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명성이 높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이 방한하여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미셸 푸코와 피에르 부르디외 등 명망 있는 최고의 학자들이 모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일반 대중을 위해 강의를 한 바 있다. 조금 부럽기도 한 학제인데, 인터뷰 기사를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현직 총장이 보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서울신문(10. 07. 03) “대학은 서비스입니다” 

“상아탑 안에 갇힌 엘리트들만이 공유하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소통하고 새로운 지식을 나누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과 교수의 진정한 존재 가치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집단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의무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 기초학문 경시 아쉬워”
한국을 처음 찾은 코르볼 총장은 국내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열기에 놀라워하면서도, 기초학문을 경시하는 풍토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유럽의 대학들은 기초부터 순차적으로 연구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대학에서는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더 높이 사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이런 대학 문화는 응용과학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코르볼 총장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존재 이유를 ‘지식의 전파’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설립 당시 프랑스에는 소르본대학으로 대표되는, 바깥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지식인들만의 대학’이 있었다.”면서 “이 같은 틀을 깨고 대학과 교수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학교가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1530년 설립된 콜레주 드 프랑스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걸쳐 모두 52명의 석좌교수가 몸담고 있다.

●연구 성과 시민들에 강의 의무화
석좌교수들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연구에 대해 공개강의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점이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수업료도 없다. 지난해에만 무려 12만명의 시민들이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하는 강의를 들었다.  

서울신문(10. 07. 03) “교과서의 죽은 학문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지식을 가르친다” 

프랑스 지성의 전당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은 콜레주 드 프랑스가 프랑스 지성을 상징하게 된 이유로 ‘융통성과 역동성’을 꼽았다. 연구영역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학문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고 학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교수들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를 듣는 것은 ‘교과서 안에 있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석학들이 직접 연구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지식’을 듣고 싶어 하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는 올해부터 한국 기초기술연구회와 함께 국제협력활성화사업을 진행한다.

●융통성·역동성이 최대 장점
→콜레주 드 프랑스가 5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비결은 어디에 있나.
-1530년 설립 당시의 정신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르본 대학을 비롯한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들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닫힌 연구를 했다. 이들은 기초과학이나 언어학 등은 학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대중을 우매한 존재로 여겼다. 콜레주 드 프랑스는 이런 엘리트들의 인식을 깨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완전히 열려 있는 대학, 지식을 나누는 대학의 의미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는 공짜이고, 강의내용에 대한 저작권도 없다. 애플 앱스토어에 올려진 무료강의는 지난 한 해에만 500만시간 넘게 다운로드됐다.

●엘리트의식 깨기 위해 설립
→노벨상, 필즈메달 등의 수상 실적에서 규모가 수백배 큰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비견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구방식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융통성과 역동성을 꼽을 수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들은 강의 주제를 정하는 데 있어서 외부 간섭으로부터 100% 자유롭다. 가능성만 있다면 어떤 접근방식도 용인된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학문의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도 동기부여가 된다.

●1시간 강의 최소 2주 준비
→많은 대학교수들이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연구중심대학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들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프랑스나 미국의 다른 대학교수들도 같은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는 기존 대학과 다르게 학위과정이 없다. 교수들이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얘기다. 교수들은 시민을 상대로 강의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강의 준비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1시간의 강의를 위해서는 최소 2주 이상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KAIST, 연세대, 이화여대 등 한국 대학을 방문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고, 유럽 대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은 첫 방문인데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연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열의는 정말 뜨거웠다. 유럽 대학과의 차이는 연구를 대하는 가치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를 중시해온 유럽에서는 D를 가기 위해서는 순차적으로 A, B, C를 거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권의 대학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위험성이 높은 연구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박건형기자) 

10. 07. 03.  

