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근거와 자유주의의 가장자리

지방선거를 앞둔 때문인지 정치 관련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홍보용 책자도 있지만 정치이론서나 비평서도 드물지 않다. 인터넷 논객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안병길 박사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동녘, 2010)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가 책의 부제인데, 대략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법'으로도 읽힌다. 포퓰리즘에 관한 참고사항이 있어서 메모해두려고 하는데, 일단은 소개기사를 하나 스크랩해놓는다.   

파이낸셜뉴스(10. 03. 11) 자유·권리 지키려면 ‘귀차니즘’을 버려라 

자유는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소중한 선물이자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자유가 박탈됐을 때 인간은 목숨을 걸고 항거해왔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이러한 희생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귀한 자유민주주의를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온전한 모습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걸까.

미시간 주립대 및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교수를 지낸 안병길 박사는 최근 저술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을 통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 좌빨, 친북이라고 매도하고 좌파는 우파를 수구, 꼴통으로 몰아세우며 자신이 속한 정파만이 정의롭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리나 개념보다는 공동체주의에 기본을 둬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마치 사회불안 요인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권위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착하게 살아라’는 식으로 절대적 도덕 가치를 기준으로 교육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서 왜 그렇게 살아야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인간 바탕은 그냥 백지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백지 안에 무엇을 채워 넣든 그것은 각 개인의 자유로 일단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신공격, 심한 욕설 등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궁극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상대방에 대해 선악의 잣대를 갖다 대 상대방을 악으로 보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타인에 대해 아무 근거도 없이 틀렸다 나쁘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종이지 결코 자유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섬에서 혼자 살고 있다면 ‘자유=방종’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방종은 상대방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상대방 역시 나에게 똑같이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구성원 각자는 게임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이것이 스스로의 행동을 절제하는 자율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상대방의 방종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이것을 자신의 자유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위주의자들에 의해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고 있을 때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로 권위주의자는 자신들이 어떤 권위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보다 강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힘을 모아야 한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귀차니즘’을 버리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방종에 대해 용기를 내 맞서야 한다. 그냥 귀찮아서 봐준다는 식으로 방종을 내버려 두면 ‘엉터리 자유’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억압하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최종옥 북코스모스대표) 

10. 03. 19.  

P.S. 책은 자유주의에 대한 원론적인, 상식적인 옹호론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사회가 그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저자가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저술에까지 나선 것이겠다. 덧붙여, 포퓰리즘에 관한 참고사항이라고 한 건 저자가 추천한 윌리엄 라이커의 <자유주의 대 집체주의>(1982), <정치적 조작술>(1986) 두 권이다. 라이커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가 아니라 은사라 한다). 'populism'을 '집체주의'라고 옮긴 건 특이한 선택으로 보이는데,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집체주의'는 '집단주의'와 동의어로 보통 'collectivism'의 번역어로 쓰기 때문이다. 그 <자유주의 대 집체주의>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책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는, 집체주의를 경계하면서 자유주의를 잘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라이커 교수가 설명한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는 무엇일까?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로 표현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더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지, 만병통치약 같은 정치제도는 이 세상에 없고, 그런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엉터리가 좋아하는 이념이 집체주의라는 것이다.(193-4쪽)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포퓰리즘뿐만 아니라, 루소의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는 모든 유형의 공동체주의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그래서 박세일 교수 등의 <공동체 자유주의>(나남, 2008) 주장에 대해서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공동체라는 상위 개념을 두는 것 자체가 진정한 자유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자 신념이다. 일종의 자유지상주의인데, 영국의 또 다른 정치철학자 퀜틴 스키너의 자유론과는 대비되는 것이어서 비교해 봄직하다(물론 더 큰 차이는 '진리의 정치'를 주장하는 '레닌주의'와의 차이다).   

  

이번주 신간 가운데는 지식인들의 비판에 맞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지식인과 자본주의>(부글북스, 2010), 국가와 시민이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다룬 <빈곤에서 권력으로>(이매진, 2010) 등이 관심을 끄는 책들이다. 주말 북리뷰들이 뜨면 책의 정체가 조금 분명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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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3-20 01:43   좋아요 0 | URL
이 책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근데 안병길씨가 인터넷 논객으로도 활동하는줄은 몰랐네요~

로쟈 2010-03-20 09:18   좋아요 0 | URL
주로 이준구 교수의 홈피에서 활동하는 분이라네요.

