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번주 시사IN을 손에 들었다. '6월의 책꽂이' 가운데 인문사회과학쪽의 서평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상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 '시민 양성' 혹은 '시민 교육'에 대한 제안에 특별히 주목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시민'에서 조만간 '난민'의 지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라고 조르조 아감벤은 말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대우받고 있는 것인지도... 

시사IN(10. 06. 05)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모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가 던지는 화두다. 민주주의의 안부에 대한 관심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이후에 줄곧 제기돼온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거칠 것 없는 ‘역주행’은 이러한 관심에 실감을 부여한다. 도정일 교수가 여는 글에서 묻고 있듯이,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쉽게, 어이없이 후퇴와 퇴행과 반전을 강요받게 되었는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도 교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암시를 얻어 아예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알고도 대처하지 않거나 못할 때, 틀린 방식으로 대처했을 때, 너무 늦게 대처했을 때 그 사회는 망한다. 그렇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너무 늦지 않은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과 대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민의 양성’이라고 도 교수는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더한 정권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제대로 된 시민교육은 공백 상태다. 6월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소홀히 한 탓에 우리는 여전히 선거철마다 ‘북풍’에 시달리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란 냉소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런 냉소에 대응하자면, 한홍규 교수의 주장대로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에 뒤이은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만 아니라 나라의 살림도 좋아졌다는 것이 그 사례다.  

이것은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입한 시민단체 숫자가 10개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티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때 그 앞에 청중 100만명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분명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그 주인이란 자리는 우리가 주인다운 역할을 해야만, 주인다운 의무를 다해야만 얻을 수 있다. 교훈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보다 더한 정권도 나오고, 더한 민주주의의 후퇴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라고 한 교수는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자각을 갖고서 각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라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도 긴급한 공부거리다. 원래 사적 이익의 공적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다. 공공성의 실종과 사사화(私事化), 그리고 권력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과두화와 함께 사회적 특권과 신분이 세습되는 역근대화, 각자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자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박명림 교수가 진단한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인데도 사회의 민주화 혹은 공동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착각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착각의 대가가 너무 크다. 하지만 망연자실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민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해지는 고통의 양을 줄이기 위한 교육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와 품위를 드높이기 위한 교육이다”(도정일)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10. 05. 30.  

P.S. '시민'의 주권을 방기할 때 우리는 '난민'으로 전락할 거라고 적었는데, 그 '난민'의 보다 친숙한 표현은 '노예'일 것이다(대부분 놓치곤 하지만 선거는 '합법적' 반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종철 선생의 칼럼도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6. 01) 노예를 위한 변명

요즘 내 주변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호소한다. 인간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저 조건인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는데, 흉한 꼴 아예 외면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역사책을 보면 문명이 시작된 뒤 인간의 삶이란 강자의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괴롭힘, 착취와 약탈의 연속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민초들의 단결된 저항으로 지배자들이 조금 양보하는 척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순간일 뿐, 또다시 무자비한 침탈과 억압과 속임수가 한층 더 교활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체로 강자들의 시각으로 작성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인간사를 관통하는 원리가 ‘악마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뭣 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젊은 기자한테서, 한때 민주화에 헌신했던 몇몇 원로작가에게 4대강 문제에 대해 발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절 이유는 한마디로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이해할 만했다.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그 결과 얼마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분 속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그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얼마나 서글퍼지고 기운이 빠지겠는가.

게다가 국가권력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민초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깨어 있느냐에 달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게 올바른 ‘정치교육’이 아닌가. 흔히 ‘욕망의 정치’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런 정치교육의 결핍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즉, 안락과 안전에 대한 헛된 꿈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우리들 중 다수는 지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끔찍한 무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내가 거리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째서 물 부족 국가라고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 터무니없는 말은 그냥 웃고 넘길 게 아니다. 그 택시운전사를 포함하여 생계유지에 급급한 많은 우리 이웃들은 지금 어용언론 이외에 독립적인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나자면 가령 <한겨레>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야 하지만, 문제는 한겨레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대개 고립되어 있거나 한겨레 독자들하고만 주로 소통하고 지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 자신도 저 택시운전사의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고도 더는 응대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아마도 나와 같은 승객만 계속해서 만나는 한, 그 택시운전사는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굳혀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의 맹목적인 지지자, 즉 ‘노예’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노예는 원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그러나 노예더러 자유인이 되자고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안락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는 노예에게 자유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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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5-3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 암기 과목이라고 무시하면 망해요 'ㅅ'

로쟈 2010-06-01 00:46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10-05-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면서 몰라서도 아닌거 같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 (땅... 값일까요?)