P.S. 프랑스 축구는 최강의 자리는 진작에 내놓았지만, 콜레주 드 프랑스 같은 프랑스식 교육제도는 아직 세계 최강인 듯싶다. 인상적인 건 두 가지다. 이 교육기관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이 철저하게 '지식의 전파'에 놓여 있다는 것. 때문에 모두 시민에게 개방돼 있고, 저작권도 없다. 말 그대로 지식의 '코뮤니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실제 효과. 연간 12만 명이 강의를 듣고 무료강의는 500만 시간 넘게 다운로드 됐다는 것. 우리에게 이에 견줄 만한 게 있다면 EBS 수능방송 정도가 아닐까. 혹은 EBS의 지식채널? 5분 분량의 지식을 50분, 100분 분량의 '사유'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 그것이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국가는 이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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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2010-07-04 10:18   좋아요 0 | URL
과거에 김용옥 교수의 TV 강연도 있었죠, 그 이후에 몇몇 TV 강연 프로그램들이 생겨났지만, 그때처럼 파격적인 시간대에 편성되어 이목을 집중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그것을 인기에 영합하는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열기는
누군가를 기점으로한 "자신의 열망의 확인"에 다름아니었습니다. 모두들 김용옥이라는 한 개인의 강연을 들으러갔지만, 강연이 끝날 무렵 저마다 마음 속에 다른 열망들을 품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면 끔찍 했겠죠,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열기와 열망 자체였습니다.
앞으로 또 언제, 이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훌륭한 석학이 그처럼 대중들을 향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연을 하는 날이 오게될지..........

로쟈 2010-07-04 16: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지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있는 것이죠. 그걸 모른 체하는 대학과 정부가 있는 것처럼...

푸른바다 2010-07-04 19:50   좋아요 0 | URL
파리에 갔다가 콜레주 드 프랑스를 굳이 찾아 간적이 있었습니다. 문이 굳게 잠궈져 있어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요. 소르본 대학(지금의 파리 1대학) 뒤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그 좁고 차도 별로 많이 다니지 않는 듯 보이는 길에서 바르트는 어떻게 차에 치게 되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봤답니다.^^

로쟈 2010-07-04 20:32   좋아요 0 | URL
그런 교육기관을 세우는 게 한국에선 불가능한 건지 궁금해요...
 

이번주에 출간된 가장 놀라운 인물 평전은 마쓰모토 겐이치의 <기타 잇키>(교양인, 2010)다. 저자는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문학과지성사, 2010)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일본의 평론가. <기타 잇키>(2004)는 30여 년에 걸친 그의 기타 잇키 연구의 결정판이라 한다. 국역본의 분량만 1220쪽.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다른 책들처럼 '문제적 두께'를 자랑한다(히틀러와 스탈린, 괴벨스 등의 평전이 포함돼 있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기타 잇키>는 1936년 일본 전역을 뒤흔든 2.26 쿠데타의 정신적 지도자 기타 잇키의 삶과 사상을 끈질긴 추적과 철저한 고증으로 되살려낸 전기이자 역사서이다. 쿠데타의 배후라는 이유로 역사의 무덤에 깊숙이 매장당한 기타 잇키는 박정희와 5.16 쿠데타의 사상적 배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기타 잇키는 2차 문헌에서만 몇 차례 이름을 접해본 인물인데, 이 책을 통해 그 '거대한' 실체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일본 사상계의 천황 마루야마 마사오는 기타 잇키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한다. “기타 잇키의 <일본개조법안대강>은 쇼와 시대 초국가주의 운동의 <나의 투쟁(Mein Kampf)>이었다.” 그 <일본개조법안대강>도 마땅히 소개되면 좋겠다. 이럴 땐 대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기타 잇기>는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인데, 겸사겸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히틀러와 괴벨스를도 기회가 닿는 대로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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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잇키-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
마쓰모토 겐이치 지음, 정선태.오석철 옮김 / 교양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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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1- 의지 1889~1936
이언 커쇼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0년 1월
50,000원 → 45,0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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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2- 몰락 1936~1945
이언 커쇼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0년 1월
60,000원 → 54,0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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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권력
로버트 서비스 지음, 윤길순 옮김 / 교양인 / 2007년 2월
45,000원 → 40,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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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자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마감일이던 월요일에 성적 처리를 하느라 저녁이 다 돼서야 바삐 작성해서 보낸 원고였다.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거리로 골랐는데, 지난주에 강의에서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이긴 하지만 첫번째 연재에서 '말인'(최후의 인간)을 다룬지라 이번에는 '최초의 인간'을 떠올린 것이 우연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겨레(10. 07. 03)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니까!”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마주하게 되면 꼭 생각나는 작가는 알베르 카뮈다. 작품에서 접했을 뿐이지만 그가 찬양한 알제리의 태양과 바다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방인>의 작가’라는 게 카뮈에게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소개 문구지만, 그는 ‘<최초의 인간>의 작가’로 기억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겨진 유작이다. 아마도 완성되었다면 이 소설은 어머니에게 바쳐졌을 것이다. “이 책을 결코 읽지 못할 당신에게”라는 헌사가 초고에는 남아 있다. 남의 집 ‘하녀’ 일을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귀가 어두운데다가 문맹이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의 이 자전적 소설은 그 어머니에 대한 예찬이자 ‘기이한 사랑’의 고백으로 읽힌다.   