안병길 2010-04-10 15:36   좋아요 0 | URL
안병길입니다. 제 책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

라이커 교수님은 제 은사님이지만, 지도교수는 아닙니다.
국제정치학자 Bruce Bueno de Mesquita 교수님이 박사논문 지도를 하셨습니다.

Populism을 집체주의로 번역한 것은 라이커 교수님의 저서에서 설명한
Populism의 적당한 표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쟈 2010-04-11 23:26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넘겨짚었나 보네요.^^; 수정했습니다. '집체주의'는 혼동의 여지가 있는 듯해서요. 아시다시피 요즘은 그냥 포퓰리즘이라고 많이 쓰네요...
 

저녁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좌석버스에서 내일자 한겨레를 읽다가 점찍어둔 기사를 옮겨놓는다. 포퓰리즘에 관한 두 권의 책이 근간 예정이라는 걸 알려준다.   



한겨레(10. 03. 18) 포퓰리즘 민주주의 ‘병리현상’ 아닌 ‘필수요소’ 

4대강 포퓰리즘, 세종시 포퓰리즘, 교육 포퓰리즘, 등록금 포퓰리즘, 무상급식 포퓰리즘…. 무슨 말이든 ‘붙이는 족족’ 언표화돼 인구에 회자되니, 말 그대로 ‘언어의 인플레’가 따로 없다. 정견이 다른 상대방을 향해 언제든 ‘포퓰리스트’란 화살을 날려보낼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서도 집권당과 야당, 좌파와 우파가 다르지 않은데,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포퓰리즘이란 상징이 좌파를 공격하기 위한 우파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여전히 ‘선동’과 ‘중우정치’, ‘대중영합주의’라는 부정적 정치현상을 일컫는 비난의 수사, 경멸의 언어로 통용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포퓰리즘 이론의 진원지인 서구 학계가 최근 포퓰리즘을 현대 정치의 병리적 이상 징후로만 바라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정치의 일반화된 특성’이자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란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오른쪽 사진)와 멕시코 출신의 소장 정치학자 벤자민 아르디티(왼쪽)인데, 포퓰리즘을 재해석한 이들의 문제작인 <포퓰리즘의 근거에 관하여>와 <자유주의 가장자리의 정치>가 각각 후마니타스와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이론이 주목받는 것은 ‘인민에 대한 호소’나 ‘선동적 지도자에 의한 감성 자극 정치’를 포퓰리즘의 특성으로 규정해온 종래의 시도들이 20세기 말 본격화 된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에 설득력을 잃게 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냉전이 해체되고 좌·우파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대부분의 서구 정당은 전통적인 계급노선을 포기하고 국민 전체를 상대로 지지표를 구하는 대중주의 전략을 취하게 됐는데, 이에 따라 정책이나 논리보다는 수사와 이미지로 유권자의 감성을 움직이는 정치가 세력과 진영을 막론하고 각광을 받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실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오바마 진영이 취한 선거 전략이나 이후 금융위기 수습 국면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펼친 정책들 역시 전형적인 포퓰리즘 양상을 띠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라클라우는 대체 포퓰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의 포퓰리즘론은 “모든 정치는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이란 진술 안에 집약돼 있다. 그가 포퓰리즘을 정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포퓰리즘이 주어진 질서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요컨대 좌파든 우파든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는 기존의 합의구조에서 밀려난 다양한 인민의 요구를 관통하는 통일된 슬로건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정치 주체로 맞세우는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이런 포퓰리즘의 세 가지 유형으로 라클라우는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와 미국 인민당, 터키의 케말 파샤를 꼽는데, 이들은 각각 좌와 우, 중도파의 포퓰리즘을 대변한다.

책을 번역한 임승준 인권의학연구소 연구원(정치학 박사)은 “라클라우의 저작은 대표작인 <사회주의와 헤게모니 전략> 이후 자신의 오랜 이론활동을 마무리하는 작업으로, 소외된 대중을 정치적 주체로 구성하는 포퓰리즘이 일탈이나 비정상이 아니라 모든 정치 행위를 관통하는 근원적 특성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아르디티는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증상’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증상’이란 개념은 프로이트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자아의 형성을 위한 본능의 억압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대리표상’이자 ‘내부의 주변부’ 같은 것이다. 요컨대 포퓰리즘이란 민주주의에 이질적인 어떤 것이나 적대적 타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속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불안과 소요를 일으키는 ‘민주주의의 내적 주변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아르디티의 판단 근거는 민주주의에 내장된 이중성이다.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는 정치인·관료 등 전문가 집단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지만 동시에 선거라는 대중의 직접 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과 작동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치의 영역 안으로 주기적으로 대중의 개입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존재론적 뿌리가 된다는 게 아르디티의 견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이 두 측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인민 의지의 직접적 표현에 대한 열망’으로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아르디티는 단언한다.

