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주말판에서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오랜만에 차례가 돌아왔는데, 막상 아이템을 고르는 건 쉽지 않아서 고심 끝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대해 한번 더 의견을 적었다(<데미안>에 대한 기본 생각은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에 수록돼 있다). 요즘 새번역본이 계속 더해지고 있어서 새롭게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서다.

 

 

한겨레(13. 01. 19) 살육이 영혼의 발산?…데미안을 대하는 서먹함

 

헤르만 헤세의 독자들에겐 반가운 일일 테지만 연초부터 헤세의 작품이 앞 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1962년에 세상을 떠났기에 사망 50주년까지 보호받는 저작권이 작년에 만료됐고 올해부터는 저작권 없이도 출판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유난히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필두로 여러 작품이 새 번역본을 얻었고 앞으로 더 얻을 전망이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새 번역이 궁금했던 작품은 <데미안>이다. 중학생 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서 십대 시절 ‘내 인생의 책’으로 꼽기도 했지만 <데미안>과는 좀 서먹한 관계였고 성인이 돼 다시 읽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전영애 옮김·민음사)라는 유명한 구절을 읽어도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진 않았다. 신의 이름이 ‘아프락사스’(안인희 옮김·문학동네)나 ‘아브락사스’(김재혁 옮김·고려대 출판부)로 바뀌어도 신에 대해서나 그 새에 대해서 모르는 건 싱클레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서문에서 헤세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했으니 욕심은 금물이다.

<데미안>의 핵심 메시지는 서문에 나오듯이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안인희)일 것이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불편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쓰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자기발견이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인간이 이상을 위해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상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 다만 그 이상은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획일화된 공동의 위험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운명의 의지에 다가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는데, 그들의 증오와 분노가 대상과는, 곧 적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 무엇인가.

“피비린내 나는 이들의 과업은 단지 영혼의 발산, 즉 자체 분열된 영혼의 발산이었으며, 이 영혼이 날뛰고 죽이고 섬멸하고 죽고자 했던 까닭은 새로 태어나기 위함이었다.”(김재혁) 곧 싱클레어는 전장에서의 죽음을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으로 본다. 알은 세계이기에 세계는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야 했다. 그렇다면 세계에 대한 투쟁의 기회로 전쟁보다 맞춤한 것은 없으리라. 이것을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부여로 읽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헤세 자신이 반전론자였다는 점이다. 서문에서도 그는 “지금은 각각 하나하나가 자연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시도인 인간들을 무더기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있다”고 적었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비판적 의미를 갖는다면, 전장에서의 살육을 새로 태어나기 위한 영혼의 발산으로 보는 관점과 양립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면서 헤세는 스스로도 “나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헤세에게 너무 많은 걸 물어보는 것은 욕심일 듯하다.

 

13. 01. 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의 하나로 브루스 로런스의 <꾸란 이펙트>(세종서적, 2013)가 출간됐다. <종의 기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인권>, <전쟁론>에 이어서 다섯 번째 책이다(이제 다섯 권 남은 것이 된다). '그레이트 이펙트'란 '세계를 뒤흔든 책'이란 의미인데, 책의 부제도 그에 걸맞게 '위대한 이슬람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다(남은 다섯권 가운데 한권은 필시 <성경>일 테다). 루슈디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서 더 관심을 갖게 돼 꾸란과 이슬람에 관한 책들을 모으고 있는데, 이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꾸란>의 번역에 대해서 <꾸란 이펙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꾸란>의 번역에 대한 해설은 필수적이기도 하고 소용없기도 하다. <꾸란>의 만족스러운 영어 번역본은 없다." 한국어 번역본도 꽤 오래 전에 나왔지만 그게 읽을 수 있는 책인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나로선 이런 해설서 정도에 만족해야 하지 않나 싶다. 1200쪽이 넘은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 2012)도 구입은 해두었지만 정말 어느 세월에 읽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독서에도 신앙심이 필요하다면 이럴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최근에 모아둔 책  몇권을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꾸란 이펙트- 위대한 이슬람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브루스 로런스 지음, 배철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3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3년 01월 18일에 저장
품절
코란이란 무엇인가
마이클 쿡 지음, 이강훈 옮김 / 동문선 / 2003년 1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13년 01월 18일에 저장
절판

청소년을 위한 이슬람과 꾸란
이주화 지음 / 두리미디어 / 2012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01월 18일에 저장
품절

이슬람
카렌 암스트롱 지음, 장병옥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1월 18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잠시 쓰다가 임시 저장해놓은 페이퍼를 다시 꺼내서 마저 쓴다. 흠, 별로 쓴 게 없군. 어제 습관처럼 새로나온 책을 검색하다가 두 명의 비평가에게 눈길이 멈추었다. 벨기에 출신의 비평가로 제네바학파의 일원인 조르주 풀레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비평가 세르주(세르쥬) 다네가 그 둘이다. 그리고 풀레의 <비평적 의식>(지만지, 2013)과 다네의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이모션북스, 2013)이 이번에 나온 책이다.