카뮈는 20대 초반에 발표한 최초의 산문집 <안과 겉>의 재판 서문을 20여년 만에 붙이면서 이런 바람을 적었다. “한 어머니의 저 탄복할 만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혹은 사랑을 찾으려는 한 사나이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더 그려보겠다고. <최초의 인간>은 바로 그런 노력의 소산이기에, 이 작품에서도 가장 궁금한 대목은 ‘어머니의 침묵’ 장면이다.

일찍이 남편을 전쟁터에서 여읜 카뮈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자기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같이 살았다. 집안에서는 카뮈의 외할머니가 군주처럼 군림했고 모든 일을 결정했다. 아이들의 훈육도 할머니의 몫이어서 잘못을 할 때마다 회초리질을 했는데, 너무 아프게 때릴 때면 어머니는 말리지는 못한 채 “머리는 때리지 마세요”라고만 말하는 정도였다.

<안과 겉>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어머니에겐 의자에 앉아 멍하니 마룻바닥을 들여다보거나 해질 무렵 발코니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럴 때 어린 카뮈가 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슬픔에 잠겼다. 그의 어머니는 한 번도 그를 쓰다듬어준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내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아들 또한 우두커니 서서 어머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렇듯 침묵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카뮈 문학의 모태적 풍경이자 원초적 이미지이다. 그것이 모태적이고 원초적이라는 것은 <최초의 인간>에서 늙은 어머니가 수십년 동안 고된 노동을 해왔음에도, 주인공 코르므리가 어린 시절 뚫어지게 바라보며 탄복해 마지않았던 그 젊은 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암시된다. 카뮈의 문학 전체는 어머니의 침묵과 ‘기이한 무관심’이라는 이 ‘수수께끼’와의 대결이 아니었을까.   

<최초의 인간>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 또한 그 ‘수수께끼 풀이’의 한 장면이다. 어린 코르므리가 부른 노래를 이웃 아주머니가 칭찬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래요 좋았어요. 쟤는 똑똑해요”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부드럽고 뜨거운 시선을 느끼면서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를 사랑한다니까.”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으며, 어머니가 사랑해주기를 전심전력으로 열망해왔다는 걸 깨닫는다. 동시에 항상 그 사랑의 가능성을 의심해왔다는 것도. 아들 카뮈의 운명은 바로 그 어머니의 침묵과 사랑 사이에서 진동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조금 일반화하자면, 카프카 문학의 비밀이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놓여 있듯이 카뮈 문학의 경우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밑바탕으로 한다. 작품에서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 없이 자란 인간’을 가리키지만, 그 ‘최초의 인간’에게도 어머니는 마치 바위처럼 존재했다.  

10. 07. 02.  