그러나 이들의 포퓰리즘 재해석 역시 약점은 있다.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는 “라클라우의 재해석은 포퓰리즘을 정치 일반과 무리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경우 포퓰리즘이 아닌 것은 정치가 아니라거나, 좌파의 포퓰리즘이 극우파의 포퓰리즘(심지어 파시즘)과 아무런 차이도 갖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 다시보기’가 오늘의 변화된 지형에서 갖는 정치적 의미는 반감될 수 없다고 진 교수는 말한다. 가난한 이들을 정치의 영역에서마저 추방하고 배제하는 신자유주의의 ‘반(反)정치’가 지속되는 한 포퓰리즘에 드리운 어둠과 비합리의 그늘을 걷어내려는 사상적·이론적 신원작업 역시 꾸준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이세영기자) 

10. 03. 17.  

P.S. 라클라우의 <포퓰리즘의 근거에 관하여>는 <레닌 재장전>(마티, 2010)에 실린 지젝의 글 '오늘날 레닌주의적 제스처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의 유혹에 맞서'에서 자세하게 검토/비판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책이다(국내서로는 서병훈 교수의 <포퓰리즘>(책세상, 2008)이 있다). 다지원에서의 강의도 있고 해서 이달 안으로 출간되면 좋겠다. 참고로, 기사에서 오른쪽 인물사진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가 아니라 '리처드 로티'다. 비슷하게 보여서 담당자가 혼동한 모양이다. 아래가 라클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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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법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19 11:53 
    지방선거를 앞둔 때문인지 정치 관련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홍보용 책자도 있지만 정치이론서나 비평서도 드물지 않다. 인터넷 논객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안병길 박사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동녘, 2010)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가 책의 부제인데, 대략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법'으로도 읽힌다. 포퓰리즘에 관한 참고사항이 있어서 메모해두
 
 
비로그인 2010-03-18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딩 숲 콘크리트 바닥에 꽃들이 참 많이도 뒤엉켜 피었네^^ 참! 멋진 사진..

로쟈 2010-03-18 09:21   좋아요 0 | URL
그런 시절이 있었죠...

푸른바다 2010-03-1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새번역본은 작년 출간 예정이었는데 왜 안나오는 지 모르겠군요.^^ 그 이후 많은 논의의 바탕이 된 '현대의 고전'인 것 같은데... 번역본 기다리다 지쳐서 원서라도 사서 볼까 고민 중입니다^^

로쟈 2010-03-19 10:42   좋아요 0 | URL
네, 나온다던 책 나오지 않고, 네요...

비로그인 2010-03-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혹시,라클라우의 사진으로 업로드하신 것이,실은 리차드 로티의 그것이 아닌지요?^^;아무리 봐도 로티의 사진으로 보여서 구글에서 라클라우의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아뿔싸! 둘이 너무도 닮은 얼굴이네요ㅠ 지나가는 길에,외람되이 로쟈님의 페이퍼에서 '옥의 티'하나 발견하여 폭로(?)하고 갑니다^^;

로쟈 2010-03-19 10:42   좋아요 0 | URL
한겨레 기사에도 제가 올려놓은 사진으로 수정돼 있던데요. 외모는 비슷하지만 인상이 좀 다릅니다...

