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로 넘어가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지만, 쾌락원칙을 따르는 마음은 또 얼른 '본격적인' 방학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방학이라고 해야 대학강의만 없을 뿐이고 다른 일은 두 배가 되지만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에 대한 '로망'을 아무래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 7월에 읽을 만한 책을 골라본다.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라면 7월은 그 정점이 아닐까. 이달부터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한 책들의 추천사가 한 줄로 짧아졌다. 덕분에 나도 '슬림'한 페이퍼를 올려놓을 수 있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책은 마종기 시인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 2010). "모국어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투명한 서정의 언어를 선보이는 마종기 시인의 시와 시작(詩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는 소개다. 시집은 지난 봄에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 2010)이 출간됐다. 루시드폴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 2009)도 이를 테면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사실 마종기 시인의 전집은 환갑을 맞은 해이던 지난 1999년에 나온 바 있다. 이후로 시인은 세 권의 시집을 더 펴냈으니 '전집'이 무색하게 됐다. 칠순을 넘긴 시인의 열정이 아직 열일곱 살 소년 같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책은 김시혁의 <통아프리카사>(다산북스, 2010). "월드컵이 열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를 우리 시각에서 평이하게 서술하여 읽어볼 만하다."는 것. 이건 안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추천 사유다. 아프리카사의 경우는 이미 한 차례 붐이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한비야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돼 베스트셀러가 된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 2005)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권 더 보탠다면 존 아일리프의 <아프리카의 역사>(이산, 2002)도 통사다. 월드컵 기간에 아프리카의 역사 한 권 정도 떼는 것도 '에티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 알라딘에선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책으로 인문서 가운데는 올 상반기 최고 베스트셀러일 듯싶다. 속칭 '대박'이 난 책. 추천사유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의의 딜레마에 대한 도전적인 개설서로 매우 흥미로운 책"이라는 거. 아마도'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소개가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같은 저자의 책인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8)에는 전혀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도 그런 심증을 갖게 한다. 어깃장을 놓자면 스테판 뮬홀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7)까지는 읽어주셔야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경로야 어찌됐던 간에 '정의'와 '도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을 수 있다면 지극히 다행스럽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온 국민 주치의 제도>(시대의창, 2010).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알기 쉽게 잘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추천사유다. 미국도의료 보험제도가 약간 바뀌었기에 좀 지나간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은 역시나 마이클 무어의 <식코>(2008). 그리고 또 마침 출간된 책이 <또 하나의 혁명쿠바 일차진료>(메이데이, 2010)다. "쿠바에서 ‘건강형평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 개념을 제도화시켜 전 세계 유일한 일차의료제도를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는 책". 도입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영리병원 문제를 다룬 책도 출간되길 기대해본다(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고칼럼은 http://h21.hani.co.kr/arti/culture/science/27588.html 참조).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새뮤얼슨 교수의 마지막 강의>(YBM Sisa, 2010). "현대 경제학계의 거인 새뮤얼슨 교수의 경제 평론을 모아서 펴낸 책으로 대가다운 안목이 돋보이는 평론에서 경제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고. '평론'이라고 하지만 분량상 '칼럼' 모음집 성격의 책이다. 특이한 건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새뮤얼슨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게 별로 없다는 점. 대표작인 <경제학>이 1959년부터 몇 차례 번역된 듯싶지만, 작년에 19판이 나온 원저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평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해야 할까. 공저인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지식산업사, 2008) 정도가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이다(서문만 쓴 책이지 않을까 싶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빌 브라이슨의 <거인들의 생각과 힘>(까치, 2010). "자신의 분야 이상을 뛰어넘는 창조적 생각으로 이 세상을 이끈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추천사유다. 저자가 빌 브라이슨으로 뜨지만 그가 서론과 편집을 맡았고 나머지는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쓴 책으로 영국 '왕립학회 창립 350주년 기념 과학 에세이집'이다. 왕립학회의 역사가 곧 근대과학사라면 '대단한' 일이긴 하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2003)을 다시 손에 들 수도 있겠다. 시간이 없으신 문들은 일러스트레이션판으로. 시간이 남는 분들은 아예 원서로.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태호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10). "옛날 화가들이 다양한 재료 위에 그려낸 우리 땅의 모습이 집성되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라는 평이다. 그러고 보니 흥미로운 주제고, 진작에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하다. 미술사가인 저자는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08)란 전작도 갖고 있다. '시리즈'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검색해보니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여성신문사, 1998)이 절판된 책으로 뜬다. 때가 안 맞었던 듯한데, 포맷을 좀 바꾸면(표지라도) 재출간해도 되지 않을까싶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스티븐 로져 피셔의 <문자의 역사>(21세기북스, 2010)다. "지식 전달의 근본 매체인 문자의 탄생과 변화를 추적하며, 특히 한글의 세계적 위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는 게 추천사유다. <문자의 역사>란 타이틀로는 이전에도 두어 권 책이 나온 바 있지만, 가장 탄탄해 보인다.     

