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78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을 골랐는데, 생소한 이름이지만 올 상반기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저자다. 데뷔작 <야전과 영원 - 푸코, 라캉, 르장드르>(2008)도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르장드르'란 생소한 이름은 그의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바로 그런 데 있지 않나 싶다. 푸코나 라캉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지만, 프랑스의 법제사가이자 정신분석가 르장드르는 우리에게 소개돼 있지 않다. 사사키 아타루의 글은 <사상으로서의 3.11>(그린비, 2012)에도 포함돼 있다.

 

 

 

주간경향(12. 06. 05) 문학은 혁명의 힘이다

 

여기 한권의 책이 있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저자는 낯설고 제목은 오리무중이다(파울 첼란의 시구절이라 한다). 하지만 무심하게 책장을 펼치는 순간 자르기는커녕 책을 집어든 손이 무척이나 대견하게 여겨지는 책, 오랜만에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대체 어떤 책인가. 그나마 단서가 되는 건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란 부제다. 하지만 넘겨보면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 같은 책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과 혁명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 자체의 혁명성을 다룬다. 저자의 주장은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건,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닷새 밤 동안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주장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책을 읽어버렸다는 것’으로 다시 새기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야 말았다!”는 느낌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책은 본래 읽을 수가 없다. 읽으면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알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면 일류의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광기와 함께 열광과 열락을 내포하며 독서의 즐거움은 신조차도 선망하는 어떤 것이다. 최후 심판의 날에 책을 옆구리에 끼고 온 우리를 보고서 신은 사도 베드로에게 얼굴을 돌려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라고 저자는 상상한다. “이 사람들은 보답이 필요 없어. 그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람들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곧 책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에겐 불멸의 영광도 필요치 않다!


책을 읽고 쓴다는 게 어째서 그토록 대단한가. 그 자체가 혁명이고 혁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가령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은 한마디로 성서를 읽는 운동이었다. 그가 한 일은 성서를 읽고 번역하고 수없이 많은 책을 쓰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궁극에는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세계가 그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는 내가 미쳤거나 세상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농민의 아들에 불과했던 루터지만 성서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교황의 방해자가 되었다. 자신이 읽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책을 읽은 이상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루터는 말했다. 대천사에게서 ‘읽어라’는 계시를 받았던 무함마드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그는 신에게 선택돼 읽으라는 절대명령을 받는다. 문맹이었던 무함마드가 결국 읽을 수 없는 것을 읽고 잉태한 것이 <코란>이고 그로써 이슬람 세계를 만들어낸다. 무함마드의 ‘혁명’이다. 저자가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고 거듭 주장하는 근거다.


이러한 혁명의 ‘본체’로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12세기의 ‘중세 해석자 혁명’이다. 11세기말 피사의 도서관 구석에서 유스티아누스의 법전이 발견되고, 600년 가까이 망각에 묻혀 있던 이 로마법을 바탕으로 교회법을 대대적으로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렇게 해서 집성된 것이 12세 중반 교회법학자 그라티우스의 교령집이다. 이 새로운 법을 기본으로 유럽 전체를 통일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교회’가 성립하고 바로 이 교회가 근대국가의 원형이 된다는 설명이다. 근대국가만이 아니다. ‘준거를 명시하다’는 실증주의 역사학  또한 법학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12세기 혁명으로 탄생한 법학이 유럽의 첫 ‘과학’이며 모든 과학의 원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한 변화를 낳은 혁명의 실상은 사실 수수하다. 단지 중세의 수많은 신학자, 법학자들이 홀로 책장을 넘기며 법문을 고쳐 써나간 것이니까. 사사키 아타루는 그러한 혁명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철학이 끝났다거나 문학이 끝났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체온을 약간 상승하게 해주는 책이다.

 

12. 05. 29.

 

  

 

P.S. 아무래도 책의 압권은 '12세기 혁명'을 다룬 부분인데, 내막을 좀더 알고 싶어서 몇권의 책을 더 주문했다. 호르스트 푸어만의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와 자크 르 고프의 <중세의 지식인들>(동문선, 1999), 로버트 스완슨의 <12세기 르네상스>(심산, 2009) 등이다. 관련서들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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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한 책을 읽다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문구 인용에 밑줄을 그었다.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젊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구절이지만 출처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건 새삼 상기하게 됐다. 덕분에 20년도 더 전에 읽은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살로메> 같은 작품들이다. 생각난 김에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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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작품선
오스카 와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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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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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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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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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손에 잡은 책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민음사, 1998)이다(내가 갖고 있는 건 1쇄다). 영역본을 옮긴 <니체, 철학의 주사위>(인간사랑, 1993) 외 영어본과 러시아어본까지 모두 갖고 있는 책이지만 부분적으로만 읽고는 말았다. 번역이 별로 탐탁지 않다는 것도 독서를 계속 미룬 이유다. 그러다 <도덕의 계보학>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는 김에, 그리고 두달 전 박찬국 교수의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읽기>(세창미디어, 2012)도 나온 김에 다시 손에 들었다. 틈나는 대로 조금씩 음미하며 읽어볼 참이다(천천히 읽기, 곧 '지독'이 목표다).

