 싶은 책은 승계호 교수가 쓴 입문서 <칸트>(컨티뉴엄, 2007).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시리즈의 하나인데, 한국인 학자가 이런 저명한 시리즈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흡족하고. 국내에 출간된 책으론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그린비, 2008)이 이 시리즈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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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0-17 21:31   좋아요 0 | URL
로쟈 님은 18~19세기 독일 관념론에 관한 책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에 어떤 것이 있는지요?

로쟈 2009-10-17 22:16   좋아요 0 | URL
코플스턴 신부의 책이 나온 게 있네요. 시간이 나면 대출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고진에게 칸트를, 지젝에게 헤겔을 배운 형편이라서 좀 변칙 공부를 한 거죠. 무얼 추천할 만한 자격은 못 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00:23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irror 2009-10-18 18:10   좋아요 0 | URL
칸트에 대해서 국내에 출간된 책 중 가장 추천할 만한 입문서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오고 오트프리트 회페가 지은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도 가장 많이 추천되고 읽히는 칸트 입문서입니다. 회페는 손꼽히는 칸트 연구자 중의 하나이자, 또한 독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나온 영어권의 주목할만한 입문서는 Paul Guyer의 "Kant"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칸트 연구의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짧은 것을 꼽으라면, Allen Wood가 쓴 입문서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대규모 영어판 칸트 저작집인 캠브리지판의 편집자들이자 순수이성비판 판단력 비판등의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로쟈 2009-10-18 18:16   좋아요 0 | URL
네, 회페의 책은 많이들 추천하시더군요. 가이어의 <판단력 비판> 연구서는 저도 갖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순수이성비판> 공역자라는 건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mirror 2009-10-18 18:48   좋아요 0 | URL
코플스톤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으나, 그 책을 칸트나 헤겔의 입문서로서 추천할만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칸트나 헤겔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또한 50여년 전의 영미의 칸트 헤겔 연구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영미에서도 좋은 칸트 헤겔 연구서들과 입문서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50년전 비전문가가 쓴 대규모 철학사 중 일부가 지금 출간되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더구나 오늘날 한 사람이 철학사 전체를 서술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만한 능력을 한 사람이 갖는다는 것 자체가 초현실적이니까요(예외라면, 앤소니 케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각각에 대해서 업적을 남긴 학자니까요.)제가 본 바로는 오늘날 코플스톤의 책이 칸트 헤겔의 입문서로서 추천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바로는, 그가 쓴 철학사 중 경험론은 뛰어났으나, 합리론은 정말이지 흉악한 수준의 책이었습니다.

로쟈 2009-10-18 18: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영미권의 최근 연구서들이 번역돼 있는 것도 아니기에 독자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 로마 철학사>만 갖고 있는데, 영어권에서는 이미 잊혀진 철학사가인가 보네요...

mirror 2009-10-18 19:00   좋아요 0 | URL
새로 나온 영미권의 철학사를 들자면, 90년대 말에 루틀리지 출판사에서 9권짜리가 새로 나온바 있습니다. 수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쓰여진 책이죠. 요즘은 이런 류의 철학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철학사보다는 개별 철학자 입문서가 좀더 추천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각 철학자들에 대한 캠브리지 컴패년 시리즈는 높게 평가받는 입문서들이기도 합니다.
칸트에 대해서는 회페책이 입문서로서 충분할 것 같고, 문제는 헤겔이지요. 헤겔에 대한 입문서는 다른 나라 말로도 흔치 않고, 있어도 입문서로서 기능하지가 의문입니다. 이것은 입문서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헤겔 철학 자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오래전부터 높게 평가받은 책은 Charles Taylor의 "Hegel"라는 책입니다. 75년에 나온 책이지만, 즉시 독일어로 변역되어 독일어권에서도 널리 읽혔죠. 500페이지 가량 되는 두틈한 책입니다. 헤겔 철학의 입문서가 주제별로 접근하면 피상적이 되고, 헤겔의 주요저작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어렵게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로쟈 2009-10-18 19:03   좋아요 0 | URL
네, 그러나 여전히 칸트/헤겔은 전공자나 연구자들을 위한 철학자로 남을 듯합니다. 한국의 일반 독자가 (한국어로) 칸트/헤겔을 읽는 게 어떤 의미가 있고, 과연 읽을 수는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mirror 2009-10-18 19:17   좋아요 0 | URL
그 의문은 매우 타당한 의문이시고요, 그 의문의 대상이 칸트와 헤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요.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렇습니다. 한국의 철학계 수준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의미는 타인이 있다고 해서 있게 되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발견해야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철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문학의 독자층이 철학보다 훨씬 많고, 또한 접근가능성이 용이하다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쉽게 얻어지는 지식이 있겠습니까? 모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로쟈 2009-10-18 19:20   좋아요 0 | URL
원론적으론 그런데, 저는 그래도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철학서와 동료들을 상대로 쓰여진 철학서는 구분된다고 봅니다. 칸트나 헤겔이 후자의 경우고요. 직장인이나 주부들에게 칸트를 읽으려면 노력을 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무리죠.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어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짧지 않습니까?..