 

 

 

<비평적 의식>은 사실 '오래된 새책'이다. 발췌본이 재작년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전에 <비평과 의식>(탐구당, 1990)으로 나왔던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르쥬 뿔레'라고 표기됐었지만 역자는 같다. 이번에 나온 건 번역을 좀 다듬어서 다시 펴낸 것인 듯싶다. 절판되긴 했지만 <인간의 시간>(서강대출판부, 1998)도 나온 적이 있다. '인간의 시간에 관한 연구'이며 "르네상스 이후 각 시대마다 '시간에'관한 관념이 변화해 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각 시대의 주요 작가들의 존재적 고기토를 검토하면서 하나의 작품이 어떻게 배태되며, 작가의 사유가 '인간의 시간'과 관련하여 어떻게 발생·전개되고 있는지 치밀하게 연구"한 책이다. 대학원 때 한창 문학이론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기억에 그 두 권이 워낙 비싸서 구입해두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비평과 의식>은 구입했다) 여하튼 구면의 저자를 오랜만에 보게 돼 감회가 없지 않다. 

 

 

조르주 풀레에 대해선 아마도 김현의 <제네바학바 연구>(문학과지성사, 1986)를 통해서 좀더 자세히 알게 됐었는데, 이 책은 절판됐고 현재는 <제강의 꿈>이란 제목으로 전집에 수록돼 있다(원래는 '제강의 꿈'이 부제였다). 마르셀 레몽을 중심으로 알베르 베겡, 장 루세, 조르주 풀레, 장 스타로벵스키 등의 비평을 소개/정리한 책이다. 이후에 레몽(레이몽)의 책은 <프랑스 현대시사>(문학과지성사, 1989; 현대문학, 2007), <발레리와 존재론>(예림기획, 1999)이 번역됐다.

 

 

그리고 베갱의 책은 <낭만적 영혼과 꿈>(문학동네, 2001), 장 루세의 책은 <바로크 문학>(예림기획, 2001), 그리고 스타로뱅스키의 책으론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아카넷, 2012) 등이 소개됐다. 되짚어가며 읽어볼 만한 여건은 마련된 셈이다.

 

 

한편 세르주 다네(1944-1992)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번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영화잡지들에서 자주 이름을 접한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비평가이다. 카이예 뒤 시네마 편집위원을 거쳐서 자신이 직접 영화잡지 <트래픽>을 창간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소개는 이렇다.

 

프랑스 영화 비평에 있어 세르쥬 다네는 앙드레 바쟁 이후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이 책 <영화가 보낸 그림 엽서>는 세르쥬 다네가 결국 완성시키지 못했던 책이다. 에이즈로 인한 자신의 때 이른 죽음을 예감한 다네는 ‘본격적인 저서’를 위한 소재로서 동료인 세르쥬 투비아나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 최후의 인터뷰의 흔적들이 모인 결과물로서 이 책은 그의 사후인 1994년에 출간되었다. 삶과 영화가 미로처럼 겹치고 지나가면서 다네 자신의 생이 이야기되고 있는 이 책은 ‘영화’와 ‘20세기의 역사’의 몽타쥬이면서 동시에 가장 치열한 영화적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관심을 갖고 있는 비평가라서 조만간 번역본과 영역본을 모두 구해볼 참이다. 수록된 글 가운데 '<카포>의 트래킹 쇼트'는 이윤영 편역, <사유 속의 영화>(문학과지성사, 2011)에도 번역돼 있다...