 

 

오늘도 몇 페이지 읽다가 어이없게 번역된 대목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왔는데, 다른 대목도 아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니체의 복수주의(pluralism)를 설명하면서 들뢰즈는 자기만이 유일신이라는 어느 신의 말을 듣고서 신들이 웃다가 죽었다는 대목을 인용한다("신들은 죽었다. 하지만 자기만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어떤 신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웃다 죽었다."). 이게 <니체와 철학>에는 이렇게 옮겨졌다.

"신들이 존재하건, 단 하나의 유일신도 존재하지 않건, 소위 그것이 신(성) 아닌가?"(21쪽)

대체 무슨 말인가? 이 대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부 '변절자들'에 나오는 것인데, 신들 가운데 한 신, "분노의 수염을 단 늙은 신, 질투의 신"이 "신은 유일하다. 그대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신을 가장 잘 부정하는 말'을 하자 다른 모든 신들이 웃어대더니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친다. 

 

 

"신들이 존재하지만, 하나의 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신성함이 아닌가?"(펭귄클래식판, 292쪽)

"신들은 존재하지만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다운 일이 아니겠는가?"(한길사판, 264쪽) 

"신들은 존재하지만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신성함이 아닌가?"(민음사판, 324쪽)

일단 손에 잡히는 번역본들과 대조해보더라도 <니체와 철학>의 번역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없다면 다른 번역본을 참고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슨 만용인가. 니체의 가장 간명한 주장도 이해하지 못하고 <니체와 철학>을 옮기다니! 독자들이 웃다가 나자빠질 일이다. 참고로 <니체, 철학의 주사위>에서는 이렇게 옮겼다. "이러한 신성은 엄밀히 말해서 유일신 이외의 신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26쪽) 역시나 만족스럽지는 않지만('아닐까?'가 아니라 '아닌가?'라고 옮겨야 한다. 조롱의 뉘암스를 담고 있기에), <니체와 철학>만큼 헛다리를 짚지는 않았다.

 

혹 1쇄라서 그런가 싶어서 일단 개정판도 다시 주문했다(개정판은 2001년에 나온 걸로 돼 있다). 선량한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번역상태에 대해서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2.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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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으로 별다른 주저 없이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라티오, 2012)를 타이틀로 고른다. 서양사만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 일람에 유익한 가이드북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새한국사>(까치, 2012)도 선사시대에서 조선후기까지 다룬 통사로 눈길을 끈다. 국사학계의 성과가 어떤 것인지 확인해볼 수 있겠다. 로버트 크리스의 <측정의 역사>(에이도스, 2012)는 도량형 문제를 사회문화, 정치, 역사, 과학사적 측면에서 흥미진진하게 그린 책으로 지난해 '가디언'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의 하나였다고. 요제프 라이히홀드의 <미의 기원>(플래닛, 2012)는 독일어권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가 파헤친 아름다움의 기원에 관한 책이다. 끝으로 브라이언 페이건의 <크로마뇽>(더숲, 2012)은 고고인류학자가 쓴 크로마뇽인, 최초의 현생인류에 관한 책. 모두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어서 연휴가 짧게 느껴질 듯싶다. 하긴 읽을 책이 없어도 짧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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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전 강의-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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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국사- 선사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
이태진 지음 / 까치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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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역사- 절대 측정을 향한 인류의 꿈과 여정
로버트 P. 크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2년 6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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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의 기원- 다윈의 딜레마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종대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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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라티오, 2012)다. <인문 고전 강의>에 이어서 40주의 도서관 강의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첫 시간'에서는 역사책을 읽는 순서를 제시하고 있는데,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을 일단 권한다. 

 

 

"통사->주제사,부문사->각국사->지도책, 연표->글로벌 히스토리를 순서대로 읽고나면 역사 공부를 한번 한 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각 시대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 고전을 읽으면 좋습니다."(23쪽) 

그중 '각국사' 관련으로 추천한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콘사이스 히스토리' 시리즈이다. '케임브리지 세계사'와 같은 표제가 붙은 책은 대부분은 믿을 만한 것들이라는 소개를 덧붙인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듀건의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개마고원, 2001) 같은 책이다. 잘 못 보던 책이어서 찾아보니 역시나 이미 절판된 상태다. 하긴 10년도 더 전에 나왔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동시에 요긴한 책들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는 총 네 권이 번역돼 나왔는데,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가 모두 절판됐다. 좋은 시리즈이지만 별로 반응은 없었던 셈이다.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종류의 각국사들이 출간돼 있기는 하지만, 시리즈는 별로 보지 못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각국사도 역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 열강을 기준으로 하면 <영국사>와 <이탈리아사>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시리즈는 오래전에 종결된 듯싶지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시리즈는 아직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콘사이스 히스토리' 시리즈는 도서관에도 제대로 갖춰놓은 곳이 별로 없다. 이 참에 다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다양한 각국사들과 함께...

 

12.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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