mirror 2009-10-18 19:43   좋아요 0 | URL
영어권이나 독일어권을 보아도 직장인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소개서는 극히 드뭅니다. 그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듯 합니다. 저는 철학이 그렇게 쉽게 소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또한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어쩔 수 없는 철학의 특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교양으로 칸트 헤겔을 일반인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알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좀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칸트 헤겔의 이해를 위해서 독일어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들이지요. 영어나 프랑스어로 칸트와 헤겔의 중요한 전 저작이 잘 번역돼 있습니다. 또한 칸트와 헤겔의 연구 수준에 있어서 영어권과 불어권이 독일에 뒤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각기 나름대로 전통을 가지고 발전해 왔고, 특히 요즘 영어권은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죠. 한국말로도 칸트는 이미 2세대에 걸친 훌륭한 번역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헤겔인데, 최근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어떠한지 제가 지금은 확인을 안 해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을거 같습니다. 이와 별개로 헤겔에 대한 접근은 어떤 말로 번역되어도 어렵습니다. 정신현상학을 원문만 읽어도 쉽게 이해되도록 번역했다,는 말을 누군가 한다면, 전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저는 일반인들에게 헤겔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로쟈 2009-10-18 19:54   좋아요 0 | URL
그게 '철학사'인지 '서양철학사'인지에 따라서도 문제는 달라질 듯해요.^^; 한 푸코 전공자가 예전에 데리다는 한국어로 번역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소개는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도 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이해한 만큼 더 쉽게 설명/번역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봅니다. 가령 헤겔이 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라고 가정해볼 수는 있는 것이죠.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의해 굴절된 언어 사용도 고려해볼 수 있고요. 헤겔이 난해하더라도 중요한 철학자라면 저는 '읽을 수 있는 헤겔'을 보여주는 것이 학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난해성이 진정성의 표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mirror 2009-10-18 20:03   좋아요 0 | URL
번역될 수 없는 철학책이 있다는 말을 저는 믿을 수가 없군요. 학자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헤겔의 문장들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헤겔은 칸트에 비하면,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죠. 헤겔의 난해함은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문장의 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해석과 번역은 다르지 않을까요? 헤겔 해설서를 가능하면 쉽게 쓰라는 요구는 타당하죠. 그러나, 번역을 원문과 동떨어진 창작을 하라는 것은 좀 무리한 요구지 않을까요? 원문이 난해하면 번역서가 난해한 것이 당연합니다. 물론 주석을 통해서 그것을 완화하라는 요구는 당연한 요구이지만, 원문 자체까지 손대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철학의 대부분은 쉽게 해설서를 써도 제대로 소개하자면 주부들과 직장인은 접근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 자체가 난해한데, 쉽게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지식이 쉽게 다 서술될 수 있다는 믿음에 쉽게 동의되지 않습니다.

로쟈 2009-10-18 20:36   좋아요 0 | URL
철학이 세계에 대한 개념적 이해라면 그것은 다른 용어로 재구성될 수 있고, 압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한자도 손댈 수 없다면, 시적이고 문학적인 철학이란 생각이고요. 저는 난해함 자체에 대해선 좀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난해하지 않다고요...

목동 2009-10-18 22:57   좋아요 1 | URL
어떤 이론이나 가설 그리고 분명치 않은 정신세계와 인간의 심리 등을 다방면에서 연구합니다. 그것을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것들을 중역하는 사람들의 오류나 오해 등의 자의적인 첨삭으로 인해 더 홀란 스러울 경우도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인문학적인 전문성이 과연 필요 있겠는가의 우려 또한 의미있습니다.

하지만 난해하다고 그것을 받아 들이려는 독자층 확장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합니다. 어쩌면 이론이나 사상이 어려워서 접근하지 않는게 아니라 중역되어 대중에게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구룹(교수 등)을 존경한 것은 그들의 사회적 역활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인문학과 노숙자 인문학도 있지만요. 평생 들어보기만 했던 평양을 통일하기 어려워 대중은 기대말며 특수목적의 외교관이나 정책상 다녀오면 족하다며 통일불가능론을 편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구한말이후 세계문화와 사상을 접하는데, 번역이야 말로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대중을 위한 번역과 해설 등으로 많은 인문학 관련 작업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상 중간층의 생각이 확장될 수 있는 인문학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