비로그인 2010-03-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다시 보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라클라우가 좀 더 꼬장꼬장하게 생긴 것같은^^;모쪼록 로쟈님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참 그런데 로쟈님의 빼어날 지젝 번역은 단행본으로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습니다만^^

로쟈 2010-03-20 09:16   좋아요 0 | URL
번역은 저도 고대하고 있지만 일들의 쓰나미 때문에 좀 미뤄지고 있습니다.--;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1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포풀리즘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누가 우리 편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느낌 말입니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늘 궁금했던 거 여쭙니다. 저희 같은 지식 없는 사람들이야 여기나 파란 여우님 같은 분들의 권유(?)로 책을 선택하면 되는데...(값없이 얼마나 큰 일을 해주시는지~믿을만한 분들의 소개가 있어야 안심하고 책을 집어들 수가 있게 되어 버렸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워낙 부지런하신 분들이라...다 따라가려면 직업도 버리고 책속에서 헤엄치는 즐거운 삶이라야 가능할 듯합니다.) 이전부터 있던 책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있는데 로쟈님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하고 추천(-제가 여기서 대부분의 책을 추천받고 있기에...)하시는지요^^ (-믿을 만한 작가, 번역가, 출판사의 삼박자이면 금상첨화이겠요-)

로쟈 2010-03-20 09:17   좋아요 0 | URL
관심도서는 언론의 리뷰와 제 관심사에 따라 고르고 있습니다. 일률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오래하다 보면 생기는 '감'입니다.^^;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20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그 단순하지 않을 감...부러울 따름입니다.^^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제안에 따라 5월에도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강좌를 꾸리게 됐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754&gryear=2010&subjseq=0001). 어제 낮에 협의를 했는데, 바로 공지가 올라왔다. 이번엔 '현대철학' 두번째 편으로 데리다부터 가라타니 고진까지 다섯 명의 철학자에 대한 '입문' 강의다(철학자는 한겨레측에서 선정했고, 교재는 내가 골랐다). 첫번째 강의의 경험을 살려서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들 골랐다. 현대철학자들이 혼자 읽기 버겁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번 강의는 5월 6일부터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7:30-9:30에 진행된다.   

1. 5월 6일_ 데리다와 해체철학 : 니콜라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 



2. 5월 13일_ 라캉의 정신분석학 : 지젝,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7) 



3. 5월 20일_ 푸코와 지식의 고고학 : 사라 밀즈,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앨피, 2008) 



4. 5월 27일_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 : 아감벤, <목적 없는 수단>(난장, 2009) 



5. 6월 3일_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 :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도서출판 b, 2010) 

 

10.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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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18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호! 좋아요.. 4월엔 세계문학작품을 더 읽고 이강좌 부터 본격적으로 이 책들을 파야겠어요. 지속적으로 공부에 불을 지필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로쟈 2010-03-18 09:2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의미의 '뻬치카'이셨군요.^^

사과나무 2010-03-2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와 함께 하는 인문학 여행>이라....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겠습니다. 몸이 한국 땅에 있지않은 것이 아쉽군요. 올려주신 책들을 구해서 읽어야겠군요. 좋은 책소개와 서평 글들, 저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될것입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독일연구소가 주최하는 학술 콜로키움 '중앙게르마니아'의 이번 학기 일정을 소개한다(http://ikdk.net/germania.html). 이번주 3월 19일(금)부터 3주에 한번 꼴로 진행이 되는데, 세번째 순서가 슬라보예 지젝이고 나는 지난 겨울에 발표자로 초청을 받았다.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중대신문의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중대신문(10. 02. 28) 2010 학내 콜로키움 프리뷰 : 중앙게르마니아  

독어독문학과와 독일연구소가 11회에 거쳐 공동으로 기획 시행해온 <중앙게르마니아>가 올해는 21세기 담론 지형에 대해 탐구한다. 류신 교수(문과대 독어독문학과)는 “과거에 포스트모더니즘이 폐기한 진리들인 ‘역사’, ‘정치’, ‘윤리’ 등을 살아있는 현역 학자들의 책들로 재조명 하려고 한다” 고 말하였다.   

올해 첫번째 일정인 3월 19일엔 프랑스 학자인 자크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이 예정되어 있다. 『감성의 분할』은 부재로 “미학과 정치”를 내세우는데, 이는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얘기한 것과 유사하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현재 교육의 문제점을 교육이 아닌 정치로 삼았었다. 이와 유사하게 예술에서도 정치와 연관시켜서 설명한 책이 바로 감성의 분할이다. 자크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은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4월 9일엔 이탈리아의 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준비되어 있다. 『호모 사케르』는 『감성의 분할』과는 다르게 생명과 정치에 대하여 풀어내는 책이며 연세대 박진우 교수가 진행한다.   

그리고 4월 30일에는 동구권의 지성이라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로 선택되었다. 지젝은 라캉과 마르크스 그리고 헤겔을 접목한 학자로서 책 제목의 ‘대의’는 마르크스를 지칭하며 한림대 이현우 교수가 진행할 예정이다.   