로쟈 2010-06-01 00:48   좋아요 0 | URL
냉소주의자들은 투표를 안 할테니, 나머진 실제 기득권자를 빼면 자신이 기득권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이죠...

글샘 2010-05-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 교육의 중요함을 알고있는 넘들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죠. 그래서 언론과 교육을 그렇게 목숨걸고 휘두르려 하는 거구요.

로쟈 2010-06-01 00:49   좋아요 0 | URL
ㅎㅎ '반시민교옥'의 중요성이라고 안다고 해야할 거 같아요. 조중동이 줄기차게 해대는...

mirror 2010-06-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교육 운운하면서, 태백시의 한나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박원순씨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할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군요. 시민운동해서 누구의 떡을 더 키우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씨는 시민운동이나 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산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박원순씨는 다른 지역에서 각각 무소속도 민주당 후보도 지원했었습니다. 아름다운 공평무사죠.

로쟈 2010-06-01 07:19   좋아요 0 | URL
"이번에 저가 방문하고 지지의 의사표시를 한 지역은 모두 40여군데에 이르고 그 중에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한 곳은 두군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무소속, 풀뿌리 후보들입니다. 사실 한나라당 후보는 아주 소수입니다. 어찌보면 너무 편파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약 제가 민주당 후보만 지지하고 돌아다녔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일까요? 제가 민주당 대표나 민주당 산하의 부설기관이 아닐진대 그것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까요? 한나라당 후보는 모두 악이고 민주당 후보 또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모두 선인가요?"라고 하셨네요. 그분의 방식일 텐데, 저도 공감하진 않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절감합니다. '국민개X끼'론은 한국 네티즌이 만들어 낸 최고의 사회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네임 옛날 것으로 바꿨습니다.)

픽션들 2010-06-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보수지식인.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하는 난민.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할 수도 없는 난민.

여기서 마지막 부류의 난민이 어째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인지는,
시민(난민)교육(부재)의 문제겠지요. 자유주의의 칼날을 휘두르는 보수지식인 재의식화 과정, 그런 교양강좌도 있으면 좋겠어요~

미지 2010-06-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김종철 선생 글 절실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자유주의라는 게 참 자기함정인 것 같아요, 박원순씨 보면... 수량적 평등주의에 그렇게 무력하게 넘어가다니요 -- 근본적 사유를 안 하니까 피상적으로 되나봐요... 저도 조심해야죠^^
 

이번주에 나온 중량감 있는 책 두 권은 중국공산당의 전 총서기 자오쯔양의 비밀 회고록 <국가의 죄수>(에버리치홀딩스, 2010)와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이다. 욕심은 굴뚝 같지만 당분간은 읽을 시간을 못 낼 것 같다. 일단은 리뷰기사를 챙겨놓고 '길게' 봐야겠다...  

 

한겨레(10. 05. 29) 노정치가의 ‘천안문’ 회억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탱크 앞을 가로막는 동영상, 그리고 청년들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연설하는 자오쯔양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빛바랜 사진 한장. 1989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그 사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다. 그 사건은 중국 한쪽에선 여전히 천안문(톈안먼) 폭동으로 또 한쪽에선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홍콩과 미국 등에서 출간된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순식간에 매진이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중국군의 탱크와 총칼이 광장을 휩쓴 1989년 6월4일 이후 2005년 숨질 때까지 가택에서 연금생활을 했던 노 정치가는 2000년 무렵 30개의 테이프에 몰래 육성을 녹음해 미국으로 반출했고, 자신의 비서 바오퉁의 아들 바오푸 등이 이를 글로 옮겼다.