9. 교양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교양서는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축구란 무엇인가>(민음인, 2010).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가 된 축구의 역사와 흥행에 성공한 비밀을 해독하고 있다"고.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북마크, 2010)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왓북, 2010) 같은 국내서도 눈에 띈다. 일단 '마크'만 해놓는다.    

10. 정신병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정신병'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정신병자'의 파울 슈레버의 회상록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자음과모음, 2010). 프로이트부터 벤야민, 라캉, 들뢰즈/가타리, 지젝, 카네티, 샌트너 등의 지성인들을 매혹시킨 바로 그 회상록이다. 나는 영역본과 샌트너의 연구서만 갖고 있었는데, 좀 여유를 찾으면 이제 이 기이한 정신병의 세계로 들어가볼 수 있겠다.  

   

그러러면 들뢰즈/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도 다시 나올 필요가 있다. 나도 사실 '슈레버'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앙띠 오이디푸스>의 서두 덕분이었다. 푸코가 재판기록과 진술을 편집해놓은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 2008)도 이 참에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피에르 리비에르는 젊은 농부로 1835년 6월 3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모친과 누이 그리고 남동생을 살해한 존속살해범이다. 절판된 책으론 엽기적인 '파팽 자매' 이야기를 다룬 <잔혹과 매혹>(이제이북스, 2005)도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간단한 사건 개요는 이렇다.  

1933년 2월, 프랑스의 시골 도시 르 망에서 하녀로 일하던 한 자매가 주인 모녀의 눈알을 뽑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눈알을 다 뽑은 뒤 자매는 망치로 주인 모녀의 머리를 때리고, 부엌칼로 몸통과 다리를 베었다. 일을 마친 자매는 범행을 은폐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다락방에 있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얼마 후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당했다.



이 기이한 사건이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해낸 건 당연한 일. 장 주네는 희곡 <하녀들>을 썼고(사진은 공연 이미지), 몇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여하튼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엔 이런 책들도 읽어볼 수 있겠다는 것.   

10. 06. 26.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역시 우연찮게도 존속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군. 개인적으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강의도 예정돼 있어서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인데, 이번엔 민음사판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7월초엔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죄와 벌>, 그리고 7월말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런 게 여름나기용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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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2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면 전 '율 브리너'가 먼저 생각나곤 해요.(역시 활자보다 영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티를 팍팍내고 있죠.)

로쟈 2010-06-26 15:32   좋아요 0 | URL
네, 그나마 요즘 학생들은 율 브리너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sophie 2010-06-2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녀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거군요..

로쟈 2010-06-26 15:32   좋아요 0 | URL
네,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더 있을 텐데, 소개된 건 장 주네뿐입니다...

2010-06-26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모사케르 2010-06-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문화센터에 수강신청했습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오랜만에 들어와서 커리큘럼 안내가 어디있는지 모르겠어요..

로쟈 2010-06-28 15:23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din.co.kr/mramor/3790488 를 참고하시길.^^ 그냥 갖고 계신 책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아무래도 월드컵 기간이라 출판계와 서점계가 불황이라고 하는데, 그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론 주변에 쌓아놓고 있는 책들의 높이가 가속도가 붙은 듯이 올라가고 있다. 어제오늘만 하더라도 수중에 넣은 책이 열댓 권이 넘으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거기에 포핟돼 있는 책이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책갈피, 2010)이다. 전체 4부작 가운데, 3권이 이번에 나왔다.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시학사, 2001)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자세한 평전이어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토니 클리프는 트로츠키 전기 4부작도 갖고 있다). 일단은 어떤 책인지 소개기사를 참고하도록 한다.   

 

세계일보(10. 06. 26) 평등국가 꿈꾼 이상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최초로 국가 체제에 적용됐던 소련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혁명 전후의 러시아나 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가급적 레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스탈린주의가 레닌을 계승한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레닌은 스탈린의 폭압적 정권 쟁취를 비판했고, 스탈린 같은 폭압적 지배계급이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노동자 계급이 평등하게 국가를 건설해 이상 사회를 펼치는 것을 꿈꾼 이상주의자였다.”