5월 14일에는 노르베르트 볼츠의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로 정해졌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는 유현주 교수(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가 맡는다. 유현주 교수는 “볼츠는 문자매체와의 결별과 동시에 미디어믹스 시대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볼츠의 글을 택한 이유는 볼츠가 현대시대를 매력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마지막 6월 4일에는 한스 요아스 『행위의 창조성』으로 막을 내린다. 『행위의 창조성』은 현 사회과학계의 합리주의적 행위이론과 진화론적 근대화 모델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을 담은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게르마니아는 대학사회에서 인문학의 위상이 낮아진 현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콜로키움이란 ‘함께 모여 이야기한다’는 라틴어 콜로키움의 어원적 의미에 따라 지적,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2000년도 당시엔 콜로키움이라는 단어는 유럽 대학들에서는 상당히 익숙한 반면 국내대학에서는 심포지엄이나 학술대회로 일축되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참여가 낮아지고 결국 인문학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판단한 독어독문학과와 독일연구소에서는 콜로키움이라는 단어를 필두로 지정 토론자 없이 참석자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담론 생산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끝장 토론’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중앙게르마니아의 성공은 다른 학과와 다른 대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대 안에서는 영문과 사회학과 등에 학부생이 참여하는 정기 콜로키움이 생겼고, 서울대 독일어문화권 연구소도 2005년부터 ‘현대를 다시 읽는다’는 주제로 관악 블록세미나를 시작했다. 중앙게르마니아의 목표는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인문학에 대해서 깊이 있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대학들에서 인문학이 살아 숨쉬는 풍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10. 03. 15. 

 

P.S.중앙게르마니아 콜로키움의 결과물은 책으로 묶인 것도 있다. <현대문화 이해의 키워드>(이학사, 2007) 같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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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01 00:13 
    엊저녁에 중앙게르마니아 강좌 강의가 있었다. '21세기 담론의 지형'이란 전체 주제에서 내가 맡은 건 슬라보예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였다. '슬라보예 지젝과 '잃어버린 대의'에 대한 옹호'라는 발표문 가운데, 마지막 절은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에 실린 지젝의 글 가운데 후반부를 발췌한 거였다. 따로 주석을 붙일 만한 시간이 없었지만, 그냥 읽어도 대충 지젝의 주장
 
 
노이에자이트 2010-03-1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림대 교수로 소개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로쟈 2010-03-16 23:23   좋아요 0 | URL
앞에 '연구'를 빼먹었네요...

hikrad 2010-03-1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한림대에 오신 줄 몰랐네요. 춘천에도 오시나요?

로쟈 2010-03-16 23:23   좋아요 0 | URL
가끔 갑니다.^^

2010-03-19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3-18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인도 참석가능한 거예요?

로쟈 2010-03-18 09:21   좋아요 0 | URL
대학내 행사이지만 제한은 없는 걸로 알아요.^^

비로그인 2010-03-1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이아가씨 스토커아니야? 하시는 것 아니겠죠?

로쟈 2010-03-19 10:43   좋아요 0 | URL
흠, 강연 스토커는 환영합니다.^^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원래는 지난주에 나갔어야 할 칼럼이지만 기한을 못 맞춘 탓에 한 주 늦춰졌다(그러니 이번주 원고로는 가장 빨리 내지 않았을까 싶다).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을 읽은 소감을 몇 마디 적었다.   