자오쯔양의 회고에 따르면 89년 ‘혼란’의 전환점은 4월26일 <인민일보>에 게재된 사설이다. ‘반드시 기치를 선명하게 하고 동란에 반대해야 한다’는 제목의 이 사설은 4월15일 후야오방 서거를 계기로 추도식에 모여 부패 해결 등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을 순식간에 반동분자와 체제전복세력으로 낙인찍어 버렸고, 인민들의 분노를 들쑤셨다. 자오쯔양은 북한 방문에서 돌아온 뒤 이 사설을 수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의 개별 면담 요청을 거부하던 덩샤오핑은 5월17일 상임위원들을 소집해 계엄선포를 결정해 버린다. 3 대 2로 계엄이 결정됐다던 당시 회의가 사실은 어떤 투표도 없었다는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이 회고록엔 낱낱이 증언돼 있다.

리펑 등으로부터 학생 시위 확산의 책임자로 몰렸던 그는 19일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시위를 벌이고 있던 학생들을 찾아간다. “내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너무 늦게…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아무 상관없어요.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큰일이지…여러분들의 요구는 언젠가 받아들여질 겁니다.” 이 연설은 그의 마지막 공개 연설이었다. 반역과 영웅, 극단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정작 자오쯔양은 자신이 공산당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을 진정으로 위하는 시각이 달랐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한 듯하다.

1989년 이후 죽의 장막 뒤에 다시 숨었던 중국은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개혁개방의 속도에 불을 붙여 이제 미국과 함께 G2로 등장했다. 그사이 빈부 및 도농 격차는 끊임없이 벌어졌고, 관료와 상류층의 부패는 극심해졌다. 자오쯔양은 80년대의 회고에서 자신이 덩의 경제노선에 전적으로 찬성했지만 ‘속도’를 강조하는 그의 방향에 우려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21년 전 자오쯔양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개방의 속도조절과 정치개혁이 이뤄졌다면 지금의 중국이 달라졌을까. 누구도 단언할 순 없다. 89년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외세의 개입 등에 대해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간에 군대를 동원해 학생을 진압한 당 총서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울림은 여전히 크다. 광주민주화운동 30년을 맞은 우리에겐 더욱. 그 어느것도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다.(김영희 기자)  

   

한겨레(10. 05. 29) 근현대사 거목이 몸으로 쓴 ‘당대사’ 

강만길(77)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읽고 한홍구 교수가 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역사학자들이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군국소년’ 세대인 강 교수가 이 땅의 대다수 군국소년들과는 판이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가의 시간>은 역사학자로서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와 군국소년 세대이면서 그것을 거부한 삶의 궤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