P.S. 한편, 아버지 없이 자란 '최초의 인간' 카뮈에게 아버지는 사형(단두대형) 집행을 보러 갔다 와서 구토를 하며 앓아누웠다는 '이야기' 속의 아버지이다. 이 이야기는 <이방인>에서도 뫼르소의 아버지 이야기로 등장하며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도 서두를 장식한다. 사형제도에 대한 카뮈의 끈덕진 성찰과 문제제기는 이러한 체험에 근거한다.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다시 읽으며 새삼 이 문제에 주목하게 됐는데, 이 주제에 대해서는 기회를 만들어 자세하게 분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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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냐 반역이냐

격주간 <기획회의>(274호)에서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꼭지를 읽었다. 인터뷰이는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이다. 밀턴과 칼라일 연구자이자 <서양 문명의 역사> 등 다수 번역서의 역자, 그리고 <번역은 반역이다>의 저자. 인터뷰의 타이틀은 '인문학, 지금부터 '새 역사'를 써야 한다'인데,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경청할 만한 대목들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우리의 경우 인문학의 황금기가 따로 없었기에 인문학 '부흥'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박 교수는 그럼에도 인문학 부흥을 위해 다져야 할 기본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먼저 독서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뒷걸음만 치고 있군요. 90년대만 해도 인문서 초판을 2,000-3,000부도 찍었는데 요즘은 500부, 1,000부더군요. 점점 더 책을 안 사본다는 거지요. 게다가 대학 교수들은 마치 올림포스 산 정상의 신들처럼 고고한 상아탑에 유폐된 채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아니, 소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아요. 평생 인문학 교수 했다면서 대중과 소통 가능한 저서 한 권 없이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을 과연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제도권 속에서 요구하는 논문만을 줄곧 쓴다는 점에서 '인문 기능인'이라고 해야지 않을까요?"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와 번역 문제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한다.  

"인문학이란 기본적으로 글읽기와 글쓰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한글 콘텐츠는 정말 빈약하지요. 읽을 글이 태부족입니다. 한글은 창제된 후 상당히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20세기 전반기에는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활용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결국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번역을 통한 양질의 한글 텍스트 확보는 시급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온전한 콘텐츠 확충을 위해서는 번역이 절실해요. 전 세계 모든 지식과 정보를 모국어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와 비전이 있어야죠. 모국어에 대한 이런 포부와 야망마저도 없다면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전시작전권' 환수도 버거워하는 국가인지라(이유야 어찌됐든 소위 '군사주권'을 방기하는 것인데) '지식주권'까지 바란다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건 현재 우리나라의 번역과 인문학 수준에 대한 박 교수의 평가인데,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서구 편향적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이슬람 문명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슬람교가 창시된 직후 수백 년 동안 아랍인들은 찬란한 문명을 창조해냈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은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했지요. 그것을 12세기 서유럽인인 라틴어로 중역해서 만든 것이 기독교 신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결합한 스콜라 철학이고요. 그런데 21세기 우리는 아직도 한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없습니다. 아랍보다 1,100년, 서유럽보다는 900년 뒤졌네요.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쓴 산문에서 '1930년생'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했어요.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구세대'는 해방되던 1945년에 15세 이상이었고 따라서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죠. 반면 193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는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김수영은 구세대가 일본어를 통해 문학의 자양을 흡수한 데 비해, 신세대는 일본어 해독 능력의 결여로 지적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 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했어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른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겁니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 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흔히 일본을 번역 천국이라고 하죠. 일본어로 세계의 고급 정보와 지식을 다 습득할 수 있어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쿄토산업대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어요.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습니다. 저는 한글만 갖고서도 노벨상을 탈 정도가 돼야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봅니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아예 '번역국'을 설치하여 국가 주도하에 수천, 수만 종의 서양 학술서를 번역했던 일본의 처지와 견주어 보면 우리는 100년 이상 뒤진다는 것이 박 교수의 냉정한 평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이미 19세기에 어머어마한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우리 사회는 지금도 그 필요성을 조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에 대한 학계의 무관심과 제도적 냉대에 대해서 박 교수는 이렇게 꼬집는다. 