교수신문(10. 03. 15)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상의 오빠’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한 책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을 읽고 지난 시대 ‘사상의 은사’를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어떤 은사였던가. 강준만 교수는 예전에 이렇게 적었다. “멀쩡하던 대학생들이 리영희의 책만 읽으면 충격을 받고 이상하게 변해갔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에만 몰두하겠다던 ‘청운의 꿈’을 내던지고 진실과 인권과 상식의 가치에 입각해 이 사회와 나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의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역할은 주로 70년대 후반, 혹은 80년대 초반의 학생·청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였다. 『전환시대의 논리』(1974)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의 하나로 꼽히지만, 80년대 후반 학번인 나에겐 이미 ‘지나간’ 책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리영희와 책읽기’를 다룬 천정환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달라진 대학가의 독서문화와 관련된다. 『강철서신』이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같은 젊은 세대의 책이 대학가를 주름잡던 시기여서 “리영희 같은 경험 많고 나이 든 스승을 경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여느 80년대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세미나 세대’였던 나도 학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읽은 책은 『철학에세이』였고 『페레스트로이카』였다. 게다가 ‘교조주의자’들이 많았던 80년대에 리영희는 ‘수정주의자’로 내비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안수찬 기자가 들려주는 1990년대 후반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1997년 겨울 한겨레신문의 수습기자들이 사내 교육으로 리영희 선생의 강의를 들었지만 “모두 잤다. 누구는 허리를 세우고 잤고, 누구는 엎드려 잤다”는 고백이다. 시대가 다르다고, 최소한 달라졌다고 믿은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대학생 자유기고가 한윤형이 정확하게 짚어준 대로, 대학 진학률이 달라졌다. 1970~80년대 대학생 비율은 청년층의 30%였고, 바로 그 대학생들이 청년문화와 정치의식을 주도했다. 그것이 말하자면, “어떠한 사상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처음의 소수가 필요”하다는 리영희의 ‘소수의 전위부대’론, 곧 ‘인텔리겐치아’론과 대학문화가 접목될 수 있는 토대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학 진학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86% 수준이라고 하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대학생이 더 이상 운동의 동력도, 사회의 전위도 아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리영희와 청년문화의 대립항 자체가 상실됐고, 오늘날의 청년은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고립된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한윤형의 진단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도 돈만 굴리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악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시대에, 예비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자본이 자신을 착취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편입’”이라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직한 토로다. 이러한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금 ‘사상의 은사’를 반추하게 된다. 

20대 에세이스트 김현진과의 대담에서 리영희 선생은 ‘변혁’은 반드시 온다는 신념을 거듭 피력했다. 현실사회주의가 패배한 것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 또한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국가 사회의 지배세력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없는 사람들을 박탈하고 모두에게 공정히 돌아가야 할 기회를 빼앗는다면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변증법이 그의 오랜 확신이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레닌을 반복하라’고 말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과도 겹친다.     

지젝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 혁명적 과정의 두 가지 계기를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와 ‘새로운 삶의 창안’으로 정리한다. 리영희 선생의 설명대로, 의사와 같은 특권계급을 필수적으로 1년씩 시골로 보내 똥지게를 지게 한다든가 궂은일을 하게 하는 것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게 한 다음 다시 자신의 일터로 복귀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듯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을 겨냥했지만,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일상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젝은 그 실패가 문화대혁명이 과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과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마오쩌둥 자신이 인민에게는 반란의 권리가 있다고 독려하고 부추겼지만, 정작 백만 명의 노동자가 국가와 당 자체의 소멸을 요구하면서 직접 코뮌적 사회를 조직하고자 시도하자 군대를 동원해 소요를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실패가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전적인 투항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지젝은 베케트의 말을 인용해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고 말한다. 리영희 선생이라면 노신을 인용해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의식화의 원흉’이 아닌 ‘사상의 오빠’(김현진)로서 그의 말과 글은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10. 03. 15.  

P.S. 올해는 대학진학률이 작년보다 약간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80%를 상회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계간지 봄호 특집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황해문화>의 '대졸자 주류 사회와 위기의 대학'인데, 바로 대학 진학률 80% 사회의 초상과 문제를 짚고 있다. 보다 본격적인 진단과 분석이 필요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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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1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강철서신><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공통점은 읽은 척하는 사람은 많으나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죠.강철서신은 책이라고 하기엔 좀...

로쟈 2010-03-16 23:24   좋아요 0 | URL
팸플릿인데, 겹낫표를 해서 책처럼 돼 버렸네요.^^;

comorin 2010-03-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지나가는 공돌이입니다.^^; 전 90년대 후반 학번인데, 강준만 교수의 리영희 입문서를 읽은 뒤에 뒤늦게나마 "전환시대의 논리"(이하 전논)를 읽었습니다. 사실 "전논"은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획기적인 서적이었겠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대단하게 진실을 '폭로'하는 수준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고, 행간의 뜻을 살펴보면 정말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사실 "리영희"가 예전보다 않읽히고, 찾지 않아졌으면 하는게 "리영희" 선생의 소망이라고 하는데, 과연 앞으로도 그게 진지하게 이루어질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더 찾게 되지나 않을지 하고..

로쟈 2010-03-19 10:51   좋아요 0 | URL
명불허전이 맞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는 '과거의 지식인'이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