 

13. 01. 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립극단에서 발행하는 반연간지 <연극>(4호)에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문학과지성사, 2011)에 대한 장정일의 서평이 실렸다. 연극평론가 안치운 교수의 책인데,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콜테스의 책들을 모두 구한 참이다(절판된 <서쪽부두>만은 구하지 못했다). 베케트 이후의 연극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제2의 사뮈엘 베케트'란 평판이 호기심을 갖게 한다. 책도 구한 김에 겸사겸사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마흔네 살의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의 배우이자 희곡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이 책은 <로베르토 주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등의 작품으로 제2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현대 연극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콜테스'에 대한, 그리고 콜테스 '작품'에 대한 본격 연구서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독백과 운문의 귀향
안치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01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임수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9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1월 17일에 저장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이선형 옮김 / 연극과인간 / 2011년 2월
7,000원 → 7,000원(0%할인) / 마일리지 7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1월 17일에 저장

로베르토 쥬코- 프랑스 희곡선 1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2년 7월
4,000원 → 4,000원(0%할인) / 마일리지 40원(1% 적립)
2013년 01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주간경향(1010호)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 2012)가 내가 고른 책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책이어서 중복의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내가 갖고 있는 책 몇 권 가운데서는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루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주간경향(13. 01. 22) 한국기독교 어긋남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인문학이란 세속의 어긋남에 대한 관심이기에 그 노동을 ‘어긋냄’이라고 일컫는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는 기독교에 대한 어긋냄의 산물이다.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에 적은 그의 표현으로는 “어긋남의 구조를 통새미로 알면서도, 그 두루 아는 것을 죽인 채 외려 모난 일을 찾는 것”이 어긋냄이다. 기독교의 어긋남의 구조에 대해서 통새미로 아는 그이지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한국 기독교의 ‘모난 일’들을 들추며 10명의 신자에 대한 스케치와 함께 인문적 성찰을 포개놓는다.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온전한 사실도 허구도 아니며 취지에 맞게 재구성해 놓았다고 미리 밝히고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건 구체적인 사례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가령 “A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적어도 지난 10년간 한 차례도 주일 대예배에 빠진 적이 없으며, 40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십일조가 성에 차지 않아 십이조(十二組)를 한 지도 7년째에 접어든다”거나 “B는 기독교인이다. 그녀는 교회 권사직에다 봉사부장까지 맡아 충량하고 열성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70대 노파다. 노령에 이르러서도 기세가 등등한 그녀에게는, 젊어 청상(靑孀)이 된 채 남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궁핍하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전력이 온몸에 서슬 퍼렇게 드러난다” 같은 구체적 서술은 현실감을 전달한다. 물론 ‘독실한’ 신자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목사이면서 대학에서 성서를 강의하는 성서학자이지만 동시에 강남의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소문난 오입쟁이 C 등도 ‘기독교인’이다. 이들이 모여서 얼추 한국 기독교인의 총체적 신앙생활을 구성한다. 저자가 이름 붙인 바로는 ‘당신들의 기독교’다.

무엇을 어긋내고자 하는가. 몇 가지 어긋남의 지점이 있다. 먼저, 사유(공부)의 부재.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공부를 매개로 신앙과 신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얻은 뒤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학을 동원한다. 신앙의 ‘주체화’에 이르는 노역이 신앙의 알짜이지만 그것이 생략되거나 부족한 것이 ‘당신들의 기독교’다. 그리고 가족주의. 예수의 급진성은 그의 탈가족주의, 곧 “네 가족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는 메시지에 담겨 있지만, “21세기의 한국 개신교회는 예수의 첫닭울이와 같은 메시지를 까마득히 잊은 채”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만을 강박적으로 붙들고 있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거기에 자본과의 결탁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는 대자본의 현실을 돕는 안전망이자 심지어 여리꾼 노릇을 하고, 종교는 자본의 성취와 번영에 대해 뒷북을 치며 축복”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즉 ‘카이사르냐 예수냐’가 아닌 ‘카이사르=예수’가 자본주의 시대 기독교의 정식이 돼버렸다.

‘당신들의 기독교’는 초기 교회와 같은 ‘절실한 약자들로 구성된 희망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소망’이라 부르면서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이 자본제적 세속의 성취와 권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종교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마치 예수를 잡아먹은 허깨비들의 장송곡처럼” 들린다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들의 기독교’와 단절할 수 있는 길인가. 저자는 쓰레기통의 파리떼처럼 번성하는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이다. 그것이 ‘예수의 희망’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이다. 예수의 제자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생활양식의 실천을 오늘날 더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숨은 바늘을 돼지 뒷다리로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 되었다는 게 저자의 토로다. 하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그런 불가능한 꿈을 지핀 삶이 아니었던가. 그의 삶과 ‘당신들의 기독교’가 어디에서 어긋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13. 01. 16.

 

 

 

P.S. 최근에는 무함마드와 이슬람 관련서들을 모으면서 덩달아 예수와 기독교에 관한 책에도 눈길을 주게 됐는데, 오늘 탐을 내고 있는 책은 한스 큉의 저작들이다. 특히 방대한 분량의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 2002)와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 2012)이 욕심을 내게 한다. '당신들의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의 본질과 이슬람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절판되기 전에 구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