레닌은 죽기 전 스탈린과 끊임없는 노선 투쟁을 벌였다. 레닌은 노농감찰부를 당 기구에 구성해 당의 관료화와 당의 지배 계급화를 저지하려 애썼다. 레닌의 머리에는 ‘옛 소련식 팽창주의’는 없었다. 동유럽에 폭압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하고 확산하려는 정책은 아니었다. 레닌은 불가피한 경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스탈린처럼 탱크를 보내 동유럽을 공산화한다는 야심은 없었다.

저자는 “레닌은 진정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진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소련은 사회주의 탈을 쓴 국가자본주의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닌 역시 노동자들이 단결해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필요하다면 폭력을 수반해야한다는 국가혁명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레닌은 스탈린과는 분명히 다른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꿈꿨지만 건설 방법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동안 출간된 많은 레닌 평전들은 레닌을 당대 현실을 초월한 성인처럼 묘사하고 그의 말과 글을 종교 경전이나 교리처럼 떠받들고 있지만 실은 대부분 아전인수격 해석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 책이 레닌의 장점과 정치적 위대성을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그의 오류와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저자의 이 같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정승욱 기자)  

10. 06. 25. 

P.S. '레닌 읽기'에 대해선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기에 따로 적지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읽고 싶지만 당장은 계획일 뿐이다. 그럼에도 토니 클리프판 레닌 평전의 마지막 권 <볼셰비키와 세계혁명>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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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6-26 14:54   좋아요 0 | URL
토니 클리프를 그냥 저널리스트라고만 소개하다니 좀 이상하네요.유명한 트로츠키 주의자라고 소개해야 하는데...아마 기자가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나봐요.

로쟈 2010-06-26 15:27   좋아요 0 | URL
저자 소개에 '저술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돼 있어요. 저도 '트로츠키주의자'로 알고 있었는데,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정설 트로츠키주의'와는 결별한 걸로 돼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6 21:42   좋아요 0 | URL
클리프의 저서 중 <소련국가자본주의>라는 책이 있는데 트로츠키의 소련체제 해석론과 공통점이 있느냐 여부로 이런 저런 논쟁이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정성진 씨가 이 분야의 전문가인데 정 씨 자신이 클리프가 주도한 사회주의노동당 계열이라서...우리나라 트로츠키 주의자들도 이쪽 계열이 강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2:36   좋아요 0 | URL
공산주의자들이 이 땅에 와서 지금을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할듯 싶습니다.
완전한 평등이라...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 몰랐던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 단 한번이라도 성공한적 있었던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듯...

로쟈 2010-06-27 15:11   좋아요 0 | URL
지금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중요한 것이죠.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구요. '본성'을 고려한 다윈주의 좌파적 기획도 있을 테고, 본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획도 가능하겠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9:3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댓글은 항상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돈 후안 읽기'나 '톨스토이 중단편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으려다가 문득 6월 25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한국전쟁 읽기'로 방향을 튼다.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서들이 여러 권 더 출간됐지만 오히려 작년보다 못한 듯도 싶다.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아직도 완역되지 않는 것이다. 내달에는 그의 새로운 책 <한국전쟁>이 출간된다. 얇은 입문서인 듯한데, 그거라도 빨리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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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5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은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후에 일이 있어서 오전에 바쁘게 작성하여 보낸 원고인데, 매번 턱걸이하는 기분이 든다. '권장도서' 문제를 빌미 삼아 '몰상식한' 현실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적었다.     

경향신문(10. 06. 22) [문화와 세상]‘유해한 책’ 과 ‘유해한 현실’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들이 쓴 <교양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다 보니 ‘읽어서는 안되는 책 15권’이란 항목이 눈에 띈다. 일본에도 우리처럼 아직 ‘불온도서’라는 게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사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따로 골라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목록은 거꾸로 ‘한번 읽을 테면 읽어보라’고 광고하는 의미도 갖는다. 2008년에 국방부 불온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예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금지한 책의 목록에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셀린의 <밤 끝으로의 여행>,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포함돼 있다. 읽다 보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게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대한 평이고, 순진한 영혼을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는 책이라는 게 <차라투스트라…>를 읽지 말도록 권유하는 이유다.