강 교수 얘기에 따르더라도 “국내 역사학자가 남긴 것(자서전)은 어느 특정 시기만을 다룬 것 외에는 없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 걸까?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는 군국소년 세대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서전 목차에 올라온 강 교수 삶의 궤적을 약간만 훑어보면 짐작이 간다. 1933년에 태어난 그는 1940년에 마산의 ‘심상소학교’에 입학해 창씨개명과 우리말 금지 수난 속에 소년기를 보내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 그러곤 바로 사생결단의 신탁통치 찬반 탁류에 휩쓸렸다.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고 학도의용군이 됐다. 대학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겪었고 고려대 전임교원이 된 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시작됐다. 더불어 중앙정보부 남산분실 지하 취조실에서 그 자신의 수난도 시작됐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 두 차례나 해직당했다. 서대문 교도소까지 갔다. 자서전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고 위험한 세대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그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다. 광기에 가까운 그 기이한 행태는 최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 교수는 군국소년 대다수가 간 그 길을 왜 거부했나? 그리고 어떻게 철저한 평화주의자, 남북 대등통일론자, 민주주의자가 됐을까? 바로 그런 얘기를 매우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게 <역사가의 시간>이다. ‘분단시대’라는 말을 재창조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통일고문에다 남북 역사학자 교류를 이끌었으며 잡지 <민족21> 발행인을 지낸 그에게 ‘역사학계의 이단아’ ‘좌파 민족주의자’라 손가락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중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순수 실증주의’에 파묻혀 당대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 한국 역사학계야말로 이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가 좌파인 것이 아니라 실은 그를 좌파라 한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라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강 교수가 “한 사람의 역사학도 및 역사선생이 평생을 통해 겪은 민족분단시대로서의 우리 현대사 경험담” 정도라고 한 자서전 형식의 이 책은 그런 중대한 사실들을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전혀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춘 시대사류보다 오히려 더 심층적으로” 풀어가는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강조해온, 우리 역사학계에는 결핍된 대중성과 현재성을 획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학부 졸업논문으로 조선시대 상업기관인 시전(市廛), 석사논문으로 조선시대 수공업자들인 장인(匠人), 박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에 대해 쓰는 등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가 주목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조선사의 정체후진성론과 타율성론을 논박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과 빈민생활사 등 사회경제사 연구에 몰두한 것도 마찬가지. 그는 실증주의를 신봉하면서 탈식민 민족해방이라는, 가장 절박했던 당대사적 현실과제를 외면했던 주류 조선역사학계를 비판한다. 식민사학에 대항했던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 중 민족주의사학의 일부는 광복 뒤 남쪽에선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일제시대 실증주의가 결과적으로 식민사학과 식민통치에 기여했듯이 군사독재정권 추수라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강 교수는 6·25전쟁과 4·19, 5·16을 거치면서 그런 모순을 감지했고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후 바로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면서 다수 대중이 겪어내야 했던 자기 시대의 고통스런 현실과 그 근원이라고 할 분단문제·통일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역사학에 회의를 품었다. 그가 연구분야를 점점 현대사와 민족통일문제 쪽으로 옮기고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논객’으로서의 활동을 강화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강 교수는 박정희 시대 평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평가도 골고루 포함된 “종합적·역사적” 평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그 시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고, 생산성만이 아니라 분배정의까지 고려한 경제적 민주주의도 바닥이었다. 경제성장도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도 진행됐던 일반적 전후복구 과정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또한 희생당한 노동자·농민의 역할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력을 특정 세력이 독점한 상태하의 사회적 민주주의,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은 문화적 민주주의 모두 낙제점이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평가기준인 평화통일 진척도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종합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박정희 시대 평가는 과도하고 또 잘못된 것이다. 그는 역사학 연구자는 모름지기 “현실적 상황에만 얽매이고 싶지 않은 미래지향주의자, 어떤 이념적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으려는 철저한 평화주의자, 분단된 민족의 다른 한쪽을 세상 사람 모두가 적으로 간주해도 홀로나마 기어이 동족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평화통일론자”가 돼야 한다며 그런 사람을 좌경 또는 좌파 민족주의자라 부른다면 자신은 주저없이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 책 내용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지은이와 개인적 인연을 맺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인데, 한때 유명한 민주투사였다가 뉴라이트의 핵심이 된 사람, 말년이 씁쓸했던 천관우씨, <사슬이 풀린 뒤>란 책을 남기고 월북한, 좌도 우도 아니었던 오기영, 교토제국대 교수였던 비날론을 만든 화학자 이승기와 이태규의 대조적인 삶, 일본인 학자들과 20여 차례 방북하면서 만난 북쪽 인사들과의 기연과 인물평이 흥미롭다.(한승동 선임기자) 

10.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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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2:30   좋아요 0 | URL
투표독려 동영상 주소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zvIZQj-7rGw&feature=player_embedded

로쟈님의 서재를 찾으신 알라디너 여러분, 주변 분들께 투표 독려해 주세요^^!

로쟈 2010-05-30 20:05   좋아요 0 | URL
자기 주권은 자기가 챙겨야지요. 그나마 최소한으로 졸아들고 있는 형편에...