"인문학자들에게 정체성 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모국어를 튼실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인문학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줄 몰라요. 미국이나 독일 등지의 대학원은 외국학(동양학) 연구자들에게 석박사 학위논문으로 번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외국학을 할 경우 번역을 연구 실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그런 주체성에 입각한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봐요." 

마지막 멘트는 농담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절반은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자녀들은 '미국인' 아닌가. 끝으로, 나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주제인데, 번역 문제와 민주주의의 관련성이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입니다.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10개 땄다고 해도 영어책을 한글책처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한글 콘텐츠를 확충해서 영어가 아니더라도 한글만으로 전 세계의 고급지식과 정보를 다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되는 거지요.
조건이 여의치 않다고해서 번역가와 출판인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경험을 갖지고 있어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좋은 번역서를 출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출판의 정도를 걸어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번역의 힘'을 만끽하도록 하는 일, 그것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민주화운동이며 나라살리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병운동'과 '나라살리기 운동'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지식정보사회의 민주화운동'으로서 번역이 갖는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환기시키고픈 의도에서 박상익 교수의 인터뷰를 옮겨적었다... 

10. 07. 02.  

 

P.S. 박상익 교수와 마찬가지로 번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가 번역과 한국 근대를 다룬 책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 <근대의 세 번역가: 서재필, 최남선, 김억>(소명출판, 2010)이 그 두 권의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이라 바로 주문을 넣고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는 100년 전에 번역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고 또 어떤 작업을 했던가 살펴볼 수 있겠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 또한 100년 뒤에 똑같이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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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7-0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 선생이 거의 25여년 전에 했던 주장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군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물론 전체적인 문제의식에는 십분 공감은 하지만 예로서 거론 된 것들이 좀 부적절하다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에 1100년 900년 뒤졌다고 하는 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전달된 후 100여년 지났을 테니 그 시점 이후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인물임을 전제한다면 아랍어 번역이 나오는 데 거의 1000년 이상 걸린 셈이고 그리스 문명에 매우 친화적이었던 라틴어 번역도 아랍어 중역을 통해 거의 13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셈이니까요. 물론 문화교류의 스피드를 그 시대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아마 번역에 열심이었던 일본에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이 얼마만에 나왔나와 비교한 예를 들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거에요. 그리고 중세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당시 학문의 중추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 사회에 그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구요.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는 암암리에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세뇌도 보입니다...

김욱동 교수님 책은 저도 관심이 가는 군요.^^

로쟈 2010-07-02 21:38   좋아요 0 | URL
약간 '과장'된 면도 있지요. 서양사 전공자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예로 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동시대 문제작들도 바로바로 소개되는 건 아니니까 저는 사정이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하기야 번역을 기다리는 우리 '고전'도 산적해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을 듯해요...

안티고네 2010-07-20 23: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연대만 가지고 단순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랍어 번역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슬람 문명권에서의 번역이라고 해야겠죠. 이슬람신학의 쳬계화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인것이니까요. 622년 시작한 신흥종교 이슬람교가 750-900년에 모든 번역을 마쳤으니 이슬람기원으로부터 130년이 경과된 뒤 본격 번역작업을 시작한 거죠. 이슬람교 초창기 모든 것이 체계가 잡히지 않고 어수선한 그 시대에 불과 130년 지나서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작심을 했으니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리스문명에 라틴어가 친화적이었다는 것도 고대로마시대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로마 멸망 후 500년 넘도록 과거와의 엄청난 단절이 있었습니다. 서유럽 게르만족이 라틴어를 겨우 읽고 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샤를마뉴 시대인 800년경이었지만 11세기 중반까지 서유럽의 문맹률은 99% 이상이었습니다. 대단한 문맹시대였죠. 샤를마뉴 황제도 문맹이었으니 말 다했죠. 한마디로 거의 동물처럼 산겁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면서...유럽은 1050년 이후에야 겨우 농업혁명으로 경제가 피어나고 먹고살만해져서 교육시설이 늘어나고 라틴어 해독능력자도 많아진거죠. 그러니 기아상태에서 벗어나고 사람답게 산지 1세기가 채 안되어서 비록 중역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한 겁니다.
그때와 지금의 시간을 똑같은 시간이라고 인정한다 해도(그럴 리가 없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동작이 신속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대의 엄청난 변화속도를 감안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느려터진 굼벵이 수준이고요.
그리고 로쟈 님이 말씀하셨지만 서양사 전공자가 아리스텔레스 예를 들었다고 '서구중심주의의 세뇌' 운운하는 것은 생뚱맞은 오바로밖에는 안 보이네요. 모국어로 세계의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서구 중심주의로 딱지 붙이는 건 심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비판을 하면 좀 멋져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공정성은 있어야겠죠?