그런 금지도서 목록과 반대되는 것이 권장도서 목록이다. 각 대학별로 제시하는 필독 고전목록 외에도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 목록을 들여다보면 문득 권장도서 목록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일단은 책이 너무 많으며, 따라서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다. 다 읽을 수 없기에 가려 읽어야 하고, 가려 읽기 위해서는 일종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믿음이 거기에 뒤따른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청소년에게 적합한 건 아니라는 판단에 동의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에서 등장인물인 술집 작부 백화의 “내 배 위로 연대 병력이 지나갔어”라는 대사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권장도서로는 불가하다는 주장과 마주하게 되면 ‘읽을 만한 책’의 기준에 합의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하더라도 기준에 따라서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에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반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청소년을 여전히 자율적인 주체라기보다는 훈육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문제다. 어느 정도의 독서력과 분별력을 갖춘 청소년이라면 어떤 책을 읽을지 말지는 스스로 판단하여 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권장도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행여 그들이 ‘전염병’에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항균실’에 감금해놓기보다는 면역을 키워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권장도서 목록 정도 가지고 과연 온전한 지도와 통제가 가능한지가 문제다. 과거 노출 수위가 높은 영화 장면들을 ‘가위질’하고 상영하던 것처럼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대사와 장면을 삭제한 ‘안전한’ 문학작품만 청소년들에게 읽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권장도서 목록에 빠져 있다고 청소년들은 <삼포 가는 길>을 안 읽게 되는 것일까?

아니,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해한 책’ 이전에 ‘유해한 현실’이다. 사실 술집 작부의 말보다도 청소년들에게 더 유해한 것은 관행적으로 향응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스폰서 검사’ 스캔들이지 않을까? 무얼 보고 배우라는 것인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안보의식을 고취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전쟁 시나리오나 공모한다는 서울시의 행태는 또 뭔가? 이런 ‘몰상식한’ 현실을 방기한 채로 과연 ‘청소년 권장도서’의 의의를 옹호할 수 있을까? 청소년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위해서도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권장할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10. 06. 21. 

P.S. 기사를 옮겨놓기 위해 검색을 하는데, 내일자 '책읽는 경향'에서 다루는 책이 <로쟈의 인문학 서재>다. 반갑기도 하고 일견 놀랍기도 한 마음에 이 또한 옮겨놓는다(그래도 '유해한 책'은 아닌가 보다).  

경향신문(10. 06. 22) [책읽는 경향]로쟈의 인문학 서재 

반복하자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 ESR가 우리의 존재 근거이자 원리이다. 인간이 ‘의미의 질병’을 앓는 동물인 것은, 그러한 ESR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이걸 우리의 대뇌가 급속하게, 불완전하게 진화한 결과로 본다.

니체의 표현대로, 우리의 위장을 닮은 대뇌가 해야 할 일은 위장과 마찬가지로 소화 작용일 뿐이다. 그러한 작용으로써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기운 나게 하는 것이 본분이지만, 이 대뇌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소화해낼 수 없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What’s it all about?”(이게 다 무슨 수작일까? 혹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이 그 물음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에 대한 물음이고 요구이다. (203쪽)

지금 이 대목에서 니체를 읽어주고 있는 로쟈 선생이 환기해주는 사실은 인간이란 먹고, 살고, 낳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살고 다음 세대에게 그저 넘겨주는 역할만 하면 되는 ‘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먹고 살고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사실은 감동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 안도감이 섞인 감동을, 우리는 동물처럼 단순한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 자부심이 섞인 불편함을.(권해진 | 미래의창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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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보 2010-06-2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통해 니체,데리다,지젝 읽기가 좀더 명료해졌습니다.
다음 책 출간을 고대하는 독자로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로쟈 2010-06-22 17:25   좋아요 0 | URL
저자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2010-06-2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 두번째 이야기를 일부 발췌해놓는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5668 에서 읽어보실수 있다. 제목은 '사랑의 길'이라고 붙어 있는데 이야기의 빌미가 된 뤼스 이리가레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연마금속을 찾으러’ 가는 여정도 물론 ‘막연한’ 목적은 품고 있다. 나는 지난주에 이리가레의 <사랑의 길>(동문선, 2009)을 구입했고, 어제는 도서관에서 영역본(The Way of Love)도 대출했다. 그것이 시작이자 종점이 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2002년에 나온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리가레의 저작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인데, 이리가레는 서문에서 책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특히 어떤 식의 언어 사용을 통해 우리 사이의 사랑의 실천으로 존재할 수 있거나 존재해야 할 것을 예견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이의 사랑의 지혜를 준비하는 것인데, 이 영역은 서구철학이 스스로를 정의해 왔던 바의 지혜, 특히 정신적 지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만큼 핵심적인 영역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사이의 사랑의 지혜(wisdom of love between us)’를 준비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알랭 핑켈크로트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 ‘사랑의 지혜’는 ‘철학’(=필로소피아)의 어원이 되는 ‘지혜의 사랑’, ‘지혜에 대한 사랑’을 뒤집어 놓은 거울상이다. 즉, 그것은 철학의 거울상이자 ‘다른 철학’이다.(...)  