2010-05-31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신간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다.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란 문구가 표지에 박혀 있는데, 실제로 하버드의 학부생 7000명 가운데 천 명이 수강한다는 강좌 '정의'를 책으로 다듬은 것이다(강의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와 있다). 대학교수나 강사들에게 '강의 교수법'의 모범 사례로도 참고해볼 만하다. 흔히 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되는 샌델은 2005년에 한국철학회의 초청을 받아 내한하여 네 차례의 강연을 한 바 있으며 이 강연은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7)로 출간됐다(우리의 똑똑한 고등학생들도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 그의 정치철학적 입장에 대해선 책에 실린 해제와 인터뷰가 요긴하다. 어제는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또다른 '마이클'이 생각나기에, 역시나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의 전쟁론 두 권을 손에 넣었다. <전쟁과 정의>(인간사랑, 2009)와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 그것이다. 겸사겸사 두 마이클의 책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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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0년 05월 29일에 저장
구판절판
공동체주의와 공공성- 다산 기념 철학 강좌 9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 외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8년 2월
15,000원 → 15,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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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왈저, 정치철학 에세이
마이클 월저 지음, 데이비드 밀러 엮음, 최흥주 옮김 / 모티브북 / 2009년 1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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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정의
마이클 왈저 지음, 유홍림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9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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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0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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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6-07 16:13   좋아요 0 | URL
저 강의실 풍경은 정말 소름이 돋네요. 안그래도 어제 이 책 실물을 봤었는데 읽어 봐야겠습니다.
 

빌려볼 책들이 있어서 관내 도서관에 갔다가 정간실에서 <인물과사상>(6월호)에 실린 김진석 교수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 가지 정도만 빼면 그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한국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들을 찾아 옮겨놓으려다가 우연히 이기호 소설가의 지난주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 벌어지는 일은 하려던 일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철학자의 칼럼 대신에 소설가의 칼럼을 스크랩해놓기로 한다.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되는 가라타니 고진의 대의제 비판은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일보(10. 05. 22) 과두정이냐, 제비 뽑기냐

6.2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목요일,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었다. 전국에 생중계된 발표가 끝난 시각은 점심시간 바로 직전. 그래서인지 식당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화두는 온통 그쪽으로만 쏠렸다.

유능한 엘리트만 뽑는 선거
선거 운동 첫날을 발표 시점으로 삼은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과, 조만간 국지전이라도 발생하지 않겠냐며 우울한 낯빛으로 우울한 예측을 내놓는 사람, 교신기록 미공개를 예로 들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사람까지, 오가는 이야기들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래서 식당 안은 아연 알 수 없는 활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식당 안으로 들어와 명함을 돌리며 허리를 숙이는 구의원 입후보자까지, 2010년 5월 하순의 대한민국은 요란스럽고 수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의원 후보자가 주고 간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명함이어서 그랬겠지만,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후보자 약력만 열 줄 넘게 빼곡히 적혀 있다. 행정학박사라는 입후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행정학박사가 만들어가는 명품 구정 실현'으로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다. 바로 그 문구가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했던 내 마음을 더욱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선출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유능한 엘리트 집단이다. 예외 없이 일류라고 일컫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각종 고시에 패스했거나, 이른 나이에 공직이나 기업 대표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중에는 유독 교수, 변호사, 기업체 사장이 많다.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우월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선출된 엘리트들은 다시 민의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애를 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소소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출신 성분으로만 따지자면 가히 엘리트들의 과두정(寡頭政)이 실현된 곳이 바로 이 땅의 의회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본질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어느 글에선가 말했듯, 제비 뽑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 그대로 '누구라도 좋은', '하찮은'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그 말인즉슨, 민주주의 체제란 그 누구도 그 누구를 계몽하려 들지 않고, 무언가를 독점하려 들지도 않으며,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현상 또한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제비 뽑기와 같은 상태에선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바람은 일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정보를 손아귀에 쥔 채 시기를 저울질하는 일 따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 자체를 지금 이 땅에서 바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이 과두정의 체제를 모두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역시 충분히 괴이쩍다.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자꾸 누군가가 만들어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휩쓸린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다 그와 같은 연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찮은'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투표가 보다 더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선, 바로 그 바람을 배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바람을 만드는 자와, 바람을 가르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솎아내는 일 역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1 번부터 8 번까지, 그 누구를 제비 뽑기 하듯 뽑아도 아무 걱정 없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학박사이지만 행정학박사 학위 따위를 자신의 약력에 포함시키지 않는 명함, 나는 그런 명함을 받아보고 싶었다. 출신학교 따위는 더더군다나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막 돼먹은' 명함이 보고 싶어졌다.(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10. 05. 29. 