알비스 2010-07-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출판 뿐만 아니라 음반시장을 봐도 일본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음반을 일본에서는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기록하고 보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죠.
그리고 요즘 출판업계에서도 서서히 전자책이 도입이 되고 있는데 열악한 우리 출판계에 이것이 대중화 되면 불법복제로 출판상황이 더욱 더 악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로쟈 2010-07-05 08:50   좋아요 0 | URL
촐판계에서도 불법복제 차단 기술에 대해선 다들 회의적이더군요...
 

경비실에서 택배를 찾아가라고 하여 내려가보니 전문 월간지 <공간(SPACE)>(512호)이 배송돼 있다. 보통 격월로 서평을 게재하는데, 한 번 건너뛰고 이번 7월호에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미술문화, 2010)에 대한 서평을 실은 바 있다. 건축 전공자가 아니라면 들여다볼 일이 거의 없을 잡지인지라 가끔씩 '문학평론가'의 서평이 실리는 게 신기하긴 하다.   

공간(10년 7월호)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의 부제는 ‘4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섭강의’다. 아르코미술관 주최로 네 명의 인문학자가 참여한 강좌 ‘현대미술과 인문학’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전반적으론 미술사와 현대미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강의록’이라고는 하지만 ‘강의’는 빠지고 ‘기록’만 남았다. 강의의 현장감이 반영돼 있지 않은 탓인데, 독자에게 ‘들려주는’ 청각적 텍스트가 아니라 여전히 독자가 ‘읽어야 하는’ 시각적 텍스트에 머물고 있는 점이 흠이다. 무엇을 읽을 수 있나?   

먼저, ‘둥지의 예술철학’을 주제로 삼은 박이문 교수는 예술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예술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고 전제하고 기존의 정의들을 검토한다. 예술을 ‘재현’과 ‘표현’, ‘형식’, ‘제도’ 등으로 규정해온 전통적 정의들이 어떤 점에서 만족스럽지 못한가를 지적한 후에 그는 ‘예술의 종말’론으로 유명한 아서 단토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검토하고 비판한다. 단토의 정의가 “눈으로 보아서는 어떤 것이 예술작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런가? 

  

단토는 1964년 앤디워홀이 뉴욕의 한 갤러리에 ‘브릴로상자’를 전시한 것을 보고서 충격을 받는다. 당시 워홀이 흔한 비누상자를 모방하여 제작한 이 ‘작품’은 적어도 육안으로는 기성품과 구별되지 않았다. 단토는 ‘지각적 식별불가능성’이란 문제를 도출해내며 지각이 더 이상 예술작품을 식별해주는 준거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술이 ‘눈’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가 된 것이고, 이것은 감성학으로서 미학의 종언을 뜻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단토에 대한 비판은 다른 근거에서 이루어져할 듯싶다. 대신에 박 교수는 예술작품의 양태적 정의를 제안하며 예술작품의 구조적 모델로서 ‘둥지’를 제시한다. 새들의 둥지가 가장 바람직한 예술적 언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둥지는 생태학적이며 친환경적이고,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건축공학적으로 견고하며, 감성적으로 따뜻하고, 영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국철학 전공자인 임태승 교수는 ‘예술적 상상력과 동양의 사고’라는 강연에서 동아시아 미학의 구조와 성격을 밝히고 디지털미학을 위한 제언을 보탠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턴과 원리이며 동아시아 예술은 철학적인 원리와 미학적인 범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그러한 전통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가(儒家)미학이다. 격물(格物)에서 수신(修身)을 거쳐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유가적 알고리즘이 미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물로써 덕성을 비유한다’는 뜻의 이물비덕(以物比德), 줄여서 ‘비덕’이 가장 전형적인 심미론 또는 창작론이 된다. 자연계의 물상이 모두 인간의 도덕적 정감과 관련되기에 ‘재현(再現)’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 ‘사의(寫意)’다. 실경(實景)보다 상징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예 임 교수는 동아시아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동아시아 미학이 디지털미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동아시아 신화와 역사의 수많은 내러티브들이 디지털기술에 스토리보드를 구축하게 해줄 거라는 것이 임 교수의 기대다.   