흠, ‘무릎과 무릎 사이’로 시선을 모아놓고 ‘다른 철학’으로의 여정을 떠들게 되면 어디서 ‘연장’이나 날아오는 게 아닐까? 아직은 ‘우리가 남이가’ 따위의 호소도 먹히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이’는 아직 ‘냉정한’ 사이다. 그러니 나는 뭔가를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무엇에 대해서? 가슴에 대해서! ‘가슴과 가슴 사이’에 ‘스페큘럼’을 갖다 대지는 않겠지만, 시선이 꽂히게 한다는 점에서는 ‘무릎과 무릎 사이’와 닮았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도 여성의 가슴은 엉덩이를 모방해 진화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 가슴과 가슴 사이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클리비지(cleavage)’다. 화학에서의 ‘분열’, 생물학에서의 ‘난할(卵割)’을 뜻하기도 하므로 한국어 ‘가슴골’보다는 용례가 다양하고 고상하다. 고상하다?   



고등학교 때인가 ‘cleavage’란 단어를 처음 보고 ‘감동’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런 ‘사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점(사실대로 말하면 그 ‘사이’에 주목한 것은 ‘cleavage’란 단어를 접한 이후다), 그리고 둘째는 전혀 야하지 않다는 점. ‘야하지 않다’는 인상이야 생소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슴골’과 비교할 때 적어도 ‘노골적’이진 않다. 이 여성적 ‘가슴골’과 대비되는 것은 무엇일까? 남성의 ‘등판’ 혹은 ‘등짝’이 아닐까? 정색하고 말하자면, 나는 ‘남성적 주체성’과 ‘여성적 상호주체성’의 대비가 이 ‘등판’과 ‘가슴골’을 통해서 신체적으로 구현된다고까지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10.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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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 2010-06-2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비지란 말이 어느새 많이 사용되는데.. 앙가슴이라는 우리 말도 있습니다. 전 클레비지 보다 앙가슴쪽이 더 어감이 좋더군요. (그런데 뭔가 불안한 느낌은...-.-;;; ) 그냥 순수하게 말입니다..

로쟈 2010-06-21 20:32   좋아요 0 | URL
'클레비지'라고 읽으시는군요. 저도 그렇게 적었는데, 편집자가 '클리비지'라고 고쳐놓았어요. 발음이 그렇더라구요. '앙가슴'은 전혀 뜻이 와닿지 않는데요.^^;

조아 2010-06-21 23:13   좋아요 0 | URL
사전적 의미를 보면, 두 젖 사이의 가운데 이니 클리비지와 같은 부분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표현은 아닌것 같지만 서도요.

그래도. 중학생시절 읽던 판타지소설에서 나온 뽀얀 앙가슴이라는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은 것을 보면.. .. 뭐 때가 그런 떄여서 겠지요...;;

푸른바다 2010-06-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eavage에 이런 다양한 뜻이 있는 건 잘 몰랐군요.^^ Cleavage는 광물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쪼개지는 현상을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로쟈 2010-06-21 20:33   좋아요 0 | URL
네, 어원이 쪼개지다 쪽 같아요. 그런 의미가 확장돼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성적이란 인상을 주나 봅니다...

hnine 2010-06-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eavage는 수정난에서 일어나는 '난할'을 뜻하기도 합니다 ^^

로쟈 2010-06-21 23: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더군요. 저도 본문에 적었습니다.^^

hnine 2010-06-22 08:15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그렇네요 ^^
지금 로쟈님 동영상 강의 들으면서 다른 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주로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잉여 공간,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네요^^
이리가레의 책 표지는 심장 인가봐요.

로쟈 2010-06-22 15:48   좋아요 0 | URL
네, 표지가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