 

P.S.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에서 과두정과 추첨제(제비뽑기)에 관해 참고할 만한 대목을 뽑아본다. 먼저, 박명림 교수의 지적. 

시민됨의 인정이라는 것은 주권을 이양함으로써 공적 존재(즉 국가)를 형성한 뒤 국가의 역할을 통해 안전과 권리와 형평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별적인 시민의 존재가 전체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서 국가를 구성한 뒤 다시 국가에 의해서 개별적인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90-91쪽)

그리고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설명. 우리가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제가 아는 한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적어도 남성 시민들 내에서는 고대 아테네였어요. 아테네 시민들의 관심사는 철저히 권력의 평등한 공유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였죠.(...) 오늘날 공직자를 뽑을 때 어떻게 뽑는 게 민주적인 방식입니까? 우리는 선거잖아요. 그런데 아테네 시민들한테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과두정'이에요. 그들은 '추첨'을 민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 그게 고전적 구분이에요.
선거로 할 경우 열이면 열, 돈 있는 사람만 선거에 나갈 수 있습니다. 생업을 제쳐놓고 선거에 나갈 사람이 있겠어요? 특히 그 시대에? 그리고 거기 나가면  인물 좋은 사람이 한 표라도 더 얻게 돼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아테네 시민들은 그걸 집요하게 거부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추첨해서 아무나 맡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모이는 민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인 평의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 중 하나인 재판정 배심원까지 모두 추첨으로 뽑은 겁니다. 당시에는 판사, 검사가 따로 있지 않았으니까요. 해마다 추첨을 통해 뽑았어요.(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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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1:39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지도자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지만, 추첨은...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로쟈 2010-05-30 20:0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자연스런 방식이죠...

구보 2010-05-30 12:32   좋아요 0 | URL
출신대학을 밝히지 않은 명함을 받으면 '명문대가 아닌가보다'란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반성합니다.
가라타니고진에 매혹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네요.
요즘 읽는 책에도 어김없이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요.

로쟈 2010-05-30 20:08   좋아요 0 | URL
오늘 고진 번역자를 만났는데, 그래도 책은 생각만큼 안 나간다네요. 반가운 소식도 있는데, <트랜스크리틱>에 이은 고진의 또 다른 주저가 조만간 나온다고 합니다...

aleph 2010-05-30 14:01   좋아요 0 | URL
오오. 추첨이라.. 제가 가졌던 선거에대한 통념을 깨는군요.

로쟈 2010-05-30 20:07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이 로테이션으로 반장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아이들은 모두 천재다"는 믿음이 민주주의(평등)에 대한 믿음이고요...

픽션들 2010-06-01 22:49   좋아요 0 | URL
'자유'는 커녕 '평등'이라는 말만 들어도 빨간 불이 깜박깜박하는 현재의 한국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전직 방송작가였다는 사람과 선거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겨우 58년 게띠인 사람이...sbs여서 그런가...저는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과 정치 얘기를 (일부러)많이 하는 편인데 어떤 경우엔 콧김을 쑹쑹뿜는 기사분과 짧은 시간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이번주 한겨레21의 서평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내가 쓸 차례였지만 내가 쓴 건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나는 내주에나 쓰게 될 듯하다). 뤽 폴리에의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 2010)에 대한 것이다. 부제는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인데, 태평양에 이 작은 섬나라를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었던 것도 자본주의였으니 약 주고 병 준 셈이다. 우리의 운명뿐 아니라 지구의 운명도 그와 크게 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겨레21(10. 05. 28) 자본주의에 무너진 새똥 섬 

뤽 폴리에의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안수연 옮김·에코리브르 펴냄)의 부제는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다.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내용은 자본주의 물결이 한 나라를 ‘파괴’하고 ‘비극’으로 몰아넣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인산염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된 나우루
태평양에는 작은 섬이 많다. 이 가운데 삐죽 솟은 한 산호초 섬 위에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가는 철새들이 똥을 누고 가기 시작했다. 똥이 쌓여 땅덩어리를 이뤘다. 그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나우루공화국이다.  