‘현대미술과 철학의 이중주’에서 이광래 교수는 서양미술사가 재현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재현(차이의 발견)과 반재현(차이의 생산)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기술한다. 푸코에 기대어 말하자면, 재현에서 재현을 통해 재현을 부정하는 탈재현으로, 그리고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반재현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이 서양미술사의 전개과정이었다. ‘재현미술의 종언’ 이후의 미술은 곧 ‘엔드게임’으로서의 미술이다. 이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고 다른 게임, 즉 메타게임으로 대체되며 게이머들만 바뀐다. ‘미술의 종말놀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다. 급속하게 변화해가는 매체환경 속에서 미술작품도 무한변신을 시도할 수밖에 없으며 “마침내 ‘확장미술 시대’를 맞이할 미래의 사이버서퍼들은 스펙터클 엔드게임에 빠져들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전망이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은 ‘철학의 눈으로 본 매체’에서 매체 변화와 혁명이 가져온 의식 및 사회 변화의 양상을 기술하고 디지털 시대 새로운 형이상학의 밑그림을 그린다. 근대의 개인적 주체, 자본주의적 대량상품 시장 체제, 목적론적인 진보적 역사관 등의 확립이 모두 인쇄술의 발명으로 인한 문자문화의 정착과 무관하지 않다면, 사진술의 발명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모든 시각적 세계가 ‘인간의 눈’으로 본 세계였지만 사진술의 발명 이후에 인류는 ‘기계의 눈’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우리의 감각비율과 지각 패턴을 바꾸고 문화예술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아직 진행중인 디지털혁명이 이미 존재 질서를 재편하고 우리의 정체성마저 변화시켰다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하다. 아마도 우리가 인문학을 다시 또 만난다면 ‘미술관’이 아니라 ‘사이버미술관’에서이지 않을까.    

10. 07. 01.  

P.S. 엉뚱하게도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는 미술관이 아니라 영화관을 떠올려준다. 책의 후반부를 씨네큐브에서 <하하하>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읽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검색해보니 아서 단토의 신작이 <앤디 워홀>(2009)인데, 구미가 당긴다. 하하하, 앤디 워홀이네!.. 

 

P.S.2. 아서 단토의 <앤디 워홀>은 <앤디 워홀 이야기>(명진출판, 2010)로 '번역'돼 나왔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청소년물로 각색되어 '번역'이란 말을 쓸 수도 없다('아서 단토 지음'은 어떤 의미로 적어놓은 것일까?). 편집자주에 따르면, "원저작물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엮은이를 따로 두었"고, 책은 그 엮은이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 단토의 지적대로 워홀에 관해선 훌륭한 전기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하필 예술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책을 골라서 '전기'로 재가공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대하던 책을 하나 도둑맞은 기분이다. 단토나 저작권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10.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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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앤디 워홀 이야기' 유감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14 20:07 
    저녁을 잘 먹고 소화 안 되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의 신작이 출간된 건 반갑고, 게다가 그 책이 지난달에 기대를 표한 <앤디 워홀>(2009)이라면 놀라울 정도인데, 정작 '번역서'라고 나온 <앤디 워홀 이야기>(명진출판, 2010)는 엉뚱하게도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하나로, 앤디 워홀의 전기나 소설처럼 꾸며서 훑어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