나우루공화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의 작은 섬이다. 얼마나 작으냐 하면 21㎢, 연안을 따라 둥그렇게 이어진 도로를 일주하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현재 인구는 9천 명 남짓.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나라는 한때 ‘석유 재벌’ 국가에 맞먹는 수준의 부자였다. 197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달러에 육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조차 끊겼다 들어왔다 하는, 가난하고 가난한 나라다. 부와 극빈 사이를 오간 시간은 고작 30여 년에 불과했다.

산호초와 새똥과 바닷물, 오랜 세월의 화학적 결합으로 나우루를 덮고 있는 땅은 화학비료의 중요한 원료인 인산염으로 변했다. 서구 열강들이 나우루에서 인산염을 처음 발견했다. 그들은 나우루를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인산염을 마구 캐갔다. 그러나 나우루가 이에 대한 권리로 받는 돈은 수익금의 2% 정도에 불과했다. 지배받는 세월 동안 나우루는 자본의 힘을 알게 됐다.

1968년 독립한 나우루는 4천 명의 주민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 됐다. 인산염 산업은 국유화됐다. 정부는 국민과 공평하게 수익을 나눠가졌다. 부자가 된 국민은 일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받은 돈으로 최고급 자동차를 사서 짧은 해안도로를 할 일 없이 빙빙 돌았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고치지 않고 도로에 그냥 버려두고 새 차를 샀다. 농사도 짓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에서 들여온 인스턴트 식품, 신선한 고기와 과일로 식탁을 채웠다. 나우루인들은 뚱뚱해졌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이 섬에서 살찐 몸은 매력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인산염은 한정된 자원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나우루 국토의 80%가 파헤쳐졌고 1997년에는 광산 활동이 최소한도로 줄었다. 나우루는 부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나우루는 인산염이 빠져나간 텅 빈 땅이 됐다. 후유증처럼 대부분의 주민은 비만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 나우루인들은 손에 들어온 부를 방치한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부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돈은 날아가버렸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낙천성 때문에 그들의 비극이 더 애잔하다. 세상이 그들을 그대로 뒀다면, 물고기를 잡아 먹고 섬에서 난 열매를 따 먹으며 적어도 건강한 몸으로 생을 지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우루의 현재, 지구의 미래  
지은이는 나우루를 “부와 재앙이 동일한 기세로 쌓이는 세계의 교차로”였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나우루공화국의 몰락을 두고 지구의 몰락을 예견한다.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산염을 30년 만에 소진한 이들의 역사는 지구가 수억 년 세월 만들어놓은 석유를 200여 년 만에 다 써가는 인류의 미래를 말한다고. ‘돈’이 되는 곳이면 네 땅 내 땅 가리지 않고 파헤치고 뒤집어엎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나우루를 통해 먼저 보았다. 그런데 작고 연약한 섬나라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아 자본주의의 폐해를 논하는 이런 시선도 어쩌면 나우루인에게 잔인한 건지 모르겠다.(신소윤 기자) 

10. 05. 28.    

P.S. 책의 뒷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생태학적 재앙, 경제적 파산, 과도한 소비, 각종 만성질환, 자본주의 문명의 병폐를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여준 나우루의 이야기는 바로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문명의 병폐를 압축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토건공화국의 미래도 어쩌면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만큼이나 '교훈적인' 타산지석이 될는지도 모른다. 4대강 공사로 파헤쳐진 국토의 모습이 나우루공화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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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hun 2010-05-28 14:26   좋아요 0 | URL
직업은 토목기사지만 이런 사진 이런글 볼때마다 자괴감이 드네요. 도무지 이놈들은 목위가 허전해서 머리란걸 달고 있는건 아닌지...
생명과 생태를 고민하는 토목은 아직도 몇십년 뒤의 일일까요..에효

로쟈 2010-05-29 18:53   좋아요 0 | URL
몇십 년 뒤에 남아있을 '생태'가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